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호풍운록(인재 人材 4)
연휘의 둥지다. 이곳 역시도 분주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무맹과 다른 점이 있다면 활력이 있다는 것이다. 분주히 오가는 사람들에게서 암울함과 무력감, 당황스러움 따위는 없었다. 얼굴에 웃음을 띠고 자신이 할 일을 찾아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회의실이다. 연휘가 상석에 앉아 있었다. 그런데 이전과는 분위기 자체가 달라 보였다. 일단 새로운 인물들이 눈에 띄고 있는 것이다. 귀주의 팽호가 자리를 하고 있었다. 또한 전혀 의외의 인물도 보였다. 운남에서 칩거하리라던 양위가 자리한 것이다. 방송과 무진도 있었으며 대주급 들도 모두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었다.
특이한 인물도 보였다. 방송의 옆에 감색의 무복을 입은 젊은 처자가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장내를 둘러보던 연휘의 눈길이 그녀에게서 멈췄다. 수줍게 웃음 짓는 그녀를 보자니, 곽우로부터 들었던 귀주 얘기가 떠오르고 있었다.
무진의 일을 마무리 하게 된 곽우는 팽호와 마주하고 있었다. 팽호가 한참 고심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저간의 상황을 듣게 된 것이다.
팽호가 고개를 들었다.
“귀주를 비워야 하겠네.”
곽우는 자신의 귀를 의심하고 있었다. 전혀 의외의 말이었던 것이다.
예상하기로는, 이 곳 귀주에서 새롭게 기반을 다지고 자신들과 호응할 것으로 보았던 까닭이었다.
“비우신다면 이곳은 어찌 하시렵니까? 무주공산이 되어 다시 무맹에서 사람을 보낼 터인데...”
곽우의 말에 팽호가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 명쾌하게 답을 했다.
“그들이 이곳에 다시 온다 해도 어차피 버러지만도 못한 것들일세. 본 맹의 여러 부대에서 차출하겠지. 그래봐야 쓸모 있는 것들은 하나도 없을 것이고... 차라리 이곳을 비우고 비문으로 합류하는 편이 좋을 것이라 보이네. 한 번쯤은 문주님을 뵈어야 하지 않겠나?”
팽호의 결단에 곽우는 말을 잃고 있었다.
“무왕봉에 갔던 대원들과 같이 동행하기로 하지. 왜? 문제라도 있나?”
“아닙니다. 전혀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손사래를 치며 부정해대는 곽우를 보고 팽호가 웃음을 터트렸다.
“허허, 자네 멸사대주가 맞나? 지금 그 모양으로 봐서는 여염집 처자로 보이네만. 허허허”
팽호의 넉살에 얼굴이 붉어지는 곽우였다.
“그런데 머리 쓰는 사람을 찾는다고 했지 않나?”
“예, 갈수록 군사의 비중이 커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문주님 이하 모두들 그쪽으로는 재주가 없다보니... 혹시 쓸 만한 인재를 알고계시면 추천해 주시지요.”
“흠... 나도 그런 쪽으로는 별반 아는 사람이 없다네. 원래 머리 쓰는 쪽으로는 제갈씨를 알아주지. 하지만 적이 되는 입장이니 난감하군.”
팽호의 말에 잠시 기대를 하고 있던 곽우가 말을 이었다.
“원래 무진을 생각하고 온 것입니다. 그나마 웬만한 무인들보다는 그쪽으로 재주가 있는 친구입니다.”
“허... 그 친구가? 차라리 상단주 방송을 써보는 게 낫겠네. 진무상단이 불과 수년 만에 이리 크게 된 것은 방송의 머리 때문일세. 무진과는 비교 자체가 안 된다는 말이지.”
곽우의 머리에 방송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예사롭지 않은 것 같았다. 다시 생각해 보니 보통 인물이 아니라는 판단이 들었다.
“그리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어차피 무진과 동행하게 된다면 방단주도 별반 거부를 하지 않겠지요. 쇠뿔도 단김에 빼라는 말처럼 당장 만나봐야 하겠습니다.”
갑자기 서두르는 곽우에게 팽호는 웃음으로 격려하고 있었다.
진무상단의 장원에 들어서며 곽우는 의전(醫廛)으로 걸음을 옮기고 있는 중이었다. 의전을 얼마 남기지 않았을 때 누군가 그를 부르고 있었다.
“곽대주님! 곽대주니임!”
멀리서 그를 부르며 상단의 총관이 달려오고 있는 것이다. 숨을 몰아쉬는 것이 꽤나 멀리서부터 뛰어온 듯싶었다.
“무슨 일로 그리 급하게 부르는가?”
황급히 허리를 굽히며 예부터 찾는 총관이었다.
“후우, 단주께서, 후우 찾으십니다.”
“허어, 마침 잘 되었네. 어디로 가면 되는가?”
“처소로 가시면 됩니다. 작은 단주님도 같이 계십니다.”
“알겠네. 바쁠 터인데 고생했네.”
걸음을 돌려 방송에게로 향하는 곽우의 발길이 제법 가벼워 보였다. 번거로움을 덜게 된 것이다.
어느덧 건강을 찾은 무진이었다. 헌앙한 모습의 그가 방송과 함께 곽우를 반가이 맞이하고 있었다.
“곽대협, 그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 다시 한 번 아우를 대신해 감사드립니다.”
방송의 치사에 가볍게 고개를 젓는 곽우였다.
“별 말씀을 다 하십니다. 의당 해야 할 일이었을 뿐입니다. 자네도 건강을 찾았으니 기쁘기 그지없다네.”
“고맙습니다. 모두 조장님 덕분입니다.”
인사가 오간 후 방송이 자신을 찾은 이유에 대해 묻는 곽우였다.
“헌데, 어찌 저를 그리도 급하게 찾으셨습니까? 그리 않아도 단주님을 찾아뵈려던 중이었습니다만.”
“아, 그게... 곽대협께 상의드릴 일이 있어서 좀 급하게 찾았지요.”
“그러셨군요. 무슨 일인지 말씀 하시지요.”
곽우의 대답에 갑자기 진중해진 방송에게서 생각지도 못했던 말이 나오고 있었다. 곽우로서는 오히려 청하려던 것이었다.
“아우와 동행을 했으면 합니다만...”
“동행이라시면, 상단은 어찌 하시고...”
“총관이 제법 유능 합니다. 기반도 완전히 잡혀 있으니 크게 문제될 것은 없지요.”
곽우가 반색을 하며 방송의 손을 잡았다.
“허어, 저도 그 일 때문에 단주님을 뵈려고 했던 것입니다. 오히려 먼저 청을 하려던 참이었지요. 단주님 덕분에 수고를 덜게 되었습니다. 허허”
방송과 무진이 따라 웃고 있었다. 하지만 곽우가 방송에게 동행을 청하려던 까닭이 궁금했다. 눈빛에 궁금함이 가득 들어 있는 것이다.
“저희는 수없이 많은 전투를 준비해야 합니다. 헌데 모두들 할 줄 아는 게 싸움밖에 없는 것이지요. 머리를 쓸 사람이 필요한 것입니다. 무진을 찾은 이유도 재주가 남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던 까닭입니다.”
방송은 곽우의 말이 잠시 끊기자 그에게 물어 왔다.
“제가 그쪽 방면에 재주가 있다고 여기셨나 봅니다?”
“그렇습니다. 상단을 이 정도로 키우신 것을 보면 알 수 있는 일이지요.”
방송이 고개를 젓고 있었다.
“저는 그저 물건을 사고파는데 재주가 좀 있을 뿐이지요. 군사의 역할을 수행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사람입니다. 병법에는 문외한이지요.”
곽우의 얼굴이 확연히 어두워지고 있었다. 그러나 방송의 말은 거기서 끝난 것이 아니었다.
“대신 제가 추천을 하지요. 그래도 괜찮겠습니까?”
“단주께서 추천하신다면 발을 벗고 달려가 모시겠습니다. 어디에 사시는 누구십니까? 당장 가야하겠습니다.”
“허허, 곽대협께서는 참으로 급하십니다. 그리 서두르지 않으셔도 됩니다. 어차피 이번에 동행하려던 참이었습니다.”
“오호 그러셨습니까. 누구신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잠시 흐뭇한 미소를 짓는 방송이었다.
“한동안 같이 일도 하셨으면서 아직 모르고 계셨나 봅니다. 제 여식입니다. 과년한 처자가 매일같이 병법서와 씨름을 하고 있지요.”
곽우가 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녀가 서류를 정리할 때 대단하다는 생각을 갖기는 했었다. 하지만 그것은, 단주의 일을 도우며 배우게 되었을 것이라 판단했을 뿐이었다. 따라서 그녀를 병법과 연계시켜 생각해 본 적은 전혀 없었던 것이다. 헌데 방송으로부터 병법서와 씨름한다는 얘기를 듣게 되었다. 예상치 못한 얘기였다.
소혜라고 했었다. 방소혜가 그녀의 이름이었다. 서류정리와는 전혀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 병법이었다. 허나 지금까지 보여줬던 능력만으로 봤을 때 절대로 허술한 여인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고 있었다. 내심 은근히 기대가 되는 것이다.
곽우가 급히 전서를 날리고 있었다. 연휘가 머물고 있는 둥지를 향한 것이었다. 그는 지금 잔뜩 고무되어 있는 것이다.
전서에는 소혜가 서류정리에 탁월한 능력을 보였다는 것과, 어려서부터 병법서를 들고 씨름해왔다는 내용도 당연히 적어 넣었다.
Comment '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