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다츠구(단검)
역사는 반복된다.
“저도 료우타님이 의심스럽습니다.”
모두 몰라 하루토를 쳐다보았다.
게닌들 중 어떤 자는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갸웃하기도 했다.
무솔은 하루토의 말에 충격을 받은 듯 멍하니 그를 쏘아보았다.
하루토가 무솔의 눈길을 피했다.
타이요우에 이어 하루토까지 무솔을 의심하자 마당에 모여 있던 사람들이 술렁거렸다.
“그래? 이유는?”
“저는 료우타님을 따르는 게닌이었습니다. 지난해 여름, 스키타가 료우타님과 함께 정찰을 나갔다가 실종되었습니다. 어떻게 실종되었는지 확실하지 않습니다. 이번에도 료우타님과 한 조였던 사이에몬이 한산섬에서 실종되었습니다. 교토에서도 저희의 본거지가 공격받아 많은 동료가 죽었습니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료우타님과 함께한 동료들이 죽거나 실종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루토가 말을 하다 자신을 노려보는 시선을 의식했는지 힐끔 무솔을 보고는 고개를 돌리며 말을 이었다.
“더 이상한 것은 저희가 사용하는 독을 누군가가 바꿔치기했다는 것입니다. 분명히 하나는 조금이라도 묻으면 즉사하는 것이고 하나는 마비가 되는 것인데 조선 무사들이 분명히 저희의 칼이나 수리검에 맞았는데도 불구하고 그 이후 맞닥뜨리면 살아 있었습니다.”
하루토의 말을 듣고 있던 타이요우가 환한 얼굴로 그를 바라봤다.
‘그래, 지난번 진주성 부근에서 내 칼의 독이 저놈의 목에 상처를 냈는데도 불구하고 살아 있었어. 후후후 이제 네 놈도 끝이다.’
“하루토 말이 맞습니다. 분명 본국을 떠나올 때 독을 저놈에게 맡겼습니다. 물론 본국의 센이라는 아이가 만들었지만, 책임자는 분명 저놈이었습니다.”
타이요우가 더디어 무솔을 없앨 수 있다는 생각에 목소리가 들떠 있었다.
료우타가 조선으로 오기 전 쥰세이에게 부탁해서 센이 독이 든 대나무 통 두 개를 건네주었다.
센이 라나와 함께 심혈을 기울여 만든 독이었다.
누런 통에는 전신이 일시에 마비되는 독이었고 푸른 통에는 서서히 마비되는 독이었다.
둘 다 한 시진 정도 지나면 깨어날 수 있게 만들었다.
이러한 사실은 센과 라나, 그리고 쥰세이와 료우타만 알고 있었다.
독의 상대가 조선인이었기에 료우타가 특별히 지시를 어기고 몰래 바꾼 것이다.
타이요우와 다른 동료들은 누런 통의 독이 조금만 묻어도 즉사하는 독으로 알고 있었다.
“스키타의 죽음은 안타깝습니다만, 이번 침투에서 사이에몬과 한 조라는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저는 분명히 타이요우님과 함께 움직였습니다.”
무솔의 말에 타이요우가 인상을 찌푸렸다.
“그게 사실인가?”
죠유지가 타이요우를 쳐다보며 물었다.
“그, 그게.”
당황한 타이요우가 쉽게 말을 하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하루토가 사이에몬의 죽음을 이야기했을 때, 나무 위에서 편전에 맞아 죽은 그를 떠올리며 역시 료우타가 간자라는 것을 확신했다.
하지만, 말을 할 수가 없어 망설였었다.
무솔 몰래 게닌을 붙여 감시했기에 사실대로 말을 한다는 것은 암살조가 서로를 믿지 못하고 작전을 수행했다고 고백하는 거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사이에몬은 료우타와 무관합니다.”
타이요우가 다 잡았던 료우타를 놓치는 것이 아닐까? 란 생각에 전전긍긍했다.
“죠유지,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나?”
“네, 저, 제 생각으로도 의심스러운 부분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확실한 증거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따릅니다.”
죠유지의 대답을 들은 유키나가는 앞에 꿇어앉아 있는 자들을 살펴보더니 잠시 생각했다.
“음, 료우타라고 했나? 모두가 네 놈을 의심하고 있다. 증거도 충분하다. 이대로라면 네 놈의 목은 무사할 수 없다. 할 말이 있는가?”
잠시 생각한 무솔이 죠유지와 동료들을 둘러보고는 유키나가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모두가 절 죽이려고 하고 있습니다. 어떤 변명을 해도 빠져나갈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제가 만약 간자라면 왜 이 자리에 있겠습니까? 저는 간자가 아닙니다. 본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임무 수행을 충실히 하였고, 목숨을 아꼈습니다. 또한 본국에서도 동료들과 어울려 임무를 충실히 따랐습니다. 다만, 제가 섬에서도, 코카와성에서도 총애받다 보니까 저기 타이요우가 시기한 것입니다.”
무솔이 자신을 변호하며 주변 동료들을 둘러보았다.
하루토와 다른 게닌들이 무솔을 외면했다.
조금은 미안한 마음이 있는지 머리를 긁적이는 동료도 있었다.
타이요우만이 무솔을 똑바로 바라보며 통쾌한 표정이었다.
침묵이 잠시 흘렀다. 무솔은 낙담한 얼굴로 고개를 떨구었다.
“시기를 하는지 질투하는지 그것은 너희들의 일이다. 작전을 실패한 이상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한다. 나를 원망하지 마라. 너의 동료들이 널 지목했으니 순순히 자복하라. 그러면 혹 목숨만이라도 건질 수 있지 않겠느냐?”
“동료에게서 버림받은 몸, 무엇을 더 변명하겠습니까?”
“하하하, 놈, 당돌하구나! ······요시라! 저놈의 몸을 수색하라.”
“핫.”
요시라가 병사들에게 명령하자 병사 두 명이 무솔에게 다가와 몸을 뒤졌다.
가지고 있던 대나무칼과 함께 몸속에서 단검 하나가 나왔다.
“더 이상 없습니다.”
병사가 몸을 다 훑고는 단검을 요시라에게 건넸다.
다른 확실한 증거를 찾으려 한 유키나가가 손을 머리에 대고는 고민을 하는 것 같았다.
요시라가 유키나가 가까이 다가가 허리를 숙이고는 무엇인가 속삭였다.
고개를 끄덕인 유키나가의 입꼬리가 한쪽으로 올라가며 눈앞의 자들을 훑었다.
“저자의 목을 너희들에게 맡기겠다. 어떤가?”
모두가 놀라 입을 다물지 못하고 유키나가를 보았다가 서로를 보며 어리둥절했다.
무솔 또한 황당하여 유키나가를 노려보고는 동료들을 보다 눈이 마주치자 고개를 숙였다.
“저자는 태생도 알 수 없고 미심쩍은 것이 한둘이 아닙니다. 화근을 없애 주십시오.”
타이요우가 죠유지의 눈치를 보면서도 무릎걸음으로 몇 걸음 나오며 다른 게닌들을 둘러보고는 큰 소리로 대답했다.
유키나가가 타이요우와 다른 게닌들을 훑어보았다.
게닌들은 무솔의 눈치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무솔이 타이요우와 그들을 노려보았지만 모두 고개를 돌려 외면했다.
죠유지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눈만 멀뚱멀뚱 뜬 채 타이요우와 그 게닌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끌고 가서 목을 쳐 성문에 걸어라.”
무솔은 더 이상 변명하고 싶지 않았다.
실제로 자신은 간자 보다 더 조선을 위해 칼을 들고 있었기에 구차한 변명으로 목숨을 아끼고 싶지 않았다.
다만, 원수를 갚지 못하고 죽는다는 것이 한스러울 뿐이었다.
‘동생들이 보고 싶구나.’
“유키나가 대장님, 저자가 간자라는 증거가 부족합니다. 저자는 저희 성의 사람입니다. 특별히 아끼는 자이니, 저희 성주님의 의견을 기다려 주십시오.”
죠유지가 앞으로 나와 무솔을 한 번 돌아보고는 유키나가에게 간청했다.
타이요우가 불편한 기색으로 죠유지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다카도라공은 본국에 계시는데, 언제 그 의견을 들어본다는 말인가?”
죠유지는 안타까운 마음이 일었다.
비록 칸베에 부관이 료우타를 아껴 자신이 질투했지만, 자신이 봐도 그의 무예와 성품은 아낄만했다.
무솔은 죠유지의 눈을 보고는 먹먹해져 오는 감정에 고개를 돌렸다.
“내가 성주님께 잘 말씀드릴 테니 죠유지는 걱정을 말도록. 끌고 가라.”
다시 유키나가가 명을 내렸다.
죠유지가 더 이상 말을 못 하고 끌려가는 무솔을 보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비록 저 료우타의 행동이나 여러 가지가 의심스럽지만, 특히 본국의 일들을 위해서는······, 앞으로도 쓸모가 꽤 있는 자인데, 젠장!’
무솔은 병사들에게 팔이 붙들려 성문 밖으로 끌려갔다.
뒤에 무솔의 목을 벨 무사 하나가 병사 대여섯 명을 이끌고 따라왔다.
머리 뒤 꼭지에 통쾌한 시선이 따라붙고 있었다.
‘타이요우, 네 놈을······. 어떻게 해야 할까? 이것으로 끝이란 말인가?’
무수한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다.
아버지의 얼굴이 제일 먼저 떠올랐다.
‘이렇게 끝난단 말인가? 아버지! ······이렇게 끝낼 수는 없다.’
방법은 하나밖에 없었다.
성문 근처에 다다르자 주변에 병사들이 많이 없었다.
‘이때다.’
팔을 잡은 병사들을 뿌리치려고 몸을 비틀었다.
닌자검을 꺼내 겨누었다.
병사들이 무솔을 둘러쌌다.
“네 몸이 간자인 게 분명하구나! 죽여도 좋다.”
인솔 무사의 명이 떨어지자 병사들이 칼과 창을 들고 무솔을 공격했다.
그들의 공격에 한 발 뒤로 물러나며 닌자검으로 병사 하나를 죽이려 했다.
누군가 뒤에서 달려오며 급하게 불렀다.
“잠깐, 멈춰라! 대장님이 그놈을 다시 데리고 오라는 명령이다.”
병사들의 공격에 잔뜩 긴장하며, 한 발 뒤로 살짝 물러났던 무솔은 저항을 포기하고는 병사들에 붙들려 유키나가 앞에 다시 끌려왔다.
유키나가가 요시라와 무엇인가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료우타라고 했나? 이 단검은 어디서 났는가?”
요시라가 단검을 유키나가에서 받아서 무솔 앞으로 와 눈앞에 내밀었다.
무솔의 몸을 수색할 때 나온 단검이었다.
“아, 이 단검은 관백 전하께서 제게 주신 선물입니다.”
“바른대로 말하지 못할까? 너같이 비천한 자에게 관백 전하께서 이 귀한 선물을 주었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리. 어디서 훔쳤는지 말하지 못할까?”
앞서 와는 달리 유키나가의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분명히 저에게 주신 것입니다. 지난 오슈의 잇키 때 공로로 받은 것입니다. 다카도라 성주님, 아니 저기 죠유지님께 확인해 보십시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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