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보니 검술 천재였다

무료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퓨전

유우리
작품등록일 :
2022.04.06 16:15
최근연재일 :
2022.05.29 21:25
연재수 :
57 회
조회수 :
296,886
추천수 :
5,234
글자수 :
328,730

작성
22.04.16 21:25
조회
6,670
추천
104
글자
13쪽

인과 (4)

DUMMY

13.


-이 녀석, 상태가 심각하구나.


재빠른 아일로이의 진단에 한지혁도 고개를 끄덕여 그 말에 긍정했다.


“확실히 상태가 안 좋네.”


입가에 대량으로 쏟아진 피부터 새파랗게 질린 안색. 풀려버린 동공과 바들바들 떨고 있는 전신까지······.

한지혁은 9층에 울려 퍼지던 끔찍한 비명을 떠올릴 수 있었다.

차인호가 무슨 짓을 했는지는 알 것도 같았다.


‘광역 어그로 확성 스킬······ 사자후 쪽인가.’


정확한 명칭은 몰라도 성대를 활용한 어그로 스킬이란 것만은 알겠다.

그리고 그쪽 계열 스킬은 대개 무리해서 사용할 경우 성대에 심각한 타격을 준다.

이번 경우도 같았다.

무리에, 무리를 넘은 스킬 활용으로 부작용이 심화되어 스스로 죽기 직전에 이른 거겠지.


‘이대로 놔둔다면 평생 말을 할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그전에 목숨조차 장담할 수 없는 일이다.

파리한 안색만 봐서는 언제 골로가도 이상하지 않았으니까.

한지혁은 결단을 내리기로 했다.


‘그걸 써야겠네.’


그리고 이미 내린 결정엔 망설임이 없었다.


쿠우우웅!


가방에 고이 모셔두고 오랫동안 꺼내지도 않은 물건.

포장지를 벗겨내니 날카로운 도신이 인상적인 도끼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파멸의 도끼!

첫 번째 재앙을 종켤시키면서 얻어낸 한지혁의 첫 번째 유니크 아이템이었다.

회귀 전의 세계에선 수백 억을 호가하던 터무니없는 무기라지.


‘과연······ 이런 거였나.’


파멸의 도끼는 그 투박한 손잡이를 움켜쥐자마자 느낌이 팍 왔다.

단순히 잡는 것만으로도 마력을 미친 듯이 빨아먹기 시작한 것이다.


‘오래 휘두르진 못하겠어.’


가끔 성능이 너무 좋은 아이템은 가성비를 챙기질 못하는 경우가 있다.

아무래도 사용자의 기준이 최상위 수준으로 맞춰져 있기 때문이었다.

레벨 1짜리가 레벨 100짜리 무기를 휘둘러봤자 본연의 성능을 못 내는 건 당연.


‘괜히 파울로도 주먹으로 싸운 게 아닌 거야.’


그뿐이 아니라, 무기의 성능에 사용자가 잡아먹히는 불상사가 발생한다.

흔히 저주받은 장비라고도 불리는‘마검’ 부류의 무구들은 그런 사연을 가졌다.


‘이놈은 마도끼라 해야겠지.’


잠시 차인호 쪽을 살핀 한지혁은 파멸의 도끼를 쥔 손에 힘을 더할 수 있었다.

이대로 계속 쥐고 있으면 이놈의 도끼한테 마력을 모조리 빨려 죽을 판이었다.


“조금만 참아. 금방 끝낼 테니까.”


나지막이 중얼거린 한지혁은 도끼를 있는 힘껏 다가선 오크를 향해 휘둘렀다.

한 순간에 정신이 아찔할 정도로 마력이 빠져나가면서 도끼에 가득 힘이 실렸고.


크콰카카카카칵!


부채꼴로 나아간 참격은 순식간에 주변으로 엄청난 파동을 일으키고야 말았다.

휘두른 당사자인 한지혁조차 터무니없다고 생각될 정도로 파격적인 성능이었다.


“미친······.”


도끼의 궤적에 있던 일대의 오크들이 달려들던 그 자세 그대로 상체가 모조리 ‘파멸’되어 없어진 것이다.

한지혁은 직접 마주한 그 파괴적인 성능에 잠시 말을 잇기가 버거웠다.

헛웃음만 나왔다.


‘하기야······ 파울로 녀석은 이걸로 국토를 반 토막 냈어.’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겠지만 회귀 전의 세계는 분명 그런 사건이 벌어졌다.

녀석이 한 번 바닥을 내리찍으면 지진이 일어났고, 휘두른 공격에 빌딩은 무너졌다.

녀석은 그렇게 재앙이라 불렸다.


‘진짜 파울로 녀석을 일찍 사냥할 수 있던 건 천운이 따라준 거라니까.’


만약 파울로가 이 도끼를 활용할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한지혁은 확신할 수 있었다.


‘뒈지는 건 나였겠지.’


파멸의 도끼는 생각보다 훨씬 강력하고 무서운 무기였다. 잠시 몸을 부르르 떤 한지혁은 미간을 찌푸렸다.


‘근데 야, 야······ 그만 처먹어.’


일격에 반절 이상의 마력을 소모시켰으면서 여전히 왕성한 식욕을 자랑하는 도끼.

온몸에 구멍이 뚫린 기분이다.


“안 되겠네, 이거······.”


두 번 휘두를 자신은 없어 그렇게 천천히 도끼를 포장지에 감싸려는 순간이었다.


“으응?”


이쪽을 바라보던 몇몇의 오크들로부터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 터져 나왔다.


취, 취이이익!

취이익!


“······뭔데.”


오크들은 냅다 머리를 처박으며 몸을 부들부들 떨어대기 시작한 것이다.

몇몇은 무기마저 내던지고 넙죽 엎드려 절을 반복하기까지 했다. 어찌나 절박한지 바닥에 박은 이마에 피가 터졌다.

한지혁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쟤네 왜 저러냐?”

-······그거 때문인 것 같은데?


아일로이의 말에 여전히 마력을 주구장창 처먹는 파멸의 도끼를 내려다봤다.

웅웅대면서 도신을 부르르 흔들어대는 이놈의 이전 주인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놈에겐 이명이 있다.


‘파울로는······.’


그 돼지 녀석은 이 세계의 모든 오크를 다스리는 ‘오크 로드’라 불린다.


*


이후 한지혁은 오크들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느긋하게 9층을 가로지를 수 있었다.

파멸의 도끼를 가방 속에 넣어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이미 뭔가가 각인된 모양이었다.


‘이런 효용성이 있는 줄은 몰랐네.’


한지혁은 헛웃음을 지으며 다가가면 멀어지는 오크 무리를 흘겨볼 수 있었다.

녀석들은 콧김을 내뱉으며 침을 질질 흘리면서도 결코 다가오질 못했다.

한지혁은 장난스럽게 녀석들에게 달려 들어보았다.


“우왁!”

취, 취이이이익!


오크들은 혼비백산하여 도망치기 바빴다. 몇몇은 오줌이라도 지렸는지 주저앉은 채로 어버버 떨어댔다. 나름 급이 높은 오크 워리어조차 그랬으니 두말 할 게 있을까.


‘죽어서도 도움이 되는 구나. 우리 돼지.’


한지혁은 쓰게 웃으며 오크 무리를 일별했다. 뭐가 됐든 치트키를 손에 얻었다. 9층의 오크는 더 이상 그의 방해가 될 수 없었다.

참 운이 좋다고 해야 하나.


[퀘스트 ‘오크 부락의 분노’가 종료되었습니다.]


하지만 곧 눈앞으로 떠오르는 메시지를 읽으며 한지혁은 미간을 팍 구겨야만 했다.


‘죽 써서 개 준 꼴이군.’


결국 차유라 파티를 위기에 빠트리고 도망친 ‘그놈’이 퀘스트를 완료했나 보다.

모르긴 몰라도 한지혁의 행보가 녀석의 퀘스트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을 터.

괜히 배가 아파왔다.


“······그렇게 된 겁니다.”


한지혁은 그놈과 관련된 이야기를 차인호를 통해서 더욱 자세히 들을 수 있었다.

내용은 단순했다.


‘낚시에 걸렸구만.’


파티원으로 영입했던 D급 수준의 검사. ‘고진수’라는 남자는 9층에 오르자마자 돌연 묘한 스프레이를 뿌렸다고 했다.

머지않아 오크들이 떼처럼 몰려나왔고 고진수는 창졸간에 모습을 감추었다.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차유라 파티는 한 순간에 목숨이 위태로운 지경에 놓인 것이다.

한지혁은 짧게 혀를 찼다.


‘예나 지금이나 나쁜 놈은 어떤 식으로든 나쁜 짓을 한다니까.’


수 십 억의 인간에겐 수 십 억의 삶이 있듯, 각 헌터에겐 저마다의 행동양식이 있다.

누구는 정의롭지만 누구는 악독하다. 미래의 세계에서도 영웅적인 삶을 사는 헌터만이 존재하는 건 아니었다.

되레 이처럼 파티의 뒤통수를 후려치면서 자신의 이득을 취하는 존재도 더러 있었다.


‘법의 적용을 덜 받는 탑이니까. 더더욱 그런 놈들이 활개를 치기도 하는 거지.’


게다가 인간이 악해질 때는 얼마나 악해지는지는 누구보다 한지혁이 잘 안다.

이런 낚시질은 애교였다.


‘아이러니하게도 멸망한 세계에선 몬스터만큼이나 인간이 위험했어.’


한지혁이 살았던 세계에는 온갖 군상의 인간들이 존재했다.

배고프다는 이유로 같은 인간을 잡아먹던 식인종은 물론.

어차피 멸망할 세계라고 별별 범죄를 서슴지 않던 질 나쁜 놈도 흔했다.

숨을 죽여 살아가던 한지혁이 더더욱 홀로 고립되어야만 했던 이유였다.


“다시 한 번 감사드려요. 덕분에 살았습니다.”


연신 포션을 마시며 체력을 회복한 차인호는 한지혁에게 몇 번이나 더 감사를 전했다.

포션을 마셔도 쇳소리가 가득한 목소리에 여전히 안색은 지독해보였지만······.

당장 죽을 것 같진 않았다.

역시 비싼 포션 값은 톡톡히 한다. 차인호는 빈 병을 흔들며 말했다.


“이 은혜도 반드시 갚을게요.”

“······네, 꼭 그래야 해요.”


두 사람은 어렵지 않게 8층으로 내려가는 9층의 초입에 다다를 수 있었다.

여기엔 ‘귀환 포탈’이라고, 탑을 빠져나가는 특수한 장치가 마련되어 있다.

그리고 그곳엔 선객이 있었다.


“나 먼저 갈게. 너희들은 관리국에 지원 요청부터 넣어 줘.”

“혼자 가서 뭘 어쩌려고!”

“마력은 회복했어! 난 괜찮아!”

“지랄 마! 인호 형이 어떻게 갔는데······ 널 보낼 것 같아?”

“죽긴 누가 죽었다고 그래? 차인호 그 새끼는 내가 데려올 거야!”


차유라가 동료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다급하게 발걸음을 돌리는 찰나였다.


“짜자안······.”


시선을 마주하고야 만 차인호는 멋쩍게 웃었고.

이를 발견하고는 멍하니 눈을 껌뻑이던 차유라는.


“······미친 새끼가! 짜잔은 개뿔!”


귀신같은 속도로 달려와 차인호의 정수리를 후려갈겼다.


“컥! 야! 나 아직 환자야!”

“환자 같은 소리하고 앉았네. 그냥 뒈져 새끼야!”


차유라는 씩씩 거리며 말했다.


“넌, 네가 그러고 가버리면 내가 고맙다고 할 줄 알았어?”

“······.”

“웃기지 마. 네가 거기서 죽어버리면 나는······ 나는!”

“······미안.”


점차 말을 잇질 못하는 차유라의 머리를 차인호가 천천히 쓰다듬었다.

차유라는 약간 울먹이는 목소리로 몇 번이나 같은 말을 되새길 뿐이었다.


“너는, 너는 진짜 개새끼야······.”


그리고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 한지혁은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걸 느꼈다.

그의 눈엔 아마도 먼 미래······ 혹은, 과거에 불과한 날들이 교차하고 있었으니까.


‘얼어붙은 불꽃.’


몇 번이나 말했지만 그가 기억하는 차유라는 원래 눈물 하나 없는 메마른 사람이다.

손짓 한 번으로 수백 명을 불태우고도 표정 하나 바뀌지 않는 무감정한 영웅.

회귀 전의 세계에서 직접 그녀를 본 적이 있기에 한지혁은 그녀의 이명을 납득한다.


‘살아있는 사람 같질 않았지.’


하지만 당장 눈앞에서 울먹거리고 있는 그녀를 보고 어디 차갑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앳된 얼굴의 차유라는 한지혁의 기억과는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아니, 성격만이 아니다.


‘이 세계의 차유라는 다르다.’


얼어붙은 불꽃이라 불리던 S급 헌터. 멸망하던 세계를 가로질러 적을 불태우던 선봉장!

그녀는 한지혁의 개입으로 인해 ‘무명’에, ‘D급 헌터’가 되고 말았으니까.

어쩌면, 정말 어쩌면.

차유라는 한지혁이 알고 있는 모습으로 더는 성장할 수 없게 된 걸지도 모른다.

그녀가 ‘독했던 이유’를 지웠고, ‘성장에 도움이 될 아이템’을 빼앗았으니까.

게다가 한지혁은 앞으로도 그녀의 미래에 알게 모르게 큰 영향을 줄지도 모른다.

인과는 계속해서 바뀔 것이다.


‘하지만······.’


한지혁은 어느덧 진정됐는지 눈물을 닦은 차유라를 마주할 수 있었다.

그녀는 고개를 숙여 말했다.


“도와주셔서 정말 고마워요. 아저씨가 저희 바보 같은 오빠를 살렸어요.”

“음······.”

“여기 제 연락처입니다. 보답하고 싶어요. 언제든 연락주세요.”


한지혁은 연락처를 건네는 그녀의 손을 내려다봤다.

잔뜩 긁히고 찢긴 상처에, 화상까지 남은 애처로운 손.

오만 가지가 변했어도 변하지 않은 건 분명히 남아 있었다.


‘차유라는 차유라다.’


냉정하기 그지없는 그녀를 두고 어째서 사람들은 ‘불꽃’이란 이명을 붙였을까.

그건 단순히 그녀의 스킬이 ‘발화’였기에 그리 불렀던 게 아니었다.


‘다른 이를 위해 오직 스스로를 불태우는 사람.’


성격은 차갑지만 누구보다 다른 이를 위해 강렬하게 불타오르는 그녀는······.

말 그대로 얼어붙은, 불꽃이다.


“보답이라······.”


그 본질은 바뀌지 않았다.


“혹시 바로 갚을 생각 있어?”


동그랗게 눈을 뜬 그녀를 내려다보며 한지혁은 새로운 미래를 그려보았다.

S급 헌터, 차유라.

어쩌면 그녀는 이번 생에선 누구보다 ‘뜨거운 불꽃’으로 그 이름을 알리게 될지도 모르겠다.


‘아니, 그렇게 만들어야겠지.’


한지혁은 남몰래 다짐했다.


작가의말

내일도 21시 25분 쯤 연재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내일 또 만나요! 꼭!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4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알고 보니 검술 천재였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28 두 번째 재앙 (5) +2 22.04.30 5,273 100 13쪽
27 두 번째 재앙 (4) +2 22.04.30 5,376 95 13쪽
26 두 번째 재앙 (3) +3 22.04.29 5,427 92 13쪽
25 두 번째 재앙 (2) +2 22.04.28 5,502 94 13쪽
24 두 번째 재앙 +2 22.04.27 5,646 92 13쪽
23 지저굴 (4) +7 22.04.26 5,609 103 13쪽
22 지저굴 (3) +3 22.04.25 5,615 89 13쪽
21 지저굴 (2) +2 22.04.24 5,808 90 12쪽
20 지저굴 +3 22.04.23 6,105 97 13쪽
19 화원 (2) +5 22.04.22 6,131 106 13쪽
18 화원 +4 22.04.21 6,217 94 13쪽
17 F급 짐꾼 (4) +2 22.04.20 6,295 108 12쪽
16 F급 짐꾼 (3) +4 22.04.19 6,279 100 13쪽
15 F급 짐꾼 (2) +2 22.04.18 6,474 94 13쪽
14 F급 짐꾼 +3 22.04.17 6,739 96 13쪽
» 인과 (4) +4 22.04.16 6,671 104 13쪽
12 인과 (3) +2 22.04.15 6,682 106 13쪽
11 인과 (2) +2 22.04.14 6,757 107 13쪽
10 인과 +6 22.04.13 7,051 105 13쪽
9 첫 번째 재앙 (5) +3 22.04.12 7,174 110 12쪽
8 첫 번째 재앙 (4) +3 22.04.11 7,394 114 13쪽
7 첫 번째 재앙 (3) +4 22.04.10 7,527 104 13쪽
6 첫 번째 재앙 (2) +2 22.04.09 7,735 111 12쪽
5 첫 번째 재앙 +3 22.04.08 8,454 106 13쪽
4 F급 무지렁이 헌터, 그리고 전생 (3) +6 22.04.07 9,050 108 13쪽
3 F급 무지렁이 헌터, 그리고 전생 (2) +8 22.04.06 9,964 110 13쪽
2 F급 무지렁이 헌터, 그리고 전생 +7 22.04.06 11,051 119 13쪽
1 프롤로그 +8 22.04.06 14,900 143 1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