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호풍운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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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송담(松潭)
작품등록일 :
2007.06.26 18:12
최근연재일 :
2007.06.26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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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5.20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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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풍운록(언가전 彦家戰 1)

DUMMY

동료들의 사체를 그냥 방치해 둘 수는 없었다. 하지만 여건이 되질 않았다. 화장을 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었겠지만, 비로 인해서 어찌해볼 수가 없었던 것이다. 매장역시도 마찬가지였다. 일일이 매장하기도 그랬고 한꺼번에 매장하기도 그랬다.

이미 오던 길에 발견된 사체들은 이곳까지 운반돼 온 상태였다. 물이 줄줄 흐르는 사체를 운반하면서 그들은 흉수에 대한 적개심을 더욱 불태울 수 있었던 것이다.

“가주님, 가묘라도 세우는 것이 좋겠습니다.”

외당주 언사성 이었다. 언치성과는 팔촌쯤 되었는데 나이로는 자식뻘인 가주에게 공대를 하고 있었다.

“그렇게 하십시다. 그것이 도리입니다, 가주”

이번엔 좌호법 언자춘 이었다. 칠촌 간으로 항렬로는 백부였다.

“아닙니다. 그래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이들의 죽음을 가슴에 품고 흉수를 이 자리로 끌고 와서 난도질을 한 후에야, 이들도 눈을 감을 수 있을 것입니다. 장례는 그 후에 치르겠습니다. 그때까지는 우리도 이들과 다름없이 죽은 목숨이라 생각 합시다”

감은 눈을 부르르 떨어가며, 말을 하고 있는 언치성 이었다.

“투투투투투.... 후두두둑, 촤아아”

거침없이 쏟아지는 빗줄기가, 언치성의 분노를 대변하기라도 하는 듯 숲을 세차게 후려치고 있었다. 숲이 질러대는 아우성이 마치 죽은 자들의 고통스런 비명을 대변하고 있는 것 같았다. 언치성을 비롯한 모두가 장례를 미루어야만 하는 아픔만큼 흉수에 대한 원한을 키우고 있었다.

모두 일백이십이 죽어있었다. 일단 그들을 한쪽에 가지런히 늘어놓았다. 마땅한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또한 흉수부터 해결하고 난 뒤에 화장을 하는 것이 좀 더 현명한 처사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렇게 그들이 부대를 정비 했을 땐 언치성이 맹을 떠나온 지 사 개월이 지나있었다.

여전히 쏟아지는 빗속을 뚫고 그들은 전진하고 있었다. 동료들의 복수를 하기 위해서 눈을 부릅뜨고 걷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간과한 것은 아직도 비가 내리고 있었으며, 자신들이 지쳐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연휘는 육백 명의 단원들을 모두 세 패로 나누었다. 이백 명씩 대원들을 나누어 좌우와 전면을 철저히 압박하기로 한 것이다.

광도와 검마에게 부대 하나씩을 맡겼다. 그리고 연휘 자신이 이백의 인원을 이끌고 갈 것이었다. 전투를 앞둔 시점에서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모두들 참으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긴장이었던 것이다. 반면에 절대세력의 하나인 언가와의 승부라는 것에, 그들은 또 다른 의미를 부여하고 있었다.

이제까지와 달리 당당하게 상대한다는 것이었다.

“복수라 할 수도 있을 것이고 응징이라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이 죽으면 다 소용없다는 것이다. 앞으로도 복수할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 그러니 안전에 최선을 다하라.”

“충!”

연휘의 말에 단원들의 눈빛이 타올랐다. 그러나 연휘의 눈빛은 그런 대원들과는 달리 깊숙하게 가라앉고 있었다.

장여진이 출정하는 연휘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조용히 말을 건넸다.

“다치지 말고 조심해서 다녀오세요, 오라버니. 기다리고 있을게요.”

그녀의 눈에 근심이 비쳐 나오고 있었다.


척사단이 은밀하게 숲으로 진입하고 있었다. 예정대로라면 내일 언가와 조우하게 될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 중 이곳을 벗어날 수 있는 자는 하나도 없을 터였다. 그것은 언가라는 이름의 마지막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운남의 오지에서, 파벌의 한 축을 이루고 있는 언가와 연휘의 척사단이 서로를 눈앞에 두고 있었다.

빗줄기 속에서 연휘의 응징이 시작되려는 것이다.


모용숭이 찾아든 곳은 장로원이었다. 오늘은 회의가 열리지 않기 때문에 경비조도 없었다. 유유히 회의실로 들어가는 모용숭이다.

장로원 회의실은 꽤 넓었다. 모두 열아홉이 회의를 진행하는 곳이다 보니 넓어야 했겠지만 이건 넓어도 너무 넓었다. 두 달에 한 번 열리는 회의를 위해 회의실을 이렇게 크게 만들지는 않을 것이었다.

장로들의 과시욕 때문인 것이다. 자신들의 위치가 이렇다는 것을 좀 더 내보이고 싶어 하는 그들의 욕망이, 회의실을 이렇게 만든 것이다.

타원형의 긴 탁자가 있었다. 그 위에 장로원에 소속된 각 장로들의 명패가 놓여있었다. 모용숭은 명패를 보며 잠시 감회에 젖었다. 한 때는 그의 명패도 이곳에 놓여있었던 것이다.

그가 회상에서 벗어나며 머뭇거림 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황보염의 자리였다. 눈빛이 달라졌다. 원독의 눈빛이 섬뜩하게 피어나왔다.

품에서 작은 주머니를 꺼냈다. 그리고 속에 있던 것을 의자에 뿌렸다. 명패에도 뿌렸다. 또 다른 주머니를 꺼내더니 명패를 만지작거리며 한동안 있었다. 그러고는 자리를 옮겼다. 이번에는 제갈장로의 자리였다. 그렇게 모용숭은, 몇몇의 자리에 같은 수작을 부렸다.

밖으로 나왔을 때는 아직도 환한 대낮이었다. 그가 다시 무맹의 정문을 나설 때까지 그를 눈 여겨 보는 사람은 없었다. 경비무사의 제지도 받지 않았던 것이다. 무맹은 누구라도 출입할 수 있었던 것이다.


붉게 타오르는 태양이 마지막 몸부림을 하는 시점이었다. 무맹의 경비조 들이 경비를 강화하고 있었다. 내일은 장로회의가 열리는 것이다.

장로들은 사소한 것 하나를 가지고도 트집을 잡았다. 특히 회의가 있는 날이면 그것이 더욱 심한 것이다. 그들은 위세를 뽐내고 싶어 했다.

장로선출 때에는 그렇게도 허리를 굽히던 그들이었다. 그때는 한사람이라도 아쉬운 것이다. 그러다가 막상 장로가 되고나면, 완전히 탈을 바꿔 쓰곤 했다. 언제 허리를 굽혔냐는 듯 목이 뻣뻣해지는 것이다. 그러면서 한껏 자신들의 지위를 누렸다. 아쉬울 것이 없어진 까닭이다.

복장이 조금만 흐트러져도 호통이 터졌다. 인사할 때 허리가 조금 높다 싶으면 대뜸 주먹부터 날리기 일쑤였던 것이다.

그래서 장로원 경비조 근무는 모두가 기피하고 있었다. 그래도 내일 회의가 시작되기 전에 경비조가 배치되어야만 했다.

이번에는 경비대 3조가 장로원 경비조로 배치되었다. 3조원들은 얼굴을 잔뜩 부풀린 채 자신들의 위치를 찾아 들고 있었다. 아직은 장로들이 없는 것이다. 내일 아침까지 그들의 얼굴엔 불만이 가득할 것이었다. 그것은 아침까지만 허용된 감정표현의 자유였다.


숲에 작은 파문이 일었다. 빗소리에 묻혀 바로 사라졌지만 움직임이 있었던 것이다. 또 다시 움직임이 있었다. 작은 무리가 아닌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알아차릴 만큼 그들은 정상적이지 않았다. 신경을 곤두세운 채 주위를 경계하고는 있었지만, 자신들의 발소리와 쏟아져 내리는 빗소리 외에 다른 것은 들을 수 없었다. 그 소리들로 계속 단련이 되었던 그들의 듣는 기능은, 이미 다른 소리들을 배척하고 있는 것이다.

무인들의 오감이 뛰어나기는 했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 정상적인 상태에서의 일인 것이다. 지금의 그들로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움직임이었다. 그것이 언가에게는 불행이었다.


“쉭! 쉭! 쉭! 쉭! 쉭!...”

“끄윽, 큭, 커억...”

가장 뒤에 처져 있던 대원들이 영문도 모른 채 쓰러지고 있었다. 소리를 지를 여력도 없었다. 화살이 정확히 그들의 연수를 부수고 틀어박혔기 때문이었다.

사천 명의 인원이 넓게 퍼져서 움직인다고는 하지만 횡보다는 종으로 길게 늘어설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뒤에 처졌던 부대 하나가 순식간에 사라지고 있었다. 그 순간에 대열의 가장 좌측에 위치했던 부대와 가장 우측에서 나아가던 부대가 마찬가지로 사라졌다.

앞에 가던 대원들은 뒤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 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그렇게 세 번의 공격이 있었다.

“모두 이동하라.”

“충!”

연휘의 명은 낮게 울렸다. 허나 대원들은 모두 알아듣고 복명을 하는 것이다. 빗속이라지만, 그만한 능력들은 충분히 가진 그들이었다.

연휘 일행은 다시 잠적했다. 언치성이 변고를 알고 부대를 멈췄을 때에는, 이미 그들에게서 반나절 거리로 물러나 있었던 것이다.

연휘는 사실 전면전을 기획하고 있었다. 사천대 육백이라는 수치는 그에게 큰 의미가 없는 것이었다. 수하들로 하여금 실전을 제대로 치르게 하고픈 것이 그의 심정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출정 전에 했던 여진의 말이 그의 결정을 돌렸다. 다치지 말고 무사히 돌아오라는 것이었다.

그랬다. 자신들은 지금의 인원이 전부였다. 이깟 언가쯤이야 문제가 아니었지만, 여기서 다만 몇이라도 자신의 대원이 죽거나 중상을 입는다면 다음번 전투가 문제 될 것이었다.

어쩌면 천하를 상대로 해야 할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지금 그에게 있어서 가장 큰 문제는 결국 전투력의 온전한 보전인 것이다.

선택은 정해질 수밖에 없었다. 일단 일차공격은 성공이었다. 하지만 두 번째는 달라질 것이었다. 저들이 바보가 아닌 이상 같은 공격을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하지만 두 번째 공격도 이미 진행되고 있었다. 그리고 세 번째도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다.


언치성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두 눈을 시퍼렇게 치켜뜨고 있었음에도 순식간에 일천 명의 수하가 죽어갔던 것이다.

먼저 죽었던 자들의 부패된 사체위에 일천의 죽음이 더해지고 있었다.

하늘마저도 자신의 편이 아니었다. 빗소리만 아니었더라도 이렇게 당하지는 않았을 것이란 생각에 애꿎은 하늘만 원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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