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보니 검술 천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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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우리
작품등록일 :
2022.04.06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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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5.29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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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4.15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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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과 (3)

DUMMY

12.


‘이대로는 전멸이야.’


턱끝까지 밀려온 숨을 참아가며 차유라는 힘겹게 손을 내뻗었다.

빠르게 가공된 불덩이는 접근하던 오크를 일격에 잿더미로 만들었고, 뒤이어 몇 번이고 쏘아낸 불덩이는 오크들을 족족 불태워나갔다.

화력만큼은 발군이라 쉽사리 놈들이 다가올 틈을 내어주진 않았다.


취, 취이이익!


하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한 마리를 쓰러트리면 두 마리가 튀어나왔고, 두 마리를 불태우면 네 마리가 달라붙었다.

죽여도, 죽여도 그 끝을 알 수 없는 오크들의 대대적인 물량 공세!

9층이 지옥 같다는 말이 괜히 헌터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게 아닌 것이다.


“허억, 허억······.”


차유라는 이를 악물고 억지로 마력을 쥐어짰다.

다가오던 오크 떼의 앞으로 불기둥을 솟구친 건 그때.

그녀가 만들어낸 최후의 방어선이었다.


“오래 버티진 못할 거야.”


그녀가 내뱉은 한 마디에 동료들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불기둥이 사라졌을 때의 미래가 쉽게 상상이 되는 것이다.

앞으로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5분? 10분?

서서히 그 크기가 줄어드는 불기둥을 보고 있노라면 당장의 1분도 장담하지 못한다.

차인호가 나지막이 말했다.


“내 탓이야.”

“응?”

“내가 이상한 사람을 데려와서 모두를 위험에 빠트린 거야.”


차유라는 이번 사건의 원인이 될 한 남자를 상기했다.

탑을 오르기 직전에 겨우 영입한 새로운 파티원.

차유라가 추천했던 ‘아저씨’를 대신할 꽤 유능한 D급의 헌터였다.


‘문제가 있다면 그 인간이 우릴 함정에 빠트리고 튀었다는 거겠지.’


차유라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게 어디 오빠 탓이야? 영입을 찬성한 건 우리 모두의 선택이었어.”

“하지만 데려온 건 나잖아.”

“됐어. 이제 와서 그게 무슨 소용인데?”


차유라는 인상을 찌푸리며 차인호의 말을 일축했다.

이미 벌어진 일은 바뀌지 않는다.

그 당연한 진리 앞에서는 후회 따위는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


‘게다가 진짜 원인은 그게 아니니까.’


차유라는 마력이 거의 고갈되어 메말라버린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내가 너무 약한 탓이야.’


그녀는 고질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었다.

좋은 스킬을 가졌지만 그 운용에 있어 너무나도 형편이 없다는 것.

오크 한 마리를 잡는 데에 필요 이상의 마력을 낭비한다는 점······.

작은 불꽃을 일으키려다 초가삼간을 다 태우는 헌터가 바로 그녀였다.

때문에 정작 필요할 때엔 마력이 고갈되어 쓸모가 없어지고 마는 것이다.


‘내가 좀 더 잘해냈더라면······.’


애초에 D급 헌터나 되는 주제에 ‘탑토리얼(탑+튜토리얼)’이라 불리는 1층대에서 위기를 겪는다는 게 말이나 될까.

그녀가 마력 관리를 더욱 철저히 했더라면 이런 위기는 찾아올 일도 없다.

변명을 다른 곳에서 찾을 것도 없다. 명백한 그녀의 과실이었다.

잠시 주변을 둘러보던 차인호는 호흡을 가다듬고 말했다.


“내가 어그로를 끌게. 너희들은 도망쳐.”

“뭐?”

“난 ‘만드라고라의 외침’이 있어. 잠깐이지만 시선을 잡아끌 수 있을 거야. 그러니······.”


대번에 달려든 차유라는 차인호의 멱살을 거세게 말아 쥐었다.


“개소리 하지마. 지금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 하는 거야?”

“차유라.”

“웃기지마. 네가 뭔데 나서?”


잠시 말이 없던 차인호는 단호한 얼굴로 차유라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유라야. 냉정해야지. 이건 가능성이 높은 쪽을 선택하는 거야.”

“그건······!”

“똑똑한 너라면 알잖아. 이것 말고는 다른 방법은 없어.”


멱살을 쥐던 손이 부들부들 떨려왔다.

더욱이 화가 나는 건 그의 말을 쉽게 부정하지 못하는 자신이다.

차유라는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그래도 난 용납 못해. 그런 짓을 하게 놔둘 것 같아?”

“됐어. 너에게 허락을 구하려던 것도 아닌데.”

“뭐?”

“유라야. 내가 싼 똥은 내가 치워.”


그러더니 차인호의 몸이 안개처럼 흩어졌다.

당황하며 손을 내뻗었지만 이미 그는 눈앞에서 사라지고 없었다.

곧 차인호의 목소리는 이곳에서 조금 떨어진 위치에서 들려왔다.


“꼭 살아라.”


키에에에에에엑!


동시에 귀청이 뜯겨져 나갈 것만 같은 엄청난 소음이 터졌다.

불기둥을 향해 흉흉한 눈을 쏘아보내던 오크들의 고개가 돌아간 것도 순간.

차유라는 멍한 눈으로 소음이 터진 방향을 보았다.

오크들에게 가려져 보이진 않지만, 그곳엔 그녀의 오빠인 차인호가 있을 것이다.


“야, 차인······!”


금방이라도 달려들 것 같은 차유라의 옷깃을 누군가가 잡아 당겼다.

동료이자 친구인, 이현수.


“유라야, 가야 해!”

“이거 놔! 저기 오빠가!”

“정신 차려! 인호 형의 희생을 무의미하게 만들 셈이야?!”


그리고 거짓말같이 오크들이 멀어진 틈으로 그들이 빠져나갈 구멍이 생겨나고 있었다.


*


키에에에엑!


목청이 터지도록 소리쳤다. 한 번 사용하고 나면 목에서 피가 나서 성대가 망가져도 상관없었다.


키에에에에에에엑!


한껏 느껴지는 피비린내에 미간을 찌푸리며 차인호는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오크들을 보았다.

일행으로부터 멀어지기 위해 사용한 ‘유령 걸음’은 마력이 부족해 더 쓰지도 못한다.

두 발로 도망치는 수밖에 없다.


‘어그로는 제대로 끌었어.’


스스로 내뱉는 것조차 어려운 확성 스킬, 만드라고라의 외침.

듣는 이로 하여금 ‘광기’에 이르거나, ‘최우선 타격대상’으로 만드는 광역 어그로 스킬이었다.

그 타겟은 수십 마리의 오크에게도 동시 적용될 정도로 파급력이 대단했다.


쿠구구궁!


타겟에서 제외된 일행이 한쪽에서 빠르게 움직이는 것도 보였다.

선두에는 이 세상에서 가장 뜨거운 불꽃을 뿜어내는 여자가 있었다.

얼굴은 보이지 않겠지만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는 눈에 훤했다.


‘너무 슬퍼하진 않았으면 좋겠는데.’


차인호는 쓰게 웃으며 더더욱 목청을 키웠다.

일행이 빠져나갈 틈을 만들려면 더더욱 많은 숫자의 오크를 끌어들여야 한다.

그 당연한 사실 앞에서 몸을 사린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끝까지 발버둥 쳐주마.’


하지만 서서히 쇳소리가 섞여나가고 벌써 음성은 갈라지고 있었다.

필요 마력이 적게 든다 하여도 신체가 제대로 버틸 수 없는 스킬이었다.


키에에에······ 커헉!


이윽고 얼마나 더 달렸을까. 차인호는 피를 토하며 바닥을 나뒹굴어야만 했다.


‘젠장.’


성대가 완전히 망가졌는지 이젠 소리도 나오지 않는다. 지독한 통증으로 목이 뜨겁기만 하다. 그는 힘겹게 입가의 피를 닦았다.


취이이익!


어느덧 주변을 둘러싼 오크들이 더러운 콧김을 뱉어내고 있었다. 스킬의 효과인 ‘광기’에 걸렸는지 몇몇은 무기마저 내던지고 이빨을 딱딱거렸다.

당장이라도 그의 머리를 뜯어먹어도 시원찮을 듯한 표정. 차인호는 그 순간이 마치 영겁의 세월처럼 느껴졌다.


‘아아······.’


차유라는 무사히 탑을 빠져나갔을까?

낙오된 녀석은 없겠지?

모르겠다. 하지만 오크들이 이 정도나 몰렸으면 가능성은 있겠지.

그래. 적어도 차유라라면······ 자랑스런 내 동생이라면 분명 빠져나갔을 거다.

차인호는 확신할 수 있었다.


‘유라는 천재니까.’


3년 전, 가족들이 몬스터에 찢겨나갈 때에도 홀로 각성해 싸우던 그녀였다.

당장은 슬럼프에 빠져서 고생하고 있었지만 언젠가 찬란히 빛날 아이였으니까.

이딴 위기는 빠져나가고도 남는다.


‘그러니 자책하지 말기를.’


간절히 바라며 그에게 다가오는 도끼의 궤적을 바라보았다.

새삼스럽지만 이게 주마등이란 걸 모를 수는 없다.

그저 죽는 게 처음인지라······ 주마등이란 사실을 뒤늦게 눈치챘을 뿐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평소에 더 잘해줄 것을······.’


마지막으로 작은 미련을 남겨두고 차인호가 눈을 꾹 감으려던 순간이었다.


“귀청 떨어지는 줄 알았네.”


창졸간에 들려온 소리에 차인호는 저도 모르게 눈을 뜨고야 말았다.


채애애애앵!


거짓말 같이 튕겨져 나가는 오크의 도끼. 동시에 다가오던 오크의 머리는 피를 흩뿌리며 허공을 선회했다.

차인호는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몰라 어안이 벙벙한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자신의 앞으로 누군가가 있었다.


‘이 사람은······.’


남자가 이쪽을 돌아보는 사이 그 뒤편으로 혈안이 된 오크들이 달라붙는 게 보였다.

광기에 휩싸여 흉악한 울음을 토해내는 오크들의 거친 손이 순식간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한 눈에 보이는 남자의 위기!

차인호는 본능적으로 입을 벌려 사내에게 그 위험을 알리고자 했다.

하지만.


“······!”


이미 망가진 성대는 아주 작은 소리조차 뱉어낼 수 있는 상태가 못 되었다.

그저 눈만 화등잔 만하게 뜨고 수신호로 그에게 무어라 신호를 보내는 게 전부.

곧 다가올 빌어먹게도 끔찍한 장면이 절로 차인호의 눈에 먼저 그려지고 있었다.

남자는 나지막이 말했다.


“원래 이런 사건도 있었나?”


그는 알 수 없는 소리를 중얼거리더니 헛헛하게 웃었다.

바로 뒤편으로 오크가 달라붙었는데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것도 나 때문은 아니겠지?”


눈앞의 남자가 흐릿하게 일렁이는 건 착각일까. 잠시 눈을 감았다 떴을 때는 남자는 오크의 뒤편에 서있었다.

아니, 몇 번이고 눈을 깜빡일 때마다 가까운 오크들의 머리가 허공에 날아올랐다.

굉장히 비현실적인 장면이었다.


‘꿈을······ 꾸는 건가.’


차인호는 그저 성대가 찢어진 통증에 미간을 찌푸리며 현실을 깨달을 뿐이었다.

잠시 그가 숨을 고르는 새에 열댓 마리의 오크가 머리를 잃고 바닥에 널브러졌다.


취, 취이이이이익!


오크들도 이런 상황이 당황스러웠을까. 사방에서 콧김을 뿜어내며 흥분하는 눈치였다.

그리고 그 즈음일까.

차인호는 갑자기 나타나 오크들을 학살하는 사내의 정체를 알아볼 수 있었다.

그는 아는 사람이었다.


‘······입구에서 만났던.’


차유라가 영입하고자 추천한 인물.


‘하지만 F급이랬는데······.’


분명 스스로 F급이라 주장했던 헌터는 당장 홍길동이라도 되는 것처럼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분주했다.

수십 마리의 오크가 단 한 명의 인간을 어찌하지 못하고 압도되는 광경.

차인호는 침을 삼켰다.


‘······저게 뭔 F급이야.’


몇 번인가 보았던 상위 헌터도 이런 압도적인 전투가 가능할지는 모르겠다.

A급?

직접 본 적이 없어 확신은 못하겠지만 그에겐 마치 S급의 현신처럼 느껴졌다.

문득 차유라의 말도 떠올랐다.


「“이분, 검술 하나는 정말 기깔나!”」


차인호의 시선은 오크들 사이를 누비는 남자의 뒤를 쫓았다.

제아무리 검술에 문외한인 그라도 느껴지는 건 있었다.


‘아름답다.’


검이 휘둘러질 때마다 오크들의 머리가 비상했고, 피범벅이 된 그 모습은 야차(夜叉) 같았다.

붉게 물든 그의 검신이 움직이는 모양은 마치 꽃처럼 피어오르고 있었다.

잠시 홀린 듯이 바라볼 때였다.


취이이이이익!


돌연 뒤편에서 오크의 울음이 터지고 순간이지만 바람이 코앞으로 밀려왔다.

차인호가 눈을 껌뻑이며 언제 다가왔는지 눈앞에 선 남자를 마주했다.


“정신 안 차릴래?”


고개를 돌리니 근접했던 오크의 머리통이 한 자루의 검에 관통되어 있었다.

남자가 검을 뽑아드니 그 뜨거운 피가 차인호의 전신을 촤아악 적셨다.

새삼스럽지만 깨닫는다.

그는 방금 죽을 뻔했다.


‘미, 미, 미친······.’


온몸의 피가 거꾸로 역류하는 듯한 기분에 머리가 화끈해졌다.

남자는 이쪽을 쭉 훑어보더니 말했다.


“확실히 상태가 안 좋네.”


그리고 혼자 무어라 중얼거리더니 대뜸 가방을 뒤적였다.

들고 있던 검을 대충 바닥에 꽂아 넣고 손에 쥔 건 웬 도끼.


쿠우우웅!


터무니없지만 도끼를 노려본 순간 등골이 차갑게 식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로부터 울음도 들려왔다.

아니, 도끼가 원래 저런 소리를 낼 수 있는 물건이었던가?


“조금만 참아. 금방 끝낼 테니까.”


남자는 도끼를 꽉 쥐더니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었다.

오크들을 향해 도끼를 겨눈 모습은 언뜻 신성하게도 보였다.


‘흐으읍.’


이유는 모르겠지만 차인호마저 숨을 꾹 참아버린 그때.


크콰카카카카칵!


남자의 손에서 휘둘러진 도끼로부터 거대한 힘의 파동이 생겨났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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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두 번째 재앙 (2) +2 22.04.28 5,502 94 13쪽
24 두 번째 재앙 +2 22.04.27 5,646 92 13쪽
23 지저굴 (4) +7 22.04.26 5,609 103 13쪽
22 지저굴 (3) +3 22.04.25 5,615 89 13쪽
21 지저굴 (2) +2 22.04.24 5,808 90 12쪽
20 지저굴 +3 22.04.23 6,105 97 13쪽
19 화원 (2) +5 22.04.22 6,131 106 13쪽
18 화원 +4 22.04.21 6,217 9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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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F급 짐꾼 (3) +4 22.04.19 6,279 100 13쪽
15 F급 짐꾼 (2) +2 22.04.18 6,474 94 13쪽
14 F급 짐꾼 +3 22.04.17 6,739 96 13쪽
13 인과 (4) +4 22.04.16 6,671 104 13쪽
» 인과 (3) +2 22.04.15 6,683 106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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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첫 번째 재앙 (5) +3 22.04.12 7,174 11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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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첫 번째 재앙 (3) +4 22.04.10 7,527 104 13쪽
6 첫 번째 재앙 (2) +2 22.04.09 7,735 111 12쪽
5 첫 번째 재앙 +3 22.04.08 8,454 106 13쪽
4 F급 무지렁이 헌터, 그리고 전생 (3) +6 22.04.07 9,050 108 13쪽
3 F급 무지렁이 헌터, 그리고 전생 (2) +8 22.04.06 9,964 110 13쪽
2 F급 무지렁이 헌터, 그리고 전생 +7 22.04.06 11,051 119 13쪽
1 프롤로그 +8 22.04.06 14,900 143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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