람의 계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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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스연
작품등록일 :
2015.03.21 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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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9.01 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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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4.27 0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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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의 계승자 - ep.5 - 전장에 떨어지다(5)

DUMMY

루도가 있는 곳은 흑연기사단의 보병숙소쯤 되는 곳이었다. 판자 틈으로 밖의 전경을 완벽히 파악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간혹 돌아다니는 병사들의 무장상태와, 그들의 대화로 상황을 판단하는 게 전부였다. 그들이 말하길 기사단 본영은 여기서 동쪽에 위치했고, 기병대를 비롯한 주력도 모두 그곳에 대기하고 있었다. 때문에 만약 여기서 빠져나가려 한다면 동쪽만은 피해야 했다. 그야말로 사자의 아가리 속으로 뛰어드는 꼴이기 때문이다.

본영 한가운데 떨어지는 최악의 상황은 면했지만, 그렇다고 탈출이 쉬워진 것은 아니었다. 보병대는 여기서 하룻밤을 묵고 갈 생각인지 아예 목책을 세워놓았고, 기병 몇몇이 수시로 본영과 이곳 사이를 순찰하고 있었다. 밖으로 나가긴커녕 소리 한 번 잘못 질렀다간 바로 발각될 우려가 있었다.

한편 둘이 기회를 잡지 못하고 헛되이 시간만 보내는 동안, 이칼롯 쪽은 열심히 주변을 수색하고 있었다. 루도와 헤어진 지 반나절이 지났을까, 일행은 기어이 그와 접선하는 데 성공했다.


“뾰로롱~뿅뿅~.”


처음 그 소리를 들었을 때 루도와 위첼은 들킨 줄 알고 사색이 되어 몸을 웅크렸다. 둘은 여차하면 그대로 돌파할 생각으로 조심스럽게 무기를 쥐었다. 그러나 상자 밖에서는 창을 고쳐 쥐는 기척이라든지, 부산스런 발자국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무슨 일인가 싶어 가슴을 콩닥거리고 있는데 다시 조금 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뾰로롱~뿅뿅. 루도 클로람은 있으면 대답하세요~.”


‘으잉?’


그것은 레미나의 목소리였다. 루도는 아주 천천히, 조심스럽게 짚더미를 치우고는 상자 위로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그녀가 어떻게 여기까지 들어온 걸까?

하지만 창고 안에 치마를 곱게 차려입은 금발 소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 작게 패인 흙구덩이 안에 똬리를 틀고 있는 뱀 한 마리가 눈에 들어왔다.


“앗, 있다 있어. 여러분~찾았어요.”


“으극...”


루도는 하마터면 비명을 지를 뻔했다. 물론 그가 기겁한 것은 뱀이 말을 하기 때문이 아니었다. 하도 대단한 걸 많이 봐서 이젠 그 정도 가지고는 놀랄 거리도 안 된다. 그러나 그 눈! 뱀의 초롱초롱한 두 눈동자와 마주친 순간 온몸에 소름이 쫙 돋았다. 무슨 일인가 싶어 고개를 내밀던 위첼도 뱀을 발견하자 일순 경직됐다.


“레, 레미나?”


만약 미리 그녀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다면 당장 뱀의 머리통을 짓밟아 버렸을 것이다. 뱀의 머리에는 으레 그러한 파충류의 날카로운 눈이 아닌, 강아지나 햄스터에게서나 볼 수 있는 그렁그렁한 눈동자가 척 붙어 있었다. 단지 눈만 바뀐 것일 뿐인데도 바라보는 입장에선 더할 나위 없이 혐오감이 느껴졌다.

루도는 슬쩍 위첼의 눈치를 살피고는, ‘공주’가 아닌 그녀의 이름으로 불렀다. 여기서 그녀의 존재까지 들킬 수는 없었다.


“...레미나 맞지? 그런데 대체 무슨 꼴이야 그건?”


뱀은 강아지 눈을 한 것도 모자라 이번에는 방실방실 웃기까지 했다.


“이건 내가 만든 일루젼이야. 진짜 나는 여기서 서쪽 10km쯤 떨어진 오두막에 있어. 아, 제리온이 위저드아이(Wizard eye)로 내 일루젼과 시야를 공유시켜 놓았어. 내가 보는 걸 다른 사람들도 보고 있다는 뜻이지.”


“아니, 그건 아무래도 괜찮은데...그 눈은 대체...”


“응? 눈이 뭐가?”


그녀는 뭐가 문제인지도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야기인즉슨 그녀는 살면서 뱀을 본 적이 한 번도 없고 그저 동화책에서 본 삽화를 떠올려 즉흥적으로 일루젼을 창조한 것인데, 하필 눈에 관한 기억만 과도하게 왜곡된 것이었다. 그런 모양새를 한 일루젼이 이곳까지 들키지 않고 도달한 것도 기적에 가까웠다.

여하튼 그녀와 접선한 것은 굉장한 행운이었다. 레미나는 루도가 떨어졌던 지역을 중점적으로 수색했고, 마침 그곳에 군대가 있다는 걸 발견하고부터는 시야의 사각, 혹은 숨어있을 만한 장소를 샅샅이 뒤지고 다녔다. 루도 역시 추락지에서 멀지 않은 장소에 있었던 게 접선을 성사시키는 데 커다란 역할을 했다.

한편 위첼은 촉각을 곤두세운 채 둘의 대화에 집중했다. 루도에게 동지가 늘어났다는 건 자신에겐 독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침 레미나도 긴장한 그를 발견하곤 물었다.


“요 분은 누구셔? 아스트리카 병사?”


“아니, 일단은 안개송곳니 쪽 인간인데...이름은 위첼이라고...”


“어머머, 안개송곳니?”


그녀는 몰랐지만 시야를 공유하던 제리온 쪽에서는 일대 소란이 일었다. 그들은 루도가 죽네사네, 왜 안개송곳니가 여기 있느니 하는 문제로 대공황을 일으키고 있었다.

루도는 못마땅한 투로 상황을 설명했다. 어쩌다보니 위첼과 마주치게 되었는데, 피차 흑연기사단에 붙잡히면 난감한 상황이라 어쩔 수 없이 휴전에 들어갔다고. 레미나는 그의 설명에 눈을 반짝였다.


“그으래? 그럼 둘이 힘을 합쳐서 빠져나오면 되겠네. 아, 위첼이라고 했죠? 반가워요. 전 레미나라고 해요.”


“으....응?”


그건 루도도 위첼도 예상하지 못한 반응이었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지만, 레미나는 안개송곳니를 향한 적개심이 다른 사람보다 훨씬 흐릿했다. 끔찍한 사건을 겪은 로샤단 사람들과 달리 그녀는 그들 조직에 대해서 아는 바가 없었다. 정보라고 해봤자 제리온에게 단편적으로 들은 게 전부였다. 이런 입장이다 보니 그녀는 둘이 힘을 합치라고 스스럼없이 말할 수 있었다.

그녀의 발언에 루도는 즉시 기분이 언짢아졌다. 그러나 새로운 패러다임의 방향성이 제시되었다는 점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지금 네가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건지 알아?”


“물론. 하지만 적의 적은 아군이잖아? 난 여기까지 오면서 기사단의 경계 태세, 편제, 순찰병력 등을 소상히 파악했어. 우리가 탈출 루트를 유도해주긴 하겠지만, 거기까지 도달하는 건 루도 혼자 해내야 해. 말하지 않아도 알겠지만 그건 대단히 위험한 작업일 거야. 목숨이 걸린 상황인데, 일단은 서로 손을 잡는 게 낫지 않을까?”


레미나는 조곤조곤 설명해나갔다. 그녀의 발언은 두 번 생각할 필요도 없는 정론으로, 루도도 숨어 있는 내내 의식하고 있던 부분이기도 했다. 그러나 자기가 고민하는 것과 남에게 직접 듣는 것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었다.

사실 스벤달을 보았을 때부터 루도에겐 한 가지 고민이 생겼다. 자신만 이곳에서 빠져나가도 좋은 건지, 누군가를 구할 수는 없는 것인지. 그 의문은 레미나를 만나며 박차를 가했고, ‘가능성’이라는 요소가 수면 위로 떠오르는 순간 그는 위첼을 끌어들이기로 결심했다.


“야, 흰머리. 휴전계약 연장하자. 여길 빠져나가 안전지대에 도착할 때까지로.”


“...뭐?”


위첼은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루도 쪽에서 먼저 그런 제안을 하리라곤 생각지 못했는지, 그의 얼굴은 즉시 의혹으로 가득 찼다. 루도가 말했다.


“여기 있는 내 동료가 탈출 루트랑 적의 편재에 관한 정보를 알려줄 거야. 그걸 알려주는 대가로, 내게 전폭적으로 협력해. 설마 날로 먹으려는 생각은 아니겠지?”


위첼은 말이 없었다. ‘전폭적으로 협력한다’라는 건 모양새가 좋다 뿐이지 결국 루도의 명령에 따라야 한다는 뜻이었다. 당연히 그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제안이었다. 그러나 레미나의 정보가 없으면 기사단 진지 안을 방황하다 잡힐 확률이 높고, 몰래 루도를 따라간다 해도 종국에는 로샤단과 마주치게 된다.

이런 경우에 위첼은 남들보다 훨씬 융통성을 발휘했다. 안개송곳니와 로샤단의 적대관계를 떠나서 그는 일단 이곳에서 빠져나갈 수 있는 가장 확률 높은 방안을 따져보았고, 그건 두말 할 것도 없이 루도를 따라가는 것이었다. 그리고 휴전계약을 연장한다는 말은, 적어도 이 난관을 뚫을 때까진 로샤단에게 공격받을 일이 없음을 의미했다. 여러 이해관계가 들어맞자 결국 그는 자존심을 굽혔다. 루도가 생각보다 믿을 만한 인물이라는 점도 그가 결단을 내리는 데에 한몫했다.

그가 말했다.


“...뭘 어쩔 생각인데?”


“붙잡힌 백천기사단 포로들. 그들을 구출해 함께 빠져나갈 거야. 고작 19명을 수용할 감옥이면 그리 방비가 잘 되어 있지도 않겠지.”


실로 대담한 제안이었다. 자기 몸뚱어리 하나 추스르기도 힘든 마당에 포로들까지 함께 데려가자니, 용감함을 넘어 무모하다고까지 생각될 정도였다. 물론 루도도 그 정도까지 생각 없는 인간은 아니었다. 그가 이런 결정을 내린 데엔 애초에 그들을 살려둘 생각이 없던 스벤달의 발언과, 포로들 내에 지인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위첼이 물었다.


“왜 기사들만이지? 포로라고 하면 다른 민간인 여자들도 잔뜩 있는데. 오히려 기사들은 군인으로서의 각오라도 했겠지만, 지금 밖의 여자들은 아무 영문도 모르고 끌려온 사람들뿐이야.”


“내가 그걸 생각 안 해봤겠냐? 일단 기사들은 자기 몸은 스스로 챙길 수 있어. 말을 탈 줄 알고, 무기도 다룰 줄 아니까. 내 작전은 포로들을 감옥에서 꺼내고, 그다음에는 각자 알아서 탈출 루트로 빠져나간다는 거야. 우리 목숨도 간당간당한 판에 그 사람들까지 챙겨줄 여유가 있을 리 없지. 하물며 전문 군인도 이 정도인데, 민간인, 그것도 여자를 데리고 여기서 빠져나갈 수는 없어.”


어떤 관점에서 보면 잔인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발언이었지만 루도는 담담하게 말했다. 하지만 그건 그 상황에서 떠올릴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누군가를 구한다는 건, 자신도 살아남는다는 걸 전제하에 이루어져야 한다. 만약 레미나의 도움이 없었다면 포로들 따윈 거들떠도 안 봤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민간인을 데리고 간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의 망설임 없는 대답에 위첼은 손가락이 간질거리는 것을 느꼈다. 역시 이 남자는 살려두면 위험할 거라고 생각하면서, 그는 루도의 작전에 동의했다.


탈출시각은 막 동이 트기 전의 새벽으로 정했다. 그때가 가장 방비가 허술하고, 병사들의 경계 상태도 해이해지기 때문이다. 날이 최대한 어두워지길 바라며 둘은 다시 반나절을 창고에서 대기했다. 그사이 레미나의 일루젼은 바삐 움직였다. 그녀는 진지 곳곳을 돌아다니며 가장 동선이 짧은 탈출 경로를 분석하는 한편, 군마 20필 이상이 마련되어 있는 마구간과 포로들이 수용된 감옥의 위치도 확인해 놓았다. 또한 해가 지자 그녀는 조심스럽게 초병에게 접근해 그네들의 암구호를 확보했다.

사실 이날 작전의 최대 공로자는 바로 레미나로, 반나절이 넘는 잠입활동 중 그녀의 독특한(섬짓한) 일루젼이 단 한 번도 흑연기사단에게 발각되지 않았다는 것은 기적에 가까웠다.

결행시각이 다가오자 루도와 위첼은 조심스럽게 창고 밖으로 나왔다. 진지는 낮의 소란스러움은 온데간데없이, 병사들의 코고는 소리와 풀벌레 우는 소리를 제외하곤 적막이 감돌았다. 자정을 넘긴 시각인지라 주위는 칠흑 같이 어두웠고, 피워놓은 모닥불도 대부분 사그라져 얼마 남지 않은 불씨만 잿더미 사이에서 굼실거리고 있었다.

처음 밖으로 나왔을 때 둘은 가장 먼저 서로를 쳐다보았다. 아까와는 달리 언제라도 무기를 뽑을 수 있는 상황. 공격한다면 지금이 최적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서로를 바라보기만 할 뿐, 누구도 무기에 손을 가져가진 않았다.

대치상황은 그리 오래가진 않았다. 피차 배신할 뜻이 없음을 확인하자 루도가 말했다.


“뭘 야려? 빨리 가자고.”


“으음...”


둘은 작게 헛기침을 하고는, 최대한 자연스럽게 진영 한복판을 걸어가기 시작했다. 곳곳에 초병들이 경비를 서고 있었지만, 어둠이 적당히 몸을 감춰두고 있는 만큼 둘은 영락없이 흑연기사단의 병사처럼 보였다. 보초를 서던 병사 하나가 둘을 발견하곤 물었다.


“어이, 뭐야 너희들?”


“어어-수고하십니다. 볼일 좀 보러 가는 중입니다, 헤헤.”


“뭔 오줌을 같이 싸러 가냐? 썩 꺼져.”


병사는 늘어지게 하품을 했다. 그에겐 언제 교대시간이 돌아오는지가 중요하지, 한밤중에 돌아다니는 청년들은 전혀 고려대상이 아니었다. 그렇게 한껏 해이해진 경비망을 지나 둘은 포로수용소 앞에 도착했다. 애초에 지휘관이 에나스트란 협약은 안중에도 없었던 만큼 감옥의 규모는 단출했다. 3평 남짓한 감옥에는 19명의 기사들이 한데 엉겨 붙어 잠을 청하고 있었다. 몇몇은 인기척을 느끼고 경계했지만, 대부분은 극도의 피로 때문인지 세상모르게 잠든 상태였다.

감옥 문 앞에는 두 명의 병사가 보초를 서고 있었다. 다행히 감옥은 진지의 맨 구석에 위치하고 있어서 주변을 지나다니는 사람은 거의 없다시피 했다. 그래도 낮이라면 이목이 있었겠지만, 쌀쌀한 새벽바람 때문인지 초병을 제외하곤 전부 천막 안으로 기어들어간 듯했다.

초병과의 거리가 가까워지자 루도는 조심스럽게 검에 손을 가져갔다. 위첼은 글레이브를 등에 메고 있어 함부로 공격 태세를 취할 순 없었지만 그래도 언제든 움직일 수 있게 호흡을 가다듬었다. 10m정도 거리에 도달했을 때 초병 측에서 먼저 말을 걸어왔다.


“가죽.”


“쟁기.”


위첼은 암구호를 말하는 한편, 병사들 옆에 완전히 꺼진 화로를 보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이런 어둠이라면 시체 하나 둘 굴러다녀봤자 누구도 알아채지 못할 것이다.

초병은 올바른 답어가 들리자 겨누던 무기를 거두고는 물었다.


“누구지? 상하번 시간은 아직 멀었는데.”


“아, 늦은 시간에 고생하십니다. 실은 스벤달 장군의 명령으로 포로들을 면회하러 왔습니다.”


“자...장군께서? 그럼 귀하께선 누구신지...”


만약 암구호가 맞지 않았다면 초병들이 루도의 거짓말을 철썩 같이 믿진 않았을 것이다. 둘은 아무렇게나 이야기를 지어내며 병사들에게 접근했고, 그들이 뭔가 이상하다고 눈치 챘을 때에는 이미 검신이 달빛을 반사해 희번덕거리고 있었다.


“커...”


“...!”


두 초병은 제대로 된 비명 한 번 지르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절명했다. 한쪽은 루도의 검에 심장이 관통당했고, 한쪽은 위첼에 의해 목이 잘렸다. 루도는 그의 솜씨에 자못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하얀 것이 허공에 호를 그리는가 싶더니, 그 궤도 안에 있던 병사의 목이 툭 떨어져 내렸다. 그의 별명이 백랑(白狼)이라고 했던가? 확실히 하얀 늑대라는 별칭에 어울리는 깔끔하고 예리한 일격이었다.


“뭘 쳐다봐? 빨리 처리해.”


제대로 맞붙으면 승리를 장담할 수 없겠다고 생각하면서, 루도는 감옥 문으로 다가갔다. 그사이 위첼은 시체를 눈이 안 띄는 곳에 옮겨 거적으로 덮어두었다.

포로들은 긴장한 표정이 역력했다. 루도가 말했다.


“백천기사단 분들이시죠? 구하러 왔습니다.”


“구, 구하러 왔다니...당신은 대체?”


“누군지는 알 거 없고. 스벤달 오빌리크는 여러분을 모두 죽일 생각입니다. 이제부터 여길 빠져나갈 테니 제가 시키는 대로 하세요.”


이야기를 나누는 도중 병사 몇몇이 감옥 앞을 지나갔다. 그때마다 루도와 위첼은 재빨리 창을 꼬나쥐고 초병인 척했다. 위첼은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불이란 불은 전부 꺼두었다.

포로들은 처음에는 얼떨떨한 반응이었으나, 빠르게 마음을 다잡았다. 역시 훈련된 군인이라 그런지 놀랄 만큼 상황판단이 빨랐다. 그들 중 하나가 말했다.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오?”


보는 눈이 사라지자 루도는 미리 근처 모닥불 잔해에서 찾아두었던 숯을 꺼내 포로들에게 건넸다. 위첼은 죽은 병사들의 시체를 뒤져 감옥열쇠를 찾았다. 루도가 말했다.


“모두 이 숯으로 갑옷을 새카맣게 칠하세요. 여기 병사들이 여러분을 흑연기사단의 장교라고 밑게끔.”


포로들은 즉시 그의 명령에 따랐다. 그들이 숯으로 열심히 갑옷을 도색하는 동안 루도와 위첼은 계속 뒤돌아서서 초병흉내를 냈다. 포로들이 탈출준비를 하는 5분가량의 시간이 그렇게나 길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갑자기 감옥 관계자가 나타날지도 모르는 일이고, 상하번 교대근무자가 올 가능성도 있었다. 때때로 말을 탄 순찰병이 주위를 지나갈라치면 둘은 쿵쾅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키느라 무진 애를 썼다. 창대를 쥔 손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긴장을 풀기 위해 위첼이 농을 던졌다.


“발도 솜씨가 제법이더라? 호박 정도는 깔끔하게 자르겠어.”


“눈이나 뜨고 얘기해 병신아.”


“...새끼.”


이윽고 포로들의 준비가 끝났다. 위첼이 감옥 문을 열자 검은 갑옷의 기사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루도는 일단 초병들이 가지고 있던 무기를 그들에게 건넸다. 그렇다 해도 여전히 17명은 비무장상태였다. 루도는 최대한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이제 곧 새벽이 다가오려 하고 있었다.


“지금부터 제가 알려주는 말을 잘 들으세요. 우리는 여러분과 함께 가지 않습니다. 제가 알려 드리는 건 마구간의 위치와 탈출 경로뿐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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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6 람의 계승자 - ep.5 - 이별이 그러하듯이(4) +1 15.05.02 893 28 20쪽
205 람의 계승자 - ep.5 - 이별이 그러하듯이(3) +2 15.05.02 697 25 21쪽
204 람의 계승자 - ep.5 - 이별이 그러하듯이(2) +2 15.05.02 777 25 24쪽
203 람의 계승자 - ep.5 - 이별이 그러하듯이(1) +2 15.05.02 594 25 22쪽
202 람의 계승자 - ep.5 - 만남은 늘 갑작스럽게 찾아온다(6) +3 15.05.02 705 29 18쪽
201 람의 계승자 - ep.5 - 만남은 늘 갑작스럽게 찾아온다(5) +5 15.04.29 869 25 19쪽
200 람의 계승자 - ep.5 - 만남은 늘 갑작스럽게 찾아온다(4) +1 15.04.29 947 25 26쪽
199 람의 계승자 - ep.5 - 만남은 늘 갑작스럽게 찾아온다(3) +1 15.04.29 799 25 24쪽
198 람의 계승자 - ep.5 - 만남은 늘 갑작스럽게 찾아온다(2) +3 15.04.29 822 27 18쪽
197 람의 계승자 - ep.5 - 만남은 늘 갑작스럽게 찾아온다(1) +1 15.04.29 762 25 17쪽
196 람의 계승자 - ep.5 - 전장에 떨어지다(8) +4 15.04.28 911 29 16쪽
195 람의 계승자 - ep.5 - 전장에 떨어지다(7) +3 15.04.28 846 26 20쪽
194 람의 계승자 - ep.5 - 전장에 떨어지다(6) +3 15.04.27 719 27 19쪽
» 람의 계승자 - ep.5 - 전장에 떨어지다(5) +3 15.04.27 765 23 17쪽
192 람의 계승자 - ep.5 - 전장에 떨어지다(4) +2 15.04.27 737 23 18쪽
191 람의 계승자 - ep.5 - 전장에 떨어지다(3) +1 15.04.27 741 31 18쪽
190 람의 계승자 - ep.5 - 전장에 떨어지다(2) +2 15.04.27 767 28 19쪽
189 람의 계승자 - ep.5 - 전장에 떨어지다(1) +2 15.04.27 799 32 18쪽
188 람의 계승자 - ep.4 - 바람은 가지 말라 하지만(完) +1 15.04.27 611 34 18쪽
187 람의 계승자 - ep.4 - 바람은 가지 말라 하지만(5) +4 15.04.26 741 25 17쪽
186 람의 계승자 - ep.4 - 바람은 가지 말라 하지만(4) +1 15.04.26 939 29 16쪽
185 람의 계승자 - ep.4 - 바람은 가지 말라 하지만(3) +2 15.04.26 743 27 20쪽
184 람의 계승자 - ep.4 - 바람은 가지 말라 하지만(2) +6 15.04.23 787 29 15쪽
183 람의 계승자 - ep.4 - 바람은 가지 말라 하지만(1) +3 15.04.23 846 27 19쪽
182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12) +2 15.04.23 763 26 17쪽
181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11) +3 15.04.23 776 27 15쪽
180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10) +1 15.04.23 689 26 22쪽
179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9) +3 15.04.22 821 30 16쪽
178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8) +3 15.04.22 856 28 15쪽
177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7) +1 15.04.22 786 30 18쪽
176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6) +1 15.04.22 803 24 18쪽
175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5) +2 15.04.22 769 30 15쪽
174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4) +3 15.04.22 919 26 18쪽
173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3) +5 15.04.21 777 28 16쪽
172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2) +2 15.04.21 927 25 14쪽
171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1) +3 15.04.21 814 26 17쪽
170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8) +3 15.04.21 736 25 21쪽
169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7) +2 15.04.21 711 20 15쪽
168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6) +4 15.04.20 760 25 18쪽
167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5) +2 15.04.20 663 21 18쪽
166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4) +1 15.04.20 777 24 17쪽
165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3) +2 15.04.20 746 25 16쪽
164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2) +3 15.04.20 816 21 16쪽
163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1) +1 15.04.20 827 23 21쪽
162 람의 계승자 - ep.4 - 케리아돌의 둥지로(6) +1 15.04.20 838 30 14쪽
161 람의 계승자 - ep.4 - 케리아돌의 둥지로(5) +2 15.04.20 717 26 18쪽
160 람의 계승자 - ep.4 - 케리아돌의 둥지로(4) +3 15.04.19 875 29 18쪽
159 람의 계승자 - ep.4 - 케리아돌의 둥지로(3) +3 15.04.19 957 29 18쪽
158 람의 계승자 - ep.4 - 케리아돌의 둥지로(2) +3 15.04.19 907 27 22쪽
157 람의 계승자 - ep.4 - 케리아돌의 둥지로(1) +5 15.04.19 1,222 47 22쪽
156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10) +6 15.04.18 906 27 21쪽
155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9) +3 15.04.18 779 27 18쪽
154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8) +1 15.04.18 662 25 19쪽
153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7) +2 15.04.18 692 27 18쪽
152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6) +1 15.04.18 756 28 17쪽
151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5) +4 15.04.18 720 23 16쪽
150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4) +1 15.04.18 676 25 17쪽
149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3) +2 15.04.18 760 23 17쪽
148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2) +3 15.04.16 858 30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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