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게 도망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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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안새
그림/삽화
피안새
작품등록일 :
2021.03.24 00:00
최근연재일 :
2024.09.19 2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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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978,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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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24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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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별석의 제거자

DUMMY

.

.

.


대로에서는 사람을 밀치거나 가판을 무너뜨리고 지나갔다는 괴한의 제보가 속출했다. 골목골목 뻗은 미로에는 수상한 자들을 봤다는 신고가 몇몇 있었다.


헤르미아에는 승천자가 뿌린 눈과 귀가 따라다녔다. 그리고 그것들이 하나하나 입을 모은다. 목격담을 종합해서 정리한 입이 말했다.


“무리 중에 금발금안의 여인이 있었다고 합니다. 사람들의 얘기를 대조해서 그린 생김새입니다.”


왕의 챔피언이 상주하는 공간에서 조사원이 종이를 건넸다.


코마드는 심드렁하게 몽타주를 받았다. 마궁의 마법을 통해 얻은 몽타주다. 눈으로 본 것이나 경험 같은 것을 염사 하는 방식으로 종이에 형상을 띄우는 마법이었다. 헤르미아에서도 귀하게 취급받는 기술이었다.


어찌됐든 챔피언은 귀찮았다. 어째서 이런 자질구레한 사안까지 자신에게 돌아오나 싶어서. 이런 귀찮은 일은 로열가드 같은 집행기관에 맡기면 되지 않나?


애초에 코마드는 글도 못 읽건만 그랬다. 코마드는 슬쩍 눈으로 훑었다. 순간 잘 못 봤나싶어서 눈을 깜박였다. 곧 조사원에게 고개를 돌리고 물었다.


“이 여자는 어떻게 됐지?”


“현장에서 도망쳤다고 합니다. 예의 롬이란 벙어리와 함께요.”


“허어. 그거 참. 그게 가능해? 이 헤르미아에서?”


코마드는 머리를 긁적였다. 그에 멋쩍어진 조사원은 침묵을 지켰다. 사실 조사원도 의아하기는 매한가지였다. 듣기로는 로열가드들이 행방을 추적했다고 한다. 아우라를 띄는 별석(별의 돌)을 품고도 도망치다니. 그게 가능한 건가 싶었다.


잠깐 생각하다가 코마드는 대수롭게 여기지 않기로 했다. 세상에 불가능한 일쯤이야 가능할 수도 있지 않겠나. 이 도시에도 승천자의 눈과 귀가 닿지 않는 구멍도 있는 모양이었다.


“이건 나한테 왜 보여주는 거야?”


“승천자께서 찾아오라하십니다.”


“...누굴? 이 여자를? 그보다 왕께서는 벌써 알고 계신다라. 그거 참 정보도 빠르군.”


생각의 속도란 건 그럴 수도 있는 모양이었다. 어쨌든 코마드는 몽타주를 빤히 바라보면서 말했다. 조사원더러 확인을 구하는 말이었다.


“묘하군. 이건 내가 아는 그 여자랑 비슷한데.”


“...돌아가신 혈족과 비슷한 것 같습니다.”


“뭘 그렇게 빙 돌려서 말해? 이 그림은 왕의 누이랑 판박이잖아.”


“크음...”


조심스러운 조사원의 태도에도 코마드는 툭툭 종이를 가리켰다. 그러자 거기에는 언젠가 롬이 봤던 꿈속의 여인이 있었다. 거친 펜 선에 색만 입히지 않았을 뿐, 아름다운 이목구비와 생김새가 가려지는 건 아니다. 그리고 승천자 샤를롯과 닮은 외모도 마찬가지다.


“왜 왕께서 신경 쓰시는지 알 것 같군.”


코마드는 혀를 찼다. 심기가 불편해졌다. 오래 전 일이다. 샤를롯이 왕자일 적에, 코마드는 그를 도와 사람을 여럿 매장시켰다. 그중에서도 기분이 제일 더러웠던 일이 하나 있었다.


결국에 사상자가 나왔고, 그건 샤를롯의 가장 절친한 가족이었다.


아니, 사상자라는 표현은 맞지 않을지도. 그 여자를 지칭하기엔 썩 좋은 표현이 아니었다. 그녀는 희생자란 느낌보다는 가해자에 가까운 느낌이었으니까.


“그래, 알았어. 바로 가보지.”


“예. 알겠습니다. 로열가드에게도 보좌하라고 이르겠습니다.”


“어.”


코마드는 조사원을 내보냈다. 그리곤 혼자 남아서 그림을 바라보았다. 생각하기를 싫어하는 챔피언도 여자를 보면 찝찝한 기분이 일었다.


“쯧, 죽은 사람이 살아 돌아오기도 하나?”


.

.

.


롬은 급격하게 피로해졌다. 쉬려고 무릎을 굽혀 다 낡아빠진 의자에 기댔다.


빠직!


앉자마자 의자가 무게를 버티지 못하고 무너졌다. 동시에 엉덩이를 찧은 롬의 꼬리뼈에 둔중한 충격이 감돌았다.


“악!”


잠시 정적이 일었다. 순간 모두의 이목이 그를 향했다. 땀에 젖은 피부를 닦아내는 마법사, 그리고 신기한 듯 방안을 살펴보던 요정 같은 유부녀도 그랬다.


“...조금 멀쩡한 의자를 가지고 올 테니 조금 기다리세요.”


위니아는 좌중을 훑더니 힘없이 말했다. 그녀는 옆방으로 가서 뭔가를 꺼내려고 애썼다. 그러고 있으면 이 닫힌 공간에 로나와 롬만 남았다.


로나는 구경하던 책장에서 떨어지고는 롬에게 다가왔다.


“괜찮나요? 여기에 있는 건 모두 낡아서 조심해야겠네요.”


“오우...”


힘없이 대답한 벙어리는 의자 대신에 잔뜩 쌓아놓은 책더미 위에 앉았다. 그러자 그들이 있는 공간이 바로 보였다.


“와, 비밀기지는 처음 보네요. 여긴 오랫동안 아무도 쓰지 않았나 봐요.”


비밀기지 아니면, 지하 서고. 아마도 그렇게 표현할 수도 있겠다. 헤르미아의 골목에서 불현 듯 지하수로로 들어가더니 나온 공간이었다. 대가족의 가정집쯤 되는 공간에 어두운 천장이 높게 뻗어있었다.


롬은 기시감이 들었다. 이런 비슷한 공간을 본적이 있었다. 과거로 멀리 돌아갈 것도 없이, 아미츠의 ‘인노첸티 보육원의 지하’가 이런 느낌이었다. 세작들이 한 가득이던 지하가 이랬다.


“...”


그 공간을 멍하니 바라보면 눈앞에 알짱거리는 소인이 있었다. 벚꽃색의 소인. 이 공간에 어울리지 않는 프릴 드레스가 퍽 눈에 밟혔다. 결국 롬은 물어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도대체 여기서 뭘 하는 겁니까. 로나 님?]


“와, 이건 페르난디의 로맨스 소설 초판본이잖아? 이젠 구하기도 힘든 건데!”


로나는 칠판을 눈치 채지 못하고 서고 곳곳을 돌아다녔다. 그리고 비교적 최근에 정리한 것으로 보이는 책상에서 책을 들어보였다.


“어머나, 이런 데에 책갈피가. 후후.”


“로로..!”


이쪽 좀 보라고 롬은 그녀를 불렀다. 거인은 다가와서 소인의 옆에 무릎 꿇었다. 그리고 앞선 내용을 들어보였다.


“이런, 내 정신 좀 봐. 아, 당연히 남편이 걱정 돼서 헤르미아로 보러 온 거랍니다. 그리고 우연찮게 롬이 저분이랑 뵙는 걸 보게 된 거지요.”


간단하게 말하지만 머리가 아파왔다. 그거 참 공교롭다. 이 힘들고 어두운 시기에 아론의 부인이 눈앞에 나타나다니? 그것도 최악의 순간에 말이다. 롬은 눈앞이 깜깜해졌다.


[우연 맞습니까?]


“음, 생각해보니 우연은 아니네요. 이건 인연이고 필연이랍니다. 어쩌면 운명이기도 하고요.”


“아으.”


옹알이하고픈 심정이 들었다. 롬은 이 기묘한 소인에게 말려드는 느낌이 들었다. 그는 참을성 있게 묻기로 했다.


[남편이 걱정된다는 건 무슨 소식이라도 받으신 겁니까? 그래서 헤르미아에 바로?]


“아니요. 사실 아론이 떠날 때부터 알고 있었어요. 엘리자 님의 운이 나빠 보였거든요.”


로나는 가볍게 자신의 여정에 대해서 설명했다. 그건 엘리자가 수행단을 데리고 헤르미아로 출발하고 나고 난 뒤의 일이었다. 딱 하루가 지났을 때, 로나는 왕도로 가는 상단에 몸을 실었다. 아론의 장원에 있는 하인들이나 부하들도 대동하지 않고서 그랬다.


[가능합니까? 로나 님 쯤 되시는 분이 수행원도 없이요?]


“가능하지요? 전 원래부터 혼자 다니는 걸 좋아했는걸요. 후후, 부끄럽지만 제가 영애일 때는 좀 더 자유분방했답니다.”


“허...”


“걱정 마세요. 아론도 제가 여기 있는 걸 모르니까요. 아마 아무도 모를걸요? 흐흠, 잠행에는 제법 자신이 있답니다.”


[그게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만...]


점점 롬은 창백해졌다. 제법 불온한 예감이 들어서 그랬다. 말하자면 나쁜 감이랄까. 그는 로나가 여기에 말려들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가뜩이나 복잡한 상황에서 친구라 할 수 있는 아론의 아내까지 말려든다? 적어도 곱게 끝날 것 같지는 않았다. 아론에게 엄청나게 두들겨 맞아도 할 말이 없을 것 같았다.


“괜찮습니다. 롬. 불필요한 걱정이나 설명은 필요 없어요. 지금 모을 것은 고양이손. 집중할 것은 당장의 일! 작은 손들이 모이면 크나큰 스크래치를 남길 수 있는 거라고요.”


[기세로 밀어붙여봤자 상황이 개판인데요. 아니, 애초에 그냥 돌아가 주시면 안 됩니까?]


“제가 왜요? 아까 전에 이미 함께한다고 하지 않았나요.”


오히려 롬이 이상하다는 듯 핀잔을 주었다. 그에 벙어리는 입만 뻥긋거렸다. 그러고 있으면 옆방에서 위니아가 먼지를 조금 뒤집어 쓴 채로 나왔다.


“내보낸다하더라도 지금은 안 됩니다. 바깥에 사람들이 깔려있어요.”


내보내려는 자와 버티려는 자의 신경전을 끊어낸다. 위니아는 의자를 가져왔다. 먼젓번의 의자보다는 튼튼해 보이는 의자였다. 정리된 책상 앞에 놓자 세명이 앉을 자리가 나왔다. 책더미에 앉아있던 롬도 자리를 바꿨다.


세 명이 둘러앉았다고 테이블이 꽉차보였다. 그리고 그 조합이 참으로 괴악했다.


배신과 기만을 일삼는 마법사와 사고를 몰고 다니는 벙어리. 그리고 신비한 능력을 지닌 소녀처럼 보이는 유부녀.


팔짱만 끼고 있기에는 손이 근질거렸다.


[몇 달 전에 모인 비밀모임도 이것보단 정상적이었어.]


“...설마요. 음유시인에 당신까지 있으니 더하면 더했겠죠.”


위니아는 독설을 내뱉었다. 지하 서고에 닿고 나서부터 부쩍 날카로워진 그녀였다. 사실 벼랑 끝에 몰린 그녀의 심정이 어떻건 간에 할 일을 해야 했다. 그 방향이 어긋나고 있다는 게 문제였지만.


“거기 계신 부인한테는 신경 쓰지 않겠습니다. 어떤 연유로 밀담에 끼어들었는지, 무슨 목적인 있는지. 그런 것도 묻진 않겠습니다. 다만, 이 장소에 대한 언급이라든가, 여기서 나오는 얘기는 비밀에 부쳐주세요. 신변에 위협이 갈 뿐더러, 떠들고 다녀봐야 적을 만들 뿐입니다. 혹시나 붙잡힌다면 어쩔 수 없겠지만요.”


위니아는 남몰래 우울해졌다. 거점으로 삼을 이곳을 정리하고 청소한 게 며칠 전의 일이다. 조금 익숙해진 참에 거처를 옮겨야 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부디 여기 있는 남자랑 둘이서만 이야기하고 싶군요.”


“옙, 조용히 있을게요.”


로나는 합죽이가 된 것 마냥 입을 꾹 다물었다. 방해하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에 위니아는 할 말을 잃었다.


“...다른 방에 가계시는 걸 권하겠습니다만.”


“아니오. 여기 있을게요!”


“롬... 이 분은 당신의 동료같은 겁니까? 그 바보 같은 짓에 동참하는?”


“...안!”


“예, 동료입니다! 동료에요!”


필사적으로 홰치는 고개가 있었다. 아니라고 어필하는 벙어리에 위니아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면 옆에서 로나가 동료라고 손을 번쩍 들고 정정했다.


위니아는 눈을 질끈 감고는 무시하기로 했다.


“그냥 없는 셈 치겠습니다.”


로나는 자신의 취급을 달게 받아들였다. 그녀는 반짝반짝한 눈으로 롬과 위니아를 번갈아보았다. 그 시선을 무시하면서 위니아가 입을 열었다.


“로열가드에게 쫓기는 통에 이야기가 끊겼습니다만. 롬에게 제가 도와줄 수 있는 건 바로 그 별석에 대해서입니다. 당신 목 뒤에 있는 그거요.”


롬은 자신의 뒷목을 쓰다듬었다. 이물감조차 없는 수술이었다. 가히 신기의 영역에 가까운 집도였다. 그는 우수수 소름이 돋아서 적어냈다.


[수술하는 거야? 네가?]


“아니요. 전 그런 고도의 외과수술 같은 건 못합니다. 마법으로 어찌 할 영역 같은 게 아니거든요.”


위니아는 단번에 부정했다. 고개를 갸웃한 롬에게 위니아가 말했다.


“대신할 사람을 찾아야합니다. 그리고 헤르미아에서. 아니, 브리타니아 왕국 전체를 통틀어서 그런 수술을 할 수 있는 건 한명밖에 없습니다.”


“...”


부리가면이 떠올랐다. 롬은 소름이 돋는 뒷목을 문질렀다.


“오직 왕의 의사만이 별석을 정교하게 몸 안에 심을 수 있지요. 그것도 치명적인 부위 가까이에요.”


그리고 마법사가 느끼길. 자신조차 꽤 위험한 계획을 세웠다는 걸 통감하고 있었다.


“그자가 다시 수술하게 할 겁니다.”


위니아는 제 뺨을 문질렀다. 마법에 가려 형태를 달리했지만, 그 안에는 화상자국이 있었다. 반쯤 타버린 몸에는 낙인이 남는다. 그건 실패의 흔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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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3 늑대와 마법사. 그리고 황금 24.07.29 14 1 11쪽
132 밤을 타넘는 자들 24.07.26 17 1 12쪽
131 결투와 충성의 대상 24.07.26 16 1 11쪽
130 나쁜 계획 24.07.24 13 1 14쪽
» 별석의 제거자 24.07.24 12 1 12쪽
128 어설픈 동행 24.07.21 13 1 11쪽
127 부글거림 24.07.19 10 1 10쪽
126 부글거림 24.07.19 11 1 14쪽
125 갇혀버린 자들에게 24.07.19 11 1 12쪽
124 갇혀버린 자들 24.07.16 14 1 17쪽
123 선택의 제한 24.07.12 13 1 14쪽
122 선택의 제한 24.07.11 12 1 10쪽
121 샤를롯 24.07.10 15 1 12쪽
120 승천자 24.07.09 11 1 10쪽
119 왕도 헤르미아 24.07.09 11 1 12쪽
118 왕도 헤르미아 24.07.06 11 1 9쪽
117 쿠키에 담은 것 24.07.06 12 1 13쪽
116 멍자국을 딛고 24.07.06 10 1 13쪽
115 멍자국 24.07.06 11 1 10쪽
114 멍자국 24.06.28 11 1 19쪽
113 멍자국 24.06.27 14 1 10쪽
112 자매란 것 24.06.27 14 1 13쪽
111 자매란 것 24.06.25 12 1 8쪽
110 자매들 24.06.22 11 1 9쪽
109 시시한 비극과 공상 24.06.20 14 1 20쪽
108 시시한 비극 24.06.20 12 1 8쪽
107 시시한 비극 24.06.20 11 1 12쪽
106 시시한 비극 24.06.14 15 1 11쪽
105 달 아래 24.06.14 11 1 10쪽
104 달 아래 24.06.12 11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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