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보니 검술 천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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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우리
작품등록일 :
2022.04.06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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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5.29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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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4.20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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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급 짐꾼 (4)

DUMMY

17.


머리끝까지 화가 난 고진수는 정면으로 달려들면서도 도통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지?’


무지렁이나 다름없던 F급 짐꾼과 헌터우울증에 사로잡힌 D급의 헌터.

녀석들을 파티로 끌어들일 때만 해도 쉽게 처리할 수 있으리란 확신이 있었다.

F급 녀석이야 말할 것도 없고, D급 헌터야 귀찮은 장애 요소에 불과했으니까.

고진수의 파티는 평균 D급 수준이었으니 응당 그리 생각할 법한 일이었다.


‘보스 몬스터의 체력이나 빼놓고 적당히 좋은 템을 떨구고 뒈졌어야 할 놈들인데······.’


고진수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왜 아직도 살아있는 거지?’


어떻게 이게 가능할 수 있을까.

보잘 것 없던 놈들은 보란 듯이 그라운드 서펜트를 상대로도 살아남았다.

다른 동료의 도움도 없이 F급 짐꾼 혼자서 보스 몬스터를 히든 페이즈로 몰아넣기까지 했다.

그조차 말이 안 되는데.


“······.”


바닥에 덩그러니 놓인 동료의 시체를 내려다보면서 고진수는 미간을 구겼다.


‘정체가 뭐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무작정 달려들던 고진수의 속도는 점차 느려졌다.

반대로 생각은 파도를 탄 것처럼 엄청난 반향을 일으키며 확장되고 있었다.


‘그러고 보면 방금 그 속도······.’


한순간이라 해도 그는 녀석이 칼을 휘두르는 장면을 놓치고야 말았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동료의 목엔 선이 그어졌고, 상황을 인식했을 땐 동료의 몸은 허물어졌다.

생각해볼수록 그 상황 자체가 말이 안 된다는 결론만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내 등급은 얼추 C급이다.’


현상수배가 된 이후로는 등급심사를 보질 않아, 자격증엔 여전히 D급으로 표기될 뿐이다.

그는 숱한 나날을 반복하면서 실력을 C급 수준으로 올린 지 오래였다.

이미 10층대는 가뿐히 공략해본 적이 있으니 이 사실만큼은 확실했다.


‘그런 내가 놓친 거야.’


새삼스러운 경각심이 들었고, 눈앞에 펼쳐진 모든 순간이 완전히 새롭게 보이기 시작했다.

포효하며 녀석을 향해 달려드는 동료들의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그 미래가 보이는 듯했다.


‘······이거 황금고블린이 아니라, 오우거의 새끼를 건드린 거였나.’


가속했던 생각을 정리한 고진수는 완전히 걸음을 멈추었다.

상대의 수준을 파악했으면 그에 걸맞는 대우를 해주는 게 참된 도리.

그는 서늘한 눈으로 한지혁을 노려보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더 이상의 방심은 없다.’


섬세하게 마력을 조율한 그는 안개처럼 흩어지더니, 이내 동떨어진 D급 헌터를 향해 은밀하게 접근하기로 했다.


*


빠르게 짓쳐든 공격을 피해 이리저리 몸을 움직인 한지혁은 틈을 놓치질 않았다.


“끄아아아악!”


한 번의 찌르기가 적의 심장을 관통했다. 칠성보로 속력을 올려 공격력도 배가 된 것이다.


-한지혁!

‘······알고 있어!’


아일로이의 경고가 없더라도 이미 그의 신형은 바닥을 박차고 자리를 벗어나고 있었다.

그를 노리고 쏘아진 수개의 화살이 파바바박, 뒤따르듯 바닥에 꽂혀 들어갔다.


‘다음은 너다.’


생각은 바로 행동으로 이어졌다.


푸슈우욱!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 한지혁은 궁수의 미간에 단검을 꽂아 넣은 것이다.

컥! 소리를 내며 궁수가 허무하게 뒤로 자빠지기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3초.


“미친······ 언제 여기에!”

“오, 오지 마! 개새끼야!”

“뭐해! 놈은 하나야! 동시에 달려들······ 컥!”


벌써 일곱 명 중 네 명이나 목숨을 잃었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는 홍길동처럼 신출귀몰한 움직임이었다.

녀석들은 도통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물론 한지혁의 상황도 썩 좋다고 볼 수는 없었다.


‘남은 마력량은······.’


기선제압을 위해서라도 이형환위를 발휘한 결과는 참혹했다.

이형환위는 마력을 하마처럼 잡아먹는 비효율적인 기술!

비축해뒀던 마력이 어느덧 동나서 바닥이 보일 지경이었다.


‘하지만 충분해.’


놈들이 하나로 뭉쳐서 포위할 때야 곤란한 싸움이다.

지금처럼 구심점을 잃어 어찌할 바를 모르는 놈들은 무서울 게 없다.

오합지졸은 뭉쳐봐야 오합지졸이다.


‘그보다 문제는 고진수야.’


어느 순간부터 흐릿해진 녀석은 전장의 어디를 둘러보아도 보이질 않았다.

이곳으로 진입한 것과 동시에 모습을 감췄던 ‘은신술’의 일환인 듯한데······.


‘무슨 수작을 부리는 거지?’


도살자를 누구보다 잘 알기에 한지혁은 그의 부재를 경계하는 수밖에 없었다.


‘도살자는 신중한 성격이다.’


흔히 돌다리도 수십 번은 두드려 보아야 다리를 건너는 유형의 사람이 있다.

도살자는 어떤 일을 맡아도 반드시 확신을 가져야만 움직이는 사람이었다.

그 때문이라도 녀석의 이력엔 ‘무패(無敗)’라는 특이점이 걸리질 않았던가.


‘지는 싸움은 시작조차 하지 않을 놈이야.’


녀석은 본인이 이길 수 있는 상대만을 골라내는 집요함을 갖추고 있었다.

그건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차유라 파티를 타겟으로 삼았어. 아마도 무슨 일이 벌어져도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이 있는 거야.’


버젓이 D급 헌터가 있는 파티를 사냥감으로 물색한 이유는 아마도 하나뿐이었다.

놈은 혼자서도 D급 헌터를 가뿐히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진 것이다.


‘녀석의 수준이 C급 이상인 거야.’


그렇기에 당장 한지혁의 무력을 보고도 쉽게 도망칠 거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제아무리 한지혁이 지난날의 단련을 통해 강해졌다고는 하나······ C급 헌터는 그 수준이 남다를 테니까.

그렇다면 뭘까.


‘놈이 목숨이 아까워 숨은 게 아니라면······.’


신중하기로 유명한 고진수는 한지혁을 쓰러트리기 위해서 어떤 수작을 부리려는 걸까.

확고하고 반드시 이길 수 있도록 판을 짜 그를 무력하게 만들기 위한 음모라면······?

그 목적은 금방 드러났다.


“너무 나대는군.”

“너······.”

“워, 움직이지 마. 이년이 죽는 꼴이 보고 싶나?”


한쪽에 덩그러니 떨어져 있던 차유라의 목덜미로는 날카로운 검이 드리워졌다.

상황을 뒤집기 위해 차유라를 인질로 잡아 협박할 심산인 것이다.


“아저씨······.”


황망한 눈으로 이쪽을 바라보는 차유라를 향해 한지혁은 나지막이 탄식했다.

아, 이 한숨은 상황이 답답해서 내뱉은 게 아니다.


“고작 하는 짓이라고는······.”


진심으로 고진수가 안타까웠기에 내뱉은 한숨이다.


‘하기야 도살자도 아직 여물지 못한 씨앗에 불과한 거겠지.’


그래도 한지혁은 예의상 물어보기로 했다.


“도와줄까?”

“아, 아뇨! 하던 일, 마저 하세요!”

“그래.”


그것으로 차유라를 일별한 한지혁은 다시 나머지 놈들을 공략하기 위해 단검을 들었다.

거두절미하고 무시하는 행태에 오히려 당황하는 쪽은 고진수였다.


“미, 미친······ 진짜 죽인다니까!”


새하얀 살결로 피가 살짝 고였다. 고진수가 이를 악물고 힘을 더하려는 순간이었다.


“이 새끼는 끝까지 날 호구 취급만 해대네.”

“뭐?”

“내가 그리 만만하냐?”


순식간에 주변의 온도가 대폭 올라갔다.

저도 모르게 차유라를 뿌리친 고진수는 두 눈을 의심하는 수밖에 없었다.


“너, 너는······?”


모자를 벗고 천천히 머리를 털어내는 차유라의 곁엔 무지막지한 불꽃이 솟아올랐다.


“우린, 마저 할 얘기가 있지?”


쿠콰카카카카캉!


폭격이라도 시작된 듯한 뒤편의 소음에 한지혁은 쓰게 웃으며 단검을 회수했다.

목에 구멍이 난 채로 허물어진 녀석을 끝으로 이제 남은 건 한 명이었다.

한지혁은 짧게 혀를 찼다.


“그러게, 건들 사람을 건드려야지.”


한지혁이 인질이 된 차유라를 가만히 내버려뒀던 이유가 대체 무엇이겠는가.


‘쟤 지금은 약점이 없거든.’


몇 번이나 말했지만 최상급의 스킬을 갖고서도 그녀가 D급 헌터로 머문 이유는 오직 단발적인 전투력 탓이다.

마력의 제어나 그 경험이 아쉬워서 그렇지, 그녀의 힘은 일반적이질 못하다.

그런 그녀가 제 힘을 온전히 발휘할 수 있다면 그 화력은 어느 정도일까.


‘회귀 전의 차유라는 이 시점에서 최소 B급 헌터는 됐어.’


고작 마력 제어에 성공했을 때의 차유라는 그런 괴물이 된다.

화력 자체로만 따져도 이미 그녀는 20층은 훌쩍 넘어 생존할 수 있다.


쿠콰카카카카캉!


한지혁은 일대를 완전히 불모지로 만들어버리는 차유라를 살펴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


고진수 패거리를 정리하는 데엔 더 이상 한지혁이 나설 필요도 없어졌다.


“끄웨에에엑!”

“살려줘······ 제발!”


잠시 폭주했던 차유라의 불길이 일대를 가로질렀고.

본의 아니게 휘말린 놈은 유언도 못 남기고 타들어갔으니까.

남들 뒤통수나 치던 놈들이라 불쌍하진 않았지만 꽤 허무한 엔딩이긴 했다.

물론 그중 최고는 고진수다.


“이게 그 고진수야?”

“······어, 아마도요.”


고진수는 형체조차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잿더미가 되었다.

차유라의 분노를 고스란히 받아낸 결과였다.

그녀는 약간 눈치를 살피더니 말했다.


“흠흠······ 보스 몬스터는 죄송하게 생각해요.”

“응?”

“건들지 말라고 하셨는데 저도 모르게 그만.”

차유라의 불꽃은 석화 중이던 그라운드 서펜트까지 직격했다.

터무니없지만 돌이 되던 녀석은 그대로 불길에 타들어갔다.

고진수처럼 잿더미가 된 건 기본.

진심으로 힘을 쏟아낸 차유라가 얼마나 무시무시한 존재인지 새삼 깨닫게 된다.

한지혁은 어깨를 으쓱했다.


“괜찮아. 신경 안 써도 돼.”

“네? 정말요?”

“아무렴 보스 몬스터는 아직 살아있는 걸.”

“······네?”


반문하는 차유라를 뒤로하고 한지혁은 날이 잔뜩 상한 단검을 움켜쥐었다.

파멸의 도끼를 활용한다면 쉽게 쓰러트릴 수 있겠지만 그건 좋은 선택이 아니다.


‘파멸의 도끼도 너무 강해.’


그건 차유라의 불꽃이나 똑같은 결말을 만들어낼 뿐이다. 아니, 잿더미도 안 남을 거다.

이놈은 모든 걸 파멸시킬 뿐이다.


“온다.”


한지혁은 쓰게 웃으며 정면을 바라봤다.

곧, 그라운드 서펜트의 잿더미 속에서 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드드드드!


땅이 흔들리고 그곳에서 서서히 새하얀 무언가가 고개를 바짝 들었다.

차유라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서, 설마······ 보스 몬스터?”

“응. 다행히 네가 이곳에 불을 지르기도 전에 놈도 탈피를 끝낸 모양이더라고.”

“탈피라면······.”

“네가 태운 건 저놈의 예전 껍데기야.”


쿠에에에에엑!


때깔 좋은 얼굴로 포효하는 그라운드 서펜트를 경계하며 한지혁이 말했다.


“차유라, 잘 기억해둬.”


그라운드 서펜트는 기세 좋게 포효하더니 공중으로 껑충 뛰어올랐다.

자신만만한 얼굴로 한지혁을 향해 냅다 입을 벌리고 폭주기관차처럼 달려들고 있었다.


“보스 몬스터는 죽었다는 메시지가 뜨기 전엔 결코 죽은 게 아니야.”


창졸간에 뱀의 측면으로 다다른 한지혁이 단검에 힘껏 마력을 주입했다.

정확하게 녀석의 비늘이 거꾸로 자라난 역린을 찾아 단검을 꽂아넣었다.


키이이잇!


그라운드 서펜트의 히든 페이즈는 공격력이 엄청나게 올라가지만 그만큼 방어력이 떨어진다.

이건 파울로가 가진 ‘광폭화’와 비슷했다.


‘파울로 녀석도 이걸 따라서 만들어낸 기술일지도 모르지.’


숨을 쫙 들이마신 한지혁은 그라운드 서펜트의 약점이란 약점은 모조리 공략해나갔다.

이미 히든 페이즈로 돌입한 이상 놈을 죽이기만 하면 될 일이니 더는 거리낄 것도 없다.


‘끝이다.’


이윽고 한지혁의 검이 녀석의 가죽을 어지간히도 난도질을 했을까.


[10층의 주인 ‘그라운드 서펜트─히든’을 처치했습니다.]


덩그러니 나타나는 메시지를 살펴보며 길게 호흡을 뱉어냈다.

그리고 메시지는 이게 끝이 아닐 것이다.


[퀘스트의 주체가 사망했습니다.]

[파티원에게 퀘스트가 양도됩니다.]

[퀘스트 ‘오크 부락의 원수’를 양도받으시겠습니까?]


흔쾌히 고개를 끄덕인 한지혁은 뒤이은 메시지에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퀘스트를 성공적으로 완수했습니다.]

[보상으로 ‘오크 부락의 보물’을 습득했습니다.]


작가의말

내일도 21시 25분 연재됩니다. 내일 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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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두 번째 재앙 +2 22.04.27 5,646 92 13쪽
23 지저굴 (4) +7 22.04.26 5,609 103 13쪽
22 지저굴 (3) +3 22.04.25 5,616 89 13쪽
21 지저굴 (2) +2 22.04.24 5,808 90 12쪽
20 지저굴 +3 22.04.23 6,105 97 13쪽
19 화원 (2) +5 22.04.22 6,131 106 13쪽
18 화원 +4 22.04.21 6,217 94 13쪽
» F급 짐꾼 (4) +2 22.04.20 6,296 108 12쪽
16 F급 짐꾼 (3) +4 22.04.19 6,280 100 13쪽
15 F급 짐꾼 (2) +2 22.04.18 6,475 94 13쪽
14 F급 짐꾼 +3 22.04.17 6,739 96 13쪽
13 인과 (4) +4 22.04.16 6,671 104 13쪽
12 인과 (3) +2 22.04.15 6,683 106 13쪽
11 인과 (2) +2 22.04.14 6,758 107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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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첫 번째 재앙 (3) +4 22.04.10 7,527 104 13쪽
6 첫 번째 재앙 (2) +2 22.04.09 7,735 111 12쪽
5 첫 번째 재앙 +3 22.04.08 8,454 106 13쪽
4 F급 무지렁이 헌터, 그리고 전생 (3) +6 22.04.07 9,050 108 13쪽
3 F급 무지렁이 헌터, 그리고 전생 (2) +8 22.04.06 9,964 110 13쪽
2 F급 무지렁이 헌터, 그리고 전생 +7 22.04.06 11,051 119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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