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시험의 가위로 의심의 끈을 풀려 하다.
전투가 끝난 뒤, 나는 사람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그야말로 최악의 절망에서 사람들을 구해내었기에, 사람들은 나를 영웅이라 부르며 환호했다.
영웅. 얼마나 감미로운 말인가.
나는 이 말을 얼마나 오랫동안 배신자들에게 뺏겨 있었던가.
이제, 이 단어는 조금씩 원래 주인에게로 돌아갈 것이다.
배신자들의 것은 읽고, 그 모든 건 나에게 돌아오게 해야겠지.
“오! 우리의 영웅이시여, 제 잔을 한 잔 받아 주십시오!”
마을 사람들에게서 잔을 받는다.
잔을 받으며 흥겹게 취한다.
그곳에 모인 모든 이들이 절망에서 벗어난 행복감을 즐긴다.
그런 파티가 이틀 동안 열렸다.
왜 이틀이냐면, 마을에 남은 식량이 그 정도밖에 없어서였다.
식량을 모두 모아 놓았던 창고가 타버렸으니 말이었다.
그래도, 파티가 끝난 뒤에는 교습생들과 승룡 길드의 헌터들, 그리고 다른 마을에서 온 이들이 함께 주변에서 사냥하여 식량을 채워주었다.
꽤 많은 동물을 사냥하고, 그 모든 고기를 훈제하거나 염장하여 보관하였으니, 내년까지는 문제없을 거다.
마을의 일은 그러했고, 다음으로 보답받을 이들은 교습생들이었다.
나는 교습생들에게 제대로 된 보상을 약속했고, 그런 힘든 싸움에서도 제정신을 잃지 않은 그들은 그런 보상을 받을 자격이 있음을 증명했다.
그들은 마을 사람들에게서 두둑한 헌터 코인을 받았다.
마을 사람들이 낸 헌터 코인 만큼, 마을 사람들은 아카데미에 상납해야 하지만, 그 상납금 중 일부는 승룡 길드에서 내주기로 했다.
물론, 그렇게 내주는 건 공짜가 아니다.
이후에 승룡 길드가 그 마을을 방문할 때, 숙박과 식비를 무료로 해주는 조건을 붙였다.
또한, 교습생 중 이번 일에서 재능을 보인 이들은 승룡 길드와 후원 계약을 맺기로 했다.
아직 경험이 부족한 교습생에게 상위 길드라 할 수 있는 승룡 길드에 들어갈 기회를 주는 셈이었다.
꽤나 파격적인 혜택과 지원.
이미 이전 마을에서 마을 복구에 꽤 많은 자금을 썼을 걸 생각해 보면, 부담스럽지 않을 수는 없었다.
그렇기에, 심도룡에게 물어봐야 하는 건 당연할 일이었다.
“너무 많이 쓰는 것 아닌가? 이러다 길드에 무슨 일이 생기는 건 아닐까 걱정되는군.”
그런 나의 배려에 심도룡은 황송한 듯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저희 길드는 사람들에게 너무나 많은 악행을 저질렀습니다. 그 악행을 조금이나마 씻어 내려면 이 정도는 해야죠. 거기에 이번 일에서 길드장 계파와 주군께로 넘어간 계파의 수만큼 충원하려면 교습생 후원은 불가피한 일이었습니다.”
“그렇게 말해주니, 마음이 놓이는군.”
“이 길드는 제 길드이자, 주군의 길드입니다. 제 쓸모는 이 길드가 있기에 존재하는 만큼, 당신에게 쓰임 받을 수 있을 만한 길드로 다시 세울 겁니다.”
심도룡의 눈에서 굉장히 강한 감정이 느껴진다.
그건 아마도 충성의 감정.
충성은 강할수록 배신하지 않는 만큼, 강하면 강할수록 좋다.
그래. 이 정도라면, 심도룡은 나와 왕륜창이 싸울 때, 내 편을 들어둘 것이다.
“그럼, 나중에 일이 있을 때 부르겠어.”
“알겠습니다, 주군. 그럼 저는 본부로 복귀하겠습니다.”
부하들에게 일 처리를 맡긴 심도룡이 본부가 있는 도시로 떠나고, 다음으로 나에게 온 사람은 세쌍둥이 빌딩 마을의 촌장이었다.
“영웅님, 저희 마을도 도와주시고, 이렇게 다른 마을도 도와줄 기회를 주어서 정말 고맙소.”
“감사는 넣어둬. 촌장도 수고했는데, 나만 감사받을 수는 없잖아.”
“아닙니다. 그 앞에서 제대로 설 수조차 없을 괴물과 대적한 영웅에게는 마땅한 대우를 해야 맞는 일이오.”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코가 시큰거리는 구만.”
“게다가 우리의 바이크를 모두 마력 엔진으로 바꿔주신 것도 큰 은혜요. 그렇기에, 우리는 당신이 부르면 언제든 오기로 결정했소.”
세쌍둥이 빌딩의 마을 사람들.
그들은 헌터들과는 달리 그저 평범한 이들일 뿐이다.
하지만, 그들이 그 왕륜창에 대항하려고 바이크 마적떼를 해왔다는 것에서부터, 그 용기는 다른 이들 그 이상이었다.
그런 그들이 언제든 와줄 수 있다면, 그건 겁많은 초짜 헌터들보다 훨씬 도움이 될 건 틀림없는 일이다.
그렇기에, 나는 그들의 도움을 환영했다.
“언제든 와준다면 고맙지.”
“그럼, 다음에 무슨 일이 있으면 꼭 불러주시오.”
“그래, 그때 보자고.”
촌장은 마을 사람들과 함께, 바이크를 몰고 가려 했다.
그때, 한 사람이 나에게 다가왔다.
원래 승룡 길드의 한 계파 사람이었던 헌터다.
“저기, 두목! 아니, 다른 사람들이 다 영웅이라고 부르니, 영웅 님이라고 불러야 하나?”
“그냥 네 편할 대로 불러.”
“그럼 두목! 저희는 다시 세쌍둥이 빌딩 던전으로 돌아갈까 합니다.”
“던전으로 돌아간다고?”
“예. 거기서 꽤 많은 걸 배웠거든요. 특히나 싸우는 방법으로는 더더욱 말이죠. 우리가 던전에 들어가기 전에 두목이 말해주었던 조언도 도움이 되었고요! 그래서 다시 들어가 보려 합니다.”
확실히, 그들은 던전에 들어가기 전보다 강해졌다.
괴물들을 향해 정확하게 밧줄과 무기를 날리는 대응 능력과 바이크 위에서 서서 움직일 정도의 담력까지.
그들이 던전에서 싸워서 얻은 건 참 많은 듯했다.
그 헌터는 마을 사람이 모는 바이크에 올라탔다.
그리고는 나에게 손을 흔들며 말했다.
“이후에 나오게 되면, 괴물 고기로 만든 튀김을 맛보여 드릴 테니까, 꼭 오십쇼!”
“그래, 이후에 나오게 되면 한번 보러 가도록 하지.”
괴물 고기로 만든 음식이라.
30년 전에는 그런 걸로 만든 음식도 먹었었지.
요즘에는 그런 음식을 먹진 못했군.
괴물 고기가 모양이 이상해서 그렇지, 나름 풍미가 있는 음식인데 말이야.
언젠가 한 번 먹으러 가야겠어.
세쌍둥이 마을 사람들과 헌터가 간 뒤, 그 뒤로 차 한 대가 도착했다.
이 마을에 올 때 썼던 그 차다.
창문이 열리더니, 얼굴이 보였다.
“큰형님! 얼른 타십쇼! 우리도 갈 길이 멀지 않습니까!”
“이 녀석아, 네가 운전하려고?”
“이번 싸움에서 형님도 꽤 힘드셨을 텐데, 좀 쉬셔야 하지 않습니까요?”
막내가 나를 배려하는 말도 하네?
과연 그런 마음만으로 이런 기특한 말을 하는 걸까?
신나게 손가락으로 운전대를 두들기는 걸 보니, 그런 이유만 있는 건 아닌 것 같다.
이 녀석, 너도 운전해보고 싶은 거냐.
하고 싶으면 솔직히 말하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하다는 건 말하기 부끄럽다는 거겠지.
좋아, 이 형님이 인심 썼다.
이 마을에 올 때는 마음껏 내가 운전했으니, 이번에는 네가 운전하게 해주마.
“좋아, 오늘은 막내 덕을 보자꾸나.”
차의 뒷자석에 탔다.
타고 보니, 조수석에 둘째가 타고 있는 게 보인다.
둘째는 벌써 코를 골며 자고 있다.
하기야, 졸릴 만하지.
내가 죽었다고 생각하고, 마을 사람들과 교습생들을 자신이 끌었어야 했으니까.
이번 일이 완벽하게 될 수 있던 것도, 둘째의 역할이 컸다.
“그럼 출발하겠습니다, 큰 형님!”
막내가 차를 앞으로 움직인다.
그러자, 차의 양쪽에서 사람들이 나온다.
바구니를 든 사람들이 차를 향해서 꽃가루를 뿌린다.
하늘 위로 흩날리는 꽃가루가 아가씨들이 춤을 출 때 입는 화려한 드레스처럼 나풀거리며 흩날린다.
“이걸 보고 있으니, 정말 큰형님이 영웅이 되셨다는 실감이 듭니다. 역시 영웅의 행진에는 꽃가루 아니겠습니까?”
“그래, 네 말이 맞다.”
사람들의 마음을 담은 그 꽃잎의 길을 지나, 이제 다시 복수를 향한 길에 오른다.
* * *
영웅들의 회의.
세계 각지에 흩어져 있는 영웅들이 화상을 통해 하는 그 회의에서는 언제나처럼 세상의 각 일들을 어떻게 처리할 지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다.
그런 이야기들이 나누어지고 있을 때, ‘의장’이 어떤 이야기를 꺼내었다.
“그러고 보니, 이제 우리가 ‘영웅’의 칭호를 얻은 지, 30년도 넘게 지났군요. 그동안 우리는 세상을 참으로 잘 다스려 왔지요.”
“의장, 갑자기 무슨 소리야? 뭔 말을 하려고?”
“이렇게 길다면 긴 시간 30년. 인간에게 있어서 한 세대와 같은 시간이지요. 그렇다는 건 슬슬 이 ‘영웅’이라는 칭호가 버거운 사람도 있기 마련이라는 겁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의장의 말에 겉모습은 어린아이와 같은 자가 깐족거리며 웃었다.
“와하하! 말은 그렇게 해도, 그거 ‘퇴물’이라는 소리잖아! 퇴물! 하기야, 퇴물은 이제 나가 줘야지! 새로운 사람이 오는 거 아니겠어?”
“새로운 사람, 새로운 영웅이라. 그런 때가 오고 있긴 하군. 아직 나에게는 버거움이 없지만.”
검을 가는 자는 계속 검을 갈며 검이 갈릴 때 생기는 불꽃을 통해, 자신이 멀쩡하다는 것을 알렸다.
그런 검 가는 자의 모습도 보기에는 그렇게 나이 들어 보이지 않았다.
“그렇네? 세상은 매번 발전하고 있으니까 뒤처지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 그런 분은 이제 쉬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여자는 마법 봉을 살랑살랑 흔들며 한 사람을 바라보았다.
그런 이야기에 표적이 된 자.
이 자리에서 유일하게 나이가 먹는 게 눈으로 보이는 자.
아카데미의 학원장, 왕륜창이었다.
“자리를 갈아치울 때가 되었다? 그게 무슨 소리냐, 의장.”
“잠시 그런 생각을 해본 것뿐입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 조직이 너무 경직되어 있었지 않습니까? 30년 동안 바뀐 게 없었으니 말입니다. 그러니, 조금의 긴장은 필요하다는 것으로 생각해 주십시오.”
의장은 단지 긴장감을 주기 위한 것뿐이라고 말하지만, 왕륜창의 귀에는 그렇게 들리지 않았다.
“슬슬 ‘계약’의 힘을 유지하기 어려워지니까, 하나를 내치겠다는 생각인 건 아니겠지?”
“그럴 리가요. 아직은 넉넉합니다. 다만, 이후는 좀 생각해 봐야 할 듯싶군요.”
그 이후는 과연 언제일까.
그건 가까울 수도 있고, 멀 수도 있었다.
모든 건 의장의 마음대로니 말이었다.
그렇기에, 지금의 제안은 그야말로 ‘명백한 도전’.
왕륜창은 그렇게 받아들였다.
“좋아. 맘대로 해 봐라. 어떤 시험을 하던 나는 뛰어넘을 테니. 하지만 알고 있겠지? 내가 시험을 뛰어넘으면, 그다음은 내가 너희를 시험할 차례라는 걸.”
왕륜창이 자신 있게 받아들이자, 다른 이들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모처럼 재밌는 일이 생겼다는 웃음.
이걸 이용할 수 있겠다는 음흉한 웃음.
도통 의미를 알 수 없는 수수께끼의 웃음.
그 모두가 마음속에 든 뭔가의 일면을 보이고 있었다.
“좋습니다. 한 달 뒤, 우리 중 한 명이 당신을 시험하러 찾아갈 겁니다. 만약 당신이 그 시험을 넘으면, 당신은 다른 이를 시험자로 지목할 수 있는 것으로 하지요.”
“좋다. 그렇게 하자.”
“그럼, 오늘 회의는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화면이 하나둘 꺼지고, 마지막으로 왕륜창의 화면이 꺼졌다.
그 정적의 가운데, 의장은 어두운 화면들을 보며 말했다.
“슬슬, 때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상자’가 선택하는 때가.”
* * *
화면이 꺼지자마자, 왕륜창은 얼굴을 확 구겼다.
누군가에게 시험당한다는 건, 그렇게 구겨질 정도로 불쾌한 일이었다.
“젠장할 놈들. 내가 없었으면, 시작도 못 했을 놈들이! 10년 전까지만 해도 지원해달라고 애원하던 놈들이 이제는 나를 퇴물 취급해!”
왕륜창이 주먹을 휘두르자, 방 안의 물건들이 모두 휩쓸려 한쪽에 박힌다.
그런 가운데, 한 사람이 방안에 들어온다.
“학원장님, 보고할 내용이 있습니다.”
비서가 들어오자, 왕륜창은 자신의 앞섶을 움켜쥐고 고개를 흔들어 마음을 진정시킨다.
“무슨 내용이냐.”
“남쪽에 아카데미 훈련이 있던 마을에서 ‘영웅’이 나타났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공교롭게도 그 ‘영웅’이라 불린 이가 바로 ‘그’라고 합니다.”
“뭐?”
영웅의 소문.
그리고 오늘 벌어진 일.
그 두 일이 동시에 벌어진 건 우연일 것이었다.
하지만, 그런 우연이 왕륜창에게는 심상치 않게 느껴졌다.
“결국 불길한 예감이 그렇게 되었군.”
“학원장님, 어떻게 할까요?”
“석광헌에게 연락해. 그놈을 나에게 데려오라고. 기억을 읽었으면 읽은 대로, 읽지 않으면 않은 대로, 그놈의 상태를 봐야겠어.”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그 물음에 왕륜창은 의장이 했던 말을 곱씹으며 말했다.
“그놈을 시험해 볼 것이다.”
* * *
아카데미에 도착한 지 얼마 안 되는 시각.
이제는 나의 부하가 된 언데드 석광헌이 나에게 보고했다.
“주인이시여, 왕륜창이 당신을 찾습니다.”
“나를? 무슨 일로?”
“당신을 보고 싶다고 합니다.”
갑자기 왜 이럴까?
석광헌에게 기억을 읽으라고 한 것만으로는 모자란 걸까?
하기야, 그렇지.
왕륜창 그놈은 은근히 의심이 많으니까.
좋아, 잘 되었어. 한 번쯤 가볼 때가 되었지.
그놈의 것을 모두 빼앗기 전에, 한번 넘어야 할 일이었어.
“좋아, 가겠다고 전해.”
“알겠습니다, 주인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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