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게 도망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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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안새
그림/삽화
피안새
작품등록일 :
2021.03.24 00:00
최근연재일 :
2024.09.13 21:24
연재수 :
16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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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36
추천수 :
180
글자수 :
967,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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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6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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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날개 없는 자

DUMMY

이법사 위니아, 그녀는 눈꺼풀을 파르르 떨었다. 화상 입은 자국이 묘하게 화끈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내리는 비가 그 열기를 식히려들지만 먹히지 않는 듯했다.


“자살이라도 하려는 건지...”


그녀는 탄식했다. 여러 번 말하면 입 아플 정도로 헤르미아의 일부가 난장판이 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예의 벙어리가 있었다.


아니, 이제는 벙어리가 아닌가. 말문이 열리더니 대뜸 포효하고 욕해대는 정신병자를 보는 기분이었다. 그녀는 관찰안(비수스 무투아)으로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롬과 챔피언의 격돌은 기가 막히다 못해 질리기까지 했다.


본래라면 상대가 되지 않을 정도로 압도적인 무력 차이다. 들개와 사자 정도의 차이. 아니, 사자 이상의 괴물일 거다. 그런데도 벙어리가 몰고 온 파란을 보면, 왜 꿈속의 여인이 그를 마음에 들어 하는지 알 것도 같았다.


코마드는 폭력의 신에게 총애 받는다면, 롬은 더 지독한 무언가에게 집착 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책이라도 있는 건가요?”


위니아는 입술을 깨물었다. 관찰안에 롬이 사슬을 타고 올라가는 게 보였다. 비바람이 세차고 폭풍으로 번지는 와중에도 롬은 꾸준히 올라갔다. 그 높이가 아득해질 정도로 제 몸을 끌어당겼다.


그 와중에 부유섬의 사슬은 홰쳤다. 출렁이는 사슬은 어디로 향할지도 모르면서 토너먼트 지구를 휩쓸고 있었다.


롬은 바람에 흔들리면 사슬에 발을 끼워 넣고 버텼다.


포션의 영향 탓인지 초인적인 근력으로 올라가곤 있지만, 반대로 저러다 개죽음 당할 거라는 직감이 요동쳤다. 그리고 위니아가 올려 보낸 눈알도 궂은 날씨에 이리저리 흔들렸다.


그렇게 위니아가 사태를 관망하고 있을 즘이었다. 어지러움과 멀미를 동반하는 시야에 뭔가가 잡혔다.


“챔피언. 당신도 제정신이 아니군요.”


롬이 매달린 아래에서 무서운 속도로 올라가는 인영이 있었다. 온몸에 상처가 가득한 채로, 원숭이처럼 등반을 하고 있는 코마드였다.


달라붙어있던 기사들을 재끼고 나타난 모습은 광기어린 집념마저 느껴졌다.


“진짜로...!”


위니아는 본래 욱하는 성격이 아니지만 요즘 부쩍 화가 많아졌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원인은 롬이었다. 마법사는 허공에 날려 보낸 시야를 되돌렸다.


그녀는 골목에서 빠져나왔다. 그리곤 혼란스럽게 요동치는 부유섬을 노려보았다. 롬과 경기장. 자매들. 그 거리와 가능성을 머릿속으로 우겨넣었다.


불가능한 일을 해내게 하는 게 마법이라지만. 현실의 영역에 마법사들은 갇혀있었다. 가끔 그 벽을 깨부숴야 할 때도 있는 거겠지.


내 편이라고는 없는 이 외로움과 절망이 그녀를 엄습했다. 다행히 그녀의 편이 하나 있긴 했다. 내리는 거센 비가 그녀를 도울 것 같았다.


.

.

.


“허억. 허억.”


롬은 거칠게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얼마나 자신이 올라왔는지 확인하기 위해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읏!?”


그 바닥을 내려다본 롬은 창백해졌다. 행여나 사슬에서 미끄러질까 매달렸다. 진짜로 오금이 저릴 정도로 높았다. 적어도 수십 미터 이상은 올라온 것 같았다.


“어, 엄마...”


순간 입에서 자연스레 나오는 소리란 그런 거였다. 자신한테 엄마가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롬은 울먹이면서 자신을 욕했다. 미쳤다고 여기까지 올라온 자신은 미친 게 분명했다. 사실 그렇긴 했다. 롬은 물약이 주는 고양감과 힘 때문에 반쯤 정신이 마비되어 있었으니까. 그렇다치더라도 공포를 느끼지 못하는 건 아니다.


심호흡하자 넓게 뻗은 헤르미아가 보였다. 그리고 도시 곳곳에 이어진 사슬들도. 한쪽이 늘어진 빨랫줄처럼 보이는 사슬들이 출렁이는 게 눈으로 보였다. 그리고 그 중에는 끊어진 사슬들이 몇 개 있었다.


“아으으으.”


롬은 신음했다. 바람이 불자 몸이 흔들린다. 거기에 매달려있다는 것을 통감하면서 경기장을 찾았다. 그리고 바로 보였다. 매달린 상공에서 보이는 시야가 흔들리지만 경기장이 위에서 훤히 보였다.


사람들이 조약돌 크기로 보였다. 그 조약돌들이 엎치락뒤치락 거렸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경기장을 빠져나가려고 하는 혼란이 보였다.


휘익!


문득 롬이 매달린 시야에서 스치는 게 있었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낙하물들이 종류 구분 없이 떨어져댔다.


상황은 짐작했다. 부유섬이 기울고 있으니 당장에라도 대피하는 거겠지. 결투는? 그렇다면 중단인가? 거기에 생각이 미쳤지만, 눈에 들어오는 모습에 기함이 나왔다.


“왜 해!”


상공에서 흑백의 얽힘은 보였다. 부딪치고 얽히고, 서로에게 검을 찔러대는 게 보였다. 롬은 이를 악물었다. 이미 늦은 게 아닐까하는 탈력감이 몸을 덮쳤다. 사람들이 빠져나가는 혼란에서 자리를 지키는 점들이 있었다. 롬은 반쯤 굳어버린 머리를 억지로 짜냈다.


뭐라도 동기가 필요했다. 아직 늦지 않았다고 자신을 설득해야 했다. 그러면 여기서 제 발로 떨어질 용기를 낼 수 있을 테니까.


“로오오옴!”


바람에 스치는 거친 외침. 그리고 그건 그의 안에서가 아닌 바깥에서 들려왔다. 순간 깜짝 놀란 벙어리는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몰랐는데 밑에서 뭔가가 빠른 속도로 기어 올라오고 있었다.


“씹...!?”


롬은 치를 떨었다. 저 밑에서 코마드가 사슬을 타고 올라오고 있었다. 그걸 보자마자 그의 머리가 새하얘졌다. 동기부여고 뭐고, 지금 제일 위협적인 게 그를 쫓아오고 있었다.


생각이 엉킨다. 머리가 상황을 진단하고 있었다.


‘그래, 그렇겠지...! 내가 하는 건 너도 할 수 있겠다만. 도대체 어떤 정신머리를 장착하고 있는 거야!? 여기까지 왜 따라와. 미친놈이!’


“또라이가!”


머리는 복잡했지만, 입은 간단하게 축약했다. 롬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올라가자니 오금이 저리고, 기다리자니 코마다가 자신을 조각내서 밑으로 던져버릴 게 분명했다.


딱 그 꼴이었다. 곰을 피해 나무 위로 올라왔는데, 곰은 나무도 잘 탄다는 걸 뒤늦게 기억해낸 것.


‘제길...! 이것저것 따질 때가 아니야...!’


부유섬을 지탱하던 사슬이 용의 꼬리가 되어 헤르미아를 헤집고 있었다. 타이밍을 잡아서 경기장에 직격하면 미끄러져 내려갈 생각이었다. 거리가 모자란다면 도약까지 감행할 미친 짓까지 마음먹었다.


롬은 타이밍을 가늠했다. 격렬하게 움직이는 사슬의 끝을 보려고 애썼다.


“아오!”


그러나 바란다고 해서 사슬이 저 마음대로 움직이는 건 아니다. 롬은 코마드에게서 떨어지기 위해서 조금 더 올라갔다. 조금이라도 시간을 벌기 위해서였다.


휘이이!


바람이 세찼다. 그리고 손아귀가 미끌거리고 거대한 사슬에 걸고 있는 발에 힘이 빠졌다.


“허억! 허억!”


“도망치는 거냐아앗! 맞서 싸워! 난 너랑 싸우고 싶다고 어중이떠중이들이 아니라!!”


챔피언이 포효하면서 팔을 당겼다. 광기마저 느껴지는 그 집착에 롬은 이를 갈았다. 공포와 분노가 반쯤 뒤얽힌다. 그냥 미끄러져 내려가서 저 안면을 밟아버릴까 싶어서.


“퉷! 돼지새끼가!”


롬은 눈을 이글거렸다. 이제 추격자와의 거리는 이제 롬의 신장 세 개분으로 줄어들었다. 발 밑에 바로 보이는 그 얼굴에 롬은 침을 뱉었다. 그러나 쓰고 있는 투구에 제 얼굴에 침을 뱉는 격이었다.


“후웁...! 짜릿하군! 내가 살면서 너 같은 미친놈은 본적이 없어...!”


코마드는 사슬에 다리를 걸고는 몸을 활짝 폈다.


온 세상의 혼란을 즐겁게 맞이한다. 그렇게 상공에서 바람과 비를 맞고 있는 코마드의 꼴은 난장판 그 자체였다. 한쪽 눈에는 피를 흘리고, 갑옷과 몸에는 상처가 난자했다. 그럼에도 그는 결코 쓰러지거나 지치지 않았다.


오히려 더 살아있는 것 같았다. 전투에 미쳐있었다.


그에 비하면 롬은 만신창이였다. 기운이라곤 없었다. 호흡이 무겁고, 근육에는 힘이 빠졌다. 그리고 갑옷과 몸은 찌그러지고 피 흘리고, 뼈에 금이 간 것 같은 통증도 있었다.


아마 마꾼의 포션이 아니었다면 진즉에 사망했을 수도 있었다. 그조차 결국 목숨을 당겨쓰는 것이나 다름없지만.


“내가 미쳤지...! 왜 이 고생을!”


이쯤 되자 롬의 입에선 한탄이 나왔다. 코마드는 있다가 위를 바라보았다. 머리에 열이 올라 롬을 따라잡기는 했지만, 그에게도 궁금한 점 정도는 있었다.


“그렇군. 나도 묻고 싶어. 왜 이런 고생을 하는 거지? 너 하나가 어떻게 할 일이 아니야. 오랜 전쟁과 증오다! 음모나 모략 같은 건 관심이 없지만, 저 둘은 내가 보기에도 미치도록 사이가 안 좋다고!”


코마드는 강풍을 잡아먹을 듯 소리쳤다. 그에 롬은 성깔이 나서 눈을 부라렸다. 아래로 쭉욱 미끄러져 내려가 코마드의 안면을 짓밟았다.


콱!


그것을 코마드는 가볍게 잡아냈다. 발이 붙잡힌 롬은 발버둥치면서 헤르미아가 떠나가라 소리쳤다.


“그 사이가 안 좋은 게 꼽아서 그렇다...! 미친년들이 오해가 있으면 교통정리부터 하고 치고 박고 싸우란 말이야아아앗!”


들개가 짖어댔다. 그 거친 하울링은 늑대를 닮았으나 초라하고 비루했다. 미약하고 볼품없는 하울링, 이제껏 목소리를 내지 못한 들개의 목소리는 하찮다.


닿지 않는다. 결코. 그가 이제껏 내지 못했던 목소리처럼 그랬다. 늑대들을 움츠러들게 하고 동조하게 할 하울링이 아니었다. 진즉에 알고 있었다. 하지만, 롬은 그럼에도 흉포하게 중얼거렸다.


“둘 다 제일 불행한 척이나 하고 있지...! 서로가 서로의 비극인 줄도 모르고...!”


시시한 비극 따위는 싫다. 하티와 농부의 이야기도. 그리고 전하지 못한 이야기들도. 그리고 전한다 한들 닿지 않는 이야기도.


자매들의 비틀린 결투로 맺어지는 비극도.


그 방식이나 방법이 마음에 안 들어서.


모두 엎어버리고 싶었다. 그들이 화해하든 못하든, 그건 그 이후의 일이었다.


콰릉.


번개가 쳤다. 그들의 시야가 한순간에 번졌다가 돌아왔다.


“씨바아아알! 그렇다면 다 좆 까라 해...! 다 패버릴 거니까아앗!”


롬은 사슬을 잡고 있던 사슬을 놔버렸다. 떨어지는 몸. 그리고 내지르는 발길질.


남은 발이 코마드의 안면에 작렬한다. 설마 거기까지 할 줄을 몰랐던 코마드는 당황했다. 얼굴로 치고 들어오는 롬의 무게와 힘이 만만찮았다.


그리고 그를 가장 떨게 만드는 건 그런 거였다.


롬, 그는 정진정명 최고로 미친놈이었다. 그게 너무 마음에 들어서 코마드는 웃었다. 이 미친놈이 자신과 함께 추락하려고 하는 모양이었다.


“크하핫!”


“아으으윽!?”


롬의 비명과 코마드의 웃음이 섞인다. 그리고 그들이 매달린 사슬이 거칠게 요동쳤다. 그건 폭풍이 만든 흔들림이 아니었다.


날개 없는 추락을 늑대들에게 밀어 넣는 조력이었다.


으지지직!


빗물과 땅에 고인 물들이 영도의 세계로 초대 당한다. 사슬의 끝을 붙잡는 빙하. 그것이 무자비한 압력으로 경기장으로 들이닥쳤다.


그리고 날개 없는 천사가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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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 막간 24.09.11 7 1 10쪽
158 막간 24.09.09 11 1 9쪽
157 우는 소리 24.09.06 10 1 9쪽
156 우는 소리 24.09.05 8 1 11쪽
155 우는 소리 24.09.04 11 1 16쪽
154 방문자들 24.09.02 10 1 17쪽
153 하얀 거절 24.08.30 12 1 17쪽
152 하얀 거절 24.08.29 10 1 10쪽
151 하얀 거절 24.08.28 14 1 16쪽
150 검고 하얀 그대들에게 24.08.26 12 1 11쪽
» 날개 없는 자 24.08.26 10 1 11쪽
148 날개 없는 24.08.26 6 1 14쪽
147 이어지는 길 24.08.26 6 1 14쪽
146 이어지는 길 24.08.26 5 1 11쪽
145 죽거나 살거나 24.08.21 7 1 14쪽
144 죽거나 살거나 24.08.21 7 1 14쪽
143 입으로 내는 것 24.08.16 9 1 10쪽
142 벌레들의 합창 24.08.16 9 1 17쪽
141 벌레들의 합창 24.08.16 8 1 11쪽
140 벌레가 우는 아침 24.08.12 9 1 11쪽
139 벌레가 우는 아침 24.08.12 9 1 14쪽
138 벌레의 다리 24.08.09 12 1 12쪽
137 어스름 24.08.09 12 2 12쪽
136 하울링 24.08.02 12 2 10쪽
135 저항과 혼란 24.08.02 14 1 14쪽
134 도망치고 전진하는 자들. 24.08.02 12 1 15쪽
133 늑대와 마법사. 그리고 황금 24.07.29 14 1 11쪽
132 밤을 타넘는 자들 24.07.26 16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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