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짖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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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연어진
작품등록일 :
2020.05.11 11:29
최근연재일 :
2020.06.16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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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7 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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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쪽

용기내어 얻는 것 4

이 글은 실제 일어난 사건들을 토대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DUMMY

부천 1호점이라 불리는 참치회 전문점의 주인이며 메인 주방장은 여성이다. 여성 점주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메인 주방장이 여성인 경우는 이곳이 유일하다. 그녀는 국내 요리인들의 경연대회에서도 우수한 성적을 내고, 해외의 경연에서도 입상한 실력자다. 실력이 되지 않은 이에겐 참치 해체 쇼를 허락하지 않는 것이 대표의 고집인데, 이곳의 점주는 실력을 인정받아 참치 해체쇼를 허락 받은 몇 안 되는 사람이다. 오픈 기념에 해체 쇼가 있어 그가 특송을 하며 처음 인연을 맺었고, 미혼인 점주는 그에게 농담 섞인 관심을 보이는 중이다.


“일 배우러 오신 분인데, 형님이세요.”

“보면 알아. 동생보단 많아 보여.... 그런데 잘생겼다. 기혼?”

“벌써 관심 보이시는 건가요. 제가 있는데?”

“동생은 임자 있으니까. 그래서 기혼?”

“어...”


그가 보자 가만히 지켜보던 인성이 입을 열었다.


“미혼입니다. 그쪽은?”

“응? 나도 미혼이에요. 돌싱도 아니고. 만날래요?”

“허...”

“누님. 저 알탕 먹을래요.”


그가 곤란해 하는 인성을 보며 나서자, 점주가 칼을 꺼내 닦으며 말했다.


“동생은 가만히 있어봐. 나중에 우리 잘되면 양복 한 벌이야. 아니지, 차 한 대 사줄게... 그쪽은 뭐 드실래요? 지금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은데. 탕은 아무거나 괜찮고.”


“그럼 저도 알탕으로...”


“목소리도 좋네. 미숙아! 알탕 두 개 올려라.”


박력 있는 목소리에 인성이 흠칫 놀라자 그가 예상한 듯 미소를 지었다.


-네, 사장님.

“아니다, 하나 더 올려. 나도 땡긴다.”

-네에.

“올려놓고 퇴근해. 아 참! 동생, 고양이 밥은?”

“가져왔죠.”


그는 차에 놓고 온 혈육을 챙기러 나갔다. 그가 나간 후 주변을 살피던 인성은 점주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흉터는 왜?”

“...원래 말투가 그런가요.”

“기분 나빠요?”

“그리 좋지는 않군요.”

“음... 트라우마를 건드렸나? 미안해요. 생각 없이 말한다는 말 자주 들어요.”

“트라우마는 아닙니다. 다만 제가 나이가 한참 많을 것 같아서...”

“고지식하네... 안 그렇게 생겨서.”


그녀의 말에 인성이 울컥했다.


“고지식하게 생긴 게 어떤 사람입니까?”

“으음... 지금처럼 욱하는 사람?”

“그...”

“풋! 귀엽네. 그래서 우리 언제 만날까요?”

“...농담 아니었습니까.”

“저 갖출 건 다 갖춘 여자에요. 일에서 능력도 인정받았고. 내 가게도 냈고. 물류기사할 거죠?”

“뭐...”


인성이 말을 흐리는 것에 여인은 다른 이유를 떠올렸다.


‘백수로 오래 지내다가 일 배우려고 나선 것인가?’


그 이유가 그녀에겐 문제가 되지 않았다.


“동생 다니는 회사 다니면 나랑 자주 만나고. 만나다 괜찮으면 결혼도 하고. 어때요?”

“...첫눈에 반했습니까?”

“풋! 어느 시대에서 태어났어요? 농담과 진담을 구분 못하시네.”

-누님 농담을 누가 구분해요.


그가 다급히 들어와 그녀 앞에 상자를 두고 앉았다.


“왜 형님을 괴롭혀요.”

“음.. 귀엽고 마음이 끌려서.”

“허...”

“소개시켜줘. 아니다. 눈앞에 있으니 내가 할게. 저 진다래에요. 달래 아니니까 혼동하지 마세요.”


인성은 내민 손을 보았다. 상처 가득하고 투박한 손이 얼굴과 참 어울리지 않는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는 그녀의 손을 가볍게 잡으며 자신을 소개했다.


“인성? 풋! 성격은 좋을까?”

“누님.”

“미안, 동생이 화도 내내. 너무 심했나? 그만할게요. 아, 명함 줄게 연락해요.”


받은 명함을 만지작거리며 인성은 주방으로 들어가는 그녀를 멍하니 보았다.


“죄송해요. 평소에는 제게만 저러는데...”

“음... 나쁘지 않을지도.”

“네?”

“몇 살이지?”

“누님요? 올해 서른넷인가 다섯인가. 여섯인가... 사실 잘 몰라요. 제가 나이 말하니까 내가 누나네? 하시고 누나라고 부르라고 강요하시고.... 그래서 누님이라고 부르는 중인데... 아, 미숙씨 퇴근해요?”

“사장님 서른 다섯.”


미숙이라는 여인은 조용히 말하고 급히 도망치듯 나갔다.


“...그렇다네요.”

“으음, 자영업자인가.”

“형님... 설마 진지하게 생각하시는 것은 아니죠?”

“왜? 안되나?”

“제 입장 곤란해질 것 같은데요.”

“뭐가? 나 깔끔한 사람이야. 궁금하기도 해서 한번 만나볼까 싶어.”

“허...음? 속이고요?”

“속인 것은... 아직 없잖아. 일 배우러 왔다... 배운다고 했지 이 일 한다고는 안했고. 나중에 원망을 받아도 동생이 받겠지.”

“너무하신다.”

“흐흐... 신경 꺼. 이건 이제 내 일이니.”


탁!


다래가 뜨거운 뚝배기를 올리며 그들의 대화는 중단되었다.


“여기서 먹을래?”

“같이 드신다면서요. 테이블로 옮길게요.”

“응, 그러라고. 거기 인성씨도 도와요.”

“네 그러죠.”


인나와 인영의 성격을 반씩 섞은 여인이라 생각하며 인성은 미소를 지었다.


*


집으로 가는 길, 조용하다 싶어 옆을 본 그는 연신 미소를 지으며 핸드폰에 무언가를 쓰는 인성을 보았다.


“뭐, 재미있는 기사라도 보세요?”

“응? 아... 다래씨.”

“네?!”

“놀라긴.”

“벌써 진행하시는 겁니까?”

“응, 내일 만나자고 하니까 바빠서 안 된다네. 그러더니 지금 오라고. 같이 술 한 잔 하자네? 이 여자 참 독특하다. 그렇지?”

“허... 전 누가 떠오르는데요.”

“누...아, 인나? 큭! 그때 이런 심정이었나? 당황스럽고 두근거리고... 묘하네.”

“홀린 기분이죠.”

“으음... 그러게. 홀린 기분이야. 아... 어쩔까? 간다고 할까?”


그 말에 그는 진지하게 물었다.


“마음이 끌리시는 거죠?”

“응?”

“어제 대화한 거... 속에 품은 오류 가득한 로망 때문은 아니죠?”

“으음...”


잠시 생각하다 인성이 고개를 저었다.


“아닌 것 같아. 난 생각하지도 않았어. 그리고 그 주방모자 쓰고 옷도 그렇게 입고, 칼도 들고 있으니까 뭐랄까... 그렇잖아? 왜 같은 사람이긴 한데 전문가를 대하는 시선? 약국에서 본 약사가 아무리 미인이라도 어딘지... 아닌가, 이건? 아, 그래 의사. 의사를 대하는 환자의 마음? 그런 시선으로 보였으니까.”

“저에게 잘해주시는 분이니, 상처는 주지 마세요.”

“큭! 건방지긴. 경험치로 따지면 동생은 쪼랩이고 난 만랩 수준이야.”


웃어야 할 타이밍에 그가 웃지 않자 인성은 게임을 정말 모르는구나 생각했다.


“그럼 구십구레벨이 만랩이에요?”

“아니, 게임마다 다른데...”

“난 또, 만레벨이라고 해서 일만 만이 레벨인가 싶어서 얼마나 게임을 오래했나 그런 생각했네요.”

“어...그렇구나...”


구구절절 설명하고서 그를 웃게 만든 후 인성은 허망함도 느꼈다.


띵!


그런 그를 달래줄 메시지가 도착했다.


“허. 이 여자 내가 정말 마음에 들었나본데?”

“왜요?”

“어디 사냐고, 온다는데?”

“....형님이 잘생기긴 했으니까... 그래도 너무 급한데요.”

“후후, 이게 성인의 세계야. 웰컴 투 성인월드.”

“그럼 한수 배우겠습니다. 뭐라고 답변하실 겁니까.”

“....뭐라고 할까?”


되묻는 말에 그는 또 웃었다.


“잘 안되어서 제게 짜증부리면 참아주면 되겠죠.... 형님 마음 가는대로 하세요.”

“그게 문제인데... 잘 모르겠어.”

“뭐가요?”

“어... 설정한 지금 모습으로 가야하는지. 아니면, 내 차 끌고 가야 하는지.”

“음... 형님.”

“응.”

“누님에게 어떻게 보이고 싶으세요.”

“나?”

“네. 저는 인나씨에게 늘 멋있고 싶거든요. 아침에 일어나면 거울 보는 버릇도 그래서 생겼고요. 너무 긴장한 모습을 보이면 인나씨도 긴장하니까, 느슨하게 보이려고 하면서도 사실은 이것저것 신경 쓰고 있습니다.... 동생들에게는 자상하고 잘 웃어주고, 따뜻하게... 언제라도 의지할 수 있는 모습으로 보이고 싶어서 의식하며 행동하고요. 가끔 그 애들이 너무 귀여워서 안고 뽀뽀하고 싶어질 때도 있지만, 꾹 참을 때가 많아요. 특히 준서는... 하, 왜 그렇게 귀여운지.”

“중증이네...”

“네?”

“아냐. 동생이 무슨 말 하려는지 알겠어. 도착하기 전까지 생각해볼게.”

“네. 주무세요. 금방 도착하지만.”

“아냐. 안자. 생각할래.”


집에 도착해 간단하게 화물칸을 청소한 후에 그는 인성을 흔들어 깨웠다.


“후와! 잘 잤다....아?”

“전화 한번 왔네요.”

“누구...나?”


인성은 급히 전화기를 들고 통화버튼을 눌렀다. 그런 모습에 그는 인성과 다래가 이렇게 시작 되겠구나 예감했다.


-네. 아 여기 00시인데요. 아, 차는 있어요. 있지만 지금은... 예? 오신다고요? 아... 그럼, 네. 주소 보내드릴게요. 예? 술... 집에서요? 아뇨. 딱히 괜찮은 곳은 없지만... 예... 알겠습니다. 바로 보낼게요. 출발하셨다고요? 네네. 급히 보내죠.


전화하는 소리를 다 들었기에 그는 얼굴을 감싸고 있던 손을 내리고 달려온 인성에게 말했다.


“어쩌시려고요.”

“주소...”

“어디... 여기요?”

“부탁할게.”

“허... 그거 속이는 거잖아요?”

“아냐. 동생 집에서 같이 잔다고 말하면 되지.”


간절한 눈빛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으음...알았어요.”

“주소...”

“대문 앞에 붙어 있는데.... 못 보셨구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인성은 뛰어올라갔다. 그때, 하얀 생물이 주소지가 적힌 팻말을 찍는 인성을 지나쳐 들어왔다.


“집돌이 나 보고 싶어서 왔구나?”


집돌이는 그를 본체만체 지나쳤다. 그러나 멀리가지 않고 떨어져 주저앉았다.


“너 혹시 츤데레 그런 거야? 내 관심 끌려고 일부러 그러는 거야? 그렇다면 너... 제대로 하고 있어. 네가 그럴수록 점점 네게 끌려. 이 녀석...”


손을 뻗어 쓰다듬자 집돌이는 피하지 않았다. 딱 일분 동안만. 손을 떠난 감촉에 아쉬워할 때, 인성이 내려왔다.


“나 이제 뭐하지?”

“씻으세요.”

“씻고?”

“옷 갈아입으세요.”

“아... 이 옷 빨아야겠다. 땀 흘렸어. 그 상자 엄청 무겁던데.”

“요령 없으면 무거워요. 저도 처음엔 낑낑거렸어요.”

“나도 낑낑거렸나?”

“형님, 다래누님 오잖아요.”

“아! 그렇지. 아! 뭐 사다놔야 하지 않아?”

“제가 다녀올게요.”

“어...맞다. 동생도 옆에 있어줘.”

“네네.”


인성이 씻으러 들어간 후, 대문으로 하나둘 그를 기다리던 이들이 들어왔다.


“왜 왔어. 자야지.”

“그냥요.”


다가와 손을 꼭 잡는 준서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그는 입부터 내민 인나에게 웃어주었다. 준서가 돌아보자 인나는 급히 입을 갈무리하고 안을 살폈다.


“오빠 아직 안 갔어요?”

“네. 그게...”


그는 인나와 준서가 가라고 해도 가지 않을 것을 잘 안다. 그래서 인성에게 생긴 일을 그대로 전했다.


“대박!”


인나가 놀라며 급히 계단을 올라갔다.


“어디.... 가는 거야?”

“오빠.”

“응? 준서야 왜.”

“피곤하죠.”

“조금.”


널 보니 피로가 풀려, 라는 말을 그는 아꼈다.


“피노랑 키오 오늘 잘 지냈어요. 인나언니 엄마아빠께서 계속 놀아주셨어요.”

“아... 피곤하셨겠네. 잘 가셨어?”

“아뇨, 아직도 계세요... 왜 안가요?”


준서의 말에 그의 표정도 굳었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었네. 형님! 어서 씻고 나오세요. 저도 씻고 가야해요.”

-어딜 가?!

“형님 부모님 인나씨 집에 아직 계시다고 하네요.”

-웩?! 왜?!

“저야 모르죠.”

“어째...준서 안녕.”


알몸으로 나오려던 인성이 급히 들어갈 때, 준서는 변함없는 얼굴로 그를 보고 말했다.


“손님 오시면... 여기서 만나나요?”

“응? 그렇겠지.”

“그럼... 집에서 필요한 음식재료 챙겨올게요.”

“그러지 마. 대충...”

“여긴 우리 집이잖아요. 그렇죠, 오빠?”

“...응. 부탁할게.”


준서의 박력에 밀렸던 그는 잠시 후 뿌듯해했다.


“다 컸어.”


*


다래는 충동적으로 인성을 만나려던 것이다. 오픈한 가게가 안정을 찾아가자 잊고 있던 외로움이 짙어졌을 때, 눈앞에 마음에 쏙 드는 인성이 나타났다. 성실하고 예의바르고 보면 볼수록 눈길이 가는 그를 마음에 들어 했지만, 철벽수비를 자랑하는 모습에 포기하던 차였다.


인성은 어딘지 모를 그늘을 지니고 있었다. 잘생긴 외모에 상처를 가리려는 듯 길게 기른 앞머리도 마음에 들었다. 찾아오는 동네 고양이들을 그냥 못 본 척 할 수 없는 그녀의 성격이 사연 가득해 보이는 눈을 가진 인성이 계속 눈에 어른거린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스스로 동정심 때문인지 모른다는 자각도 하고 있었다. 그녀는 그런 상대라도 자신을 사랑해주면, 진심으로 모든 것을 내줄 각오를 하고 있다. 무엇보다 그녀의 마음을 흔든 사건은 짧은 만남 도중에 일어났다.


-이게 알탕이구나. 알이 들어서 알탕이구나.


세상에 알탕을 모르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 그녀는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인성도 알탕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다만 먹어본 적 없을 뿐이다.


-음, 맛있네. 괜찮다 이거. 속도 풀리고.


그와 인성이 떠나고, 정리를 끝낸 후 여느 날처럼 조용히 술 한 잔 할 생각이던 때 그녀는 충동적으로 인성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보내고 너무 조급하게 굴었나 싶을 때, 인성이 답장을 보내왔다.


“마음에 없는 건 아닌가.”


충동은 계속 솟구쳤고, 그녀는 자신도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매달리는 투로 그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다. 그러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가 알려준 도시로 차를 타고 가고 있었다. 자신이 제대로 샤워도 하고, 화장도 하고 옷도 갈아입은 것에 감사하며 그녀는 어떤 말을 나눌지 즐겁게 상상했었다.


“내가 인성이 아비 되는 사람입니다.”


“진다래입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난 엄마. 그래 둘이 사귀고 있다고. 만난 지는 얼마나 되었어? 오늘 처음 듣는 이야기라서.”


다래는 혼이 나갈 것 같았다. 그러나 남자들의 세계에서 뛰어난 실력을 인정받으며 살아온 관록 덕분인지 이상한 말을 하지 않았다.


“두 시간 반 전에 만났어요.”


다만, 너무 정직했다.


“뭐?”

“이게 무슨.”


가족의 놀람에 인성은 멍하니 천장만 보았다. 그도 이런 광경이 만들어질 줄은 몰랐다. 그의 집에서 다래를 만나고, 가볍게 술 한 잔하고 헤어지면 그만이라 여겼다. 이야기를 해보고 계속 만날 생각이 들면 자신에 대해 말할 생각이었다.


그렇게 진행되리라 예상했지만, 준서의 움직임이 인성의 부모님에게 발각되고 말았다. 음식 재료를 챙겨 나가려던 준서가 인나 모친의 눈에 걸렸다. 인나는 처음에 부모님에게 사실을 전하려고 뛰어갔으나, 곧 나설 일이 아니라 여겨 마나에게만 살짝 알려준 상태였다.


-손님이 온다고? 이 밤에? 예의 없는 손님이구나. 응? 누구 손님? 인성이 여자 친구라고?!

-무슨 일이야? 왜 소리를 지르고...


톤이 올라가 엄마의 목소리를 듣고 뛰어 내려왔을 때, 이미 인나가 상황을 뒤집을 수 없는 지경에 놓여 있었다.


다래가 도착하자 인성은 그의 집으로 데리고 가려했지만, 곧 나타난 인나에 의해 부모님께서 기다린다는 말을 들었다. 다래는 당황했다. 소개도 못 받은 인나가 누군지 묻지도 못하고 그녀는 예상치 못한 부모님 면담을 가지게 된 것이다.


“그러니까, 오늘 처음 만났는데... 여기로 온 것이라고?”

“그게 아니라 엄마. 가볍게 술 한 잔 하려고....”

“무슨 술 마실 곳이 없어서 여기에 와?”

“이집이 아니라 동생네 집에서 마시고 갈 생각이었어.”

“아니, 얘가... 왜 그 집에서...? 난 이해가 안 가는구나.”


다래에게 미안해하며 인성은 얼굴을 쓸었다.


“하... 누가 알린 거야. 정말... 아버지, 어머니는 왜 여기 계시고?”

“왜? 내가 딸집에 있는데 네가 왜 따져?”

“여보, 진정하고...”

“진정하게 생겼어요? 가까이 사는 아가씨라서 여기서 소개하나 했더니, 오늘 처음 만났다고 하잖아요? 아니, 얘들이 왜 이러는 거야? 딸은 갑자기 서른 되었다고 조급증 걸린 애처럼 방방 뛰고. 넌 또...”


조용히 상황파악을 하려던 다래는 너무 혼란스러웠다. 그녀는 더는 견딜 수 없어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큰 실례를 저지른 것 같네요. 저는 이만 돌아가...”

“어딜 가려고? 왔으면 밥은 먹어야지. 아니, 술을... 내가 화난 것은 저 녀석 때문이지 아가씨에겐 오히려 미안해하고 있어요. 이럴 때가 아니지. 인나 도와라. 준서는 어서 자고.”

“저도 도울게요.”

“학교 가야지.”

“엄마, 저도 내일 회사 가는데...”

“넌 네 남자친구 밥도 먹여야지.”

“밥 먹고 왔데요.”

“원래 집에 오면 또 배고픈 법이야. 안 그런가?”


관심에서 제외되어 있던 그는 갑자기 들어온 인나 모친의 질문에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봐라. 얼마나 배고프면... 인나는 과일이나 깎고. 준서는... 그래 조금만 도와줄래?”

“네.”

“착하기도 하지.”


무거운 정적. 다래는 견딜 수 없는 침묵에 못견뎌하다 문득 이 상황이 너무 재밌게 느껴졌다. 분위기를 감지했기에 억지로 웃음을 참던 그녀는 얼빠진 인성의 표정을 보고 결국 웃고 말았다.


“킥!”

“....풋!”


인성도 웃어 버렸다.


“뭐가 좋다고 넌 웃어.... 아가씨는 웃어요. 웃는 모습이 참 예쁘네. 아, 그래. 나이는...?”

“맞춰보세요.”


인성이 여자를 데려온 적은 많지 않지만, 없지는 않았다. 그러나 누구도 맞춰보라는 말을 하지는 않았다.


“설정이 아니라 성격이었네.”


그가 어이없어하며 웃을 때, 인성도 기막혀 헛웃음을 흘렸다. 다래도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금세 사과했다.


“죄송해요. 제가...”

“괜찮아요. 신선했고... 유쾌한 성격이군.”

“네. 그런 말 자주 들어요. 할아버지께서 제게 초상집 가서는 제발 농담하지 말라고 자주 말하셨어요.”

“할아버지와 가까웠나보군요.”

“부모님이 바쁘셔서 거의 조부모님 손에서 컸어요. 그래선지 취향이 조금 올드해요.”

“어떤 점에서...?”

“음, 클래식을 즐겨들으시던 할머니 영향으로 그런 음악을 즐겨 듣는데요. 할아버지는 트로트를 좋아하셔서 흘러간 가요들도 많이 알아요.”

“그랬군. 할머님 연세가... 그 나이대의 분치곤 흔하지 않은 취미를 가지셨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아, 말씀 편하게 하세요. 저 서른넷이에요.”


그 순간 인성과 그가 서로를 보았다.


“만으로.”


이어진 말에 둘은 동시에 미소 지었다.


“할머니가 음악선생님이셨어요. 할아버지는 시골학교 교장선생님이셨는데, 폐교된 후에는 학교를 인수하시고 그곳에 재능 있는 예술가들을 위한 공방으로 만드셨어요. 그곳에 기웃거리다보니 저도 미대를 지망했는데....”

“그런데?”

“미대 다니다가 우연히 어떤 장인... 지금 제가 체인점으로 나온 본점에서 식사를 했어요. 제가 사부님이라 부르는 본점 사장님이 칼질하는 모습이 너무 멋있더라고요. 진지하고. 살 한 점 바르는데 왜 저렇게 진지할까? 전 제 진로에 대해서도 생각하지 않았었고, 미술에 열정도 없었거든요. 그렇게 매료되어버려서 결국 대학 중퇴하고 칼을 쥐었어요. 바닥에서부터 배우라 말하시기에 설거지부터 시작해서, 계란초밥 처음 만들게 되었을 때는 정말 기뻤죠. 그러다 사부님 지시로 일본에도 다녀오고, 이탈리아도 가고.... 다시 돌아와서 사부님이 체인점 내주셔서 지금에 이른 것인데... 아흐흐. 너무 말이 많았네요.”


흐뭇하게 듣던 인성의 부친이 손사례를 쳤다.


“아니, 흥미로운 이야기였네. 부모님은 어떤 분이셨나.”

“아...”


돌연 멍해지다 다래가 미소를 지었다.


“보통 어떤 일을 하시는지 묻는데, 다르시네요.”


“나도 보통은 그리 묻네. 이야기를 들었더니 그게 궁금하더군. 그렇게 성장한 다래씨는 부모님을 어떻게 평가할까... 나도 아이가 셋이고 이미 다 커서, 너무 커버려서 어색함도 드는 관계가 되었지만 여전히 아이들이 날 어떻게 볼지가 궁금하네.”


“와.... 뭔가 멋있으시다. 인성씨가 아버님을 많이 닮은 것 같아요.”


“그런가.”


“네....”


성격과 분위기가 닮았다는 말에 인성과 그의 부친은 어색함을 느꼈다.


“저희 부모님은 평범하셨어요. 할아버지도 ‘내가 만들었지만 저 놈은 너무 무뚝뚝해,’ 라고 자주 말하셨고. 그럴 때면 아버지는 가볍게 웃으시면서 다시 책을 보셨어요. 두 분은... 자신의 일에 몰두하시는 편이었어요. 제게 사랑을 주지 않으시는 것은 아닌데, 일을 더 소중히 하셨던 것 같아요.... 두 분 다 책을 좋아하셔서 책을 읽기 시작하면 밥 먹는 것도 잊는 편이에요. 그러다 제 끼니를 못 챙겨서 할머니에게 혼나시고.... 어쩌면 그런 기억 때문에 제가 음식에 관심을 보였는지 모르겠어요. 후후.”


“부모님은 안녕하신가.”


“네, 건강하세요. 두 분 모두 지금 한국에 안 계세요. 한국에서 학생들 가르치다가 몇 년 전에 독일에 가셔서 그곳에서 학생들 가르치고 있어요.”


“교수셨군.”


“책도 몇 권 냈는데, 추천 드리지는 않아요. 정말 지루하고 재미없거든요. 만나면 저 혼자 떠들고 두 분은 조용히 웃기만 하세요. 참 신기하게도 저는 지루한데, 두 분 강의는 지루하지 않은가 봐요.... 이상해요. 저도 조신할 줄 아는데, 말이 너무 잘 나오네요.”


“후후, 내가 사람의 말을 이끌어내는 재주가 있네.”


숙연해진 분위기를 느끼고 인나 부친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또 보면 좋겠군.”

“저도요. 그러니 저 자주 만나라고 인성씨 설득해 주실래요?”

“흠... 오늘 만났다면서 내 아들이 마음에 드는가?”

“잘 생겼잖아요.”

“어디 가서 빠지는 인물은 아니지. 그래도 성격이나 모르는 것이 많지 않나?”

“주변을 보면 알아요. 날동...정기사님이 일을 가르치려는 사람이면, 인성은 괜찮다고 생각했어요.”

“일을 가르치다니?”


인나부친이 인성을 보자, 다래도 이상을 감지하고 고개를 돌렸다.


“일....일일체험! 이었습니다.”

“왜?”

“그건 나중에 따로 말씀드리면 안 될까요. 아버지.”

“....그렇게 하지. 인성아.”

“네, 아버지.”

“난 다래씨가 마음에 드는구나.”

“허...”

“그냥 그렇다는 말이니 부담 갖지 말고.”

“더할 수 없이 부담 주셨습니다.”




이 글은 픽션입니다. 등장인물의 이름과 단체등은 사실과 같지 않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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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짖는 소리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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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퀵보드를 타고 온 단서 1 20.06.09 15 1 17쪽
61 착오 20.06.09 17 3 24쪽
60 용기내어 얻는 것 7 20.06.08 23 2 22쪽
59 용기내어 얻는 것 6 20.06.08 23 5 21쪽
58 용기내어 얻는 것 5 20.06.07 23 3 9쪽
» 용기내어 얻는 것 4 20.06.07 22 4 22쪽
56 용기내어 얻는 것 3 +2 20.06.06 22 3 23쪽
55 용기내어 얻는 것 2 20.06.06 18 3 25쪽
54 용기내어 얻는 것 1 +4 20.06.05 25 4 24쪽
53 진실과 거짓말 5 +4 20.06.05 21 4 30쪽
52 진실과 거짓말 4 +2 20.06.04 26 6 21쪽
51 진실과 거짓말 3 +2 20.06.04 21 6 20쪽
50 진실과 거짓말 2 +6 20.06.03 25 5 22쪽
49 진실과 거짓말 1 +2 20.06.03 19 5 20쪽
48 복덩이효과 2 +2 20.06.02 22 4 20쪽
47 복덩이효과 1 +2 20.06.02 20 4 18쪽
46 옆집의 마녀 3 +2 20.06.01 19 5 21쪽
45 옆집의 마녀 2 +2 20.05.31 27 8 21쪽
44 옆집의 마녀 1 +2 20.05.31 23 4 25쪽
43 집 잃은 고양이들 5 +2 20.05.30 25 5 23쪽
42 집 잃은 고양이들 4 20.05.30 19 3 13쪽
41 집 잃은 고양이들 3 20.05.29 19 3 13쪽
40 집 잃은 고양이들 2 20.05.29 23 5 14쪽
39 집 잃은 고양이들 1 +5 20.05.28 25 6 18쪽
38 동호회 4 20.05.28 23 6 18쪽
37 동호회 3 20.05.27 24 5 20쪽
36 동호회 2 20.05.27 22 4 23쪽
35 동호회 1 20.05.26 23 3 21쪽
34 카센터 3 +1 20.05.26 25 5 17쪽
33 카센터 2 +2 20.05.25 24 8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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