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보니 검술 천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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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우리
작품등록일 :
2022.04.06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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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5.29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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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4.08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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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재앙

DUMMY

5.


파이어 하운드의 불꽃은 머지않아 힘을 잃고 사그라들었다.

하운드의 사체가 모두 다 타버리고 더는 태울 것도 없어졌기 때문이었다.


[스킬, ‘숨 참기’를 발동 중입니다.]


한지혁은 매캐한 연기 속에서 숨을 꾹 참으며 파이어 하운드의 사체를 내려다보았다.

아일로이가 퉁명한 말을 내뱉은 건 그때였다.


-고작 똥개 한 마리 잡은 주제에 뭔 폼을 그리 오래 잡고 있느냐?

‘······금방 하려 했거든?’

-얼른 움직이거라. 게이트 닫히겠느니라.

‘알았어.’


한지혁은 쓴 웃음을 지으며 파이어 하운드의 사체를 재빠르게 도축해나갔다.

불을 내뿜은 당사자인 만큼 불길 속에서도 녀석의 사체는 온전하게 보존되어 있었다.


-가죽을 아주 넝마로 만들어놨구나.

‘······잔소리 좀 그만해.’


한지혁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작업을 계속해나갔다.

전생의 영혼인 아일로이와 생각으로 소통할 수 있다는 건, 꽤 편리한 일이었지만.

꼬장꼬장한 녀석의 잔소리는 쉴 새 없이 들려와 새삼스러울 것도 없이 피곤하기도 했다.

그래도 1년은 검을 잡고 생활한 덕인지 도축에는 큰 무리가 없었다.


‘송곳니는 멀쩡하네.’


망치와 정으로 단단한 파이어 하운드의 이빨까지 도려낸 한지혁은 미련을 접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짐꾼을 고용해서 왔더라면 시체를 모두 회수할 수 있었겠지만, 현재의 그는 무리였다.


‘비싸니까.’


목숨 걸고 게이트를 넘어 줄 짐꾼을 고용하려면 그만큼의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무엇보다 고작 F급 헌터인 한지혁이 홀로 게이트를 공략하는 일이었다.

헌터관리국이 짐꾼 고용을 허용할 리도 없었다.

대신 게이트 밖에 놔두었던 커다란 캐리어를 가져와 챙길 수 있는 전리품은 모두 담을 수 있었다.


‘슬슬 나가볼까.’


한지혁은 캐리어를 질질 끌며 보무도 당당하게 게이트를 나섰다.


*


바깥은 진즉에 어둠이 내려 쌀쌀한 밤공기가 감돌고 있었다.


“······오우 씨.”


급박하게 변한 온도에 한지혁은 바쁘게 외투를 꺼내어 입었다.

입고 왔던 옷은 대개 불타버렸지만, 여분의 옷을 준비해두길 다행이었다.

게이트 안에선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기에 철저하게 준비한 덕을 톡톡히 보는 것이다.


-바로 집에 가는 것이냐?

“아니, 들를 곳이 있어.”


고개를 가로저은 한지혁은 캐리어를 가슴에 끌어안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느닷없이 말을 건 아일로이의 저의를 눈치챘기 때문이었다.


“걱정 마. 피곤하다고 단련을 게을리 하진 않을 테니까.”

-당연한 소리니라.


괜히 택시 따위를 탔다가 밤새도록 잔소리를 듣느니 몸이 조금 피곤한 게 낫다.


-방금 불쾌한 상상을 한 것 같은데.

“착각이야.”


생각으로 소통한다고 해도 그의 모든 것을 아일로이와 공유하진 않는다.

정확히는 ‘표층의식’만을 공유한다.

한지혁이 머릿속에 떠올리는 생각을 아일로이는 대략적으로 읽어낼 수 있다.

무의식이나 다름없는 ‘심층의식’은 제아무리 전생이라고 해도 파고들 수 없는 듯했다.

그리고 한지혁은 1년의 수련을 거듭하는 동안, 용케 의식을 통제할 수 있게 되었다.


-쓸데없이 이런 곳엔 재능을 만개(滿開)해서는······.

‘너도 10년을 숨 죽여 살아봐라. 정신력만 늘어나지.’


부득이하게 수 시간을 숨을 꾹 참고 지내야 했던 나날이었다.

아무 것도 하지 못한 채로 오직 생각만을 향유했던 시간들.

그의 정신력은 싸우지만 않았을 뿐, 역전의 용사나 다름없었다.


타다닷.


수련의 일환으로 캐리어를 들고 꽤 긴 거리를 달렸다.

추운 겨울에도 땀이 흥건할 정도로 뛰다보니 곧 밤을 장식하는 번화가에 다다랐다.

전광판의 네온사인과 분주한 사람들 틈에서, 한지혁은 대형 쇼핑몰을 올려다보았다.

그의 목적지였다.


-이 세계엔 금강산도 식후경이란 말이 있더구나.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느니라.


영체인 주제에 먹는 데에 취미를 붙인 아일로이는 묘하게 들뜬 눈치였다.

이 세계의 다양한 식재료는 보는 맛과 먹는 맛이 전부 일품이라고 몇 번이나 칭찬했는지 모른다.

한지혁은 쓰게 웃으며 답했다.


“그도 있는데······ 그전에 정산부터 해야지.”

-아아.


한지혁은 대형 마트의 4층에 위치한 [헌터 옥션]으로 향했다.

몬스터의 전리품을 판매하고 대금을 받을 수 있도록 온갖 길드가 상주하는 곳이었다.


‘세금을 생각하면 관리국을 통하는 게 낫겠지만 이건 비공식 사냥이었으니······.’


한지혁은 부산스러운 헌터 옥션을 가로질러 적당한 판매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이곳이라면 F급인 그라도 아무런 문제없이 전리품을 판매할 수 있을 것이다.


“파이어 하운드의 가죽이랑 이빨······ 음, 가죽은 꽤 험하게 상했네요.”


직원은 골똘히 계산기를 두드려보더니 말했다.


“여기 대금입니다. 손상된 가죽만큼 정산금이 조금 줄었으니 참고해주세요.”

“알겠습니다.”

“그럼 다음에 또 이용해주시길.”


꽤 쉽고 빠르게 정산을 마친 한지혁은 두둑하게 지급받은 돈을 내려다보았다.

F급 게이트의 부산물이라 해도 보스 몬스터는 다르다는 걸까.

한 달은 내리 아르바이트를 뛰어야 겨우 벌 수 있는 돈이 주머니로 들어왔다.


‘돈 버는 게 이리 쉬웠나.’


나름 목숨 값이라지만 자괴감마저 들던 한지혁은 그의 옷을 잡아끄는 아일로이를 볼 수 있었다.


-볼 일 다 봤으면 얼른 가자꾸나. 뱃가죽이 등에 붙을 지경이니라.

‘보면 볼수록 식충이 같다니까······.’

-지금 무어라 했느냐?

‘아, 생각해버렸다.’


한지혁은 종종걸음으로 식당가로 향했다. 노발대발 쫓아오던 아일로이도 금세 각종 먹음직스러운 냄새에 표정을 바꾸었다.


-오늘은 좀 비싼 걸 먹어도 되지 않겠느냐?

“물론이지.”


간만에 생각의 일치를 보인 둘은 동시에 한 식당을 바라보고 있었다.

바삭한 튀김옷을 입은 황금빛 후라이드 치킨이 유혹하듯 그 냄새를 흩뿌리고 있었다.

특히 하루의 고생을 씻겨줄 맥주마저 간절해진 그는 홀린 듯 치킨 집으로 걸었다.

돈이 없어 그간 삼각 김밥에 라면만 먹던 그에겐 너무나도 황홀한 순간이었다.


쿠구구웅.


나지막이 바닥에서 진동이 울리기 전까지는 말이다.


“······.”

-······.


처음에는 잔잔한 떨림이었다.

근처로 기차가 지나갈 때에야 주변에 생길 법한 진동.

하지만 이내 그 진동의 세기는 커졌고, 사방이 어지럽게 흔들리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한지혁은 미간을 구기며 중얼거렸다.


“하필 이때······.”

-눈치도 없는 놈들이로구나.


그리고 이는 대개 한 가지 결과를 초래한다.


[긴급 경보입니다! 현재 이 지역으로 게이트 생성 징조가 나타났습니다! 일반 시민들은 황급히······!]


생각보다 사태는 심각했는지 방송이 이어지지도 못했다.

커다란 진동은 지진이 되어, 온통 주변을 뒤엎어버렸기 때문이었다.

짜증 섞인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던 한지혁도 그 낌새를 둘러보며 미간을 좁혔다.


‘일반적인 게이트 생성과는 달라.’


이 정도면 진도 7은 가뿐히 넘어갈 정도였다. 마력으로 보강한 건물들이기에 버텼지, 예전이었으면 끔찍했을 터.


‘A급 수준의 게이트인가?’


잠시 주변을 둘러보던 한지혁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A급 게이트라고 해도 이렇게 요란하게 등장하는 경우는 흔치 않았다.

어쩌면 지하를 뚫고 나타나는 그런 몬스터의 종류일지도 모르지만······.


-한지혁. 마력이 급증하고 있다.


공간 자체에 마력이 급증하는 현상은 어지간해서는 벌어질 수 없는 일이었다.

한지혁은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슬슬 시작될 줄은 알았는데······.’


격렬한 떨림 속에서도 한지혁은 균형을 유지했다. 재빠르게 쇼핑몰을 벗어난 그는 새카만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정확히는 그곳의 오로라를 보았다.


‘그게 오늘이었나.’


무지갯빛의 오로라는 밤하늘에서 유난히 찬란하게 빛나는 커튼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저 오로라가 무얼 뜻하는 지 한지혁만큼은 잘 알고 있었다.


쿠구구구궁!


마치 세상 전체가 흔들리는 듯한 충격 속에서 한지혁은 한쪽의 허공의 일렁임을 보았다.

겨우 균형을 잡고 있던 몇몇 눈치 빠른 사람들도 그걸 발견할 수 있었다.


“저, 저게 뭐야?”

“게이트! 게이트다!”

“잠깐······ 하나가 아닌데?”


쇼핑몰을 중심으로 수 개의 게이트가 생성되고 있었다.

급증한 마력은 그쪽으로 스며들었고, 곧 그 안에서 무언가 소리도 들려왔다.


크르르륵······.


한지혁은 호흡을 가다듬으며 철검을 꺼내어 쥐었다.

기다릴 것도 없이 달려든 그는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 몬스터의 눈을 공략했다.

철검이 박혀 들어가고, 뒤늦게 형체가 드러난 고블린이 분노에 찬 목소리를 토해냈다.


“으아아아악! 몬스터다!”

“고블린······ 아니, 코볼트도 있어!”

“······119 번호가 뭐더라? 어?”


당황한 시민들의 목소리를 뒤로하고 한지혁은 끊임없이 움직였다.

제아무리 강력한 몬스터라 해도 게이트를 막 나선 시점은 어안이 벙벙하기 마련이다.

작금의 상황처럼 온갖 몬스터가 튀어나왔을 때는, 지금이 가장 적기였다.


“모두 무기를 꺼내!”

“방어선을 세워!”

“움직여! 곧 본대가 올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이곳이 쇼핑몰이라는 점이다.

헌터 옥션이 존재했고, 그 안에 상주하는 직원들은 전부 헌터 출신의 길드원이다.

게다가 부산물을 판매하거나 구입하려는 목적으로 이곳에 진입한 헌터들도 있었다.

그들은 저마다 무기를 꺼내며 우후죽순 솟구치는 몬스터들을 향해 각종 스킬을 뽐냈다.


“당황하지 말고 대피소로 움직여요!”

“뭐하고 있어? 저쪽에도 게이트 생겨났잖아?”

“하운드다! 빌어먹을 파이어 하운드야!”

“망할······ E급 게이트라고?”


가까운 상가의 창문을 깨트리고, 한지혁이 애써 사냥한 파이어 하운드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 숫자만 무려 일곱 마리나 되었다.


-한지혁.

‘알고 있어.’


선두에 서서 몬스터들을 베어내던 한지혁이 슬쩍 뒤로 빠진 건 그 즈음이었다.


“벽을 세워! 불을 내뿜는다!”

“소방 관련 스킬 가진 헌터 없어!? 여기 좀 도와줘!”

“이런 똥개 새끼들이!”


이미 한지혁의 수준은 뛰어넘은 몬스터 군단의 등장이었다.

대단위 전투가 벌어지는 이곳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딱히 없었다.


‘슬슬 빠져도 되겠어.’


아무렴 백화점 방향엔 헌터들이 많아 슬슬 알아서 대처할 수 있을 테니까.


“그쪽도 헌터예요? 놀지 말고 얼른 도와줘요!”

“아, 저 F급이라······.”

“아니 그러면 대피소로 뛰어야지. 뭐하고 있어요?!”


그렇게 대충 둘러댄 한지혁은 재빠르게 도망치는 사람들 틈으로 섞여 들어갔다.

서울의 곳곳에는 이런 대규모 재난 상황을 대처할 대피소가 마련되어 있었다.

일찍이 그곳에 살아본 적이 있는 한지혁이었기에 누구보다 그 위치를 잘 알았다.

그의 목적지는 여의도 대피소였다.


‘그때도 여기로 도망쳤었는데.’


과거를 상기하던 한지혁은 대피소의 위치로부터 솟구치는 검은 연기를 보았다.

미간을 좁혀 그곳을 둘러 본 그는 더더욱 속도를 내어 뜀박질을 이었다.

사실 그가 여의도 백화점을 놔두고 이렇듯 바쁘게 움직이는 데엔 이유가 있었다.


‘지금 이 상황은 백 퍼센트 그게 시작됐다고 봐야겠지.’


한지혁이 밤하늘에서 확인한 오로라는 대략 한 달 전쯤에 돌연 생겨났다.

현 시점의 학자들은 그게 어떤 현상인지도 모르고, 어떤 헌터들도 오로라의 진의를 알지 못했다.

다만 10년의 삶을 미리 살아본 한지혁에게 있어 그 오로라는 익숙하고 너무나도 끔찍한 것이었다.


‘재앙의 징조.’


탑과 게이트의 등장에도 어떻게든 버티던 인류는 서서히 몰락의 기로에 서게 된다.

그리고 그 시작은 누가 뭐라 해도 찬란하게 빛나는 무지갯빛 커튼과 함께였다.

정확한 날짜를 가늠하진 못했지만, 이후에 벌어질 일은 확실히 기억한다.

한지혁은 호흡을 가다듬었다.


‘대규모 몬스터 웨이브.’


탑의 1층부터 10층까지의 몬스터가 세계 곳곳의 도시를 침략할 것이다.

그중 여의도 대피소에서 벌어졌던 참극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잘 기억하고 있었다.


‘······늦지 않아야 할 텐데.’


쿠우우웅!


어렴풋이 보이는 여의도 대피소의 전경을 향해 내달리며 그는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내일도 21시 15분에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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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두 번째 재앙 (4) +2 22.04.30 5,376 95 13쪽
26 두 번째 재앙 (3) +3 22.04.29 5,427 92 13쪽
25 두 번째 재앙 (2) +2 22.04.28 5,502 94 13쪽
24 두 번째 재앙 +2 22.04.27 5,646 92 13쪽
23 지저굴 (4) +7 22.04.26 5,609 103 13쪽
22 지저굴 (3) +3 22.04.25 5,615 89 13쪽
21 지저굴 (2) +2 22.04.24 5,808 90 12쪽
20 지저굴 +3 22.04.23 6,105 97 13쪽
19 화원 (2) +5 22.04.22 6,131 106 13쪽
18 화원 +4 22.04.21 6,215 94 13쪽
17 F급 짐꾼 (4) +2 22.04.20 6,295 108 12쪽
16 F급 짐꾼 (3) +4 22.04.19 6,278 100 13쪽
15 F급 짐꾼 (2) +2 22.04.18 6,474 94 13쪽
14 F급 짐꾼 +3 22.04.17 6,738 96 13쪽
13 인과 (4) +4 22.04.16 6,670 104 13쪽
12 인과 (3) +2 22.04.15 6,682 106 13쪽
11 인과 (2) +2 22.04.14 6,757 107 13쪽
10 인과 +6 22.04.13 7,051 105 13쪽
9 첫 번째 재앙 (5) +3 22.04.12 7,174 110 12쪽
8 첫 번째 재앙 (4) +3 22.04.11 7,394 114 13쪽
7 첫 번째 재앙 (3) +4 22.04.10 7,527 104 13쪽
6 첫 번째 재앙 (2) +2 22.04.09 7,734 111 12쪽
» 첫 번째 재앙 +3 22.04.08 8,454 106 13쪽
4 F급 무지렁이 헌터, 그리고 전생 (3) +6 22.04.07 9,049 108 13쪽
3 F급 무지렁이 헌터, 그리고 전생 (2) +8 22.04.06 9,963 110 13쪽
2 F급 무지렁이 헌터, 그리고 전생 +7 22.04.06 11,051 119 13쪽
1 프롤로그 +8 22.04.06 14,900 143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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