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렙 히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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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ia
작품등록일 :
2022.05.11 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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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6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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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2.03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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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MMY

취향과는 맞지 않는 하늘하늘하게 꾸며진 자신의 방에서 소베르비아는 전율에 몸을 떨었다. 어울리지 않게 팔에는 닭살마저 돋았다.



“내가 잘못들은 건 아니겠지, 레딧츠?”


너무나도 생소한 주인의 반응에 눈썹을 움찔했던 레딧츠는 동요를 감추며 대답했다.



“정보의 치우침을 우려해 다방면으로 인원을 배치했습니다. 언제나처럼.”

“그리고 전원 똑같은 보고를 올렸다?”

“그렇습니다.”


부하들의 솜씨는 여태까지의 전적이 증명한다. 그들은 모두 어디에 내놔도 남부럽지 않을 능력을 지니고 있다. 다름 아니라 그들을 키워낸 건 레딧츠였으니, 그는 부하들의 능력을 의심치 않았다.


거기다 임무의 중요도에 비해 임무 자체의 어려움은 보잘것없다.


물론 미행을 들키지 않는 것이라면 최상급 난이도―― 사실상 아무도 수행할 수 없는 임무였을 것이다. 상대는 수 킬로미터 밖의 기척을, 그것도 그 이름도 높은 카딜라신디의 수장을 정확하게 짚어내는 사람이니. 그 감지를 피해 가기란 현실적으로 무리가 있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들켰음을 가정하여 움직이는 것이었다. 누가 보냈는지, 정체마저도 파악당했다는 기본 설정 아래 임무를 수행하는 터라 문제 없었다. 단순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보고하기만 하면 됐으니.


그딴 간단한 일에 실패하는 부하는 단연코 없다. 되려 실패한다면 카딜라신디의 이름이 운다. 이젠 비록 어둠 속에 사라진 단체라 하더라도······


그러한 뜻을 담아 레딧츠는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소베르비아는 상쾌하다는 듯 얼굴을 폈다.


하나부터 열까지, 오늘의 모든 게 의아했던 레딧츠는 살짝 인상을 썼다.



“모르겠어?”

“면목이 없습니다······.”

“아니. 그냥 심술부렸을 뿐이야. 네 반응이 조금 마음에 안 들었거든.”

“그 말씀은······”

“딱히 네가 아니더라도―― 찬크에르, 그 말고는 아무도 모를걸? 하물며 조금의 감이라도 잡는 사람마저 없을 거야. 오늘 리아가 벌인 일들이 얼마나 있을 수 없는 것이었는지······.”

“혹시 이 쪽지는······?”


레딧츠는 자신의 가슴팍에 손을 올렸다. 그 안주머니에는 소베르비아가 그에게 맡겨놓은 쪽지가 있었다.


무슨 내용이 적혀있는지는 레딧츠도 모른다. 말 그대로 맡긴 것이기 때문이었다. 개봉은 소베르비아의 지시가 있어야지만 가능했다.



“이 나라도 이번에는 어떤 결과가 나올지 알 수 없었어. 그래서 확인용으로 남긴 거야. 증거로 남기게.”

“결과를 듣고 답을 바꾸실 것을 염려하신 겁니까?”

“아니. 그냥 확실히 하고 싶었을 뿐이야.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게 맞는지······”


도대체 뭐길래 이러는 걸까.


레딧츠의 시선이 자꾸만 가슴팍으로 가는 게 웃겼던 소베르비아는 더는 기다리게 하지 않았다.


드디어 떨어진 주인의 지시에 레딧츠는 접힌 쪽지를 꺼내 빠르지만 능숙하게 펼쳤다.



“흐음······.”


레딧츠의 반응은 굉장히 미묘했다.


그럴 만도 했다. 사람을 그리 궁금하게 만들어놓고는 정작 쪽지에 적힌 내용은 그저 오늘의 일을 예상한 것에 불과했으니 말이다.


언제나와 다를 바 없는데 어찌 놀라겠는가. 시큰둥한 레딧츠의 반응은 지극히 당연하였다.


하지만 소베르비아는 이 또한 예상하였다. 피식 웃고는 쪽지를 가리켰다.



“밑에 주석 달아놨지? 그걸 봐봐.”


확실히 밑에 작게 주석이 달려있었다.


무척이나 작은 글씨였는데, 가볍게 이를 봤었던 레딧츠는 주인의 말에 자세히 읽어보았다. 그리고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움직이던 눈이 점점 커졌다.


그의 반응이 마음에 든 소베르비아는 입꼬리를 올렸다.



“왜 믿기지 않아?”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저로서는 그리 대단한 일인가 싶습니다.”

“그야 그렇겠지. 겉으로 볼 땐 시원찮아 보이니. 하지만 사실이야. 거기에 적어 놓은 일들이 모두 이루어졌다는 소식을 들었을 땐 진짜 소름이 돋았다니까?”


그렇게 말한 소베르비아는 팔을 문질렀다.


진짜 신의 축복을 받았나 싶은 정도의 두뇌를 자랑하는 주인이다. 그만한 사람이 저렇게까지 말한 것이다. 애당초 틀릴 리는 없겠다만 새삼 놀랍기만 하다.


그리 생각하며 레딧츠는 다시 쪽지를 내려다봤다.


쪽지에는 오늘 이스피리아의 동선이 적혀있었다.


틀린 부분은 하나도 없다. 레딧츠가 부하들에게 전해 받은 그대로의 내용을 담고 있었다. 상인 조합에 들른 이후 릴 공방과 멜리다 상회에 들른 것까지. 하물며 그곳에서 벌어진 일까지 모두.


마치 미래를 다녀온 듯, 조합장에게 시비를 걸리고, 이스피리아가 새로운 조합을 만든다는 선포마저도 예측해냈다.


물론 대단하다. 그 누가 이리도 정확히 예측하겠는가.


하지만 소베르비아에게는 지극히도 당연한 일에 불과했다. 이제 와 놀라기에는 무리가 있다.


분명 그러하건만······


쪽지 밑에는 소베르비아가 말한 주석이 작게 쓰여있었다. 거기에는 이 모든 일이 하루에 일어날 확률이 적혀있었는데, 무려 0.000000001%. 불가능이나 다름없는 숫자가 적혀 있었다.


어떻게 된 건지 레딧츠가 묻는 시선을 보내자 소베르비아는 즐거운 얼굴로 입을 열었다.



“하나하나 설명하자면 우선 상인 조합. 거기서는 욕심 많은 조합장이 리아에게 상납금을 요구하리라는 건 충분히 예측할 수 있는 일이야. 문제는 다음. 리아치고는 강경한 대응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아?”

“확실히······ 질타하신 어투도 그렇지만, 단호하게 관계를 끊는 대응은 평상시 온화한 그분과는 제법 괴리가 있습니다.”

“――그래. 근데 덕분에 새로운 조합을 세울 명분이 생겼지.”

“명분······ 말입니까?”

“새로운 조합을 세우기란 생각보다도 힘들어. 나라의 입장에선 세금 걷기도 번잡해지고, 처리할 일도 많아지잖아? 그러니까 보통은 허가를 내주진 않아. 부실하기라도 하면 망했을 때 뒤처리하는 것도 귀찮고.”

“이스피리아 님이라도 예외는 아니다?”


소베르비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명분이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지지. 최고 국빈인 리아가 창피를 당한 거야. 한낱 조합장 따위에게. 벨루디스로서는 위신이 걸린 사건이기에 가벼이 넘길 수는 없겠지. 일단 국왕인 아크티알의 체면이 구겨졌으니 말이야.”

“그러니 이스피리아 님의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다는 말씀이시군요.”

“정답. 리아가 넘어갔다면 모를까, 다시는 발 디딜 일은 없을 거라며 잘라 낸 터라 방법이 없어.”


거기서 소베르비아는 미간을 찌푸리고는 신음을 흘렸다.



“하지만 모든 상황이 너무 리아에게 좋게만 흘러갔어. 부조합장이 새 조합의 설립을 추진한 것도 그렇고. 평소와는 다르게 화를 낸 것도 그렇지만, 애초에 리아의 직책이 없었더라면 전부 불가능한 전개야······. 그렇다면 역시 처음부터 모두 계획된 거였나?”

“베르다드에 오기 전부터 말입니까?!”

“그게 아니라면 설명할 수 없어. 오늘의 일들을 봐봐. 우연히도 새 조합을 설립할 수 있게 됐는데, 때마침 흰 날개의 영애가 본인 아들과 친분이 있네? 그것도 모자라서 투기장에서 쓸어 담은 돈으로 본인 이름의 연구소를 세워 재력은 차고 넘친다는 걸 이미 선전까지 해놨었네?”

“······.”

“직원은 그 유능하다는 부조합장 테츠와 아들인 츠카, 그 외에도 많은 이들이 이직할 터. 어때? 어딜 어떻게 봐도 새 조합이 망하리란 전조도 안 보이지? 거기다 조합에 대한 사람들의 불만도 높아. 이상하지 않아? 너무나도 잘 짜여 있다는 생각이 안 들어?”


레딧츠는 아무런 말을 하지 못했다.


이토록 상황이 좋게 흘러갈 수 있을까. 마치 우주의 기운이 이스피리아를 밀어주는 듯하지 않은가?


하지만 여러 경험상 이 세상에는 정말 우연이 겹치고 겹쳐 기적과도 같은 일들이 벌어지고는 한다. 아예 불가능한 일은 필시 아니니라.


거기다 베르다드에 오기 전이라면 약 반년 전이다. 그토록 오래전에 정밀한 계획을 구상하고 완벽히 실행할 수 있는 사람은 단언컨대 자신의 주인뿐이다. 지금도 그 생각엔 변함이 없다.


이런 레딧츠의 생각을 읽은 소베르비아는 말을 이었다.



“물론 나도 상인 조합에서의 일 하나뿐이었다면 그저 운이 좋았다고 치부했을 거야. 뭐······ 기본 전제 조건이 말도 안 되는 확률이긴 해도.”

“참고로 그 확률은 어떻게 됩니까?”

“주석에 달린 확률에서 0을 세 개만 빼.”

“······엄청나군요.”

“아니. 그건 별것도 아니야. 찬크에르······ 그와 부부가 된 것까지 포함하면 오히려 확률은 더 말도 안 되게 내려가. 주석에 달린 확률은 비교도 안 돼. 그냥 기적이나 마찬가지지.”

“어째서입니까?”


잠시 레딧츠의 눈을 본 소베르비아는 고개를 저었다.



“비밀. 아직은 때가 아니야.”

“그렇습니까.”


의아스러웠지만 드문 일은 아니기에 레딧츠는 순순히 의문을 접었다.



“넘어가서 릴 공방의 이야기를 하자면, 거긴 알다시피 자체적으로 마도구의 제작까지 가능한 최고의 공방 중에 하나지. 품질은 말할 것도 없고.”

“예. 하지만 손님을 가려 받는다는 공방주의 까탈 한 성격 탓에 실력에 비해 명성은 그다지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인정하지 않는 자라면 차를 내오는 시점에서 쫓겨나기도 한다지?”

“그런 정보가 있긴 했습니다.”

“뻗댈 만도 해. 그만한 능력이 있긴 하니까. 보는 눈도 좋고. 거기에 배짱까지 있어. 뻔히 뒤가 구린 줄 알면서도 녀석을 고용했으니. 실력 위주란 거겠지.”

“심부름꾼으로는 그만큼 제격인 자도 드무니 말입니다. 개인적으로도 제법 탐이 나는 인재였습니다.”

“어머. 그랬어?”


레딧츠가 탐이 난다고까지 말한 인물은 여태 없었다.


제법 놀란 눈으로 쳐다보니 그는 꽤 아쉽다는 기색을 보이며 대답했다.



“제가 이전 직업에 종사하고 있었다면 반드시. 살짝만 다듬으면 분명 그 분야에서 최고가 될 수 있었을 겁니다. 허나 지금은 한낱 집사인데다, 그자의 출신이 조금 그러니 바로 단념했습니다.”

“뭐야. 집사는 만족스럽지 못했어?”

“설마 그럴 여부가 있겠나이까?”


드물게 입꼬리를 살짝 올린 레딧츠를 따라 소베르비아도 진한 웃음을 지었다.



“하여튼 릴 공방에서도 리아의 행보는 놀라웠어. 쫓겨나는 게 아니라 배웅까지 해줬다며?”

“자세한 정황은 알아내지 못하였으나 분명 그렇다고 했습니다.”

“그건 뻔해. 백방 리아의 실력을 확인해 봤겠지. 내가 봤었던 공방주―― 나룬은 분명 그랬을 거야.”

“주인님께도 여러 지식을 물으며 시험했었지요.”

“건방지게 말이야. 하지만 그런 성격이니 어찌 행동할지 예상하긴 쉽지. 리아는 그 정신 나간 마안경을 만든 장본인이기도 하고. 아마 단단히 놀랐을걸? 손가락을 튕기는 것만으로 그만한 품질의 물건이 뚝딱 만들어져서.”


직접 겪어봤던 경험자로서 레딧츠는 절실히 공감하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건 누구라도 놀랄 광경이긴 했다. 어느 대장장이라도 이스피리아의 앞에서는 본인의 인생이 부정당하는 느낌이 들 터다.



“하지만 여기선 잘 짜였다는 느낌이 들지 않습니다만?”

“뭔 소리야? 마안경 자체가 깔아둔 복선이잖아. 그게 없었다면 애당초 릴 공방에서 일감을 맡지도 않았을 거야.”

“분명 안경을 보여주자 눈빛이 달라지긴 했지만······”


앞으로의 일에 릴 공방의 존재는 필수적이었다. 우호적인 관계를 쌓는 건 매우 중요하였기에 소베르비아가 직접 찾아갔었다.


하지만 언급했듯 공방주인 나룬의 성격은 확고했다.


이런 면은 장인답다고 해야 하리라. 공주를 앞에 두고도 전혀 주눅 들지 않았고 되레 상대하기 귀찮다는 기색마저 보였었다.


그랬던 그가 이스피리아가 만든 안경을 보여주자 단번에 안색이 달라지는 건 물론, 그토록 내키지 않아 하던 의뢰를 수락하고는 단숨에 설계도면을 빼앗듯 가져갔다.


이후로 별다른 말을 하진 않았으나, 만약 이때 이스피리아에게 관심이 있었다면 소베르비아의 주장대로 좋은 떡밥으로 볼 여지는 있었다.


그렇지만 레딧츠에겐 단순한 우연이 아닌가 싶었다.



“아니, 생각해봐. 그때 리아가 드물게 엄청 우겨댔었잖아. 이건 반드시 히트친다나 뭐라나 하면서.”

“그렇긴······ 했습니다.”


역시나 바로 속을 읽은 주인에게 감탄하며 레딧츠는 대답하였다.



“그땐 이 나도 100번째를 기념하는 기획안이기에 떼를 쓰는 줄로만 알았어. ‘하지만 그 안경은 오늘을 위해 준비한 거야.’ 그렇게 생각하면 이상하리만치 고집스러웠던 리아의 행동도 이해가 돼. 뭐어······ 절반 이상은 본인의 취향이 반영되었겠지만. 어찌 됐든 나룬의 관심을 끌 수준의 물건이었으면 됐을 테니.”

“너무 과한 생각이 아니신지······”

“그럼 이걸 듣고도 같은 생각일지 물어볼까?”


언제나 현명하고 명석한 주인이라지만 가끔 묘한 부분에서 미끄러지고는 한다. 물론 치명적인 실수 같은 건 아니다. 그 따위의 실책은 소베르비아에겐 존재하지 않는다.


절대적이라 할 수 있을 만큼 레딧츠의 주인에 대한 믿음은 확고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번 안건은 묘하게 미끄러지는 그 부분이 아닐까 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다만 그렇다고 주인에게 토를 달 순 없는 노릇이다. 무얼 들어도 과한 생각으로 여겨졌으나 레딧츠는 본인의 감정을 죽이고는 귀를 기울였다.



“리아 걔 말이야. 멜리다 상회에 굉장히 눈에 띄게 갔잖아.”

“예. 분명 집사에게 업혀 가셨다고······”

“상상이나 돼? 최고 국빈이라는 자가 걸어서 다닌다니. 우리야 리아가 그런 얘라는 걸 알지만 밖은 아니잖아?”

“올라온 보고에서도 엄청난 주목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그래그래. 그만한 인파를 끌어모으고 멜리다 상회를 간 거야. ――과연 이것보다 더 완벽한 홍보가 있을까? 하지만 화룡점정은 그다음이야. 리아 그 계집애, 위압감 같은 걸 내뿜었다며?”

“보고에서는 그렇다고 했습니다. 당시 그 자리에 있었던 자의 이야기에 따르면 마치 역전의 강자와도 같은 엄청난 위압감이었답니다. 혼잡했던 거리도 이것으로 단숨에 정리됐다고 합니다만, 혹시 이 행동에도 의미가 있는 겁니까?”

“교통정리를 하려 했던 것만은 분명히 아니지.”

“그럼 역시······?”


소베르비아는 소파에 삐딱하게 누웠다.



“많은 이들은 리아가 정말 사룡을 물리쳤냐고 의심하고 있어. 이해는 해. 누구라도 리아를 보면 그런 엄청난 힘이 있다고는 믿기 힘들잖아?”


이스피리아는 그 외견이 작은 소녀에 불과했다. 보통 그런 자가 사룡을 물리쳤다고 하면 농담이나 거짓말 정도로 치부할 것이다.


비록 왕가의 공식적인 발표가 있었다고는 해도 말이다.


너무나 뻔하였다. 실제로 만난 이들은 전원 반드시 의구심을 품을 거다. 진실이냐고. 그만큼 이스피리아의 외견은 가냘팠다. 당시 이스피리아와 같이 방어전을 치른 이들을 제외하면 대번에 믿는 이는 없으리라.



“베르다드에서도 그래. 다들 말은 하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의심하고 있더라.”

“이스피리아 님의 훈련을 보고도 말입니까?”


레딧츠는 제법 놀라며 물었다.


이스피리아의 훈련은 겉보기에는 단순하다. 그저 기초적인 베기만을 할 뿐이니 말이다. 그렇지만 그 수준은 상상을 아득히 초월한 경지에 있는 것이었다. 구경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굉장한 행운이라 여겨질 정도로.


검로 하나하나에 마저 수려함의 극치가 담겨 있건만······


레딧츠가 그리 생각하고 있자니 소베르비아의 목소리가 이를 부정했다.



“아니. 그건 레딧츠, 너니까 가능한 거야.”

“그게 무슨······”

“수준이 너무 다르다는 소리야. 너 정도는 돼야 리아가 얼마가 강한지 체감할 수 있다는 거지. 이런 말도 있잖아? 실력 차이가 너무 나면 아무런 참고조차 안 된다고. 그거랑 같은 맥락. 암만 그래도 약하다고 보는 놈은 없겠지만.”

“그렇다면 이스피리아 님이 강한 건 어렴풋이 느끼고 있되, 사룡을 물리칠 정도는 아니라고 본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런 거지. 아티팩트를 썼다고 생각하는 게 중론일 거야. 후후. 웃긴 일이지. 도구는 도구일 뿐, 중요한 건 결국 사용자인데 말이야. 하지만 달리 말하자면 외부에서는 더더욱 왕가의 발표를 믿기 힘들다는 소리야.”

“과연. 이스피리아 님을 보지 않았다면 모를까, 대면했다면 필시 의아스럽겠습니다.”


거기서 소베르비아는 빙긋이 미소 지어 보였다.



“하지만 오늘 그 인식을 단방에 뒤엎어버렸어.”


그제야 주인이 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이해한 레딧츠는 두 눈을 부릅떴다.



“이야. 놀랐다니까? 그야 나도 어떤 게 최상일지를 적어 놓긴 했지만, 그걸 어떻게 이룰지는 몰랐거든. 그래서 쪽지에도 결과만을 적었었지. 당연해. 과정을 모두 파악하기에는 상대방과 나와의 상황이 유기적으로 얽히고설키는 가운데 그걸 실시간으로 판별해야만 해. 그딴 게 가능이나 하겠어?”

“다른 자들이야 그렇겠습니다만, 주인님께서는 다르지 않습니까?”

“아니. 이 나나 찬크에르 또한 예외는 아니야. 나라의 시스템을 갈아엎을 규모라면 시시각각 변하는 상황에 맞게 일일이 대응해야 해. 그건 정말 무척이나 힘들어. ······왜 납득이 안 돼?”

“······.”


레딧츠는 아무 말 없이 굳건한 눈빛만을 보냈다.


나라면 반드시 할 수 있다. 굳게 그리 믿으며 인정하지 않는 가신의 충정에 소베르비아는 제법 싫지 않은 기분으로 킥킥, 웃음을 터뜨렸다.



“물론 아예 못한다는 건 아니야. 이 나라면 충분히 재현 가능해. 하지만 그건 모든 준비가 끝마쳤을 때야. 리아처럼 갑작스럽게 지정한 날에 해내기란 아무리 이 나라도 불가능해. 한꺼번에 몽땅이라면 말할 것도 없지.”

“······.”

“정말이야. 괜히 그따위의 확률이 나오겠어?”


여전히 인정하려는 기색이 전혀 없는 레딧츠. 그것도 모자라 그는 기분이 좋지 않다는 것을 밖으로 표출하였다.


무척이나 드문 광경에 소베르비아는 재밌어했다.


잠시 뒤 신하로서 무례임을 상기한 레딧츠는 한 번 묵례하고는 말을 돌렸다. 물론 그는 여전히 자신의 주인이라면 할 수 있으리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아니, 주인이 못 하는 것은 그 누구라도―― 이스피리아라 하더라도 할 수 없다고 아예 단정하였다.



“그만한 확률을 뚫고 이스피리아 님께서는 당최 무얼 이루신 겁니까?”

“뭐긴. 이 나라의 반을 꿀꺽 한 거잖아.”

“······예?”

“못 들었어? 벨루디스의 반을 먹었다고. 리아, 그 계집애가 말이야.”

“······.”


점잖은 표정이지만 레딧츠의 경악을 단숨에 알아챈 소베르비아는 예쁘게 다듬어진 손톱을 살펴보며 말했다.



“너도 이 나랑 지낸 시간이 있으니 알겠지만, 유통이라는 건 엄청 중요해. 생각보다도 더. 극단적인 예시지만 밀가루 한 포대로 어지간한 성채도 살 수 있게 만드는 게 유통이야. 리아는 이 유통을 장악한 거고.”

“아직 수도에 한 지점을 낼 뿐이지 않습니까?”

“허가가 났다는 것 자체가 고무적인데 말이지······.”


말을 끈 소베르비아의 시선이 움직이자 방에서 대기하고 있던 여성 사용인―― 유젯이 황급히 다가왔다.


일류 사용인이었던 유젯은 곧장 모시는 자의 뜻을 읽어, 조용히 앞치마에서 작은 파우치를 꺼냈다. 파우치 안에 있는 물건은 네일 케어 도구들로, 유젯은 조심스럽게 소베르비아의 손톱을 다듬기 시작했다.



“후후. 새로운 조합에 도장을 찍을 국왕이나, 곁에서 그걸 지켜보고 있을 벨페르 공작도 너랑 같은 생각이겠지. 그나마 아직 도장을 찍기 전이니 기회가 있긴 하지만······ 스스로 알아차리기엔 역시 무리이니 그냥 찍겠지. 이후 수년이 흐른 다음에야 벨페르 공작만이 아차 싶을 거야. 그렇지만 그땐 더는 어떻게 되돌릴 수도 없는 시기라 아쉽겠어?”

“······자세히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간단해. 상인이라는 건 이득을 쫓는 자들이야. 상납금을 요구하며 갑의 입장에 서 있는 지금의 조합 따윈 계기만 있으면 가볍게 버리겠지. 그 선봉은 흰 날개야. 그만한 크기의 거대 상회가 움직이는 것이니 나머지 상인들의 발걸음도 가벼울 거야.”


군중심리 같은 거다. 혼자는 무서워도 여럿이 함께하면 용기가 나지 않는가? 그것과 똑같은 맥락이다.


거기에 군계일학이라 할 수 있는 업계의 대표가 함께한다? 그야말로 천군만마를 얻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휩쓸려 가기엔 부족함이 없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나라의 반을 먹기란 불가능해. 그래서 리아는 화려한 쇼맨십과 함께 보인 거야. 본인의 입지가 단단하다는 것을. 쉽게 말해, 너라면 언제 없어질지 모르는 업체랑 100년 이상 존재한다는 보장이 있는 업체, 둘 중에서 어떤 업체랑 계약할래?”

“그야 당연히 보장된 업체가 아니겠습니까?”

“리아는 그걸 만인들 앞에서 증명했어. 이젠 사람들도 최고 국빈이라는 명칭이 이름뿐이라는 게 아님을 알게 된 거지. 적어도 쉽게 없어지겠다는 생각은 아무도 안 할 거야. 거기다 선전 효과도 확실해. 교통이 마비될 정도로 사람이 모였었다니까, 며칠 지나면 소문이 쫙 퍼지겠지. 덤으로 멜리다 상회도 알리고. 그리고······”


소베르비아는 입꼬리를 비틀었다.



“장인들까지도 전부 리아에게 죄다 포섭됐어. 즉 유통에 필수적 요소인 생산자까지 장악했다는 거야.”


이해되지 않았던 레딧츠는 물었다.



“흠. 실례지만 릴 공방은 실력에 비해 명성이 낮습니다. 그러한 공방이 이스피리아 님을 지지한들 다른 장인들이 따르진 않을 것 같습니다만?”

“장인들이란 족속들은 고집불통인 면이 강하니 더 그러겠지. ――하지만 그건 리아가 평범한 계집일 때나 해당하는 이야기야. 잊었어? 리아, 걔, 드워프도 울고 갈 기술을 가지고 있잖아.”

“이스피리아 님도 엄연한 장인이라는 말씀이신지······”

“이미 멜리다 상회에서 본인이 만든 물건을 팔고 있는데, 그게 장인이 아니면 도대체 뭐야? 안 팔리는 것도 아니고, 날개 돋친 듯이 팔려나가기까지 하는데.”


반박할 말이 없던 레딧츠는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제일 중요한 건 이번 일을 통해 그 사실이 알려졌다는 거야. 알다시피 장인 직종은 기피하는 경향이 좀 있잖아? 그로 인해 노동이 정당히 평가당하지 못하고 박리로 물건을 넘기기도 하지. 벨루디스는 특히나 그 경향이 좀 더 심해.”


베르다드만 보더라도 그렇다. 마도구 제작 같은 장인 직종의 수업은 인기가 없다. 아니, 평민들 사이에서는 그래도 나름의 인기가 있다. 하지만 귀족이나 나름의 부호들에게는 전혀 인기가 없는 수업이다. 벨루디스의 귀족은 아예 전멸이다.


이유는 간단했다.


천하기 때문이다. 땀을 흘리며 일하는 장인들의 모습은 그들에겐 무척이나 천한 것이었다.


물론 그 천한 장인들 덕분에 본인들이 옷을 입고 다니는 것이기는 하지만 콧대 높은 귀족들에겐 어차피 관심 밖의 일이었다. 그들로서는 장인이란 자신들의 명령에 물건을 만들기만 하면 되는 존재였다.


그런 대접을 받는 현실에서 갑자기 위로는 더 높은 자가 없는 직책의 사람이 관심을 가지는 것도 모자라, 본인이 직접 그 일에 종사한다?


이 소식을 들었을 때 과연 장인들은 어떤 생각이 들까······


처음은 의심할 것이다. 그야 너무 좋을 대로 해석한 느낌이 강하지 않은가? 그러나 진위를 확인하고 나면, 그들은 태도를 바로 돌변하여 그날로 축제를 열 것이다.


당연했다. 높은 사람의 관심은 자연스레 밑의 사람들을 이끌기 마련이고, 여태 푸대접을 받아왔던 장인들의 처우가 개선될지도 모르니 말이다.



“더군다나 리아는 무척이나 예의가 바른 녀석이야. 정당한 노동에는 정당한 값을 치르지 않을 리가 없지. 어중간한 귀족이라면 눈치가 보여서라도 이전처럼 행동하진 않을 거야. 그리고 그 시작은 릴 공방이 될 거야.”

“아!”


드디어 모든 전말을 깨닫게 된 레딧츠는, 그로서는 정말 드물게 크게 탄성을 지르고는 놀란 눈을 소베르비아에게로 향했다.


여태 말없이 이야기를 듣고 있던 유젯도 마찬가지였다. 손톱을 다듬는 것도 멈추고 주인에게로 시선을 보냈다.


둘의 시선을 한 몸으로 받으며 소베르비아는 조용히 웃음소리를 흘렸다. 정말로 참기 힘들다는 듯이.



“레딧츠, 아까 너도 말했듯이 릴 공방은 그 실력에 비해 굉장히 명성이 낮은 곳이야. 여러 직종을 전전했던 탓이지. 그런 곳에 최고 국빈이 전속으로 계약했네? 그럼 밖에는 어떻게 비칠까?”

“제야에 묻힌 실력자를 발굴한다는 느낌이 아닐까 합니다.”

“그야말로 장인들의 희망처럼.”


사이좋게 주고받는 둘을 보며 소베르비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실력만 있으면 누구라도 환영한다―― 그러한 리아를 반기지 않을 장인이 과연 있을까?”

“있을 리가 없습니다. 장인이라면 어떻게든 눈에 들기 위해 안간힘을 쓸 겁니다.”

“그 명성은 멀리 퍼져 다른 도시에도 닿게 되겠지요.”


――그렇게 벨루디스는 생산자와 공급의, 유통망을 리아에게 완전히 장악당해 간다.



“사태를 파악했을 땐 이미 나라의 반은 먹혔겠지. 근데 되찾을 방도가 없다는 점이 참으로 난감할 거야.”

“드래곤 슬레이어를 상대로 강제 집행으로 빼앗기에는 아무래도 주저될 테니 말입니다.”

“그 상황이라면 많은 이들의 지지도 받고 있을 것입니다. 명분 없이는 강제적인 수단을 쓰긴 주저되겠지요.”

“하지만······”


레딧츠가 말을 끌었다.



“릴 공방과 상인 조합은 주인님께서 찾아 연결하신 게 아닙니까? 이스피리아 님이 모두 계획했다기엔 무리가 있는 게 아닐지······”

“아니. 필므를 통해 멜리다 상회랑은 연결되어있었으니까 언젠가는 상인 조합이랑도 연결됐을 거야. 릴 공방도 마찬가지. 거기엔 쥐새끼 한 마리가 숨어 있잖아?”

“그거 때문에 연결된다는 말씀입니까······?”

“리아는 은근히 집요한 애야. 걔는 자길 건드린 놈은 빠짐없이 찾아낼걸? 그러니까 애초에 내가 없었어도 리아는 지금과 같은 상황을 만들어 냈을 거라는 거지. ――이 모든 게 우연으로 벌어진다기엔 너무 말이 안 되지 않아?”


의미심장하게 보는 주인의 눈빛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하나. 그 뜻을 읽은 레딧츠의 미간엔 주름이 새겨졌다.


그 모습을 보고 소베르비아는 웃었다.


아무래도 주인은 직접 말하기를 기다리는 모양이다.


모시는 자의 의중을 읽었다면 거스를 순 없다. 제법 심술궂다고 생각하면서 레딧츠는 주인이 원하는 말을 입에 담았다.



“그분도―― 이스피리아 님께서도 미래를 아시는 겁니까?”


원하는 답이 나오자 소베르비아의 미소는 더더욱 진해졌다. 입꼬리가 찢어들 듯 올라간 그 미소는 이제는 완전히 틀어져 상대를 비웃는 듯하였다.



“오늘 리아는 1조 번 이상 연속으로 동전의 앞면만 본 것과 다름없는 일을 해냈어. 그딴 행운 따위가 존재할 리가 없으니 무조건 미래를 알고 있다고 봐야겠지. 게다가 리아는 이미 의심 가는 정황이 제법 있었어. 틀림없다고 봐야겠지.”

“······공주님, 잠시 실례해도 되겠습니까?”

“뭐야, 유젯?”


말을 건 인물은 유젯으로, 그녀는 카펫에 무릎을 꿇고 손톱을 다듬던 상태 그대로 주인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말해봐.”

“감사드립니다.”


손에 든 푸셔와 우드파일을 내려놓고 유젯은 한 가지 의문점을 이야기했다.



“이스피리아 님을 길게 봐온 건 아니오나, 제가 볼 땐 이러한 획책을 부릴 분으로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확실히······. 저 또한 멀리 돌아가기보단―― 실례이오나 그분이라면 정면으로 돌파하시리란 인상을 받았었습니다.”


유젯에 이어 레딧츠까지도 그녀의 의견에 찬동했다.


이런 둘을 보며 소베르비아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렇단 말이지······? 그러면 정해졌네. 우리가 모르는 어떤 놈의 의도가 들어간 거야.”


그리 말한 소베르비아는 검지를 세웠다.



“사실 나도 계속 의문이 들었었어. 과연 리아가 이렇게까지 철두철미할까 싶어서. 근데 걔의 원래 성격이 제법 냉철하거든? 보기와는 달리. 그래서인가 싶었는데······ 너희 둘이 그리 확신에 찬 의견을 내니 아무래도 아닌 것 같아.”

“저흴 믿어주시는 건 감사하지만······ 괜찮으시겠습니까? 너무 주제넘지 않았나 염려되옵니다.”

“뭘 자신 있게 나서놓고는 그러는 거야? 리아 식으로 말하자면 나이스 어드바이스였으니까 기죽지 마, 유젯. 다음에도 의견이 있다면 주저하지 말고 마음껏 말해.”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공주님.”


감동으로 눈물을 글썽거리는 유젯을 뒤로 하고 소베르비아는 소파에 몸을 묻어 천장을 봤다.



“하지만 어떤 놈의 의도라고 해도 정작 리아에게는 그런 낌새가 없단 말이지? 걔 몰래 조종한다는 건······ 옆에 있는 보호자 때문에라도 불가능해. ――아니, 잠깐만. 어쩌면 순서가 틀린 게 아닐까? 황제도 그랬잖아, 리아가 제일 먼저 미래를 떠올렸을 거 같았다고.”


소베르비아는 당시를 떠올려봤다.


무려 황제나 되는 자가 감정하나 숨기지 못하고 크게 좌절했었다. 실망으로 인한 것이었겠지만, 그건 그에게 확신이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리고 확신이라는 건 무언가 근거가 있어야지만 가능한 법이다.


도대체 무엇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부동제라 불리는 황제가 요란을 떨었던 거다. 거기에 황제는 자신보다 더 깊게 알고 있는 기색이다.


역시 참고하기에 나쁘지 않아 보인다고 생각한 소베르비아는 황제의 반응까지도 정보에 추가하여 머리를 회전시켰다.


주인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레딧츠와 유젯이 입을 다물고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잠시 후 눈을 뜬 소베르비아가 제일 먼저 한 행동은······ 묻는 것이었다.



“죽을 때까지 검을 휘두른 검사는 노망이 들었을 때도 검을 휘두를 줄 알아?”


누구에게랄 것 없이 묻는 물음에 레딧츠와 유젯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즉시 자신의 생각들을 말하였다.



“아마. 휘두를 줄 알 겁니다.”

“저도 비슷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공주님.”

“그럼 다시 태어나거나, 기억을 잃은 채로 과거로 돌아가면 어때? 그때도 검을 휘두르는 법을 기억할까?”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질문에 둘은 말문이 막혔다. 하지만 주인을 기다리게 할 순 없다는 충정을 발휘하여 최대한 생각을 쥐어 짜내 대답하였다.



“데쟈뷰란 말도 있으니 개인적으로는 일생을 바친 일이라면 기억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도······. 꼭 몸이 아니더라도 영혼이 기억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영혼이라······. 꽤 낭만적이네.”


유젯이 부끄러운지 볼이 불그스름해졌다. 하지만 그런 그녀 덕분에 소베르비아는 답을 정할 수 있었다.



“우선 의도하고 있는 녀석이 존재하는 건 분명해. 그렇지만 리아의 행동을 조종하는 건 아니야. 유도는 하고 있을지언정 직접적으로 강제하진 않았을 거야. 그렇다는 건······”


답은 하나뿐이다.


그 답에 도달한 소베르비아는 소름이 돋았다. 등줄기까지 털이 바짝 곤두서는 느낌이었다.



“리아······. 넌 도대체 리아로 몇 번의 인생을 산 거야······?”


무심코 중얼거린 소베르비아는 입을 굳게 다물었다.


감히 끼어들 수 없는 분위기에 방안은 다시 적막감이 흘렀다.



“후······ 됐어. 나답지 않게 감정적으로 되기나 하고. 그보다 다른 쪽의 정보는? 알렌나시안 후작 쪽 다급하지 않아?”


평소대로 돌아온 주인의 분위기에 얼굴을 편 레딧츠는 즉시 자신이 가진 정보를 읊었다. 유젯도 미소 짓고는 마저 못한 네일 케어를 실시하였다.



“예상하신 대로 마르티즈 후작 파벌의 움직임이 매우 분주했습니다. 현재는 후작의 별장에 다들 모여 대책 회의를 열고 있습니다.”

“어리석네. 그런다고 답이 나오진 않을 텐데.”

“아무것도 안 하기엔 조바심이 허가하지 않았을 겁니다.”

“그게 멍청하다는 거야.”



알렌나시안 후작 파벌의 갑작스러운 모임은 이스피리아로 인해 발생한 것으로, 데려오기만 하면 단숨에 전황을 기울게 만들 수 있는 그녀가 상대 파벌의 수장인 리벨리타스 가에 방문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들도 그저 동급생의 집에 놀러 갔을 뿐이라는 사실은 이미 파악해뒀다.


하지만 정치라는 것이 의심의 연속이다. 그들은 이 일을 계기로 아직 중립인 이스피리아가 마음을 돌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노심초사하게 됐다.


결국 가만히 있을 수 없게 된 그들은 모이게 됐고, 현재 유익한 발언은 하나 없이 시간만을 낭비하고 있었다.


그런 그들의 모습을 머릿속에서 또렷이 그릴 수 있었던 소베르비아는 코웃음을 쳤다.



“리아는 단순해서 그냥 밀어붙이면 그만인데. 전술을 짜려거든 상대에 맞춰서 해야지. 뭣들 하는 건지 원······. 상대할 맛도 안 나게.”

“만약 상대가 그리 나오신다면 어쩌시겠습니까?”

“쳐내야지. 칼윈 녀석이 좋아할 꼴을 두고 보겠어?”

“제국의 황제 말입니까?”


뜬금없는 자의 언급에 되물었으나 굳이 대답해줄 마음 따윈 소베르비아에겐 없었다. 제아무리 최측근의 가신이라도 그렇다. 때가 올 때까지······ 그 순간이 오기 전까지는 입에 담을 생각조차도 없다.


레딧츠의 질문은 못 들은 척 넘기며 말을 이었다.



“다른 쪽은?”


레딧츠는 즉시 머리 숙여 예를 취하고는 대답했다.



“우선 제국의 움직임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감찰관으로 파견 나온 제3 황자 베르그와 제 1황손 로즈린느는 여전히 베르다드에 체재. 자국 백성들의 안부를 살피는 등, 본래의 명목에 따라 행동하고 있습니다. 그 외의 딱히 특이점이라 부를 만한 건 없습니다.”

“의외로 리아에게 집착 대진 않더라? 맨날 찾아오기는 해도.”

“제 감이 틀리지 않았다면 되려 주인님과 라프리트 님을 더 신경 쓴다는 느낌이 듭니다만······.”

“어. 맞아.”


소베르비아는 시원스레 고개를 끄덕여 긍정하였다.



“뭔가 이유라도 있는 겁니까?”

“칼윈이 우리를 보고 배우라고 했겠지. 나랑 라프리트는 정치 쪽에선 고단수들이니까. 제국에서 벌어진 여러 사건을 통해서 베르그 스스로도 배울 점이 있다고 느꼈겠지. 안 그래도 베르그는 제3 황자인 탓에 제법 정치 감각이 떨어지니 더더욱 느끼는 바가 있을걸? 로즈린느는······ 그냥 사랑하는 할아버지가 말해서 따르는 느낌이랄까? 걔 안에서는 그냥 리아가 1등이야. 가히 신앙이나 다름없지. 우리 따윈 안중에도 없어. 크큭.”


로즈린느는 요즘 리아가 뒤를 돌았을 때 몰래 기도하고는 했는데, 제 딴에는 여태 들키지 않은 줄 알고 있다.


그러나 리아는 몸을 쓰는 것에 있어선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강자다. 처음부터 눈치를 챘었고, 너무나 순수하기 짝이 없는 로즈린느의 기도를 차마 말릴 수 없어 매번 괴상하기 짝이 없는 표정을 짓는다.


바로 그 장면을 떠올린 소베르비아는 몸까지 들썩이며 웃었다. 그 탓에 오일을 바르려던 유젯의 손이 멈추기도 했다.



“아, 미안. 이젠 괜찮으니까, 둘 다 계속해줘.”

“그럼 다음으로 세인트리안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응. 부탁해.”


살짝 목을 가다듬은 레딧츠는 조사한 정보를 입에 담았다.



“주인님께서도 경계하셨던 터라 세인트리안은 예의주시하였습니다만, 현재까지도 달리 이변이라 할 움직임은 포착되지 않았습니다. 평범하게 베르다드에 있는 성당에서 미사를 열어 기도드리거나 학생들의 고민을 상담해주는 등, 성직자답게 지내고 있습니다. 물론 파견 나오는 치유사들도 더는 치료비용을 불리지 않게 됐습니다.”

“인디아 주교의 말을 감히 어길 멍청한 놈은 없을 테니까. 그런데 뒤쪽은? 쥐새끼도 별다른 움직임이 없어?”

“그쪽은 따로 말씀드릴 사항이 있습니다.”


막힘 없이 줄줄 읊던 레딧츠가 처음으로 곤란한 듯 인상을 찡그렸다.


의아하게 여기면서도 소베르비아는 말해보라 눈짓했다.



“실은······ 쥐의 움직임을 파악할 수가 없었습니다.”

“뭐? 설마 놓쳤다는 거야?”

“예······. 처음에는 우연인가 싶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후로도 매번 어느 순간 시야에 사라지고는 한답니다.”

“그게 가능해?”


소베르비아 오늘 중 가장 놀랐다.


그야 암살의 달인들이 모인 카딜라신디를 따돌리고 사라졌다고 하지 않는가?


이들의 능력은 저 세인트리안이 재차 암살을 포기할 정도로 대단한 것이었다. 미행과 잠행에 있어서는 따라올 자가 없는 이들이다.


하지만 이런 이들이 놓쳤다고 한다.


만약 그 쥐새끼가 당시 암살자로서 있었다면······ 조금 소름이 돋는다.



“쥐새끼 따위라 여기고 경계 대상에 넣지도 않았는데, 의외의 곳에서 허점을 찔렸네.”

“주인님께서만 괜찮으시다면 제가 직접 뒤를 캐볼까 합니다.”

“아니······. 굳이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될 거 같아. 어차피 그 쥐새끼의 역할은 전령에 불과하―― 어라? 탐이 난다고 하더니 혹시 마음에 든 거야?”

“딱히 마음에 들었다는 건 아니지만······ 시험해보고 싶더군요.”


딱딱한 고목의 이미지를 깨고 레딧츠는 진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본인을 시험해본다는 건지, 쥐새끼를 시험해본다는 건지······


언제나 차분한 그가 왜 갑자기 불타오르는 게 된 건지 전혀 모르겠는 소베르비아는 고개를 저었다.



“마음대로 하셔. 대신 내가 리아와 함께 있을 때 다녀와. 호위가 불안하니까 헤어질 때쯤엔 돌아오고.”

“감사드립니다. 주인님께 누를 끼치지 않게 확실히 밟아놓겠습니다.”

“아니······ 그럴 필요는 없는데? 시험이라고 하지 않았어?”

“물론 시험입니다.”

“어······ 그래. 열심히 해······.”

“격려 감사합니다.”


잠시 레딧츠를 황당하게 보다 헛기침으로 분위기를 전환한 소베르비아는 창밖을 보았다. 밖은 맑아 멀리까지 볼 수 있었다.



“저 벽 너머엔 리아와 라프리트가 있는 건가······ 아아. 그러고 보니 머저리 용사는 어때? 수업이 전혀 겹치지 않아서 요즘은 어떤 바보짓을 하는지 모르네.”

“자제하란 말을 들었는지 특출난 짓은 하지 않고 얌전히 지낸다고 합니다.”

“얌전히 따른다고? 약이라도 먹인 거 아냐?”

“힘이 없어 보인다고는 하는데, 딱히 눈이 풀리거나 하진 않은 모양입니다.”

“농담이야.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마.”


얼추 다 들었겠다, 소베르비아는 소파에 드러누웠다. 물론 네일 케어 하는 유젯을 신경 써서 움직였다.


날씨도 좋고 나른하니 딱 좋다. 소베르비아는 이대로 낮잠이나 청하자며 눈을 감았다. 손톱은 유젯이 알아서 마무리해줄 터이니 망설일 것도 없다.


하지만 목적을 이루기 전에 부르는 목소리가 있었다.



“주인님······?”

“어, 왜? 뭐가 더 남았어?”


불러놓고 레딧츠는 말을 더듬었다.



“이걸 어찌 말씀드려야 할지······”

“뭔데 그래?”


재촉하자 마음을 정한 듯 레딧츠는 진지한 눈빛을 향해왔다.



“실은 이스피리아 님께서 상급 훈련장에 골렘······을 만드셨다고 합니다.”

“골렘? 내가 아는 그 골렘?”

“예······.”

“호오~ 골렘이라. 어때? 제대로 된 거야? 리아가 만든 거라니까 좀 기대되는데. 혹시 이번에도 아티팩트 급의 엄청난 걸 만든 거 아냐? 막 자율 행동이 가능하다던가. ······아니, 암만 그래도 거기까진 아니려나?”

“예에······.”

“뭐야. 아까부터 왜 이렇게 대답이 시원찮아?”

“실례했습니다!”


대역죄를 지은 양 레딧츠는 무릎을 꿇고 고개를 조아렸다.


이 과장된 행동······ 굉장히 익숙하다.


이게 여자의 감이라는 걸까, 굉장히 꺼림칙한 느낌을 받은 소베르비아는 눈을 가늘게 했다.



“빨리 불어봐. 뭔데? 이번엔 또 어떤 괴상한 걸 만들어 낸 거야?”

“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전해오는 정보들 모두가 명확하지 않은지라······.”

“도대체 뭐길래 그래? 골렘이 희귀한 거긴 하지만 그렇게까지 전달하기 어려운 내용은 없을 텐데?”


여기서만 고민해봐야 의미가 없다.


그리 판단한 소베르비아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유젯, 대강 정리해줘.”

“알겠습니다.”

“레딧츠, 넌 나갈 준비를 해. 골렘이 어디 있는지도 제대로 확인하고.”

“명을 받들겠습니다.”


빠르게 준비해준 둘 덕에 곧장 방에서 나오게 된 소베르비아는 앞장서는 레딧츠를 따라갔다.


골렘은 아직 상급 훈련장에 그대로 남아있는지 다른 곳으로 방향을 틀지 않았다.



“근데 사람이 많지 않아?”

“아무래도 소문이 퍼진 거 같습니다.”


상급 훈련장과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사람들이 많아졌는데, 학생부터 교수까지 모두 몰린 듯하였다. 학년도 딱히 가리지 않았는지 인파가 득실득실하였다.


이내 앞길은 막혀버리게 됐다.


소베르비아의 앞에 서 있던 학생은 그녀를 발견하고는 어쩔 줄 몰라 하며 인사를 건넸다.


가면을 뒤집어 쓴 소베르비아는 겉으로는 이를 친절히 받아줬으나······ 속으로는 답답해 미칠 지경이었다.


결국 이대로는 화병이 나겠다는 생각에 소베르비아는 귀찮지만 직접 나서기로 했다.


그리 정하자마자 바로 [확성]을 써 말하였다.



“루 몬테르의 소베르비아 루 몬테르여요.”


공주의 이름값은 엄청났다. 소베르비아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자마자 공국 사람들을 중심으로 조용해졌고, 이윽고 모든 사람이 입을 다물고 그녀의 말을 기다렸다.


이제야 차분히 이야기할 수 있겠다고 생각한 소베르비아가 입을 열었다.



“여러분, 이게 대체 무슨 소란입니까?”


묻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여기저기서 ‘사람이’, ‘골렘이’, ‘무결의 기사가’ 같은 소리가 튀어나왔다.


‘웬 디카이로트?’


이야기들이 너무나 중구난방이다. 제아무리 소베르비아라 하더라도 미처 정리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더 볼 것도 없다.


즉시 조금의 도움도 안 되겠다고 판단한 소베르비아는 자리를 해산시키기로 했다.



“여러분들의 이야기는 알겠습니다. 하지만 통행에 지장을 주는 일은 없어야 할 것입니다. 차근차근 질서정연하게 이동하여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정중한 말에 공국의 백성들이 가장 먼저 알겠다며 환호했다. 그 뒤는 일사천리였다. 소베르비아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니 정체는 금세 풀렸고, 복도는 뻥 뚫리게 됐다.


감사를 전하는 학생과 선생들에게 웃는 얼굴로 대충 답례를 한 소베르비아는 곧장 상급 훈련장으로 향했다.


여전히 제법 사람이 많았으나 이번에는 막힘없이 목적지에 올 수 있었다.


그리고 양해를 구하고 사람들의 벽을 뚫고 나온 소베르비아의 시선에······ 공국이 자랑하는 근위대장 디카이로트 로판이 보였다.


아니. 무결의 기사가 아니었다.


얼핏 보면 확실히 닮았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입고 입는 장비라든가, 생김새가 정말 미묘하게 달랐다. 눈동자도 원래 갈색인 것에 반해 푸른빛을 띠고 있었다. 갈색의 머리카락도 마찬가지다. 색이 조금 옅었다.


그러나 달리 말하면 그 미묘한 차이밖에 없다는 소리였다. 디카이로트와 굉장히 가까운 자가 아니라면 본인으로 착각할 여지는 많았다.


더군다나 몸가짐이 이를 더욱 부채질하였다.


디카이로트가 익숙한 소베르비아의 눈에도 그러하였다. 기사다운 몸짓이라든지, 디카이로트 특유의 버릇들이 애매하게 엿보여 상당히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그런 디카이로트와 닮은―― 솔직히 말해 형제라 해도 믿을 것 같은 무언가를 가리키며 소베르비아는 물었다.



“혹시나 하는데, 저거야?”

“그러한 모양입니다.”


또다시 자신 없는 목소리가 돌아왔으나 소베르비아는 질타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레딧츠 또한 직접 보는 건 처음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는 뭔지도 모를 정보를 계속 전해 받기까지 했다. 오히려 자신보다 혼란스러우면 더 혼란스럽지 덜하진 않으리라.


그렇게 가신의 심정을 대번에 이해해줄 정도로 소베르비아 또한 혼란스러웠다.



“보통의 골렘은 분명 돌이나 금속으로 만들어진 투박한 것이 아니었나? 아니면 갑옷 안에는 아무것도 없는 건가?”

“그렇다고 하기에는 동작들에 무게감이 있습니다······”


진짜 골렘이기나 한 건지······


영문을 알지 못해 황당함을 넘어 어이없을 지경이다.


그렇게 소베르비아와 레딧츠가 온몸으로 물음표를 마구 발산하고 있으니, 디카이로트와 닮은 무언가와 눈이 마주쳤다.


우연히 마주쳤을 뿐이었지만, 디카이로트를 닮은 무언가는 놀란 표정을 짓고는 곧장 발걸음을 옮겼다.


이윽고 소베르비아 앞에 서게 된 무언가.


그 무언가는 정중히 벨루디스의 예법으로 인사하였다.



“만나 봬서 반갑습니다. 소베르비아 루 몬테르 공주 전하. 제 이름은 퍼스트. 시전자―― 이스피리아 님의 친우이신 공주 전하를 만나 뵈게 되어 무척이나 영광입니다.”


디카이로트를 닮은 무언가―― 퍼스트의 예법은 완벽하였다. 어투도 기사 차림에 어울리는 것이었다. 모르는 사람이 보았다면 정말로 기사로 착각했으리라.


하지만――


――그렇기에 소베르비아는 경악하였다.


소베르비아로서는 하나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덕분에 생전 처음으로 느낀 감정―― 무력감이라는 게 무엇인지 깨닫게 됐다.


도통 이해되지가 않았다.


어째서 골렘이 말을 하는 건지······


그런 현재의 모든 심정이 닮긴 영혼의 외침을 소베르비아는 밑바닥에서부터 끌어올려 토해냈다.



“하아?!!”


작가의말

소베르비아 : 이게 뭐다냐... 리아는 도대체 뭘 만든 거야??


안녕하세요! 라스티아입니다.


여러분 모두 한 주 잘 보내셨는지요?


요즘 난방비가 걱정인데 다들 잘 지내셨으면 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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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7 175 22.12.20 106 0 50쪽
206 174 22.11.18 130 0 37쪽
205 173 22.11.09 143 0 38쪽
204 172 22.11.01 118 0 30쪽
203 171-2 22.11.01 102 0 19쪽
202 171 22.10.24 143 0 34쪽
201 170-2 22.10.18 107 0 15쪽
200 170 22.10.13 139 0 39쪽
199 169 22.10.07 144 0 53쪽
198 168 22.09.07 215 0 30쪽
197 167 22.08.31 157 0 44쪽
196 166 22.08.24 123 0 41쪽
195 165 22.08.18 109 0 45쪽
194 164-2 22.08.11 121 0 25쪽
193 164 22.08.11 106 0 20쪽
192 163 22.08.06 113 0 30쪽
191 162 22.08.06 106 0 19쪽
190 161 22.08.01 107 0 35쪽
189 160-2 22.07.29 110 0 18쪽
188 160 22.07.27 127 0 23쪽
187 159 22.07.25 95 0 21쪽
186 158 22.07.22 127 0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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