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보니 검술 천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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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우리
작품등록일 :
2022.04.06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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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5.29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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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4.24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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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저굴 (2)

DUMMY

21.


끼기기긱!

불쾌한 소음을 일으키며 한껏 벌어진 문 너머로 새카만 어둠이 가득했다.

조명을 비추니 꽉 막힌 천장이 보였고, 흙먼지가 감돌아 냄새는 썩 좋지 않았다.

오들오들 떨릴 정도로 공기는 차가워 옷깃을 여며야만 하는 커다란 공동.


[‘지저굴’에 진입했습니다.]


“뭐······ 지저굴?”


슬금슬금 전철을 빠져나온 헌터들은 주변을 탐색하며 저마다의 감상을 뱉어냈다.


“인위적인 구조물이 아닙니다. 자연적으로 발생한 동굴이에요.”

“바람이 부는군요. 다행히 산소가 모자랄 걱정은 없겠어요.”

“축축해······ 근처에 물이 있나?”


헌터들은 기본적으로 게이트를 직장으로 삼아 온갖 생태계를 경험해본 이들.

미지의 공간에 대한 나름의 전문가답게 크게 동요하는 기색은 없었다.


‘문제는······.’


한지혁은 뒤늦게 전철을 빠져나오는 일련의 무리를 확인할 수 있었다.


“뭐, 뭐야······ 어떻게 동굴이?”

“뭡니까, 이게 뭐냐고요!”

“전화가 안 터져! 누구 전화되는 사람 없어요?”


두서없이 의문을 쏟아내며 도통 어찌할 바를 모르겠는지 혼란만이 가중된 모습.

패닉에 빠지기 시작한 민간인들이었다.


“단독행동은 삼가주시고요. 이쪽으로 모이세요. 간단하게 브리핑을 하겠습니다.”

“아니 잠깐······ 그니까 이게 어떻게 된 건지 설명을 하라고.”

“브리핑을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다들 정숙해주세요.”

“우리 설마 게이트로 들어온 거예요? 아니, 진짜? 왜요?”


하지만 패닉은 가중되고 사람들은 더 큰 소란에 빠져들 뿐이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겠지.’


훈련되지 못한 민간인은 이런 상황에서 무얼 어찌해야 할 지를 알 턱이 없다.

그들에게 있어 게이트란, 영상이나 기사로만 겪던 꽤 특별한 세계의 이야기.

종종 현실로 뛰쳐나온 몬스터 때문에 곤욕이었지······ 게이트로 난입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누구 전화되는 분 없습니까!”

“119에 전화를······ 아니지, 관리국에 연락을 넣어야 해!”

“여기 헌터가 있잖아요. 아저씨, 관리국이랑 연락해봤어요?”

“으아아아! 시발! 왜 내가! 왜!”


서른에 달하는 사람들이 저마다 입을 열어대니 주변은 도떼기시장처럼 난리가 났다.

헌터들이 노력하며 진정시키려 해도 패닉에 빠진 사람들은 도통 헤어 나오질 못했다.

한지혁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러면 안 될 텐데.’


모르긴 몰라도 이곳은 지저굴(地底窟)이란 명칭을 가진 게이트 내부였다.

그리고 게이트 안엔 온갖 몬스터가 거주한다는 건 상식 중에서도 상식!


‘이건 나 잡아먹어줍쇼 광고하는 꼴이잖아.’


게이트 진입 메시지가 떠오른 그 순간부터는 누구든 침착하게 숨부터 참아야 한다.

그게 오래 사는 비법이고, 10년은 우려먹은 한지혁의 꿀팁이다.


‘이 상태면······ 암담하군.’


새삼스럽지도 않은 사실은, 지저굴의 생존자는 극소수에 불과했다는 거다.

아무래도 이런 식이라면 이곳의 사람들은 하루도 못 버티고 전멸할 게 빤한 일.


‘하지만 극소수의 생존자 중의 한 명이 바로 김도겸이었지.’


한지혁은 말없이 김도겸을 바라보며 눈을 빛냈다.

그도 이 상황이 썩 나쁘다는 걸 슬슬 눈치챈 것 같았다.

김도겸은 마력을 흉흉하게 쏘아내며 입을 열었다.


“모두 닥치십쇼. 내 손에 먼저 뒈지기 전에.”


*


미지에 대한 공포보다는, 눈앞에 직면한 공포가 더 끔찍한 법.

살벌하게 휘몰아친 마력에 민간인들은 잠시 질색한 얼굴을 했다.

반면 한껏 고요해진 분위기가 만족스러운지 김도겸의 얼굴은 풀어지고 있었다.


“좋습니다. 이대로 통제를 잘 따라준다면 우린 무사히 이곳을 빠져나갈 수 있을 겁니다.”

“······.”

“아시다시피 이곳은 게이트 내부입니다. 경거망동 하지 말고 지시에 순응해주십시오. 지시를 따르지 않을 시, 향후 헌터법에 의거하여 처벌될 수 있다는 점 고지합니다. 다들 새겨들으십시오.”


사람들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무언의 긍정을 이었다.

그리고 김도겸은 전철의 내외를 수색했다.

앞으로 이곳에서 얼마나 있을지는 몰라도 식량부터 모으기 위함이었다.


‘역시 문제는 전부 민간인들이란 거야.’


게이트에 들어설 거란 생각조차 한 적이 없었던 일반 시민들. 그들의 가방 속엔 기껏해야 빵이나 껌이 전부였다.


“괜찮습니다. 게이트 내부에도 식용생물은 존재해요. 자급자족하면 됩니다.”


애써 긍정적인 어조를 띤 김도겸이었으나 그 표정만큼은 밝을 수 없었다.

아무렴 ‘땅속 동굴’에서 식용생물 따위를 구한다는 게 가당키나 할까.


“한지혁 헌터의 가방도 살펴볼 수 있을까요?”

“네, 여기요. 근데 저도 비상식량 몇 개를 제외하고는 가진 게 없습니다.”


김도겸의 말에 한지혁은 순순히 가방을 보여줬다.

잠시 그 내부를 확인한 김도겸은 정중하게 돌려주며 물었다.


“핫팩이 왜 이리 많습니까? 잠시 빌려도 되겠습니까?”

“네, 그러시죠. 도매한 상품이지만 상황이 상황이니까요.”

“감사합니다. 마침 필요했는데 천만다행이군요. 나중에 길드 차원에서 보상이 있을 겁니다.”


한지혁의 가방에서 쏟아져 나온 물건은 ‘마력 핫팩’이란 이름을 가진 특수 아이템이다.

하나만 뜯어도 신체 전부위에 꽤 오랫동안 열기를 유지하는 꽤 고가의 물건.

오늘을 위해서 한지혁이 꽉꽉 구비해온 지저굴 생존 키트라 할 것이다.


‘당장은 음식을 안 먹어도 큰 문제는 없겠지만······ 이 추위엔 얼어 죽기 쉬우니까.’


한편 고광렬이 말했다.


“그나저나 통신이 끊긴 게 정말 큰일입니다. 이거 아무래도 미로형 던전 같아요.”

“확실히, 우리만 떨어져 나온 게 이상하긴 하군요.”

“칸마다 따로 이동됐을까요?”

“가능성은 있습니다.”


한지혁은 천천히 시선을 돌려 쇳덩이로 전락한 전철을 돌아봤다.

앞뒤 칸을 제외하고, 단 한 칸만이 공동에 널브러져 있었다.


‘다른 칸들도 어딘가로 전이됐겠지.’


그들의 추측대로 지저굴은 ‘미로형 던전’에 속한다.

진입과 동시에 랜덤의 장소로 전이되어 따로 출구를 찾아야하는 던전.

아무래도 회귀 전의 세계에서 생존자가 극히 적었던 이유도 아마 이처럼 모두 흩어졌기 때문이리라.


‘어떤 곳은 헌터 자체가 없었으니까.’


패닉에 빠진 사람들은 이도저도 못한 채로 몬스터의 밥이 되고 말았을 거다.

아니, 어쩌면 이번에도 그렇다.

미래의 생존자가 극소수 밖에 없었던 것처럼······ 어떤 곳은 이미 전멸했는지도 모른다.


‘그나마 이번엔 칸마다 화원의 헌터들은 있으니까. 결과가 조금 달라질 수도 있겠어.’


김도겸은 턱을 매만지며 말했다.


“고민이군요. 미로형 던전이라면 꼼수로 빠져나가는 방법도 없을 텐데.”

“거기다 지원군을 기대하는 것도 어려워요. 민간인을 데리고 여길 공략한다는 것도 불가능하고.”

“그렇다고 이곳에 오래 머물 순 없습니다. 우린 그리 여유가 많지 않아요.”


식량도 부족하고, 추위도 유독 문제다.

당장은 마력 핫팩이 있으니 괜찮으나······ 그게 다 떨어진다면?

고광렬은 눈을 빛내며 말했다.


“일단 시민들은 스타팅 지점에 두고, 공략대를 구성해 던전을 공략하는 건 어떻습니까.”

“흐음······.”

“미로형 던전은 다행히 스타팅 지점으로 몬스터가 출몰하진 않잖아요.”


고광렬의 말은 계속됐다.


“이미 게이트로 진입한 지 꽤 됐습니다. 아직 아무런 징조도 없는 걸보면······ 괜찮을 겁니다.”


하지만 잠시 고민을 잇던 김도겸은 부정의 의사를 밝혔다.


“단정 짓진 못해요. 우린 아직 이곳의 등급조차 모르잖아요.”

“······그럼 탐색조라도 꾸릴까요?”

“그게 좋겠군요. 앞으로의 일은 그 후에 논의합니다.”


죽이 짝짝 맞아 떨어진 두 사람은 이후로도 최고의 호흡을 보여주었다.

그렇게 일사천리로 탐색조를 꾸렸고, 탐색조의 선두엔 고광렬이 나섰다.

여기까지는 계획대로 흘러갔다.


츠츠츠츳!


어디선가 들려오는 기묘한 소리에 한지혁이 귀를 바짝 세우기 전까지는 말이다.

한지혁은 차유라의 어깨를 짚었다.


“차유라.”

“네?”

“내가 말했던 거 기억해?”


한지혁은 어둠으로 가득 찬 복도를 가리키면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순간 그쪽에서 뭔가가 일렁인 것도 같았다.


“그게 지금이야.”

“······저쪽 맞죠?”

“부탁할게.”


거두절미하고 차유라는 한지혁의 말을 따라서 곧바로 정면으로 내달렸다.

뒤늦게 반응하는 건 김도겸.


“차, 차유라 헌터! 어디 가십니까? 지금 뭐하시는······!”


차유라의 움직임에 따라 손끝으로 붉을 꼬리가 자라났다.

열기는 상당하여 차가웠던 주변의 온도를 쉽사리 달구었다.


“단독행동은 위험합니다. 차유라 헌터! 당장 돌아오세요!”


다급하게 김도겸도 차유라의 뒤를 따라 달렸다.

하지만 그녀는 멈추지 않고 일정 지점에 도달했으며.


크콰카카카칵!


일시적인 수준은 감히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극악의 불꽃을 쏟아내었다.

모두 한 순간이었다.


“흐아아아앗!”


그렇게 전력을 담은 불꽃이 일직선으로 머나먼 통로를 관통했을까.


키이이이잇!


통로의 천장부터 벽면, 바닥까지 득실거린 무언가가 반응하기 시작했다.

타들어가는 불꽃 너머로 흉흉한 붉은 눈동자 수십 개가 일렁인 건 그때.


“저, 저게 뭐야.”

“······허억.”


당황하는 헌터의 목소리와, 그쪽을 바라본 시민의 표정에 경악이 감돌았다.

상황에 대한 이해가 이어졌다.


“으으아아아악!”

“개, 개미잖아! 미친!”

“도, 도도, 도, 도망쳐야 해!”


다시 패닉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비명을 질러대며 뒤편의 전철로 내달렸다.

몬스터들이 들이닥친다면 쇳덩이에 불과한 전철은 전혀 도움도 안 될 테지만.

마치 그게 마지막으로 남은 성벽이라도 되는 것처럼 너도 나도 뛰어들고 있었다.


“비켜! 비키라고!”

“시발, 너만 살면 다냐?”

“으아아아!”


그만큼 다가오는 개미 군단의 기세는 대단했다.


“이, 이게 무슨······.”


나지막이 당황한 목소리를 토해내는 건 무려 김도겸도 마찬가지였다.

그도 그럴 게, 눈앞에 있는 몬스터는 무려 ‘병정개미’였으니까.


‘병정개미는 18층 몬스터.’


즉 18층 몬스터가 등장했다는 건 한 가지 결론으로 이어진다. 고광렬이 황망히 중얼거렸다.


“C급 게이트······.”


창동역을 출발한 전철이 부득이하게 종착한 이곳.

지저굴의 등급은 무려 C급 게이트란 것이다.


“모, 모두 전투 준비!”


금세 정신을 차린 김도겸이 크게 외치자, 헌터들은 각자의 무기를 꺼내 쥐었다.

정면에 다가오는 수십 마리의 병정개미를 감당해내질 못한다면 남는 건 죽음 뿐.

그 당연한 진리 앞에선 정신을 놓고 멍을 때린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자리부터 잡아요! 탱커는 벽을 세우고, 차유라 헌터······ 그래! 차유라 헌터를 보조합니다! 차유라 헌터는 마력을 회복하고 원거리 공격을 준비해요!”

“······네!”


이번엔 고분고분한 태도로 크게 대답한 차유라는 마력 물약을 크게 한 입했다.

한지혁이 미리 준비해둔 꽤 비싼 값을 하는 그녀의 상비약 중 하나였다.


“한지혁 헌터는 시민들을 진정시켜주세요, 부탁드립니다!”

“네, 그럴 생각이었습니다.”


한지혁은 바로 수십의 병정개미로부터 등을 졌다.

민간인들은 패닉에 빠진 채 불안한 기색만 내비치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니 문득 누군가가 말했다.


“뭐야? 왜 당신만 이쪽으로 와?”

“네?”

“F급 따위가 와서 뭘 어쩐다고! 그 기, 김도겸인지 뭔지 오라 해!”

“흠······.”


하지만 소리를 질러대던 사람들은 곧 주변에 번지는 기묘한 소음을 들을 수 있었다.


사사사삭.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소름이 머리끝까지 닿았다. 누군가가 저도 모르게 스마트폰의 플래시를 한쪽 벽면에 비추었다.

정확하게 전철의 측면에 위치한 벽면으로 밝은 플래시가 비추어진 순간.


키이이이잇!


벽으로부터 구멍을 뚫고 모습을 드러낸 붉은 눈동자가 탐욕스럽게 일렁였다.


작가의말

내일은 19시 25분에 연재됩니다!

유입을 더 늘리기 위해서 한동안 시간은 계속 변동될 겁니다.

내일도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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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두 번째 재앙 (2) +2 22.04.28 5,502 94 13쪽
24 두 번째 재앙 +2 22.04.27 5,646 92 13쪽
23 지저굴 (4) +7 22.04.26 5,609 103 13쪽
22 지저굴 (3) +3 22.04.25 5,615 89 13쪽
» 지저굴 (2) +2 22.04.24 5,808 90 12쪽
20 지저굴 +3 22.04.23 6,105 97 13쪽
19 화원 (2) +5 22.04.22 6,131 106 13쪽
18 화원 +4 22.04.21 6,215 9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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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F급 짐꾼 (3) +4 22.04.19 6,278 100 13쪽
15 F급 짐꾼 (2) +2 22.04.18 6,474 94 13쪽
14 F급 짐꾼 +3 22.04.17 6,737 96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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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인과 (3) +2 22.04.15 6,682 106 13쪽
11 인과 (2) +2 22.04.14 6,756 107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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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첫 번째 재앙 (2) +2 22.04.09 7,734 111 12쪽
5 첫 번째 재앙 +3 22.04.08 8,453 106 13쪽
4 F급 무지렁이 헌터, 그리고 전생 (3) +6 22.04.07 9,049 108 13쪽
3 F급 무지렁이 헌터, 그리고 전생 (2) +8 22.04.06 9,963 11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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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프롤로그 +8 22.04.06 14,900 143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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