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짖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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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연어진
작품등록일 :
2020.05.11 11:29
최근연재일 :
2020.06.16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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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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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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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4 0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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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1쪽

진실과 거짓말 4

이 글은 실제 일어난 사건들을 토대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DUMMY

주변을 보던 그는 뒤에선 빌딩 2층의 창을 발견했다. 복도 끝에 놓인 창을 본 그는 주저 없이 건물로 들어갔다.


“개는 안 됩니다.”

“헛...”


일층 로비에 있던 경비에게 제재를 당한 그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어디 오셨는데요?”

“네? 어... 병원....을.”

“오늘 쉬는 날인데 문 열었나...”


전화기를 들려는 모습에 그가 말했다.


“잘못 알았나보네요. 예약 일을....”

“그래요? 그래도 개는 안 됩니다. 작은개도 아니고 그렇게 큰 개는 더욱.”

“아, 알겠습니다. 수고하세요.”


돌아 나온 그는 이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경비와 대화하는 사이 검은색 벤츠는 사라지고 보이지 않았다. 그 자리에는 그가 꺼려하는 순찰차가 서 있었다.


“공무원이면 법 어겨도 되는 거야...”


투덜대며 그는 집돌이 산책으로 목적을 다시 바꿨다. 건물을 돌아 골목으로 들어서려 할 때 집돌이가 걸음을 멈췄다. 뒤따르던 그도 급히 멈춰선 순간 차량의 앞면이 불쑥 나왔다.


“이런 씨...”


하마터면 집돌이가 치일 뻔한 것을 알고 그는 운전자를 노려보았다. 운전자는 낮은 위치에 있는 개를 보지 못한 표정이었다. 싸울 생각이 없던 그였지만, 고개를 돌리지는 못했다. 운전자의 얼굴을 알기 때문이다.


‘관종...’


검은 표범 차주가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순간 화가 치밀어 그는 멍해져버렸다. 무의식중에 그는 손을 내밀었다. 열린 창문으로 손을 넣고 운전자를 꺼내 땅에 패대기치는 상상을 하던 그는 떠나가는 차의 뒷모습을 보고 급히 정신을 차렸다.


“택시!”


건너편에 선 택시들은 그의 간절함을 알아주지 않았다. 초조하게 멀어지는 차를 보던 때, 그 앞에 택시가 섰다.


“어? 개는...”

“따블 드리겠습니다.”

“....타시죠. 손님.”


차에 개를 태우는 것이 꺼려졌지만 손님이 적어 운전자는 테이프 질 조금 더 하면 되겠지 생각했다.


“저 앞에 비싼 차 따라가 주세요.”

“예?”


반문하는 기사에게 그는 오만원짜리 한 장을 내밀었다.


“모자라면 더 드리겠습니다.”

“허... 왜 그러시는데요?”

“저...”


저 새끼가 범인이에요! 라고 외칠 수 없었던 그는 낯선 풍경에 주눅 들어 그에게 기댄 집돌이를 보며 입을 열었다.


“저 사람이 제 개를 칠 뻔했는데 그냥 가버렸습니다. 쫓아가서 욕이라도 해주려고 합니다.”

“허... 아무리 그래도 그건 좀... 참아요. 저런 사람 욕하면 고소하고 골치만 아파집니다.”


만류하면서도 운전자는 그의 청에 따라 차의 뒤를 쫓았다.


“고소하면 하라죠.... 잘못은 저쪽이 했으니.”

“고소해봐서 압니다. 제가 백번 잘했어도 돈 있고 여유 있는 쪽이 유리해지더군요. 직업이 이래서 법원출석 한번 할 때마다 집안이 휘청거려서... 저는 그냥 합의해버렸습니다. 법 잘 아는 사람들, 돈으로 쉽게 사는 사람들은 이기기 어렵더군요. 피 말리게 해서 제가 지쳐 떨어지길 기다리는데... 미쳐버릴 것 같더군요.... 쫓아는 갈 테니 가는 동안 머리나 식히십시오.”

“후, 예... 사실 쫓아가도... 그냥 열이 받아서 자존심도 상하고.... 그렇습니다. 저런 차타고 다니는 놈이 어떤 놈인지 궁금하기도 하고. 괜히 거들먹거리는 놈이면...”

“으음... 글쎄요. 이쪽으로 가는 걸 보니 부촌에 사는 것 같은데... 뭐, 가보죠. 저도 궁금해지는군요.”


기사가 동조해줘 그는 한결 마음이 편해졌지만, 문제는 차의 성능에 있었다. 순간순간 가속하며 차는 점점 멀어져갔다.


“쫓아가기도 힘들군요.”

“아... 포기해야할까요.”

“어디로 가는지 대충 예상은 가니... 지름길로 가볼까요?”

“아뇨. 신호대기로 만날 수도 있으니 계속 쫓아가 주세요. 놓치면 부촌쪽으로 방향 정해서...”

“그렇게 하죠.... 그런데 손님. 화는 가라앉으신 거죠?”

“네? 아... 예.”

“그럼 지금이라도?”

“아뇨. 그냥 보고 싶네요. 결과가 두렵거나 알만한 상황이라도 그냥 돌아서면 속에 남을 것 같아서요.”

“....산책하다 열 받아서 쫓아다니는 분이 하는 말 같지 않군요.”


룸미러를 보며 웃는 운전자를 보며 그도 어색한 미소를 지어주었다.


두 사람의 예상처럼 차는 부촌이라 불리는 주택단지로 들어서고 있었다. 꽁무니를 보고 쫓아간 곳을 보며 그는 길부터 다르다 느꼈다. 그의 집 앞 골목길은 콘크리트로 포장된 곳인데, 부촌의 골목은 입구부터 아스팔트로 포장되어 있었다. 무엇보다 넓었다. 대형 트럭 두 대는 충분히 지나다닐 길 좌우에 놓인 대문들은 난공불락의 요새 입구처럼 단단해 보였다.


“저기 섰네요.”


택시기사는 그가 말하지 않았음에도 멀리 차가 보이는 곳에 멈춰 섰다.


“어쩌실래요? 주차장 열고 들어가는데.”


그는 급히 옆에 있는 집의 주소를 외웠다.


“잘사는군요.”

“예, 저런 집이라면... 얼마나 할지 감도 안 오는군요.”

“비싸겠죠.”

“네... 허, 자괴감이 드는군요. 난 뭐하고 살았나 싶고.”

“예...저도...”


그는 차가 완전히 들어가고 열린 차고 문이 닫히는 모습을 본 후에 기사에게 말했다.


“돌아가 주세요.”

“아, 아까 거기면 되겠습니까?”

“네. 집돌이... 제 개 산책이 덜 끝나서요.”

“하하하... 이거 참.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삼거리 택시기사들의 아지트에 차를 세운 후, 기사는 그에게 표시된 요금을 제한 잔돈을 내놓았다.


“.....약속했으니 받아주세요.”

“아닙니다. 개털은 테이프로 쓱쓱 하면 되고. 여기 섰으니 조금 쉬고 움직일 생각입니다.”

“그럼 테이프 값이라도 받아주세요.”


그는 위에 있던 천원짜리만 받고 나머지 돈이 쥐어진 기사의 손을 잡았다.


“이거 미안해서...”

“약속이니까요. 오히려 제가 더 미안한데요.”


그는 기사가 마음을 바꿀까 싶어 급히 움직였다. 허나 멀지 않은 곳에 횡단보도가 있었고, 그곳을 건너야 했던 그는 기사가 쫓아올까 마음조리며 서 있어야 했다. 그런 그의 눈에 집돌이의 모습이 보였다.


“너 아직도 경계해?”


집돌이가 경계하는 곳을 본 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놈 설마... 아무 차나 보면 긴장하나?”


집돌이는 경찰차를 보고 있었다. 집돌이의 판단을 믿던 그는 자신이 잘못 판단한 것이 아닌지 의심하게 된 순간이었다.


‘확인을 더 해봐야겠어.’


*


집으로 돌아온 그는 노트북을 열고 검색을 시작했다. 외운 집주소를 지도에 넣고, 그 주변 모습을 확인하며 친구들에게 물이라 불린 남자의 차가 들어간 집의 주소를 알아냈다. 그는 혹시나 하며 알아낸 주소로 검색을 해보았고, 자신이 얼마나 바보 같았는지 깨달았다.


“괜히 쫓아갔네.”


주소는 쉽게 검색되었다. 물의 아버지가 국회의원이란 말은 마나에게서 들어 알고 있었다. 그런 사람의 집주소가 검색으로 나올 수 있다는 것이 이상했던 그는 곧 이유를 깨달았다.


“상속세를 내지 않고 살고 있다는 건가...! 있는 놈들이 더한다더니.”


문제가 되어 뉴스에 자주 거론된 집이었다. 정확한 주소는 나오지 않는 뉴스들이지만, 익명의 누군가가 해당 주소를 공개해버린 기록이 검색으로 나와 있었다.


“간도 큰 사람이네. 지은 죄가 커 누가 찾아올까 겁을 먹을 텐데...”


뻔뻔한 사람이란 생각이 들자 그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군.’


아버지인 국회의원의 사건에 대한 검색기록은 많았지만, 인기 없는 래퍼인 아들에 대한 뉴스는 많지 않았다. 그중 하나가 그의 눈을 사로잡았다.


“전과가 있었던 놈이군....”


무단 횡단하던 사람을 치였던 적이 있었는데, 크게 다치지는 않았고 합의로 사건이 종결된 일이었다. 집요한 기자가 그 사실을 알아내고 크게 뉴스화한 적이 있었다. 기자는 무단횡단이 아니라 횡단보도 사건이며 운전자가 음주운전을 한 것이라 밝혔지만, 그 후의 조치나 사실 여부에 대한 기사는 없었다. 지금은 시간이 흘렀는지 그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지 않고 있었다.


“본명이 조수원... 그래서 물인가.”


정보가 넘쳐서 사람의 사고를 방해하는 세상. 손가락만 움직여도 그 사람의 인생 대부분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세상이기에, 그는 너무나 쉽게 카삥이라 불리던 이도 누군지 알아낼 수 있었다.


“박테리... 이름 참...”


박테리는 그가 찾아간 카센터의 주인이었다. 둘이 같이 찍은 사진도 있었고, 물이 카삥의 카센터에 지분을 소유하고 있음을 알리는 글도 있었다. 그 때문인지 물은 카삥이 운영중인 카센터와 셀프세차장을 홍보하는 글을 많이 올리고 있었다. 오늘은 어떤 디제이가 오는지, 어떤 가수를 초청했는지, 그런 글이 많이 있었다.


그 외에도 두 사람이 그가 찾아갔었던 클럽에서 찍은 사진들도 많이 나왔다.


“다른 한 놈은 없는 건가? 댓글 단 사람들 중에 있을 것도 같은데...”


SNS를 뒤지며 살폈지만 얼탱이라 불리는 이에 대한 내용은 나오지 않았다. 네트워크상에서 별명이 아닌 다른 이름으로 부르고 있었기에 누구라 특정하기도 어려웠다. 박테리가 카삥이라는 것도 그의 추측일 뿐인데, 카센터와 연관 지어 생각한 것이다.


“음?”


몇 년간의 기록을 살피던 그는 기시감이 들어 다시 처음부터 업로드 된 내용을 살폈다.


“....없어.”


그가 관종으로 여기고, 그렇게 평가되는 물의 SNS에는 검은 표범으로 도색한 차의 사진이 한 장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업로드 된 날짜를 보고 빈 곳이 있음을 깨달았다. 매일 꾸준히 이런 것도 올리나 싶은 사진들까지 올리던 물이, 마치 잠적이라도 했는지 특정한 기간 동안 업로드한 기록이 없었다.


‘지웠군.’


“지웠어... 그런데 왜 동호회의 사진은 뒀을까. 공개되지 않아서인가? 아무나 접근할 수 없어서...?”


드러내고 싶은 욕망을 가진 물이라면 범행에 쓰인 도구를 숨기고 싶은 마음과 그를 자랑하고 싶은 욕구가 충돌하지 않을까 그는 추측했다.


“미친놈...”


그는 자신의 생각이 옳은지 알아보기 위해 이번엔 댓글을 살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진이 있었다는 증거를 찾아냈다.


[전에 본 차와 색이 다르네요. 눈도 있고 귀여웠는데.]


“후우...”


그는 머리가 복잡해져 노트북에서 눈을 뗐다. 등받이에 등을 기대고 머리를 뒤로 넘겨 목을 주무르던 그는 그 자세로 굳어버렸다.


“....피노구나.”


그의 말에 남자아이가 그에게 다가왔다. 그는 급히 자세를 바로 해 의자를 돌렸다.


“여기 우리 방.”

“응? 아아... 그래. 여기가 피노방이었구나....어!”


실어증에 걸린 듯 말을 하지 않던 피노였다. 놀란 그를 보다 피노가 그의 손을 잡았다.


“형.... 형이야?”

“....응. 내가 피노 형이야.”

“형. 엄마 봤어?”


순간 그는 아이가 충격으로 퇴행성질환에 걸렸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허나, 피노가 말하려 했던 것은 다른 것이었다.


“엄마 누워있었어. 물에.... 엄마 안 움직였어.”

“으응...”


아이들이 충격을 받을까봐 그는 서둘러 부검이 끝난 두 사람을 화장했다. 장례식도 열지 않았다. 그래주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그들에겐 조금도 미안하지 않았지만, 아이들에게는 죄를 지은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봤구나. 피노도.”

“형도...?”

“응... 봤어.”

“죽은 거야. 맞지...?”

“...응.”

“죽으면... 다시는 못 만나.”

“잘 아는구나.”

“사진으로는 볼 수 있어. 엄마 핸드폰에 같이 찍은 동영상 있는데... 엄마 핸드폰 어디 있는지 알아?”

“....곧 찾아오려고 했어.”

“다행이다...”


그는 조심히 피노를 안았다.


“형은 안는 거 좋아해?”

“어... 왜 싫어?”

“좋아해... 엄마도 아빠도 안는 거 싫어했어. 키오도 안아줘야 잘 자.”

“그래...그렇구나.”


용기 내 안아주자. 조심스러워 다가서지 않았던 것을 그는 반성했다.


“형...”

“으응, 말해...”

“이 집 사라져?”

“....지금은 안 사라져. 나중에 형이 돈 많이 벌면 다 부수고 새로 지으려고... 왜? 나둘까?”

“몰라... 조금은 남길까? 잘 모르겠어.”

“...소중한 건 남길게.”

“어떤 거?”

“음, 예를 들면... 저기 문지방? 저 나무를 잘라서 집 새로 지을 때 쓰자. 마루에 있는 나무들도 다시 쓰면 멋질 거야.”

“그럼 업그레드네? 변신 로보트인가.”

“로보트 좋아해?”

“응.. 어릴 땐. 지금은 별로. 요즘은 겜을 더 많이 해. 피씨방가서.”

“피씨방... 아, 컴퓨터가 없구나.”

“누나 방에 있어.”

“피노도 사줄까?”

“....왜.”


왜라니. 그는 급히 눈을 피하며 고개를 들었다.


“우리 집에 남자가 피노하고 형뿐이잖아.”

“응.”

“남자끼리는 서로 챙겨줘야 해.”

“그게 뭐야. 웃겨.”


작은 웃음소리에 그는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나 돈 많이 벌면 자전거 살 거야.”

“자전거....?”

“아동용 말고, 커도 탈 수 있는 걸로.”

“자전거 잘 타나보네?”

“응. 친아빠가 사준 자전거로 연습 많이 했어. 누나한테 물어봤는데 자전거 버렸나봐. 이사 오면서.”

“어... 그랬나?”

“응, 누나가 나중에 돈 벌면 사준다고 했는데 내가 벌래. 내가 남자니까.”


멍하니 피노의 말을 곱씹던 그가 입술을 작게 깨물며 감정을 눌렀다. 표정을 정돈한 후 그는 피노에게 눈을 맞추고 물었다.


“친아빠가 누군지 알아?”

“응. 엄마가 말하지 말랬지만... 엄마는 이제 말 못하잖아.”


‘어휴...’


“그리고 집에서 제일 큰 사람은 형이잖아. 형은 완전 어른이지? 뭐하지 말라는 말 안 들어도 되지?

“으응....그렇지.”


왜 양심에 찔릴까.


“그럼 말해도 될 거 같아. 누나도 형한테 말 많이 해도 된다고 했으니까.....”


말을 하고 싶어 했음을 그는 알 수 있었다. 얼마나 답답했을까 싶으며 그는 아이의 목소리에 집중했다.


“말 많이 하고 싶었는데, 너무 많아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어휴... 엄마는 너무 이상해. 맨날 누나 때리고. 나도 때리고, 키노는 작은데도 때렸어.”

“나쁘네...”


세상에서 가장 나쁜 엄마는 자신의 엄마라고 생각했던 그였다. 다른 엄마들은 적어도 제 자식에게는 잘할 것이라고 믿어왔다. 그 선입견을 완전히 무너트린 존재를 그는 쉽게 용서할 수 없었다. 그러나 아이를 위해 그는 감정을 계속 억눌렀다. 엄마 욕을 한 것이 미안했는지 피노는 칭찬도 곁들였다.


“나쁘지만 가끔 착해. 맛있는 것도 사줘. 가끔이지만....아, 맞다! 친아빠 만나서 자전거도 받아왔다고 했어. 아빠한테는 비밀이라고 했어. 키노한테 우린 아빠가 너무 많아. 그랬었는데... 엄마 바람 핀 거지?”


‘어린지 조숙한지...’


“형은 잘 모르겠네. 친아빠 본 적 있어?”

“사진만. 엄마 핸드폰에 사진 있어. 피부가 까매.”


그는 동요된 마음을 감추려 미소 지었다.


“까맣구나.”

“키오는 그 사진 싫어해. 키오는 누나처럼 피부가 하야면 좋겠다고 말해. 난 남자라서 조금 까매도 되지만 키오는 싫은 것 같아. 나도 사실은... 형이 우리 아빠였으면 좋겠어. 아빠는 술 안 먹으면 가끔 좋지만, 술 먹으면 정말 싫어.... 소리만 지르고. 형은 소리 안 질러서 매일 좋아.”

“어휴... 나도 피노가 너무 좋다.”


더는 억누를 수 없어 그는 피노를 끌어안고 볼을 비볐다.


“어휴, 너무 귀여워.”

“흐으. 형, 간지러워.”

“귀여워. 아유... 귀엽다.”


그는 피노가 나아졌다 여겼지만, 피노는 준서가 오고 마나와 인나가 나타나자 다시 실어증에 걸린 아이처럼 행동했다. 그는 마나와 인나와 대화를 하고 나온 정주를 따라가 대문 앞에서 그 일을 상담했다.


“말을 했다고요?”

“네.”

“얼마나?”

“함께 있는 동안, 내내...”


그는 피노와의 대화를 간추려 전해주었다.


“생부가 있었군요. 음, 어쩌면 그 존재를 알리기 위해 날오빠를 선택했는지도 모르겠네요. 속에 든 말을 누군가에게 전하고 싶은데... 서운하네. 내겐 한마디도 안 해주고. 히잉.”

“저기... 전 어떻게 해야...”

“그냥 받아주세요. 차츰 열리겠네요. 아마 의식적으로 대화를 차단하며 자신을 보호하고 싶은지도... 이쪽 인나씨 집에서도 말을 했나요?”

“아뇨. 이쪽에선 둘이 있는 경우도 없었고... 말을 걸고 싶은 눈치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은 참... 직선적인데 문을 닫으면 열기가 힘들어요. 다행이네... 키오도 겉으론 밝아 보이지만 트라우마가 심해요.”

“그런...?”

“특히 붉은 천에 대한 반응이 극단적이에요.”

“어떤 것입니까.”

“천이 무언가에 덮여 있는 것을 참지 못해요. 제가 스카프를 인형 위에다 올려두었는데, 갑자기 달려가서 스카프를 땅에 던지더군요. 아마도 사고 현장을...”

“아... 이해했습니다. 피노도 그런가요.”

“아뇨. 아까 나눈 대화를 들어보니 피노는 죽음을 받아들이는 중인 것 같아요.”


‘죽음을...’


그도 일찍 죽음을 이해했다. 모든 고통스러운 것들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이라 여겼다. 또, 자신을 괴롭히는 이들을 법으로 처단할 수단이라 여겼다. 좋은 수단이지만 실행할 용기도 방법도 몰랐기에 어린 그는 죽음을 동경했었다. 철없는 아이의 생각이었을 뿐인데, 그는 지금도 당시의 감정을 기억한다.


“몰랐으면 좋을 것을 벌써 알아버렸군요.”


“안타깝지만.... 지금은 그렇게 받아들이는 것이 더 좋을 것이라고... 후우, 장담은 못해요. 제가 공부한 것, 경험한 것을 토대로 말하는 것임을 알아주세요.”


그는 들을 자세를 취했다. 전문용어를 곁들여 긴 이야기를 늘어놓다 그녀는 자신이 극단적인 경우가 나타나지 않게 인도하는 중이라 자신 없게 말했다.


“자신이 아는 한도에서 아이들은 사물과 현상을 이해하거든요. 그건 어른도 마찬가지지만.... 한시름 놓았어요. 날오빠. 앞으로도 종종 피노와 둘만의 시간을 가져주세요. 그 영역에 조금씩 다른 사람들... 첫 번째는 준서가 좋겠네요. 아이들이 준서를 따르면서도 마음을 열지 않고 있어요. 아마도 보호자라 여기기에 따르지만, 준서도 아이라서 두 아이에게 마냥 의존될 존재로 여겨지지 않았던 것 같아요. 특히 폭력 앞에서 무력해 보이는 장면을 지켜보았을 테니...”


“애들이 눈치를 보는 이유가 그 때문입니까.”


“....눈치 채셨군요. 네. 정말 사람에게 집중을 잘하시는군요. 그래서 둘 다...”


“예? 둘...?”


“아니에요. 날오빠는 지금처럼 하시면 되요. 아, 나들이 간다고 하셨죠? 어서 들어가 보세요. 아! 차! 마나 또 내 차 막아놨어. 마나!!”


*


“여기 어때요?”


한 시간이나 걸려 도착한 곳이었기에 장소를 선정한 인나는 초조한 눈으로 그를 보았다. 가벼운 나들이를 생각한 그는 피곤을 느꼈다. 자신도 그렇지만 아이들 걱정에 그는 차를 돌리고 싶어 했다. 그는 아무도 없는 푸른 공간에 덩그러니 선 커다란 나무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멋지네요.”


그는 인나에게 되도록 진실을 말하려 한다. 지금도 진심으로 감탄하고 있었다.


“다행이다...”

“그런데 여기 사유지 같은데요.”


논밭이 펼쳐진 농로를 지나 올라온 산 중턱에 위치한 곳이었다. 들어오는 입구에는 사유지를 알리는 팻말이 서 있었다.


“오래전에 엄마가 여기에 집짓고 산다고 사둔 곳인데, 엄마는 현대문명에 길들여진 사람이거든요. 절대 이런 곳에서 못 살죠. 그래서 사두고 그냥 두는 곳이 되었어요. 나중에 아빠 은퇴하면 둘이서 여기에 집짓고 산다고 했지만...”


“좋긴 한데... 어둡겠네요.”


붉은 기도 사라져가는 하늘 끝을 보고 말하자 인나가 깜빡 잊었다며 말했다.


“아! 아래쪽에 스위치 있어요.”


“스위치...어? 가로등이 있네요.”


“네, 저희 가족이 가끔 찾아오는 곳이에요. 그런데 벌레가 너무 많아서 불 키면...”


걱정되어 보자 인나가 웃었다.


“날씨가 있으면 벌레도 안 무서워요. 꺄아!”


마침 무언가 눈앞을 지나가자 인나는 기겁하며 그에게 안겼다.


“....이렇게 안길수도 있잖아요.”

“말도 참 귀엽게 하시는군요. 미국가서 애교를 배우고 오셨나 봐요.”

“독학했어요.”


-둘이 그만 놀고 자리 깔아!


마나의 외침에 두 사람은 떨어졌다. 그는 혼자 내려가 농막에 있는 전원스위치를 올렸다. 여섯 개의 등이 켜지자 숲 안에 빛이 숨어 있다 나타난 것처럼 운치 있는 풍경이 되었다. 주변은 적막하지만, 신이 난 키오와 집돌이가 만드는 분위기로 그는 조금도 쓸쓸함을 느끼지 못했다.


“키오야! 그만 놀고 이리 와서 밥 먹어.”

-네에! 집돌아 가자!

“부른다고 오는... 오는군.”


어째서 집돌이는 작은 키오의 말까지 들어줄까. 그는 불만 가득한 눈으로 보았지만, 집돌이는 그에게 눈도 돌리지 않았다.




이 글은 픽션입니다. 등장인물의 이름과 단체등은 사실과 같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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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퀵보드를 타고 온 단서 1 20.06.09 15 1 17쪽
61 착오 20.06.09 17 3 24쪽
60 용기내어 얻는 것 7 20.06.08 23 2 22쪽
59 용기내어 얻는 것 6 20.06.08 23 5 21쪽
58 용기내어 얻는 것 5 20.06.07 23 3 9쪽
57 용기내어 얻는 것 4 20.06.07 21 4 22쪽
56 용기내어 얻는 것 3 +2 20.06.06 22 3 23쪽
55 용기내어 얻는 것 2 20.06.06 18 3 25쪽
54 용기내어 얻는 것 1 +4 20.06.05 25 4 24쪽
53 진실과 거짓말 5 +4 20.06.05 21 4 30쪽
» 진실과 거짓말 4 +2 20.06.04 26 6 21쪽
51 진실과 거짓말 3 +2 20.06.04 21 6 20쪽
50 진실과 거짓말 2 +6 20.06.03 24 5 22쪽
49 진실과 거짓말 1 +2 20.06.03 19 5 20쪽
48 복덩이효과 2 +2 20.06.02 22 4 20쪽
47 복덩이효과 1 +2 20.06.02 19 4 18쪽
46 옆집의 마녀 3 +2 20.06.01 19 5 21쪽
45 옆집의 마녀 2 +2 20.05.31 26 8 21쪽
44 옆집의 마녀 1 +2 20.05.31 23 4 25쪽
43 집 잃은 고양이들 5 +2 20.05.30 25 5 23쪽
42 집 잃은 고양이들 4 20.05.30 19 3 13쪽
41 집 잃은 고양이들 3 20.05.29 19 3 13쪽
40 집 잃은 고양이들 2 20.05.29 23 5 14쪽
39 집 잃은 고양이들 1 +5 20.05.28 24 6 18쪽
38 동호회 4 20.05.28 23 6 18쪽
37 동호회 3 20.05.27 24 5 20쪽
36 동호회 2 20.05.27 21 4 23쪽
35 동호회 1 20.05.26 23 3 21쪽
34 카센터 3 +1 20.05.26 25 5 17쪽
33 카센터 2 +2 20.05.25 24 8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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