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렙 히로인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Lastia
작품등록일 :
2022.05.11 12:54
최근연재일 :
2024.09.16 14:10
연재수 :
274 회
조회수 :
33,920
추천수 :
315
글자수 :
3,873,671

작성
22.07.08 12:12
조회
77
추천
0
글자
38쪽

129

DUMMY

리블리지. 이제 막 서른이 된 그녀는 평범했다.


어린 시절 부모가 버리고 떠난 가슴 아픈 성장 과정이 있기는 했다만, 그런 사람들은 세상에 많다. 특별하다며 내세울 건 전혀 아니었다.


오히려 리블리지는 그런 사람들보다는 좀 더 안락하고 쾌적한 삶을 보냈다고도 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그녀가 태어난 곳은 바로 세인트리안이기 때문이다.


세인트리안은 생명의 신을 섬기기 위해 지어진 도시이자 나라이다. 당연히 생명을 중시하고 귀중히 여긴다. 그렇기에 지어진 고아원 또한 타국보다 압도적이라고 할 정도로 많았고, 연계된 시설 및 교육의 질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났다.


물론 루시아스를 섬기는 신도기에, 생명을 중히 여겨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성국이 큰 비용을 지출하면서까지 고아들에게 교육과 검사를 베푸는 건 이후 어른으로 성장한 이들이 홀로 살아갈 수 있도록, 혹은 성국의 주춧돌이 되었으면 하는 현실적인 이유 또한 있었다.


당장에 성과는 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식견을 넓혀 10년, 20년 후를 생각해보면 이 투자는 아주 싸게 먹힌다.


만약 아무런 교육도 배우지 못한 고아들이 성인이 된 이후 고아원을 나온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보통 열에 여섯은 막노동 같은, 육체적 힘만을 필요로 하는 곳에서 하루 한 끼 먹을 돈이나 벌어 먹고살 것이다.


그럼 나머지 네 명은?


육체노동조차 못할 정도로 힘이 없는 사람들은 무얼 하겠는가. 간혹 개인적으로 야심이 있는 고아는 스스로 공부하여 성공할 수도 있겠지만, 그건 극히 일부일 거다.


이것이 문제이다.


하루 한 끼를 벌어 먹고살기 힘든 고아들은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불법적인 일에 손을 댈 것이다.


먹고살기 위한 거다. 불법이고 뭐고, 그건 여유가 있는 자들이나 법을 지킬 수 있는 것이다. 지금 당장 죽을 것 같은 이들에게는 소용이 없다. 그렇기에 비난도 할 수 없다. 루시아스께서 직접 보시는 이 성도에서 그런 일을 할 정도로 몰렸다는 것일 테니.


그렇게 매년 우후죽순으로 그러한 고아들이 나타나면 이 성스러운 땅에 ‘슬럼가’라는 암적인 장소가 생겨날 터이고, 그곳으로부터 많은 문제가 발생하여 성국 전체에 영향을 끼칠 것이다.


성기사단을 보내 박멸하는 방법이 있긴 했으나······ 그건 생명의 신을 섬기는 이들이 생명을 탄압한다는 모습으로 보여 민심을 어지럽히게 만든다.


마음속으로는 다들 그게 옳은 일이라고 생각하더라도 말이다.


그래서 성국은 수수방관하지 않고 최대한 그런 탈락자들을 줄이려고 많은 돈을 들이부었다. 물론 그 액수가 상당했으나 돈은 어차피 제국이나 공국에서 잔뜩 들어오기도 하는 데다가, 개인 기부로 성금도 제법 되기에 재정이 궁핍해지는 일은 없다.


성과도 제대로 나와 성국에는 슬럼가라고 부를만한 곳은 단 한 곳도 없었으며, 살인 사건조차도 10년에 한 번 벌어질까 말까 할 정도로 안전한 나라가 되었다.


그런 세인트리안의 고아원 중 리블리지가 있던 곳은 유독 시설이 좋다거나 한 건 아니었으나, 그래도 분명 다른 나라보다는 편히 지낼 여건은 됐다. 아침엔 미사를 드리고 점심엔 교육, 저녁엔 청소 및 취침 등의 정해진 일과가 존재했지만, 불만은커녕 너무나 만족스러워하며 하루하루를 보냈었다.


그러한 나날들이 이어지던 때에, 여태 아무런 관심도 없는 고아들 중 한 명이었던 리블리지는 달라졌다.


――그녀는 특별하게 된 것이다.


그날은 바로 리블리지가 7살이 되던 해로, 성국 전역에 있는 모든 고아원은 매년 정기적으로 시행하는 적성 검사가 있는 날이었다. 나이가 된 리블리지 또한 적성 검사를 받게 됐다.


검사 과정은 어떠한 검사가 다 그렇듯 정해진 형식이 있으므로 상당히 고리타분하고 지겹다.


하지만 매일 규칙적인 일과만을 보내는 것에 질려있었던 리블리지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신선하고 재밌기만 한 놀이였을 뿐이었다. 그래서 다음은 뭘 물어볼까, 다음에는 어떤 걸 시키려나 등을 생각하며 두근거리는 심정과 호기심 어린 눈으로 모든 과정에 최선을 다했다.


검사가 끝나고 나선 다른 건 더 없냐며 아쉬웠을 정도였다. 결과 같은 건 안중에도 없었다.


――무슨 검사인지는 나중에 알았지만.


그렇게 검사가 끝나고 고아원은 한동안 흥분의 도가니가 되어 서로 어땠냐며 떠들어 댔다. 리블리지도 고아원의 친구들과 왁자지껄 떠들면서 검사원이 어땠냐는 둥 즐겁게 대화를 나누었었다.


그리고 며칠이고 이어가던 이 날의 일은······ 단숨에 가라앉았다.


딱히 뭔가가 있던 건 아니었다. 으레 그렇듯 아이들은 곧이어 다른 관심사를 찾아 그곳에 집중했다가, 또 다른 관심사를 찾아갔기에 기억 속에서 잊혀 언급되지 않았을 뿐이었다.


가끔 나오더라도 그랬었지, 라는 김빠진 대화가 전부였다.


그것이 좀 서운하긴 했지만, 저 혼자 떠들어봐야 아무도 좋아하지 않을 걸 알기에 리블리지는 눈치를 봐 애써 잊었다.


하지만······


모처럼 즐거웠던 그때의 기억은 그녀에게서 쉽사리 사라지지 않았다.


어느 순간 정신을 차리고 보니 틈틈이 혼자 있을 때면 구석에 들어가 적성 검사에서 했던 것들을 하고 있었다. 하루고 이틀이고, 언제까지고 시간이 날 때면 어김없이 혼자가 되어 반복하는 나날이 이어졌다.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도 알게 모르게 귀찮아 피하는 기색들이 드러나더니 어느덧 주변에서 말을 거는 사람조차도 거의 없게 되었다.


그러다가 뒤에서 쑥덕거리는 친구들의 말을 듣게 되었는데, 그들은 하나 같이 입을 모아 제 혼자 잘난 체를 한다고 하는 것이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을 지칭하며.


왜 그런 말을 들어야 하는지 리블리지는 이해하지 못했다. 남에게 피해도 안 주고 그저 혼자서 재밌었던 그때의 일을 했을 뿐인데 말이다.


친했던 모두가 멀어지는 생소한 상황. 거기다 여태 사이좋게 지냈던 사이가 맞는지 의심될 정도로 적의가 가득한 친구들.


꽤 충격을 받을 일이다. 다른 평범한 아이였다면 주변의 달라진 분위기만으로 잔뜩 위축됐을 것이다.


하지만 원체 활달했던 리블리지는 크게 개의치 않았다. 되려 아무도 자신을 방해하지 않는 그 상황을 좋아했다. 지금 사이가 틀어진 것도 나중에 반드시 메꿀 수 있으리라 생각하였다.


그리고······ 그때가 찾아왔다. 교황청에서 조사원이 온 것이었다.


조사원이라지만 교황청에 소속된 자다. 그런 엘리트가 평범하기 그지없는 고아원으로 올 이유 따위는 단 하나, 사실확인을 위해서였다. 이전에 이루어졌던 적성 검사의 결과가 제대로 되었는지 말이다.


그리고 그 확인하려는 대상은 바로 리블리지였다.


호출로 얼떨떨한 기분으로 원장실로 간 그녀에게 조사원인 남성이 말하였다.


――마법을 써보라고.


왜 그런 걸까 궁금하기는 하지만 어른에게 따지고 들 만큼 리블리지는 강단이 좋지 않았다. 게다가 은근히 남에게 한 번쯤은 보이고 싶었던 터라 그녀 자신도 제법 의욕이 있었다.


그렇게 여태 열심히―― 적성 검사 이후 쭉 해오던 마법을 썼다.


아니, 실은 리블리지가 한 건 마법이라고 하기도 민망하다. 그녀가 한 것은 오로지 마력을 한 점에 모으는―― 기초 중의 기초였으니.


하지만 아무리 기초라 하더라도 마법은 마법. 단순히 마력을 모으는 것과는 차이가 있었고, 명칭 또한 [마력탄]이라고 제대로 존재하는 엄연한 마법이다.


조사원이 확인하려던 것은 바로 그것이었다.


――정말로 ‘원초마법’을 쓸 수 있는가.


확인은 끝났다. 리블리지는 극히 드문 원초마법의 사용자였다.


당초 적성 검사의 목적이기도 하였으니, 그 길로 조사원은 곧장 리블리지를 데려갔다.


갑작스럽게 별로 없는 짐을 싸게 된 리블리지는 당황했다. 기억이 있던 때부터 줄곧 있던 고아원을 떠나게 된 것이니 당연하다.


싫다고도 하려 했지만······ 원장은 좋게 타이르기만 하였다.


그리고 또래보다도 눈치가 빨랐던 리블리지는 이상하리만치 원장이 조심스러워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아무리 교황청에서 온 사람이라지만 저렇게까지 할까?


의문이 피어올랐다. 그와 동시에······ 선택지 따윈 없다는 것도 알게 됐다.


애써 아쉬운 척, 본심은 어찌 되든 상관없다는 이전 친구들의 배웅을 뒤로한 채 리블리지는 마차를 타고 조사원을 따라갔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교황청이 있는 대성당 내부에 있는 어느 한 건물.


리블리지는 잔뜩 굳어 조사원과 함께 하얗고 깨끗한 건물로 들어섰다. 그리고 어른이지만 남들보단 꽤 작고, 말투도 가벼운 이 남자는 단순한 조사원이 아님을 알게 됐다.


평범한 조사원이었다면 지나치는 모두가 정중한 인사와 함께 길을 비켜서진 않았을 테니······


이후 안내된 고풍스러운 방에서 교황청에서 직접 관리하는 교육시설이라는 걸 듣게 된 리블리지는 선택권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물었다.



“어른이 되면 나가서 살아도 됩니까?”


너무나 당돌한 물음에 이 시설의 장인 듯한 남자는 당황했다. 하지만 그런 그와는 대조적으로 조사원은 평탄하게 입을 열어 대꾸하였다.



“왜? 뭐, 하고 싶은 거라도 있어?”


아니다. 리블리지에겐 그다지 하고 싶은 건 없었다. 그저 다시 고아원에서―― 집에서 살고 싶을 뿐이었다. 성인이면 직원이어야겠지만, 리블리지는 그걸로도 괜찮다고 생각하였다.


이야기를 들은 조사원은 고민이 많아 보였지만, 이윽고 고개를 끄덕여줬다.


설마 허락해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던 리블리지는 놀랐다. 그렇지만 기쁨도 잠시, 조사원은 손가락 하나를 곧추세웠다.



“단, 한 가지 조건이 있어.”


집에 돌아갈 수 있는 것이다. 리블리지는 감정을 억누르며 조사관의 말에 귀 기울였다.


그리고 조사관에게서 나온 말이란――



“부업이 되겠는데 괜찮겠어?”

“······네?”


멍한 리블리지에게 조사관이 설명해주기로는 적성 검사에 통과한 인원은 본인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무조건 교황청에 소속되며, 그 관리 또한 교황청에서 맡는다고 한다.


본인의 의사와는 무시한다니. 어린 리블리지에게도 불합리하게만 보이는 횡포였다.


다만 메리트 또한 존재했다.


우선 교황청 소속이니 최소 3급 신관급의 직책을 주며, 시설에서의 성과에 따라 그 이상의 직책도 부여받을 기회가 있었다. 게다가 시설에서 지내는 동안 불편함이 없는 최고의 대우를 보장하며, 어지간히도 무리한 부탁만 아니라면 되도록 들어준다.


리블리지의 부탁도 그 연장선상으로, 성국 안에 있는 고아원에서 지내는 것 정도는 쉽게 허락해줄 수 있으며, 원한다면 당장이라도 그곳에서 지낼 수 있게끔 할 수도 있었다.


단, 말했듯 교황청 소속이니 시설에서 교육을 제대로 받아야 하며, 이후 성인이 되고 나서도 교황청의 뜻에 따라 일해야만 했다.


리블리지는 고민에 빠져들었다. 그렇지만 이내 결론은 나왔다.


지금 막 왔는데 바로 돌아가긴 뭔가 쑥스럽다. 거기다 고아원에서 현재 자신은 조금 붕 떠있는 느낌이다.


그리고 나쁘게 말하면 강제지만, 좋게 말하면 취직처가 정해진 것이다. 교황청이라는―― 들어가고 싶어도 들어가기 힘든 곳에.


리블리지는 생각했다.


지금은 서로 어색하다. 그러니 이곳에서 배워나가다가 당당할 수 있게 됐을 때쯤 돌아가도록 하자.


그날이 언제일지는 모른다. 하지만 성인이 되기까지 9년이나 남았으니 충분히 가능하리라.



“잘 부탁드립니다.”


마음을 정한 리블리지는 존재 자체가 극비라는 특별 교육시설에서 지내기로 했다. 그리고 조사원인 남자는 무척이나 즐거워하며 인사를 하였다.



“활발하니 역시나 좋게 좋게 생각하는구나! 그럼, 앞으로 오랫동안 볼 인연이니 잘 부탁해. 난 이곳 시설의 관리자, 인디아 빌 쿠리스리움―― 인도의 주교야.”


4명만 있다는 주교 중의 한 사람이라니······ 평범하지 않을 거라 예상하긴 했지만, 이를 한참 뛰어넘는 직책이다.


그렇게 놀람에 소리친 리블리지는 인도의 주교, 인디아의 환한 미소와 함께 새로운 생활이 시작되었다.


그 대망의 첫 스타트는 나쁘지 않았다.


세인트리안 전역에서 자신처럼 모인 20명의 아이 가운데 리블리지는 언제나 선두였다.


압도적인 차이로. 동기 중 근처에 나란히 설 수 있는 자는 있지도 않았다.


물론 리블리지에게 그런 건 안중에도 없었다. 그녀는 단지 적성 검사 때처럼 재밌기에, 즐거웠기에 열심히 연습할 뿐이었다. 성과는 그저 딸려 오는 부산물 같은 것이었다.


게다가 가르치는 선생을 비롯하여 자주 오는 인디아 주교도 칭찬 일색일뿐더러, 이곳은 동기들도 전혀 거북하게 대하질 않으니 너무나 좋았다.


그런 식으로 빠르게 적응한 리블리지는 동기들에게 조언도 해주는 등 즐거운 한때를 보냈다.


그리고――


그 즐거운 시간은 2년을 지나는 시점을 기점으로 내리막을 타기 시작하였다.


잘났기에 동기들의 시기를 산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동기들은 그녀에게 잊어버린 식사도 챙겨주는 등 정말로 친절하였다.


그렇다. 외부적인 요인 따윈 없는 것이다.


그저 내부적인 요인―― 리블리지가 홀로 뒤처져 갔을 뿐이었다.


그래도 리블리지는 열심히 하였다. 순위 따윈 여전히 신경을 쓰지 않는 털털한 그녀이니 본인에게 주어진 과제에만 집중하였다. 동기들도 그런 그녀를 자기 일처럼 도와주었다.


축복된 환경. 자신에게 또 이런 일이 있을까. 리블리지는 더욱 의욕을 불태웠다.


하지만 묵묵히 한다고 성과가 나는 건 또 아니다. 세상일은 그리 만만치 않다.


그렇게 또 2년.


총 4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리블리지가 할 수 있는 건 고작 술식마법사도 손쉽게 해낼 간단한 마법뿐. 더는 동기들을 따라잡을 수 없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그녀의 노력이 무색하게 리블리지는 완벽하게 정체된 것이다.


언제나 1등만을 하던 그녀의 끝없는 추락. 주변의 시선은 여전히 따스했지만, 그 분위기는 명백히 조심스럽게 바뀌었다. 이전의 밝기만 한 것과는 완전 다르다. 동기들끼리 사이좋게 떠들다가도 그녀가 다가가면 서로 어색하게 눈치를 보기 바빴다.


그 모든 게 자신 때문이라 생각하니 리블리지는 참을 수 없었다.


······하지만 좀 더 노력하면 될 거란 말도 이젠 지쳤다.


이미 할 만큼 최선을 다한 것이다. 마력고갈로 쓰러지는 건 다반사고, 수면 시간도 줄여 하루에 3시간만을 자는 실정이다. 그런데 이 이상 뭘 더 어떻게 노력하라는 건가.


그렇게 자신감은 사라지고, 밝고 활발했던 성격의 그녀는 점점 어두워져 갔다.


말수조차도 줄어든 리블리지는 되도록 혼자 있으려고만 하였고, 동기들은 걱정은 하면서도 그 심정을 짐작하기에 함부로 말을 걸지 못하였다.


다시 한번 혼자 붕 뜬 듯한 기분을 느끼며 리블리지는 목적도 없이, 왜 하는지 의미도 찾지 못한 채 교육시설 생활을 이어갔다.


그러다 깨닫게 되었다.


――자신은 재능이 있는 게 아니었다고. 그저 남들보다 배우는 게 조금 빨랐을 뿐이라고.


그 사실을 알게 된 리블리지는 당당히 고아원으로 돌아가겠다는 생각마저도 접게 되었다. 그리고 어느새 수업마저도 슬슬 결석이 많아지더니 결국 방에 틀어박히게 됐다. 걱정되어 찾아오는 동기들의 방문도 모두 거절하였다.


의지를 잃은 그녀는 그렇게 혼자가 되었다.


배가 고플 때면 어쩔 수 없이 식당을 가긴 했지만, 마력레벨이 오른 이후에는 배고픔의 주기가 상당히 길어졌기에 1주일에 한 번이면 족했다. 마력도 감지해 동기들 몰래 다녀오니 얼굴을 마주칠 일도 없다.


빛조차 잘 들어오지 않는 캄캄한 방. 시간의 흐름조차 잘 느껴지지 않는 생활을 리블리지는 꽤 오랫동안 이어갔다.


그러한 날에······ 인디아 주교가 찾아왔다.


문을 두드린 그가 제일 먼저 한 말은 늦어서 미안하다는 거였다.


이상한 소리였다. 인디아는 하루가 멀다고 매일 같이 찾아왔었다. 혹 평소보다 늦은 시간에 찾아온 건가 싶지만, 마법으로 시간을 보니 정오로 평소와 큰 차이가 있진 않았다.


리블리지가 그러한 생각을 할 때였다. 조금 격양된 인디아의 말이 문 너머에서 들려왔다.



“네게 필요한 물건이 드디어 만들어졌어! 리블리지.”


리블리지는 물었다.


내게 필요한 거라니?


기어가듯 낮은 목소리의 반문이었으나 인디아는 용케 알아듣고 다시금 말하였다.



“급하게 제작하느라 조금 볼품은 없지만, 그래도 네게 도움이 될 거라는 건 분명해. 한 번 나와서 확인해봐.”


어쩌면 그냥 자신을 나오게 하려 대강 말하는 게 아닐까?


한순간이지만 리블리지는 그렇게 생각하였다.


하지만 인디아는 주교다. 그에 비해 그녀는 한낱 교육생. 인디아라면 그냥 문을 열고 들어오더라도 괜찮다. 아무도 문제로 삼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기다려준다.


이 모습에 리블리지는 자신을 데리고 왔을 때의 인디아가 떠올랐다.


무심코 떠오른 기억. 하지만 어느덧 리블리지는 끌어안고 있던 이불을 치우고 문을 열고 있었다.


오랜만의 밝은 빛에 눈살을 찡그린 리블리지. 선명하지 않은 시야 속에서 그녀는 보았다.


그때와 같은 환한 미소의 인디아를······



“응? 리블리지, 여자애가 이렇게 부스스한 모습을 남자에게 보이면 안 된다고? 멍청한 놈들은 자길 유혹하는 줄 아니까 조심해야 해.”


그리 말한 인디아는 손을 뻗어 리블리지의 머리를 정돈해주었다.


부드러운 손길.


처음 느껴본 감각에 경직된 리블리지는 멍하니 자신의 머리가 정리되어 가는 걸 지켜봤다. 그리고 어쩐지 부끄러워졌다.


그렇지만 인디아는 대충할 생각이 없는지 청결마법까지 쓰며 말끔히 정리를 마친 다음에야 손을 뗐다. 하지만 또 막상 손이 떨어지니 아쉽다.



“음. 좋아. 이제 깔끔하네. 아, 맞다! 이럴 때가 아니지. 참.”


찾아온 목적을 상기한 인디아는 서둘러 품속에 손을 넣었다.


그리고 꺼낸 건 무언가의 쇳덩이.


인디아는 그것을 기뻐하며 건네왔다.



“드디어 완성했어!”

“이······이건 뭔가요······?”


너무나도 맥없는 목소리.


당사자인 리블리지조차도 깜짝 놀랄 정도였건만 인디아는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여전히 기뻐하면서 그는 평소와 다름없는 태도를 취했다.


그래서 믿어보기로 하였다.


――이 사람이라면 무엇을 하던, 어떠한 모습을 하던 자신을 보는 눈이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걸.


리블리지는 뭐라 설명하려는 인디아의 이야기를 끊어내며 쇠로 된 무언가를 받아들었다.



“할게요.”

“응?”

“당신이―― 인디아 주교가 바라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해낼게요.”


대답을 들은 인디아는 너무나도 당황해하며 오히려 ‘무엇이든’이나, ‘뭐든지’ 같은 소린 하는 게 아니라고 다그쳤다.


그렇지만 리블리지의 마음은 단호했으니······


그녀는 정말 오랜만에 웃는다고 생각하며 처음으로 인디아의 말에 확실하게 거부 의사를 밝혔다.


그게 제법 충격이었는지 인디아는 멍했다만, 다시금 목표가 생긴 리블리지는 한시가 급했다. 여태 농땡이를 부리던 만큼 열심히 해야 했기에. 그러니 그의 상태와는 상관없이 건네준 물건이 뭐냐고 물었다.


인디아는 멍한 와중에도 요상한 쇳덩이가 뭔지 술술 설명해주었고, 모든 설명을 들은 리블리지는 곧바로 연습장으로 향했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인디아도 뒤를 따라오고, 리블리지는 간만에 와 본 듯한 연습장에 발을 디뎠다.


최근 방에만 박혀있던 그녀의 등장에 동기들은 놀랐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즉시 그들은 리블리지에게로 와 곁에 있는 인디아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어서 오라며 반겨줬다.


너무나 열성적인 이들을 대하기가 어쩐지 쑥스러웠던 리블리지는······ 순간 기지를 발휘하여 가면을 썼다.


――방에 틀어박히고 나서 줄곧 보여왔던 맥없는 모습으로.


연기는 생각보다 하기가 쉬웠고, 눈치챈 사람도 없었다. 만족스러웠던 리블리지는 한동안 쑥스러움이 사라질 때까지만 이렇게 행동하기로 하였다.


이후엔 반겨주는 동기들을 뒤로하고 곧바로 인디아가 준―― ‘마도건’이라 명명한 쇳덩이를 시험하러 갔다.


이 마도건은 인디아가 교황청에 있는 기술 자문들과 함께 몇 날 며칠을 머리를 쥐어 싸매어 완성한 물건으로, 만든 이들은 전혀 알 수 없었으나 형태는 지구의 권총과도 닮은 생김새였다.


하지만 오로지 리블리지만을 위해 만든 물건인지라 생김새만큼은 비슷할지 몰라도 그 작동 원리나 구동계가 완전히 달랐다. 애당초 그리 복잡하고 정교한 물건을 며칠 만에 뚝딱 만들어낼 리도 없고.


비슷한 거라고는 외형뿐이다. 그 외의 나머지 부분은 말 그대로 거의 쇳덩이로 구조 또한 단순했다. 하물며 방아쇠조차도 달리지 않았다.


그럼에도 여태 없던 새로운 물건을 만들어야 했던 지라 상당한 시간이 걸렸고, 만듦새조차도 인디아가 말한 듯 꽤 조악하였다.


그렇지만 이건 시험작. 불만 따윈 없었고, 리블리지는 자신을 위해 만들어준 인디아와 기술 자문들에게 마음속으로 감사를 읊조린 뒤 마도건을 사용해봤다.


작동법은 간단하고 단순했다.


정말 너무나도 간단하고······ 쉬웠다. 조금 전이었다면 분명 뒤떨어진 자신을 비참하게 만들 셈이냐며 성을 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건 인디아가 고심에 고심하여 만든 것이다. 그렇다면 의심할 이유가 전혀 없으니, 리블리지는 잡념은 버리고 마도건을 사용하기 위해 정신을 집중했다.


우선 그녀에게는 너무나도 익숙한 행위―― 방금까지도 방에서 틀어박혀서 하고 있던 [마력탄]을 마도건 안에 생성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마력탄]을 팽창, 터뜨려보았다.


이것이 사용법이었다.


자칫하면 마도건까지 터져 크게 다칠 수 있는 상황이건만 리블리지는 망설임이 없었고, 귀를 울리는 폭발음과 함께 그녀는 반동으로 비명을 지르며 날아갔다.



“리블리지!”


내동댕이쳐지기 직전 인디아가 잡아 세워 뒤로 눕는 정도로 끝이 났고, 리블리지는 멍하니 맑은 하늘을 올려다봤다.



“실패······했나요?”


이렇게 날아가기도 했는데 실패한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리블리지의 생각과는 다른 대답이 돌아왔다.



“아니. 제대로 성공했어. 자, 일어나서 한 번 직접 봐봐.”


조심히 일으켜 세워주는 인디아에게 감사를 전한 리블리지는 표적을 쳐다봤다.


잘게 부서진 나무판자를······


인디아는 멍한 리블리지를 데리고 원래의 형태 따윈 찾아볼 수 없게 된 나무판자의 잔해로 이끌었다.



“호. 역시 성공적이야. 이거 봐, 리블리지.”


미소 지은 얼굴로 말하는 인디아의 손엔 판자의 잔해가 들려있었다. 그리고 멀리서 봤을 땐 몰랐지만 무수히 많은 구멍이 뚫렸다는 걸 알게 됐다.



“이, 이걸 정말 제가······?”


그냥 [마력탄]을 날리더라도 판자 정도는 손쉽게 부술 수는 있다. 눈앞에 있는 잔해들처럼 산산조각으로 만들기도 아주 손쉽다.


하지만 이렇게 관통하라는 건 무리다. [마력탄]은 단순히 적중하는 대상에게 폭발로 피해를 주는 것이니까.


게다가 [마력탄]은 약하다. 목표가 판자가 아니라 아다만티움이었다면 아주 극미한 피해라도 줬으면 다행일 정도로 약하다. 꼬마들의 적성 검사를 할 때나 쓰는 마법이기에 당연한 거다.


물론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면 이처럼 관통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그렇지만 리블리지에게는 불가능하였다.


그녀는 자신의 주제를 요 몇 달간 잘 파악할 수 있게 되었고, ――덕분에 가능성을 보게 되었다.


――드디어 동기들을 따라잡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실낱같지만 희망을 보게 된 리블리지는 설레기 시작했다.


당연히 많은 부분에서는 여전히 뒤쫓기는커녕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많은 격차가 있을 것이다. 그래도 딱 한 가지만. 단 한 가지만이라도 자신만이 할 수 있는 특기가 있으면 했다.


다행히도 [마력탄]만큼은 자신이 있는 분야였고 평생을 해왔다. 할 수 있을 것이다.


굳게 믿음을 가진 리블리지의 행동력은 대단했다.


그녀는 아직은 불완전하니 새로운 마도건이 완성될 때까지 쉬라는 인디아의 만류에도 불구, 반동으로 넘어지는 것도 불사하고 활짝 웃으며 빨리 익숙해지기 위해 노력하였다.


오래간만에 즐거워 보이는 그녀를 동기나 인디아는 말리지 못하였고, 결국 마력고갈로 쓰러져 하루를 마치게 되었다.


이후로도 리블리지는 [마력탄]의 훈련 및 사격 연습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속도가 부족하면 마력을 더욱 많이 응집해 강력한 폭발력으로 추진력을 높이려고도 했다.


도중 [마력탄]의 폭발을 견디지 못한 마도건이 부서지면서 그 파편에 실명까지 되는 등 크게 다친 사고도 벌어졌지만, 그녀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마력탄]을 갈고 닦았다.


마도건의 개량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본인에게 더욱 맞도록 하였다.


우선 방아쇠가 추가되었다.


다만 지구의 총처럼 기능적인 역할로 단 건 아니고, 그저 리블리지가 정확한 타이밍에 발사하기 위한 그녀만의 감각적인 장치에 불과했다. 하지만 제대로 성과는 있어서 움직이는 물체도 빠르게 대응해 사격할 수 있었다.


유일하게 내부 안쪽만은 폭발을 견뎌야 하기에 여전히 단순한 구조를 유지했지만, 그렇다고 개량을 못 하는 건 아니었으니······ 머리에 머리를 싸매는 와중 [마력탄]이 생성되는 실린더와 총신에 마법을 부여하는 방법을 찾은 것이다.


이 또한 개량을 거듭하다 최적은 반동의 역전이라는 걸 알게 되었고, 뛰어난 마법사였던 인디아가 직접 개념을 고정해 마법을 부여해주었다.


이로써 위력과 속력이 향상함에 따라 같이 강해지는 반동을 견뎌야만 했던 리블리지의 부담은 줄었고, 오롯이 [마력탄]의 생성과 발사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그렇게 최종적으로 개량을 끝마친 마도건은 전장 1.8m에 달하는 거대한 크기가 되었고, 그 모습은 아이러니하게도 지구의 저격 총과도 닮아있었다.


하지만 분명 지구의 총과는 달랐다. 여전히 작동 원리가 다름은 물론이고 재료조차도 다르다.


지구에서의 총은 대부분 강철을 이용하여 만들어지지만, 마도건에 사용된 금속은 강철보다 한참이나 단단한 아다만티움이 쓰였다. 거기에 식견이 있는 자가 보면 눈이 돌아갈 정도의 고품질인 마광석을 아낌없이 부어 혼합하였다.


안 그래도 단단한 아다만티움에 마광석이 혼합된 합금속. 덕분에 길들여야 한다는 단점이 생겨났지만, 소유자의 마력에 한해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게 되었다. [마력탄]의 폭발로 같이 폭발할 위험은 지극히 줄어든 것이다.


다만 이러한 물건을 혼합하는 건 절대 쉽지 않다.


마광석의 특성상 주위 마력을 흡수하기에 지극히도 섬세한 기술이 필요하였다. 고품질의 마광석일수록 더욱이나. 이는 인디아조차도 할 수 없는 난관이었다.


그럼 어떻게 만들었는가?


그 물음에 대한 답은 간단하다.


인디아보다도 더욱 뛰어난 마법사―― 교황이 직접 혼합을 해줬을 뿐이다.


일개 교육생을 위해 무려 교황이 나선다니. 보통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아니, 그전에 저만한 재료들을 아낌없이 써서 전용 무기를 개발하고 만들어줄 이유조차도 없다.


그런데도 이만한 지원을 한 건 다 이유가 있어서다.


――왜냐하면 그녀야말로 그토록 교황과 성국이 원한 인재였기에.


하루도 거르지 않고 끊임없이 연습을 게을리하지 않는 리블리지에게서 인디아는 그 가능성을 보았고, 교황에게 간청해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결과는 훌륭하였다. 교황조차도 리블리지의 성과를 보고는 확실하다며 인증까지 해주었다.


――리블리지, 그녀는 초월자를 죽일 수 있는 인물이라고.


그때부터 리블리지는 성국의 비밀무기가 되었다. 알려주지 않았지만 이때 이미 제11 위상에 자리를 꿰차게 됐다.


마도건의 개량도 방향성을 바꾸어 시험작인 권총의 형태에서 일격에 모든 걸 치중한, 확실한 한방으로 초월자를 잠재울 수 있도록 방향을 잡았다.


리블리지는 그 뜻에 부응해 보였다. 그녀는 성인이 된 후 제11 위상으로서 처음 출전한 임무에서 훌륭히 자신의 진가를 증명한 것이다.


당시 제4, 7, 10의 세 위상과 동시에 싸우면서 제10 위상까지도 죽인 공국의 왕세자를 상대로 말이다.


근데 그녀는 전력을 다한 것도 아니었다.


왕세자 제거는 비밀리에 시행되는 것이기에 전력을 다하면 엄청난 파열음이 발생하는 리블리지로서는 온 힘을 다할 수 없었다. 그런데도 그녀는 그 엄청났던 공국의 왕세자를 침묵시켰다.


단 한방으로······


그 일을 계기로 리블리지는 공석이 된 제10 위상으로 올라가게 되었다. 반대 따윈 없었다. 처음엔 그녀가 같은 심판관이라는 걸 못 마땅해한 자조차도 충분히 자격이 있음을 인정하였다.


그렇기에 이번 일도 자신에게 거는 기대가 크다는 걸 리블리지는 알고 있었다. 바로 옆에서 보좌해주기 위해 따라온 인디아에게서도 잔뜩 기대감이 느껴진다.


그 뜻에 부응하기 위해 [확대]와 어둠 속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암안]이 부여되어있는 스코프 너머 자인 디바오러를 보며 기회를 엿봤다.


그러다 마침내 잡아냈다.


한곳에 집중할 때 나타나는, 사람이라면 도저히 어쩔 수 없는 빈틈을.


좀처럼 빈틈이 없던 침입자였다. 어쩌면 다시는 없을 기회를 놓치지 않고―― 리블리지는 방아쇠를 당겼다.


전력의 마력이 담긴 탄알―― 붉은빛이 귀를 먹먹하게 만드는 파열음을 뚫고 마치 레이저처럼 일직선으로 대상을 향해 날아간다.


모든 반동이 역전되어 더욱 가속도를 얻은 탄환은 그야말로 마탄. 보고 피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대상 또한 전혀 반응하지 못했고 탄환은 그대로 멍한 대상의 머리를 관통――


――키이이잉!


하지 못했다.


기지를 발휘한 건지, 아니면 미리 대비를 해뒀는지 한 점에 뭉친 10겹의 보호막이 나타나 막아냈다.


하지만 제대로 막는다고 하더라도 힘들 판국에 저런 급조한 보호막으로는 도저히 무리다. 달리 이야기한다면 잘도 급조한 보호막으로 막아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만큼 리블리지의 모든 게 담긴 마탄은 절대로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괜히 비밀무기라 불리는 게 아닌 거다.


끼익, 끼익······


비명을 질러대던 보호막은 챙그랑 소리를 내며 한순간에 모두 분쇄됐다.


모든 장애물을 돌파해낸 마탄의 위력은 그럼에도 크게 줄지 않았다. 대상을 침묵시키기엔 부족함이 없다.


그렇게 대상을 향해 다시 맹렬히 돌진하는 마탄이 박히기 직전이었다.


――그때, 반응을 한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은 자인 디바오러의 수행원이라 들었던 자로, 보호막이 잠시 막은 그 짧은 순간에 끼어드는 진귀를 선보였다.


그리고 어느새 나타난 남자는 탄환을 잡았다.


무려 맨손으로······


저 빠른 탄환을 잡는 신체 능력엔 경이롭지만, 조금 다급했나 보다.


스코프로 이를 보고 있던 리블리지는 그리 생각하였다.


하지만 그건 오산.


한순간에 증발할 줄 알았던 남자의 손은 멀쩡하였고, [마력탄] 또한 그의 손에서 벗어나질 못했다.


다른 사람들이 있는 곳과는 [교신]으로 연결해놓았었다. 그래서 남자가 자인 디바오러의 스승이며 그녀보다 강하다는 건 들어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이건 정말 예상을 한참이나 뛰어넘었다.


믿기 힘든 광경에 인디아가 놀라는 기척을 풍기고, 그사이 남자는 [마력탄]을 움켜쥐었다.


[마력탄]의 마력은 리블리지의 것. 원거리에서 언제든 폭발시킬 수 있었고, 흩어지게 할 수도 있었다. 남자는 그걸 기다리지 않은 것이다. 재차 이어질 수 있는 공격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손수 터뜨린 거다.


다만 저 [마력탄]은 순도 높은 마력 덩어리. 그걸 터뜨린다는 건 거대한 폭발이 난다는 것이었다.


리블리지는 걱정이 들었다. 저러다 주변 사람이 휘말리는 건 아닐지.


하지만 걱정은 무의미했다. 남자는 어느새 보호막을 전개해뒀는지 폭발은 손안에서만 이루어졌고, 그것을 훌륭하게도 버텨냈다.


피해는 오직 남자뿐. 그의 손이 사라진 것으로 끝이 났다.


리블리지는 진심으로 안도했다.


――근처에 있는 그녀에게 피해가 가지 않아서.


그렇게 안심과 더불어 마력고갈로 인해 누워 저격한 자세 그대로 쓰러진 리블리지.


그런 그녀의 귀에 경악과 놀람, 의문의 다양한 감정이 섞인 인디아의 물음이 들려왔다.



“왜, 왜 그런 거냐······ 리블리지. 어, 어째서 ――이스피리아를 쏘지 않은 거냐.”


뭔가 했더니 당연한 걸 묻고 있다.


정신조차 몽롱한 와중 그리 생각한 리블리지는 힘겹게 대답하였다. 누군가를 닮은 어색한 웃음을 흘리며······



“헤헤에······ 죄, 죄송해요, 주교님. 그렇지만······ 쏘, 쏠 수 없었어요.”

“어, 어째서?”

“어, 언니께······ 어찌 가, 감히 그럴 수가 있겠어요.”

“언니······라고?”

“네. 주교님만치······ 정말 좋아하는 언니인데······ 총구를······ 겨누지도 못하겠어요.”

“리블리지. 너 도대체 무슨 말을······”


혼란스러워하는 인디아를 알겠지만, 리블리지는 해명해줄 여력이 없었다. 그보단 기절하기 전에 조금이라도 더 보고 싶었다.


그리도 다시 만나고 싶었던 동경의 언니를――











엄청난 마력이 담긴 주먹. 그 주먹을 휘둘러 해방하기 직전, 리아는 멈춰 세워 거둬들였다. 억지로 멈춘 탓에 근육이 파열되고 마력이 날뛰는 등 고통이 뒤따랐지만 무관심하게 뒤만을 돌아봤다.


그런 리아의 눈에 분노에 찬 델리안이 보였다.



“방해다! 그 아이―― 내 아이가 남긴 일격을 못 봤지 않느냐!”


게다가 도움까지 받게 했다며 성을 낸 델리안은 탄환이 날아온 곳을 노려보고는 손을 뻗어 움켜쥐었다. 거기서 마법의 기척을 느낀 리아는 고개를 돌렸다.


마법이 향한 곳은 대성당 안에 커다란 종이 있는 첨탑이었다.



“리블리지!”


그곳에는 남녀의 2명이 있었는데, 남자는 델리안이 마법을 썼다는 것을 알아차렸는지 엎드려 있는 여성을 들쳐메 자리를 벗어났다.


하지만 조금 늦었다.


블랙홀처럼 공간이 빨려 들어가는 듯한 마법에 남자는 오른손과 발이 말려들고 말았다. 그리고 그대로 몸 전체가 끌려갔다.


이대로라면 죽는다는 걸 알았는지 남자는 한 치의 고민도 없이 자신의 손과 발을 마법으로 만들어낸 물의 칼로 잘라 냈다.


순간적인 판단으로 위험에서 벗어난 남자는 고통에 인상을 쓰며 지상으로 떨어졌다. 그러면서도 들쳐멘 여자가 다치지 않게 끌어안으면서 보호막을 사용했다. 그렇지만 고통 때문에 집중이 잘 안됐는지 상당히 흐릿하고 불안정하게 일그러진다.


이윽고 쿵, 묵직한 물체가 떨어진 소리가 난다.


‘후. 저런 거에 눈을 돌릴 때가 아니지.’


자신의 어리석음에서 되도록 멀어지려 했던 리아는 반성하고는 델리안을 쳐다봤다. 눈이 마주친 그녀는 한순간에 흥분을 가라앉히고는 차분하게 마주 봤다.


‘그렇군······ 세스를 길러줬다던 엘프는 델리안이었나.’


그렇다 하더라도 지금 당장 할 말은 없다. 그녀와는 나중에 이야기해도 될 것이다. 그보단 자신의 남편―― 델리안에게 향한 [마력탄]을 막아준 에르에게 시선을 돌렸다.


눈이 마주치자 에르는 은은한 미소를 보이며 괜찮다는 어필을 해왔다.


‘그럴 리가 있나. 멀쩡할 리가 없지.’


총성음과 함께 날아온 [마력탄]은 2단계로 압축된 마력, 디카이로트도 했었던 그것이다. 담긴 마력은 소량이기는 하나 에르에게 피해를 주기엔 충분했다.


주위로 퍼지지 않게 억지로 내리눌렀다면 말할 것도 없다. 빠르게 치유함과 동시에 정화마법으로 피를 없앴다만, 진한 피의 향은 근처를 맴돌고 있었다.


물론 큰 상처는 아닐 거다. 큰 상처라 하더라도 에르라면 한순간에 완쾌할 테고.


그렇다. 결과적으로만 보면 아무도 다치지 않고 끝난 헤프닝 같은 거였다. 신경 쓰는 사람이 오히려 쪼잔한 것이다.


그래서 리아는 오늘 하루만 쪼잔해지기로 했다.


――저들과 대치하고 있던 건 자신이다. 그런 사람을 놔두고 가만히 구경하던 사람을 노린 거다.


그것이――



“――실로 불쾌하군.”


생각이 바뀌었다.


원래 이럴 셈까지는 없었다. 그저 세스와의 일전으로 인해 발동어를 외침에 있어 조금 거리낌이 없어진 불만만을 토로하고 끝낼 예정이었다.


진지해질 마음 따윈 그다지 있지도 않았다. 사람은 누구나가 실수하니 한번은 봐줄 요량이었다.


하지만 그 결과가 이 꼴이다.


절체절명의 순간 비장의 수를 꺼낼 거란 예상은 해뒀었지만 엄한 사람이 노려지고, 애먼 남편이 다쳤다.


‘어지간히도 내가 우습게 보였나 봐. 아니면 나 정도는 언제든지 처리할 수 있을 거라는 계산이었나? 이러나저러나 잘도 이쪽에 민폐를 끼쳐놓고는 참 제멋대로네.’



“아이, 준비해줘.”


생각을 공유하는 아이이기에 무엇을 말하는지는 굳이 필요하진 않다.



『알림. 시전자―― 이스피리아는 최근에 회복함. 한정된 자원만을 활용하길 권고.』


그러나 돌아온 건 거절의 말.


설마 아이가 거부할 줄은 몰랐다. 아니, 왠지 모르게 이쪽을 챙겨주는 듯한 아이의 태도를 보면 당연할지도 모를 반응이지 않을까 싶다.


그렇지만 세스와 델리안. 아들에 이어 그의 어머니까지 목숨을 노린 것이다. 그것도 눈앞에서.


관계되지 않았다면 모를까, 이용당한 세스나 협력자로서 함께 행동한 델리안은 그게 아니었다.


이번만큼은 리아도 물러설 마음이 전혀 들지 않았다.



‘아이.’


재차 부름에도 아이는 대답이 없었다. 하지만 잠시 후, 마지못한 기색이 역력하지만 아이는 대답해주었다.



『시전자―― 이스피리아의 오더를 확인. 한정 개방을 위한 프로세스 가동.』

‘고마워, 아이.’


지난번에 해봤던 경험이 있기 때문인지 이번엔 준비 시간이 상당히 짧은 듯하다. 감사를 전함과 동시에 마력이 요동친다.


――아니다. 그렇다고 하기엔 그 정도가 심하다.


‘아이! 지금 조금 상태가 위험하게 돌아가지 않······ 크읏.’


말을 하는 동안에도 마력은 점점 거칠게―― 이제는 폭주와도 비슷하게 날뛰기 시작했다.


리아는 미친 듯이 요동치는 마력을 진정시키려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성난 파도를 널빤지로 어떻게 하기란 무모하며 진정시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끝내 리아는 내부에서 몰아치는 마력으로 인한 충격에 그만 의식의 끈을 놓고 말았다.



“······.”


무의식인 리아. 겉으로 볼 때는 아무런 이상이 없다.


그렇지만 갑자기 우뚝 멈춰 눈을 감은 아내를 의아하게 여긴 에르는 움직이려 하였고――


스윽.


리아가 손을 내밀어 그를 말렸다.



“리······아?”


멈춰선 에르.


리아도 손을 든 자세를 고수하고 있었다. 하지만 속은 매우 활발히 움직이고 있었으니――



『마스터―― 이스피리아의 침묵을 확인. 다음 시퀀스를 이행.』


세이브 된 데이터를 검색······ 완료.

데이터의 로드······ 완료.

구성 및 분석을 시행······ 완료.

인격과 기억의 추출······ 완료.

전 과정의 재검토······ 이상 없음.



『전 프로세스 양호. 락은 유지. 현 시간부로 이스피리아 자인 디바오러를 한정 현현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만렙 히로인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55 137 22.07.13 78 0 34쪽
154 136 22.07.11 73 0 36쪽
153 1XX-4 22.07.11 48 0 36쪽
152 1XX-3 22.07.11 44 0 39쪽
151 1XX-2 22.07.11 47 0 24쪽
150 1XX (특별편) 22.07.11 57 0 41쪽
149 135-2 22.07.11 85 0 8쪽
148 135 22.07.11 87 0 40쪽
147 134 22.07.11 72 0 42쪽
146 133 22.07.09 78 0 26쪽
145 132 22.07.09 90 0 39쪽
144 131-2 22.07.09 65 0 20쪽
143 131 22.07.09 74 0 24쪽
142 130-2 22.07.08 60 0 14쪽
141 130 22.07.08 83 0 40쪽
» 129 22.07.08 78 0 38쪽
139 128-2 22.07.08 67 0 15쪽
138 128 22.07.08 81 0 29쪽
137 127 22.07.08 86 1 26쪽
136 126 22.07.08 81 0 26쪽
135 125 22.07.07 69 0 36쪽
134 124 22.07.07 97 0 36쪽
133 123 22.07.07 61 0 34쪽
132 122 22.07.07 92 0 32쪽
131 121 22.07.07 92 0 30쪽
130 120 22.07.06 89 0 36쪽
129 119 22.07.06 90 0 30쪽
128 118 22.07.06 67 0 34쪽
127 117 22.07.06 69 0 20쪽
126 116 22.07.06 84 0 45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