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게 도망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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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안새
그림/삽화
피안새
작품등록일 :
2021.03.24 00:00
최근연재일 :
2024.09.13 21:24
연재수 :
161 회
조회수 :
2,137
추천수 :
180
글자수 :
967,977

작성
24.08.12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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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벌레가 우는 아침

DUMMY

검지 한마디 반 크기의 돌이 손안에서 굴러다녔다. 거칠기보단 매끈한 감촉이다. 며칠 되지도 않았건만 제 몸에 들어있었던 돌이라고 생각하니 소름이 돋았다.


“무서! 무서엇!”


팟!


롬은 저도 모르게 자신의 입을 틀어막았다. 자기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에 섬뜩함이 감돌았다. 식은땀과 침이 미친 듯이 나왔다. 그러고 있으면 빤히 그를 바라보는 시선이 둘 있었다. 로나와 뮤리앙이었다. 둘은 신기한 생물을 본다는 표정으로 그를 보고 있었다.


“뮤리 양.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가요?”


“잘 모르겠는데요...”


며칠 전 롬에게 별석을 심은 의사의 그 무구하고 음침한 의문이란. 롬은 발작적으로 노려보았다.


‘네가 모르면 어떡해. 미친년아!’


“에베베벱!”


틀어막은 손가락 사이로 자꾸만 소리가 나왔다. 롬은 자꾸만 멋대로 움직이는 입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자기 몸인데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공포, 그리고 뒤에는 말할 수 있다는 기쁨과 슬픔이 버무려진 묘한 기분이 잇따랐다.


“후히... 일단 뇌손상의 일종 같은데.”


뮤리앙은 냉정하게 그런 판단을 내놨다. 롬은 눈을 부라렸다. 무슨 뇌손상? 롬은 자기가 기절한 사이에 뭔 짓을 한 건가 싶었다. 그러면 로나가 눈길을 슬쩍 피하고선 말했다.


“아하하. 조그만 사고가 있었답니다. 괜찮아요. 여기 있는 뮤리 양이 잘 처리했으니까요?”


“그, 그래도 이건 대단한 발견이야. 내가 잘못 찌른 곳이 말을 담당하는 부분이었던 걸까아...? 하흐흣!”


로나의 옆에서 뮤리앙이란 여자는 기묘한 웃음으로 고양감을 내고 있었다. 손바닥이나 주먹으로 한 대 올려치고 싶은 반응이었다. 롬은 결국 입을 봉하고 있던 손을 풀었다.


“웃어! 우서!? 무친련아...!”


“힉!?”


뮤리앙은 겁을 먹고는 물러났다. 순간 그의 입으로 튀어나오는 엉성하지만 또렷한 공용어에 사람들의 눈이 점이 됐다. 롬은 한 대 쥐어박으려다가 다시 입을 틀어막았다. 멋대로 나불대는 입에 죽을 맛이었다. 말하고 싶지 않은데 자꾸만 입으로 속내가 튀어나왔다.


로나는 롬과 뮤리앙 사이에 서더니 손가락을 펴보이곤 말했다.


“롬? 왜 자꾸 입을 틀어막는 건가요? 괜찮아요. 여기 있는 사람들은 다 이해한답니다. 갑자기 말하게 된 건 당황스럽겠지만 익숙해질 거라고요?”


로나는 상냥하게 북돋았다. 그에 롬은 우는 눈길이 되고는 입에서 손을 뗐다.


“유녀! 아론... 범죄자 새끼...!”


“...예?”


론은 손사래를 치곤 말했다.


“입 맘대로!”


다시금 봉해진 입을 붙잡고서는 롬은 손을 내저었다. 자기 입이 마음대로 안 된다는 제스처에 여자 둘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내용은 둘째 치고. 뮤리 양? 무슨 문제인 것 같나요?”


“자, 잘은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말이 본인의 의지랑 관계없이 계속 튀어나오는 것 같네요. 발작처럼...”


“그러니까 자꾸만 속마음에 나온다는 말인가요?”


이번에는 로나가 롬에게 물었다. 그에 롬은 눈물을 머금고는 끄덕였다. 어떻게 할지 모르겠다는 눈치에 로나는 턱을 괴고는 말했다. 빤히 바라보더니 다가온다. 그에 뭔가 싶어서 롬은 그녀를 바라봤다. 로나가 그를 들여다보았다.


“흐음.”


휙!


순간 롬의 손을 기습적으로 끌어내린 로나가 기습 질문을 해댔다.


“소문대로 엘리스 백작님이랑 키스는 했나요!?”


“-입 부드러! 과일 냄새!”


“꺄앗!♪”


소녀 같은 비명을 내는 로나의 손을 빼냈다. 발작적으로 움직이는 입을 다물었다. 근데 그게 마음대로 되질 않았다. 롬은 무심코 그때 기억이 떠올랐다. 코끼리를 생각하지 말라고 하면, 무슨 생각이 나겠는가? 바로 코끼리 생각이 나버린다.


“혀, 혀도 넣...! 끄아악!?”


철푸덕.


벙어리 롬에서 떠벌이 롬이 되어버린 그는 발작적으로 몸을 뒤틀었다. 옆으로 철푸덕 엎어진 그는 입을 손바닥으로 쳐댔다. 앞 이빨이 북이라도 된 것처럼 얼얼했다.


그러고 있으면 또다시 소악마의 속삭임이 귓가로 다가왔다.


“엘리자 님은요? 뭐 없나요?”


“으으읍!”


로나의 질문이 괴롭다. 자꾸만 지껄이려는 입을 막아선 롬은 생각의 방향을 틀어버렸다. 그러고 있으면 로나가 키득거리면서 롬의 손을 잡아 빼려고 했다.


그렇게 남정네와 유녀 같은 유부녀가 엎치락뒤치락 하는걸 보고 있던 의사는 생각했다.


‘이럴 때가 아닐 텐데...? 우리 갇혀있는 거 아닌가?’


뮤리앙의 생각대로 그들은 지금 이 지하서고의 한 구석에 갇혀있었다. 무슨 용도로 설치한 건지 알만한 공간이 있었다. 두꺼운 철로 된 문과 아무것도 없는 방에는 사슬과 족쇄들만 벽에 붙어있었다.


방 안을 흐릿하게 비추는 발광석이 없었다면 짙은 어둠이 그들을 삼켰을 거다.


“...”


의사가 멀거니 벽에 등을 붙이고 쪼그렸다. 그러고 있으면 롬이 로나의 팔을 붙잡고는 밀어내고 있었다. 덕분에 그 나불대는 아가리가 열려있었다.


“하지 마...! 자매... 상황 좀...!”


“아, 그랬지요.”


로나는 떨어졌다. 그리고 작게 맺힌 땀을 닦아내고는 그녀가 입을 열었다.


“체감상이지만... 수술하고 하루 정도 지났거든요?”


자초지종이 그녀의 입으로 새어나왔다. 그건 롬이 주먹에 얻어맞고 기절한 시점부터 시작되었다.


이야기가 갈수록 롬의 눈이 점이 되고 있었다. 요컨대 이런 얘기였다.


엘리스의 주먹에 얻어맞고 기절한 롬은 꼼짝없이 갇히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겸사겸사 중간에 수술도 받고, 뇌 좀 찢어지고. 그런 식으로 여기에 갇혔다는 말이다. 이 환장할 정도로 묘한 조합들과 함께 말이다.


어째서 이런 일이 생긴 건지 알았다. 엘리스가 했던 말들이 맴돌았다. 잃는 것도 방해받는 것도 싫다고 했던가.


“저는 상황을 보고 몰래 빠져나가려고 하다가 잡혀버렸네요. 음, 조금 곤란해졌어요.”


로나의 말에는 곤혹스러움이 묻어나있었다. 그런 식으로 깔끔하게 이야기가 진행될 수 있는 걸까. 황망한 심정과는 별개로 롬은 입을 벌렸다.


“레이체엘...!”


비틀거리면서 일어섰다. 그리곤 방의 유일한 출입구에 다가가서 손으로 문을 두드렸다. 두꺼운 철문을 두드리자 그 충격이 고스란히 돌아와 골이 울리는 것 같았다.


“레이첼!”


쿵쿵!


부르는 목소리와 소음이 거대한 지하서고에 울렸다. 작든 크든, 그 소리가 바깥에 있는 여기사에게도 닿았다. 그녀는 앉은 자리에서 꿈쩍도 하지 않았다. 들리지 않는다는 듯.


그녀는 검을 옆구리에 낀 채로 지하서고의 출입문을 지키고 있었다. 넘어진 책장을 의자 삼아 그랬다. 그리고 그 옆에는 예의 로맨스 소설이 중간 정도에 펼쳐져 있었다.


“...”


기척은 멀었다. 롬은 부르기를 그만뒀다. 철문에서 돌아서자 뒤에서 로나가 멋쩍게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사실 롬이 깨어나기 전에 몇 번 불러봤지만 반응이 없더라고요. 화장실이 가고 싶다고 꿰어도 봤지만. 큼큼.”


로나는 방 한구석을 가리켰다. 그러자 거기에는 양동이가 몇 개 있었다. 롬은 그걸 보고선 기함을 토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일 개잘해... 개 깐깐...”


대충 토막 난 본심이 입으로 튀어나왔다. 아주 잠깐이나마 배신자 팀에 있던 동료다웠다. 롬은 제 입에 재갈이라도 물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입을 틀어막고는 벽에 붙어 미끄러져 내렸다. 가만히 앉아서 조금 쉬기로 했다.


그렇게 숨을 고르고 있으면 로나가 뮤리앙에게 대화를 시도하고 있었다.


“뮤리 양. 알레르기는 괜찮나요? 예전에 사교회에서도 고생했었잖아요.”


“네, 넵. 후히힛... 그, 그게 예전에 주셨던 손수건 아직 가지고 있는데에...”


“어머나. 그래요? 후후.”


도란도란 이야기하는 두 여자의 말에는 긴장감이 없었다. 갇혀있는 상황과 서로 입장차를 고려하지 않은 나사 빠진 대화가 오갔다. 분명 한쪽은 납치당한 사람이고 한쪽은 납치 방관자가 아니던가?


롬은 무심코 중얼거렸다.


“왜? 친함...?”


가린 손 안에서 어이없다는 목소리가 울렸다. 새삼 듣고도 자신의 목소리가 낯선 롬이었다. 이제껏 멍청하고 어눌한 발음이 나왔는데. 그는 이 갑작스러운 상황에 머리가 어지러웠다. 그러고 있으면 여전히 로나와 뮤리앙의 대화가 귀에 밟혔다.


“그, 그 로오나 님은 왜 잡혀오셨어요?”


“응? 잡혀온 게 아닌데요?”


“네?”


“그러니까 지금 잡혀있긴 한데요. 후후.”


로나는 간단하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그러자 뮤리앙의 눈이 빙글빙글 혼란스러워졌다. 보라색 계열의 영애가 말을 더듬었다.


“후히? 저, 저기 있는 남자의 계획을 도우려고요?”


“예, 그렇답니다. 롬은 자매들끼리 싸우는 게 마음에 안 들었나 봐요.”


“다 마음에 안 들어!”


빽 하고 사족이 끼어들었다. 점점 더 말할 때마다 입이 풀리는 듯했다. 발작적으로 나오는 것만 빼고.


꽥 하니.


모이는 시선에 롬은 양해를 구하곤 자기 입을 다시 봉했다. 로나와 뮤리앙은 다시 서로를 바라보았다.


“어, 괜찮나요? 이런 걸 저한테 말해주셔도? 저, 저는 승천자 님의 의사인데요...?”


“같이 잡혀 있잖아요? 그러는 동안에는 동료나 다름없어요~”


“도, 동료. 흐히히힛.”


로나의 말에 논리는 없었지만 설득력은 있었다. 음침한 외톨이 한정으로, 로나의 말은 꽤 치명적인 모양이다. 뭣도 없는 말로 사람을 구워삶고 있었다.


‘동료. 동료라.’


롬은 머리를 굴렸다. 그런 키워드가 맴돌았다. 여기에 꼼짝없이 갇히게 된 그는 결국에 바깥에 있는 여자를 설득해야함을 깨달았다.


꽉 막힐 정도로 아무 반응도 하지 않는 여기사의 반응을 끌어내는 방법. 그 방법을 생각하다가 떠오르는 사람이 있었다.


음유시인 멜.


아무래도 그 녀석은 그 떠들기 좋아하는 입으로 나불댔을 거다. 듣기 좋은 말과 유혹으로 그녀를 구워삶았을 테지. 현혹과 기만은 음유시인의 장기인 것처럼 그랬다.


설득이라. 잘 모르겠지만 그는 벌떡 일어섰다.


그는 그런 재주는 없었다. 다만, 그녀가 신경 긁힐 말은 알고 있었다. 다시금 철문으로 걸어가는 모습을 여자 둘이 바라보았다.


문에 난 조그만 창살로 입술을 턱 받치고는 아가리를 해제했다.


“야...이! 배신자 앞잡이 년아...!”


사람을 긁는 법. 그 사람의 치부에 대고 긁어대자. 롬이 벙어리일 때나, 지금이나 잘 하는 것인가 싶었다. 이러면 반응이라도 하지 않을까.


“이..제와서 충신인 척...! 안 통해! 울보야!”


롬은 재차 입을 열었다. 뭐라도 머리에 떠오르는 말이 입으로 나오게 내버려두었다. 그런게 있을까 싶어서.


“가슴도 작은 게...!”


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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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8 막간 24.09.09 11 1 9쪽
157 우는 소리 24.09.06 10 1 9쪽
156 우는 소리 24.09.05 8 1 11쪽
155 우는 소리 24.09.04 11 1 16쪽
154 방문자들 24.09.02 10 1 17쪽
153 하얀 거절 24.08.30 12 1 17쪽
152 하얀 거절 24.08.29 10 1 10쪽
151 하얀 거절 24.08.28 14 1 16쪽
150 검고 하얀 그대들에게 24.08.26 12 1 11쪽
149 날개 없는 자 24.08.26 10 1 11쪽
148 날개 없는 24.08.26 6 1 14쪽
147 이어지는 길 24.08.26 6 1 14쪽
146 이어지는 길 24.08.26 5 1 11쪽
145 죽거나 살거나 24.08.21 7 1 14쪽
144 죽거나 살거나 24.08.21 7 1 14쪽
143 입으로 내는 것 24.08.16 9 1 10쪽
142 벌레들의 합창 24.08.16 9 1 17쪽
141 벌레들의 합창 24.08.16 8 1 11쪽
» 벌레가 우는 아침 24.08.12 10 1 11쪽
139 벌레가 우는 아침 24.08.12 9 1 14쪽
138 벌레의 다리 24.08.09 12 1 12쪽
137 어스름 24.08.09 12 2 12쪽
136 하울링 24.08.02 12 2 10쪽
135 저항과 혼란 24.08.02 14 1 14쪽
134 도망치고 전진하는 자들. 24.08.02 12 1 15쪽
133 늑대와 마법사. 그리고 황금 24.07.29 14 1 11쪽
132 밤을 타넘는 자들 24.07.26 16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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