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렙 히로인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Lastia
작품등록일 :
2022.05.11 12:54
최근연재일 :
2024.09.16 14:10
연재수 :
274 회
조회수 :
33,928
추천수 :
315
글자수 :
3,873,671

작성
22.07.29 02:44
조회
109
추천
0
글자
18쪽

160-2

DUMMY

『우아아아······ 뭔가요? 저 대검은. 단순하긴 해도 신기잖아요? 저런 것도 직접 만들 수 있는 수준이라고요?』


자신들이 심심풀이로 만드는 물건이 아니다. 저건 명실상부 신이 쓰기 위해 만든 물건이다. 지상의 존재들이 신검이니 뭐니 떠드는 것들과는 결을 달리한다. 신력 또한 전혀 무리 없이 담기기도 했고.



『하지만! 제 신력을 베어버리다뇨?! 아무리 싫어도 그렇지, 정성이라는 게 있는 건데! 애당초 싫어할 이유는 또 뭔가요?』


무안해질 상대방은 안중에도 없었단 말인가. 이토록 불경으로 가득한 지상의 아이를 만나본 적이 있었나 싶기도 하다.


그렇지만 제법 통쾌하게 끝이 나게 됐다.



『저런 걸 이동 중에 부르면 안 되죠. 덕분에 시간의 축이 좀 틀어졌잖아요. 소란이 일어난 건 자업자득이니 저를 탓하지 말라고요? ······응?』


내심 나쁘지만은 않게 분통을 터뜨리고 있을 때였다. 시원스레 자신의 영역으로 들어오는 자가 있었다.


오겠다고 미리 알리지도 않는 제법 거친 방문. 이리 사양이 없는 자는 달리 없다.


슬쩍 돌아보니 예상대로의 존재가 있다.


여성처럼 선이 가는 이목구비. 그러면서도 강직하기 그지없는 기척을 풍기는 남자. 루시아스는 갑작스럽게 찾아온 그를 반갑게 맞이하였다.



『어서 오세요, 지르크니스. 어쩐 일이신가요?』

“공간이 흔들리길래 말이야. 뭔가 해서 와봤지.”


별것도 아니라는 양 대답한 지르크니스는 살짝 웨이브가 진, 어깨를 넘어가는 백발을 흔들리며 주위를 둘러봤다.


본인의 영역도 아닌 곳의 그 작은 일렁임을 감지해 내다니. 가벼운 태도와 달리 과연 무를 담당하는 신이다. 감각의 예민함이 차원을 달리한다.


‘뭐, 겉모습과 다른 건 그뿐만이 아니지만요.’


살짝 미소를 띤 루시아스는 맞은편의 빈자리를 가리켰다.



『잠시 손님이 왔어요.』

“손님? 꽤 드무네.”

『조금 내켜서요. 근데 지상의 존재들처럼 말씀하시네요?』

“아아. 익숙해져서 말이야. 제법 오랫동안 내려가 있었잖아?”

『그렇긴 하죠.』


지르크니스가 지상으로 내려간 건 꽤 오래전의 일. 특별히 무언가를 하는 건 아니지만, 가까이에서 지켜보다 보니 제법 영향을 받았나 보다.



“여긴 여전히 화사한 곳이구먼.”


매번 올 때마다 새로운지 지르크니스는 근처에 자란 푸른 장미를 가볍게 쓸었다.



『당신의 영역이 너무 삭막한 거예요. 온통 무구 천지라니. 그게 뭐예요. 무구의 무덤도 아니고.』

“왜? 보기 좋잖아. 떠오른 걸 바로바로 시험하기 좋고.”

『에휴. 머릿속에 든 게 그런 것밖에 없나요? 당신답다면 당신답지만.』

“언제나 말하지만 그게 멋이야. 그보다 무슨 일 있었어―― 라기보다, 이 신력은······”

『네. 방금까지 그녀가 있었어요. 당신이 그리도 예의주시하는 그분이요. 때마침 제 신전에 오셨길래 초대해봤어요.』

“그런가······”


이스피리아가 이곳에 왔다는 게 마음에 걸리는 걸까. 지르크니스는 그녀가 머문 자리를 묵묵히 쳐다봤다.



『과연 당신과 글로디아가 눈여겨본 분이었어요. 정말 믿기지 않더라고요.』

“그래······ 그렇겠지. 그 아이는 그런 존재이니.”


무겁게 중얼거린 지르크니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어느 순간부터 그는 이스피리아와 관련된 주제가 되면 이렇게 축 처지기 일쑤였다. 그답지 않게.


이제 와서지만 그가 지상에 내려갔을 때 지켜보지 않은 게 후회된다. 지상에 현현해도 문제는 없겠거니, 대수롭지 않게 생각해선 안 됐었다.


하지만 정말 뒤늦은 후회다. 같은 신을 상대로는 과거를 읽는다 등의 일은 할 수 없다.


――오늘 만나본 이스피리아처럼.



『그녀는 도대체 뭔가요? 어째서 영혼이 그리도 강대하게 되어있는 거죠?』


본디 영혼이란 육체를 떠나면 회수되어 순환의 절차를 거친다. 그때 생전 쌓아두었던 업들로 인해 쌓였던 영혼의 힘은 세계에 환수되어 초기화된다.


즉, 생전에 아무리 강대했던 존재라 할지라도 새롭게 시작하는 인생의 출발선은 모두 똑같은 것이다.


그렇기에 이상하다.


이스피리아의 영혼은 말도 안 되게 강대하여 정령에 이르는 수준. 이른바 반신이다.


그녀를 읽지 못한다고 했던 건 달리 다른 뜻이 있어서 그런 게 아니다. 정말로 그녀의 영혼을 들여다보기란 무지하게 힘들었다.


무리한다면야 가능은 하겠지만, 그리한다면 분명 들킨다. 괜히 반감을 살 수도 없는 노릇이니 실질적으로는 손쓸 도리가 없다고 할 수 있다.


이는 글로디아의 개입이 있었다지만, 겨우 16년만으로 이룩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하물며 다른 요인도 없다. 오로지 순수 본인의 역량만으로 저곳에 도달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뿐이다.


더군다나――



『제 의자를 훼손했더라고요. ‘파괴’라는 개념이 담기지 않은 것임에도 불구하고 맨손으로······』


맞은편의 의자를 보았다. 그곳 손잡이에는 아주 미세하지만, 악력에 의해 짓눌려진 흔적이 있었다.


당시를 회상하면 지금도 놀랍기만 하다. 정말 너무 놀란 나머지 허둥대기도 했다.


물론 지르크니스나 다른 신들은 쉽게 할 수 있는 일이다. 개념 같은 걸 깨부수는 거야 그리 어려운 것도 아니니.


하지만 지상에 있는 존재―― 인간에겐 아니다. 해석은커녕 이해조차 할 수 없는 영역이다. 그나마 가능성이 있다면 자신들이 만든 용과 정령들만이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그만한 일을 해낸 것이다.


이를 지르크니스가 모르진 않을 터. 실제로도 그는 오자마자 신경이 쓰인다는 듯이 의자를 쳐다보고 있었다.



『정말 우리에게서 태어난 존재인지 의심되더라고요.』

“빤히 느껴지잖아? 그 아이는 분명 우리들에게서 태어난 존재야.”

『그냥 하는 소리예요. 솔직히 저 정도일 줄은 상상도 못 했거든요. 오히려 육체에 가려졌다지만 여태 존재를 몰랐다는 게 신기하기만 해요.』

“글로디아가 개입하는 터라 더 그랬겠지.”

『함부로 끼어들긴 뭐 했으니까요.』

“······지금에서야 든 생각이지만, 그건 글로디아를 위한 게 아니지 않았나 싶어. 진정으로 위했으면 기분 나빠할 걸 걱정하기 보다 적극적으로 이야기를 해보는 게 어땠을까 해.”


후회하는 건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마음에 걸리는 건 자명한 듯하다.


루시아스는 안색이 흐려진 지르크니스를 보았다.



『그래도 당신은 뒤늦게라도 뛰어들었잖아요. 덕분에 우리끼리 불화가 생기지 않게 잘 끝났고요.』


그래. 지금까지의 개입에 큰 불만 없이 잠잠할 수 있었던 것은 전부 지르크니스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전까지는 글로디아가 지상에 개입하는 이유를 전혀 공감하지 못하였다. 의문을 품었어도 그저 나름의 생각이 있다거나, 운명의 신으로서 무언가를 보았기에 그런 거라고만 여겼었다.


‘지금도 제대로 공감한다고는 할 수 없지만요. 그래도 지르크니스와 이스피리아······ 그녀의 말대로예요. 방관해서는 안 됐겠죠. 우리들은 가족······이니.’


그리 생각하니 살짝 헛웃음이 나왔다. 16년. 겨우 16년밖에 안 산 인간이 단박에 지적한 것을 그들의 조물주인 자신이 몰랐으니······


‘아니. 정확히 따지면 그녀는 16년만 살았던 게 아니긴 하죠. 뭐어······ 그다지 의미 없는 위안이지만요.’


정말 그러하다. 그녀가 몇 년을 살았든, 이토록 오랫동안 방치한 이쪽은 아무런 면목도 없다. 하다못해 제대로 이야기라도 들었어야 했는데.



『글로디아의 개입이 그녀에게 영향이 있었던 걸까요?』

“아예 없다고는 못하겠지. 애초에 글로디아가 개입하는 것도 이를 위해서라고 하니까. 잘은 모르겠지만······”

『으음. 아무리 영향이 있었다고 한들 저리되기는······. 그리고 영혼 자체에 새겨진 술식은 뭐죠? 육체 탓도 있지만, 저것 때문에 여태 저만한 영혼으로 성장했는지도 몰랐어요.』

“글쎄. 나도 잘.”

『엥? 언제 새겨진 줄도 모르나요? 당신은 계속 관찰하고 있었잖아요.』

“정말 몰라. 어느 날부터 있더라고.”


잠시 지르크니스를 살펴봤으나, 그는 턱을 쓰다듬으며 고뇌에 빠져들어 있었다. 정말 모르는 듯하다.



『하아. 모르는 건 어쩔 수 없죠. 하지만 글로디아는 대체 무슨 생각으로 저런 알아먹지도 못할 술식을······』

“아니. 글로디아가 한 게 아니야.”

『네? 그럼 달리 누가 한다는 거예요? 저조차도 알아보기 힘든 술식인데. 평범한 곳에 새긴 것도 아니에요. 영혼이라고요?』

“알아. 하지만 정말 글로디아는 아니야. 자세히 말하긴 힘들지만 그건 확실해.”

『최근 글로디아는 직접적으로 개입했잖아요? 그런데도 아니에요?』

“응. 다른 이들에게 개입한 건 맞아. 근데 이스피리아만큼은 아니야. 쭉 곁에서 지켜봐 왔던 내가 보증할게.”


루시아스는 잠시 지르크니스를 보았다.



『하아······ 알겠어요. 지르크니스, 당신이 그리 말씀하신다면야. 숨기는 것도 다 이유가 있겠죠.』

“미안.”

『아뇨. 괜찮아요. 어쩌면 그녀가 이리되는 것도 다 운명일지도 모르겠네요. 지금은 그걸로 넘어갈게요.』


사실 이스피리아에게 글로디아의 목적을 모른다고 했던 건 반은 거짓이었다.


지상에 개입하는 것이다. 철칙을 어기는 것이니 다른 자들의 승인을 구하는 건 당연했다.


하지만 말해줄 순 없었다. 어찌 말해줄 수 있겠는가. 물어본 이스피리아, 본인이 연관되어 있는데.


‘목적이라도 확실했다면 모를까······’


첫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그때, 전원을 소집한 글로디아에게 사정을 들었을 땐 심드렁했다.


그야 자신들은 신이니까. 인간에게―― 지상에 존재하는 많고 많은 자 중의 한 명에게서 행복한 운명이 없다는 소리를 들어봤자 감흥이 생길 리 만무하다. 조금 안쓰럽게 생각하는 것이 고작이다.


딱히 지상의 존재를 아끼지 않기 때문은 아니다. 반대로 지극히 아끼고 사랑한다. 자신들이 만든 세계에서 살아가는 존재들이니 당연하지 않겠는가.


그렇지만 이것만큼은 공감하기 힘들었다. 인간이 들풀의 잎이 꺾였다 한들 신경 쓰지 않는 것처럼 사소했으니.


고작 그런 일인 것이다. 오히려 겨우 저러한 이유로 지상에 개입한다는 게 이해되지 않기만 했다.


이런 모두의 심정을 알아차렸기 때문이었나, 글로디아는 드물게―― 아니. 처음으로 본 듯한 모습으로 다급히 설명하였다.


――무수히 많은 지상의 존재 중에 그런 존재는 없다고.


운명을 관리하는 신이 직접 단언한 것이다. 의심은 있을 수도 없거니와, 실제로 다 같이 확인해본 결과 사실로 밝혀졌다. 이스피리아는 어떤 미래에 도착한들 그 끝이 불우한 것이다.


강하고 약하고를 가리지 않았다. 마치 세계의 저주를 받은 것처럼 그녀는 행복이란 미래를 거머쥘 수 없었다. 혹 손에 쥐더라도 구멍이 꿇린 듯 빠져나가 버렸다.


그 무수히 많은 미래를―― 가능성을 검토해본 모두는 말을 잃었다. 언제나 합리적인 사고를 하는 세베브리나조차도 동정심을 표할 정도였다.


반대나 우려의 목소리는 전혀 나오지 않았다. 바로 잡아야 한다고―― 최소한의 기회는 줘야 한다는 글로디아의 의견에 모두 동의하게 되었다. 특히 조화의 신인 브리온은 치우친 건 좋지 않다며 격하게 동의했다.


그렇게······ 글로디아의 개입이 시작됐다.


처음은 순조로운 듯했다. 운명을 담당하는 신으로서 책임감을 느꼈는지 글로디아도 정말 진지하기 그지없었다. 자신을 비롯한 다른 신들은 이 기상천외한 상황에 흥미를 갖고 지켜보았었다.


하지만 도대체 무엇이 문제였을까······


도통 잘 풀리지 않았다. 그녀의 최후는 언제나 불행하게 끝을 맺었다. 간혹 행복이라는 걸 손에 쥔 적도 있었으나, 보았던 미래와 마찬가지였다. 있지도 않은 저주라도 받은 양 한순간에 모든 게 틀어져 버렸다.


그러한 실패가 이어졌다. 계속.


반복되기만 한 실패에 흥미는 떨어졌다. 점차 하나둘 관심을 거두고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을 했다.


루시아스도 마찬가지. 변화가 없는 상황에 지켜보는 걸 그만두고 기도를 올리는 자신의 종들이 어떻게 하면 더 나은 길을 나아갈지 고민했다. 마지막까지 남은 건 지르크니스뿐이었다.


그렇게 가끔가다 그런 아이가 있었다고 하며 떠올리게 됐다. 성공 여부는 솔직히 아무래도 좋다는 느낌이었다.


그러다······ 최근 몇 년 전에 사건이 터졌다.


방금 막 언급했듯 글로디아가 직접적으로 개입하기 시작한 것이다.


전까지는 분명 개입하긴 했어도 간접적이었다. 되도록 이스피리아 스스로가 본인의 힘으로 미래를 잡아내도록 하였다.


계속되는 실패에 조바심이 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는 묵과할 수 없는 행위였다. 애당초 개입을 승인한 조건 중의 하나가 직접적인 개입은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좌시할 수 없는 상황에 모두는 글로디아에게 무슨 짓이냐며 물으러―― 반쯤 따지러 갔다.


그렇지만 만날 수 없었다. 이스피리아에게도 말했듯, 글로디아의 영역은 완전히 닫혀 있었던 거다.


물론 처음에는 억지로 들어가려고 했다. 그렇지만 지르크니스가 막았다.


다들 고민스러웠으나, 자신이 이야기를 들어보겠다고, 제대로 말해두겠다는 지르크니스의 말에 믿고 맡기기로 했다.


하지만 문제가 또 터졌다. 겨우 5년 만에 다시금 글로디아가 직접적으로 개입한 것이다.


똑같은 일의 재발. 참지 못한 모두는 이번에야말로 직접 의도를 묻겠다며 열을 냈다.


이를 지르크니스가 재차 막아섰다. 그렇지만 이 세계는 모두가 만든 소중한 것. 혼자 망치려 드는 글로디아의 행동을 용납할 수란 없었다.


막아서는 지르크니스와 거의 싸움까지 나려 했던 일촉즉발의 상황.


그 날카로운 분위기 속에서 대치하고 있던 지르크니스는 한 가지 제안을 해왔다. 멋대로 들어가기엔 아무래도 미안하니, 만약 또 개입하려 한다면 그땐 이쪽이 차단하자고.


납득하긴 힘들었지만, 절박하게 부탁하는 지르크니스를 무시하기도 힘들었다.


결국, 또 개입하려 들려거든 사전에 차단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어 각자 돌아가게 됐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날 이후로 글로디아의 간섭은 멈췄다. 적어도 오늘날까지는 없었다. 그렇기에 알 수 없게 되었다.



『정말 모르겠네요. 글로디아의 저의가 무엇인지. 그녀를 우리와 가깝게 만드는 것이 목적이라면 반쯤은 성공이긴 한데······ 찬크에르레이의 알을 옮긴 건 그렇다 쳐도, 이계의 존재를 불러들인 건 뭣 때문이었을까요······?』


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거늘, 막상 까보니 아는 게 하나도 없다. 그렇기에 이스피리아에게도 모른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글로디아가 진정으로 바라는 건 과연 무엇일까······. 알려왔던 대로 단순히 이스피리아의 운명을 바꿔주고 싶었던걸까.


오랫동안 고민했음에도 답은 나오지 않는다.


신이면서 한심하기 짝이 없는 모습에 작게 숨을 토해냈다.



『아무래도 좋겠죠. 직접적으로 개입만 하지 않는다면 여태와 다를 게 없고.』


살짝 어깨를 으쓱인 루시아스는 무거운 분위기를 털어냈다. 그리고는 딱히 할 말이 없는 듯 조용히 있는 지르크니스에게 웃으며 권하였다.



『계속 서 있게 해서 미안하네요. 찾아오시는 것도 오랜만인데 한잔 어때요?』

“그거 좋지.”


기다렸다는 듯 선뜻 대답한 지르크니스는 훌렁 자리에 앉았다. 그러고는 아까까지 이스피리아가 앉아 있었던 것이 신경 쓰였는지 흥미롭게 그녀가 짓누른 곳과 대기 중에 퍼진 신력을 더듬었다. 물론 의자 다리는 낮춰줬다.


참으로 정성이라고 생각하면서 루시아스는 이스피리아가 쓴 찻잔을 치우고, 그가 좋아하는 보드카를 만들어줬다.


그렇게 자신도 새롭게 커피를 만들어내고 준비를 마치니 지르크니스는 새롭게 만든 큰 잔을 들고는 벌컥벌컥 들이켰다.



『매번 그렇지만 차분히 즐길 생각은 없는 거예요?』

“어······ 뭐, 그렇지.”


뭔가 대답이 건성이다.


왜 그런가 해서 봤더니, 지르크니스는 여전히 주위에 남은 그녀의 흔적을 살피는데 여력이 없었다.


정신없이 빠져든 그가 어이없어 루시아스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당신이 그 정도로 관심을 가졌을 줄은. 저도 이스피리아가 마음에 들었는데 자주 지켜볼까 봐요.』

“뭐?! 정말이야?!”


대뜸 소리를 지른 지르크니스는 공간을 넘어 옆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놀랄 틈도 없이 덥석 루시아스의 양손을 감싸 쥐었다.



“정말 지켜볼 거야?”


루시아스는 당황하여 몸을 조금 뒤로 뺀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에······ 그녀는 꽤 재미있어서 지켜보면 즐거울 거 같아서요.』

“그, 그럼! 나도! 나도 옆에서 지켜봐도 돼?!”

『어······ 어차피 당신은 지상에서 보시잖아요? 직접 하셔도 되고.』

“에이~ 그런 말 하지 말고. 응? 부탁해! 이번에 내가 구상한 꽃을 선물할게!”

『아, 알겠어요. 마음대로 하세요. 아! 꽃은 됐고요.』

“왜? 이번 건 진짜 걸작이야.”

『걸작은 무슨. 또 이상한 공격성이 있는 마물일 거 아녜요.』

“그렇긴 한데, 진짜 이번엔 괜찮은 녀석으로 만들어졌어. 지상에서 말하는 8급 마법을 100연발 난사할 수 있고, 여차하면 꽃봉오리에서 드래곤도 한방에 눕힐 수 있는 독침도 쏠 수 있어! 굉장하지 않아? 그런데다가 사각도 없어서――”

『――네네. 그런 굉장한 꽃은 부디 당신이 가지고 있어 주세요. 제 공간에는 놔둘 자리가 없네요.』


단호한 거절에 무척이나 실망한 듯 지르크니스는 고개를 떨구었다.



“저기, 진짜 말도 잘 듣는데······”

『필요 없다고 했죠? 당신은 뭘 어떻게 하면 매번 싸울 걸 전제로 생각하는 건가요?』

“그야 나 무신인걸?”

『······아, 몰라요. 어쨌든 저는 됐으니까 그만 권해요. 계속 추잡스럽게 물고 늘어지면 같이 안 볼 거예요.』

“응! 그 꽃은 내 영역 어딘가에 잘 짱박아둘게.”


냉큼 군말 없어진 지르크니스를 보며 루시아스는 관자놀이를 눌렀다. 그렇지만 언뜻 골이 아프다는 표정과 달리 입가엔 작게 미소가 내걸렸다.


그렇게 새롭게 시작하는 기분으로 조금 더 지르크니스와 티타임을 가졌다. 술도 껴있어 제대로 된 티타임은 절대 아니지만.


하지만 너무나도 즐거웠고, 루시아스는 충실히 이 시간을 만끽했다.


작가의말

안녕하세요~! 라스티아입니다.


요새 많이 덥던데 다들 시원하게 보내세요!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만렙 히로인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215 183 23.02.17 91 0 40쪽
214 182 +1 23.02.11 87 0 42쪽
213 181 +1 23.02.03 97 0 45쪽
212 180 23.01.28 88 0 38쪽
211 179 23.01.20 97 0 42쪽
210 178 23.01.12 96 0 39쪽
209 177 23.01.05 116 0 40쪽
208 176 +1 22.12.27 122 0 45쪽
207 175 22.12.20 106 0 50쪽
206 174 22.11.18 130 0 37쪽
205 173 22.11.09 143 0 38쪽
204 172 22.11.01 118 0 30쪽
203 171-2 22.11.01 102 0 19쪽
202 171 22.10.24 143 0 34쪽
201 170-2 22.10.18 107 0 15쪽
200 170 22.10.13 139 0 39쪽
199 169 22.10.07 143 0 53쪽
198 168 22.09.07 215 0 30쪽
197 167 22.08.31 157 0 44쪽
196 166 22.08.24 123 0 41쪽
195 165 22.08.18 109 0 45쪽
194 164-2 22.08.11 121 0 25쪽
193 164 22.08.11 106 0 20쪽
192 163 22.08.06 112 0 30쪽
191 162 22.08.06 106 0 19쪽
190 161 22.08.01 107 0 35쪽
» 160-2 22.07.29 110 0 18쪽
188 160 22.07.27 127 0 23쪽
187 159 22.07.25 95 0 21쪽
186 158 22.07.22 127 0 19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