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짖는 소리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추리, 공포·미스테리

완결

연어진
작품등록일 :
2020.05.11 11:29
최근연재일 :
2020.06.16 14:07
연재수 :
91 회
조회수 :
3,186
추천수 :
502
글자수 :
841,325

작성
20.06.03 06:53
조회
18
추천
5
글자
20쪽

진실과 거짓말 1

이 글은 실제 일어난 사건들을 토대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DUMMY

남자를 만나기 전 그는 실낱같은 희망을 가지고 있었다. 적어도 준서의 엄마가 아이들을 위하는 사람이라고.


‘아버지의 월급으로 모자라 노래방에 나가면서 허영심을 채웠던 건가.’


상상 이상의 이야기에 그도 질려버렸다.


“어디 갈 만한 곳을 아십니까?”

“모르죠. 관심도 없습니다. 아니, 없어졌습니다.... 교복 이야기 들으셨습니까.”


그가 심호흡하며 고개를 끄덕이자 남자가 말했다.


“전 월급 다 갔다 줍니다. 당연히 교복? 설마 그거 제가 사지 말라고 했을까요. 다친 것도... 제가 때렸다고 했겠죠? 아닙니다... 제가 다치게 한 것은 그 애가... 제 엄마 감싸다가 밀쳐서 넘어진 것이고... 예, 그것도 잘못한 것이죠.”


남자의 태도에서 그는 진심을 느꼈기에 참고 기다렸다.


“제가 아닙니다. 그 여자, 그 작은 아이들도 수시로 때리는 여자입니다. 사소한 잘못에도 눈이 돌아갑니다. 굉장히 폭력적이라는 것을...”


유부녀라는 것을 모르고 만날 당시에는 그런 느낌을 받지 못했었다고 남자는 말했다. 털털하고 보통 여성과 다른 점들이 좋게만 보이던 때를 남자는 이야기했다.


“말투도 거친 편이었습니다. 화도 못 참는 편이었고.... 저랑 같이 있는데 전화가 오더군요. 계속 전화가 오는데 무시하기에 이상해 캐물었습니다. 그제야 남편이 있다 말하더군요. 제겐 당시 남편과 별거 상태라고 말했습니다. 같이 살고는 있지만 서로 쳐다보지도 않는다고.”


그리고 자신이 얼마나 불행하게 사는지 이야기했다. 남자는 그때 들은 이야기들을 다 기억하고 있다며 그에게 전했다. 약자로 여겨지는 여인의 말을 남자는 쉽게 믿어버렸다고 말했다. 그도 남자의 말을 들으며 여자가 불쌍하다 느꼈다. 그 말이 모두 사실이었다면....


“불쌍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시엔 눈에 뭐가 쓰인 상태라 그 남편을 미워하기까지 했습니다. 어떻게든 구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그게 다 거짓말이라는 것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진짜 나쁜 놈은 저라는 것을... 제가 가정파탄을 냈다는 것을 알게 되자 전 도망갔습니다.”


남자의 말을 들으며 그는 자신의 경험을 떠올렸다. 자신이 영리하다 착각하며 매번 거짓말을 서툴게 내뱉고, 속였다고 자신하는 독선적이며 아둔한 여자에 대한 기억이었다. 기껏 생각해 차려준 생일상을 뒤집고, 케이크를 그에게 던진 여자다. 그도 남자처럼 그런 여자에게서 도망쳤다. 그녀가 전화번호도 그가 사는 집의 주소도, 심지어 이름도 모른다는 것을 후에 알게 되고 그는 웃고 말았다. 손님으로 다시 만난 날, 그녀는 그를 알아보지 못했었다.


‘그런 여자가 또 있었다니.’


“그렇게 연락을 끊고 지냈는데... 갑자기 절 찾아왔습니다. 회사 앞으로... 남편에게 쫓겨났다더군요. 거짓말 같았지만 애들이 걱정되었습니다. 그래서 애들은 어떻게 되었냐고 물었습니다. 그때 제게 애들을 보여주더군요. 둘은 제 아이라고..... 기막혔습니다. 거짓말이라 생각이 들면서도.... 애들을 보니 내 아이인가 싶었습니다.”


남자는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이야기했기에 그는 그 조각을 짜 맞춰야 했다. 두서없이 말하고 있지만 말에 오류는 보이지 않았기에 그는 남자가 진실을 말하고 있을 가능성을 높게 보았다. 남자는 말을 잘 하는 부류가 아니었기에 더 신빙성 있게 들렸다.


“애들이 또래보다 작습니다. 유전인지 아니면 못 먹어서 그런지.... 그날 찾아오셨을 때, 제가 물어봤습니다. 준서 왜 집 나갔냐고. 그러니까 또 제 탓을 하더군요. 제가 돈을 못 벌어 와서 나갔다고. 제가 때려서 나갔다고. 정말...”


남자는 거듭 한숨을 내쉬었다.


“평소에도 준서는 엄마 편만 들었습니다. 억울했지만 부모의 과실을 말해주기 민망해서... 차마 네 엄마가 어떤 여자인지 아냐... 그런 말을 못하겠어서.... 그래서 아무 말도 안했습니다. 그 여자는 그걸 이용했죠.”


“흠...”


“준서를 방패로 써서 개차반짓을 반복했습니다. 제가 일이 바쁘면 화장 진하게 하고 나갔다 들어오고, 준서에게 애들을 떠맡기고.... 억울했습니다. 제 잘못을 알지만, 그 년 잘못은... 잘 못 믿으시겠죠. 술 먹고 애들도 내팽개치고 사는 놈처럼 보이셨을 테니. 예, 거의 그렇습니다.... 그렇지만 그게 전부는 아닙니다. 아십니까? 그 여자... 준서가 알바하는 돈 다 썼습니다.”


‘알고 있었나...?’


순간 기시감이 들었지만 그는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못 보던 가방이 있기에 무슨 돈으로 샀는지 물으니 대답 안하더군요. 제 적금 깬 줄 알고 따졌습니다. 예, 팼습니다.... 실토하더군요. 준서가 알바 한 돈이라고. 엄마 가방 사라고 모은 돈이라고...”


“미친...”


어금니를 깨물며 그는 흥분한 자신을 달래야했다.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 믿죠. 교복, 교복... 준서가 제게 말을 잘 안 거는데, 몇 번인가 교복 사달라고 했습니다. 당연히 필요한 것이니 사줘야 하죠. 그런데...짜증이 났습니다. 언제나 엄마편만 드는 준서가 저는... 솔직히 미웠습니다. 어리다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이젠 알지 않을까 싶고... 답답하고. 그 년이 미워선지 준서도 미웠습니다. 난 너희를 위해 고생하는데 왜 너는 알아주지 않는지.... 전 적금 드는 돈 빼고 다 그 여자에게 줍니다. 제대로 듣지 않고 엄마에게 말하라고 성질내고 말았죠. 사줬을 거라 생각했죠. 설마.... 애 돈까지 그렇게 쓰는 년인 줄은 몰랐습니다. 세상에 그런 엄마가 어디에 있습니까. 그런 여자가....”


남자는 입술을 깨물었다. 준서는 왜 자신의 인생과 그렇게 비슷한 삶을 살게 되었을까. 그는 준서에게 일어난 모든 일들에 감정이입이 되어 주먹을 꽉 쥐어야만 했다.


“전에 준서가 집 나가기 전에.... 그 년에게 돈 안 들어왔는지 물으니까, 그 년이 뻔뻔하게 안 들어왔다고 거짓말을 하더군요. 살다 그런 년은 처음 봤습니다. 그 돈으로 가방 산 그년이... 딸이 번 돈인데... 저게 엄마인가 싶었습니다.... 못 믿으시겠죠. 저도 겪었지만 여전히 믿기 어렵습니다. 어머니라는 존재가... 전 그런 사람이 있다는 것을 들어본 적도 없었습니다.”


“후우.”


그는 남자에게 준서의 통장이야기를 한 적이 없다. 준서와 남자는 연락처도 모르는 사이다. 준서 엄마와 입을 맞췄다고 볼 상황도 아니다. 그녀가 자신에게 불리한 말을 남자에게 할 이유가 없으니까. 그는 남자가 진실을 말하고 있다 여겼다. 그는 준서의 아르바이트 대금에 대해 아는 것을 전해주었다.


“그저께 연락을 했었는데 전화를 받았습니다. 왜 받았는지 지금 생각해보니 이상하군요.”

“크크크...크크크...미친년...”


몸을 떨며 분노를 누르듯 남자는 거친 숨을 연신 내쉬었다. 그는 준서 엄마가 아이들에게는 잘 하는 여자라 생각했다. 자신을 버리고 간 친모와 달리 아이들을 데리고 나갔으니까. 적어도 아이들에게는 잘 했을 것이라 믿고 싶어 했었다.


“돈이겠죠. 돈 요구하려고 전화 받았겠죠. 준서 전화로 거셨다면서요? 준서 핸드폰 바꾼 거 압니다. 그 여자가 말해줬습니다. 바뀐 번호 알고 있고, 준서가 계속 연락했었습니다. 그 여편네가 정도 안주는 딸 전화를 왜 받았겠습니까? 한국에 산지 오래되었는데 아직도 말도 잘 못하는 멍청하고! 예쁘지도 않은 면상으로 남자 후릴 생각만 하는 그런.... 죄송합니다. 흥분했습니다.”


그는 더 말하다간 자신도 흥분할까 싶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듣고 싶은 말도 없었다.


“모셔다 드리죠.”


남자의 일터 앞에 멈춰 섰을 때까지 그는 말을 아꼈다.


“유전자 검사. 하십시오.”

“...만약. 제 아이들이 아니라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애들에게 정은 있습니까.”

“....있기는 합니다. 살갑게 다가와 아빠라며 웃어주니. 그 여편네를 못 믿게 되고, 제가 차갑게 대해도 바보처럼... 자꾸 다가오더군요.”


냉대하는 엄마와 달리 가끔이라도 웃어주는 아빠가 좋았던 것일까. 그는 아이들을 떠올리며 속이 쓰려왔다. 그때 남자가 의외의 말을 했다.


“검사 했습니다.”

“....하셨군요.”

“예, 그 여자 몰래. 법적 효력은 없지만 친자확인만 가능한 것이 있더군요. 의뢰하면 다음날 유선으로 통보해 줍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 서류가 오고.... 전화 안 받았습니다. 결과가 두려워서. 서류는 회사로 오게 했습니다. 그 서류... 제 사물함에 있습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그는 잠시 생각했다. 더는 관여하고 싶지 않았지만, 남자에게 연민을 느꼈기에 그는 입을 열었다.


“애들 데리고 나간 것을 보면... 친아빠에게 갔을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는 아이들을 보았고 남자를 보았다. 닮은 구석이 없다는 표현보다는 전혀 다르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었다. 무엇보다 확연히 차이나는 피부색에 친부가 아닐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었다.


“저와 같은 생각이시군요. 또 어디서 호구 같은 놈을 만나지 않는 한...”

“보고 마음 편해지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저도 그 검사 해볼 생각입니다.”

“준서와...?”

“준서는 제 동생입니다. 결과가 어떻든 전 그렇게 살 겁니다. 다만... 제 마음에 의심을 남겨두고 싶지 않습니다. 진실을 대면하고 그걸 알려줄 겁니다....”


준서와 혈연이 아니란 생각을 그는 오래전부터 해왔다. 그건 아버지와 자신이 단절된 존재라 여겼기 때문이다. 남자를 통해 알게 된 것처럼 과학적 분류법으로 남이라 여긴 적은 없었다.


-준서의 친부가 따로 있을 것이란 생각을 그분도 하셨더군요. 제가 준서가 태어난 지 한참 뒤에 그 여자를 만난 것을 알게 되시고 표정이 변했습니다. 안타까움인지, 슬퍼하시는 건지... 지금은 그 표정을 이해합니다.... 가시려하기에 물어봤습니다. 준서가 친 딸이 아닌지. 답하지 않으시더군요.


남자의 말을 듣고 난 후 준서가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닮았다 여기던 부분도 전혀 닮지 않게 느껴졌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 여자가 재산상속 문제에 왜 관여하지 않았는지 짐작이 됩니다.”


욕심 많은 여자다. 그런 여자가 그의 부친이 죽고 난 뒤 아무것도 안한 것은 이상한 일이었다.


“재산... 아, 아! 그쪽의 부친께서... 준서와... 그랬군요.”


“검사하려는 이유는.... 예, 그런 점도 있습니다. 나중에 준서 앞세워서 돈 뜯어내려 접근하기 전에, 미리... 준서가 아파하겠지만, 그 상처 제가 흔적 없이 날리고 잘 키울 생각입니다.”


나는 이런 생각이다. 당신은 어떤가. 그 말뜻을 이해한 듯 남자는 잠시 기다려 달라 말했다. 뛰어갔다 온 남자의 손에는 빛바랜 서류봉투가 들려 있었다. 얼마나 갈등했는지는 봉투에 남은 반들거리는 손자국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죄송하지만... 전 용기가 없습니다. 대신 보시고... 결과도... 말하기 싫으시면 그걸로 좋습니다. 제 아이들이라 거짓말 하셔도 전 그렇게 여기고 싶습니다.”


남자의 눈에 눈물이 고여 있었다. 준서가 자신의 혈육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듣게 된 순간 자신이 느낀 감정을 남자도 느끼고 있을 것이라 그는 생각했다.


“주십시오.”


봉투를 찢어 열었지만 내용을 보기 전 그도 갈등했다. 왜 남자가 책임져야 할 일에 관여할까. 마음의 갈등과 별게로 손은 움직이고 있었다. 눈은 곧 결과를 찾아 빠르게 움직였다. 결과를 보고 난 후 그는 헛웃음이 나오려 했다. 예상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결과였다. 그는 남자를 보았다.


“알려주십시오... 진실을.”


남자도 각오한 듯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대화 내내 피하던 눈동자를 그에게 고정하고 있었다.


“구십구점...구팔퍼센트로...”


수치를 듣던 남자의 표정이 밝아지려 했다. 그는 갈등하다 진실을 빠르게 뱉었다.


“친자가 아닐 가능성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그...그런...! 둘 다 말입니까?”

“....예.”


남자는 믿지 못하겠는지 그에게 서류를 받아 직접 보았다. 그리고 몇 장 안 되는 검사 결과서를 계속 살폈다.


“그럴 리가... 조금도. 조금도 없다는 건가...”


남자는 울고 있었다. 눈물을 거듭 훔쳐 닦아내며 서류를 보던 남자는 이내 몸을 떨기 시작했다.


“크으....으...”


숨죽여 울던 남자는 이내 목 놓아 울기 시작했다. 그는 조용히 라디오를 켜고, 신나고 경쾌한 음악이 나오는 곳에 맞춘 후 눈을 감았다. 디제이의 멘트가 나올 때마다 남자의 울음소리가 그를 흔들곤 했다. 그는 동조되지 않으려 만세형을 거듭 떠올렸다.


남자는 노래 다섯곡이 끝나고 나서야 울음을 멈췄다. 그리고 한 말에 그는 작게 놀랐다.


“영점 몇 프로라도 제 아이일 가능성이 있는 것은... 아니겠습니까?”


‘미련한 사람....’


“그렇게 안타까워할 것이면 왜 진실을 알려했습니까.”


“저도... 크읍....젠장. 저도 몰랐....아아... 그 아이들이 내 아이가 아니라니.”


혼자 중얼중얼 아이들 이름을 반복해 부르던 남자는 말없이 차에서 내렸다. 회사로 걸어가던 남자가 서류를 구겨 던지고 밟다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구겨진 서류를 펴며 가슴에 품는 모습을 보고 그는 더 견디기 어려워 차를 움직였다.


‘악녀...’


몇 사람의 인생을 망치는 여자인가. 그는 준서 엄마가 너무나 미웠다.


*


준서와 대화를 하며 그는 후회했다. 진실을 모른 채 살아가는 것도 한 방법이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준서의 말에 그는 간과하던 것을 알게 되었다.


“저도 알고 싶어요.”


준서도 자신이 누군지 오래전부터 알고 싶어 했다. 그의 아버지 곁을 떠난 것도 그런 의구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준서의 말을 듣고 그는 혹시 그의 아버지가 준서에게 눈치 챌 만한 동기를 주었는지 물었다.


“아니... 아빠는 자상했어요. 일하다 쉬는 날에는 치킨하고 김밥사서 같이 공원에도 가고. 운동회 때도 오고... 같이 여행도 다니고, 낚시도 갔었어요.”


준서는 그를 빤히 보았다. 그는 자신에게서 아버지를 찾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피하고 싶었지만 그는 참아냈다. 사라진 아버지에 대한 증오보다 준서를 위하는 마음이 더 커져 있기에 할 수 있었다.


“동생들 태어난 후부터 아빠가 달라졌어요. 그땐 잘 몰랐지만, 엄마가 바람피는 거 아빠도 알고 있었던 것 같아요. 아빠가 갑자기 변해서 미웠지만, 어쩌면 내가 아빠 친 딸이 아닐지도 몰라서.....”


가슴에 품고 살던 비밀을 내뱉으며 준서는 울먹이지도 않았다. 그게 더 그를 아프게 했다.


“그래서 엄마 따라 갔었어요.... 오빠. 저도 알고 싶어요. 제 아빠가 누군지는 알고 싶지 않지만, 제가 오빠랑 어떤 관계인지...”

“넌 내 동생. 그건 절대적 진리야. 호적에도 그렇게 나와 있고. 그건 변하지 않아.”

“내가 친 동생이 아니라도...?”

“엄마가 이미 다른데? 아빠도 다르면 뭐 크게 바뀌는 것도 아니잖아.”


억지라 말하는 준서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리고 있었다.


“피가 다르잖아요.”

“준서 혈액형 비형이지? 오빠도 비형이야.”


그 말에 준서가 웃었다.


“...그래도 하고 싶어요.”

“응, 하자.”

“제가 오빠랑 아빠가 다르면, 엄마가 오빠 돈 못 빼앗죠?”

“너...?”


깜짝 놀란 그가 멍하니 볼 때 준서가 담담히 말했다.


“전에 엄마가 전화하는 거 들었어요. 누군지 모르는데 그 언니라는 사람한테, 집 뺏으려다가 감옥에 가면 책임질 거냐고 말했어요. 들킬 수 있다고... 그때, 제 아빠가 내가 알던 아빠가 아닐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요.”


‘벌레 같은 년! 이 버러지도 욕할 년!’


눈앞에 있다면 그는 마음의 울분을 풀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를 감추려 그는 준서의 모습만 눈과 마음에 담으려 애썼다.


“알고 나서 속 시원해지자. 그리고 변하는 것은 없음. 알겠지?”

“정말... 괜찮아요...?”

“납치해서라도 동생으로 삼고 싶은데?”

“흐! 그건 범죄잖아요?”

“응! 준서는 내꺼야. 흐흐흐.”


그가 바라던 반응은 질색하고 도망가는 것이었지만, 준서는 달랐다.


“응! 준서는 오빠꺼! 꺄아.”

“으어...허허허! 그렇지 내꺼다! 하하하하!”


찰싹 달라붙어 웃는 준서를 보며 그는 어색함을 감추려 열심히 웃었다.


*


“사진을 찍어야 합니까.”

“네. 절차입니다.”


유전자 정보를 얻기 위해 샘플채취를 인증하는 사진을 남겨야 한다는 말에 그는 거부감을 느꼈다. 돌이킬 수 없다는 생각에 갈등한 것이다.


“오빠, 저는 괜찮아요.”


결심을 굳힌 준서를 보고 그는 절차에 응했다. 병원을 나온 후 그는 준서와 함께 거리를 거닐다 눈에 띄는 것을 먹고, 생애 처음 코인노래방도 가보았다.


‘노래에 재능은 없구나.’


가수는 못 시키겠다며 그는 열심히 박수를 쳐 주었다.


*


일하던 도중 그는 남자에게 전화를 받았다. 검사 결과를 통보받은 직후였다. 갓길에 차를 멈추고 감정에 휩싸여 있었기에 그는 누구라도 대화하고 싶은 기분이었다.


“검사를 했습니다.”

-아...

“아니더군요. 주신 샘플로 검사했지만, 그쪽도 아니라고 나왔습니다.”

-그렇겠지요. 만나기 훨씬 전에 태어난 아이니...

“감정은 추스르셨습니까.”


남자는 자신보다 그를 걱정하며 물었다.


-저보다도...

“준서는 제 동생입니다. 호적에 그렇게 되어 있으니,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마음이 강하시군요.

“전 아버지가 아니니까요. 오빠이기에...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남자가 호흡을 고르는 소리를 들으며 그는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후우... 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저 머리가... 가슴도 텅 빈 그런 심정입니다.


또 연락한다며 남자는 전화를 끊었다. 그는 남자가 여자의 행방에 대해 묻고 싶어 전화했음을 깨닫고, 아직 아무런 연락이 없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준서는 나와 아버지가 같다고 호적에 나와 있으니 괜찮지만... 그 아이들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준서의 동생들은 법적으로 그가 어떻게 해줄 대상이 아니었다. 가정법상 친모의 존재 유무는 강력하다. 그 존재가 있다는 것으로 아이를 버리고 가도 친아버지는 친자를 호적에 올리지도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남자는 아이를 낳을 수 없다. 그것이 법적인 근거다. 유괴 등의 범죄예방을 위한 조치겠지만, 그는 다르게 느꼈다. 마치 느낀 적 없는 모정이 여성에게 절대적으로 존재하는 것처럼 법이 정해져 있다 생각했다. 자녀를 버리는 어머니가 얼마나 많은지 모르는 듯 법이 만들어졌다고 그는 생각한다.


아이들은 어머니의 동의 없이 태어난 증명조차 하지 못한다. 학교에 가는 것도 어렵다. 준서는 완전하지 않지만 일 년 후 자신의 의사대로 결정할 권한을 갖추게 된다. 그때까지만 준서의 호적에 문제가 없기를 그는 바랄뿐이다.


“그런데.... 그런 여자가 어떻게 호적에 이름을 올렸을까.”


준서의 가족기록부에는 친모의 이름이 나와 있다. 그가 사망신고를 하며 호적만 보았을 때 김율리나 라는 이름을 보고 그는 세례명을 떠올렸다. 그 후 이씨에게 준서 엄마에 대해 듣고 귀화한 외국인인가 싶었다. 남자의 말을 들어본 이후에는 불법체류자가 아닐까 의심이 들었다.


혹은 호적에 올라간 이름은 전혀 다른 이름일 가능성이 높다 여겼다. 그런 의심을 하는 이유는 준서의 아르바이트 대금이 들어간 통장의 명의자명 때문이다. 매니저를 통해 알게 된 통장의 명의자는 최여린이라는 생소한 이름을 가진 사람이었다.


-엄마가 옛날에 쓰던 가명이라고 했어요.


준서는 그 이름을 엄마의 가명으로 알고 있었다.


“도대체 그 여자 정체가 뭐야...”


얼굴을 떠올려봤지만 국적도 가늠되지 않았다.




이 글은 픽션입니다. 등장인물의 이름과 단체등은 사실과 같지 않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2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개 짖는 소리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62 퀵보드를 타고 온 단서 1 20.06.09 15 1 17쪽
61 착오 20.06.09 17 3 24쪽
60 용기내어 얻는 것 7 20.06.08 23 2 22쪽
59 용기내어 얻는 것 6 20.06.08 23 5 21쪽
58 용기내어 얻는 것 5 20.06.07 23 3 9쪽
57 용기내어 얻는 것 4 20.06.07 21 4 22쪽
56 용기내어 얻는 것 3 +2 20.06.06 22 3 23쪽
55 용기내어 얻는 것 2 20.06.06 18 3 25쪽
54 용기내어 얻는 것 1 +4 20.06.05 25 4 24쪽
53 진실과 거짓말 5 +4 20.06.05 21 4 30쪽
52 진실과 거짓말 4 +2 20.06.04 25 6 21쪽
51 진실과 거짓말 3 +2 20.06.04 21 6 20쪽
50 진실과 거짓말 2 +6 20.06.03 24 5 22쪽
» 진실과 거짓말 1 +2 20.06.03 19 5 20쪽
48 복덩이효과 2 +2 20.06.02 22 4 20쪽
47 복덩이효과 1 +2 20.06.02 19 4 18쪽
46 옆집의 마녀 3 +2 20.06.01 19 5 21쪽
45 옆집의 마녀 2 +2 20.05.31 26 8 21쪽
44 옆집의 마녀 1 +2 20.05.31 23 4 25쪽
43 집 잃은 고양이들 5 +2 20.05.30 25 5 23쪽
42 집 잃은 고양이들 4 20.05.30 19 3 13쪽
41 집 잃은 고양이들 3 20.05.29 19 3 13쪽
40 집 잃은 고양이들 2 20.05.29 23 5 14쪽
39 집 잃은 고양이들 1 +5 20.05.28 24 6 18쪽
38 동호회 4 20.05.28 23 6 18쪽
37 동호회 3 20.05.27 24 5 20쪽
36 동호회 2 20.05.27 21 4 23쪽
35 동호회 1 20.05.26 23 3 21쪽
34 카센터 3 +1 20.05.26 25 5 17쪽
33 카센터 2 +2 20.05.25 24 8 14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