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짖는 소리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추리, 공포·미스테리

완결

연어진
작품등록일 :
2020.05.11 11:29
최근연재일 :
2020.06.16 14:07
연재수 :
91 회
조회수 :
3,212
추천수 :
502
글자수 :
841,325

작성
20.06.05 08:42
조회
25
추천
4
글자
24쪽

용기내어 얻는 것 1

이 글은 실제 일어난 사건들을 토대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DUMMY

그는 스스로 만든 무른 바닥위에 서 있었다. 불행을 자초하고 무의미한 삶을 반복했다. 그 변화의 첫 번째는 집돌이다. 집돌이는 그에게 처음으로 자신이 아닌 존재를 보살필 의무감을 심어주었다.


만세형을 만나며 그는 더 내려갈 수 없다 여기던 절망의 바닥이 한계 없이 내려가 있음을 느꼈다. 만약 집돌이의 존재가 없었다면 그는 이미 자신을 놓아버렸을 것이다. 근근이 버텨내며 벗어날 수 없는 궁지에 놓인 채 추락하며 살았다. 불행과 힘겹게 싸워나가고 있을 때 그는 인나를 만났다. 그녀는 한없이 내려가던 그를 멈춰 세워 주었다.


그녀가 떠나며 얇게 그를 지지하던 바닥이 다시 내려가려 할 때 이번엔 마나가 나타났다. 그는 놓치지 않고 마나를 붙잡았다. 그렇게 멈춰 있었다. 그것으로 만족하려 할 때, 이번엔 준서가 나타났다. 준서는 그를 아주 조금씩 스스로 만든 불행의 늪에서 건져 올려주는 존재였다. 그는 자신의 불행을 전달시키지 않으려 용기 내 팔다리를 휘저어 위를 향해 올라오기 시작했다. 피노와 키오는 그런 그에게 더 힘주어 움직이도록 만들어준 존재다.


4월의 그는 행복하다.


그는 더는 자신이 불행하기 위해 태어났다 생각하지 않는다. 생각을 바꾸면 세상도 달라 보인다는 것을 매일 깨닫는다. 그러나 그가 선 바닥은 여전히 불안정하다. 그는 그 바닥에 금이 가 함께 선 이들이 위태로워지는 것은 어떻게든 막을 각오를 하며 살고 있었다.


*


한편으로 끔찍했지만, 또 한편으론 더할 수 없이 행복감을 느끼던 그의 4월이 지나가고 있었다. 마나는 처분할 것을 제외한 모든 짐을 인나가 마련해준 자신의 공간으로 옮겼다. 인나는 마나와 함께 동거했기에, 집에 필요한 물품 대부분을 그녀를 통해 얻을 것이라 예상했다. 그 배려 덕분에 마나는 2층의 대부분을 자신의 집에 있던 물품으로 채울 수 있었다. 그녀가 가지지 못한 것들,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들은 그가 채우려 했었다. 마나는 그가 물품 목록을 보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빠르게 아이들의 침대를 사들이고, 필요한 것들을 몽땅 준비했다.


인나가 준서의 방을 꾸미고 몸만 들어와 살아도 될 정도로 준비해둔 것처럼, 비슷한 의도를 가지고 마나가 피노와 키오의 방을 꾸민 것이다. 그는 마나와 인나에게 아이들 방을 꾸민 대금의 전체를 갚겠다 말했지만 두 사람은 화난표정, 울어버리기 등으로 그에게 반도 그 반의 반도, 약간이라도 보태는 것에 대한 이야기도 꺼내지 못하게 만들었다.


이는 그녀들의 전략이다.


인나는 준서를 볼모로 삼은 것이다. 그와의 관계가 십여 미터 건너편에 위치한 두 집으로 멀어질 것을 걱정한 조치다. 마나는 그런 인나의 조치에서 영감을 얻어 피노와 키오에게 정성을 쏟았다. 그가 아이들을 그의 집으로 데려가지 못하게 껄끄럽게 여기던 옛 연인까지 불러왔다. 아이들에 대한 사랑과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큰 비율로 그에 대한 계산이 선 행동이었다.


그는 아직 거기까진 생각하지 못하고 두 사람에게 미안하고 감사해할 뿐이다. 그가 그럴수록 그녀들은 만족할 수 있다. 그녀들이 원한 것이 바로 그의 관심과 애정이었으니까. 부가적으로 따라오는 아이들의 미소와 살가운 행동들은 뜻하지 않았던 보너스 같은 것이다.


그녀들의 계산에는 그가 할 예상행동에 대한 대처도 들어 있다. 인나는 준서와 아이들의 방을 빌려주는 것으로 매월 합계 10만원이라는 비상식적 금액을 그에게 받기로 했다. 그 돈이 그대로 아이들에게 쓰일 돈에 보태지는 것은 그도 당연히 눈치 채고 있다. 마나의 경우 공간을 채울 물품과 그가 알지 못하는 준서가 필요로 할 것들을 인나와 경쟁하며 구해주곤 한다. 그렇다고 너무 과하게 해주면 그가 가중되는 빚에 부담을 느끼기에 인나와 마나는 그에게 데이트를 요구하고 그때 그에게 돈을 쓰게 만든다. 사용된 금액에서 비교가 되지 않지만 그의 심적 부담을 줄이기 위한 방법이며, 그녀들의 욕구를 채울 아주 좋은 수단이었다.


그는 단지 아이들에게 참 잘해준다 여기고 있다. 만약 그가 준서가 사용할 속옷을 살 때 두 사람이 얼마나 눈치싸움을 하는지 안다면 지금처럼 흐뭇하게 보고 있지만은 못했을 것이다.


그녀들은 단순히 그의 눈치만 보지 않는다. 당사자인 준서와의 관계도 매우 신중히 이어나간다. 다행스러운 일은 인나와 마나 둘 모두 이런 눈치경쟁에 매우 익숙하고, 감각적으로 해나갈 수 있다는 점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매일 고뇌하는 그처럼 도피처를 두어야 했을 것이다. 때론 둘이 협력하며 현 상황을 즐기기에, 두 사람의 얼굴에도 미소가 늘 떠올라 있는 것이다.


*


식구란 말이 있다. 가족의 대체어로도 쓰이는 이 단어는 사회적 생물인 사람이 타인을 경계 없이 보는 기준을 알려주기도 한다. 내장기관은 독에 취약하기에 함께 같은 것을 먹는 것으로 서로를 믿게 된다. 잔을 부딪쳐 서로의 술을 다른 이의 술잔 안에 넣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의 행동양식이다.


또한 음식은 살아가는 가장 중요한 요소다. 한계 생명을 지닌 생물은 쉽게 죽으려하지 않는다. 무모한 일을 피하고, 위험해보이면 물러난다. 장수하는 식물과 다른 행동양식으로 살아가는 이유다. 사람도 동물에 속한 한계 생명체이기에 한계수명까지 살고자하는 의지를 지니고 태어난다. 먹고 마시지 않으면 죽기에 사람은 그래서 음식을 중시한다.


함께 먹는 이들은 그래서 보통관계라 말하기 어렵다. 잦은 식사를 함께하는 이들은 더 각별하다. 거기에 더해 함께 잠들고 눈뜨면 더욱 각별해진다. 수면시간만큼 경계 없는 시간도 없다. 주변에 두렵거나 의심 가는 이가 있으면 사람은 잠들지 못한다. 낯선 이가 곁에 있는 공간에서 잠들지 못하는 이유다.


먹고 자고. 이 행위를 반복하면 수일 내에 더는 남이라 여길 수 없게 된다. 사회적 생물로 살아가기 위해 쓰던 가면도 벗는 집이라는 공간에서 그런 행위를 반복하면 남이 아닌 식구, 혹은 가족이 된다.


*


인나의 집에도 어색함은 조금씩 감춰지고 익숙함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인나도 그를 느꼈는지 미루던 가족의 방문을 허가했다. 방문이 정해진 날 그도 일찍 일을 마치고 대기했다. 아이들 셋은 바짝 긴장한 상태로 그의 곁에 앉아 있었다. 그는 작은 소리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아이들을 보자 더는 참을 수 없게 되었다.


“인나씨. 저희는 집으로 가는 것이 좋겠습니다.”


인나도 내심 아이들이 너무 긴장했다며 걱정하고 있었다. 만약 그가 집이라는 표현을 다르게 했다면 인나는 부드럽게 받아 들였을 것이다.


“지입? 여긴 집이 아닌가요.”

“인나야?”


부모님에게 삶을 평가받는 순간이었기에 인나도 긴장했었다. 순간의 화를 참지 못해 감정을 담아 되물었음을 알지만, 인나는 서운함을 감추지 못했다.


“말해 봐요, 날씨. 여긴 그럼 뭐죠?”

“저는... 그런 말이 아니었습니다.”


그도 말실수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만약 평소처럼 인나를 자세히 살폈다면 불안해하고 있는 것이 아이들뿐이 아님을 그는 깨달았을 것이다. 그러지 못했기에 인나의 화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또... 제게 언제까지 존댓말 하실 건가요? 우리는 가까워질 수 없는 사이인가요?”

“인나, 너 왜 그래?”

“마나 넌 조용해. 말해 봐요. 왜 벽을 만들고 넘지 못하게 막는 건가요? 우린 무슨 관계죠?”


‘멀지 않아 헤어질 관계.’ 순간 떠올린 생각에 스스로 놀라며 그는 인나를 보았다.


“왜 또 그런 슬픈 눈을 하고... 나만 나쁜 사람 만드네요.”

“꼭 정의해야 하나요.”

“해주세요. 당장...”

“애들 긴장하니 다음에...”

“지금 말해주세요.”


화는 가라앉았지만 평소 답답하던 마음을 꺼낸 인나는 오기가 생겨 밀어붙이기로 했다. 그도 인나의 진심을 느꼈다.


“....저 나가서 애인 있는지 물으면 있다고 합니다. 누군지 물으면 인나씨라고 답합니다. 어떤 사람이냐고 물으면 예쁘고, 착하고, 귀엽고.... 뿌듯하고 자랑스럽고...”

“말 만들어내지 마세요.”


그 말에 그는 돌연 핸드폰을 꺼냈다. 그리고 눈에 먼저 보이는 전화번호를 누른 후 스피커로 전환했다.


-어쩐 일이야 동생? 누나가 보고 싶었어?

“누님, 제가 인나씨에 대해 말한 적 있죠?”

-누구? 아, 그 예쁘고 착하고, 귀엽고... 또 뭐랬지? 맨날 말하는 그 레퍼토리 주인공? 잘 알지. 왜?

“감사합니다. 누님 나중에 또 연락드릴게요.”

-뭐야? 갑자기.... 그리고 거짓말 하지 마. 연락 안할 거면서. 아, 내일 올 때 고양이 밥 가져다 줘. 그거 잘 먹더라.

“보이면 챙겨갈게요.”


전화를 끊고 그는 어색한 표정의 인나를 보며 다시 아무 번호나 눌렀다.


-어...어? 오빠? 꺄아! 날나리 오빠! 나 보고 싶어서 전화했구나?

“애인 옆에 있어요.”

-애인? 애인 옆에 있는데 왜 전화했어?

“물어볼 말이 있어서. 지금 애인하고 싸우고 있는데, 내가 평소에 내 애인에 대해 어떻게 말하는지 말해줘요.”

-뭐야... 나 정말 기대했는데. 싸우고 나 만나주는 거 아니고?

“네. 그런 일은 없습니다.”

-냉정해... 그래서 더 멋있지만. 뭐가 궁금한데? 평소에 말하는 거? 그 인나씨라는 여자가 예쁘고, 착하고 귀엽고, 자랑스럽고? 그런데 오빠 전에 같이 다니던 여자는...


그는 급히 전화를 끊으며 인나의 눈치를 봤지만, 그럴 필요는 없었다.


“내가 뭐... 그런 것까지 알려달라고 한 건 아닌데...”


볼을 발그레 붉힌 인나는 그를 힐끔거리며 연신 방긋 거렸다.


“좋다고... 어이구, 참 애들 앞에서...”

“마나... 조용히 해. 전에 같이 다니던 여자 너라는 거 다 아니까.”

“난 떳떳하다. 준서도 같이 다녔으니까. 그치 준서야?”

“네? 아, 네... 저, 저 언니들 알 것 같아요.”

“나도... 그 여자들 아직도 포기 안했나봐? 어떻게 저런 말을 듣고 버티지? 난 자존심 상해서 못....”


그가 피노와 키오를 눈짓하며 보자 마나는 입을 다물었다.


“더 할까요.”

“으움...”


미안해져 인나는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말투는... 하고 싶으면 그렇게 하세요. 전 제가 혹시라도 인나씨나... 이건 마나씨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전 두 분이 사회적 지위와 체면이 있음을 압니다. 그게 아니더라도 인격체로 존중받아야 하는 법이죠. 제가 보호해야 하는 준서나 피노, 키오와는 다르죠. 저 아이들을 존중하지 않는다는 말이 아님을 아실 겁니다. 대하는 태도가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혹시라도 제가 두 분을 존중하지 않는 말이나 행동을 할까봐 일부러 조심하는 겁니다. 제가 거칠게 살아서, 예의를 잘 모르니까요.... 어떻게 하실래요. 지금부터 말 놓고 지낼까?”


“저 말투도 괜찮네...”

“나도 설렌다. 조금.”


인나와 마나는 잠시 눈으로 대화를 하다 동시에 고개를 흔들었다.


“그대로가 좋아요.”

“나도. 그래도 난 가끔은 그런 말투 써줘요. 일종의 야자타임?”

“음... 나도 준서에게 말하는 거 들으면 부러워. 나도 해줘요. 하루에 한두번 정도.”

“내가 준서에게 말하는... 것이 뭐가 다른가요?”


그의 반응에 마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자각 없는 미남인줄만 알았는데, 그냥 무딘 사람이었나.”

“제가 왜...? 이상한가요?”

“몰라요? 얼마나... 무슨 신혼부부처럼 아침마다... 난 그렇게 굴면 속이 이상할 것 같으니까 제겐 하지 마세요.”

“네, 마나씨. 인나씨도...?”

“저는... 나중에 해보고 아니다 싶으면 말할게요.”

“지금 해볼까요?”

“지금은....”


왜 이렇게 다 같이 앉아 있었는지 그는 떠올렸다.


“아! 참.... 그런 의미로 저희는 건너편 집으로 가겠습니다. 거기에 있다가 오신 후에 건너와서 인사를....”


띠링! 띠리링!


너무 늦어버렸다. 밖을 본 그는 줄줄이 늘어선 차량을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준서야, 키오 손잡아. 피노는 이리와. 형 손잡자.”


-집돌아! 잘 지냈어?!


톤이 올라간 목소리의 주인공은 인나의 아버지였다.


-차는 왜 다 끌고 온 거야?

-다 따로 와서 그렇지. 너는 인사보다 그 말을 먼저 해? 오빠 서운하다.

-밖에서 떠들지 말고 들어가자. 민폐야.

-엄마. 여기 누가 산다고? 괜찮아, 여긴 노래 불러도 돼.

-너 혼자 노래 부르고 들어오던가.... 춥다, 어서 들어가자. 당신도 강아지 그만 괴롭히고 어서 들어가요.

-괴롭히다니. 집돌아, 이거 먹을래? 간식 사왔지? 어이구, 좋아하지? 자, 먹어. 자자. 하하하하!


인나가 주차할 곳을 알려주는 동안 마나는 그를 보고 있었다. 그녀의 입가에 미소가 가득한 이유는 진지한 그의 말과 눈빛, 그를 듣는 아이들의 진지한 표정 때문이다.


“겁먹을 거 없어. 당당하게 굴어. 오빠, 형을 믿고. 우리 정씨 가문은 대대로...”

“오빠.”

“응? 왜 준서야....어?”


두 아이는 서씨다.


“아니, 그 말이 아니고. 우리 집. 우리 모두 어...”


뒤늦게 피노와 키오가 서씨라는 것을 깨닫고 그가 다급히 말하는 모습을 보며 마나는 웃음을 참으려 입을 틀어막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표정은 문을 열고 들어선 인나의 모친을 보고 빠르게 굳었다.


“오셨어요....”

“응, 마나 있었구나.”

“네...”

“엄마? 같이 사니 당연히 있지. 무슨 그런 말을 해? 마나 잘 지냈어?”

“네, 언니.”

“너 예뻐졌다?”

“원래 예쁘잖아요. 언니도 얼굴 폈네요. 보톡스?”

“아직 그 정도는 아니거든? 다이어트 했는데, 티 나?”

“얼마나 뺐어요?”

“삼키로.”

“와! 독하게 뺐네요.”

“그치? 그래서 힘이 없어. 맛있는 거 만들었어?”

“기대하시는 건 아니죠? 저랑 인나 솜씨 아시면서.”

“으... 그럼 굶어야겠네.”

“날씨가 저희보다 조금 나아요. 그리고 준서는... 아, 소개해줄게요. 날씨.”


긴장하고 선 그는 피노와 키오도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는 모습을 보고 힘주어 말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잘 있었나. 이 아이들이...?”

“예, 제 동생들입니다. 이쪽이 준서고. 남동생이 피노. 막내가 키오입니다.”

“피노...키오?”

“예. 합치면 그렇게 되지만, 각기 뜻이 있습니다. 피노는 소나무라는 뜻이고, 키오는 키리노의 줄임말로 가재, 바늘이라는 뜻입니다. 소나무처럼 사철 푸르고 강하게 성장하라는 뜻이 내포된 이름이고, 가재와 바늘은 건강과 장수를 뜻합니다.”


“에?”

“어?”

“그랬어?”


준서도, 인나도 마나도 처음 듣는 말이었다. 심지어 아이들조차 자신의 이름에 그런 깊은 뜻이 담겨 있는지 몰랐다. 그는 비터에게서 그 유례를 들어 아는 것이다. 낯선 세상을 여행 다니던 피노키오를 동경하며 자란 비터가 아이들의 이름에 피노키오를 넣고 타갈로어에서 의미를 찾아 부여한 것이다. 그는 비터를 동정하지 않지만, 적어도 아이들에 대한 애정은 조금도 없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며 그 뜻을 전한 것이다.


“키오 가재야? 나 가재 싫은데.”

“가재는 단단하고 예뻐.”

“안 예뻐.”


토라진 키오를 어떻게 달래야하나 고민할 때 준서가 말했다.


“맛도 좋아.”

‘그런 말로...?’

“맛있어? 그럼 좋아.”

‘맛있으면 되는구나...!’


아직은 준서만큼 아이들을 모른다며 자책할 때, 키오가 몸을 움츠리며 말했다.


“바늘은 싫어. 아픈 건 싫어.”


폭력에 노출되어 살아온 아이들. 그는 자신의 실수를 인식하며 말했다.


“그럼 가재만 할까?”

“응!”

“네, 해야지. 키오.”

“응, 언니. 네에! 오빠!”

“인사도.”

“안녕하세요. 키오인데요?”


키오가 배에 손을 두고 인사할 때, 그는 피노는 어쩌나 고민했다. 예의 없는 아이라 손가락질 받는 것이 싫어 강제로 머리를 숙여야하나 생각할 때, 피노가 고개를 숙였다. 입을 열진 않았고 두려운지 그의 손을 잡고 있었지만, 마음을 닫던 이전에는 볼 수 없던 행동이었다.


“귀엽게들 생겼네. 커서 미인이 되겠어.”


가장 늦게 들어선 인나의 부친이 말하며 신발을 벗고 올라섰다. 이내 하나 둘 거실의 소파를 향해 걸어갔다.


“어...착하다.”


마지막에 신발을 벗었던 인나의 친오빠 인성은 준서가 신발 정리하는 모습을 보고 작게 감탄하다 부모님에게 바삐 걸어가 그 모습을 전했다.


천진난만한 키오는 얼마 지나지 않아 인나부모님의 무릎을 오가며 애교를 부렸다. 피노는 그의 옆에 붙어 앉아 의젓하게 행동했다.


-이리주세요. 거기 앉으세요. 방석 드릴까요. 목마르시죠. 여기 물수건 쓰세요. 차는 뭐로 드릴까요?


그런 두 아이의 모습보다 인나 가족의 눈길을 끈 것은 준서의 말과 행동이었다.


“집주인이 누군지 모르겠네.”


인나는 자신을 보며 말하는 모친에게 눈을 흘겨 주었다.


“와, 나도 저런 동생 있으면 뭐라도 다 해주겠다. 좋겠어.”

“오빠, 까분다.”


인영의 말에 인성의 입이 살짝 벌어졌다.


“저 말투... 준서도 저러나?”

“예?”


-오빠, 까부실 거예요?


상상해본 그는 급히 고개를 저었다.


“아... 아뇨.”

“내가 평범한 거야.... 어디 가서 물어봐. 안 그래 엄마?”

“모르겠다. 준서 보니 내가 너희를 잘못 키운 것 같고 그러네.”


준서는 집안의 살림꾼이다. 마나와 인나, 그도 분담하고 있지만 음식에 대해선 보조하는 역할만 하는 편이다. 그를 증명하듯 준서가 간을 하지 않은 음식과 간한 음식은 소비되는 양에서도 크게 차이를 보이고 있었다.


“아 짜! 이거 인나가 했지?”

“마나야, 언니.”

“이 잡채는? 이건 맛있네?”

“그건 준서.”

“갈비찜은? 양념 잘했다. 고기도 푹 익어서 씹기도 편하고. 이 당근 썬 거 봐. 솜씨 좋은데?”

“그것도 준서.”

“...너희는 놀았어?”

“파 썰고, 양파 썰고. 나물 다듬고. 많이 도왔으니까 그만 구박해요, 언니.”


묵묵히 음식 맛을 보던 인나 엄마도 한마디 했다.


“인나야, 마나도... 요리학원 등록해줄게.”

“정말 그래야 할까봐.”


인나의 부친은 자신의 입에 들어가는 것보다 두 아이에게 챙겨주는 것이 더 많았다.


“어이구 잘 먹네.”

“고기.”

“오오, 자 고기 왔어요.”

“키오. 편식하지 말랬지.”


준서의 한마디에 키오의 젓가락질이 멈췄다. 식사할 때마다 눈치를 보는 설움을 겪었기에 그는 평소엔 예의범절로 아이들을 괴롭히지 않는다. 키오가 주변 눈치를 보자 그는 준서를 조용히 불렀다.


“준서야. 괜찮아.”

“네, 오빠. 내일은 콩 먹어야 해?”

“응.”


그의 한마디에 냉정해보이던 준서의 얼굴이 펴지는 것을 보며 방문자들은 흐뭇하게 웃었다.


“피오 귀엽다.”

“피노입니다.”

“아, 피노... 귀여워.”


조용히 밥만 먹었지만, 인성의 눈에 피노가 자꾸 들어왔다.


“데려가고 싶다.”


작은 소리였지만 들었는지, 피노가 고개를 들어 인성을 보았다. 그리고 조용히 손을 움직여 그의 손을 잡았다. 인성이 서운함을 느끼며 보자 그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제 동생입니다.”

“누가 아니라 했나... 남동생 좋지?”

“전 평등하게 사랑합니다.”

“그건 아... 그래, 그렇지. 하아, 정말 귀엽네. 같이 게임도 하고, 여동생들에게 못하는 이야기도 하고. 얼마나 좋을까.... 아버지 노력한번 해보시죠?”

“허허허! 그래볼까?”


아버지를 보고 민망해하던 인나는 차마 입을 열지 못하는 엄마를 대신해 말했다.


“오빠, 아이들 있어요.”

“....으응.”


여동생 둘과 친모까지 눈치주고 있음을 자각하고 인성은 입을 다물었다. 분위기를 주도하던 인성이 주눅 든 모습을 보이자 그가 나섰다.


“전 게임을 안 해봐서.... 게임 좋아하십니까? 피노도 상당히 좋아하던데.”

“그래? 어떤 게임? 나 나온 게임은 다 해봤는데.”

“자랑이십니다. 오라버니.”


인영이 끼어들었지만 인성은 피노에 대한 관심을 버리지 않았다.


“밥 먹고 형하고 게임할까?”


무관심하던 피노가 그 말에 반응을 보였다. 인성을 쳐다보고 이내 그를 보고는 다시 밥그릇에 시선을 주었다.


“그만 밥이나...”

“언니, 밥 먹어. 어서.”


그 반응을 본 인나가 다시 입을 열어 오빠의 주책을 말리려는 인영에게 눈짓해 막았다.


“무슨 게임 하려나? 형이 현질을 좀 해서 아이템들이 빵빵한데...”

“로난...”


‘응?’


“어머!”

“말했어?”

“흠.”


그도 마나와 인나처럼 놀랐다. 가끔이지만 두 사람 앞에서도 말을 하게 된 피노다. 흔치않은 일로 여전히 모르는 사람이 오면 방에 들어가거나, 나와 있어도 입을 열지 않는다. 함께 식사해주는 것만으로 고마웠는데, 피노가 말을 한 것이다. 그는 믿기지 않아 인나와 마나를 보았고, 둘은 그런 그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감격한 표정을 보였다.


오기 전 사정을 들은 인나의 부모님도 놀라고 있었다. 그래서 평소엔 잔소리를 하던 인나의 모친도 서둘러 밥 먹고 게임하라며 아들의 등을 떠밀었다.


-오, 많이 키웠네? 아이템 보여줘. 아, 아직 퀘스트 다 못했구나. 잠깐만, 노트북이라서 접속 되려나. 음 사양은 괜찮네. 아, 그거 건드리면 안 돼. 폭탄이야. 피하고, 그렇지! 잘하네?


“음...”


피노가 인성과 너무 친해지는 것이 싫지만, 그렇게 마음을 여는 것이 어디냐며 그는 자신을 달래는 중이었다.


“들어가 봐요.”


방에서 들리는 소리에 안절부절 못하는 그에게 인나가 속삭였다. 그럴까 싶던 그의 눈에 건너편에 앉은 인나의 부모님이 보였다.


-꺄아, 간지러. 또, 또 해줘.

-우쌰! 우샤샤!

-꺄아! 난다! 슈퍼파워! 레이저 빔! 꺄아! 또! 또!

-키오 그만 해. 힘들어 하시잖아.


지쳐 쓰러질 것 같았지만 준서의 말에 인나부친은 다시 힘자랑을 시작했다.


-하나도... 안... 힘들지!

-꺄아아! 부웅! 난다! 악당을 없애라! 슈퍼파워!


“저러다 쓰러지시겠어요.”


인나의 말에 지켜보던 그가 입을 열었다.


“제가...”

“그냥 두게. 좋아서 저러는데. 골병들어도 본인 책임이지.... 인나가 어렸을 때 딱 저랬었는데.”

“엄마? 없는 말 만들어 내시지 마세요.”

“인나야? 언니도 기억하거든. 너 진~짜 까불었어. 지금 널 보면 어떻게 컸는지 정말 신기해.”

“오줌싸개...”

“뭐? 그걸 왜 말해! 히잉. 너도 쌌잖아.”

“또 싸운다. 너희는 만나면 싸우니? 아이고, 정신 사나워요. 당신도 그만 앉으세요. 키오도 이리와.”


순식간에 정리하는 것을 보며 그는 과연 엄마구나 싶었다. 진짜 엄마라는 존재는 저런 모습이 아닐까 생각할 때였다.


“응, 엄마.”


키오가 무의식적으로 인나 모친을 엄마라 불렀다. 키오는 자각하지 못한 채 그녀에게 안겼다.


“아줌마 좋은 냄새 나. 하응.”


키오를 보며 어른들은 모두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그는 안절부절 못하는 준서의 손을 잡아끌고 앉혔다. 그리고 눈물을 감추려 고개를 돌린 인나의 모친께 살며시 인사를 건넸다.


“아줌마 예뻐.”

“그러니? 너도 예쁘구나.”

“...뽀뽀해줄게.”


얼굴을 잡고 여기저기에 쪽쪽거리는 키오를 보고 그는 이마를 잡았다. 엄하게 굴지 못해 어른들에게 큰 실수를 한다고 여겼다. 그때 곁에 앉았던 인나가 그에게 속삭였다.


“엄마 표정 보세요.”


눈을 뜬 그는 활짝 웃는 인나엄마를 보고 인나를 보았다.


“나도 엄마 저렇게 웃는 거 오랜만에 봐요.”


인나는 내심 걱정한 아이들 덕에 부모님에게 상심할 말 한번 듣지 않고 흘러가는 시간에 기뻐했다. 그도 아이들 덕에 편안한 시간을 보내게 된 것에 감사하고 있었다.


-아저씨도 뽀뽀 받고 싶은데...


“아빠?”


-해주께!


인나 부친은 키오의 뽀뽀세례를 받고 집돌이가 앞발을 내밀어줬을 때보다 더 밝은 표정을 지었다.


떨어지려 하지 않는 키오 때문인지 인나의 부모님은 저녁만 먹고 돌아가기로 한 예정을 넘긴 후에도 남아 있었다.


“잘 준비 안하고 왔는데...”

“대충 줄게. 자고 가.”


인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인영은 인성을 보았다.


“오빠는?”

“음, 그러네. 술 한 잔 할까?”


그와 하고 싶은 말이 있었기에 인성도 남기로 했다. 그는 진지한 표정의 인성을 보며 잊었던 긴장감을 되찾았다.




이 글은 픽션입니다. 등장인물의 이름과 단체등은 사실과 같지 않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4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개 짖는 소리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62 퀵보드를 타고 온 단서 1 20.06.09 15 1 17쪽
61 착오 20.06.09 18 3 24쪽
60 용기내어 얻는 것 7 20.06.08 23 2 22쪽
59 용기내어 얻는 것 6 20.06.08 23 5 21쪽
58 용기내어 얻는 것 5 20.06.07 23 3 9쪽
57 용기내어 얻는 것 4 20.06.07 22 4 22쪽
56 용기내어 얻는 것 3 +2 20.06.06 22 3 23쪽
55 용기내어 얻는 것 2 20.06.06 18 3 25쪽
» 용기내어 얻는 것 1 +4 20.06.05 26 4 24쪽
53 진실과 거짓말 5 +4 20.06.05 21 4 30쪽
52 진실과 거짓말 4 +2 20.06.04 26 6 21쪽
51 진실과 거짓말 3 +2 20.06.04 21 6 20쪽
50 진실과 거짓말 2 +6 20.06.03 25 5 22쪽
49 진실과 거짓말 1 +2 20.06.03 19 5 20쪽
48 복덩이효과 2 +2 20.06.02 22 4 20쪽
47 복덩이효과 1 +2 20.06.02 20 4 18쪽
46 옆집의 마녀 3 +2 20.06.01 19 5 21쪽
45 옆집의 마녀 2 +2 20.05.31 27 8 21쪽
44 옆집의 마녀 1 +2 20.05.31 23 4 25쪽
43 집 잃은 고양이들 5 +2 20.05.30 25 5 23쪽
42 집 잃은 고양이들 4 20.05.30 19 3 13쪽
41 집 잃은 고양이들 3 20.05.29 19 3 13쪽
40 집 잃은 고양이들 2 20.05.29 23 5 14쪽
39 집 잃은 고양이들 1 +5 20.05.28 25 6 18쪽
38 동호회 4 20.05.28 23 6 18쪽
37 동호회 3 20.05.27 24 5 20쪽
36 동호회 2 20.05.27 22 4 23쪽
35 동호회 1 20.05.26 23 3 21쪽
34 카센터 3 +1 20.05.26 26 5 17쪽
33 카센터 2 +2 20.05.25 24 8 14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