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렙 히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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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ia
작품등록일 :
2022.05.11 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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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1.01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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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2

DUMMY

“미래를 떠올린 놈들 때문에 달라졌다라······. 라프리트, 나도 네 의견에 동의해. 아니. 누구라도 그렇게 생각하겠지.”


빛조차도 없는 허무의 공간.


이 공간에는 오직 하얀 빛을 발하는 한 여성만이 존재할 뿐 그 무엇도 없었다.


평범한 인간이었다면 수일 이내로 미쳐버렸을 장소에서 여성은 허공에 편안히 드러누워 어느 한 곳을 보고 있었다.


공간조차 뛰어넘어 여성이 바라보고 있는 곳은 제법 호화로운 저택, 리벨리타스 가의 별장이었다.


여성은 거기서 밖으로 나가는 한 마차를 흘겨보았다.



“설마 다른 녀석들마저도 전생을 떠올리게 될 줄은······. 맹점이었어.”


너무 이스피리아―― 그년만 신경 썼다. 미래라는 건 결국 혼자가 아닌 여러 인과관계로 정해지는 건데.


한숨과 함께 여성은 아무것도 없는 허무의 하늘로 시선을 옮겼다.


더 이상 지켜본다면 들킨다. 짜증 나는 그 녀석이나, 찬크에르레이 그리고······ 이스피리아에게.


셋 중에 아무에게나 발각되면 그걸로 끝이다. 그것만은 무슨 일이 있어도 피해야 한다.


아직 준비가 끝나지 않았다. 그전까지는 절대 들키는 것만큼은 있어선 안 된다. 오늘 지켜볼 수 있었던 것도 주변에 눈치챌만한 놈들이 없어서였다.



“하지만 전화위복이야. 그년을 보면 안 된다는 상황 덕분에 다른 곳에도 눈을 둘 수 있었어.”


그 계기가 생긴 건 정말 행운이었다.


덕분에 이 이상한 상황―― 새롭게 만들어지는 미래를 볼 수 있었으니.


새삼스럽지만 너무나도 여유가 없이 허둥댔다. 자신이 손에 넣은 능력이 무엇인지조차 까맣게 잊고······


다시 생각해봐도 한심하기 그지없다.


――제아무리 처음 보는 미래라 한들 당황할 필요 따윈 전혀 없었는데 말이다.



“내가 얻은 이 힘은 그러한 변수 따윈 통용되지 않는 것이니까.”


물론 만능은 아니다. 만능이었다면 이렇게 찌그러져 눈치 따위를 보겠는가.


단점까지는 아니지만, 한계점은 명확하다. 제대로 힘을 쓸 수 없는 지금으로서는 더더욱. 그렇기에 라프리트가 적어놨다던 미래일지, 그것의 정확도가 얼마큼인지 살펴보려고도 하지 않았다.


괜한 흔적이라도 남길 수 있으니까. 방금까지 보던 수첩을 같이 본 정도에 불과하다.


결론적으로 라프리트가 알고 있는 게 어디까지인지, 얼마큼 정확한지 판단을 내릴 순 없었다.


다만 완전 얼토당토않은 헛소리는 아니었다. 어렸을 때 쓴 거라 읽긴 더럽게 어려웠지만, 그 일지에 적힌 건 분명 미래의 일들―― 여러 갈래의 가능성이었다.


정작 그런 걸 누가, 무슨 목적으로 알려줬는지는 미궁 속이긴 했지만.



“라프리트를 읽어내면 판명이야 손쉽지만 그만두는 게 좋겠지. ······뭐, 딱히 읽지 않아도 누가 했을지는 대충 예상이 돼. 백방 그 쌍년이 저질러 놓은 짓이겠지. 근데 대체 그년은 뭔 생각을 하는 걸까? 이스피리아가 전생을 떠올린 것도 그년 짓이려나?”


밝은 주홍의―― 이스피리아의 기억에서 본 태양과도 같은 빛을 뿜어내던 존재를 떠올린 여성은 눈살을 찌푸렸다.


한동안 그렇게 잠잠히 고뇌하던 여성은 얼굴을 폈다.



“생각해봐야 의미는 없겠지. 원래부터 정신 나간 년이니까. 그리고 뭔들 꾸미더라도 상관없어. 어차피 미래는 새롭게 만들어지고 있어. 제아무리 그 쌍년이라도 여기까지 예측하진 못했겠지. 나도 못 하는데 말이야.”


다르게 이야기하자면 현재 지상은 한 치 앞도 예상할 수 없는 미지다. 앞으로 어떻게 흘러갈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라프리트라고 다를 리는 없다. 오히려 그 쌍년조차 모를 앞날을 안다면 그게 더 놀랍다.


――정신 나간 미친년이라 하더라도 오엘문리아를 창조한 오대신 중 하나인 건 분명하니 말이다.


한낱 인간인 라프리트가 오대신을 뛰어넘는 일은 꿈속에서라도 불가능하다. 그러니 라프리트는 이대로 놔둬도 달리 문제가 생기진 않을 것이다. 딱히 무언가를 할 용기도 그녀에겐 없고.



“오히려 지금 상황에서는 가만히 놔두는 게 상책이야. 마음엔 안 들지만.”


최선은 이스피리아가 행복하게 학원 생활을 마치는 것뿐이다.


――오직 그것만이 시간을 벌 수 있는 길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없애버리고 싶다. 뭐가 좋다고 이스피리아가 허허실실 거리는 꼬락서니를 지켜봐야 한단 말인가.


하지만 정말 불쾌하게도 달리 방도가 없다. 여건상 나서기도 어렵다. 그러니 하다못해 이스피리아가 이대로 학원 생활을 탈 없이 보내 얌전히 고향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다른 길은 안 된다. 이외의 길은 숨통을 조여져 오는 결과로 귀결될 뿐이었다.


가장 최악은 베르다드에서 부조리한 핍박을 받는 거다. 그것만큼은 반드시 피해야 했다.


찬크에르레이가 있다고, 벨루디스 내의 입지가 좋다고, 현재 상황이 좋다고 안심해서는 절대 안 된다.


다른 누구도 아닌 그 이스피리아다. 진짜로 이 세상에 미움을 받는 듯한 운명을 타고난 녀석이니 긴장의 끈을 놓는 어리석은 짓은 절대 금물이다.



“근데 어쩐다냐. 핍박받는 빈도수를 따져보면 100번 중 99번인데.”


좀 더 정확히 퍼센트로 환산한다면 99.9999%다. 다른 뜻으로 풀이하면 무탈히 학원 생활을 보낼 확률이 0.0001%밖에 안 된다는 소리이다.


그런데 이조차도 현재로서는 가망이 없다.


이스피리아가 그 미래에 들어서기 위한 전제조건이 있었는데, 그건 바로 무능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때의 이스피리아는 게을렀다. 덕분에 새롭게 뭔가를 배우려 하지 않았으며, 만사 대충대충 적당히 살아갔다.


그것만으로 충분하긴 했다. 지금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능력치가 낮았으나 심상마법은 쓸 수 있어, 나름대로 베르다드를 졸업할 정도는 됐으니.


그러나 그게 끝이다. 분명 무영창으로 마법을 쓰는 건 신기하지만, 마법이 다채롭지도, 압도적인 시전 속도를 지닌 것도 아닌 터라 별다른 주목조차 받지 않았다.


관심이 없으니 핍박 또한 없다. 간간이 리카드가 사람을 잘못 추천했다며 악평을 듣는 정도에 불과했다.


다만 이후의 삶은 좋지 않았다. 능력 자체가 너무 평범하다 보니 취직자리를 구하기도 힘들었을뿐더러, 후원자였던 리카드의 도움의 손길도 끊겼다.


오히려 기다리고 있었는지 리카드는 졸업하자마자 재빨리 이스피리아와 연을 끊어버렸다. 찾아가더라도 매몰차게 문전박대당하였다.


매정해 보이지만 리카드로서는 당연한 일이었다.


그의 목적은 치유마법의 술식화. 하지만 이스피리아는 전혀 공부하지 않아 [치유]를 쓸 수는 있었으나, 그걸 술식으로 옮겨내지는 못하였다. 말하자면 감각파로, 졸업한 것 자체가 용했다.


그러한 이스피리아다. 졸업전까지는 해내겠거니 지원하였으나, 전혀 가망이 없는 자에게 언제까지고 투자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자원봉사자를 할 마음 따윈 없었으니 이스피리아를 내치고 바로 다른 인재를 물색하였다.


뒤늦게 이스피리아는 후회했으나 시간은 돌아오지 않는 법. 정중히 리카드에게 감사를 전한 뒤 다시는 베르다드의 문턱을 밟지 않았다.


이후 어떻게든 일자리를 구해보려 했으나, 어떻게 졸업했는지 의심스러운 능력으로는 쉽지 않았다. 기껏 고용되더라도 예절의 모자람 등 금세 밑천이 보여 해고되는 나날이 이어졌다.


그렇게 흐르고 흘러 도달한 곳은 모험가. 썩어도 준치라고, 나름 순조롭게 랭크를 올려 나갔다.


하지만 사람 좋고 순진했던, 다른 말로는 멍청했던 이스피리아는 동료라 믿고 있던 자에게 속아 의뢰 실패의 덤터기를 쓰게 됐다.


이날의 일로 큰 충격을 받은 이스피리아는 도시에서의 생활을 접기로 했다.


리카드 때에 받았던 상처도 제법 응어리가 있었던 터라 망설임은 없었다. 떠안게 된 막대한 빚도 나 몰라라 하고 밤중에 몰래 벨루디스의 수도, 아네픽시르를 빠져나갔다.


수배자의 신세가 됐지만 개의치 않았다. 어차피 이스피리아에겐 더 이상 벨루디스에서―― 인간의 나라에서 살고픈 의지는 모조리 사라졌으니 말이다.


바라는 건 오직 가족들이 묻혀있는 고향으로의 귀환.


의뢰 실패의 위자료를 추징당해 수중의 남은 돈이 전혀 없어 굶주리면서도 홀가분한 기분을 느끼는 것에 만족했다. 뒷골목에 숨어 잠을 청함에도 이스피리아의 입가엔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리카드와 함께 본인이 만든 가족들의 무덤을 떠올리면 역시 슬프긴 했다. 그러나 여러 풍파를 거쳐 삶을 되돌아보며, 정신적인 성장을 이룬 이스피리아에겐 그리움이 더욱 앞섰다. 오랜만에 만나는 가족들에게 학원에서의 생활을 보고 할 것을 생각만 해도 아련했다.


그런 기대감이 가득한 여행길은······ 무척이나 어이없게 끝났다.


현상 수배범으로 잡힌 건 아니다. 벨루디스는 그렇게까지 부지런하진 않다. 그저······ 마물에게 습격당해 죽었을 뿐이었다.


그 마물은 약했다. 그렇지만 전혀 공부하지 않았던 이스피리아는 꽃으로 의태 하는 마물의 특징을 몰랐고, 근처에서 잠을 청하는 동안 독에 의해 몸이 마비돼 그대로 마물의 양분이 되었다.


죽어가면서 이스피리아는 계속 후회했다. 어째서 좀 더 열심히 살지 않았느냐고. 흥청망청 놀기만 한 자신을 저주했다.


그렇게 고향 땅까지 얼마 남지 않은 숲에서 이스피리아는 미련만을 남긴 채 눈을 감는다.



“이게 최고의 길이긴 해. 성녀 사칭범으로 죽는 것도 괜찮긴 한데, 정작 잔뜩 고문하여 죽일 아베라가 주교직을 버려서 분기 자체가 틀어졌어. 아니면 성녀로 추앙받고 개 같이 굴려지다가, 귀족에게 팔려나가는 것도 괜찮은데. 푸풉. 그 길은 다시 생각해봐도 진짜 걸작이야.”


이스피리아가 성녀로 추앙받을 수 있었던 건 지금과 같이 [정화]를 쓸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게 불행의 시작이었다.


계기는 룸메이트였다. 이때는 동쪽 기숙사에서 지냈던 이스피리아는 큰 병에 걸려 시름시름 앓던 룸메이트가 가여워 [정화]를 써버렸다.


순전히 호의에서 나온 발로였다. 도움을 받은 룸메이트도 나쁜 심성인 건 아닌지라 고마워했다. 딱히 어딘가에 떠벌리지도 않았었다.


그러나 혼자만이 아는 무언가를 계속 참기란 힘든 것. 어느 날 룸메이트는 무심코 자신의 친구에게 비밀을 말해 버렸다.


룸메이트의 친구는 이스피리아와 큰 인연이 없던 사람. 더군다나 입이 가벼웠다.


소문은 삽시간에 베르다드를 가득 메우게 됐다.


베르다드엔 귀족이 많다. 루시아스 교에 다다르는 건 순식간이었고, 세인트리안에선 신관을 보내왔다. 정말 [정화]를 쓸 수 있는지―― 성녀인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그날, 이스피리아는 성녀가 되었다.


이때의 이스피리아는 순진했다. 사람이라는 생물이 얼마나 더럽고 추악한지, 고향의 착해빠진 가족들만 접해봤던 이스피리아에겐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저 많은 사람을 도울 수 있다는 신관의 설득에 홀라당 넘어가, 졸업할 때까지만이라도 학원에 머물라는 리카드의 손도 뿌리치고 바로 세인트리안으로 향했다.


그 바람대로 이스피리아는 무수히 많은 생명을 구하였다. 그야말로 성녀답게. 쉴 틈도 없이 쭉······


세인트리안은 아까워하지 않았다. 온갖 질병을 치료할 수 있는 [정화]를 필요로 하는 곳은 많았고, 성국의 이익을 위해 이스피리아를 마구 굴렸다. 성녀라는 패는 하나 더 있었으니 거침 없이 일정을 짰다.


각지의 순방이나 온갖 연구에도 참여하는 등 이스피리아는 정말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실로 살인적이었다.


딱히 그게 아니더라도 이스피리아의 몸은 하나다. 시기를 놓쳐 버린 일들이 속출하는 건 너무나도 당연한 순리였다.


그렇지만 애타게 기다리던 가족들에겐 아니었다.


주체 못할 슬픔을 견딜 수 없었던 그들은 원망의 말들을 이스피리아에게 퍼부어댔다.


물론 그들도 이스피리아의 잘못이 아님은 알고 있다. 성녀이기에 미안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어리광 부리는 것이었다.


이스피리아는 이런 이들의 마음을 묵묵히 받아들였다.


하지만 이것도 한두 번이면 괜찮았을 것이다. 하루에만 해도 수십 번을 미안하다며 머리를 숙인 이스피리아의 마음은 본인도 모르는 새에 차츰 마모되어 갔다.


그러다 곪고 곪아 터지게 됐다.


――이스피리아가 [정화]를 쓸 수 없게 된 것이다.


충분히 예견된 일이었다.


마법이란, 특히 심상마법은 이미지가 중요하다. 마음이 닳고 닳은 이스피리아에겐 더 이상 사람을 살린다는 이미지가 그려지지 않게 된 것이다.


당장 성녀의 자리에서 박탈되진 않았다. 다시 [정화]를 쓸 수 있을지 모르니 건강이 나빠졌다는 명목하에 유배되듯 세인트리안으로 돌아왔다.


몇 년 만에 드디어 찾아온 달콤한 휴식.


그러나 암만 시간이 흘러도 이스피리아가 [정화]를 되찾는 일은 없었다.


냉철하게 포기하기로 한 세인트리안은 이스피리아에게서 마지막 단물을 빨아내기로 했다.


그것이 바로 귀족에게 파는 것이었다.


명색이 성녀였던 여자다. 찾아보면 수요는 있었고, 세인트리안은 큰돈을 건네받고 이스피리아를 넘겨버렸다.


이미 지칠 대로 지친 이스피리아는 저항하지 않았다. 애초에 한 나라의 의지를 거역할 정도의 힘은 이 길에선 지니고 있지 않아 선택권 따윈 없었지만.


그렇게 팔려나간, 기름기가 좔좔 흐르는 귀족의 애첩이 된 이스피리아는 욕망의 분출구로 활용됐다.


처사는 별로여도 일단 먹고 사는 데에는 아무 지장이 없었다. 하지만 더더욱 처참하게 마음이 망가지게 된 이스피리아는 감정이 없는 인형처럼 되어갔다.


그러한 반응에 질리게 된 귀족은 이스피리아를 다른 귀족에게 팔았다.


알고 지내던 사람의 애첩이었어도 상관없었다. 성녀라는 타이틀은 도착적인 취향을 가진 이들에겐 너무나도 달콤한 것이었고, 그들은 선뜻 처음 귀족이 샀던 가격보다도 더욱 큰 금액을 지불했다.


하지만 이미 인형처럼 변해버린 이스피리아였다. 바라던 만큼의 자극 따윈 없었고, 금방 질려버리고 말았다.


결국 자금 회수를 위해 이스피리아는 다시금 되팔렸다.


이런 일들이 몇 번이고 반복됐다. 그 과정에서 만족하지 못한 귀족들에게 분풀이로 맞기도 하는 등의 일도 있었지만, 이스피리아는 [치유]도 쓰지 않고 점점 주기가 짧아지는 거처의 이동을 불만 없이 받아들였다.


그러다 찬찬히 쇠약해진 이스피리아는 쥐 죽은 듯 밤에 조용히 숨을 거둔다.



“음음. 어찌 보면 이거야말로 남에게 도움도 되고 최고의 길이지 않을까 싶어.”


진지한 얼굴로 여성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리고는 이내 배를 부여잡고 미친 듯이 웃었다.


한동안 허무의 공간에는 여성의 높은 웃음소리만이 울렸다. 무척이나 즐거워 보였다.


하지만······


뚝.


금방 멈춰버렸다. 표정을 굳힌 여성의 눈엔 오직 심각함만이 남아있었다.



“암만 좋으면 뭐 하냐. 이젠 사라진 길인데. 현실이나 제대로 보고 대책을 마련해야지. 그런데······ 이스피리아. 그년은 진짜 대체 뭐지?”


이스피리아를 직접 읽을 순 없다. 쳐다보는 시선마저 느끼는 상대에게 할 게 아니다. 그래서 다른 이들을 읽어 앞으로 펼쳐질 수 있는 가능성―― 미래들을 알아내기로 했다.


틀린 방법은 아니었다.


손발이 묶인 지금의 상황으로서는 최선책이었다. 실제로 이를 토대로 이제 남은 길이 하나뿐이라는 것도 판명했다.


다만, 자세한 건 하나도 모른다.


여느 때와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일상만이 보였을 뿐이다. 우려하던 일―― 절대 듣고 싶지 않은 그 소식은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


오직 이 길만이 그렇다. 나머지 길들은 늦든 빠르든 우려하던 소식이 들려온다.


――이것만이 얻을 수 있었던 정보의 끝이다.


이 이상은 도저히 알 방법이 없었다. 당혹스러워 몇 차례 시도해봤다. 하물며 이스피리아와 연관되어 있으면서도, 만날 일은 아직 없기에 살펴보더라도 들킬 걱정이 없는 이들 전부를 읽어 보았다.


누구 하나 예외가 없었다. 살펴보는 자의 미래에서 혹여라도 이스피리아가 등장하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됐다.


언급하는 것조차도 그러했다. 이스피리아와 조금이라도 관련이 있다면 바로 시야는 백지로 점멸한다.


우려하던 소식을 들었다는 것도 실제로는 듣지 못하였다. 달리 비슷한 일은 존재하지도 않았기에 정황상 추측한 것에 불과할 뿐이었다.



“진짜 영문을 모르겠네.”


어째서 그렇게 되는 건지 잠시 고민하던 여성은 고개를 흔들었다.



“모르는 걸 쥐어짜 내봐야 답이 나올 리 없지. 이젠 중요한 것도 아니니 넘어가고, 그보다는 바지탄스······ 그 빌어먹을 마족들만 없었어도!”


여성은 이를 갈았다.


진짜 문제는 이거다. 원래는 리카드에게 전부 죽었어야 할 마족들이 살아있음으로 인해 모든 게 틀어졌다.



“딱히 계획대로 마을 주민들을 학살하진 않아도 괜찮아. 그건 나도 바라진 않아. 그렇지만 마을 사람들을 공격하거나, 하다못해 적의라도 드러냈더라면 이렇게까지 되진 않았을 텐데······.”


큰 걸 바라는 게 아니다. 아주 사소한 미혹이라도 좋다. 이스피리아가 마족에게 좋지 않은 감정을 품기만 하면 됐다. 그러면 모든 준비가 완료될 때까지 시간이 벌렸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일은 벌어지지 않았고, 남은 길은 하나로 대폭 줄게 됐다.


문득 불안해진 여성은 두 손을 모았다.



“라프리트, 너만 믿는다?! 공동전선 알지? 나도 지금만큼은 이스피리아가 즐겁다 못해, 환장할 정도의 학원 생활을 보냈으면 하거든? 너와 나의 뜻은 일치해. 그러니까 우리를 위해서 죽을 둥 살 둥 이스피리아를 머저리 녀석들에게서 지켜내!”


진심 어리게 말한 여성은 크게 숨을 토해냈다.


그리고는 바로 분통을 터뜨렸다.



“내가 왜 그년 따위를 위해 이딴 짓까지 해야 해?! 아오!! 그리고 아즈랄! 너도 네 동생을 본받아라. 심보 좀 좋게 가지면 어디 덧나냐?! 괜히 리카드를 의심해서 감시자까지 붙이게 하고 난리야!”


당시엔 잘했다며 축복이라도 내려줘야 하나 고민까지 했건만 손바닥 뒤집듯 말을 바꾼다.


그러나 여성에겐 알 바 아니었다. 도리어 괘씸한 짓을 벌인 아즈랄에게 어떻게 하면 앙갚음할 수 있나 만을 진지하게 생각해보았다.



“이건 리카드가 알아서 잘 헤쳐 나가기를 바랄 수밖에 없나? 기껏 해봐야 감시자에 불과하니까 적당히 좀 넘어가라. 으으······ 지켜볼 수라도 있으면 조금은 걱정이 덜할 텐데.”


아무리 걱정된다지만 모든 걸 그르칠 순 없다. 이스피리아 쪽의 상황이 계속 신경이 쓰이지만, 불안은 접고 늦지 않게 자신의 할 일을 해야 할 것이다.



“그래······ 난 모든 준비를 마치고 때를 기다리면 돼. 든든한 지원군도 얻었잖아?”


여성은 공간 너머를 봤다. 그곳에는 밝고 활달한 여성과 스스로 빛을 내는 듯한 금발, 금안의 청년이 있었다.


마치 연인과도 같이 딱 달라붙은 둘은 무척이나 사이가 좋아 보인다.


그러다 우뚝 멈춰선 청년. 그의 시선이 순간 하늘을 쳐다본다.


명백하게 시선을 알고 있다는 이 반응에 여성의 입가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그렸다.


정말 믿음직한 지원군이다.


작가의말

오오. 조금 늦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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