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호풍운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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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송담(松潭)
작품등록일 :
2007.06.26 18:12
최근연재일 :
2007.06.26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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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5.26 2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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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풍운록(해남전 海南戰 2)

DUMMY

왕삼이 아내를 생각하며 목숨을 걸고서라도 지키겠다는 다짐을 할 때, 사내에게서 드디어 우려했던 말이 쏟아지고 있었다.

“주방장 나오라고 해! 음식을 만들면서 정신을 어디다 팔아먹은 거야! 해남의 호협들이 그렇게 우습게 보였나! 당장 나오라고 해!”

“맞아, 맞는 말이야. 주방장 불러!”

그의 손이 탁자를 휩쓸고 있었다.

“와장창!, 처벅 째쟁! 데구르르 따가닥 투둑.”

같이 있던 동료들이 말릴 생각은 안하고 오히려 호응을 하고 있었다. 객잔이 난장판으로 변해 가고 있는 것이다. 폭력을 행사해 본 자들의 광기가 온갖 기물들을 부수고 있었다. 순식간에 부서지는 객잔이었다. 어느새 온전한 형태를 유지하는 집기들은 몇 개 남아있지도 않았다.

왕삼은 자신의 객잔이 부서지는 것을 알면서도 그저 사내에게 비는 것 외에는 할 수가 없었다. 하늘은 결코 자신의 편이 아니었다. 이곳에서 그는 철저한 약자일 뿐인 것이다.

그런 왕삼의 마음을 읽었는지 달빛마저 숨어들고 있었다. 시커먼 구름들이 보아서는 안 되는 광경이라도 된다는 듯, 세상을 가려버린 것이다.

“나으리, 음식은 제가 만들었습니다요. 한 번만 용서해 주세요. 나으리.”

“네 놈이 언제 음식을 만들었다는 것이냐! 네 마누라가, 주방에서 음식 만드는 것을 내가 보았는데 발뺌을 해! 당장 안 부르면 내가 들어가 끌고 나올 것이다!”

이미 작정을 한 사내였다. 그런 자에게 어떤 말도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왕삼에게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그저 사정하며 비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왕삼이 무릎을 꿇고 사내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있었다.

“아이고 나으리. 마누라는 지금, 재료 사러 장에 가고 없습니다요. 고정하시고 잠시만 기다리시면 특급안주로 만들어 올리겠습니다요. 나으리.”

숨도 쉬지 못한 채, 사내를 붙잡고 늘어지는 왕삼이다. 음식을 뒤집어 쓴 그의 얼굴은 익어버린 살갗으로 인해 흉측하기 그지없었다. 그런 몰골에 눈물까지 흘려가며 애원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오히려 사내의 거친 흉성뿐이었다.

“이제 다 필요 없다. 그년을 보기 전에는 안 된다. 저리 꺼져!”

사내가 발을 들어 내치자 왕삼의 몸이 뒤로 날아가며 탁자를 부쉈다. 그런 그의 몸을 다른 사내들이 짓밟고 있었다.

“쩌저정! 와르르르 파작, 콰쾅!”

그 사이 사내가 주방으로 들어서기라도 했는지 주방의 집기들이 부서지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점점 왕삼의 의식이 멀어지고 있었다.

왕삼이 당하는 패악은 홍구 전체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었다. 무심한 밤은 그렇게 깊어만 가고 있었다.


홍구에 비가 내렸다. 새벽부터 오기 시작했던 것이다.

“우기는 아직 이른 것 아닌가?”

긴 여정에 혹여 차질이라도 있을까 우려한 남명의 말이었다.

“잠시 내리다 말 것입니다. 우기는 아직도 한 달 넘게 남아있습니다.”

“그럼, 그냥 출발 하도록 하지. 쉬더라도 사천에 가서 쉬는 게 좋겠지.”

탈백(奪魄)의 말에 해남의 장문 천패검(天覇劍) 남명이 출발을 명하고 있는 것이다.

어젯밤에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해남의 문도들은 그동안의 피로를 맘껏 풀어 개운한 모습들을 하고 있었다. 대열을 갖추고 홍구를 나서는 그들에게서 지난밤의 일을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었다.

그들의 모습이 모두 사라지자 홍구는 울음바다로 변해버렸다. 작은 점포나 큰 점포나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그나마 어느 정도 재력이 있던 자들은 돈을 풀어 화를 면했지만, 대부분 입에 풀칠을 하기도 어려운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점포가 수리 할 엄두도 못 낼 정도로 망가져 있었다. 홍구의 모습은, 대규모 전쟁이라도 벌어졌던 것처럼 폐허로 변해버린 것이다.

사람들은 또 얼마나 상했을지 모를 일이었다. 깨어있던 사람들은 해남파의 모습이 사라지자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 하고 있었다.

어차피 벌어진 일이었다. 그들을 원망할 기력조차도 없는 것이다.

원망하기 보다는 차라리 점포를 수리하고 장사를 하는 편이 더 낳았다. 원망은 하늘에만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왕삼의 객잔은 상황이 유독 심했다. 이층으로 오르는 계단은 중간에서 부러져 보기 흉하게 매달려 있었고, 주방을 막고 있던 벽은 통째로 사라져 버렸다. 탁자를 비롯해서 의자나 창문까지도 온전한 것은 구경할 수 없는 것이다. 온통 깨지고 부서진 잔해들만이 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바닥에 널브러진 왕삼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빗줄기는 어느새 폭우로 변하고 있었다.


홍구에서 사흘거리에 연휘가 있었다. 홍구에서의 패악은 이미 알고 있는 상황이었다. 적어도 운남을 비롯한 귀주, 광동, 광서 지역의 사정은 손바닥 보듯이 알 수 있는 것이다. 다른 지역과는 달리 사개 지역은 안방이나 다름없는 까닭이었다.

그들의 패악에 대해서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어차피 이곳에서 해남을 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홍구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미안해 할 수밖에 없었다. 좀 더 일찍 세력을 일으켰다면 그런 흉험함을 겪지 않았을 까닭이었다. 그 점이 안타까울 따름인 것이다.

“놈들이 방향을 틀었답니다. 폭우로 인해 홍구로 돌아갔다는 것입니다.”

“홍구로 돌아갔다면... 문제로군.”

연휘의 얼굴에 수심이 깊이 들어차고 있었다. 지금 당장 손을 쓸 수 없음에 안타까움만 더해 가는 것이다.

“그들이 또 어떤 행패를 부릴지 알 수 없습니다.”

“어찌했으면 좋겠나?”

연휘가 광도를 비롯한 백인대주들에게 묻고 있었다.

“홍구로 가서 그냥 다 쓸어버리는 게 좋겠습니다.”

“비가 언제 그칠 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여러 가지를 고려해야 합니다.”

중구난방으로 의견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러나 쉽게 선택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닌 것이다.


“흠... 군사를 불러와야 할 것 같다. 조 단주, 인원을 선발해서 군사에게 다녀오도록.”

“암영대를 보내겠습니다.”

“그리하라. 아니, 단주도 동행하도록. 그리고 군사가 올 때까지, 저들에 관한 정보를 면밀히 분석하고 대원들은 휴식을 취하게 하라.”

“명을 받듭니다!”


해남파의 목적지는 청성과 종남 이었다. 맹주 선출과 관련해서 그들과 같이 맹으로 들어가려는 것이다. 물론 대부분의 인원은 두 문파에 분산해서 머물게 될 것이었다. 수뇌부와 수행부대만이 가는 것이다. 그러나 혹시라도 급박한 상황이 발생될 우려가 있다 보니, 보다 가까운 곳에 배치하려는 까닭이었다.


홍일루라 이름 붙은 곳의 후원에서 천패검 남명은, 비로 인해 일정에 차질이 오지는 않을까 걱정하고 있었다. 아직 시일이 남아 있다고는 하지만, 이 곳 홍구에서 너무 오래 발이 묶이면 안 되는 상황인 것이다.

문 밖이 소란스러워 지는가 싶더니 수하가 고하고 있었다.

“속하 탈백이옵니다!”

“음... 무슨 일이냐?”

잠시 머뭇거리던 탈백의 말소리가 다시 들리고 있었다.

“잠시, 나와 보셔야 하겠습니다.”

“무슨 일인데 이리도 호들갑을 떤단 말이냐?”

“저... 그것이...”

탈백이 계속 머뭇거리며 말을 못하고 있자 남명이 문을 벌컥 열었다. 노화가 잔뜩 치밀어 올라 인상이 흉험했다.

“이자가 뭇매를 맞으면서도, 꼭 뵈어야 한다기에...”

만신창이가 된 모습의 사내 하나가 빗속에 엎어져 있었다. 차마, 얼굴을 알아 볼 수 없을 정도로 망가진 모습이었다.

“허어, 그렇다고 예까지 들여보냈단 말이냐? 적당히 돌려보내지 않고?”

“송구합니다.”

남명의 시선이 그 사내에게로 향했다.

“대체 무엇 하는 놈인데 사람을 귀찮게 하는 것이냐!”

사내의 몸이 꿈틀 거렸다. 억지로 고개를 들어 올리는 것이 무척이나 힘들어 보였다.

“소...은 ... 객잔... 수... 보상...”

입술이 부르트고 이빨마저 부러져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내였다. 그런 모습에, 오히려 노기가 더욱 거세진 남명이다.

“탈백 이노옴! 무엇하는 놈인지 당장 고하지 못할까!”

탈백이 어쩔 줄 몰라 하며 사내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을 말하기 시작했다.

“그게, 저... 작은 객잔의 주인이랍니다. 어젯밤, 문도들이 술을 마시고 행패를 부리는 바람에 객잔 문을 닫게 생겼다며 보상을...”

“뭣이라! 문도들이 행패를 부렸다는 것이냐!”

찔끔한 탈백이 부리나케 변명을 늘어놓았다.

“그들의 말로는 행패가 아니었답니다. 술 한 잔 마시고 실수로 집기를 몇 개 부신 것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사내가 술 한 잔 걸치고 실수 했기로서니, 그걸 문제 삼아 대 해남의 장문까지 불러내는 것이냐! 그것도 이런 빗속에서!”

꿈틀 거리던 몸이 일순간 굳어 버리는 사내였다.

“그...”

“시끄럽다! 탈백! 적당히 몇 푼 쥐어 보내라! 그리고 다시 한 번 이런 일로 귀찮게 할 경우에는 네 목숨으로 보상해야 할 것이다! 치워라!”

매몰찬 말을 남기고 방문을 닫아 버리는 남명이었다. 탈백의 얼굴이 붉게 물들며 사내를 향했다. 그의 입술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입술을 깨물고 있는 것이다. 화가 났다는 표시였다.

“네 놈 때문에 내가 죽게 생겼다. 한 번만 더 내 눈에 띄었다간 그날이 바로 명년 제삿날이 될 줄 알아라.”

사내를 개처럼 질질 끌고 나가며 씹어 뱉듯 말하는 탈백이었다.

“어... 런 일...”

사내의 입에서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 쏟아지고 있었지만, 탈백은 개의치 않았다. 골목까지 끌고 나온 사내를 진창에 내던지더니 침을 뱉고는 들어가 버렸다. 그의 얼굴은 아직도 분이 풀리지 않은 듯 일그러져 있었다.

“쾅!”

“에잇 더러운 놈 같으니, 저놈 때문에 장문한테 밉보이게 생겼으니 어쩌나... 게다가 옷까지 젖어버렸네. 갈아입을 옷도 없는데...”

탈백의 푸념 가득한 말소리가 골목을 맴돌고 있었다. 던져버린 사내에 대해서 일말의 동정이라도 해주진 못 할망정, 오히려 그로인해 자신이 피해를 봤다고 투덜대는 것이다.

골목에 버려진 사내의 몸이 꿈틀 거렸다. 그의 퉁퉁 부은 눈에서 핏물이 빗물에 섞여 흘러내리고 있었다.

‘천벌을 받을 놈들. 하늘은 어찌 저런 놈들을, 그냥 내버려 두는가...’

그는 왕삼 이었다. 너무도 억울해서 해남파의 장문에게 하소연이라도 한 번 해보려던 참이었다. 헌데, 말도 제대로 못하고 내침을 당한 것이다.

꿈틀대는 그의 몸이 지나간 곳에는 지렁이가 남긴 흔적 마냥 긴 줄이 생겨났다. 하지만 하염없이 쏟아져 내리는 폭우 속에 그나마 그것도 지워지며 왕삼의 흔적이 사라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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