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호풍운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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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송담(松潭)
작품등록일 :
2007.06.26 18:12
최근연재일 :
2007.06.26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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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5.23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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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풍운록(귀주 貴州 5)

DUMMY

팽호의 기세가 달라졌다. 숨어있는 듯 몸의 기운을 감추고, 세상일에 초연한 것처럼 행동했던 그런 기운이 아니었다. 피하고 꺼리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는 결국, 팽가의 후예였던 것이다.

그의 손에 의해 책자가 한 장씩 넘겨졌다.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었다.

실신해버린 총관은 그의 안중에도 없었다. 이미 이전의 팽호가 아닌 것이다. 총관 따위에게 신경을 쓸 만큼 여유롭지도 않았다. 곽우가 남겨준 시간은 얼마 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의 명이 떨어졌다. 이제까지의 없는 듯 해 보이던 목소리가 아니었다.

“밖에 누가 있느냐!”

밖에서 호위를 서고 있던 무사가 황급히 들어서고 있었다.

“불러 계십니까.”

당황스러운 듯 무사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이런 적이 없었던 것이다. 그가 집무실 호위를 맡은 이래 처음이었다.

“모두 연무장으로 모이라고 전하라! 빠지는 놈이 있다면 그 놈은 물론 네 놈의 목도 그냥 두지 않을 것이다!”

그의 커다란 몸집에서 나오는 말이었다. 주눅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한시진 안에 모두 모일 수 있도록 하라! 행정을 보는 놈들까지 모두!”

제왕의 명이었다. 이제껏 수수방관하고 드러내지 않았던 제왕의 소리인 것이다. 무사가 허둥거리며 물러가고 있었다.


귀주지부의 연무장이다. 일천이백의 인원이 넓은 연무장에 모여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표정에 긴장감은 보이지 않고 있었다. 따분함과 지루함만이 얼룩져 있을 뿐이었다.

“카아악, 퉤! 웬 일이래?”

삼십대의 사내가 짜증이 이는 듯 가래를 끌어 모으더니 신경질적으로 뱉어내며 중얼거렸다. 딱히 누군가를 지칭하고 묻는 것은 아니었다. 이해 할 수없는 상황에 답답해지자 조급함을 참지 못한 것이다.

“부주가 노망이라도 들었나? 어째 안하던 짓거리를 다하네.”

사내의 옆에 있던 사십대가 마찬가지 심정이라는 듯 말을 꺼냈다.

“형님, 그냥 갑시다. 별일이야 있겠소? 공연히 심심하니까 그랬을 거요.”

삼십대가 좀이 쑤셔서 못 참겠다는 표정을 보이며 충동질을 하고 있었다. 혼자 빠지기에는 뭔가 개운치 않은 것이다. 이럴 땐 동조자가 필요한 법이었다. 나중에 문제라도 생기게 된다 하더라도, 누군가 같은 행위를 함으로 인해 혼자라는 마음의 부담이 덜어지게 되는 까닭이었다.

“부주가 나올 모양이야. 좀 더 지켜보다가 별일 아니다 싶으면 그 때 조용히 빠져 나가자. 아마도 대부분이 그리 생각하고 있을 거야.”

사십대가 동조를 해주지 않고 좀 더 지켜보자는 말을 하자 사내가 몹시 기분이 상한 듯 보였다.

“우우욱, 크윽 퉤!”

“그만 좀 뱉어! 가뜩이나 기분 더러운데... 에이.”

서로의 기분들이 개운치 않은 탓에 이런 실랑이들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똑바로 서있는 자도 없었다. 그저 연무장에 모여 있는 것이었다. 더러는 풀밭에 누워 있는 자도 보이고 있었다.

지부주의 명으로 모였음에도, 그들의 자세에서는 마지못해 나왔다는 것이 노골적으로 표출되고 있는 것이다. 그들에게 있어 지부주는 안중에도 없는 것이었다. 팽호는 종이호랑이였던 것이다.


팽호가 단상위로 올라섰다. 그의 시선이 연무장에 모인 오합지졸들을 훑어보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그들의 눈길이 팽호에게 향했다. 그리고 황급히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팽호가 실로 무서운 기세를 뿜어내며 그들을 보고 있었던 것이다. 감히 눈길조차도 마주칠 수 없는 그런 위엄이었다.

지금의 팽호는 이제까지 그들이 알고 있던 팽호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가 의외의 말을 뱉어내고 있었다.

“지금부터 호명하는 자들은 앞으로 나오라. 그리고 대열의 가장 우측에 도열 하도록. 어기적거리는 놈들은 쓴 맛을 보게 될 것이다.”

무려 이백이십팔 명의 이름이 불려지고 그들이 따로 대열을 만들고 있었다. 본대에서 떨어져 나온 그들은 불안한 심리를 감추지 못했다. 이렇게 대대적인 집합 명령이 내려진 적도 없었을 뿐더러, 따로 차출을 했던 적은 더더욱 없었던 까닭이었다. 이윽고 그들의 불안함이 적중했다. 새로운 명이 떨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을 향한 명령이었다.

“너희들은 지금부터 특별훈련을 실시한다.”

웅성거리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오고 있었다. 그러나 팽호는 그것들을 철저히 무시한 채 말을 잇고 있었다.

“나태의 극을 달리는 너희들의 정신을 개조할 것이다. 최대한 빠른 속도로 무왕봉(武王峰) 정상을 돌아온다. 정상에는 한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에게서 정상을 밟았다는 인증을 받아와야만 한다. 인증을 받지 못한 자는 지옥을 경험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또한 인증을 받지 못하면 받을 때까지 대기하도록 하라. 출발”

이어서 남아있는 자들에게도 명을 내렸다.

“너희들은 이곳 연무장에서 가볍게 몸을 풀도록 한다. 저들이 돌아올 때까지 이곳을 벗어날 수 없다. 명을 어기는 자는 참수(斬首)할 것이다.”

팽호의 위엄이 살아나고 있었다. 모두들 놀란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명을 거역할 생각도 못했다. 팽호의 기세가 워낙 대단했던 까닭이었다. 잠시 지켜보다가 빠져나갈 궁리를 했던 사내들은 그대로 얼어붙을 수밖에 없었다. 거역하고 나갔다가는 정말로 목이 떨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든 까닭이었다.

연무장은, 출발 하는 자와 대기하는 자로 나뉘고 있었다. 꿈에도 생각 못했던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팽호는 더 이상 종이호랑이가 아니었다.


곽우의 부대가 거침없이 들어서고 있었다. 선별된 자들이 무왕봉으로 떠나고 반 시진 정도가 흐른 뒤였다.

팽호는 단상위에 의연한 모습으로 서있었다. 그리고 곽우가 대원들을 이끌고 단상으로 향했다.

“충! 운남지부 백인대주 곽우가 지부주님을 뵙습니다!”

“충! 지부주님을 뵙습니다!”

그들의 군례소리가 연무장을 쩌렁 울리고 있었다.

“능력을 보겠다.”

팽호는 가볍게 말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말이 내포하고 있는 의미는 결코 간단한 것이 아니었다. 곽우가 단상으로 올라서고 있었다.


“네놈들은 쓰레기 들이다. 아니, 쓰레기에 붙어사는 벌레들이다. 무공을 익혔다는 것은 협의를 받들겠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네놈들은, 얼마 되지도 않는 힘을 가지고 힘없고 약한 자들을 향해 칼을 들었다. 그래서 벌레만도 못한 놈들인 것이다.”

곽우의 분노한 일갈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연무장에 있던 자들은 무슨 말인가 하며 의아해 하고 있었다. 이미 팽호로 인해 잔뜩 주눅이 들어있던 그들이었다. 처음 보는 웬 장년의 사내가 단상에 오르더니 느닷없이 쓰레기가 어쩌니 하면서 떠들어대자 의미가 와 닿지 않는 까닭이었다.

“권력에 빌붙어 자신의 쾌락을 위해 인간의 존엄을 훼손하고 폭력을 행사했으니, 이제 그에 합당한 징벌을 받아야 할 것이다. 나 운남지부 백인대주인 곽우는 오늘 인간의 존엄을 회복하고 의와 협을 실천하여, 이 땅이 아직도 살아갈 만한 가치가 있는 곳임을 세상에 알릴 것이다.”

그들은 당황하고 있었다. 또한 분노하기도 했다. 자신들이 누군데 감히 저런 말을 하나 의문도 들었고, 잠시 후에는 어이가 없어 헛웃음을 짓기도 했다. 그러다가 팽호를 쳐다보기도 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더 이상 생각할 기회가 없었다.

곽우의 냉엄한 목소리가 연무장을 울리고 있었던 것이다.

“부대주 이하 전 대원은 명을 받들라!”

“충!”

수하들의 군례소리가 지축을 흔들었다. 담벼락에 붙어 있던 넝쿨들이 출렁 거리며 아우성을 치고 있었다.

“지금부터 버러지들을 척살한다! 자비를 베풀 이유가 없으니 손속에 사정을 두지 않도록 하라! 벌레들 박멸을 시작하라!”

“충!”

의연했다. 그리고 당당했다. 고작 일백의 인원으로 일천을 상대하려 하면서도 조금도 위축됨을 보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팽호에게 곽우의 모습은 그렇게 비치고 있었다. 그리고 백 대 천의 전투가 시작되고 있었다. 압도적인 숫자의 차이였다. 그러나 실력과 정신력 그리고 몸의 단련 상태가 확연히 달랐다.


곽우의 신형이 단상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멸사대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곽우는 어느새 적들의 중심에 있었다. 그리고 대원들은 넓게 흩어지면서 적들을 포위해 버렸다. 일백의 인원을 가지고 무려 열배나 되는 적을 포위한 것이다.

아직도 귀주지부원들은 헛웃음을 웃고 있었다. 또한 웬 짓거리냐는 식으로 멸사대를 무시한 채 풀어져 있었다.

“끄아악!”

최초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 곽우가 있는 곳이었다. 뒤를 이어 사방에서 비명이 터지고 있었다.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곳이라던 이곳 무맹의 지부에서, 무맹원들의 비명이 울리고 있는 것이다.

곽우의 몸이 가라앉았다.

“빠바바바박! 쿠다당! 쿠쿵!”

왼발을 중심으로 몸을 회전시키자, 그의 발에 걸리는 적들의 발목이 부러져 나가고 있었다. 그대로 뛰어오르며 몸을 말았다. 그리고 손과 발이 허리를 폄에 따라 쭉 뻗어나갔다.

적들은 혼비백산 어쩔 줄 모르고 있었다. 곽우의 공격이 워낙 빨랐던 것이다. 그의 주위에만 수십의 적이 우글거렸다. 중심인 까닭이었다.

어느새 그의 손에 대검 두 자루가 들려 있었다. 광채도 없는 거무튀튀한 검이었다. 흑검인 것이다. 검은 빨랐다. 상대에게 공격할 여유를 주지 않고 있었다. 가을바람에 속절없이 떨어지는 낙엽처럼, 적들은 연무장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곽우의 눈빛이 그것을 따라 물들기 시작했다.

안소전은 신이 났다. 적들은 상대가 되지 않았다. 그의 발이 나가면 상대의 사타구니가 터져 버렸다. 주먹을 뻗으면 적의 코뼈가 얼굴을 파고 들며 이빨을 부러뜨렸다.

자신의 공격에 적들은 당황스러워 했다. 치사하다고 욕을 해대는 놈도 있었다. 그런 놈에게는 손과 발을 동시에 뻗었다. 몸까지 띄우며 뻗은 것이었다. 상대가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뒹굴고 있었다.

“쩌적! 쿠당탕!”

이마에 받힌 적의 안면이 함몰되면서 쓰러지는 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허나 이미 안소전의 몸은 또 다른 상대의 무릎을 향해 발을 날리고 있는 상태였다. 적이 두려움을 느꼈는지 몸을 돌리며 달아나려 했다. 무릎 대신에 적의 오금이 소전의 발에 밟혔다.

“퍽, 파삭!”

그리고 이어진 팔꿈치공격에 의해 등판이 부서져 나갔다. 적은 숨이 멎은 채 쓰러지고 있었다.

옛날 생각이 났다. 처음, 문주에게 당할 때가 생각났던 것이다. 그러나 이번엔 자신이 베푸는 쪽이었다. 그리고 베풀 땐 확실하게 베풀어야 한다고 배웠다. 물론 문주를 통한 배움인 것이다.

그의 몸이 더욱 빨라지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강한 기세가 주위를 에워싸기 시작했다. 소전의 주위에서 적들이 사라지고 있었다. 다가오는 자가 누군지 알고 하는 행동이었다. 자신들이 감당하기 힘든 소전을, 강한 기세를 뿜어대는 자에게 넘기고 다른 곳으로 옮겨가는 것이다.

상대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와 더불어 안소전의 몸에 흥분으로 인한 전율이 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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