깊은 상흔의 잔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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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의대화
작품등록일 :
2020.05.11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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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28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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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25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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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 - 일체일념(一體一念) _8화_일체일념(4)

DUMMY

카니엘은 분노했다.

그래서 검에 힘이 실렸고, 민첩하지 못했으며, 피를 묻힐 수 없었다. 머리 속 또한 지저분한 악몽과 기억들로 혼잡했기에 도저히 냉정하게 싸울 수 없었다. 오로지 본능과 힘으로 2기의 인형을 상대하고 있었고, 그 결과는 만족스럽지 못했다.

인형의 목을 베어야 할 상황에 자신의 목을 방어해야 했고, 발로 걷어차야 할 시간에 뒤로 물러서야했기 때문이었다.


“제기랄!”


카니엘은 검을 크게 휘둘며, 뒤로 물러나야 할 상황에 처하자 그렇게 소리 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후퇴도 잠시, 그는 이를 악물고 다시 인형에게 달려들었다.

곧, 검이 에는 소리가 끊임 없이 울려퍼져 숲을 가득 메웠고 그렇게 양측 모두 단 한 번의 실수로 목숨이 날아갈 상황 속에서 카니엘은 본능으로, 인형들은 그들의 완벽함으로 살아남고 있었다.


그러다 그 삶과 죽음의 경계를 단번에 무너뜨리는 소리가 갑자기 들려왔다. 거대한 발자국 소리가 쿵쿵거리다 이내 우지끈하는 소리와 함께 주변 나무들이 사방으로 쓰러진 것이었다.


그 중 한 그루가 정확히 카니엘과 인형 2기 사이로 쓰러졌고, 그때 카니엘의 본능이 앞섰다. 위험을 무릅쓰고 쓰러지는 나무 밑으로 아슬아슬하게 미끄러진 카니엘은, 나무를 피해 뒤로 물러서던 인형 한기의 다리를 붙잡을 수 있었다. 손에 감각이 들자마자 인형을 자신 쪽으로 잡아 당겼고, 동시에 검을 치켜 세운채 쑤셔 넣었다.


턱 밑부터 머리까지 꼬챙이처럼 꿰뚫린 인형에게서 만족할 만한 소리와 피가 뿜어져 나오는 것을 지켜본 것도 잠시, 카니엘은 재빨리 검을 뽑아 낸뒤 인형을 목을쳐 마무리를 지었다. 그리고는 나머지 인형 한기를 찾기 위해 두리번거리던 도중, 자신의 싸움은 여기까지임을 직감했다.


미칠듯이 뛰던 심장이 점차 가라앉았고, 머리속을 가득 메우던 불길의 환영과 형의 끔찍한 몰골들은 서서히 형태를 갖추더니 구름 사이 달빛을 받은 나무의 형태로 되돌아 온 것이었다.

그렇게 카니엘은 자신의 마지막이었던 3번째 신체 향상이 끝났음을 깨달았고 동시에 남아있던 인형에게 죽임을 당할 것이라 생각한 찰나였다.


거대한 울부짖음과 함께 다시금 주변 나무들이 쓰러졌고, 동시에 자폭형 인형이 튀어 나왔다. 같은 죽음이긴 했지만 자신이 생각했던 죽음의 형태가 아니었기에, 카니엘은 되려 그 속에서 살아갈 가능성을 찾으려 했지만 인형의 배는 이미 당장이라도 터질듯이 부풀어 오른 상태였다.

실전에서 맞닿뜨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지만, 교본을 통해 폭발이 일어날 경우 주변 반경 백오십 보폭이 초토화 된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따라서 지금 당장 폭발한다면 분명 자신의 시체조차 남지 않을 것이기에, 에스트식으로 표현하자면 인형 학살자란 별명에 걸맞는 죽음이 그에게 다가오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카니엘에게 드리운 죽음의 그림자는 금빛 물결에 휩쓸려갔다.


자폭 인형 뒷편에서 벨로나가 하늘로 솟구쳐 올라왔던 것이었다.


“단장님···?”


카니엘이 그 어떤 가능성을 떠올릴 틈도 없이 벨로나는 행동했다.

문드러진 팔을 휘두르는 인형의 움직임을 이리저리 피하더니 이내 그녀는 인형의 어깨를 발판 삼아 검을 있는 힘껏 목뒤로 쑤셔 넣었다. 그리고서는 거침없이 양 옆으로 썰어가기 시작했다.

거무튀튀한 피가 튀기고, 그 뿜어져 나오는 피의 양에 인형은 더욱더 미친 듯이 발버둥 쳤다. 그러나 벨로나는 믿기지 않는 균형 감각을 유지한 채 양손에 쥔 검 자루를 놓치지 않았고, 반동으로 좌우로 흔드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단장님이라도 도망가십시요!”


뒤늦게 그녀가 자폭을 하기전 인형을 처분하려는 것을 알아차린 카니엘이었다. 하지만 남아있는 인형 목의 살점이 떨어져 나가는 것 보다 끔찍하게 부풀어 오른 배가 먼저 터질 것이 분명해 보였다.


“저 신체향상 끝입니다. 그러니······!”


그 때였다.

인형의 무언가가 탁 끊어졌는지 갑자기 부풀어 오르던 배가 점차 작아지기 시작했다. 마치 시간이 되돌리는 장면을 보는 것 같았으나, 인형의 목 윗부분의 시간은 너무나도 착실히 흘러가고 있었다.


“어떻게···" 


카니엘이 채 말을 끝내기도 전에, 인형의 목 위에서 시간의 흐름을 집행한 벨로나가 땅에 착지했다. 그와 동시에 인형의 목이 툭, 바닥에 떨어지며, 피가 분수같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 쏟아지는 피를 맞으며, 벨로나는 비틀비틀 거리는 몸 뚱아리를 힘껏 뒤돌려 찼고, 그러자 인형의 육중한 몸이 거대한 소리를 내며 쓰러졌다. 그 피비릿내 나는 광경에 잠시 정신을 놓고 있던 카니엘은 벨로나가 성큼성큼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을 보자 저도 모르게 놀라서 검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것이었다.


“터집니다.”


벨로나의 말을 이해하기도 전에 카니엘은 그녀의 손에 이끌려 쓰러졌던 나무 뒤로 내팽겨처졌다. 잠시후 거대한 폭발음과 함께 나무 파편과 흙먼지, 그것들이 모두 섞인 눈덩이들이 카니엘과 벨로나 머리 위를 스쳐 지나갔고, 이어서 부서진 나무들이 쓰러지며 2차 진동과 그로 인한 먼지들이 다시금 둘을 뒤엎었다.


그 혼돈 속에서 카니엘은 자신의 옆에 앉아있는 벨로나의 얼굴을 보자 얼어 붙을 수 밖에 없었다. 인형의 핏물이 금빛 머리칼을 따라 뚝뚝 떨어지고 있었고, 먼지와 핏자국으로 뒤덮힌 그녀의 얼굴에는 오로지 살기만 남아있었다. 그 살기 가득한 두 눈을 부릅뜨며, 그녀가 바라보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도망을 가고 있는 마지막 인형의 뒷모습이었다.

분하다 못해, 억울하다는 표정과 눈빛에 카니엘은 소름이 돋으며, 이내 자신이 완전히 정상으로 돌아왔다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되려 정상으로 감정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에 그는 자신의 향해 고개를 돌린 벨로나에 공포와 두려움을 느껴야 했다.


“카니엘....”

눈을 한번 깜빡이며 벨로나가 그렇게 말했고, 카니엘은 침을 꿀꺽 삼켰다.


“각인진 부작용은.... 괜찮습니까?”


그녀의 물음에 카니엘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벨로나는 미소 아닌 미소를 보여주었고, 카니엘은 벨로나 또한 자신이 알고 있는 상관으로 돌아왔음에 안도감을 느꼈다.


“다행입니다. 하지만 혹시나 모르니 이곳에 잠시 대기하십시요.”


“단장님 정말 면목이 없습니다. 명령을 무시하고, 그토록 오만한 단독 행위를 하게 될 줄은..”


여태껏 증상 발현시 주변에 사람이 있었던 적이 없었기에, 월영군 단장의 명령조차 자신이 무시 할 줄 몰랐던 것은 사실이었다. 그래서 변명 아닌 변명을 이어가던 카니엘은 그러나 벨로나가 이야기에 전혀 집중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는 살짝 불안한 눈빛으로 쓰러진 나무 너머 어느 한곳을 바라보더니, 카니엘의 어깨를 살짝 잡으며 그에게 다시한번 당부를 했다.


“뭔가 이상합니다. 잠시.. 여기에 가만히 있으십시요.”


카니엘을 쓰러진 나무에 남겨둔 채, 벨로나는 천천히 일어서 한때는 숲이었던 난장판을 바라보았다. 비록 깔끔한 전투는 아니었어도 카니엘과 자신 또한 무사했기 때문에 어찌보면 완벽한 승리를 거뒀다고 할 수 있었지만 알 수 없는 불안감이 벨로나를 지배하고 있었다.


잊혀진 사슴길에서부터 시작된 그 불안감은 본능을 자극했고, 본능은 그녀에게 계속해서 무언가가 벌어질 것임을 경고하는 듯 했다. 그 상황에서 달빛이 구름 사이로 그 모습을 감추자 어둠이 기어나와 숲을 지배하기 시작했고, 벨로나의 불안은 증폭 되었다.


마치 어둠은 불안과 혼란을 꼭 품은 채 나무들 사이 사이에 숨어서 기회를 엿보는 듯 했고, 벨로나는 그런 어둠이 덮쳐올 순간을 대비코자 한참 동안 주위를 노려보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주변의 모든 어둠을 깨우는 듯한 박수 소리가 메아리치며 울려퍼졌다. 그리고 동시에 나무 사이 가득한 어둠 덩어리 중 하나가 떨어져 나와 벨로나를 맞이했다.


“역시 월영군 최고 군단장, 벨로나 세라트너. 그 실력이 대단하군.”


어둠 속에서 사제복을 입은 정체불명의 사람이 나타나 자폭인형의 시체를 사이에 두고 벨로나와 마주했다.


“자폭인형의 마법을 잠재운 전투 사제분 이십니까? 덕분에 무사할 수 있었습니다."


“천만의 말씀. 난 자폭 인형이 있는 줄도 몰랐으니. 그저 시끄러운 폭음이 듣기 싫어서 소리를 줄였을 뿐이지.”


사제의 그 특유의 오만한 말투. 그것과 낮게 울리는 저음의 목소리는 쉽게 범접하지 못할 것 같은 느낌을 주었고 벨로나를 더욱 긴장케 했다.


“그런데 전투 사제분께서 여긴 어쩐일로..?”


“너와 세상의 균형에 대해 말을 나누고 싶었다. 그리고.. 전투 사제라니 내가 그렇게 보이는가?”


“전투 사제가 아니라고 하시면.. 실례지만 누구십니까?”

벨로나의 질문을 예상하고 또 기다렸다는 듯이 그 정체 불명의 사람은 살짝 비웃음이 섞인 듯한 말투로 말을 이어갔다.


“뭐라고 소개한들 네가 알지 못할 것인데, 이름이 중요할까? 예를 들어 내가 월연방국 병부사 샤즐 노리탄, 행정부 베를 티난테, 치안관리부의 초리 막시노라면 어쩔 텐가? 또 마법통제부 페릴로 쿠텐 사제라든지 아니면.. 정보부 트리스트 듀에라고 소개 한다면 네가 마음 편히 이야기 나눌수 있을까?”


그의 말대로 그가 어떤 이름을 대더라도 벨로나는 알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것은 그의 말이 이어질 수록 그녀의 본능이 그 어떤 인형을 만났을 때보다 각성하게 된다는 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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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4장 - 개벽(開闢)_1화_ 선고 (1) 20.06.05 68 4 10쪽
34 3장 - 효시(嚆矢)_5화_전조_(2) +2 20.06.04 69 4 12쪽
33 3장 - 효시(嚆矢)_5화_전조_(1) 20.06.03 65 3 12쪽
32 3장 - 효시(嚆矢)_4화_구금소 (2) 20.06.02 60 3 7쪽
31 3장 - 효시(嚆矢)_4화_구금소 (1) 20.06.02 64 3 9쪽
30 3장 - 효시(嚆矢)_3화_만인의 적이 지나가는 길(3.끝) +2 20.06.01 62 3 9쪽
29 3장 - 효시(嚆矢)_3화_만인의 적이 지나가는 길(2) 20.06.01 63 3 11쪽
28 3장 - 효시(嚆矢)_3화_만인의 적이 지나가는 길(1) +2 20.05.31 67 4 8쪽
27 3장 - 효시(嚆矢)_2화_하늘층 회의(2) +1 20.05.29 73 4 12쪽
26 3장 - 효시(嚆矢)_2화_하늘층 회의(1) 20.05.29 75 4 7쪽
25 3장 - 효시(嚆矢)_1화_무언 마법사의 조우 20.05.28 79 4 10쪽
24 2장 - 일체일념(一體一念) _8화_일체일념(끝) 20.05.28 83 3 11쪽
» 2장 - 일체일념(一體一念) _8화_일체일념(4) +1 20.05.25 90 5 10쪽
22 2장 - 일체일념(一體一念) _8화_일체일념(3) 20.05.25 88 4 9쪽
21 2장 - 일체일념(一體一念) _8화_일체일념(2) +2 20.05.22 91 6 7쪽
20 2장 - 일체일념(一體一念) _8화_일체일념(1) 20.05.22 99 5 8쪽
19 2장 - 일체일념(一體一念) _7화_ 별빛과 망루(2) 20.05.21 111 5 10쪽
18 2장 - 일체일념(一體一念) _7화_ 별빛과 망루(1) +1 20.05.21 106 7 7쪽
17 2장 - 일체일념(一體一念) _6화_ 거점 투입 20.05.19 116 5 11쪽
16 2장 - 일체일념(一體一念) _5화_담소 (談笑) +1 20.05.18 133 6 10쪽
15 2장 - 일체일념(一體一念) _4화_월몰 기도식 20.05.18 123 6 9쪽
14 2장 - 일체일념(一體一念) _3화_스승과 제자(2) 20.05.16 133 5 10쪽
13 2장 - 일체일념(一體一念) _3화_스승과 제자 20.05.15 178 8 9쪽
12 2장 - 일체일념(一體一念) _2화_흠결 20.05.15 178 6 7쪽
11 2장 - 일체일념(一體一念) _1화_만인의 죄인 20.05.14 283 7 12쪽
10 1장 - 악몽(9) 20.05.14 249 6 12쪽
9 1장 - 악몽(8) 20.05.13 261 6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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