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보니 검술 천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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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우리
작품등록일 :
2022.04.06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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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5.29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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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4.19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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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급 짐꾼 (3)

DUMMY

16.


천천히 걸음을 옮긴 한지혁은 눈앞으로 번진 풍경에 잠시 침음을 흘렸다.


‘이곳이······.’


그 끝을 알 수 없는 높은 천장부터 지평선이 보일 것만 같은 드넓은 공동.

자욱하게 안개가 깔린 탓도 있겠지만 이곳은 ‘방’이라 하기엔 그 사이즈가 남달랐다.

여태 지나왔던 곳들이 모두 아기자기한 키즈룸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하기야 당연한 건가.’


이곳은 몸길이만 50M에 달하는 초거대 몬스터, 그라운드 서펜트의 보금자리.

새삼스럽게 크기에 놀랄 건 없다.


“그나저나······.”


한지혁은 한숨을 푹 내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드넓은 공동엔 차유라만이 당황스런 얼굴로 눈을 깜빡이고 있었다.


“아, 아저씨.”


두말 할 것도 없는 상황이다.


‘대놓고 미끼로 쓰려는 거로군.’


놈들이 입장과 동시에 몸을 숨길 거란 사실은 일찍이 알고 있었다.

9층에서도 이미 차유라 파티를 향해 같은 수법을 활용했던 놈들이 아닌가.

빤한 일이다.


‘얌체 같은 놈들.’


놈들은 보스 몬스터가 한지혁과 차유라에게 어그로가 끌린 사이, 남몰래 그 뒤를 치려는 속셈일 것이다.

만약 작전 중 두 사람이 죽더라도 놈들은 아마 신경조차 쓰진 않겠지. 아니, 오히려 반길 거다.

손도 안 대고 코를 푸는 격이니까.


‘어디서 보고 있으려나······.’


군침을 뚝뚝 흘리면서 몰래 숨어 있을 놈들을 상기하며 한지혁은 혀를 찼다.

정말이지 가소롭다.


“어, 어떡하죠?”


땅이 흔들리면서 서서히 주변의 분위기는 고조되고 있었다.

폭풍전야와 같던 고요는 순식간에 요란스런 전장이 됐고.

한지혁은 바닥을 뚫고 올라온 거대한 한 마리의 뱀을 올려다보았다.


‘그라운드 서펜트.’


탑의 첫 번째 테마를 마무리하는 10층의 주인이자, 이곳의 대미를 장식할 거대한 땅뱀.

놈이 치켜 뜬 형형한 눈빛을 마주한 지금, 그가 할 일은 굉장히 단순했다.


“어떡하긴······.”


차분하게 검을 뽑아든 그는 자세를 잡으며 말을 이었다.


“사냥해야지.”


*


쿠구구궁!


연신 흔들리는 땅 위에서는 어지간해선 균형조차 잡고 있기 힘들었다.

특히 그라운드 서펜트는 자신의 커다란 몸을 무기삼아 몇 번이나 바닥을 내리찍었다.

그럴 때마다 걷잡을 수 없는 지진이 생겨났고, 하늘에선 종유석이 우박처럼 떨어져 내렸다.


“아저씨이이이!”


황급한 얼굴로 손을 내뻗은 차유라가 능력을 발현하려고 했다. 한지혁은 다급히 외쳤다.


“가만히 있으라니까!”


차유라는 D급 헌터.

그녀의 불꽃을 E급 몬스터인 그라운드 서펜트 따위가 버텨낼 재간은 없다.

모르긴 몰라도 차유라라면 보스 몬스터 정도는 혼자서도 쓰러트릴 수 있을 것이다.

숫자로 밀어붙이는 오크보다는 단 한 마리의 보스 몬스터가 차유라에겐 밥이니까.

우습지만 차유라는 그런 헌터다.


‘화력이 너무 강한 것도 문제야.’


그녀의 화력은 지나치게 강력한 탓에 그라운드 서펜트의 가죽을 모조리 불태울 게 분명했다.

고생해서 보스 몬스터를 사냥해놓고 잿더미만 수거할 게 아니라면······.

차유라는 좀 자제할 필요가 있다.


‘거기다 그걸 얻으려면 당장 그라운드 서펜트를 죽여서도 안 될 일이고.’


그라운드 서펜트의 간격으로 쏜살같이 파고든 한지혁은 녀석의 두꺼운 가죽을 ‘얇게’ 베었다.

약점이 아닌지라 큰 타격도 없었고 작은 상처만을 자꾸만 늘려갈 뿐이었다.

물론 계획대로였다.


‘다음 패턴은······.’


분노한 그라운드 서펜트가 머리를 바짝 들더니 이내 입을 쫘악 벌렸다.

놈의 입에선 산성이 충만한 액체가 넘실거렸다.

한지혁은 머뭇거리지 않고 높이 뛰어올라 녀석의 콧잔등을 발로 내리찍었다.

울컥, 쏟아내려던 산성액이 그대로 녀석의 입안에서 터져 나갔다.


쿠에에에엑!


한껏 괴로워하는 녀석을 보면서도 한지혁은 추가 타격을 이어나가진 않았다.

그라운드 서펜트가 충분히 입안의 상처를 회복하고 진정할 때까지도 천천히 기다려줬다.

이것도 모두 이유가 있다.


‘공략 영상에 나와 있었지.’


회귀 전의 세계에서 한지혁은 탑을 공략하는 수많은 영상을 봐왔다.

대피소를 전전하던 나날들······.

그저 무력할 수밖에 없던 현실에선 그가 할 수 있는 건 오직 그뿐이었다.

지급받은 헌터폰으로 탑 공략 영상만을 주구장창 들여다보는 것이 그의 유일한 일과였다.


‘그 덕에 난 온갖 몬스터의 특성을 알았고 몇 번이나 목숨을 구할 수 있었어.’


그리고 그렇게 오랫동안 숨을 죽여 가며 다른 사람의 삶을 염탐해왔기에, 현 상황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흔하진 않지만 종종 발생했던 9층의 이벤트성 퀘스트.


‘오크 부락의 분노.’


이 연계 퀘스트의 향방과 이후 10층의 보스 몬스터에게 무얼 해야 하는지도 잘 알았다.


‘공략법은 단순해. 체력을 일정 수준 아래로 떨어트린 뒤 10분을 버티는 것.’


그러니 당장 한지혁이 할 일은 그라운드 서펜트를 죽이지 않고 뿅망치로 때리듯 살살 약을 올리는 것이다.

놈은 이대로 죽어서도, 그 이상으로 체력을 회복해도 안 된다. 그것만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


‘거기다 당장 내 실력을 전부 보여서도 안 되겠지.’


스가아아앗!


교묘한 발재간으로 그라운드 서펜트의 공격을 회피했다.

이어진 일격은 치명타가 못 되지만 누적시킨 상처는 꾸준히 늘어났다.

녀석이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돌연 꽈리를 튼 건 그때였다.


‘근데 저건 좀······.’


한지혁은 창졸간에 거리를 좁혀 녀석의 반경으로 접어들었다.

이번 공격만큼은 약점을 공략하더라도 막아야만 했다.


크아아앗!


그렇게 녀석이 눈을 부릅뜨고 무언가를 쏘아내려는 시점이었다.


푸슈욱!


한지혁의 손을 떠난 철검이 그라운드 서펜트의 왼쪽 눈을 파고 들었다.

그로부터 무언가가 터져 나가며 녀석의 머리통의 일부는 돌이 되어 버렸다.

녀석의 필살기 중 하나.


‘석화(石化).’


때문에 녀석이 꽈리를 틀고 왼쪽 눈을 반개할 때엔 반드시 그 눈을 공략해야 한다.

자칫 시선을 마주친 것만으로도 일시적으로 몸이 될 수 있었으니까.

효과는 비록 1분 남짓이더라도.

녀석의 꼬리가 돌이 되어버린 그를 아작내기엔 충분한 시간이었다.


키이이잇!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그라운드 서펜트는 종전의 일격으로도 쓰러지진 않았다.

오히려 분개하며 종전에 굳어버렸던 머리를 포함하여 전신을 돌로 바꾸어 나갔다.


‘오, 이건 의외로 이득.’


한지혁이 여태 기다렸던 패턴이다.


‘히든 페이즈.’


어떤 몬스터든 특수한 조건을 달성하면 반드시 보여준다는 숨겨진 패턴.

고진수 파티도 그렇고 연계 퀘스트 또한 오직 이 순간만을 위해서 달려왔다.


‘쇼타임이군.’


한지혁은 피식 웃으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차유라가 황망한 눈으로 그라운드 서펜트의 이변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 저게 어떻게 된 거예요?”


아직 이 세계엔 그라운드 서펜트가 가진 히든 페이즈의 정보가 알려지지 않은 걸까.

전혀 영문을 모르겠다는 차유라의 얼굴을 흘깃 본 한지혁은 일단 어깨를 으쓱했다.

당장 설명해줄 여유는 없었다.


“긴장해. 이제 진짜가 오니까.”

“네?”

“그리고 단검 좀 빌릴게.”


그라운드 서펜트의 눈깔에 던진 탓에, 애용하던 헌터관리국의 철검도 돌이 됐다.

당장 활용할 수 있는 무기는 ‘파멸의 도끼’가 있었지만 얜 효율이 개똥이다.

차유라는 단검을 건네면서 멋쩍은 얼굴로 답했다.


“······이, 이거 시장에서 싼 값으로 구한 거라 성능은 기대하지 마세요.”

“상관없어.”


단검을 움켜쥔 한지혁은 이리저리 휘둘러보아 무게나 그 크기를 짐작했다.

재질이야 아무래도 좋았다.

그가 사용하던 관리국의 기본 철검은 시장에서 파는 그 무엇보다 재질이 안 좋았으니까.

적당히 구색만 갖춘 검이라도 휘두를 수만 있다면 한지혁에겐 충분했다.


‘진정한 검사에겐 나뭇가지도 훌륭한 무기가 된다지.’


오래 전 무협지에서 읽었던 대목이었다. 이건 아일로이로부터 단련된 한지혁에게도 적용되는 일로······.


-지랄. 내가 언제 그딴 소리를 했느냐?

‘응?’

-닭 잡는 데에 소 잡는 칼을 쓸 필요가 없을 뿐이니라. 나뭇가지가 무기가 된다는 정신병자 같은 소리는 하지 마라. 쪽팔리니라.

‘······.’

-싸움은 자고로 템빨이니라! 이참에 돈 좀 벌면 좋은 무기나 하나 들이거라. 뒈지고 나서 후회하면 소용없으니까!


한지혁은 애써 아일로이를 무시하며 단검을 움켜쥐었다.

석화가 시작된 그라운드 서펜트로부터는 당장 움직임은 없었다.

하지만 이제부터 신경 쓸 건 눈앞의 요 땅뱀이 아니다.


“너 평범한 짐꾼은 아니었군.”


히든 페이즈마저 발동된 마당에 고진수 패거리가 움직이지 않을 이유가 없었으니까.


“F급이란 것도 거짓이었나?”


채애애앵!


갑작스런 기습을 가뿐하게 막아낸 한지혁은 대수롭지 않은 얼굴로 답했다.


“아닌데, 나 F급 맞는데.”


불똥이 튀고 훌쩍 뒤로 물러난 고진수는 이쪽을 향해 살벌한 눈빛으로 말했다.


“정체가 뭐지? 암행어사 뭐 그런 거냐?”

“잠복경찰을 말하나본데······ 아쉽게도 그런 건 아니네.”


짧게 혀를 찬 한지혁은 어느덧 자신을 둘러싼 적들을 천천히 흘겨보았다.

약자들의 뒤통수나 치는 조잡한 놈들이라 해도 방심할 생각은 없었다.


‘이놈들 쓸데없이 강하니까.’


본색을 드러낸 녀석들로부터는 하나하나가 그라운드 서펜트를 씹어 먹을 분위기가 풍겨났다.

이 정도나 되는 양반들이 약한 사람들 뒤통수나 후려치고 다닌다는 게 웃길 뿐이다.


‘······정말 암세포나 다름없군.’


이런 놈들을 빌어먹게도 놔뒀다간 괜히 선량한 사람들이 피해를 보게 될 것이다.

썩은 부위는 일찍이 도려내야 하고 악랄한 범죄자는 새싹부터 밟아줘야 한다.

아무렴 이놈은 재앙과 다를 게 없다. 세상을 무너뜨리는 괴물만이 재앙인 건 아니니까.

고진수는 뻔뻔하게 말했다.


“네 녀석의 정체가 무엇이든······ 감히 날 속이려 한 죗값은 비싸게 치러야 할 거다.”


나지막한 외침과 함께 녀석의 전신에서 마력이 줄기줄기 솟구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다가온 녀석의 공격은 확실히 이 구간에선 만나기 힘든 속도였다.

하지만.


후우우웅!


검격은 허무하게도 허공을 가를 뿐이었다.

한지혁은 혀를 차며 답했다.


“미안한데 죗값은 다른 방식으로 치러야겠는데.”

“뭐, 뭣?”

“너희들 목숨 값이면 되려나.”


고진수가 뒤이어 몇 번이나 검을 휘둘렀지만 모조리 허공을 벨뿐이었다.

그의 신묘한 움직임은 다가오는 그 어떤 공격도 허용하질 않았다. 아예 스치지도 않았다.

아일로이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나쁘지 않은 칠성보로다. 그간 고생한 보람이 있구나.


한지혁은 피식 웃으며 어지러이 찍히는 발자국을 일별했다.

불규칙한 것 같으면서도 레일 위를 밟듯 정확한 간격을 가진 보폭.

새삼스럽게도 아일로이가 여태껏 왜 그토록 보법을 강조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보법 하나만 완성해내도 공격과 방어를 동시에 해낸다지.’


예전엔 막연하게 그 뜻을 이해하려고 했다.

아무렴 검성의 가르침이었으니까.

하지만 이젠 십분 공감하며 보법의 중요성을 설파할 자신이 있다.


‘최고의 방어는 아예 적중 당하질 않는 것이며.’


수개의 공격을 유유자적 피하면서 한지혁은 놈들의 틈을 파고들었다.

호흡을 꾹 참은 채 적진을 가로지르던 그의 눈이 빛난 건 일순.


‘최고의 공격이라도 적에게 닿질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으니.’


마력이 뭉텅이로 빠져나가며 한지혁은 잔상을 남기고 공간을 가로질렀다.

역수로 쥔 단검은 뒤쪽으로 길게 마력으로 이루어진 실선을 만들어냈다.

1년 간 완성한 그의 보법은 표적이 된 사냥감을 놓칠 만큼 허술하질 못했다.


스거어어어엇!


이윽고 한 줄의 실선 끝으로 핏빛 마침표가 아로새겨졌고.


“후우우······.”


활시위를 당긴 채 그대로 허물어지는 누군가의 시체를 내려다 본 한지혁은 길게 호흡을 내뱉었다.


“일단 하나.”

“저, 저······ 개새끼가!”


욕지거리를 내뱉은 고진수를 필두로 녀석들이 다시금 짐승 같은 얼굴로 달려들었다.


작가의말

내일도 21시 25분 예정입니다, 즐거운 하루 되시고요! 오늘도 감사해요. 내일 또 만나요, 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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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두 번째 재앙 (5) +2 22.04.30 5,273 100 13쪽
27 두 번째 재앙 (4) +2 22.04.30 5,376 95 13쪽
26 두 번째 재앙 (3) +3 22.04.29 5,427 92 13쪽
25 두 번째 재앙 (2) +2 22.04.28 5,502 94 13쪽
24 두 번째 재앙 +2 22.04.27 5,646 92 13쪽
23 지저굴 (4) +7 22.04.26 5,609 103 13쪽
22 지저굴 (3) +3 22.04.25 5,615 89 13쪽
21 지저굴 (2) +2 22.04.24 5,808 90 12쪽
20 지저굴 +3 22.04.23 6,105 97 13쪽
19 화원 (2) +5 22.04.22 6,131 106 13쪽
18 화원 +4 22.04.21 6,215 94 13쪽
17 F급 짐꾼 (4) +2 22.04.20 6,295 108 12쪽
» F급 짐꾼 (3) +4 22.04.19 6,279 100 13쪽
15 F급 짐꾼 (2) +2 22.04.18 6,474 94 13쪽
14 F급 짐꾼 +3 22.04.17 6,738 96 13쪽
13 인과 (4) +4 22.04.16 6,670 104 13쪽
12 인과 (3) +2 22.04.15 6,682 106 13쪽
11 인과 (2) +2 22.04.14 6,757 107 13쪽
10 인과 +6 22.04.13 7,051 105 13쪽
9 첫 번째 재앙 (5) +3 22.04.12 7,174 110 12쪽
8 첫 번째 재앙 (4) +3 22.04.11 7,394 114 13쪽
7 첫 번째 재앙 (3) +4 22.04.10 7,527 104 13쪽
6 첫 번째 재앙 (2) +2 22.04.09 7,734 111 12쪽
5 첫 번째 재앙 +3 22.04.08 8,454 106 13쪽
4 F급 무지렁이 헌터, 그리고 전생 (3) +6 22.04.07 9,049 108 13쪽
3 F급 무지렁이 헌터, 그리고 전생 (2) +8 22.04.06 9,963 110 13쪽
2 F급 무지렁이 헌터, 그리고 전생 +7 22.04.06 11,051 119 13쪽
1 프롤로그 +8 22.04.06 14,900 143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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