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게 도망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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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안새
그림/삽화
피안새
작품등록일 :
2021.03.24 00:00
최근연재일 :
2024.09.13 21:24
연재수 :
161 회
조회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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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수 :
180
글자수 :
967,977

작성
24.07.26 2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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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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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밤을 타넘는 자들

DUMMY

흑기사들이 밤을 타넘고 적진에 잠입하고 있듯, 마법사는 도시의 어둠에 눌러 붙어서 움직였다.


서고에서 지하수로로 정보상까지 버릴 데 없는 동선으로 여기까지 왔다. 그녀는 머리 위까지 로브를 눌러쓰고 골목에서 고저택(예스러운 저택)을 바라보았다.


“...”


예의 타겟이 있는 저택이었다. 뮤리앙 영애가 기거하는 저택이었다.


가진 육안으로만 저택을 탐색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녀는 품에서 지팡이를 꺼내 읊조렸다.


“내 눈을 줄 테니. 내게 네 시야를 다오. 비수스 무투아.”


순간 그녀의 몸이 무너졌다. 미끄러져 엉덩이를 벽과 바닥에 밀착시킨다. 마법사는 극렬한 멀미를 느꼈다. 보고 있던 시야의 지점이 변한 탓이었다.


뇌가 충격을 받는다. 몸과 발은 땅에 붙어있으나 시야는 상공으로 변했다. 키가 커졌다는 느낌이 들었다. 낙하할 거라는 본능이 치솟았다. 모든 게 착란이었다. 허리가 찌릿하고 조그맣게 요의가 솟는다. 위니아는 그 모든 걸 견뎠다.


그녀의 몸에 붙어있는 눈이 빛을 잃었다. 예의 맹인의 그것처럼. 대신에 공중에서 솟아난 눈들이 구슬처럼 데굴데굴 구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눈에 하늘이나 건물들이 스쳤다가 사라졌다.


“우웁.”


그녀는 벽에 기대서 지팡이를 안았다. 벽에 달라붙은 한 여인이 그렇게 웅크린다. 몸의 감각을 죽이면서 하늘에 솟은 눈들을 정렬했다.


그리고 이내 소리 없는 세상이 보였다. 눈으로 보는 것과 듣는 소리가 이격되어 있었다. 그녀의 귀는 골목에 있고, 눈은 좀 더 멀리 떨어진 곳에 있으니 감각이 혼란을 일으켰다. 고택의 지붕쯤으로 눈을 정렬한 마법사는 일단 자신이 있는 곳을 포인트로 삼았다.


그래야 눈을 내보낼 때 구심점을 잡을 수 있었다.


“어지러워...”


이법사 위니아는 마궁에서 배운 잡다한 것들에 감사했다. 사람들이 쓸모없다면서 무시한 것들을 그녀는 탐구했다. 결국 그 모든 것들이 쓸모 있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다재다능하면 고생한다고 했던가.


입으로 한탄해도 눈이 움직였다. 하늘을 유영하는 거짓 눈알이 고저택을 곳곳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경비들이나 위험이 될 만한 요소들이나 침입할 곳을 찾았다. 그런 탐색의 연속이었다. 그녀는 차근차근 계획을 세우기로 했다. 저택 안에 정말로 뮤리앙이란 의사가 있는지. 그렇다면 어떻게 그녀를 꾀어낼 건지.


고민하고 수색을 이어갔다. 이내 저택의 내부로 눈을 보내려고 할 즘에.


그녀는 뭔가 이상한 걸 감지하고 눈을 꿈틀거렸다.


‘저건...?’


사람들이 보였다. 다만 저택의 풍경과는 동떨어진 사람들이었다. 경비나 사용인 같은 게 아니다. 그들은 골목에 숨어있는 위니아처럼 어둠에 달라붙어 있었다.


만약 위니아가 마법을 쓰지 않았다면 찾아내지 못할 사각에 있었다. 새카만 옷을 입고 정원의 조경수 사이에 숨은 자들이 있었다. 수는 셋이었다.


‘도둑...? 무슨 상황이지?’


위니아는 안력을 집중했다. 그러다가 더욱 경악스러운 걸 보고 말았다. 숫자는 세 명이 분명하다. 허나,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은 둘이었다. 신분을 감추기 위한 복면까지 그 둘은 척 봐도 저택을 헤집으러온 거수자였다.


하지만, 한명은 달랐다. 검은 옷도 복면도 없다. 막 자다가 납치당한 사람처럼 편한 잠옷차림의 왜소한 체구의 여성이다. 머리에는 두건이 쓰인 채로 손발이 묶여 버둥댔다.


“뭐, 뭐?”


위니아는 경악했다. 직감이 그녀의 머리와 심장을 때렸다. 그녀가 저택을 수색하면서 찾고있던 사람이 분명했다.


뮤리앙 오페라티오.


왕의 의사가 괴한들에게 실시간으로 납치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팟!


저택 내부에 보낸 눈에 귀도 달리지 않았건만. 그런 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괴한들이 저택의 감시망을 피해서 달렸다. 그 움직임이 기민하고 날렵했다. 허나, 위니아가 숱하게 보던 세작들과 암살자들의 움직임은 아니다. 마법사는 침묵에 속했던 자였기에 알았다.


납치범들이라 칭하자. 그들 중에 하나가 각력만으로 땅을 차올랐다. 그렇게 고저택의 담장을 뛰어넘었다. 3m는 족히 되는 창살 담장을 넘고서는 그 바깥에 착지했다. 그리고 뒤에서 따라오던 자가 팔을 휘둘렀다. 그러자 어깨에 매어있던 여자가 담장 바깥으로 날아갔다.


소리를 듣지 않아도 납치된 사람의 경악과 공포가 여기까지 전해지는 것 같았다.


먼저 바깥에 있던 납치범이 그걸 캐치했다. 순간 납치당한 여자의 두건이 젖어갔다. 뭔가 축축한 액체로 젖어가는 게 보였다.


순간 저도 모르게 위니아는 눈을 가까이했다. 부정하고픈 심정으로 납치당한 사람에게 눈알을 가까이 보냈다. 그리고 그건 잘못된 선택이었다. 펜스를 넘어가던 납치범 중 하나가 허공에 유영하는 뭔가를 눈치 챈 것이다.


“---!”


납치범은 눈치 채자마자 동료에게 뭔가를 가리켰다. 경고하는 말을 듣자마자 다른 괴한이 반응했다. 순간 마주치는 시선이 있었다. 위니아는 실수했음을 깨달았다. 바닥에서 돌 하나를 주워들어 그녀가 만들어낸 눈에 투척했다.


퍽!


“악!?”


위니아는 눈을 움켜쥐었다. 고통과 함께 마법이 풀린다. 다시금 그녀는 땅으로 돌아왔다. 보고 있던 시야가 끌어내려진다.


후둑.


감싼 손가락 사이로 뜨듯한 뭔가가 흘렀다. 피였다. 눈이 파괴당하면 술자에게 데미지가 돌아온다. 간단하지만 확실한 대가였다. 마법은 마냥 만능이 아니다. 다능할 뿐이지.


위니아는 바닥을 기다가 주춤주춤 일어섰다.


“안 돼...”


그녀는 이를 악물었다. 무너지고픈 고통 위로 두려움이 샘솟았다. 그건 그녀를 움직이는 힘이었다. 살고 싶다는 마음이 그녀를 따라다녔다. 그리고 그건 검은 악몽을 배불린다.


기다릴게. 난 언제나 여기 있어. 검은 악몽이 말했다. 위니아는 거기에 반발해서 자신을 일으켜 세웠다. 순간 항상 유지하고 있던 마법이 무너졌다.


꿈속 여인의 모습에서 현실로 돌아온다. 찬란했던 금발이 붉게 변한다. 하얗던 피부는 조금 푸석해지고, 흉한 화상이 반신을 덮었다.


그녀는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실패하고 죽어버린 자신의 모습이었다.


이법사 위니아는 눈을 떴다. 멀쩡한 한쪽 눈과 그렇지 않은 눈이 드러났다. 피 흘리는 붉은 눈알이 굴러간다. 방금 전의 괴한들이 있었던 장소를 물색하고 있었다.


눈과 신경을 따라 격통이 이어진다. 하지만, 그녀는 움직였다. 이 상황을 놓칠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그녀의 기회는 다시금 없어지리라. 오늘을 살 수 있는 기회가 없었다.


이건 선택 같은 게 아니라,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그녀는 달렸다.


.

.

.


다른 시간, 다른 밤에.


롤랑은 적을 베어 넘겼다. 그 붉음을 찢어진 폐에서 뽑아낸다. 그는 허물어지는 신체를 피해서 앞으로 걸었다.


“쿨럭!”


그 길목에 나무에 기댄 채로 피 흘리는 전우가 있었다. 롤랑은 그에게 손을 뻗었다. 그러자 흑기사는 별거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가십시오. 잠시 여기서 쉬다 가겠습니다.”


“헛소리 말게. 그렇게 말하던 기사들은 항상 따라오지 못했지.”


롤랑은 흑기사를 부축했다. 그렇게 앞으로 전진 한다. 상처와 피가 흐른다. 적을 베어 넘기면 다른 적들이 찾아왔다.


에워싸여 몰렸다싶으면 그들의 옆으로 적을 베어 넘긴 동료들이 모여들었다.


“쯧쯧, 실력이 다 죽었구먼.”


“신소리를... 난 아직 정정해.”


핀잔을 주는 늙은이를 다른 이가 부축했다. 롤랑은 그를 놓아주고 앞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들의 앞에 피 흘리는 길이 놓여있었다.


밤의 장막을 따라서 적들이 걸어 나왔다. 그들의 손에는 저마다 병기가 쥐어 있었다. 압도적인 숫자였다. 심지어 정예병이기도 했다.


숲에 바람이 불었다. 헤르미아와 공작령의 사이의 어딘가 쯤에 있는 영지에서 누구도 알아주지 않을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누군가 올 거라 생각했지만. 그게 흑기사 롤랑일 줄은 몰랐군요.”


정예의 선봉쯤으로 보이는 작자가 말했다. 그는 은발의 사내였다. 얕은 실눈이 특징으로 돋보였다. 롤랑은 상대방이 자신을 바로 알아보자 말했다.


“그쪽은?”


“말 안 해요. 어차피 자주 볼 사이도 아닌데 이름이 중요합니까?”


은발은 난처하다는 듯 정예들에게 눈짓했다. 그러자 침묵의 사도들이 자리를 잡았다. 각자의 암기나 무기가 흑기사들을 노렸다.


“개인적으로 유감입니다. 노인을 죽이거나 때리는 건 별로 안 좋아하거든요.”


“왜?”


흑기사는 시간을 벌려고 말했다. 그에 은발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좀 더 회화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길러주신 분이 할머니거든요. 흐음, 시간을 버는 겁니까? 경의 동료들은 이미 다른 쪽에서 맡고 있습니다만. 지원 같은 건 오지 않을 겁니다.”


“그렇군.”


롤랑은 뒤를 힐끗 돌아보았다. 흑기사들이 정비했다. 옛 동료들의 눈짓이 오간다. 그들만이 보이는 위치에서 까닥이는 수신호가 말한다.


[정면 돌파.]


그에 롤랑은 침묵했다. 아마도 누군가는 죽겠지. 그리고 그건 적들이 될 것이다. 그는 이들을 잃고 싶은 생각 따위 전혀 없었다.


“베아트리스 님은?”


“잘 계십니다. 전 연장자를 공경하는 편이거든요.”


“내 직접 확인해봄세.”


흑기사는 칼을 들었다.


.

.

.


쩌적.


괴한들이 멈췄다. 아니, 멈추게 했다는 게 맞겠지. 얼음의 장벽이 괴한들의 경로를 가로막았다. 결정이 주변의 수분을 먹이 삼아 자라났다. 열의 흡수와 배출로 훈풍과 냉풍이 동시에 몰아쳤다.


위니아는 골목의 공터로 걸어 나왔다.


납치범들은 마법사의 등장에 눈을 좁혔다. 그중에 하나는 얼음의 벽을 유심히 살폈다. 그리곤 어깨에 여자를 지고 있던 자에게 말했다.


“갈라지시지요. 제가 막겠습니다.”


“별로 그러고 싶은 마음 없어.”


고깝다는 목소리로 한명이 말했다. 위니아는 눈썹을 일그러뜨렸다. 말투와 목소리가 귀에 익었기 때문이다.


마법사는 괴한들의 정체를 짐작했다. 으직 하고 밟히는 서리가 부서진다. 영도의 세계가 가깝다. 발과 손이 시리다. 간만에 저력을 발휘하기로 한 마법사는 자신의 스태프를 앞으로 했다.


그러고 있으면 복면을 쓴 자가 말을 꺼냈다.


“기가 차네. 시체가 걸어 다니는 건가?”


“...”


목소리가 그녀를 찔렀다. 고민하던 위니아는 말없이 스태프를 조준했다.


“아니면 애초에 죽은 적도 없겠지. 너 위장이란 말은 알아? 그런 것도 하지 못할 정도로 반쯤 타다만 고기같이 변했네. 위니아?”


한 번에 자신을 특정 하는 목소리에 결국 그녀는 소리를 냈다.


“하아.”


정렬했던 마법들이 위니아의 한숨과 함께 주춤한다. 결국 이법사 위니아는 입을 열었다.


“그러면 백작님은 체면이란 말은 아시나요?”


“체면? 그런 걸 차리기엔 상황이 엿 같아서 말이지.”


복면을 끌어내린다. 그러자 올려 묶은 검은 포니테일이 드러났다. 마찬가지로 그와 함께 드러나는 붉은 눈이란.


위니아는 기가 찼다. 세상이 자신을 억지로 까내리는 느낌이 들었다. 아니, 그게 아니라면 무언가 악독한 게 그녀를 따라다니고 있음에 틀림없었다.


그건 검고 말도 못하는 괴상한 불운임이 분명했다. 그리고 그것이 붉은 눈과 검은 머리의 짐승을 데려왔다.


“오랜만이네. 위니아.”


엘리스 바타니아가 으르렁댔다. 그녀의 뒤에서 머리를 주춤거리는 부하가 있었다. 주군을 따라 자신도 정체를 드러내야 하나 싶어서 그랬다.


그러거나 말거나 엘리스는 오랜 인사를 정정했다.


“아니, 쌍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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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3 하얀 거절 24.08.30 12 1 17쪽
152 하얀 거절 24.08.29 10 1 10쪽
151 하얀 거절 24.08.28 14 1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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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 날개 없는 24.08.26 6 1 14쪽
147 이어지는 길 24.08.26 6 1 14쪽
146 이어지는 길 24.08.26 5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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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 하울링 24.08.02 12 2 10쪽
135 저항과 혼란 24.08.02 13 1 14쪽
134 도망치고 전진하는 자들. 24.08.02 12 1 15쪽
133 늑대와 마법사. 그리고 황금 24.07.29 14 1 11쪽
» 밤을 타넘는 자들 24.07.26 16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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