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보니 검술 천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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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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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4.06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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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4.21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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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원

DUMMY

18.


[퀘스트를 성공적으로 완수했습니다.]

[보상으로 ‘오크 부락의 보물’을 습득했습니다.]


한지혁은 그라운드 서펜트의 몸통에서 굴러 나온 주먹만 한 돌멩이를 내려다보았다.


‘이거 고마워서 어쩌나.’


이는 <오크 부락의 분노>부터 <오크 부락의 원수>까지 공략해야 얻을 수 있는 아이템.

고진수 패거리가 차유라 파티를 뒤통수 쳐가면서까지 얻고자 한 이번 일의 정수였다.

아일로이가 핀잔을 던졌다.


-침 좀 닦거라.


하지만 아일로이의 말에도 실실 올라가는 입꼬리를 막긴 무리였다.

아무렴 이 물건의 가치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으니까.


‘부르는 게 값이겠지?’


눈앞의 돌멩이는 통칭, ‘힘의 돌’이라 불린다.

갈아서 마신다면 영구적으로 근육량을 늘려주고, 무기에 첨가하면 확률적으로 스킬을 부여한다.

수요는 많아도 공급이 확연히 부족하여 미래에도 큰 가치를 가진 물건.


‘이것만 먹으면 아마도 나는······.’


거기까지 생각했을 때의 한지혁은 잠시 잊고 있던 사실을 하나 더 떠올렸다.


‘이럴 때가 아니지.’


바로 단검을 움켜 쥔 그는 그라운드 서펜트의 사체를 빠르게 헤집었다.

커다란 몸통에서도 역린이 난 자리를 깊게 파고들면 될 일이라 헤맬 것도 없었다.


‘찾았다.’


살점을 걷어내니 하얀색으로 발광하는 구슬이 무려 두 개나 박혀 있었다.

심마니로 빙의한 한지혁은 조심스럽게 구슬을 꺼내어 가방에 넣었다.


‘그라운드 서펜트의 내단.’


히든 페이즈로 들어선 그라운드 서펜트를 사냥해야만 얻을 수 있는 특수 아이템.

이건 나중엔 꽤 흔한 잡템이 되겠지만, 오늘날엔 그 무엇보다 귀한 가치를 가진다.


“아저씨는 진짜 등급이 뭐예요?”

“응?”

“아무한테도 말 안 할게요. 맹세해요. 관리국에도 신고하지 않을 테니까······ 진짜 등급을 알려줄 수 있어요?”


멀찍이 떨어졌던 차유라가 다가오며 건넨 질문이었다. 한지혁은 어깨를 으쓱하며 답했다.


“F급이라니까.”

“에이······.”

“네가 직접 확인해 봐. 작년에 심사를 본 거긴 한데······.”


헌터자격증을 꺼내어 보여주자 차유라는 이리저리 불빛에 비춰보는 등 조작 정황을 찾고자 노력했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한지혁의 자격증은 진품이었고, 차유라는 수긍해야만 했다.


“정교한 조작······ 인가요.”

“진짜라니까.”

“아니 근데 어떻게 그런······.”


차유라가 품은 의문을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었다.

그가 같은 입장이었어도 조작부터 의심했을 것이다.


‘F급은 그런 존재니까.’


흔히 사람들은 F급을 무지렁이라 부른다.

무지렁이의 사전적 의미는, 헐었거나 무지러져서 못 쓰게 된 물건.

무릇 F급 헌터란, 제아무리 각성을 해도 쓸모를 찾을 수 없는 그런 존재인 것이다.

한지혁은 그 사실을 부정하진 않았다.


‘튀어 오르기나 웅크리기 따위를 스킬로 가진 헌터가 무얼 할 수 있겠냐고.’


한지혁 또한 ‘숨 참기’를 각성한 탓에 10년을 오직 숨만 참아가며 살았다.

물론 그 경력도 10년이나 이어지다보니 ‘숨을 죽이는 자’와 같은 특성을 각성하긴 했다만······.


‘그조차 10년이 걸렸어.’


1년 안에 F급에 불과하던 헌터가 이만한 수준으로 성장했다면 누구도 믿진 않을 거다.

한지혁은 쓰게 웃으며 말했다.


“지금의 내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는 나도 잘 몰라. 재심사를 보진 않았으니까.”

“흐음······.”

“확실한 건 1년 전의 나는 F급으로 판정됐다는 거야.”


믿기 힘들겠지만 그 모든 게 사실이었다. 한지혁이란 존재 자체가 증거였다.


“궁금해?”

“네?”

“어떻게 1년 만에 이 정도를 해낼 수 있게 된 건지 알고 싶냐고.”


마력 제어를 못해 D급 헌터로 낙인이 찍힌 그녀는 누구보다 강해지는 일에 목말라 있을 거다.

특히 9층에서 오크 따위에게 죽을 빤한 경험은 그녀의 자존심에도 큰 스크래치를 남겼다.

한지혁은 뜸을 들이며 말했다.


“알려주지 못할 것도 없지.”

“저, 정말요?”

“응. 아마 한 달이면 넌 D급 딱지는 떼고도 남을 걸.”

“D급 딱지······.”


한지혁은 피식 웃으며 물었다.


“어때, 관심이 있어?”


답은 정해져 있었다.


*


그렇게 차유라와 나중을 기약한 한지혁은 부리나케 탑부터 빠져나왔다.

바깥은 여전히 찬 공기가 일렁이는 2월의 서늘한 날씨였다.


-이제 어디로 갈 것이냐?

“정산하러 가야지.”

-지난번의 그 헌터 옥션에 들를 것이냐? 그렇다면 이번에야말로 그때 먹지 못한······.


나름 무슨 기대라도 했는지 폭풍처럼 쏟아내는 아일로이의 말에 한지혁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미안하지만 이번엔 헌터 옥션으로 안 가.”

-무, 뭐?


한지혁은 가방 속에 고이 모셔둔 그라운드 서펜트의 내단을 상기하며 말했다.


“이건 그런 곳에 팔 만한 물건이 아니거든.”


물론 헌터 옥션에서도 비싸게 팔아먹을 수는 있다.

당장 그라운드 서펜트의 내단은 한 번도 나타난 적이 없는 매물이니까.

그것도 10층 보스 몬스터의 히든 페이즈를 거쳐야만 얻을 수 있는 물건이다.

한정으로 팔면, 눈에 혈안이 된 길드를 상대로 고가의 바가지를 씌울 수도 있다.


“하지만 진짜 대박은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파는 거야.”

-필요로 하는 사람?

“응. 지금쯤 이걸 사기 위해 전 재산을 꼴아 박을 인간이 있을 거거든.”


피식 웃음을 흘린 한지혁은 일전의 여의도 쇼핑몰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다다랐다.

으리으리하게 높은 빌딩은 올려다보기만 해도 위축될 것만 같은 크기였다.


‘연금술사 길드, 화원.’


세계의 10대 길드에 속하며, 제약 업계에선 당당히 1위를 차지하는 국내의 기업이다.

오늘날 대다수 포션의 특허권을 가진 이곳은 돈으로 산을 쌓을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안내 데스크에는 친절로 무장한 화원의 길드원이 있었다.

그는 한지혁의 옷차림을 빠르게 살피더니 말했다.

탑을 나오자마자 도착한 터라 곳곳은 피로 얼룩진 상태였다.


“아쉽지만 저희 본사에서는 포션 판매를 하진 않습니다. 가맹점을 이용하셔야······.”

“아뇨, 마스터를 만나러 왔어요.”

“약속을 하고 오신 겁니까?”


한지혁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럼 어려우실 거예요. 마스터께서는 약속된 사람 이외에는 일절 만나지 않으시거든요.”

“급한 용무입니다. 어떻게 안 될까요?”

“네, 어떻게 안 되세요.”


실실 웃으며 답한 직원의 말이었다. 그럼에도 한지혁은 물러나지 않았다.


“말이라도 전해주실 수 있을까요? 아마 마스터는 듣자마자 바로 만나자고 하실······.”

“거, 말길을 처 못 알아들으시네.”

“네?”

“당신 같은 사람이 한두 명인 줄 알아? 무슨 마스터가 동네 친한 형이냐? 부른다고 나오게? 하 씨, 뭔 거렁뱅이 같은 게 자꾸 짜증나게······.”


그는 더 들어볼 것도 없다는 듯 손짓으로 축객령을 내렸다.

그러자 경비원들이 주변으로 다가와 한지혁을 포위했다.


“이만 나가주시죠. 더 이상의 소란은 곤란합니다.”

“흠, 제가 무슨 소란을 부렸다고······.”

“나가주시죠.”


한지혁은 자신을 몰아붙이는 경비원들을 보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뭐 그도 일이 이런 식으로 진행될 거라는 건 예상하고 있었다.

다짜고짜 대기업의 회장을 만나겠다한들 누가 그를 통과시켜주겠는가.

하물며 그는 F급 헌터였다.

아무런 가치도 없는 존재를 만나줄 만큼 화원의 마스터는 한가한 자리가 아니다.


‘어쩔 수 없지.’


그렇기에 한지혁은 약간 무리를 해서라도 과격한 방식을 사용하기로 했다.


‘어떻게든 말만 전해지면 된다.’


발에 마력을 주입한 한지혁은 냅다 바닥을 향해 진각을 밟았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대리석 바닥이 무너진 건 그때.


“뭐하는 짓이냐!”


한지혁의 목으로 경비원들의 칼날이 드리워졌다.

흉흉한 기세로 노려보는 눈빛엔 상급 헌터의 기운이 담겨 있었다.

대형 길드의 소속답게 그들 전부는 못해도 C급은 되는 듯했다.

한지혁은 양손을 위로 올리며 말했다.


“돌 치료제.”

“뭐?”

“이 말만 전하면 됩니다.”


그 말을 끝으로 한지혁은 잔상을 남기며 홀연히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


화원의 마스터인 ‘신우민’은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마스터께서 금일 결제해야 할 서류입니다.”

“뭐 이리 많아?”

“이것도 추린 겁니다. 전부 오늘이 가기 전에 확인 부탁드립니다.”


화원은 제약 회사를 겸업으로 하기에 일반적인 길드와는 분명한 차이가 있었다.

덕분에 재력으로는 비교할 바가 못 되겠지만 그만큼 할 일이 태산이었다.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특효약도 제조되었습니다. 13층의 사마귀로부터 성분이 발견됐어요.”

“고농축 체력 포션에 대한 연구가 진행 중입니다. 여기 관련 비용에 대한 청구가······.”

“금일 19시엔 관리국의 백준호 팀장과의 면담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지금 길드로 가셔서 바로 준비하셔야 해요.”

“그리고 또······.”


속사포로 쏟아내는 비서의 말에 신우민은 질린 얼굴로 입맛을 다셨다.


“쉴 틈이 없네.”


물론 이건 기업의 운영에 관련된 것뿐이었다.

사실 길드 쪽 일을 생각해보면 처리해야 할 서류는 배로 늘어난다.


“이러니 천재는 일찍 죽는단 말이 떠도는 거지.”


신우민은 두꺼운 가죽장갑을 잠시 벗어던졌다.

그 안에는 마치 돌처럼 딱딱하게 굳은 손이 있었다.


“그나저나 윤 실장, 석화 관련 연구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어?”

“······아직 진척은 없는 걸로 압니다.”

“빨리 움직여야 해. 이거 초기에 못 막으면 팬데믹으로 번진다?”

“알고 있습니다. 안 그래도 연구소로 인력을 더 충원할 생각이었습니다.”

“비용이 얼마가 들든 연구에 박차를 가하라고 해. 이건 화원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야.”

“알겠습니다.”


고개를 주억거린 그는 타고 있던 차량이 길드에 가까워지자 다시 가죽장갑을 착용했다.

그가 ‘석화증(石化症)’에 걸린 사실이 세간에 알려진다면 주식부터 떨어질 것이다.


“반드시 석화증을 해결해야 해. 이미 돌이 되어버린 사람도 있댔지?”

“네. 걱정하진 마십시오. 연구진이 불철주야 노력하고 있습니다. 반드시 결과를 가져올 겁니다.”

“알아. 믿고 있으니까.”


고개를 주억거리며 차에서 내린 신우민은 길드로 들어서며 고개를 갸웃했다.

무슨 큰 소동이라도 벌어졌는지 홀의 분위기가 상당히 요란스러웠다.


“마, 마스터! 오셨습니까!”

“무슨 일이죠?”

“별 일 아닙니다. 작은 소란이 조금······.”


신우민은 펜스가 설치된 바닥을 살폈다.

누가 그랬는지는 몰라도 제 승질을 못 참고 스킬을 쓴 듯했다.


“작은 소란은 아닌 모양인데······.”


직원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제 불찰입니다.”


그리고 뒤이은 직원의 설명에 신우민은 저도 모르게 깜짝 놀라고야 말았다.


“······무슨 치료제요?”

“돌 치료제라 했습니다. 밑도 끝도 없어서 무슨 얘기인지는 영······.”


신우민은 약간 황당한 눈으로 그의 비서와 시선을 교차했다.

‘돌 치료제’란 말이 무얼 뜻하는지는 모를 수가 없었다.

아니, 이 타이밍에 들려온 말이기에 더더욱 놀라울 따름이었다.


“그러고 홀연히 사라졌다고요.”

“네, 그게 전부입니다.”


부서진 바닥을 내려다보던 신우민은 호흡을 가다듬고 말했다.


“윤 실장, 백준호 팀장과의 면담이 몇 시랬지?”

“내일로 미루도록 하겠습니다. 백준호 팀장에겐 따로 연락하죠.”

“대신 섭섭하지 않게 보상하세요.”

“알겠습니다.”


신우민은 시선을 돌려 종전까지 그에게 설명을 해주던 직원을 보았다.


“특이사항은 없었습니까?”

“······방금 사냥을 끝낸 모습이었습니다. 복장도 그렇고 냄새도 9층을 다녀온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요.”

“9층, 9층이라······.”


곰곰이 고민하던 신우민은 다시 윤 실장에게 시선을 뒀다.


“바로 탐색을 시작하겠습니다.”

“그 남자는······.”

“신원을 파악해서 바로 보고를 올리죠. 그리고 오늘 벌어진 일에 대해서도 추가조치를 시작하겠습니다.”


말을 더 이을 것도 없이 윤 실장은 신우민의 모든 의도를 파악하고 있었다.

이렇게 유능한 비서가 함께였으니 신우민도 기업과 길드를 동시에 운영할 수 있는 것이었다.


작가의말

내일도 21시 25분에 연재됩니다! 오늘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내일 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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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두 번째 재앙 +2 22.04.27 5,646 9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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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지저굴 (3) +3 22.04.25 5,615 89 13쪽
21 지저굴 (2) +2 22.04.24 5,808 90 12쪽
20 지저굴 +3 22.04.23 6,105 97 13쪽
19 화원 (2) +5 22.04.22 6,131 106 13쪽
» 화원 +4 22.04.21 6,217 9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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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F급 짐꾼 (3) +4 22.04.19 6,279 100 13쪽
15 F급 짐꾼 (2) +2 22.04.18 6,474 94 13쪽
14 F급 짐꾼 +3 22.04.17 6,739 96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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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인과 (3) +2 22.04.15 6,682 106 13쪽
11 인과 (2) +2 22.04.14 6,757 107 13쪽
10 인과 +6 22.04.13 7,051 105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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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첫 번째 재앙 (3) +4 22.04.10 7,527 104 13쪽
6 첫 번째 재앙 (2) +2 22.04.09 7,735 111 12쪽
5 첫 번째 재앙 +3 22.04.08 8,454 106 13쪽
4 F급 무지렁이 헌터, 그리고 전생 (3) +6 22.04.07 9,050 108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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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F급 무지렁이 헌터, 그리고 전생 +7 22.04.06 11,051 119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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