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보니 검술 천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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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우리
작품등록일 :
2022.04.06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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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5.29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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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4.18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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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급 짐꾼 (2)

DUMMY

15.


“빌어먹을 뱀 새끼들······.”


나지막이 욕지거리를 내뱉은 고진수는 한껏 날이 상한 자신의 칼을 내려다봤다.

서펜트 자체는 그리 어려운 몬스터가 아니라지만 놈이 가진 극독이 문제였다.

몇 번이고 본능적으로 다가오던 극독을 향해 검을 휘둘러버리는 것이다.

극독에 닿을 때마다 무기는 부식되고 그 형상은 망가져 가고 있었다.


“······이게 얼마짜리인데!”


물론 직접 돈을 주고 구매한 물건은 아니었다.

그가 입은 옷, 목걸이, 심지어 검까지 모두 탑에서 노획한 것들.

다만 고생해서 얻은 물건이니만큼 소중하게 관리하는 편이었다.

감언이설에 속아 장비를 헌납해준 고마운 호구들을 위해서라도 그래야 한다.


“됐어. 어차피 이번에 한탕하면 망가진 값은 톡톡히 치르고도 남잖아?”

“그건 그런데······.”

“그보다 보스 놈에 대해서 얘기해보자고. 연계 퀘스트를 공략하려면 단순히 놈을 죽이는 걸로 끝나는 게 아니야.”


고개를 주억거린 고진수는 그의 앞을 가로막은 커다란 문을 보았다.

탑의 10층, 가장 끝 방.

서펜트가 득실거리는 이곳에서도 가장 커다란 뱀이 산다고 알려진 장소.

그들은 이 안으로 들어가 ‘그라운드 서펜트’라는 초거대 몬스터를 공략해야 한다.


“몸길이만 50M야. 제아무리 E급 수준이라 해도 무시하기 힘든 크기지.”

“흐음······.”

“거기다 이번 테마의 마지막이야. 여태 상대했던 보스 놈들보다 까다롭다는 거 알잖아.”


동료 배민성의 말에 고진수는 잠시 침음을 흘렸다.

그가 무슨 의도로 말을 꺼냈는지 알 것도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긴 10층이야. 이미 다들 파티가 있을 텐데?”


누군가 적당한 호구 한 놈을 영입해, 몬스터 공략에 유용한 미끼로 삼는 일.

잘만 이용한다면 손도 안 대고 코를 푸는 격이라 자주 애용하는 방식이었다.


‘운 좋으면 장비도 구하는 거고.’


함정에 빠져 죽어 준 헌터들은 고맙게도 각종 장비를 남겨주기 마련이었다.

그것만 노획해도 쓸데없이 몬스터 가죽을 벗겨내는 것보다는 많은 돈을 만진다.

날이 상한 무기를 다시 살핀 고진수는 한숨을 푹 내쉬면서 중얼거렸다.


“이럴 줄 알았으면 9층의 호구 중 한 명이라도 살려올 걸 그랬나.”

“······그러게 말이다. 차인호라는 놈도 장비가 썩 나쁘진 않던데.”


고진수는 ‘오크 부락의 분노’를 공략하기 위해 홀로 1층까지 내려가는 수고를 했더랬다.

그중 한 파티를 미끼로 활용했고, 오크들에게 어그로가 끌린 사이 동료들이 퀘스트를 완수해냈다.

다시 생각해도 완벽한 작전이었다.


“어떻게, 지금이라도 다시 1층에 다녀올까?”

“······되겠냐. 시간제한이 있는데.”


아쉽지만 시간제한이 있는 연계 퀘스트 때문이라도 1층으로 내려가 또 재미보기엔 글렀다.


“구한다면 여기서 구해야지.”


하지만 말했듯 10층에 오른 헌터 중 파티가 없는 이를 찾기란 하늘의 별따기였다.

1층 이전부터 일찍이 파티를 꾸려 등반하는 것이 이 탑의 상식.

9층 퀘스트를 위해서 고진수가 괜히 1층까지 내려가 그 고생을 반복한 게 아니다.


“아, 어디서 쓸 만한 호구 뚝 떨어져주면 얼마나 좋······ 으음?”


한편 먹이를 노리는 승냥이처럼 주변을 둘러보던 고진수의 눈이 동그래진 건 그 즈음이었다.


“잠깐만······ 저거.”


돌연 누군가가 비명을 지르면서 힘겨운 뜀박질로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사, 살려주세요!”


공포에 잔뜩 질린 얼굴로 도망치는 인원은 고작 두 명.

그들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는 대번에 알 수 있었다.

느닷없이 저런 몰골로 도망치는 이유는 파티가 궤멸했을 때 말고는 없었으니까.


“민성아.”

“······어, 나도 보고 있다.”


아무래도 호박이 넝쿨째 굴러들어오는 것 같았다.


*


“허억, 허억······.”


거친 호흡을 내뱉으며 일부러 엉성한 뜀박질을 이었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는 헐리우드 액션은 기본.

겁에 질린 혼신의 연기는 완벽하다 자신할 수 있었다.


‘메소드니까.’


이건 순도 100%의 생활연기.

늘 겁에 질려 도망치는 게 일상이던 한지혁의 연기였다.

영화제에 나갔다 해도 수상은 여러 개 씹어 먹을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뒤따르던 차유라의 의견은 조금 달랐다.


“아저씨, 어디가선 연기하지 마요.”

“······.”


차유라를 애써 무시한 한지혁은 시선을 돌려 이쪽을 발견한 헌터들을 보았다.

각자 무기를 꺼내어 이쪽을 도와주려는 모양이었지만, 한지혁은 곧 크게 방향을 선회했다.

그가 도달할 곳엔 ‘고진수’가 있어야 한다. 그들과 눈을 마주친 한지혁은 다시 메소드 연기를 이어나갔다.


“······살려주세요!”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고진수 무리는 한지혁의 발연기를 눈치채진 못했다.


“이쪽으로 오세요!”


이가 듬성듬성 빠진 검을 뽑아든 고진수는 대번에 달려와 한지혁의 뒤에 섰다.

용맹한 검격이 터지고 쫓아오던 서펜트는 비명과 함께 바닥에 널브러졌다.

그새 서너 머리의 서펜트가 어그로 끌렸지만 고진수 파티는 꽤나 강했다.

차유라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어떡하죠? 생각보다 많은데.”

“괜찮아. 일단 가만히 있어.”


잠시 속닥거리고 있으려니 서펜트를 전멸시킨 고진수 파티가 의연한 얼굴로 돌아오고 있었다.

표정만 봐서는 어디 개선장군이라도 되는 것처럼 당당하기 그지없었다. 한지혁은 호흡을 가다듬고 말했다.


“고, 고맙습니다. 덕분에 살았어요.”

“뭘요. 돕고 사는 거죠. 그나저나 괜찮으신지요? 다치신 곳은 없으세요?”

“다행히도 전 괜찮습니다.”

“옆에 여성분은······.”

“저도요.”


고진수는 한껏 걱정이 된다는 얼굴로 한지혁을 향해 말했다.


“두 분이 전부이신가요? 만약 다른 분들도 위험에 빠진 거라면 내 지금 당장······!”


여기서 한지혁은 애써 입을 열진 않았다. 단순히 고개를 가로젓는 것만으로도 대답은 충분했다.


“저런······.”


눈앞에 선 고진수나 다른 사람들은 진심으로 안타까워하는 얼굴이었다.

그게 어찌나 자연스러운지, 남들 뒤통수를 쳐서 먹고 살려면 저 정도는 해야겠지 싶었다.

잠시 일행들과 눈빛을 교환하던 고진수는 이쪽을 돌아보더니 나지막이 물었다.


“앞으로는 어쩌실 생각이십니까?”

“네?”

“탑을 나가시려면 9층으로 돌아가거나 여길 공략해야 할 텐데······ 혹시 등급이?”


한지혁은 어수룩하게 웃으며 헌터자격증을 꺼내어 그들에게 보여주었다.

버젓이 F급이라 적힌 자격증.

고진수는 눈을 빛내며 입을 열었다.


“······짐꾼이셨군요.”


탑을 입장하는 기본적인 헌터 등급은 대개 E급이다.

E급 헌터는 되어야 F급 몬스터를 사냥할 수 있는 법.

하지만 종종 F급 헌터도 탑을 오르는 경우가 있는데······ 스킬 중에 ‘인벤토리’를 각성하거나 약간의 괴력을 각성한 경우가 그랬다.

그들은 전천후 짐꾼으로 활약하며, 일행이 모은 각 물품을 보관하는 역할을 한다.

물론 진짜 의미는 다음과 같다.


‘파티의 도움이 없으면 살아날 가망이 없으니 도망칠 생각도 못하는 움직이는 상자.’


한지혁은 고진수를 향해 답했다.


“안 그래도 곤란하던 차였습니다. 돌아갈 수도 없고 나아가지도 못하고······ 누가 도와준다면 참 좋겠는데 말이죠.”

“그렇군요.”

“혹시 허, 헌터님들이 버스를 좀 태워주실 수는 없으십니까? 보상은 두둑하게 드리죠. 아니, 이 도끼도 드릴 수 있어요.”


포장을 살짝 벗긴 ‘파멸의 도끼’는 날카롭고 멋스러운 분위기를 풍겨냈다.

한 눈에 봐도 고가의 물건!

실제 이 녀석의 가격은 수백억을 호가했으니 그 가치는 상상을 초월한다.

한지혁은 입에 침을 발랐다.


“원래 저희 파티의 리더 분께서 습득한 건데······ 그분은 이제 안 계시니까요.”

“크흠.”

“부디 살려만 주신다면 무엇이든 드리겠습니다. 탑에서 나갈 수 있게만 해주세요.”


고진수는 눈빛에 탐욕을 드러내며 약간은 긴장이 풀린 얼굴로 말했다.


“혹시 그 목걸이는······.”

“아, 이것도 드릴게요. 탑을 나갈 수만 있다면 제가 뭔들 못하겠습니까!”

“······흠흠, 제가 꼭 뭐 보상을 바라는 건 아니고요.”


마찬가지로 입에 침을 바른 고진수는 또 한 번 일행과 시선을 교환하더니 말했다.


“좋습니다. 대신 저희는 보스 몬스터를 공략할 겁니다. 그래도 괜찮겠습니까?”


한지혁은 넙죽 그의 손을 잡았다.


“아무렴요. 감사합니다!”


그리고 한지혁은 그대로 짧게 숨을 죽여, 반개한 눈으로 고진수의 파티를 훑어볼 수 있었다.


[특성, ‘숨을 죽이는 자’를 발동합니다.]

[숨을 죽이는 동안 시간을 느리게 인식합니다.]


‘고진수. 미래의 도살자라······.’


미래의 흉악한 범죄자인 ‘도살자’의 파티는 도합 일곱 명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생각보다 수준이 높은 파티야. 한 놈 한 놈이 D급은 되어보이는군.’


모르긴 몰라도 1층대에 머물 정도의 헌터가 아니라는 것만은 확실했다.

서펜트를 단칼에 베어내는 데에서부터 이미 드러난 사실이기도 했다.

막말로 그 정도의 헌터 파티가 왜 다른 헌터의 뒤통수를 치고 다니는지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아니, 이해할 필요도 없나.’


훗날 헌터관리국에 붙잡힌 도살자는 약한 헌터들을 죽이고 다닌 이유를 이렇게 실토했다.


「“재밌으니까.”」


믿었던 동료의 배신에 화들짝 놀라는 눈, 절망에 사로잡혀 모든 걸 포기한 얼굴.

그런 것들이 참을 수 없는 흥미를 주었다고, 고진수는 솔직하게 진술했다.

괜히 그를 희대의 망나니, 약한 헌터를 골라 사냥하는 도살자라 불렀겠는가.

아마도 도살자의 옆에 있는 동료들도 비슷한 성정의 놈들일 확률이 높았다.

결국 끼리끼리 만나는 법이다.


[특성, ‘숨을 죽이는 자’를 해제합니다.]

[시간을 원래대로 인식합니다.]


“그나저나 여성분의 등급을 알 수 있을까요?”

“전 D급입니다.”

“흠, 생각보다 많이 높으신데.”


차유라는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그러면 뭐해요. 전 동료도 지키지 못한 쓰레기인데.”

“네?”

“전 신경쓰지 마세요. 저 같은 건 콱 죽어버리는 게 나아요. 차라리 저 돌멩이로 태어났으면 훨씬 나았을 걸······.”


고진수는 차유라의 말에 멋쩍게 웃으며 멀어졌다.

이건 등급을 속일 수 없는 그녀를 위한 나름의 설정이다.


‘우울증에 걸린 헌터만큼 나약한 존재는 또 없으니까.’


간간히 헌터 업계엔 정신적인 충격을 못 이겨 ‘헌터 우울증’에 걸린 환자들이 발생한다.

일종의 PTSD.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죽고 사는 전장에서 살아가는 헌터들은 알게 모르게 마음의 병을 얻는다.

그들 중 일부는 그 병에 사로잡혀 영원히 헌터 업계를 떠나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헌터 우울증을 앓는 이들은 제아무리 대단한 능력을 가졌다고 해도 그 기량을 발휘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S급 헌터면서 자살한 사람도 있었지.’


그런 극단적인 사례가 아니더라도 헌터 우울증은 능력을 약화시킨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아무래도 마력을 다루려면 정신적인 충격은 영향을 안 줄래야 안 줄 수가 없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몬스터 공략은 저희들이 전문이니까요.”

“그러시든가요.”


그리고 예상대로 차유라의 설정도 저들에게 잘 먹혀들어갔다.


‘결국 D급 하나 정도는 문제가 안 된다는 자신감이 있는 거겠지만.’


잠깐의 정비시간을 거치고 고진수 파티는 바로 공략을 이어나간다고 했다.

한지혁은 으스대는 그들의 뒤를 따라서 보스 방으로 이어지는 석문에 다다랐다.

파티의 리더가 석문을 밀고 들어가는 걸로, 곧 ‘보스 방으로의 전이’가 시작된다.

한지혁은 저들끼리 떠들고 있는 고진수 파티를 흘겨보다 차유라에게 슬쩍 말을 남겼다.


“차유라. 안에서는 가능하면 힘을 쓰지 말고 버텨 봐.”

“네?”

“되묻지 말고.”


머지않아 두 사람은 눈앞으로 떠오르는 메시지를 확인했다.


[파티장 ‘고진수’님이 당신에게 ‘그라운드 서펜트의 보금자리’로의 진입을 제안했습니다.]

[수락하시겠습니까?]


그리고 수락을 기다리는 듯한 고진수 파티의 얼굴을 하나씩 둘러볼 수 있었다.

당장 웃는 낯의 그들이었지만 아마 여기서 수락을 누른 후부터 그 표정부터 달라질 거다.

보스 방으로의 전이가 완료되면, 그들은 보스를 공략하기 전엔 나오지 못하니까.

더는 연기할 이유가 없다.


‘바라던 바다.’


한지혁은 그들과 시선을 마주하며 천천히 서늘한 미소를 지어주었다.


‘도살자.’


이제 미래의 암 덩어리가 될 더러운 환부를 도려낼 시간이었다.


작가의말

내일도 이 시간! 21시 25분! 내일 또 만나요! 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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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두 번째 재앙 +2 22.04.27 5,646 92 13쪽
23 지저굴 (4) +7 22.04.26 5,609 103 13쪽
22 지저굴 (3) +3 22.04.25 5,615 89 13쪽
21 지저굴 (2) +2 22.04.24 5,808 90 12쪽
20 지저굴 +3 22.04.23 6,105 97 13쪽
19 화원 (2) +5 22.04.22 6,131 106 13쪽
18 화원 +4 22.04.21 6,217 94 13쪽
17 F급 짐꾼 (4) +2 22.04.20 6,295 108 12쪽
16 F급 짐꾼 (3) +4 22.04.19 6,279 100 13쪽
» F급 짐꾼 (2) +2 22.04.18 6,475 94 13쪽
14 F급 짐꾼 +3 22.04.17 6,739 96 13쪽
13 인과 (4) +4 22.04.16 6,671 104 13쪽
12 인과 (3) +2 22.04.15 6,683 106 13쪽
11 인과 (2) +2 22.04.14 6,758 107 13쪽
10 인과 +6 22.04.13 7,051 105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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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첫 번째 재앙 (4) +3 22.04.11 7,394 114 13쪽
7 첫 번째 재앙 (3) +4 22.04.10 7,527 104 13쪽
6 첫 번째 재앙 (2) +2 22.04.09 7,735 111 12쪽
5 첫 번째 재앙 +3 22.04.08 8,454 106 13쪽
4 F급 무지렁이 헌터, 그리고 전생 (3) +6 22.04.07 9,050 108 13쪽
3 F급 무지렁이 헌터, 그리고 전생 (2) +8 22.04.06 9,964 110 13쪽
2 F급 무지렁이 헌터, 그리고 전생 +7 22.04.06 11,051 119 13쪽
1 프롤로그 +8 22.04.06 14,900 143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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