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게 도망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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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안새
그림/삽화
피안새
작품등록일 :
2021.03.24 00:00
최근연재일 :
2024.09.13 21:24
연재수 :
16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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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
글자수 :
967,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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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8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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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쪽

하얀 거절

DUMMY

롬의 등장은 너무나 갑작스럽고 극적이었다. 덕분에 자리에 있던 모든 이들의 입이 굳어버렸다.


자극이 있다면 두개골 안의 뇌는 응당 반응해야겠지만, 눈과 귀로 들어오는 정보가 허용량을 초과해버렸다. 그 혼돈을 어루만질 깜냥이 아직 그들에게는 부족한 걸지도 모르겠다.


아니, 사실은 그보다 더 중요한 것에 정신이 팔려서 그랬다.


로열가드 하나가 목소리를 높였다.


“승천자시여!”


그 말에 퍼뜩 정신을 차린 이들이 상석을 살폈다. 꽤 널찍한 로열박스의 한편이 우지끈 내려앉아 지붕이 무너졌다. 그 여파가 왕이 앉은 자리까지 덮쳤다. 아니나 다를까. 왕의 의자가 넘어가고 잔해 같은 게 쌓여있었다.


순간 모든 이들의 눈이 번쩍였다. 그 목소리 하나로 그들의 머리가 움직였다.


“저 역적 놈을 잡아라!”


그리고 혼돈은 위협으로 정의 당한다.


롬은 어질어질한 머리를 흔들었다. 정신이 흐릿했다. 떨어진다고 생각할 즘에는 하늘이었다. 그리고 코마드와 공중에서 엎치락뒤치락하고서 여기까지 떨어진 것이다.


착지, 아니 추락한 것까지는 좋았지만 온몸이 다 박살날 것 같았다. 만약 밑에 깔린 코마드가 아니었다면 롬은 곤죽이 났을 거다. 그리고 어떤 마법사의 도움이 없었다면 더더욱.


“어...?”


그 이후에는 결투신청이랍시고 떠든 건 기억났다. 하지만, 작금의 상황은 롬의 인지를 더 초월해버렸다.


“샤를롯?”


롬은 자신이 어디에 떨어진 건지 확인하고는 몸을 떨었다.


채앵!


온 사방에서 치켜드는 흉흉한 병장기가 롬을 찢을 듯이 다가왔다.


롬은 한순간에 포위당했다. 그 끝에 언제 찔려도 이상하지 않겠지만. 로열가드들은 롬의 발밑에 깔려있는 형체를 보고는 이를 갈았다.


“챔피언께서...! 보통 놈이 아니다! 모두 승천자 님을 보호하는 데 집중해라!”


“...?”


롬은 오해가 깊은 것 같아서 입을 열었다.


“잠깐! 이, 이건 말하자면 정당방위...!”


잘만 굴러가던 입이 덜컥 덜컥 막혔다. 걷는 길 도중에 턱을 만난 것 마냥.


정당방위. 정당방위라. 그것 참 씨알도 안 먹힐 말 같았다. 뒤늦게 롬은 머리가 굴러갔다. 본래 계획과는 많이 어긋나게 된 박자에 무심코 말을 뱉었다.


“아, 망했다.”


여기서는 샤를롯이 왕이다. 그러니까 진짜 왕이지만, 이 모든 상황을 주무를 힘이 그에게는 있다는 말이었다. 롬은 식은땀을 흘렸다. 피와 비가 섞여 땀인지도 모르겠지만, 온몸이 차가워지는 느낌만은 알았다.


그리고 로열박스의 바깥의 외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관중석, 그러니까 헤르미아의 기사로 선발된 이들에게 내준 플랫폼에서 뛰어내린 아론은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기사단이 서로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는 미치고 팔짝 뛰고 싶은 상황이었다.


‘곱게 나와도 모자랄 판에 무슨 짓이야!?’


이러면 토너먼트의 영예를 거머쥔 영예고 뭐고 소용없었다. 아론은 모골이 송연해졌다. 뭐라도 목소리를 내야하는데 나오지가 않았다.


그 놈은 그 뭐시기. 그 뭐냐.


그런 식으로 말문이 막힌다. 아론은 실어증에 걸린 것 마냥 입만 뻥긋댔다.


꾹꾹!


이 상황을 타파할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다. 오해라고 말한들 현장범의 말을 들어주지도 않을뿐더러, 롬은 정말로 현장범이 아닌가?


심지어 롬은 발밑에 깔린 코마드의 신체를 쿡쿡 밟아댔다. 답답하니 일어나서 설명이라도 해보라고.


“엎드려라! 감히 승천자를 해하려는 자 곱게 죽지는 못할...!”


[그만]


일순 무형의 힘이 덮쳤다. 롬을 위협하던 로열가드의 입이 굳어버렸다. 그건 귄위에 짓눌렸다기보다는 뒤틀림이었다. 로열가드들이 몸을 부들댔다. 심지어 로열박스에 있던 다른 귀족들도 인사들도 마찬가지였다.


롬은 머릿속이 찌릿 거리는 느낌을 받았다. 살짝 어지러움이 솟았다. 롬은 기시감이 들었다. 받아본 적 있는 느낌이었다. 그래. 이코였다. 그 옛 마녀. 머릿속에다 대고 소리를 내보내는 그 목소리.


텁.


넘어진 의자의 팔걸이를 잡고 일어난다. 그렇게 쓰러져 있던 샤를롯은 비척비척 일어섰다. 비에 젖자 가녀린 윤곽이 드러났다. 젖은 머리카락이 황금의 색깔을 더욱 빛낸다. 샤를롯은 흘러내린 왕관을 밀어 올렸다.


“...”


빛이 들어가면 부서져 나오는 눈으로 롬을 응시한다. 역시나 사람같지 않은 눈이다. 롬은 그것을 보면서 침을 꿀꺽 삼키며 생각했다.


“닮았어.”


“누구랑?”


“꿈속의 여인. 미리암.”


박박.


또 입이 멋대로 움직였다.


당황한 롬은 제 입을 틀어막으려 했다. 그러나 이음새가 일그러진 투구에 갇힌 터라 막을 수가 없었다. 그저 투구만 손으로 박박 긁을 뿐.


순간 샤를롯의 눈이 확장됐다. 그건 마주보고 있던 롬만 알 수 있는 변화였다. 샤를롯은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불편해졌다.


눈앞에 있는 자의 속내를 알 수가 없어서.


그리고 무슨 생각으로 여기까지 온지 알 수가 없어서.


그리고 그 이름이 무얼 의미하는지 알까 싶어서.


볼 수 없는 타인은 그래서 벌레 같다. 샤를롯은 소름이 타고 오르려는 팔을 매만졌다. 그리곤 결투장 아래의 자매들을 바라보곤 말했다.


“결투라고? 이미 끝난 거 같은데.”


깊게 베인 엘리자는 흐릿해보였다. 기력이 쇠해서 땅을 짚고서 로열박스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 옆에서 엘리스가 로열박스 위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 모든 혼란을 딛고 승천자는 롬의 이야기를 꼬집었다. 로열가드와 사람들의 얼굴이 묘해졌다. 그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샤를롯은 알았다. 그러나 알 바 없다. 왕은 자기 얘기만 했다.


“한명이 승리하고 한명은 패했어. 이게 그 결과야. 넌 저 자매들의 선택을 존중하지 않을 셈이야? 내가 말했잖아. 넌 피 흘리는 자를 위로해주라고. 그게 네가 할 일이었잖아.”


공중정원의 말들을 상기시킨다. 샤를롯은 그 날 진심으로 롬에게 조언해준 것이었다. 그들에게서 증오를 적출할 테니 , 너는 남은 자들을 위로함이 옳다. 그런 말이었다.


완결 짓는 비극에서 일어서는 법이다. 절망 없이 희망은 없고, 증오 없이는 사랑도 없으니까. 조화란 그런 법이다.


샤를롯은 드물게 길게 말했다. 벌레와 소통하는 법을 샤를롯은 몰랐다. 이전에 알고 있었다 하더라도.


“나는 선택을 강요했지만, 서로에게 칼을 뻗은 건 그들의 선택이었어. 그들의 아픔과 증오를 끝내기 위한 선택.”


샤를롯은 목을 축였다. 빗물이 입술 사이로 들어오는 게 느껴졌다.


“그러니까 눈감으렴. 이 무례도 난리도 모두 용서해줄 테니까.”


승천자는 실로 관대하고 자비로운 처사를 논했다. 그에 자연스럽게 고개가 조아려질 것 같았다. 권위와 관용. 그리고 혜안. 그 모든 것을 헤아렸다.


승천자를 지키는 자들에겐 묘한 마음이 서렸다. 그 관대함을 칭송하면서도 어찌하여 왕은 이 침입자에게 관대한 것인지.


그리고 롬도 생각에 잠겼다. 결국 생각은 입 밖으로 자연스럽게 나와 버려서.


“샤를롯 님이 맞습니다. 결국 자매들의 선택이었고 벌어질 일이었습니다. 쌓아온 증오와 아픔이 없어지는 건 아니니까.”


“그래. 그렇다면...”


내려가 보라.


샤를롯은 그렇게 말하려고 했다. 그러나 롬은 무릎을 꿇었다. 철퍽하고 비에 젖은 바닥에 그가 흘린 피가 넘쳐났다.


철퍽.


가장 낮은 곳에서 그는 가장 높은 자에게 입을 열었다.


“그러나 눈감을 수는 없습니다. 자매들의 친구로서. 이름뿐인 기사로나마.”


롬은 서약에 대해 떠올렸다. 엘리스 바타니아가 자신에게 했던 서약이 있었다.


[그대 들으라. 기사되려는 자여.]


자신은 기사인가? 아마도 롬은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정의를 행함에 있어 주저하지 말지어다. 망설임은 미혹을 낳고 미혹은 정의를 흐리게 함이라.]


무어가 정의란 말인가. 그건 결국 맞서는 자들의 독단이 아니던가.


[그대 선을 베풂에 아끼지 말지어다. 이는 주어진 숱한 악을 씻어내는 강물이 되게 함이라.]


자신은 이곳에서 악이었다. 위정자로서의 선을 베푸는 승천자에게 반하는.


그리고 가장 마지막에 남는 말이 있었다. 롬은 그 부분에 대해서는 끄덕일 수 있었다.


[그대 진실 할지어다. 어떤 삿됨과 못남조차 꾸미지 말지어다.]


그게 그를 기사로 만드는 덕목 중 하나라면. 그는 기사라고 해도 될 것이다.


그래서 롬은 이곳에 왔다. 그들의 기사로서 자매들을 쓰러뜨리기 위해. 그가 원하는 건 그들이 진실 되길 바랐다. 그 마음이 닿지 않더라도.


“신성한 결투 아래. 그 정당한 권위 아래, 자매들에게 결투를 신청합니다.”


“그 말을 내가 들어줄 거라 생각해?”


“저는 샤를롯 님을 설득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감히 선택을 강요할 수는 있습니다. 제가 청하는 결투를 허하지 않으신다면. 자매들의 결투조차도 없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결투재판의 전제 조건. 기사된 자의 분쟁은 결투로써 해결한다. 또한, 무죄인 자가 하늘 아래서 승리하리라.


그리고 성사된 결투에 이의를 제기할만한 사람이 있었다. 바로 바타니아의 기사가 된 롬이었다. 그건 엘리스가 내린 반쪽짜리 작위지만, 그는 지금 엘리자에게 묶여있는 몸이었다.


그러니까 그녀를 모시고 있으니 신하나 다름없지 않은가? 애써 롬은 그렇게 자신을 설득했다.


부스럭.


롬은 엉망이 된 갑옷 아래에서 휘장을 꺼내 들어보였다.


하나는 엘리스가 전해준 수여기사의 휘장. 그리고 하나는 로나가 옛적에 전해준 가문의 문장이었다. 신하된 자의 문장을 가지고 있으면 효력이 있다. 그것을 지녔다는 것 자체로.


샤를롯은 그것을 내려다보았다.


그것들은 의미가 없었다. 그저 이름뿐이 명예이자 작위 아닌가. 샤를롯은 무언가를 더 말하려고 했다.


“승천자시여! 송구하오나 그자는 바타니아의 기사 맞사옵니다! 묵기사단의 단장인 제가 보증할 수 있습니다!”


순간 아래에서 목소리가 울렸다. 그 모든 압력을 딛고서 짜낸 목소리. 아론이었다. 헤르미아의 기사란 영예를 거머쥔 그가 입을 열었다. 순간 샤를롯의 눈길이 아래로 쏠렸다. 그들 마음에 지닌 속셈을 읽으려 들었다.


모든 잡념과 생각이 눈으로 들어온다. 샤를롯은 눈살을 찌푸렸다. 뭐라고 말하기 전에 경기장의 한편에서 또, 목소리가 울렸다.


“그자는 엘리스 백작님께 기사 작위를 부여받았습니다! 미천한 저 또한 그자의 정당성을 보증할 수 있습니다.”


순간 모두의 시선이 돌아갔다. 엘리스는 헛웃음을 냈다. 레이첼과 롤랑이 서로를 부축하며 경기장에 복판에 들어섰다.


“청기사 에든은 그를 보증하옵니다!”


“청기사 패치 또한 보증합니다!”


순간 토너먼트장 안에 있던 이들의 눈들이 얽혔다. 승천자를 모시는 자들과 바타니아의 기사들. 그리고 자매들. 롬이 있었다.


순간 묵기사단의 진영도 술렁거렸다. 그 사이에서 누군가가 번쩍 손을 들고는 말했다.


“묵기사단 부단장, 알버트 또한 그를 보증하옵니다!”


한동안 귀머거리였던 1기단 부단장이 동조했다. 순간 아론은 뭐라고 못할 기분이 되었다. 모시는 자에게 불충을 저지르는 건 자신으로 족할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헌데 수많은 기사들이 입을 열었다.


-하옵니다! 하옵니다!-


그들은 이 결투가 잘못됐다는 걸 내심 체감하고 있었다. 다름 아닌 전장에서 칼을 겨누던 그들이었다. 그들의 싸움은 그들이 마무리해야 함이 옳았다. 그 모든 것이 다른 자들의 손에 결정지어지고, 흩어지다니.


그건 숲을 이루는 두 마리의 군세들이 용납할 수 없는 것이었다.


또한, 그들의 대장들이 솔선수범하여 불충을 저지르고 있지 않던가. 재미를 위해서라도 마땅히 따라야 할 일이었다.


“...허.”


흑기사 롤랑은 헛웃음 냈다. 작게나마 노기사의 뺨에 붉음이 서렸다. 살아있을 동안 이런 모습을 보게 될지 몰랐기 때문이다.


그리고 늙은 기사조차 입을 열었다.


“옛 공작령의... 흑기사. 롤랑 또한 보증하옵니다.”


롬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미약한 벌레들이 짖어댔다. 우직하고 우직하게. 촛불 같았던 그의 의지와 목소리가 힘을 얻었다.


순간 로열가드와 사람들이 긴장했다. 분위기가 심상치않게 변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승천자에게 눈길을 돌렸다.


승천자의 명을 기다렸다.


이자들의 싹을 잘라버려라. 그런 압력을 가하신다면 따르겠나이다. 그들은 그런 불사의 각오를 새겼다.


롬은 감히 샤를롯을 올려다보았다.


높은 곳에서 샤를롯의 눈이 이채를 띄었다. 그러나 그건 너무나 순식간이라서 롬 말고는 보지 못했다.


“쿨럭. 왕이시여...”


순간 롬은 화들짝 놀랐다. 바로 옆에서 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건 롬이 가장 듣기 두려운 목소리기도 했다. 엉거주춤하게 있다가 일어설 뻔했다.


부스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롬이 만들어낸 잔해에서 코마드가 비척비척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으으... 저릿하군.”


코마드는 머리를 짚고 일어섰다. 그 모습에 롬은 창백해졌다. 챔피언의 기상에 로열가드들은 안도했다. 챔피언이 일어났으니 묘한 경기장의 분위기를 제압하는 데 도움이 될 거라 여겼기 때문이다.


롬은 바짝 긴장했다. 코마드가 당장에라도 그의 머리를 쳐날리지 않을까 걱정이 됐기 때문이다.


챔피언은 무릎 꿇은 롬을 흘기더니 샤를롯의 곁에 섰다. 꼴이 말이 아닌 그는 뒷목을 문지르곤 한숨을 푹 쉬었다.


“왕이시여. 당신의 챔피언이 패했습니다. 저 또한 그가 강력한 기사임을 보증할 수밖에 없군요.”


“...”


샤를롯은 코마드를 바라보았다. 그 모든 생각을 읽은 샤를롯은 눈살을 찌푸렸다. 이 모든 파괴의 주역이 눈앞의 벌레뿐만이 아니라는 걸 알아서 그랬다.


샤를롯은 코마드에게 말했다.


“조용”


“...큼”


심기가 불편해 보이는 왕에 코마드는 입을 다물었다.


조화와 통제. 그런 것을 추구하는 샤를롯은 눈살을 찌푸렸다. 이 모든 것이 향하는 하나의 결론.


그건 그가 벌레에게 물렸다는 거였다.


“...바타니아여. 그대들은 이 자의 결투가 정당하다 보는가?”


순간 마지막 답은 자매들에게로 향했다. 검고 하얀 것들이 서있고 무릎 꿇고 있었다. 엘리스는 주먹을 꾹 쥐었다. 검자루를 잡은 손이 떨렸다. 비에 젖은 머리카락 아래로 그녀의 붉은 눈이 흔들렸다.


당장에라도 엘리자의 목을 찌르려던 손이 있었다. 그것이 가로막혔다.


다름 아닌 그에게 그랬다. 그리고 바람 앞의 등불처럼 그는 거대한 존재 앞에 서있었다. 그녀를 위해, 그리고 그녀가 아닌 누군가를 위해서.


그건 배반감과 안도감을 동시에 동반하는 묘한 기분이었다. 아주, 아주 슬플 정도로 엿 같은...


뭔가 입을 열려고 한 엘리스였다. 그러나 먼저 입을 여는 사람이 있었다.






“정당하지 않사옵니다.”


엘리자였다. 하얗고 하얀 그녀가 빗속에서 흐릿한 채로 말했다. 그리고 자신의 동생인 엘리스를 바라보았다. 순간 시야가 얽혔다. 엘리스는 흠칫했다. 푸른 눈이 이글거렸다. 더할 나위 없이 그녀를 노려보고 있었다.


당장 자신을 끝내라고. 이 모든 촌극을 뒤로하게 만들라고. 자신은 부서지기위해서 여기 왔노라고 말이다.


“엘리... 우리 사이에 누구도 낄 필요 없어.”


옛 애칭. 그렇게 서로 부르던 적이 있었다. 엘리자는 하얗고 피에 물든 채로 말했다.


“아무도 끌어들일 필요는 없잖아. 안 그래?”


그건 매달림이었다. 그리고 거절이었다. 이 모든 방해에 대한. 엘리자는 공상 이야기를 떠올렸다.


하티와 농부. 그녀는 농부가 되기 위해서 여기 왔다. 사랑하는 자신의 동생에게 죽기 위해서.


비가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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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8 막간 24.09.09 11 1 9쪽
157 우는 소리 24.09.06 10 1 9쪽
156 우는 소리 24.09.05 8 1 11쪽
155 우는 소리 24.09.04 11 1 16쪽
154 방문자들 24.09.02 10 1 17쪽
153 하얀 거절 24.08.30 12 1 17쪽
152 하얀 거절 24.08.29 9 1 10쪽
» 하얀 거절 24.08.28 14 1 16쪽
150 검고 하얀 그대들에게 24.08.26 12 1 11쪽
149 날개 없는 자 24.08.26 9 1 11쪽
148 날개 없는 24.08.26 6 1 14쪽
147 이어지는 길 24.08.26 6 1 14쪽
146 이어지는 길 24.08.26 5 1 11쪽
145 죽거나 살거나 24.08.21 7 1 14쪽
144 죽거나 살거나 24.08.21 7 1 14쪽
143 입으로 내는 것 24.08.16 9 1 10쪽
142 벌레들의 합창 24.08.16 9 1 17쪽
141 벌레들의 합창 24.08.16 8 1 11쪽
140 벌레가 우는 아침 24.08.12 9 1 11쪽
139 벌레가 우는 아침 24.08.12 9 1 14쪽
138 벌레의 다리 24.08.09 12 1 12쪽
137 어스름 24.08.09 12 2 12쪽
136 하울링 24.08.02 12 2 10쪽
135 저항과 혼란 24.08.02 13 1 14쪽
134 도망치고 전진하는 자들. 24.08.02 12 1 15쪽
133 늑대와 마법사. 그리고 황금 24.07.29 14 1 11쪽
132 밤을 타넘는 자들 24.07.26 15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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