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보니 검술 천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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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우리
작품등록일 :
2022.04.06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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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5.29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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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4.17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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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급 짐꾼

DUMMY

14.


한지혁이 그녀에게 건넨 제안은 상당히 뜬금없는 것이었다.


“······파티요?”

“그래. 정확히는 같이 탑을 올랐으면 해. 오르는 김에 원한다면 그놈한테 복수를 해도 좋고.”

“갑자기 무슨······.”


앞뒤 다 떼고 말하는 내용에 차유라는 잠시 눈만 껌뻑이며 그를 바라보았다.

이 남자가 대체 뭐라고 하는 거지? 상황을 이해하기 버거웠다.


“왜요?”

“응?”

“제안은 굉장히 고마운데요. 솔직히 납득하기 어려워서요. 왜 그런 제안을 하시는 거예요?”

“흐음······.”


곰곰이 고민하던 한지혁이 피식 웃음을 터트리면서 꺼낸 말이라고는 다음과 같았다.


“그냥 감.”

“네?”

“내가 이런 데에 촉이 좋거든. 넌 앞으로 굉장히 크게 도움이 될 것 같아.”

“······네?”

“그래서 할 거야 말 거야.”


재촉하는 그의 말에, 차유라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야 말았다. 아니,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이건 몇 번을 생각해봐도 그녀의 입장에선 손해 볼게 단 하나도 없는 제안이었으니까.


‘조금 갑작스럽긴 하지만······.’


놓치고 싶진 않았다. 솔직한 심정은 그랬다.

하지만 차인호는 우려가 됐을까.


“정말 괜찮겠어?”

“물론이지. 무리하진 않을 거야.”

“그 얘기가 아니잖아. 유라야. 꼭 복수 같은 걸 하지 않아도 괜찮아. 우리 모두 살았으면 그걸로 된 거니까.”


어깨를 토닥이는 차인호를 보면서 차유라는 천천히 그의 얼굴을 들여다봤다.

차인호는 늘 이런 식이었다.

바보같이 손해 보는 일이 생기더라도 웃으면서 넘긴다. 누군가가 비겁하게 뒤통수를 때려도 행여나 불똥이 튈까 꾹 참는다.

어릴 적엔 그게 마냥 호구 같아 싫었고, 가만히 참고만 있는 오빠가 원망스럽기도 했다.


‘근데 그게 전부 나 때문이었지.’


차인호는 호구처럼 마냥 착하지도, 그렇다고 성격이 인자해서 모든 걸 용서해주는 게 아니었다.

그저 꾹 참고 살았던 이유는 자칫 차유라가 위험해질까 걱정이 됐기 때문이다.

차인호는 동생을 위해서라면 제 목숨을 내던질 정도로 헌신적인 사람이니까.

차유라는 결심할 수 있었다.


‘내가 강해져야 해.’


어렸을 땐 그의 발목을 붙잡았으니, 이젠 그녀가 그의 날개가 되어줄 차례다.

누구도 얕보지 못할 정도로 강해진다면······ 차인호도 더는 참을 이유가 없어진다.


“무엇보다 우리 뒤통수를 친 놈이잖아. 이대로는 분해서 잠도 못 자.”

“그럼 조금만 기다려. 밖에서 힐을 받고 돌아올 테니까.”

“돌아오긴 어딜 돌아와? 환자는 무리하지 말고 그냥 돌아가서 쉬고 있어.”

“하지만······.”

“괜찮아. 나 혼자 가는 것도 아니잖아.”


차유라의 고집 섞인 말에 잠시 입술을 몇 번이나 들썩이던 그는 고개를 주억거리는 수밖에 없었다.


“대신 위험해지면 바로 돌아오는 거야. 약속해.”

“걱정 말라니까. 이래봬도 오빠보다 헌터 등급은 훨씬 높거든요?”

“······제 동생을 잘 부탁드려요.”


고개를 푹 숙여가며 간곡한 부탁을 하는 오빠를 보면서 차유라의 눈이 빛났다.

막상 제안을 받아들이기는 했지만 눈앞의 남자에 대해선 아는 게 전혀 없다는 사실이 떠오른 것이다.


‘정체가 뭘까?’


차유라는 약간 홍조를 띤 얼굴로 차분하게 차인호와 대화를 하는 남자를 보았다.

처음엔 ‘언랭’이었고, 두 번째는 황당하게도 ‘F급 헌터’였던 남자.

그리고 당당하게 9층의 오크의 떼거지 속에서 차인호를 구해서 돌아왔다.


‘F급이라······.’


너무나도 갭이 큰 모습에 차유라는 진심으로 그가 궁금해지고 있었다.


*


9층은 예상대로 산책이라도 하듯 느긋하게 가로지를 수 있었다.


“아, 아저씨······ 이게 뭐에요? 대체 뭔 짓을 한 거예요?”

“글쎄. 이건 나도 설명하기 복잡한 문제라······.”


조금만 다가가도 기겁하며 도망치는 오크 떼!

숫자만 많았지 겁쟁이들밖에 없는 그곳은 지독한 냄새만이 장애물이었다.

심지어 9층의 층간 보스인 ‘오크 나이트’는 공포에 덜덜 떨다 자결하기까지 했다.

파멸의 도끼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파격적인 치트키임이 분명했다.

큰 어려움 없이 10층까지 다다른 한지혁은 쓰게 웃으며 속으로 생각했다.


‘······이참에 실력이나 좀 보려 했더니만.’


한지혁의 시선은 풀어졌던 긴장을 조이고 다시 호흡을 가다듬는 차유라에게 향했다.

오늘날, D급 헌터로 분류되는 그녀였지만 누구보다 그 잠재력이 뛰어난 존재.

차기의 S급 헌터가 될 인재!


‘원래라면 지금쯤 날아다녔겠지.’


한 달 전, 오우거와 미숙한 싸움을 보이던 차유라는 자신의 실력에 크게 실망한다.

만약 그녀가 일찍 오우거를 사냥했더라면 대피소의 참극은 벌어지지 않았을 테니까.

수만 명이 다치고 죽는 일 또한 벌어지지 않았을 거라고 여긴 것이다.

그날부터 절치부심 노력한 그녀는, 아마도 오늘날 못해도 B급의 헌터가 된다.

아니, 그랬어야 한다.


‘결국 벌어지지 않은 일들이야.’


그러니 너무 큰 기대를 하면 안 될 것이다.

그녀가 예전 같았더라면 솔직히 9층에서의 위기는 말도 안 된다.


‘뭐······ 보면 알겠지.’


크아아아악!


평화롭던 9층과는 다르게 10층은 진입과 동시에 몬스터의 습격이 이어졌다.

스멀스멀 땅을 기면서 두 개의 독니를 품은 뱀은 크기만 무려 드럼통 같았다.


‘서펜트.’


아마존의 아나콘다를 연상케 하는 모습이었지만 그 수준은 단순한 동물과는 다르다.

몬스터, 그것도 E급 수준에 머물 이놈은 무엇보다 귀찮은 특징이 있었다.


키야아아악!


냅다 입을 벌린 서펜트는 그 속에서 새하얀 무언가를 뿜어냈다.

한지혁은 맞부딪치기보다는 회피를 선택했다.


“조심해! 극독이야!”

“······네!”


크게 대답한 차유라는 피하기보다는 정면으로 달려들어 불꽃을 만들어냈다.

그녀의 전면에 드리운 극독은 닿기도 전에 불꽃에 휩싸여 모조리 타들어갔다.

마력으로 강화된 불꽃은 평범한 불꽃보다도 그 파괴력이 남다른 듯했다.

차유라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미끄러지듯 슬라이딩하며 총알처럼 파이어볼을 쏘기도 했다.


‘오오······.’


한 달 전에 오우거를 맞추지 못하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응용력이었다.

아마도 재앙으로 인해 파생된 온갖 게이트를 공략하며 나름의 노하우가 쌓인 거겠지.


크아아아악!


수십 개의 불덩어리에 적중당한 서펜트는 괴로움에 몸부림을 치며 포효했다.

하지만 연달아 쏘아진 불꽃은 서펜트가 버틸 수 있을 정도의 화력이 아니었다.


“후욱, 후욱······.”


잿더미가 되어버린 서펜트를 내려다보며 차유라는 거친 숨을 뱉어내었다.

그리고 그런 그녀를 보면서 한지혁은 헛웃음을 지었다.

한 번의 전투만 보더라도 그녀의 실력을 평가할 수 있었다.

아일로이는 냉정하게 말했다.


-형편없구나.

‘······그러게.’


짧게 혀를 차고는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검을 움켜 쥔 그가 쏜살같이 달려들어 차유라의 뒤편을 겨누었다.

어그로가 끌린 세 마리의 서펜트는 동시에 그녀의 목덜미를 노리고 있었다.


스걱, 스걱, 스거억!


마력은 딱 서펜트의 피부를 가를 정도만 담았다.

그렇게 휘두른 세 번의 칼질은 말끔한 절단면만을 만들었다.

차유라의 불꽃에 비해선 화려함 정도는 비루하기 짝이 없을 정도.

다만 그것만으로도 서펜트는 바닥에 툭툭 떨어져 목숨을 잃었다.

한지혁은 잿더미가 되어버린 서펜트와, 목이 잘려 쓰러진 서펜트를 번갈아보며 말했다.


“마력의 소모가 과해. 한 놈만 잡고 사냥을 끝낼 셈이야? 그 이후도 생각해야지.”

“······죄송해요.”

“아, 사과할 것까진 없고.”


쓰게 웃으며 그녀를 바라본 한지혁은 내심 찔리는 양심을 애써 감추었다.

사실 그녀가 이토록 마력 제어가 엉망인 이유는, 누구보다 그가 원인이질 않은가.

오늘따라 목에 걸린 집중의 목걸이가 유난히 무겁게 느껴진다.


“흠흠······ 그나저나 고진수란 사람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자.”

“아, 네!”

“그놈이 어떻게 생겼다고 했지?”


차유라의 파티를 뒤통수 친 고진수는 서펜트처럼 쫙 찢어진 눈이 인상적인 생김새랬다.

반면 그 몸은 곰처럼 커다랗기에 한 눈에 보면 바로 알아볼 수 있을 거라고도 했다.


‘흐음······ 왠지 익숙한데.’


고진수라는 이름은 생소해도 그 외관은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것만 같았다.

차유라는 한지혁을 향해 말했다.


“근데 그들이 정말 여기에 있을까요?”

“응?”

“9층을 공략하고 탑을 나갔을 수도 있잖아요. 막말로 범죄를 저지른 건데······ 도망쳤을 수도 있죠.”


맞는 말이다.

제아무리 치외법권에 가까운 탑이라 해도, 관리국이 본격적으로 나선다면 잡힐 여지가 충분하다.

범죄를 저질렀다면 녀석들은 일단 자리를 피하고 자숙하는 게 당연한 수순이다.

하지만 한지혁은 확신했다.


“있을 거야.”


그도 그럴 게, 놈은 퀘스트 ‘오크 부락의 분노’를 공략한 당사자가 아닌가.


‘오크 부락의 분노는 10층의 연계 퀘스트로 이어진다.’


해당 퀘스트는 시간제한까지 걸려 있었으니, 놈은 결코 탑을 나가지 않을 것이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10층의 연계 퀘스트 공략에 힘을 쓰려고 할 터였다.


“우리가 너무 늦지만 않으면 돼.”


이후로 한지혁이 전면으로 나서니 사냥 속도는 극적으로 빨라졌다.

다가오는 족족 서펜트를 베어내고 그가 알고 있는 최단거리로 뛰었다.

보스 방을 향해 잠시도 쉬지 않고 달려갔을까.


“응?”


한지혁은 어느덧 가방에서 캡 모자를 꺼내어 쓴 차유라를 발견했다.

그것만으로도 신기하게 그녀의 얼굴이 약간 희미해진 느낌이었다.

정확히는 생김새가 미묘하게 달라져, 그 인식을 뒤트는 것처럼 보였다.

행여나 ‘고진수’라는 놈이 그녀를 알아보면 어쩌나 걱정했었는데······.

그녀가 걱정하지 말라고 단언한 데엔 이런 이유가 숨어있었다.


‘인식 장애 모자라······ 저걸 이때도 갖고 있었다니.’


미래의 차유라도 자주 애용하던 특수한 아이템. 어딜 나가도 기삿거리가 되는 그녀였기에 꽤나 잘 쓰는 물건이랬다.

차유라는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맨 얼굴로 돌아다니면 워낙 말을 많이 걸어와서요. 어······ 절대 연예인병 그런 건 아니에요!”


······안 물어봤는데.


“어? 저 사람이에요!”


한지혁의 침묵이 부끄러웠는지 차유라는 성큼성큼 앞으로 걸어가다 멈춰 섰다.

보스 방의 앞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마지막 전투를 준비하며 각자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그중 차유라는 한쪽 구석에서 검을 닦고 있는 한 남자를 가리켰다.


‘······어쩐지 익숙하더라니.’


그리고 한지혁은 그 남자를 보자마자 녀석의 정체를 대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아니, 모를 수가 없는 놈이다.


‘기억보다는 어려보이지만 분명 그놈이야.’


오늘로부터 정확히 언제인지 모를 미래의 한 순간이 떠오른다.

훗날 저놈이 소속된 단체는 뉴스를 한창 떠들썩하게 만들었더랬지.


‘헌터 킬러.’


한지혁이 현 시점에서 가장 만나기 꺼려하는 집단이자, 미래의 암덩어리가 같은 놈들.

그중 뱀 같은 얼굴에 덩치는 곰만 한 헌터를 두고 사람들은 이렇게 불렀다.


‘도살자.’


특히 급이 낮은 헌터들을 가지고 놀기로 유명한 녀석이라 어찌나 무서웠던지.

도망치는 수준도 상당해서 녀석이 체포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린 걸로 기억한다.


‘희생자는 백 단위를 넘길 거야.’


누구보다 급이 낮은 F급 헌터 한지혁은 본인이 그 타겟이 되지 않기를 어찌나 간절히 기도했었는지 지금도 몸서리가 친다.


“거······ 잘 만났네.”


피식 웃으며 한지혁은 가방에서 각종 아이템을 주섬주섬 꺼내기 시작했다.


“뭐하세요?”

“준비해야지.”


차유라의 앞에선 일부러 잘 보이지 않도록 숨겨뒀던 목걸이는 밖으로 꺼냈다.

여기까지 올라오면서 습득한 아이템 중 비싼 놈들을 골라 착착 몸에 착용했다.

포인트는 단순하다.


‘황금 고블린.’


한지혁이 물었다.


“어때?”

“······이상해요.”


한지혁은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너도 준비해. 지금부터는 연기가 필요하니까. 우린 세상에서 가장 먹음직스러운 호구가 되어야 해.”

“······네?”


일부러 거칠게 숨을 내뱉은 한지혁은 근처를 지나던 서펜트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그리고 창졸간에 거리를 벌려 엉성한 뜀박질을 이으며 보스 방으로 달렸다.


“사, 살려주세요!”


그가 노리는 연기의 대상은 ‘가까스로 살아남아 도망친 F급 짐꾼’이었다.


작가의말

내일도 21시 25분 연재됩니다! 우리 내일도 꼭 만나요! 제발!

+ 4월 23일, 도입 부분 묘사를 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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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두 번째 재앙 +2 22.04.27 5,646 9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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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지저굴 (3) +3 22.04.25 5,615 89 13쪽
21 지저굴 (2) +2 22.04.24 5,808 90 12쪽
20 지저굴 +3 22.04.23 6,105 97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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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화원 +4 22.04.21 6,215 9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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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F급 짐꾼 (3) +4 22.04.19 6,278 10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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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인과 (2) +2 22.04.14 6,757 107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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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첫 번째 재앙 (3) +4 22.04.10 7,526 104 13쪽
6 첫 번째 재앙 (2) +2 22.04.09 7,734 111 12쪽
5 첫 번째 재앙 +3 22.04.08 8,453 106 13쪽
4 F급 무지렁이 헌터, 그리고 전생 (3) +6 22.04.07 9,049 108 13쪽
3 F급 무지렁이 헌터, 그리고 전생 (2) +8 22.04.06 9,963 110 13쪽
2 F급 무지렁이 헌터, 그리고 전생 +7 22.04.06 11,051 119 13쪽
1 프롤로그 +8 22.04.06 14,900 143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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