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보니 검술 천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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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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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4.06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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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5.29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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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4.14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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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과 (2)

DUMMY

11.


단순한 이야기였다.


‘과거가 없어진 거야.’


원래의 차유라는 첫 번째 재앙에서 발굴해낸 괴물 같은 신인이었다.

여의도 대피소의 참극에 분노하여 홀로 게이트를 공략해버린 화제의 D급 헌터.

대서특필 된 그녀의 기사는 당시의 차유라를 영웅으로 묘사하기까지 했다.

한지혁이 차유라를 처음 알았던 시점도 아마 그때 즈음이었을 거다.


‘한데 죽었어야 할 사람들이 살았고, 불타버렸어야 할 대피소는 멀쩡했으니······.’


마땅한 과거가 존재하질 않으니 그녀를 일약 스타로 만들었던 기사도 쓰이질 않았다.

이 시대의 차유라가 무명 헌터인 건 지극히 당연한 결과라 할 수 있었다.


‘게다가 아이템도 없잖아.’


한지혁은 자신의 목에 걸린 ‘집중의 목걸이’를 저도 모르게 매만졌다.


‘이건 원래 차유라의 물건이야.’


집중력을 올려 마력의 제어 연습을 돕는, 수련에 특화된 아이템.

지난 한 달간 그 효과를 톡톡히 본 입장으로 이 아이템의 효용성은 누구보다 잘 안다.

어쩌면 이것 때문이라도 차유라의 등급은 여전히 D급에 머물고 있는지도 모른다.


‘성장의 기회를 빼앗은 건가.’


그가 개입한 걸로 세상은 구원받았을지언정 한 여자의 미래는 송두리째 바뀌었다.

이 세계에선 S급 헌터였던 차유라가 만들어지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과연 비약일까.


‘곤란한데.’


훗날 차유라가 공략한 게이트, 대적했던 재앙, 수많은 사건만 해도 부지기수다.

한지혁이 그리는 미래엔 차유라라는 존재는 꽤나 독보적인 영향력을 떨친다.

분명 그래야 하는 일인데······.

고민을 잇는 사이 차유라의 옆으로 그녀보다 한 뼘은 키가 큰 청년이 나타났다.


“여기서 뭐하냐?”

“차인호.”


차인호라 불린 청년은 훤칠한 키 만큼이나 얼굴도 굉장히 잘생긴 미남이었다.


“준비해. 슬슬 탑으로 들어갈 거야.”

“응? 우리 파티원 구해야 하지 않아?”

“안에서 충원하는 방법도 있으니까. 너무 신경쓰지 않아도 돼.”


그는 이쪽을 보더니 물었다.


“근데 이분은 누구?”

“마침 잘 됐다. 내가 추천하고 싶은 사람이 생겼거든.”

“응?”

“이분, 검술 하나는 정말 기깔나!”


차인호는 큰 손으로 자신의 턱을 매만지더니 한지혁의 전신을 위아래로 훑었다.

그가 눈을 빛내며 물었다.


“등급이 어떻게 되시죠? 마침 저희들이 근접 딜러 포지션이 애매했는데······ 검사라 보면 되나요?”


차인호의 말에 한지혁은 어깨를 으쓱이며 순순히 답해주기로 했다.

파티에 가입할 땐 각자의 등급부터 밝히는 건 상식이었으니까.


“F급입니다.”

“뭔 급이요?”

“F급이라고요.”

“······.”


잠시 말을 잃은 차인호의 시선이 순간이지만 차유라를 강렬하게 쏘아졌다.

그리고 이내 다시 한지혁을 돌아보더니 전보다 훨씬 냉랭한 어조로 말했다.


“죄송해요. 방금 파티의 정원이 가득 찼네요? 다른 곳을 알아보셔야 하겠습니다.”


고백도 전에 차인 기분이었다.


*


탑의 1층은 이젠 질릴 정도로 많이 사냥해본 고블린이 주가 되는 층이었다.


키이이잇!


대롱을 물고 독침을 쏘아대는 놈부터 활을 당기는 녀석.

정면에서 꼬질꼬질한 무기를 휘두르는 놈들까지.

괜히 몬스터의 탑이라 불린 게 아니라는 듯 말 그대로 고블린은 ‘쏟아져’ 나왔다.


‘많기도 하네.’


하지만 한지혁은 대수롭지 않은 얼굴로 검을 꺼내어 쥐었다.

예전의 그였다면 모를까······.

한 달은 더 단련한 그에겐 참으로 위협도 되질 않는 개체였다.

실제로 이미 한 달 전엔 ‘고블린의 정원’을 홀로 공략해내질 않았던가.

녀석들은 일찍이 적수가 못 된다.

아일로이가 혀를 차며 말했다.


-어딜 날먹하려는 게냐?

“날먹이라니. 그런 말은 어디서 배운 거야?”

-대충 넘어갈 생각 말고 제대로 하거라!


한지혁은 짧게 한숨을 내뱉으며 정면으로 뛴 고블린을 응시했다.

이어서 한쪽 눈을 감고, 양손으로 쥐던 검은 왼손으로 옮겨 잡았다.


-어허!


아일로이의 호통에 미간을 찌푸린 그는 다리 한 짝을 들어올리기까지 했다.

터무니없지만 그는 지금 외발, 외손, 외눈으로 고블린을 쓰러트릴 생각이었다.


키아아아앗!


그 자세가 고블린의 심경을 건드렸을까?

더더욱 눈에 형형한 빛깔을 머금은 녀석이 살벌하게 녹슨 철검을 휘둘렀다.

동시에 대롱으로부터 독침이 쏘아졌고 화살 따위도 날아오는 게 보였다.

물론 차분하게 호흡을 가다듬은 한지혁은 그 궤적을 모조리 피할 수 있었다.

칠성보엔 외발로도 재빠르게 움직일 수 있는 보법이 따로 마련되어 있었다.


‘이거 생각보다 재밌네.’


되레 시시했던 이지 난이도가 하드 난이도로 올라간 것처럼 승부욕도 자극했다.

한지혁은 자신의 반쪽만을 사용하는 상황에서도 꽤나 능숙하게 검을 휘둘렀다.

고블린 세 마리가 사방에서 접근한들 전혀 밀리는 양상은 없었다.

다만 이것도 성에 차질 않았나 보다.


-이놈아! 너무 느리다! 굼벵이를 삶아 먹었느냐!

-자세가 또 틀어졌잖느냐! 집중 못 하겠느냐!

-내가 사람을 가르치는지 원숭이를 가르치는지 모르겠구나. 얼씨구? 춤을 춰라, 춤을 춰!


스거어어억!


폭격기처럼 쏟아지는 아일로이의 잔소리 속에서도 1층은 착실하게 공략되었다.

그를 둘러쌌던 고블린은 차츰 싸늘한 주검이 되어 바닥에 널브러질 뿐이었다.

하지만 전투는 끝났지만 아일로이의 잔소리를 끝날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무릇 검사란 어떤 상황에서도 일관된 자세를 펼쳐야 한다는 걸 대체 몇 번이나 말해야 알아먹겠느냐.

“······.”

-머리가 멍청하면 센스라도 좋아야지. 나 때는 안 이랬는데 대체 네놈은 왜 이런 것이냐?

“꼰ㄷ······.”

-뭐?

“아니야.”


한지혁은 턱끝까지 밀려나온 말을 꾹 참았다.

아일로이가 잔소리를 퍼부을 때면 머릿속으로 몇 번이고 되새기는 말이 있었다.


‘나를 죽이지 못한 시련은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들 뿐이라고 했어.’


외눈, 외발, 외손을 써야하는 극단적인 상황도 그를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아일로이의 말마따나 검성이란, 어떤 상황에서도 흐트러지지 않는 검술을 추구하는 존재.


‘검성이 되려면 이 정도는 기본으로 해내야 하는 거야. 당연한 일로 화를 내는 게 이상한 거야.’


아일로이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했다.


-이번엔 양손을 안 써보는 건 어떠냐? 입으로 검을 물어 보거라. 살다보면 양팔을 전부 잃을 상황도 각오해야 하지 않겠느냐?

“······적당히 해, 미친 새끼야.”


어쨌든 한지혁은 자체적으로 난이도를 높여 차근차근 탑을 공략해나갔다.

1층, 2층······ 층간 보스도 그에겐 걸림돌이 되질 못했다.

어느덧 9층에 다다른 한지혁을 보면서 아일로이가 말했다.


-이런 식이면 금방이겠구나.


이젠 탑의 테마가 바뀌기까지 단 두 개의 층만을 남겨뒀다.

아쉬움은 없었지만 피로는 꽤 가득했다.

한지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정확하게 10층까지만 공략하고 슬슬 돌아가자. 우리 꽤 고생했잖아.”

-흥, 강해질 시간도 부족하거늘. 나약한 소리를······.

“치킨을 먹을 때도 됐어.”

-집을 오래 비워도 좋진 않으니라. 혹 가스밸브를 열어 두진 않았더냐.


하여간 누구 전생이 아니랄까봐 입맛도 판박이다.

한지혁은 쓰게 웃으며 9층의 몬스터인 오크를 보았다.


“그나저나 이놈 진짜 독하네.”


오랫동안 씻질 않아 곰팡이마저 자라난 옷차림에, 피부엔 구더기가 내 집 장만을 해냈다.

파리조차 냄새에 못 이겨 날아다니질 못하는 끔찍하고도 참혹한 층.

오크가 가득한 9층의 냄새는 어찌나 독한지 헌터들 사이로도 악명이 자자했다.


‘때 아닌 마스크 대란도 있었지.’


공기청정 기능이 있는 마스크나 방독면 따위가 없는 한 공략이 어려운 곳.

어떤 방식으로든 최단 시간으로 공략하는 게 우선이 되는 곳이 바로 여기였다.

한지혁도 공감했다.


“여긴 그냥 이지 모드로 클리어할 거야. 단숨에 보스까지 내달린다.”

-마음대로 하거라.

“그럼 간다. 스으으으읍.”


숨을 꾸욱 들이마신 한지혁은 끔찍한 공기에 미간을 잠시 찌푸렸고.


취이이이익!


다가오는 오크를 상대로 빛살 같은 검격을 날리기에 이르렀다. 오크들은 두부 잘리듯 손쉽게 잘려나갔다.


‘······몸이 되게 가볍네.’


피식 웃음을 터트린 한지혁은 다가오던 한 마리의 오크 투사를 향해서도 검을 겨누었다.

어떤 장비도 착용하진 않았지만 그 피부가 철갑처럼 단단하다 알려진 놈.

악력은 무슨 철근을 한 손으로 찌그러트린다나 뭐라나.

파울로의 전신이나 다름없었다.


‘일격에 친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놈의 간격으로 접어들었다.

다만 이놈은 다른 오크보다는 조금 뛰어난 놈이었을까.

덩치에 비해 꽤 빠른 속도로 용케 공격에 반응하는 눈치였다.


‘근데 느려.’


놈이 한지혁을 향해 손을 내뻗은 그 순간에는.


스거어어억!


이미 그의 일격이 놈의 머리통을 베고 있었으니까.


‘다음은······.’


뒤를 돌아볼 것도 없이 한지혁은 바로 정면으로 뛰었다.

소란을 깨닫고 모여든 오크들만 벌써 다섯 마리.


-한지혁!


아일로이의 나지막한 외침에 한지혁은 장검을 역수로 쥐어 냅다 던졌다.

그대로 허공을 가른 장검은 구석에서 몰래 마력을 모으던 오크 주술사를 관통했다.

일격에 허물어진 오크 주술사는 부들부들 떨어대다 손에 쥔 마정석을 떨구었다.


취, 취이이익!


당황한 돼지의 울음이 사방에 가득 찼다.

방금의 공격으로 검을 잃었지만 전혀 문제될 건 없었다.

한지혁은 손가락을 까딱였다.


‘안 와? 안 오면 내가 간다?’


투콰아아앙!


검술을 단련하며 쌓아온 그의 신체 스펙은 그 자체로 무기였다.


취이이이익!


내뻗은 주먹이 오크의 머리통을 으깨버렸고, 무릎으로 턱을 걷어 차 턱뼈를 부수었다.

창졸간에 놈들의 틈으로 접어든 한지혁은 그대로 심장을 뜯어내기까지 했다.

압도적인 파괴력에 가까운 오크들의 눈빛에 공포가 절로 깃드는 게 보였다.

한지혁은 짧게 호흡을 내뱉으며 주변을 응시했다.


‘그냥 이지 모드가 아니라 초이지 모드였네. 나 원래 이렇게 강했나?’


1년의 시간을 투자한 내실 다지기에 이어, 지난 한 달은 마력을 쌓는 데에 주력했다.

첫 번째 재앙으로 파생된 게이트부터 미발견 게이트까지 얼마나 많은 사냥을 했던가.

탑에 올라 처음으로 제한을 두질 않고 싸워보니 새삼스럽지도 않은 수준을 실감한다.


-얼씨구. 고작 돼지 몇 마리 때려잡았다고 또 똥폼을 잡고 앉았네. 네 녀석은 부끄러운 게 뭔지도 모르더냐? 쪽팔리지도 않아?

‘······시끄러.’


한지혁은 미간을 찌푸리며 오크 주술사로부터 검을 회수해냈다.

이미 전의를 상실한 오크들은 한지혁을 향해 쉽게 야성을 드러내질 못했다.

오크들이 제 숨소리마저 조심하는 게 보이는 기이한 순간.


‘그나저나 이상하지 않아?’

-무엇이 말이냐?

‘내 기억엔 9층은 말 그대로 지옥 같다고 누가 그랬거든.’


단순히 냄새가 나고 더러워서 그런 게 아니었다.

오크는 그 번식력이 어마어마하다고 알려진 개체.

모름지기 9층에 오른 헌터들은 엄청난 물량공세에 쉴 틈 없이 싸워야 한다.

한지혁이 구태여 9층에서의 단련을 포기한 이유엔 그것도 포함됐다.

제아무리 약한 개체라 해도 다구리엔 장사 없는 법.


‘근데 오크가 고작 이것뿐이라고? 뭔가 이상한데······ 어, 잠깐.’


눈을 가늘게 뜬 한지혁은 거두절미하고 빠르게 9층을 가로질렀다.

그리고 불길한 예감이 맞아떨어진다는 걸 확신했다.


취이익! 취익! 취이이이익!


한 눈에 봐도 어마어마한 물량의 오크가 한 공동에 대거로 몰려있었으니까.


‘역시 이건······.’


희미하게 인기척을 지우며 공동으로 다가선 한지혁은 눈앞에 뜬 메시지를 보았다.


[퀘스트가 발생했습니다.]

[‘오크 부락의 분노’가 진행 중입니다.]


오크들의 콧김만으로도 열기가 더해지는 가운데, 한지혁은 그 중심에 솟구치는 불기둥을 확인했다.


‘차유라······?’


그곳엔 한껏 긴장한 얼굴로 각자 무기를 꼬나 쥔 차유라 파티가 있었다.


작가의말

내일은 저녁 9시 20분 언저리에 연재됩니다. 제목이 변경될 예정입니다.

<전생이 성좌였다>는 <알고 보니 검술 천재였다>로 변경됩니다.

그럼, 내일 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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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두 번째 재앙 (5) +2 22.04.30 5,273 100 13쪽
27 두 번째 재앙 (4) +2 22.04.30 5,376 95 13쪽
26 두 번째 재앙 (3) +3 22.04.29 5,427 92 13쪽
25 두 번째 재앙 (2) +2 22.04.28 5,503 94 13쪽
24 두 번째 재앙 +2 22.04.27 5,646 92 13쪽
23 지저굴 (4) +7 22.04.26 5,609 103 13쪽
22 지저굴 (3) +3 22.04.25 5,615 89 13쪽
21 지저굴 (2) +2 22.04.24 5,808 90 12쪽
20 지저굴 +3 22.04.23 6,105 97 13쪽
19 화원 (2) +5 22.04.22 6,131 106 13쪽
18 화원 +4 22.04.21 6,217 94 13쪽
17 F급 짐꾼 (4) +2 22.04.20 6,295 108 12쪽
16 F급 짐꾼 (3) +4 22.04.19 6,279 100 13쪽
15 F급 짐꾼 (2) +2 22.04.18 6,474 94 13쪽
14 F급 짐꾼 +3 22.04.17 6,739 96 13쪽
13 인과 (4) +4 22.04.16 6,671 104 13쪽
12 인과 (3) +2 22.04.15 6,683 106 13쪽
» 인과 (2) +2 22.04.14 6,758 107 13쪽
10 인과 +6 22.04.13 7,051 105 13쪽
9 첫 번째 재앙 (5) +3 22.04.12 7,174 11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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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첫 번째 재앙 (3) +4 22.04.10 7,527 104 13쪽
6 첫 번째 재앙 (2) +2 22.04.09 7,735 111 12쪽
5 첫 번째 재앙 +3 22.04.08 8,454 106 13쪽
4 F급 무지렁이 헌터, 그리고 전생 (3) +6 22.04.07 9,050 108 13쪽
3 F급 무지렁이 헌터, 그리고 전생 (2) +8 22.04.06 9,964 110 13쪽
2 F급 무지렁이 헌터, 그리고 전생 +7 22.04.06 11,051 119 13쪽
1 프롤로그 +8 22.04.06 14,900 143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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