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게 도망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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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안새
그림/삽화
피안새
작품등록일 :
2021.03.24 00:00
최근연재일 :
2024.09.19 2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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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27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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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자매란 것

DUMMY

한편 건물 앞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그곳을 중심으로 양쪽이 갈라져서 회담이 끝나길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회관 안에서 커다란 노호성이 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너---!”

“-씨--!”


다분히 개인적인 회담이기에 근위기사들은 물러나있었다. 그리고 지금이다.


아론과 레이첼은 마을회관 앞에서 검을 들고 대치하고 있었다. 정확하게는 양쪽 진영이 그러했다. 머릿수가 엇비슷했다. 묵기사와 청기사들은 눈을 부라리고 서로를 응시하고 있었다. 일촉즉발의 상황. 그 사이에서 벙어리는 어느 한편에 서있지도 못하고 방황하고 있었다.


쿠당탕!


건물 안에서 물건 부서지는 소리가 전해졌다. 모두의 간담이 서늘해지게 만드는 소리였다. 양측의 기사들이 안으로 진입하려고 입을 모았다.


“백작님!”

“로드!”


안에 무슨 일입니까. 그런 외침으로 회관 입구에 기사들이 모여들었다. 기사들의 병장기가 반짝였다. 서슬 퍼런 날이 번뜩이고 둔기가 사람을 때리려 들었다.


기사단장인 아론과 레이첼은 참담한 기분이 들었다. 오늘은 피를 보지 않을 줄 알았다. 허나, 심정이 어떠하든 그들은 서로 할 일을 해야 했다.


서로 물리적인 분쟁이 생기려는 찰나 창문이 부서졌다.


콰장창!


자매들이었다. 흑과 백이 얽힌 채로 부서진 창문으로 튀어나왔다.


순간 사람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가장 가까이에 있던 자들이 몇 발자국 물러났다. 그리고 곧 사람들의 벽으로 이루어진 공터가 생겼다.


“으윽!”


자매들은 엎치락뒤치락하다가 한명이 고지를 점했다. 엘리자를 다리 사이에 깔아뭉갠 엘리스가 번쩍 팔을 들었다. 서로 무기나 갑옷은 없었다. 서로 대화하기위해 온 자리였기 때문이다.


퍽!


“큭!?”


그게 무색하게 지금은 싸움으로 번져버렸지만. 내려친 주먹이 엘리자의 얼굴에 한번 꽂혔다. 성대하게 고개를 돌아갔다. 입술이 찢어지고 피가 흐른다. 마찬가지로 엘리자의 이마에서도 피가 흘러내렸다. 유리창을 깨고 나오다가 찢어진 상처였다.


후둑 하고 그것이 엘리자의 얼굴에 떨어졌다. 피와 피가 섞인다. 그들의 증오와 뒤틀림처럼 그랬다.


퍽! 턱!


마운트한 자세로 주먹이 여러 번 내려쳐진다. 그에 엘리자는 팔뚝을 얼굴로 끌어올려 방어하다가 고개를 틀었다. 헛친 주먹이 땅에 처박힌다. 엘리자는 그 팔을 잡고 무릎을 쳐올렸다. 관절이 으득거린다. 그에 엘리스의 등과 팔에 격통이 달렸다. 그리고 자매들은 다시금 뒤집어졌다.


밑에 깔린 엘리자가 등을 차냄과 동시에 굴러 빠져나왔다. 그리고 엘리스가 바닥을 굴렀다. 마운트에서 빠져나온 하얀 것이 비틀비틀 일어섰다. 입고 나온 하얀 옷이 흙과 먼지로 엉망이 됐다.


일어선 그녀를 따라 검은 것이 일어섰다. 마찬가지로 비슷한 것이 묻었다.


붉음과 푸름이 서로를 노려보았다.


회관 앞의 횃불에 그런 것들이 아른거렸다. 순간 기사들이 주춤했다. 자매들을 중심으로 벌어진 그곳에 전투의 열기가 침범하려 들었다. 기사단장들이 서로 나서서 주군들 사이를 갈라놓으려고 할 즘이었다.


자매들은 누가 뭐라고 할 것도 없이 소리를 높였다.


“끼어드는 새끼는---!”

“방해하는 자는---!”


말이 울렸다.


““죽여 버린다!””


그런 말을 듣고 나서지 않으면 신하라고 할 수 없겠지만. 그들은 움직일 수 없었다. 한명은 분명한 초인으로서, 그리고 한명은 초인을 꺾기 위해 단련한 자매들의 압력은 굉장한 데가 있었다.


그 말에 움직이는 충신들도 있었다. 허나 곧 자매들이 입을 모았다.


“진짜로 방해하지 마. 으득! 방해하면 성 앞에 매달아버릴 거야.”

“회담 중에 작은 마찰이 생긴 것 뿐. 풀어가는 과정이다. 방해하는 자는 박제해버릴 것이야.”


그 말은 양측의 충신들을 멈칫하게 만들었다. 진심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뭐, 뭐야! 이거 뭔데!’


롬은 그런 사람들의 틈바구니에 껴서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그쯤 엘리자는 소매의 단추를 풀어 걷어붙였다. 그 동작은 참 우아했다. 반면 엘리스는 걸리적거리는 소매를 거칠게 끌어올렸다.


그리고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각자 목에 걸고 있던 망토를 끌어냈다.


훙!


그것들을 뒤로 날려버린다. 훗날 누군가가 말했지만. 그건 살벌하기도 했지만 미쳐버린 간지였다.


바야흐로 상여자들의 싸움이었다.


.

.

.


어두운 감옥 안. 그 어둠에 익숙해지고 그 습습함이 피부로 달라붙었다. 돌바닥의 딱딱함은 적당히 배기기 시작했다. 이제는 익숙해진 감옥 안의 아른거리는 조명을 박자 삼는다. 그에 맞춰 휘파람을 불고 있을 때였다.


~♪


“멜.”


멈칫.


부르는 목소리에 리듬이 뭉개진다. 음유시인은 얼굴을 찡그렸다. 기어코 찾아온 손님은 썩 반가운 종류는 아니었다.


“아미츠 성의 방비는 왜 이렇게 허술한 거람.”

“멜이 그런 말을 하나요? 원한다면 어디에도 들어갈 수 있고, 나갈 수 있으면서.”


제 뺨에 손을 댄 마녀는 이해하지 못했다. 사실 그녀에게 그런 재주는 없어서 여기 들어오기까지 꽤 애를 먹었다. 아미츠의 깐깐한 집사가 관심을 가질만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면 힘들었겠지.


“왜 당신을 들여보내줬지?”

“흑기사는 충실하니까요. 설령 미쳐버린 귀부인에 대해서도요. 사람의 애틋한 마음이란 건 그런 법이잖아요? 사랑하다가도 증오로 변하고, 관심을 가졌다고도 무관심해지고. 그러다가도 미련이 남는 거랍니다.”


거기에 말 몇 마디 얹어주면 된다. 그러면 사람들은 선택을 고민한다. 그 선택이 제 마음에 상처를 벌린다 해도 말이다. 설령 그것이 실수라고 생각하면서도. 옛 마녀 이코는 제 황금색 머리카락을 매만졌다.


“역시 사람 조종하는 데 능하네.”

“아, 멜. 비꼬는 거 맞지요?”


그건 알아들었어요. 이코는 그리 말하고선 고개를 갸웃했다. 어찌 보면 멜의 비꼼은 자기 자신을 향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음유시인 자신. 마녀는 그런 순수한 의문을 내비쳤다.


“멜도 마찬가지 아닌가요? 롬이란 친구에게 선택을 준 것처럼 보여도. 사실 그 모든 게 멜이 원하는 방향이었잖아요?”


갈등을 조장하고, 광대 짓을 하고. 그리고 이내 사람들에게 선택이라고 착각하게끔 만들고. 그건 모두 이코가 가르쳐준 것들이었다. 멜로스는 그런 것들을 배우는 데 능했다. 사람 보는 법, 조종하는 법, 읽는 법.


배움이 더딘가 싶으면 다른 걸 잘해내곤 하는 아이였다. 정말로 신기하게도 그랬다. 그래서 더 애착이 많이 가는 제자였다.


“그럴지도.”


멜은 답했다. 불현 듯 롬이 떠올랐다. 그 바보는 뭘 하고 있으려나. 아마도 사고뭉치답게 이것저것 바보 같은 선택을 내리고 있을 거다. 항상 뭔가를 생각하는 주제에 앞뒤 안 가리고 달려들겠지.


선택인가. 멜은 롬을 떠올렸다. 충동적인 선택. 혹은 예비 된 선택. 그 모든 걸 제치고서라도 앞뒤 안 가리고 달려든다. 진정 그럴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 생각하고, 망설이다가도, 몸이 움직여버린다. 머리에 나사가 빠진 게 아닌 이상 그렇다.


“그런데도 그 길에서 선택하는 건 사람이란 말이지. 가기 싫다고 돌아서고. 변덕으로 옆길로 빠지고. 괜히 심술이 나서 다른 길로 가보기도 하고.”


이코는 눈을 깜박였다.


“그조차 모두 예비 된 선택이잖아요?”


사람이란 건 생각보다 단순하다. 복잡해 보이는 인간군상도 다양한 표본으로 모아놓고 보면 통계에 수렴한다. 이렇게 할 거다. 저렇게 할 거다. 한사람의 인생이란 건 그 정도로 읽을 수 있을 거다. 그게 가능한 시대였다. 그게 가능한 사람들이 있었다.


예를 들어 자매들 사이가 벌어진 것도 그렇다. 일어날 법한 일은 일어난다. 그 방향에 편승해서 미래와 과거. 현재를 쓰는 게 잘못된 걸까?


응당 일어나야 할 일은 일어난다. 거기에 저항하는 것조차 무의미할 정도로.


“멜은 참 이상하네요. 이미 알고 있잖아요? 거대한 흐름이랍니다. 자매가 결국 파국을 맞아 비극이 되는 것도. 멜에게 주어진 눈으로 무수한 빛과 별의 땅에서 가장 어두운 음영을 보듯. 그렇게 가장 어두운 이야기를 피하기 위해 이야기를 지어내듯.”


음유시인은 허리를 세웠다. 똑바로 이코를 바라보았다. 어두운 감옥 안에서 감겨있던 한쪽 눈이 뜨였다. 흰자위의 경계조차 없다. 빛조차 흡수해버리는 눈이었다. 가장 밝은 곳에서도 사물을 식별할 수 있는 눈이었다. 그리고 가장 어두운 음영조차 구분해낼 수 있는 눈이었다.


이코는 담담하게 말했다.


“결국 최선과 차선, 최악과 차악이 있을 뿐이랍니다.”


자매가 같이 죽든, 하나가 살아남든. 그뿐인 이야기다.


“당신의 그런 점이 옛날부터 참 싫었단 말이야.”


뭐든 정해져있다는 듯. 멜은 참 그런 게 싫었다.


“그 흐름에 벙어리 하나가 낀다고 해서 달라질 게 있을까요?”


이코의 의문은 순수한 의문이었다. 사실 궁금하기도 했다. 멜이 저 눈으로 뭔가를 본 게 아닐까? 아마 그녀조차 모를 무언가 말이다.


그 눈빛을 멜은 읽어냈다. 인정하긴 싫어도 그녀의 손에 자란 그였다. 이코의 표정 정도는 손쉽게 읽을 수 있었다. 그에 대고 음유시인이 말했다.


“그딴 거 몰라.”

“흥?”

“선택이든 뭐든 간에.”


음유시인은 그런 게 참 마음에 들었다. 롬을 보면 그런 게 느껴졌다. 사실 멜과 롬이 한탕 싸울 법한 적에도 엉망인 그의 리듬을 보면 그런 생각을 했다. 그것이 장애로 온 불협화음인지, 원래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혼돈이 참으로 마음에 들었다. 그건 참 매력적인지라. 음유시인은 세상이 그렇게 불타길 바랐다. 불을 붙이는 건 음유시인이 하고, 거기에 거센 바람이 부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어디로 튈지 모르는 게 낭만적이잖아.”


.

.

.


난타전으로 이어진 자매들이 서로 이마를 받았다.


퍽!


충격과 고통에 비틀거리는 자매들은 몇 발자국 물러났다. 그리고 곧 지척에서 마주했다. 그들의 코와 입에서 피를 흘렸다. 마주 본 그녀들의 눈에 독기가 서렸다. 진정 자매다웠다. 갈등을 표출하는 법조차 닮았으니까.


엘리자가 침을 뱉어냈다. 피가 섞였다. 엘리스는 한쪽 코를 막고 고인 피를 털어냈다. 흙바닥에는 자매가 흘린 피로 조금 흥건해졌다. 그런 공터를 중심으로 사람들이 거친 말을 내뱉었다.


기사들이 으르렁댔다. 병사들이 환호했다. 지지 마십시오. 저놈들한테 질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저들보다 낫다는 걸 보여줘. 우리의 증오도 폭력도 정당하다는 걸.


엘리스와 엘리자가 한쪽 주먹을 들었다.


서로가 지쳤다. 많이 때리고 맞기도 했다. 관절이나 손가락이 다쳐서 삐걱거리는 곳도 있었다. 그리고 가장 많이 피를 흘리는 건 그들의 마음이었다.


들어낸 그 주먹은 그 피를 손에 묻히고 일어서겠지.


“ㅆ---.”


문득 목소리가 나왔다. 벙어리는 가슴과 목울대에서 새는 그 소리를 들으면서 생각했다. 문득 아론과 레이첼이 보였다. 둘은 어찌 하지도 못하고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롬과 눈이 마주쳤다.


서로가 서로에게 하고픈 말이 있는 모양이다. 애석하게도 롬은 거기에 답해줄 목소리가 없었다.


“뒈져어어어!”

“하아아압!”


엘리스는 가장 깊은 곳에서 키워온 증오를 끌어올렸다. 엘리자는 그에 상응한 마음을 끌어올렸다. 그 모든 것을 받아 주리라. 설령 그게 피 흘리는 마음이라 할지라도. 그건 독기와도 비슷했다.


서로의 주먹이 교차하며 스쳐지나갔다. 그렇게 결착이 난다. 누군가가 생각하고 있었다.


그랬었다.


“씹---!”


새된 소리가 중간에 끼어들었다. 순간 자매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서로의 얼굴을 때리려던 주먹 사이에 뭔가가 끼어들었다.


“...!?”

“어!?”


자매들의 신음 뒤에는 살 터지는 소리가 잇따랐다.


퍼버벅!


관자놀이 턱. 그런 것들이 부서지는 느낌이 들었다. 마압체로 강화된 일격이었다. 심지어 그 수준이 상당했다. 누구든 얻어맞으면 피가 나고, 살이 으깨진다. 마찬가지로 뼈가 부러지는 예사고. 다행이라면 얻어맞은 게 규격외의 덩어리라는 점이다.


순간 힘이 풀린 무릎이 땅에 닿았다. 롬은 고개를 땅으로 꺾기 직전에 손으로 바닥을 짚어냈다.


“빨....”


단어가 뭉개진다. 무너지는 그의 정신처럼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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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3 늑대와 마법사. 그리고 황금 24.07.29 14 1 11쪽
132 밤을 타넘는 자들 24.07.26 17 1 12쪽
131 결투와 충성의 대상 24.07.26 16 1 11쪽
130 나쁜 계획 24.07.24 13 1 14쪽
129 별석의 제거자 24.07.24 11 1 12쪽
128 어설픈 동행 24.07.21 13 1 11쪽
127 부글거림 24.07.19 10 1 10쪽
126 부글거림 24.07.19 11 1 14쪽
125 갇혀버린 자들에게 24.07.19 11 1 12쪽
124 갇혀버린 자들 24.07.16 13 1 17쪽
123 선택의 제한 24.07.12 13 1 14쪽
122 선택의 제한 24.07.11 12 1 10쪽
121 샤를롯 24.07.10 14 1 12쪽
120 승천자 24.07.09 11 1 10쪽
119 왕도 헤르미아 24.07.09 11 1 12쪽
118 왕도 헤르미아 24.07.06 11 1 9쪽
117 쿠키에 담은 것 24.07.06 12 1 13쪽
116 멍자국을 딛고 24.07.06 10 1 13쪽
115 멍자국 24.07.06 11 1 10쪽
114 멍자국 24.06.28 10 1 19쪽
113 멍자국 24.06.27 14 1 10쪽
» 자매란 것 24.06.27 14 1 13쪽
111 자매란 것 24.06.25 12 1 8쪽
110 자매들 24.06.22 11 1 9쪽
109 시시한 비극과 공상 24.06.20 14 1 20쪽
108 시시한 비극 24.06.20 12 1 8쪽
107 시시한 비극 24.06.20 11 1 12쪽
106 시시한 비극 24.06.14 15 1 11쪽
105 달 아래 24.06.14 11 1 10쪽
104 달 아래 24.06.12 11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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