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렙 히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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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ia
작품등록일 :
2022.05.11 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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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6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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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7.11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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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쪽

1XX-2

DUMMY

“――잠깐, 리아.”

“히익! 왜, 왜 그러세요, 루비아 씨?”

“저거 내 기억이 잘못 되지 않았다면 분명 귀신을 보는 거라고 들었던 거 같은데······ 이게 어찌 된 일일까? 응?? 기획서에도 안 적혀 있었는데?”

“아녜요! 루비아 씨는 지금 착각하고 계시는 거예요. 일단 진정하시고 제 말을 들어주세요.”

“······그래. 말해봐.”


오늘 하루의―― 어쩌면 일주일을 갈 수 있는 운명의 갈림길이라는 걸 느낀 리아는 신중히 말을 골랐다.



“술식을 볼 수 있는 건 부가적인 기능이에요.”

“······좀 더 자세히. 저 안경에 부여된 마법은 어떤 거야?”

“으음. 쉽게 말하자면 마력을 가시화하는 거예요. 정확히는 대기 중의 마력보다 많은 마력을 감지할 수 있도록 도와줘요. 은은하게 빛을 내서요.”

“그건······”


루비아는 슬쩍 고개를 돌려 레딧츠를 쳐다봤다.



“[마감안]이 맞을 겁니다.”

“에엥?! 제 고스트 서치는 이, 이미 있는 거였나요, 레딧츠 씨?!”

“예. 그렇긴 합니다만――”


걸작이라 여겼던 안경이 이미 시중에 있는 제품이었다니.


나름의 시장조사는 하고 만든 것이었다. 발상은 마력을 보는 듯한 감각인 자신의 경험을 빗댄 것이고. 그런데 설마 표절작이 될 줄이야.


좀 더 세밀히 조사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리아의 표정은 급격히 어두워졌다.


하지만 너무 성급한 생각이었다. 왜냐하면 레딧츠의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완전히 같은 물건이라 보긴 힘듭니다.”

“왜, 왜요?”

“그건 직접 보시는 편이 빠르실 겁니다.”


그리 이야기한 레딧츠는 품속에 손을 넣었다. 그리고 꺼낸 건 작은 단안경으로, 모노클이라 불리는 물건이었다. 만듦새는······ 편드는 건 아니지만 이제 막 필므의 손에 넘어간 자신의 걸작에 비할 바는 아니다.


레딧츠는 자세히 살펴보라며 모노클을 건네줬다.


그리고 한눈에 알게 되었다. 왜 같은 물건이 아니라고 했는지.



“제 일의 특성상 주인님의 호위를 위해 들고 다니는 겁니다만······ 보시는 대로 부여된 마법은 조악하기 그지없습니다. 현장에서도 주력으로 쓰기보단 마법이 설치되어있나 대강 살펴보는 용도로만 쓰입니다. 그조차도 [마감안]을 쓸 수 있는 자라면 거들떠보지도 않을 정도로, 저 또한 마력의 온존을 위해 사용할 뿐입니다. 이처럼 교묘히 감춰진 술식을 완벽히 보기란 아예 불가능합니다.”

“그, 그래도 비슷한 물건인 건······”

“개인적으로는 이만한 차이가 나는데 비슷한 물건이라 볼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이스피리아 님의 안경은 귀신을 보는 것이지 않습니까? 목적이 아예 다르니 같은 범주에 넣긴 어려워 보입니다.”

“그, 그런가요?”

“그래그래. 괜한 거에 끙끙대지 마. 누가 먼저 만들든 무슨 상관이야. 좋기만 하면 그만이지. 그렇게 따지면 아무것도 없던 옛날 놈들이 최고지. 후발주자는 답도 없어.”

“루비아 씨······.”


리아는 감격에 겨워하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루비아는 겸연쩍은 듯도 싶었지만, 이는 한순간이었다. 이내 냉철하게 리아를 내려다보았다.



“그래서. 귀신을 보는 거라면서 왜 마력을 탐지하는 물건을 만들어낸 거야?”


모노클을 돌려준 리아는 대답했다.



“루비아 씨도 알다시피 이 세상에 존재를 유지하기 위해선 마력이 필요해요.”

“어라? 생각보다 제대로 된 내용이네.”

“······너무해요.”

“알았어. 알았으니까 다음이나 말해봐.”


기분이 상한 리아는 입술을 삐쭉 내밀고는 의욕 없이 이야기하였다.



“귀신도 같다는 거죠. 존재를 유지하기 위해선 반드시 마력이 필요할 거예요. 그걸 감지하기 위해, [마감안]이라고 했던가요? 마력을 보는 마법을 부여한 거죠.”

“마력을 지니고 있다고 확신이라도 하는 듯한데 근거는 뭐야?”

“그······ 예전에 제 어릴 때 이야기했었잖아요. 그거랑 마찬가지예요. 저도 딱히 영향 결핍이라든가 몸에 악영향을 끼칠 이유가 전혀 없는데도 마력이 부족하다는 것만으로 풍전등화같이 위태로웠잖아요. 신체가 있음에도 그랬어요. 귀신과 같은 영적 존재들은 오히려 육체가 있는 다른 존재들보다 더 마력의 영향이 클 거예요.”

“······.”

“루비아 씨?”


이상하다. 대답이 없다.


위로 올려다보니 루비아가 드물게 입을 멍하니 벌리고 있었다.



“왜······ 그러세요?”

“아, 아니, 너무나 의외여서 그랬어.”


거기서 원래대로 돌아온 루비아는 살짝 미소를 보였다.



“넌 진짜 모르겠네. 바보 같을 땐 완전 바보 같다가 묘하게 영리할 땐 또 영리하네.”

“네?”

“아아, 칭찬하는 거니까 신경 쓰지 마.”


루비아는 제법 기분이 좋아진 듯 웃음을 흘렸다.



“하지만 보아하니 고스트 계열의 몬스터가 있는 건 모르나 봐?”

“엥? 그런 게 있――을 만 한가?”

“그래. 사실 [마감안]의 주요 용도는 그런 고스트 계열 몬스터를 식별하는 데에 있어. 그렇지만 [마감안]을 주력으로 습득해놓는 사람은 그다지 없지.”

“왜요?”

“수가 적으니까. 만난 일 자체가 극히 드문데 시간 아깝게 헛짓거리할 사람이 많을 거 같아? 안 그래도 능숙해지기도 어려운 기술이고 말이야. 기껏 해봐야 흐릿한 뭔가가 있다 정도만 익혀둘 뿐이야. 레딧츠도 그쯤이었지 아마?”

“그래도 되는 거예요? 몬스터라면서요. 위험하지 않아요?”

“괜찮아. 왜냐면 걔네들······ 더럽게 약하거든. 생각해봐 육체가 없는 존재야. 외부의 공격에 일차적으로 방어해줄 것도 없고, 너도 말했듯이 존재를 유지하기 위해 이미 마력이란 코스트를 지출 중인 녀석들이잖아? 변변찮은 대응 수단은 없다는 거지. 대충 위치만 알면 순살이야.”

“귀, 귀신을 물리친다고요?! 만질 수가 있는 거예요?”

“뭔 소리야. 왜 어려운 건 잘도 이해하면서 쉬운 건 엉뚱한 길로 빠지는 건데? 그것들 마력으로 유지 중이잖아.”

“아. 마력으로 공격할 수 있다는 건가요?”

“어. 마법이나 마력을 담은 공격엔 속수무책이란 걸로 알고 있어. 그래서 애당초 큰 위협도 안 되니 굳이 너처럼 힘들게 선명히 볼 수 있는 물건을 만드는 놈은 없어. 들어간 시간이랑 돈만 아까울 뿐이지. 쓸만한 물건이 나온다는 장담도 할 수 없고.”



설마 지구에서도 비슷한 것인가 살짝 의문이 든다. 하지만 별개의 세상. 마력이 있는지부터 알 수도 없고, 검증할 도리도 없다. 괜한 생각일 뿐이니 추론하길 그만두었다.


조금 이상해진 분위기를 감지했는지 루비아의 시선이 느껴진다.


너무 감상에 젖어 들었다.


황급히 정신을 차린 리아는 괜찮은 척 시치미를 떼며 주위를 둘러봤다. 다들 지금 이야기가 제법 흥미를 끌었는지 주의 깊게 듣고 있었다.



“어쨌든 대강 이야기는 알겠어요. 제 고스트 서치는 표절이 아니라는 거죠?”

“그렇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적어도 여태까지의 [마감안]과는 활용도 면에서는 비교도 할 수 없으니 말이야. 술식 자체도 완전 새로운 것이고.”

“그, 그럼 잘 팔릴까요?!”


기획안은 100에 달하지만 통과된 것은 불과 4개뿐. 벌이는 시원찮다. 델리안의 급료를 따낼 수 있는 절호의 대찬스다.


모처럼 돈을 벌 수 있단 생각에 리아는 기대 가득 루비아를 보았다. 하지만 그녀는 뚱한 표정이었다.



“뭘 벌써 팔 생각 만만이냐. 네가 말한 대로의 성능을 확인하지도 않았잖아. 기준치에 미달이면 진열대 근처도 못 간다고 생각해.”

“반대로 이야기하자면 기준치를 충족하면――?”

“――판매를 고려해 본다는 거지.”

“에에~ 바로 파는 게 아니라요?”

“여러 준비할 게 있잖냐. 공방이라든지, 술식 쪽은 제작단가가 맞지 않으면 수정도 해야 하고.”


뭐······ 지극히 당연한 수순이지 않을까. 그나마 금전을 손에 넣을 수 있단 기회라도 생긴 게 어딘가.


작지만 희망을 본 리아의 눈엔 순식간에 불이 켜졌다.



“후후. 그러니까 빨리빨리 확인하고 돌아가자.”

“넷!”


활기차게 대답한 리아는 곧장 다리 밑에 술식을 가리켰다.



“저거――”

“――됐어. 저건 이미 파악이 끝났어.”


말을 하자마자 루비아가 끊어버렸다. 그러더니 그녀는 대뜸 휙 고개를 돌려 라프리트를 쳐다봤다.



“너도 어찌 된 건진 알겠지?”


필므 다음 차례였던지 라프리트는 유능한 비서처럼 ‘척’하고 안경을 고쳐 썼다.



“예. 이건 벨루디스의 일. 제 쪽에서 처리해두도록 하겠습니다.”

“라프리트 씨, 무슨 이야기에요?”

“아아. 올라가 보면 알 거야.”

“예, 리아 양. 저흴 다리 위로 올려 주시겠나요?”


라프리트의 눈이 차갑다. 저 감정이 이쪽을 향한 게 아님을 알고 있음에도 굉장히 무섭다.


이런 라프리트는 드물다. 덩달아 긴장감이 들었던 리아는 묵묵히 다리 위로 발판을 올렸다.


두 경비병은 기다리고 있었는지 곧장 다가왔다.



“어, 어찌 되셨습니까?”


‘아까도 그렇고 너무 긴장하는 거 아니야?’


물론 루비아와 라프리트 같은 높디높은 사람을 만나면 긴장하는 거야 당연하지만, 저 두 사람은 이상하리만치 전전긍긍하는 느낌이다.


그 순간, 리아의 머릿속에 번뜩였다.


‘아니야! 이 사람들은 루비아 씨와 라프리트 씨가 누군지 몰라!’


경비병들에게 소개한 건 자신뿐. 그녀들은―― 특히 루비아는 본인이 이런 행렬에 참여했다는 사실조차도 알리기가 싫어 이쪽에 최고 국빈임을 증명하는 증서를 가지고 오라고 했었다.


――그런데도 이들은 이토록 긴장하고 있다.


한사코 인정하기는 싫지만 아무리 최고 국빈이라 할지라도 어려 보이는 자신을 보고 그러기란 쉽지 않은 법.


실제로도 세스 때의 사태로 제법 입소문이 돌고 있기는 하지만 여태 신기한 눈으로 보면 봤지, 이리 긴장한 태도로 대해진 적은 없었다.


게다가 기억을 돌려보면 경비병들은 이 자리에 달려왔을 때부터 살짝 긴장하고 있었다.


즉 이쪽과는 무관하게 긴장할 무언가가 있었다는 뜻.


인지능력만큼은 좋았던 리아는 꽤 돌아갔지만 모든 가능성을 한순간에 계산하였고, 곧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루비아가 했던 말이 무슨 소리였는지를 알게 되었다.


아이에게도 확인받아봤으니 거의 정확할 것이다.


혹시 몰라 주위도 살펴보니 셀레스테를 제외한 전원이 싸늘한 눈이 되어있었다. 아마 확실할 듯싶다.



“이상은 찾지 못했습니다.”

“그, 그렇습니까?”


대표로 이야기한 라프리트의 말에 경비병들은 크게 안도하였다. 그런 그들에게 라프리트는 웃는 얼굴로 다시금 말을 걸었다.



“성의를 다하여 도와주신 데에 감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혹 성함이 어찌 되시는지요?”


두 경비병의 눈에 어두운 욕망이 번져간다.


이래 보여도 이쪽은 최고 국빈. 게다가 라프리트도 귀티가 줄줄 흐르는 게 딱 봐도 귀족 집의 자제. 덩달아 루비아마저도. 이런 이들이 사례를 한다는 식으로 이야기하니 기대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하지만 잘못 짚어도 단단히 잘못 짚었다.


그런 줄도 모르고 경비병은 이젠 숨기지도 않고 기대감을 드러내며 자신들의 이름을 이야기하였다.



“그렇군요. 당신들의 성함은 잘 들었습니다. 한데······ 여쭤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

“헤헤. 무엇입니까? 저희가 아는 것이라면 다 말씀드리겠습니다.”

“그것참 든든하시군요.”


라프리트는 감사하다며 살며시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그 미소가 더욱 진해지는 걸 리아는 보았다.



“실은 하나의 제보가 있었습니다만······”

“제보 말입니까?”

“예······”


말을 흐린 라프리트의 눈썹이 애처롭게 내려갔다.


뭇 남성들의 시선이 저절로 움직일 아름다운 여성의 이런 행동은 경비병들의 마음을 자극했다. 둘은 서로 앞다투어 어떤 제보냐며 반드시 자기들이 해결해주겠다며 소리를 높였다.


이러한 소동에 다리를 지나치는 사람들이 시선을 보냈다. 처음부터 구경하던 인파도 포함하면 제법 많은 사람이 구경하는 중이었다.


그런 주위를 곁눈질로 살펴본 라프리트의 눈이 번득였다.



“고맙습니다. 열의가 높은 여러분께 도움을 구하고자 하는데······ 사실 저흰 이 다리에서 마차 사고가 빈번히 벌어진다고 해서 조사차 이곳에 온 겁니다.”


여기서 라프리트는 조금 과장되게 말하였다.



“아시다시피 여기 이분은 벨루디스의 최고국빈. 사룡을 퇴치하신 업적을 이루어내신 분으로, 원인 모를 이곳의 문제를 알아낼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이번에도 넓은 아량을 베푸사 몸소 이곳에 직접 오셨지요.”


즉석에서 생각해낸 것치고는 꽤 뻔뻔할 정도로 이야기를 잘 지어냈다.


‘응? 잠깐!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라프리트 씨, 날 팔았어!!!’


사태를 깨닫고 보니 주변에서 구경하던 사람들에게서 감탄의 울림이 터져 나온다. 그리고는 신기한 동물이라도 봤다는 양 호기심 어린 눈을 향해온다.


의심은 없다. 어느덧 트레이드 마크처럼 되어 버린 페리 때문에 다들 쉽게 믿어버린다.


보통은 이렇다. 여태 이쪽이 최고 국빈이라는 걸 안 모든 상대는 이러한 시선을 보냈었다. 조금의 차이는 있긴 했지만, 그 방향성이 크게 다르지는 않았었다.


‘그래. 이들처럼 행동하는 경우는 없었어.’


물론 경계하는 사람도 더러 있기는 했다. 하지만 이렇게 몸을 경직시키고는 노심초사하던 사람은 단연코 없었다.


······의혹이 확신으로 변하는 순간이다.


침착함을 되찾은 리아는 차분히 지켜보았다.



“그, 그러셨군요. 그런데 아까 이상이 없으시다고······”

“예. 이상은 없었습니다. ――다리에는 말이죠.”


구경하던 사람들은 무슨 소리인가 하며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눈앞에 있던 경비병들은 달랐다. 그들은 몸을 흠칫 떨었다.



“그런데 다리에 묘한 마법이 설치되어있더군요.”

“마법······말입니까?”

“예. 알아낸 바로는 순간적으로 바람을 쏘아내는 마법이죠. 그것이 저기에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라프리트가 가리키는 곳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그곳은 다리의 중앙으로, 아까 술식을 발견했던 곳 바로 위였다.



“이곳의 다리는 좁습니다. 겨우 2대가 지나갈 만한 넓이죠. 거기서 마차의 밑에서 돌풍이 불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것도 딱 2대의 마차가 서로 교차할 때라면요?”


말할 것도 없다. 조심히 서로 지나치고 있는 가운데 밑바닥에서 돌풍이 불면 균형을 잃은 마차들은 서로 부딪치게 된다.


다리 밑은 수로다. 인간의 본능상 안쪽으로 붙으려 할 테니 거의 확정적으로 사고가 발생할 것이다.


이것이 마차 사고의 원인.


미스테리는 풀렸다. 귀신은 아무런 관련조차 없는, 누군가의 악의로 인한 인재다.


구경하던 사람들도 주위에 건물이 많은 이곳에서 이상하게 꽤 강한 바람이 자주 불곤 했다고 수군거렸다.



“사전에 철저히 연습했겠지요. 정확한 타이밍을 노리지 않는다면 살짝 균형만 잃고 무사히 지나칠 테니 말이죠.”

“도, 도대체 무얼 위해서 말입니까?”

“당연하죠. 이곳에서 일어나는 사고 대부분은 반드시 보석이나 귀금속을 싣고 있던 마차들이 끼어있습니다. 여기까지 말하면······ 알아들으시겠죠?”

“하, 하지만 흘린 물품들은 원주인에게 돌려주고 있습니다. 사고를 꾸민 이들의 손에 들어갈 리가 없습니다.”


리아는 속으로 탄식했다.


경비병들은 모를 것이다. 스스로 라프리트가 준 마지막 기회를 걷어찼다는 걸.



“모두는 아니죠. 열심히 수색해도 한두 개는 놓쳤을 테고, 범인들은 그걸 챙긴 것만으로 만족했겠죠.”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저, 전부도 아니고 단지 그것만으로 이런 일을 벌입니까?”

“말했듯 값비싼 보석과 귀금속입니다. 하나 파는 것만으로도 큰 금액이니 위험을 감수할 가치는 있었겠죠.”


라프리트는 냉혹하게, 그러면서도 열화와 같은 분노가 담긴 눈으로 경비병들을 노려보았다.



“찾은 보석과 귀금속을 빼돌리기도 쉬웠겠죠. 그들은 사고 현장을 수습하는 자들이었으니. 직접 찾은 걸 몰래 주머니 속에 넣기만 하면 그만이니 말이죠. 그것도 모르고 사고가 난 마차의 주인은 대부분 물건을 찾을 수 있었다는 것에 감사를 전했겠지요. ――그렇지 않나요, 이 지역을 담당하는 경비병 여러분?”


어느새 더욱 불어난 구경꾼들은 라프리트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고개를 꼬았다. 그러다 이내 서서히 무슨 소리인지 깨닫고는 두 경비병을 쳐다보았다.


경비병들은 눈을 동그랗게 뜬 대중들의 시선에 당황하며 허둥댔다.



“아, 아무리 최고 국빈님의 동행이시지만 마, 말씀이 지나치십니다. 사람을 함부로 모함하다니요.”

“포기를 모르시네요.”


한숨을 쉰 라프리트는 구경하는 사람들에게 시선을 옮겼다.



“여러분들 중 사고를 목격하신 분께 여쭙니다. 그 사고 당시 이 두 사람은 현장에 있었습니까?”


과연 빈번히 사고가 벌어졌다고 하더니 사고를 목격한 사람은 적지 않게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입을 모아 말했다.


――사고가 벌어진 현장에 두 경비병은 있었다고. 사고가 벌어지자마자 바로 달려왔다고.


한 명도 아니고 전원이 같은 이야기를 하니 그나마 중립을 유지하고 있던 소수도 등을 돌렸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던지 경비병들은 최후의 발악을 하였다.



“그저 타이밍이 바쁜 게 아니었습니까. 저흰 직무에 충실하게 열심히 순찰했을 뿐입니다!”

“한 번도 아니고 매번 정확히 현장에 있다는 게 말이나 되는 소리라고 보십니까?”

“즈, 증거! 저희가 했다는 증거라도 있으십니까?! 증거도 없이 엄한 사람을――”

“――있습니다.”


단호한 목소리에 경비병들은 몸을 떨었다. 그와는 대조적으로 여유롭기만 한 라프리트는 안경을 추켜세우고는 천천히 다리 위를 거닐었다.


구경하던 사람들은 그런 그녀에게 길을 터줬고, 점점 모여든 사람에 의해 길이 막혀 지나가려던 마차까지 무슨 일인가 하고 멈춰 섰다.


그런 모두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라프리트는 입을 열었다.



“이야기했듯 제법 섬세한 작업이었을 겁니다. 조금만 어긋나더라도 마차는 무사히 지나가겠죠. 그래서 당신들은 이곳에 있었어야 했습니다. ――정확한 순간에 설치된 마법을 발동하기 위해서.”


그렇게 라프리트가 멈춰 선 곳은 끝 쪽의 난간. 딱 다리의 중앙이 제일 잘 보이는 곳이었다.



“네. 바로 이곳에서요.”

“그, 그게 무슨! 그걸 지금 증거라고 말씀하시는 겁니까?!”


발뺌할 수도 없는 결정적인 증거이건만. 되려 본인들이 더 잘 알고 있을 텐데도 저런다. 라프리트도 어이가 없었던지 헛웃음을 터뜨렸다.



“끝까지 발뺌하다니. 다른 의미로 대단하네요. 그럼 좋아요. 그렇게 원하시니 낱낱이 밝혀드리죠. 당신들이 범인이라는 걸.”


미소 지은 라프리트는 말했다.



“우선 범행 방법은 간단합니다. 언급했듯이 다리 밑에 설치된 마법으로 돌풍을 불게 하여 지나가던 마차끼리 부딪치게 한 것이죠. 그리고 그를 위해서 범인은 이 다리의 중앙이 잘 보이는 곳에 있어야만 했죠. 그럼, 여기서 질문입니다. 설치된 마법을 발동하기 위해선 뭐가 필요할까요?”

“마력······입니까?”

“정답이에요. 하지만 마광석이 달린 것이었다면 간단한 조작만으로도 발동이 되었을 텐데······ 당연하다는 듯이 마력이 필요하다고 하시네요?”

“······.”

“뭐, 좋아요. 넘어가도록 하죠.”


경비병들은 분한 듯 입술을 깨물었다.


‘벌써 그러면 쓰나. 이제부터 자신들의 만행이 밝혀질 차례인데.’


주먹을 꽉 쥐는 경비병들을 리아는 냉소로 보았다. 그리고 옥구슬 같으면서도 자비 따윈 없는 냉철한 라프리트의 목소리가 울렸다.



“너무 질질 끄는 것도 통행에 방해가 되니 어서 끝내도록 하죠.”


탁탁.


라프리트는 원형의 평평한 난간 위를 두드렸다.



“이 난간은 다리 밑에 설치된 술식과 이어져 있습니다. 당연하지만 보면서 마법을 발동시키려면 가까운 곳에 있어야겠지요. 발밑이 어둡다고 이들은 당당하게 이곳에 서서 술식을 조작했던 거죠. 마광석도 설치되지 않았기에 평소에는 들킬 염려도 없고. 계획을 실행할 때 마력을 주입하긴 하지만······ 사람들은 마차 사고로 정신이 없어 이쪽엔 신경조차 쓰지 않았겠지요.”

“이, 이건 모함이야! 어디에 술식이 그려져 있다고!”

“그, 그만. 멈춰!!”


다른 한 명이 흥분한 경비병을 말리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렇게 확신한다면 당신이 먼저 마력을 주입해서 여기에 술식이 있다는 걸 증명해봐!!”

“흐음. 좋아요. 그렇게 하도록 하죠.”


가볍게 대답한 라프리트.


소리친 경비병은 표정이 밝아졌다. 이 많은 사람을 모두 다리 밑으로 데려가 확인시켜주는 건 상식적으로 무리이니 저런 것이지 않을까. 하지만 다른 한 명은 불안해졌던지 반대로 얼굴이 창백해졌다.


이쯤만 되도 대강 범인이 누구인지는 뻔하다. 그런데도 라프리트는 굳이 증명하기로 하였고, 그녀는 지켜보던 사람 중 한 명을 가리켰다.



“거기 계신 분. 죄송하지만 그 널빤지를 저에게 팔아주시겠나요? 값은 후하게 쳐 드리도록 하죠.”

“어, 어, 이거 말입니까? 예예. 되고 말굽죠.”


딱 보기에도 배달 중인 물품인 듯싶었지만, 지목당한 남성은 차마 거절할 수 없는 분위기에 널빤지를 팔게 되었다.


그런 남성에게 안네가 다가가 대금을 치렀고, 멍하니 내민 남성의 손에는······ 주금화 1장이 들려 있었다.


널빤지 한 장의 가격치고는 말도 안 되는 파격적인 가격. 아마 사례비가 포함되어 있지 않을까 싶다.


시원스레 거금을 건네는 모습에 사람들이 놀라고 있지만, 라프리트는 전혀 거들떠보지도 않고 본인이 직접 널빤지를 들고 뚜벅뚜벅 걸어갔다.


그리고 어느 한 지점에 내려놨다.


그곳은 당연히 마법이 발동하는 지점인 다리의 중앙으로, 한 치의 오차도 있지 않았다.


‘아. 그래서 라프리트 씨는 계속 안경을 쓰고 계셨던 거구나.’


시크한 안경이 나름 잘 어울리기는 했지만 어쩐지 계속 쓰고 있더라 싶었더니. 라프리트는 처음부터 본인이 이번 사건을 해결하려고 했었나 보다. 저 안경은 그것을 위해 필요했던 것이고.


이러한 사실을 깨닫는 동안 라프리트는 난간으로 돌아왔고 곧장 손을 올렸다.



“시작하죠.”


말을 함과 동시에 라프리트는 마력을 담았다. 확실하게 하기 위함인지 구경하던 사람들도 모두 느낄 수 있게 필요 이상의 많은 양이었다.


생각지도 못한 방대한 마력에 사람들은 놀라 소리쳤고······ 경비병들의 안색은 흐려졌다. 하지만 믿는 구석이 있는지 애써 표정을 수습하였다.


‘헛된 믿음이지만.’


그것도 모르고 경비병들은 판자가 깜깜무소식이자 화색이 돌았다.



“것 보라고. 아무 일도 안 벌어지잖아! 그런데 갑자기 나타나서는 무슨 마법이 설치되어있다느니 헛소리를 지껄이면서 애먼 사람을 범죄자로 몰아! 최고 국빈이면 다야?! 탐정 놀이가 하고 싶었으면 너희들끼리 하라고!”


대중들도 아무런 반응이 없음에 진짜 헛다리 짚은 게 아니냐면서 술렁거렸다.


이러한 반응에 살길을 찾았다고 생각했는지 희희낙락한 경비병들은 더더욱 크게 억울하다며 고래고래 소리 질렀다.


언뜻 보면 라프리트가 불리한 상황. 하지만 그녀는 태평한 태도를 일관하며 무심히 난간에서 손을 뗄 뿐이었다.



“음. 아무런 반응이 없네요.”

“역시――”

“――그럼 이번엔 당신들의 차례입니다.”

“뭐······?”

“못 들으셨습니까. 당신들의 차례라고 했습니다만. 설마 본인들은 쏙 빠질 생각이었나요? 남에겐 해보라 하고는.”

“이, 이미 술식 같은 건 없다는 게 확인했잖아! 직접 그걸 증명해놓고는 바로 까먹은 거야?!”

“혼자 뭘 착각하고 있던 겁니까? 도대체 제가 언제 술식이 없다는 걸 증명했다고. 저는 그저 제 결백을 밝혔을 뿐입니다.”

“······.”


그제야 사태를 파악했는지 경비병들의 안색이 파래졌다.



“제가 한 건 여기에 설치된 마법과 저는 아무런 연관도 없다는 걸 이 자리에 있는 모두에게 보인 것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다리를 건너는 사람이 하루에만 몇 명인데, 이런 난간에 아무도 손을 대지 않을 리가 없잖습니까? 제정신이 박힌 사람이면 당연히 조처해놨겠죠. ――그래요. 마력 인증 같은 것으로요.”


라프리트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러니 이번엔 여러분들의 차례입니다. 억울하시다 했으니 자신의 손으로 결백을 증명하시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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