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렙 히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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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ia
작품등록일 :
2022.05.11 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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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6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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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7.07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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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

DUMMY

남자 중 길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을 법한 모험가 차림의 남자는 이마를 탁 쳐올렸다.



“젠장할. 얼굴을 인식할 수 없길래 아니길 빌었는데, 느낌도 그렇고 말하는 걸 보니······ 허튼 희망이었네.”

“시끄럽다, 카를로 운. 적의 앞에서 무슨 꼴을 보이냐.”


탄식의 말에 곁 있던 1.6m는 될 크기의 기묘한 정십자의 금속 조각을 멘 남자―― 뭔가의 코스프레 같은 복장의 그는 나무랐다.


하지만 카를로 운이라 불린 모험가는 도리어 성을 냈다.



“내가 이러지 않게 생겼어, 선배! 그 괴물, 이스피리아라고!”

“안다.”


리아는 둘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아뇨. 전 자인 디바오러에요.”


운은 눈을 끔뻑였다.



“뭔 소리래.”

“자인 디바오러라고요. 제 이름은.”


착각하면 안 된다. 이스피리아로서가 아닌 자인 디바오러로서 이곳에 온 거니까.



“아니아니. 다 알고 있으니까 굳이 아닌 척하지 않아도 돼. 딱 봐도 넌 연기에 소질도 없어 보이고 말이야.”


해도 될 말이 있지. 대배우의 싹도 못 알아보는 것이란 말인가.


이마에 조금 힘줄이 솟았지만, 저 사람의 눈이 동태처럼 흐릿할 뿐이라며 위안 삼기로 한 리아는 인내심을 갖고 다시 한번 말하였다.



“연기가 아니에요. 전 자인 디바오러에요. 착각하시면 곤란해요.”

“······.”


멍하니 보던 운은 머리를 거칠게 긁었다.



“······알았다. 네 마음대로 해라.”

“그럴게요. 근데 전 제대로 인사를 했습니다만?”

“뭐? 우리도 하라고?”

“기본적인 예의잖아요.”

“하아. 좋아. 나야 어떻게든 시간을 끌었으면 했으니까.”

“솔직하시네요.”

“당연하지! 그 자리에 있었는데 너랑 싸우고 싶은 마음이 들겠냐.”

“그건······ 그러네요. 당신들은 어떤 방법을 동원하든 절 이길 가능성이 전혀 없으니까요. 직접 보셨으니 더욱 확실하게 체감하셨겠죠.”


운은 어이없다는 듯 콧방귀를 끼었다.



“······잘도 그리 말하면서 이스피리아가 아니라고 하는 거야?”


리아는 활짝 웃었다.



“네. 전 자인 디바오러에요.”

“그래, 됐다야.”


포기한 듯 크게 한숨을 토해낸 운은 느긋하게 말하였다.



“난 들었다시피 카를로 운이다. 여기는 내 선배, 케트로 세르칸체고.”

“둘 다 심판관이시죠?”


흠칫――


몸을 떤 둘, 특히 케트로란 남자의 눈빛이 매섭게 변했다. 그렇지 않아도 섬뜩했던 눈이 더욱 무서워져 살인귀처럼 보이게 됐다. 정작 리아는 평온하게 응시했지만.



“어떻게 심판관을 알고 있지?”


처음으로 케트로가 입을 열었다. 하지만 기껏 묻는다는 내용이 꽤 김빠지는 것이었다.



“반대로 묻습니다만, 왜 제가 모를 거란 생각을 하시나요?”

“······.”

“어~ 선배를 대신해서 말하자면 말이지. 일신성단에 대해서는 알 수 있어. 여기저기 쉬쉬하기는 해도 이야기는 나도니까.”

“하지만 심판관은 그렇지 않다고요?”

“그렇지!”


입술에 검지를 올린 리아는 고개를 꼬았다.



“글쎄요······ 저 말고도 아는 분들이 참 많았는데요. 저도 듣고서 심판관이라는―― 허영심 가득해 보이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았고요.”

“헤에. 그들이 누구인지 궁금하네.”

“왜요. 가서 죽이게요? 심판관답게 심판한다는 명목으로요?”


그리 말한 리아는 못 말리겠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비웃음을 흘렸다.



“심판관이라······ 정말 오만하기 짝이 없는 직함이네요. 당신들이 뭔데 심판의 기준을 판별하고 앉았나요? 뭐, 신이라도 되나요? 실제 신이 그렇게 심판한다며 나선다고 해도 불쾌할 판국에 축복은커녕, 신과는 아무런~ 접점조차도 보이지 않는 당신들이 도대체 뭘 근거로 이렇게 까불고 다니는지가 정말 궁금하네요.”

“너는 그걸 안단 말이냐?”


본인의 신앙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는 말인지라 노골적인 바보 취급에 상당히 분노한 듯한 케트로다.


그런 그에게 리아는 입꼬리를 비틀었다.


얼굴을 인식하진 못하겠지만, 기척을 느꼈는지 케트로의 눈썹이 꿈틀댔다.



“그걸 묻는다는 것 자체가 신과 접점이 없다는 거예요. 르안, 당신은 저들에게서 신력이 느껴지나요? 저는 전혀~ 조금도~ 안 느껴지는데.”


일단 정체는 숨기고 있기에 가명으로 불린 에르는 자신과 마찬가지로 너스레를 떨고는 비웃음을 흘렸다.



“티끌만 한 신력은커녕, 신이 살펴봤다는 기척조차도 느껴지지 않는군. 하물며 축복받았다 한들 그게 심판할 수 있는 권리를 얻은 것도 아니지.”

“그렇죠. 그 권리를 가진 존재는 이미 따로 있으니까요.”

“정확히 심판할 권리라는 건 아니지만······ 저것들보단 그럴싸한 명분이 있긴 하지.”


쿡쿡 웃은 리아는 모멸감을 가득 담아 말하였다.



“다음부터는 심판이니 뭐니 같잖은 이유를 대지 마셔야겠네요. 그냥 마음에 안 들어서 죽였다고―― 살인광들처럼 이야기해야 할 듯싶은데······ 당신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신님에게 관심받는다고 저 혼자 착각한 안쓰러운 여러분?”


선뜻 대답하지 못하는 그들이다.


그러다 운은 어떠한 것이 떠올랐는지 무심코 중얼거렸다.



“어쩌면······ 잿빛이 성녀 이외에는 건방진 태도를 보였던 건――”

“――카를로 운!”

“아. 미안, 선배.”


그런 둘을 보며 리아는 눈을 가늘게 했다.



“호······ 그분은 신력을 느낄 수 있으신가 보네요? 하긴 느낄 수 있는 자라면 당신들이 심판관이라고 지칭하는 걸 보면 좀 어이가 없겠죠. 인간에 대해 무슨 권리가 있다고 그런 시건방진 직함을 달고 거들먹거리냐면서요. 그저 남들보다 쬐에에에끔 더 힘이 있었을 뿐인데.”

“······.”


대꾸할 말을 찾지 못했는지 침묵을 일관하는 두 명의 심판관이다.


그 둘을 놔두고 리아는 잠시 밤하늘을 올려다봤다.



“하지만 성녀라······ 그 사람은 제대로 신력―― 축복을 받은 모양이군요. 그런 사람이 세인트리안의 행태에 찬동한다······ 뭔가 좀 이상하네. 그렇지 않나요? 혹여 발언권은 고사하고, 속박하여 옭아매 두고 있는 건 아닌지 괜한 의심이 드네요.”

“그딴 짓을 할까 보냐?!”

“오호~ 그렇다는 건, 성녀는 이 나라가 어찌 굴러가는지도 모르나 보네요. 일부러 어두운 면은 감추고 있는 건가요? 아니면 성녀 자신이 그런 쪽엔 관심조차 안 가지려는 온실 속 화초인가요?”


남에게 알리긴 그리 유쾌한 내용은 아니었는지 운은 아차 싶은 얼굴을 하였다. 케트로는 눈짓으로 운을 질책하였고.


리아는 어깨를 으쓱였다.



“뭐, 아무래도 좋겠죠. 오늘 전 정보를 얻으려고 온 게 아니니까요.”


더욱 날카로운 눈이 된 케트로는 물었다.



“그럼 뭐하러 온 거냐?”

“전 예의가 바르거든요. 보시다시피.”

“······받은 건 돌려준다는 건가.”

“확실하게. 이자까지 보태서요. 저는 빚지고는 못 살거든요.”


공기가 팽창하듯 긴장감이 고조된다.


리아는 은은하게 살기를 풍기는, 세스와 싸울 때 멀찌감치 떨어져 구경했던 반가운 이들에게 예를 취했다. 다만 벨루디스 식이 아닌, 왼발을 반걸음 뒤로 물려 조신히 가슴에 손을 얹은―― 제국식 귀족의 인사법을 행했다.


어깨너머로 봤다지만 깔끔한 자세로 해낸 리아는 아이다운 사랑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럼 이제 슬슬 해보도록 할까요? 규칙은 간단해요. 저희의 골인 지점은 대성당. 당신들은 그걸 저지하는 거예요. 거리의 차이는 제법 있지만······ 그건 이쪽이 알아서 조절하도록 할게요.”

“당한 걸 똑같이 한다는 거야?”

“그렇죠, 카를로 운 씨. 하지만 이쪽은 위치를 알리고 시작한 만큼 조금 핸디캡을 두도록 하죠.”

“핸디캡······?”

“네. 대성당까진 30분이 소요되도록 갈 거예요. 이스피리아가 사태를 알고 준비한 시간의 절반이지만······ 꽤 합리적이죠? 당신들이 저희를 발견하라는 건 몇 달이 지나도 불가능할 테니 말이죠. 못 믿겠으면 지금이라도 몰래 숨어서 움직여 볼까요?”

“아니······ 차라리 모습을 드러낸 쪽이 좋아.”

“현명하신 판단이에요.”


그럴 확률은 낮을 거라 예상하고 대담하게 굴었지만, 내심 그러라고 하면 어쩌나 걱정했던지라 리아는 안심하고는 빙긋 웃었다.



“하지만 이러면 빚을 갚으러 온 것치고는 너무 봐주는 모양새이니 한 가지 규칙을 추가하죠.”

“무, 뭘?”

“별거 아니에요. 그리 긴장하지 않아도 돼요.”


침을 삼키는 운과 이제는 살기 가득한 케트로를 찬찬히 본 리아는 순간―― 아무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무표정을 하였다.



“저흴 저지하는 게 조금이라도 느슨해지면 바로 속도를 올리도록 하죠. 전혀 막지 않는 걸 가정 시 10분 이내에 도착할 거예요. 대성당에. 당도한다면 제가 무엇을 할지―― 음. 그건 나중의 즐거움으로 남겨두도록 하죠. 두근거리는 요소가 있어야지 최선을 다하시겠지요.”

“······게임이라도 한다는 거냐.”


화가 많이 난 듯 케트로다. 깊게 누른 후드 때문에 표정을 자세히 볼 순 없었으나 입가가 무섭게 일그러져 있으니 분명 그러할 것이다. 살기도 더욱 짙어졌고 말이다.


근데 그게 뭐 어떻다고? 되려 어처구니가 없을 뿐이다.


나오는 말에서도 그 감정이 고스란히 담겼다.



“당신들은 어떤 숭고한 뜻이 있었길래 그런 짓을 한 건가요?”

“······인간을 지키기 위해서다.”

“아뇨. 그딴 장난질에 숭고한 뜻을 품었다는 것 자체가 제정신인지 검사부터 해야 할 거 같은데요. 그렇지 않나요? 세상 어디에 인간을 지키기 위해 타종족을 이용해 인간을 친단 말인가요.”

“······.”

“아아. 다시 생각해봐도 정말 웃겨요. ······이봐요, 당신들. 만약 그곳에 이스피리아가 없었다면 벨루디스가 사라졌을 텐데. 그때 가서도 인간을 위해서였다―― 같은 헛소리를 할 수 있으시겠나요? 혹 그럴 줄 몰랐다. 세스타스가 그리 강할 거라 예상치 못했다며 되지도 않는 핑계를 댈 건가요. 이미 사람은 다 죽고 나라가 무너졌는데?”

“하지만 너는 있었다.”

“예. 저는 아니지만 이스피리아는 분명 있었죠. 당신들도 확신이 있었을 것이니 시행한 것이겠죠. 그런데 전 만일을 이야기 한 거예요. 그날따라 컨디션이 안 좋아서 불참했다든가, 늦잠 자는 바람에 미처 참석하지 못했다거나. 이스피리아는 벨루디스에선 최고국빈이에요. 아무리 전원 참석이라도 빠지려고만 하면 할 수 있었겠죠. 실제로 공국의 공주님은 참석하지 않았고요.”

“그러면 다른 목적을 완수하고, 이후 소식을 알게 된 네가 와서 막았겠지.”

“그게 인간을 위해서란 대의를 내건 행동인가요? 종 전체를 대변한다는 것치고 꽤 헐렁헐렁한 작전이라는 건 혹시 알고 계시는 거죠? 아니면 그 정도의 인간 따윈 죽어도 괜찮다는 판단이었나요?”


거기서 말을 멈춘 리아는 차가운 눈으로 케트로를 쳐다봤다.



“――그것도 아니라면, 세스타스에게 걸어둔 마법으로 조종할 수 있기에 한 대범한 짓이었나요?”

“······.”

“아. 대답을 바란 건 아니에요. 그러니 어찌 알았냐 등의 멋없는 짓은 서로 하지 말죠. 할 일은 따로 있잖아요?”


이제 시작한다는 걸 안 운과 케트로는 전의를 끌어올렸다.


그렇다. 전의를 끌어올린 것이다. 세스처럼 결사의 각오로 끌어올린 투지도 아니다. 그저 막겠다는, 비장함이 하나 없는 맥 빠지는 전의다.


허탈하기 그지없다······


‘겨우 이런 자들이 세스를 가지고 논 거야?’


꼭 정정당당히 일대일로 싸우거나 해야 한다는 건 아니다. 그 또한 병법이고, 전략이다. 인원수로 밀어붙이는 게 치사하다고 폄하할 생각은 없다.


그러니 세스 때처럼 인질을 붙들고 협박하는 것도 하나의 방편으로서 부정하진 않는다. 떳떳하진 않지만, 자신도 전생에서의 전쟁 때 비슷한 짓거리를 묵인하기도 했으니.


이기기 위해, 살기 위해 수단을 가릴 처지가 아닐 때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이딴 가벼운 마음가짐인 주제에 일을 벌였다는 것 자체는 용서가 안 된다. 남을 이용해 죽일 목적이었다면 본인도 죽을 각오를 다지는 건 당연한 일이 아닌가.


어째서 자신은 괜찮을 거라, 딱히 목숨의 위협이 없을 거라 여길 수 있는지 되려 그게 신기하다.



“르안. 당신은 절대 직접적으로 나서지 마세요. 저를 보좌해주는 것만 하세요.”


용으로서 에르의 입장. 이 세계를 관리한다는 그의 사명에 혹여나 반하는 일이 될까 누를 끼치기 싫어 미리 선수를 쳤다.


말하는 의미를 알고 에르는 싫은 듯하였지만,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며 알겠다고 하였다.



“너 혼자서 하겠다는 거야? 하. 성국도 만만하게 보인 모양이군.”

“당신들의 잘난 이 나라가 얼마나 대단한지는 모르겠지만······”


드디어 무표정을 풀은 리아가 활짝 핀 꽃다운 얼굴을 하였다.



“제가 할 말을 대신하시네요. 전 자인 디바오러에요. 도대체 저를 얼마나 쉽게 보신 건지. 그 자리에도 있으셨던 분이.”


시건방진 말을 했던 운은 당시가 떠오른 듯 흠칫 떨었다.


리아는 그런 운을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그 모습은 루비아의 틀어진 미소보다도 훨씬 섬뜩한 기운을 담고 있었다.



“뭐 좋아요. 그 넘치는 자신감이 뭔지 직접 확인해 보면 되겠죠. 자, 오세요. ――놀아드리도록 하죠.”


말을 마침과 동시에 리아는 멈췄던 발걸음을 옮겼다.


전체적으로 갈색빛의 복장인 운과 밤길처럼 어두운 케트로는 바로 반응했다. 좌우로 갈라진 둘은 각자 발동어도 없이 보조계 강화마법을 시전했다.


‘역시나 이 사람들은 심상마법을 쓰는구나.’


운은 이제는 제법 흔하게 보던 [전능력증강]과 [민첩증강], [근력증강] 등을 사용하여 육체적 강화에 치중했다.


케트로도 마찬가지로 [전능력증강]를 사용했으나 한 단계 높은 마법이란 느낌이 든다. 기왕 구별하자면 [전능력초증강]으로 부를 수 있을 듯하다. 아직 숙련도가 별로인지 그리 큰 차이는 있어 보이진 않지만.


그 외에는 등에 메고 있던 정십자의 물체와 연결을 가지는 듯한 마법이 있었다.


왼쪽에서 빠르게 접근하는 운은 별 관심도 가지 않는다. 그래서 다가오는 평범한 롱소드를 대충 검지로 쳐내고 아직 움직이지 않는 케트로에게 시선을 집중했다.



“뭣! 손톱으로?!”


운은 놀라지만 그의 검에 담긴 마력은 기껏 해봐야 1단계 압축이다. 다치는 일은 결단코 없다. 생채기 하나라도 만들어내면 그게 기적이다. 쳐낸 손톱도 조금의 깨짐조차 없었다.


물론 방심은 금물이다. 그리모르의 전력은 보질 못했지만 일단 현재로서는 운이 검을 든 자 중에선 제일 빠르고 강했으니.


‘그런 짓을 하다가 목이 훅 떨어지면 다윈상도 확정일 테고.’


하지만 2단계 압축은 절대 쉽지 않다. 하루아침 만에 갑작스레 해낼 리는 없을 것이다. 자신 또한 다루는 게 서툴러 팔을 통째로 날려 먹은 전적이 있기에 말 그대로 뼈저리게 잘 알고 있는 바이다.


그래서 방심을 안 하고 싶어도 운은 2단계 압축은 하지 못한다는 확신이 드니 무심코 신경이 안 간다. 오히려 이전에 상처를 입힌 디카이로트가 대단했달까, 그가 훨씬 경계심을 자극했다.


평소라면 세스 때처럼 살짝 충고라도 해줬을 테지만, 오늘은 그럴 필요성을 전혀 못 느끼겠다.


키잉――


운을 무시하고 걸음을 내디디니 금속의 마찰음을 내며 정십자를 손에 꺼내든 케트로다. 준비가 다 된 모양이다.


‘헤에. 혹시나 했는데 무기였네.’


장식으로 봤던 정십자는 통짜로 만들어진 물건이 아니었다. 이제 와 보니 4개의 검을 이어 붙인 듯한 것으로, 가운데에는 손잡이들이 모여 하나로 연결되어 있었다.


아마 마법으로 이은 듯한 정십자의 검을 케트로는 빠르게 다가오는 리아에게 겨누었다.


그러다가 2m까지 다가오니······


킹, 킹!


날카로운 소리가 나고는 4개로 분리된 검이 날아든다.


‘그렇군. 뭔가 연결하는 거 같더니만 원격조작이었나.’


허공을 가르는 4개의 검을 운과 마찬가지로 검지 손톱으로 모두 쳐낸 리아는 작게 콧방귀를 뀌었다. 장검은 움직이지도 않았다.



“메인디쉬치고는 제법 조잡한 맛이네요.”


그렇게 말은 하였지만 사실 케트로의 능력은 대단했다. 검 하나, 하나가 직접 잡고 휘두르는 듯한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취하는 신기를 선보였으니 말이다.


그 유연함과 강함은 마치 4명의 실력 좋은 검사와 대적하는 느낌조차도 든다. 더불어 마력까지도 이을 수 있었는지 검에는 압축된 마력이 담겨 있어 강한 파괴력도 겸비하고 있었다.


분명 케트로의 전법은 꽤 상대하기 까다로운 것이다.


‘내가 아니었다면 말이지.’


다른 사람이라면 모를까, 자신에겐 케트로와 보이지 않는 검사들은 그리 큰 위협이 되지 않는다.


막말로 운과 똑같이 그냥 무시해도 좋을 정도다.


아무런 피해도 보지 않을뿐더러, 기본적인 능력의 차이가 이렇게나 벌어져서야 그저 신기한 볼거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보단 본인을 상회하는 강자에게 일격을 가할 수 있는, 한점에 온 힘을 모을 수 있는 필살기 같은 걸 습득해놨으면 좋지 않았을까 싶다.


근데 저건 아무리 봐도 본인보다 약자를 상대하는 데에 최적화된 전법이다. 강자를 상대로는 전혀 승산이 없다.


그렇기에 조잡하다. 강자와 조우한다는 만약의 상황은 조금도 고려되지 않았다.


거기다――


별 신기한 재주도 아니었다. 저런 것쯤은 쉽게 따라 할 수 있다.


리아는 여전히 운과 함께 베는 4개의 검을 빠르게 한 손가락으로 떨어내며 바로 마법을 사용했다.


우선 주위의 점포와 상가에서 철을―― 고품질로만 끌어와 검을 만들었다.


형태는 대충 검처럼은 보이게끔 하였다. 이런 애들 장난에 진지해질 필요는 없으니. 그리고 즉시 케트로처럼 흡사 몽둥이 같은 검들을 전부 감각과 연결했다.


숫자는 20개. 이 정도라면 놀고 싶어 하는 이 둘도 제법 기뻐할 거다.


걸음을 멈추지 않고 리아는 둘을 스쳐 지나갔다.


그러자 본인도 근접 전투를 행하는지 주먹 쥔 케트로는 달려들려고 했지만······ 주위에 완성되는 검을 보고 흠칫했다.


무엇을 하려는 건지 알았겠지.


옆구리를 베려고 하던 운도 알아차리고는 소리쳤다.



“설마?!”


그 설마다.


리아는 각자 10개씩의 검을 날려 보냈다.



“미친!”


욕지거리를 내뱉은 운은 동작을 멈추고 바로 거리를 벌렸다. 케트로 또한 4개의 검을 빠르게 자신에게 되돌려 다가오는 10개의 검―― 쇠몽둥이를 맞상대하였다.


기본적인 검술은 그리모르와 디카이로트의 것을 따와서 혼합했다. 힘과 스피드도 적당히 조절했으니 상대할 만은 할 거다.


다만, 절대로 본심은 다하지 않는다. 그건 대성당에 도착하고 나서이니. 그럴 가치도 없고.


목적을 상기한 리아는 선언한 대로 저지가 느슨해져 속도를 높였다. 10분 이내에 당도해야 하니 상당히 빨랐다.


그 모습을 본 케트로는 억지로 몽둥이를 떨쳐내고는 따라왔다.


아니, 따라오려고 했다.


하지만 운 쪽에 있던 3개의 몽둥이를 빼서 그에게 붙이니 곧바로 저지되어 쳐내기 급급해졌다.


운이 대신 여유로워져 따라올 수도 있었으나······ 그러진 못했다. 왜냐하면 운은 케트로보다 애초에 실력이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지금이 딱 좋은 밸런스이지 않을까.


10개의 몽둥이를 모두 상대할 때 운은 심심치 않게 두들겨 맞고 있었다. 3개가 빠지고 나서야 겨우겨우 어떻게든 막아내고 있는 실정이다. 저런 상태로는 결코 따라올 수 없을 거다.



“큭!”


무시하고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니 케트로가 오른쪽 옆구리에 일격을 허용하면서까지 마법을 사용했다.



“호―― 이건 제법이네요.”


발밑부터 생겨나는 얼음을 보며 감탄사를 흘린 리아는 조용히 손을 내밀어 에르를 말렸다. 이윽고 몸의 위로 타고 올라오던 얼음은 완전히 리아를 뒤덮었다.


손을 뻗고 있는 여자아이의 얼음 동상을 본 운은 환성을 내질렀다.



“해냈어, 선배! 이 괴물을 이겼어!”

“······.”

“근데 왜 이 몽둥이들은 아직도 움직이는 거야?! 힘들어 죽겠는데! 알아서 대응하도록 만들기라도······ 엥? 진짜 한순간에 그런 고차원적인 마법을 부여할 수 있다고?”

“······.”

“어이, 선배! 뭐라고 말 좀 해봐!”


하지만 운의 외침에도 케트로는 아무런 대꾸 없이 바삐 움직이며 몽둥이를 떨쳐내기만 하였다.


‘아직도 모르는 건가.’


꽤 얼빠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운도 마냥 바보는 아니었는지 이내 눈을 부릅뜨고는 이쪽을 쳐다봤다.


‘저리 기대 가득한 시선을 받는다면 응해주는 게 도리겠지.’


얼기 전 고개를 돌려놨기에 모든 상황을 볼 수 있었던 리아는 속으로 피식 웃고는 살짝 몸을 틀었다.


쩍―― 쩍――


그 작은 움직임만으로 비명을 내지르던 얼음 동상은 크게 균열이 생겼다.


눈알이 빠질 듯 더욱 눈을 크게 떴던 운. 하지만 곧 상황을 이해했는지 표정을 굳혔다.


그때를 맞춰 리아가 몸을 완전히 돌리자 얼음 동상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콰득······!


목덜미에 들어온 얼음덩어리를 꺼내 씹은 리아는 동요한 채로 몽둥이를 상대하고 있는 둘을 쳐다봤다.



“아니, 쩝쩝. 겨우 이런 거에 이겼다고 착각하다니 꿈이 참 과하시네요. 쩝.”

“무, 무적······이라도 되는 거냐.”

“그런 사기적인 게 있을 리가 없잖아요. 진짜 꿈도 좋으시네. 뭐······ 그래도 타격이 아예 없으니 비슷하긴 하겠네요.”


평탄하게 대꾸한 리아는 시선을 돌렸다. 자신을 얼리고선 묵묵히 몽둥이와 대치하고 있는 케트로에게.



“세르칸체 씨? 왜 얼리기만 한 건가요? 여유가 없다지만 다시 몽둥이에 맞으면서 후속타를 가할 수도 있었을 텐데요.”


케트로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하나 짐작이 갔던 리아는 혹시나 하고 물었다.



“설마 싶은데요. 성질 변화도 못 하는 건가요?”

“······.”


이번에도 케트로는 대답하지 않았다만······ 반응은 있었다. 흠칫 동요하는 반응이.



“이거, 이거. 기초부터 다시 배워야겠네요. 연계는커녕 발동된 마법을 수정조차 못 할 줄이야. 이런 수준일 거라고는 진짜 상상도 못 했는데 말이에요. 하아······ 어쩔 수 없죠. 시범을 보여줄 테니 보고 자알~ 익혀두라고요. 알겠죠? 분위기만 잡는 허접한 심판관, 케트로 세르칸체 씨.”


재차 크게 한숨을 쉰 리아는 도리도리 고개를 흔들고는 마법을 썼다.



“윽!”


케트로의 왼팔은 바로 얼었다. 회피는 고사하고 낌새조차 알아차리지도 못했다.


물론 창피한 일은 아니다. 여태 자신이 마법을 쓰는 걸 읽은 존재는 세스와 델리안만이 전부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심판관이라는 거창한 이름표를 내걸었으면 그에 합당하는 뭔가를 보여줘야 하는 게 아닌가. 근데 기껏 하는 거라고는 마법이 없는 지구에서도 그저 신기할 정도인 검 날리기와 얼음 조각 만들기라니······


오히려 이쪽의 얼굴이 화끈해질 만큼 뻔뻔하다.


‘난 게헤르라 불리기도 창피한데 이 사람들은 용케도 심판관이라며 잘도 으스대네. 어찌 보면 대단할지도······’


양팔을 잡아 솟아오른 닭살을 슥슥 문지른 리아는 바로 시범을 보여줬다. 성질 변화라는 것을.


슬쩍 마법을 조작했다. 그리고 얼음은 깨졌다.


――케트로의 왼팔과 함께.



“크윽······”

“선배!”


과연. 완전히 허영심만 가득 들어차진 않았나 보다. 팔꿈치 밑으로 왼팔을 잃었음에도 케트로는 부여잡는 등의 허점은 보이지 않고 차분히 몽둥이들을 상대해냈다.



“아~ 그게 아니구나. 생각해보니 얼어서 큰 고통은 없었겠네.”

“너, 이 자식――!”


몽둥이에게 검을 빠르게 휘두르며 소리치는 운을 무시하고, 리아는 케트로에게 말을 걸었다.



“어때요? 세스타스 때에도 봤겠지만, 직접 체험해보니 조금은 감이 오시는지요? 도움이 좀 됐으면 합니다만.”

“······.”

“개 같은 꼬맹아! 성질 변화의 고위 기술을 어떻게 그딴 식으로 배울 수 있겠냐?! 생각이라는 걸 해라!”

“하하하핫!”

“뭐가 웃기냐!”

“푸풉······ 이게 안 웃기겠어요? 카를로 운 씨.”

“이 썅―― 컥!”

“아아. 집중하셔야죠. 하찮은 실력이신데. 잘도 딴청 피울 겨를이 있네요.”


야구 배트처럼 휘둘러진 쇠몽둥이가 복부에 박힌 운은 반사적으로 굴러 충격을 줄였다. 그렇지만 미세하게 빠각 소리가 들린 걸로 봐서는 어딘가 부러지지 않았을까 싶다.


실제로도 제법 타격이 되었는지 운의 움직임은 둔해졌다. 하지만 곧바로 치유마법을 사용하여 회복했다.


‘과연, 과연. 역시나 전투에서 치유마법은 상당히 사기적이네. 지구였으면 저런 상처는 치명적이었을 텐데.’


다만······ 동시에 두 가지 일을 한다는 건 다른 쪽엔 소홀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치유마법을 사용한 그때 운에게 조금의 틈이 생겼다.


근데 저 몽둥이를 들고 있는 건 그리모르와 디카이로트다. 만나본 사람 중 탁월한 실력을 지녔던 그 둘이 저런 틈을 놓칠 리가 없다.


곧바로 매섭게 몰아치는 그리모르의 연타와 디카이로트의 날카로운 베기에 운은 7방을 얻어맞게 되었다.



“크으윽······”


신음을 흘리는 운.


뼈는 부러지지 않았지만, 데미지로 비교하면 치유를 하나 마나 한 꼴이지 않을까 싶다. 그나마 날이 선 검이 아니라는 게 다행이랄까.


이번 건 치유하는 걸 포기했는지 운은 회피에 사력을 다해 이리저리 몸을 움직였다.


뒹굴기도 하는 그 모습을 잠시 보다가 리아는 관심을 끄고 케트로에게 고개를 돌렸다.



“다시 묻습니다만, 어떤가요? 세스타스와 이스피리아의 싸움도 구경했잖아요. 그때도 성질 변화는 제법 했었는데······ 두 번 보니 이젠 뭔가 알겠나요?”

“······.”

“과묵하시네. 흠. 그러면 이렇게 물어볼게요. 왜 제가 당신보고 허접하다고 했는지 아시겠나요?”


아닌 척하지만, 주의를 기울이는 케트로를 보며 리아는 업신여기는 기척을 풍겼다.



“성질 변화요. 베르다드의 학생들도 몇 시간 만에 익힌 엄~청 쉬운 거거든요. 학생조차도 손쉽게 할 수 있는 걸 당신은 이미 몇 번이나 보고, 며칠이나 지났는데도 전혀―― 조금도 할 줄 모르네요. 기초라고요. 그것도 못 하는데 허접한 게 아니면 뭐겠어요. 푸풉. 정말 웃겨요. 그러면서 심판관이라 잘난 척하는 꼬락서니라니······ 킥.”

“······.”

“아아. 거짓말은 아니에요. 못 믿겠다면 제 존재를 걸고 맹세하죠. 제가 한 말은 진짜예요. 학생이 몇 시간 만에 익혔다는 건 조금의 거짓도 없는 사실이죠.”


제법 충격적이었는지 케트로의 주위를 선회하고 있던 4개의 검이 둔해졌다. 그로 인해 몽둥이들은 쉽게 돌파해내어 그의 등에 묵직한 일격을 선사해주었다.



“어이쿠! 아프겠다. 죄송하게 됐네요. 괜히 신경 쓰게 만들어서. 너무 웃기다 보니 저도 모르게 그만 오지랖을 부렸네요.”


과한 제스처로 사과한 리아는 몸을 돌렸다. 이제 슬슬 출발해야 할 시점이었다.


그런데 그때, 외침이 들려왔다.



“우리는! 우리는······ 인간을 위해 행동한 거다. ――어리석은 인간을 위해.”


피를 토하듯 성토한 케트로다. 그리고 안에 담긴 감정은 분명 진심이었으며······ 인정하긴 싫지만 흔들림조차 없는 굳건한 믿음이 존재했다.


약간이지만 마음에 걸린 리아는 달려 나가려던 것을 멈추고 똑바로 케트로를 응시했다. 그에게 향했던 몽둥이도 잠시 정지시켰다.



“당신도 그 어리석다는 인간이라는 건 알죠?”

“안다. 알고 있기에 그분을 따르는 거다. 인간을 이롭게 한다는 그 숭고한 뜻에. 그것을 이루기 위해 나의 모든 걸 바쳤다.”

“그런 분이 저와 대치했을 땐 전혀 목숨을 걸지 않으셨습니다만.”

“죽음은 각오했다. 어째서인지는 나도 모르겠지만, 그대에게라면 이 또한 운명이라며 받아들였다.”


강한 의지를 품고 있는 눈. 그것을 조용히 보던 리아는 고개를 살짝 숙였다.



“제가······ 좀 착각하고 있었네요. 결사의 각오를 하지 않은 게 아니라, 이미 했기에 새로이 각오를 다질 필요가 없었던 거군요. 단순 미치광이들이라 여겼던 걸 사과드리죠. 정말 조금이지만 다시 봤습니다.”


힐끔 운을 쳐다보니 그도 마찬가지였나 보다. 여기저기 행해지는 몽둥이찜질이 버거워 보였지만, 눈엔 꽤 당찬 기개가 들어차 있었다.


‘이거라면······ 조금은 예를 취해도 되겠지.’


리아는 운 쪽의 몽둥이도 잠시 멈춰 세웠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놀라던 운은 흐른 피를 대충 닦고는 서둘러 몸을 치유하여 케트로의 옆으로 왔다.


그런 둘을 앞에 두고 리아는 입을 열었다.



“그분이라는 건 교황 씨겠죠. 하지만 홍익인간의 이념이라······ 그런 진보된 사상을 품고 있었을 줄은 몰랐네요.”

“그래! 우릴 살인광들로 보면 곤란하지. 다 뜻이 있는 거라고.”

“뭘 자랑스러워하는 건가요, 운 씨. 그렇다 하더라도 그게 인간을 억압할 명분은 되지도 않는데. 더불어 당신들이 심판관이라며 나댈 권리가 생기는 것도 아니고요.”

“큭! 우린――”

“――그만, 카를로 운.”

“선배.”


운을 말린 케트로는 강한 시선을 보냈다.



“인마전쟁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이 있나?”

“800년 전의 그 대전쟁이요?”

“그렇다.”

“선배! 지금 뭘 말하는 거야?!”

“걱정하지 마라.”


상당히 중요한 내용인지 운의 반응이 호들갑스럽다.



“자세한 건 이야기할 권한이 없다. 그렇지만 인간의 쇠퇴를 이끈 그 전쟁을 잘 생각해보았으면 한다.”

“어떤 걸 말하는 거죠?”

“인간의 본성에 대한 거다. 수십 년간 이어진 전쟁이다. ――그 피해자가 얼마나 많았겠는가.”

“과연······ 그런 거군요.”


케트로는 그 이상 말하진 않았지만, 이야기의 핵심은 모두 알아차렸다. 실은 계속 의구심을 품고 있던 것이기도 했으니.


하지만 그뿐이다.


심드렁하니 리아는 반문했다.



“그래서요?”

“······뭐?”


대답이 없는 케트로 대신 놀라는 운을 쳐다봤다.



“그래서―― 라고 했어요.”

“네, 네가 잘 이해하지 못했나 본데――”

“――아뇨. 제대로 이해했어요. 인간은 그저 피해자였던 것만은 아니었다고.”

“맞아! 그렇기에 우리는 뒤에서 힘을 쓰는 거야.”


리아는 고개를 꼬았다.



“근데 그게 이스피리아와 무고한 사람들을 습격한 거랑 무슨 상관인 거죠?”

“조율을 위해서야.”

“뭐, 그건 그렇다고 치죠. 궁금하긴 하지만 어차피 자세히는 말해주진 않을 거잖아요? 근데 수인들은요?”

“수인들?”

“네. 왜 말하는 거와 달리 여전히 반성 없이 수인을 이용하는 등의 행위를 지속하는 건가요?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럴 이유는 없어 보이는데 말이죠.”

“경각심······을 심어주려는 거야.”

“누구에게요?”


그 이상은 말할 수 없다는 듯 운은 입을 다물었다. 케트로라면 대답을 들을 수 있을까 싶었지만, 그도 마찬가지로 묵묵부답이다.


어깨를 으쓱한 리아는 다시 몸을 돌렸다.



“이, 이봐, 이스피리아! 아니, 자인 디바오러! 어려 보이는 것과 달리 넌 꽤 똑똑하고 영리해. 그럼 얼추 우리가 왜 그런지는 알았을 거 아냐?!”

“저보고 여기까지 하고 그만 물러나라는 건가요?”

“······어.”

“하하······핫. 아하하하!”


뒤도 보지 않고 리아는 웃었다. 허리도 꺾으며 크게 웃었다.



“왜, 왜 웃는 건데?”

“아하······하······ 크큭. 아, 미안해요. 제법 재밌는 소릴 들어서. 음음. 일단 똑똑하다는 건 감사를 드리도록 하죠.”


거기까지 말한 리아는 새어 나오는 웃음을 마저 털어냈다.



“하지만 당신은 그리 똑똑하지 않은 듯하네요.”

“무, 뭐?”

“그렇잖아요. 전 정보를 얻으려고 온 게 아니라고 분명히 말했었어요. 머리가 나쁜 당신에게 선심 써서 풀어 설명해드리자면―― 당신이 뭔데 나한테 물러나라, 마라를 지껄이는 거야? 오만한 것도 정도껏 해야지.”


싸늘하게 표정을 굳힌 리아에게서 스멀스멀 극한까지 압축된 마력―― 은빛의 안개가 퍼져 나왔다.



“하, 참나. 어이가 없어서리. 이봐······ 운. 네가 뭔데 가만히 있던 사람에게 시비를 쳐 걸어놓고는 그만하라는 거야? 그걸 정하는 건 피해를 본 나지, 왜 네가 정하냐? 도대체 사람을 얼마나 낮춰봤으면 그딴 개소리를 시원스레 할 수 있는 거냐고.”

“······.”

“미친 듯이 사과하진 못할망정 진짜 정신머리가 궁금하네. 야, 운. 그래도 네 덕분에 마음이 섰다. 마지막까지 고민했는데 말이야.”


그리 말한 리아는 정면에 있는 대성당을 가리켰다.



“니들 세스타스의 마지막 일격 봤지? 붉은 마력을 휘감고 내지른 주먹 지르기 말이야. 그걸 저기에―― 대성당에 꽂을 거야. 그리고 똑같이 물을게. 아니, 명령할게. ――여기까지 하라고. 어때? 지금의 소란은 이자로 치면 딱 맞잖아?”

“성국이 얼마큼 깔 보였는데 그걸 지금 말이라고――”

“――넌 말이 돼서 그딴 소릴 했냐?”

“······.”

“하~ 진짜로 정신을 못 차리는구나. 아아, 됐다 됐어. 가해자인 주제에 이리 대가리가 높아서야 내 입만 아프지. 대신 좋은 게 있는데······ 응. 역시 나야. 이럴 줄 알고 미리 몽둥이를 준비해놨네.”


스윽――


리아는 고개만을 뒤로 돌렸다.



“내가 아는 속담 중엔 이런 게 있지. ――버릇없는 놈에겐 매가 약이라고.”


그 말과 동시에 멈춰있던 20개의 몽둥이를 다시 움직였다. 매타작을 하기 위해.


운과 케트로는 서로의 등을 맞대고는 즉시 대응했다.


과연 전투를 많이 한 이들답게 좋은 판단이다. 아까처럼 따로 떨어졌다간 몽둥이에 둘러싸여 신나게 두들겨 맞을 테니 말이다.


‘큰 효과는 없겠지만.’


실제 사람이 들었다면 자리가 나지 않아 동시에 공격할 수 있는 건 대략 3명, 많으면 4명에 불과할 거다.


하지만 저 몽둥이는 저 혼자 둥둥 떠다니는 것이다. 공간의 제약 따윈 무의미하고, 사람으로서는 행하기 어려운 각도에서의 공격까지도 가능하다.


물론 등 뒤를 경계하지 않아도 되는 만큼 편해지는 것은 맞다.


그렇지만 몽둥이들은 전부 자신이 조종하고 있기에 사람의 협공과 달리 완벽한 합을 이룬 공격을 가할 수 있었다. 게다가 난이도도 제법 상향 조정해놨기에 아까보다도 상대하기 힘들면 힘들지 절대 쉽진 않을 거다.


――13개의 몽둥이가 간 카를로 운은.


리아는 바빠서 듣지 못할 운 대신 케트로에게 말을 걸었다.



“당신은 그나마 양심이 있는 듯하니 7개랑 놀아요. 그렇지만 재미는 그다지 떨어지지 않았을 테니 꽤 만족스러울 거예요.”

“빌어먹을!!”

“음. 시끄럽네요.”


퍽.


리아는 바람의 망치로 운의 복부를 가격했다.



“커헉!”

“아차, 실수했네요. 생각보다 너무 세게 때렸어요.”


허리를 푹 굽히는 운을 보며 리아는 쿡쿡 웃었다.



“그렇게 있으면 맞는다고요~”


경고함과 동시에 무방비한 운의 등으로 몽둥이들이 내려쳐졌다.


그리고――


카앙!!


운에게 향한 몽둥이를 4개의 검을 원래의 정십자 형태로 되돌린 케트로가 막아냈다. 본인이 맞는 것도 개의치 않고.



“의외로 전우애가 있나 보네요.”


원체 말이 적긴 했지만, 애당초 운을 감싼 케트로에게는 대답할 여유가 없다. 상당히 다급했던지 후드도 벗겨져 맨 얼굴이 보인다.


어두운 녹빛의 곱슬머리와 수염, 쭉 찢어진 날카로운 눈.


분명 무서운 인상이다.


그런데 방금 막 치유한 왼팔을 비롯하여, 몸 여기저기를 두들겨 맞음에도 그는 운에게 어서 일어나라며 침착하게 다독인다.


――솔직히 김이 빠진다.


마치 자신이 악당이라도 된 듯한 기분이다.


잠자코 보던 리아는 한숨을 내쉬었다.



“다른 사람에게도 그것처럼 대해주면 어디 덧나나요.”


푸념을 놓은 리아는 정면을 보고 발걸음을 뗐다.



“하아······ 그 몽둥이 10분 지나면 멈출 거예요. 그때까지 잘 버티세요. 이후 절 막으러 올 거면 제대로 마음 단단히 먹고 오세요. 물론 각오했다는 건 알고 있어요. 하지만 어떤 사람에게도 말했던 건데, 각오만으로는 부족한 것도 있어요. 봐주는 건 한 번뿐이에요. 다시 막아선다면 용서 없어요.”

“······충고 고맙다. 잠시 뒤에 다시 보도록 하지.”

“그런가요······”


확고한 답변을 들은 리아는 흘러나온 마력을 회수하고 미련 없이 뛰어나갔다. 무척이나 화가 난 채로.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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