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검권천하] 제37화 -오초사굴(2)
한 번씩 다녀왔습니다.
[1부 검권천하] 제37화
한영의 잘못된 판단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초 인공지능이 활성화된 것은 인간형 몬스터와 NPC뿐이라고 섣부르게 판단했다. 당연히 말을 할 줄 아는 존재들만이 자아를 갖게 되었으리라고 생각했지만, 당연하다는 전제 자체가 잘못이었다.
천년구렁이가 보스방인 거대 회랑에 있을 거라는 판단도 마찬가지였다. 한영에게서 새어져 나오는 광역 어그로(이목 끌기)와 방출했던 살기로 눈을 뜬 건 영물 천둥새만이 아니었다.
천년구렁이가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건 마침 오초사굴에 들어온 플레이어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영이 천둥새로부터 도망친 당시, 천년구렁이는 긴 동면에서 깨어났다.
무엇보다 스스로의 자아를 찾은 천년구렁이는 동식물의 기본 욕구인 ‘번식욕’을 강하게 표출했고, 그 알들이 부셔지자 분기를 하고 있었다.
‘스-, 스스-, 스스스-.’
뱀이 혀를 날름거리며 내는 특유의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자 한영은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한영의 판단 중 가장 잘못된 판단은 천년구렁이와의 전투였다.
보스 몬스터인 만큼 천년구렁이의 공격 패턴은 다양했다. 하지만 이 역시도 한영의 머리에서 나왔다. 체력이 상당하기에 시간이 오래 걸릴 뿐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초 인공지능이 활성화된 천년구렁이는 시스템적으로 입력된 공격패턴만을 사용하지 않는다! 더군다나 분기 자체가 한영의 시나리오에 없었다.
무엇보다 비좁은 동굴에서 전투를 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천년구렁이가 여전히 동면 중일 거라고 생각했기에!
“캬아아아아-”
오초사굴은 천년구렁이에게는 가장 친숙한 장소였다. 수십 갈래로 길이 나있지만, 어디로 움직이면 어디로 나오는지 훤히 알고 있었다.
한영의 머리 위에 뚫린 구멍에서 갑자기 모습을 드러낸 천년구렁이, 아가미를 쩍 벌린 채 빠르게 다가왔다.
수직으로 약 2미터, 수평으로 약 20미터에 육박하는 천년구렁이가 입을 쫘악 벌리자 한입에 한영을 집어삼키고도 남을 정도였다.
거대 당갈호랑이의 송곳니를 든 한영은 뾰족한 부분이 위를 향하도록 고쳐들었다.
‘푹!’
적의 힘을 역으로 이용한 덕분이었다. 얼마나 세게 입을 다물었던지 날카로운 거대 당갈호랑이의 송곳니는 천년구렁이의 입을 뚫고 솟아올랐다.
“기야아아아아아!”
천년구렁이가 다시금 입을 쩍 벌리며 거칠게 비명을 내지르자 한영은 거대 당갈호랑이의 송곳니를 당겨 뽑으며 오초사굴 안쪽으로 냅다 달렸다.
폭포로 연결된 입구가 천년구렁이의 거대한 몸체로 가로막힌 상황! 빠져나갈 수 없다면 이겨야 했다.
그러나 현재의 장소는 아니었다.
수십 개의 구멍이 난 통로들, 언제 어디에서 천년구렁이가 나타날지 모르는 상황! 그러기에는 오히려 뻥 뚫린 넓은 장소가 나았다.
“금시조!”
“꺅!(알고 있다!)”
쏜살 같이 날아간 금시조는 천년구렁이의 오른쪽 눈을 관통하여 아가미로 나왔다.
“끼야아아아아아아!”
연이은 치명적인 공격으로 추격을 멈춘 채 포효하는 천년구렁이, 그 사이 한영은 금시조와 함께 빠르게 오초사굴 안쪽으로 달렸다.
복잡한 미로였다. 어두워서 잘 보이지도 않을뿐더러, 길을 찾는 것 자체가 힘들었다.
그러나 한영에게는 복잡하지 않았다. 이 미로를 설계한 장본인이었기에! 다만, 어두움은 한영의 움직임을 제한시켰다.
“금시조! 불!”
“꺅!(알고 있느니라!)”
공력을 개방시킨 금시조는 이전에 동굴을 밝혔던 것처럼 화염체를 소환하여 여러 방향으로 쏘았다.
‘스-, 스-’
잠깐 주춤한 사이, 천년구렁이가 맹렬하게 한영을 뒤쫓았다.
복잡한 동굴을 움직이는 천년구렁이의 움직임은 현재 한영보다 빠르지 않아야 정상이었다.
그러나 분기 상태로 민첩성이 2배 상승하였기에 천년구렁이는 한영보다 빨랐다. 등을 보이며 달리는 한영을 향해 아가미를 쩍 벌렸다.
“꺅!(건방진 미꾸라지놈아!) 꺄갹!(이 몸을 무시하는 것이더냐!)”
천년구렁이가 한영만을 집요하게 노리자 약간 무시당하는 기분이 든 금시조, 공력을 최대한으로 집중시켜 지름 1미터 상당의 화염구체를 천년구렁이의 입 안으로 쏘아버렸다.
“끼야아오!”
거대 당갈호랑이의 발톱이 입을 꿰뚫었을 때보다도, 금시조가 오른쪽 눈을 뚫어버렸을 때보다도 더 큰 치명타였다. 거기에 화염으로 인한 지속 피해와 장기 손상에 의한 출혈 효과까지!
예상치 못한 공격에 천년구렁이가 거세게 바동거리자 오초사굴 전체가 흔들렸다.
머리 위에서 돌들이 툭툭 떨어지자 한영은 조금 더 속도를 높였다. 오초사굴이 무너지면 깔려 죽는 건 자명한 일!
오초사굴에서 가장 ‘위험’한 장소가 현재로서는 역설적이게도 가장 ‘안전’한 장소였다. 한영은 천년구렁이가 동면을 취했던 거대 회랑으로 빠르게 달렸다.
“질주!”
*
한영의 앞에 나타난 것 세 갈림길이었다.
고민할 것도 없이 왼쪽으로 달렸다.
다음번에도 또 그 다음번에도 세 갈림길과 네 갈림길이 연이어서 나타났지만 한영은 보스방으로 향하는 길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마지막 양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들어서자 지금까지 나타났던 것과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큰 입구 하나가 나타났다.
입구 바로 옆에는 뱀 모양의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보스방임을 나타내는 표식이었다.
한영이 안쪽으로 들어가자 입구가 무너져 내렸다. ‘비적단의 소굴’에서 ‘단적비연수의 거처’에 들어왔을 때처럼 시스템이 출입구를 봉쇄한 것!
즉, 보스를 잡거나 보스에게 잡힐 경우에만 열린다는 의미였다. 그러나 한영에게는 출입구가 의미 없었다. 어차피 다른 곳으로 나갈 것이기에!
보스방. 천년구렁이가 동면을 취하는 ‘거대 회랑’은 반원인 돔 모양(⌓)이었고, 크기는 야구경기장 만큼이나 컸다.
눈여겨 볼 구조는 사방에 있는 십여 개의 구멍이었다. 천년구렁이가 몸을 숨겼다가 기습을 가하는 통로!
천년구렁이가 모습을 나타내기를 기다리면서 한영은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검권천하 세계관에서 한영은 창조주와 같은 존재였다. 모든 것을 만들었고, 모든 것을 파괴할 수 있는 전지전능한 절대 신!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현실에서 ‘리얼리티 인사이드’라는 회사의 대표였을 때의 권능이었다. 검권천하에 들어온 한영은 그저 한낱 살아있는 캐릭터에 불과했다.
모든 것을 다 안다고? 반만 맞은 얘기였다.
‘그것’은 검권천하를 점점 바꿔갔다.
그래서 검권천하를 만든 한영조차 처음 보는 것들이 쉴 새 없이 펼쳐졌다.
그랬기에 오초사굴에서 한영은 여러 번의 잘못된 판단을 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자신이 알고 있는 것들이 모두 옳다는 생각을 버리기로 했다. 항상 모든 가능성을 열어둔다!
스스로에게 다짐을 한 한영은 가만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 소리에 집중했다.
사방에 뚫려 있는 십여 개의 구멍에서만 천년구렁이가 나타날 거라는 생각부터 버렸다. 바닥이 막혀있지만, 지면을 뚫고 나타날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는다!
그러나 천년구렁이가 모습을 드러낸 곳은 한영의 전방에 있는 구멍이었다.
‘스-, 스-’
천년구렁이는 반으로 갈라진 뱀 혓바닥을 날름거리며, 하나 남은 왼쪽의 일(丨)자 눈동자로 한영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자신이 낳은 알들을 모두 부셔버린 침입자를 향한 살기가 눈에 서려 있었다.
한영 역시 천년구렁이를 노려봤다.
단적비연수가 언급했던 ‘그 분’을 사로잡으려면 강해져야 한다. 강해지기 위해서는 금시조를 최대한 빨리 진화시켜야 한다. 그러려면 천년구렁이는 필히 잡아야 하는 몬스터였다.
권갑과 발차기로는 뱀의 매끄러운 피부에 큰 타격을 줄 수 없다! 한영은 소지품 창에 넣어놨던 거대 당갈호랑이의 송곳니를 꺼내들었다.
당갈호랑이의 송곳니는 단단하고 뾰족하긴 했지만, 칼처럼 베는 공격은 할 수 없다고 봐야 했다. 찌르는 공격만 가능할 뿐!
그러나 상관없었다. 이번 전투의 주력은 자신이 아니었다. 물론, 금시조도 아니었다. 한영은 특별한 초대 손님을 부를 예정이었다.
당연히 초대 손님을 부르려면 잔칫상을 준비해야 하는 법!
잔칫상은 다름 아닌 체력 50% 이하인 천년구렁이였다. 자, 그럼 천년 묵은 구렁이 요리를 시작해볼까!
한영은 왼손으로 거대 당갈호랑이의 송곳니 하나를 천년구렁이의 턱을 향해 겨냥했다. 각도가 나오자 오른손 주먹으로 송곳니의 끝부분을 쳤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밀었다!
‘피융!’
바람을 뚫고 날아간 송곳니는 그대로 천년구렁이의 턱에 박혔다. 이것으로 손님 부를 준비의 반은 마쳤다.
남은 건 천년구렁이의 체력을 반 이하로 떨어뜨리는 것!
자신이 잔칫상의 메인요리가 된 줄은 꿈에도 모를 천년구렁이는 한영을 공격하기 위해 아가미를 쩍 벌린 채 튀어나왔다.
“금시조!”
“꺅!(알고 있느니라!)”
천년구렁이가 한영을 향해 움직이자 공중에서 기다리던 금시조는 천년구렁이의 등을 발톱과 부리로 마구 할퀴었다.
개미가 사람을 물면 약간 따끔한 정도다. 뭔가에 집중하고 있다면 개미가 물었다는 사실조차 모를 수도 있다. 몸길이가 20미터를 육박하는 천년구렁이에게 30센티미터 가량인 금시조의 공격은 개미의 공격만큼이나 타격을 주지 못했다.
그러나 간지러운 데미지를 주려고 금시조가 한 곳만을 집요하게 파는 게 아니었다. 단단한 철옹성도 한 곳에 균열이 생기면 무너지고 만다! 지금의 금시조의 공격처럼!
천년구렁이의 등가죽 일부를 벗겨낸 금시조는 공력을 개방해서 상처부위에 화염구를 쏘았다.
‘화르르르-’
“쿠아아아아아!”
매끈한 가죽을 벗겨냈기에 화염 공격은 천년구렁이의 피부를 더욱 잘 태웠다. 천년구렁이가 미친 듯이 포효 같은 비명을 내지르자 금시조는 몇 번이고 화염구를 더 쏘았다.
밖에서 난 불보다 안에서 시작된 불이 더 무서운 법!
금시조가 일으킨 화마는 천년구렁이의 몸으로 점점 번졌고, 더 활활 타오르라고 금시조는 친절히 날개로 바람까지 일으켰다.
천년구렁이 ( 347802/ 450987)
몸집이 큰 만큼 체력도 상당했다. 그러나 금시조의 불 공격은 45만에 달하는 엄청난 체력을 빠르게 깎고 있었다.
천년구렁이의 입안으로 화염구체를 던졌던 공격도, 현재 등가죽을 벗겨내서 먹인 불공격도 모두 치명적인 데미지였다.
여기서 가만히 있을 한영이 아니었다.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사람처럼 체력이 더 빨리 닿을 수 있도록 천년구렁이의 몸통에 주먹 한 방을 먹였다.
“파열권!”
이로써 화염공격에 의한 지속 데미지 효과 5배 상승!
지금까지는 모든 게 순조로웠다.
금시조가 공력개방 유지시간이 종료될 때까지 맹공을 펼친 덕분에 45만이었던 천년 구렁이의 체력을 40% 가까이 줄일 수 있었다.
천년구렁이 ( 270232/ 450987)
문제는 지금부터였다. 금시조의 공력 개방도 풀린 상황! 평타(평범한 공격)로 천년구렁이의 체력을 10% 이상 떨어뜨려야 했다. 그래야 손님을 부를 수 있었기에!
활활 타오르던 몸을 땅바닥에 비벼가며 화제를 진입한 천년구렁이는 찢어 죽여도 시원치 않을 눈으로 한영을 바라봤다. 뱀의 일(丨)자 눈에 독기마저 서리자 섬뜩함은 더욱 고조됐다.
한영은 머릿속으로 빠르게 계산기를 돌렸다.
천년구렁이의 체력 10%는 대략 45000. 자신이 입히는 주먹 한 방은 대략 110의 피해. 공력 개방으로 1.5배, 파열권으로 5배 추가!
가장 중요한 게 남아있었다. 단순히 육탄전으로 당골고지의 보스 몬스터인 천년구렁이를 상대하러 온 것이 아니었다.
한영은 가장 증오하는 이들을 떠올렸다. 윤진용이 아니었다. 자신을 끝도 없는 낭떠러지로 추락시킨 장본인들!
상대방과 공모해서 재판을 패소하게 만든 변호사! 뒷돈을 받고 판결을 한 판사! 그리고 이 모든 일의 원흉인 유엔더블유!
그들의 모습이 머릿속으로 그려지자 한영의 숨소리가 점차 거칠어졌다. 심장이 얼마나 떨리던지 호흡을 하는 것조차 힘들었다.
‘빠드드드득.’
이가 갈렸고, 주먹이 꽉 쥐어졌다.
그리고 이어지는 시스템 메시지.
-살기를 방출하고 있습니다. 적대치가 지속적으로 상승합니다.
한영은 단적비연수의 두건을 풀어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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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PLAYER38769155
레벨: 19
생명: 569/569(+90)
공력: 116(+15)
소속: 없음
칭호: 의로운 섬의 지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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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력 37 (+5) 체력 30 (+5)
민첩 40 (+5) 재능 36 (+7)
운 44 (+5)
분배 가능한 능력치 -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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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시조 레벨 19
활성화 능력:
운기조식 숙련치 보조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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