람의 계승자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저스연
작품등록일 :
2015.03.21 02:01
최근연재일 :
2015.09.01 03:28
연재수 :
345 회
조회수 :
362,126
추천수 :
11,009
글자수 :
2,844,987

작성
15.05.04 04:09
조회
727
추천
26
글자
23쪽

람의 계승자 - ep.5 - 부조리(4)

DUMMY

일행은 잔해 사이를 헤치며 걸어갔다. 쓰러진 사냥꾼들은 몇 번 발로 밟아주니 잠잠해졌다. 마을회관 자체규모가 그리 커다란 편이 아니었기 때문에, 현관을 지나 모퉁이를 도니 바로 커다란 미닫이문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문을 열자 방 안의 전경이 눈에 들어왔다. 방 끝자락에 우두머리로 보이는 남자가 책상 앞에 앉아 있고, 그 주변을 여덟 명 정도의 사냥꾼이 둘러싼 구조였다. 잘 보니 아까 여관에서 행패를 부리던 남자들도 보였다.

총 아홉. 일행의 숫자가 훨씬 적지만, 그렇다고 상대 못 할 수준도 아니었다. 애초에, 제리온과 이칼롯 둘만 왔어도 어떻게든 정리가 될 거라 생각했으니까.


“흐음-. 솜씨가 뛰어나군. 텔아단에도 이런 고수는 드문데.”


우두머리로 보이는 남자가 턱을 괸 채 말했다. 루도는 대번에 그 남자의 본질을 파악했다.

실력은 없으면서 허세만으로 남의 머리 위에 군림하는 부류다. 이런 상황까지 와서 여유를 부리는 건 자신들의 쪽수를 믿고 있어서이거나, 아니면 부하들 앞에서 꼴사나운 모습을 보이기 싫어서임이 틀림없다. 곧 죽어도 자신이 강하다고 믿는 그런 녀석들을 루도는 많이 봐왔다.

다른 일행도 그 남자의 허세를 간파했다. 하지만 그쪽에서 먼저 말을 걸어왔기 때문에, 이칼롯은 우선 대화를 시도해보기로 했다. 물론 여기까지 와서 허리를 굽힐 필요는 전혀 없었다. 그가 앞으로 걸어오자 가까이 있던 사냥꾼들이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비켜.”


“뭐...뭐 임마?”


“비켜라.”


말 한마디가 이렇게 위력적일 수도 없다. 사냥꾼들은 이칼롯의 살기 어린 명령에 좌우로 좍 갈라졌다. 그는 우두머리가 앉은 책상 맞은편까지 걸어가 말했다.


“네가 사냥꾼들의 대장인가? 이 마을에 아주 깜찍한 짓을 했더군.”


그와 눈이 마주치자 우두머리는 침을 꿀꺽 삼켰다. 그럼에도 그는 표정에 여유를 잃지 않았다. 적이 코앞까지 왔는데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다니, 허세도 이 정도면 인정해줘야 했다. 우두머리가 말했다.


“그...하핫! 그래. 우리가 이 마을의 수호자다. 법이 사라진 이곳에서 주민들을 지킬 수 있는 건 오직 우리뿐이지.”


“긴 말 하지 않겠다. 당장 이곳에서 꺼져라. 한 시간 주지.”


“...뭐? 너희들이 뭔데? 대체 무슨 권리로...”


이칼롯은 텔슈피드를 책상 한가운데에 수직으로 꽂았다. 사냥꾼들이 대경실색하여 무기를 들었지만 그는 눈짓 한 번만으로 그들을 마비시켰다. 우두머리는 반쯤 공황상태에 빠진 듯했다. 그는 처음 보여주던 자신감은 온데간데없이, 창백하게 질린 체 우뚝 솟은 텔슈피드의 칼날을 바라보았다.


“노...노란색 칼...너, 설마...!”


이제야 일행의 정체를 알아챈 모양이었다. 텔슈피드를 확인하자 다른 사냥꾼들의 표정도 점차 경악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로샤단! 사냥꾼들은 숨 한번 내쉬지 못하고 덜덜 떨었다. 아니, 정말 들이마실 공기가 있긴 한 걸까? 그 연노란 검이 주변의 공기를 전부 빨아들이는 것만 같았다.

로샤단의 현상금이 얼마인지, 그들을 잡았을 때의 이익이 어느 정도인지는 이미 그들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다만 그들의 목을 옥죄는 단 하나의 진실은, 코앞에 그 유명한 이칼롯 제르비안이 있다는 것이었다.


“크렘벨의...어벤저..”


현상금 사냥꾼 사이에서 이칼롯의 경력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그 어떤 고수라 할지라도 하룻밤 사이에 100명을 죽이진 못한다. 아니, 그쯤 되면 이미 고수보다는 학살자라는 명칭이 더 어울린다. 게다가 얼마 전 일쿡에서 보여줬던 일화는 그의 이름을 더욱 공포로 점철되게 하는 데에 일조했다.

사실상 여기서 상황은 끝났다고 봐야 했다. 진형으로 따지면 사냥꾼들이 이칼롯을 포위한 모양새였지만, 오히려 그들은 「이칼롯의 범위 안에 내 목이 있다」는 식으로 해석했다. 커리어만으로 남을 압도한다는 말은 이런 것을 의미하는지도 몰랐다.


“한 시간은 너무 많은 모양이군. 10분 준다. 지금까지 긁어모은 돈 전부 토해내고 떠나라. 그게 싫다면 당장 네놈 목을 날려주지.”


나날이 늘어가는 그의 협박능력에 루도는 짧게 휘파람을 불었다. 협박도 커뮤니케이션의 한 종류라면, 이칼롯은 정말 대단한 달변가임이 틀림없다.

사냥꾼들은 갈등하는 모습이었다. 로샤단을 잡는 거야 진즉에 포기했었지만, 그동안 모은 돈까지 포기하라 하니 밑바닥까지 주저앉은 자존심이 조금씩 부상하기 시작했다. 선뜻 대답이 나오지 않자 제리온은 일을 확실히 하기 위해 매직미사일 다섯 개를 만들어 허공에 띄웠다. 그 연녹색 구체를 보자 아까 그에게 당한 남자가 숨넘어가는 비명을 질렀다.


“히익?! 마, 마법사!”


“여어~. 아깐 고마웠다. 아직도 턱이 얼얼하네.”


“제르카엘시온...멜피드!”


“한 발에 한 명씩이다. 어떻게 할래?”


워낙 둘이 일을 ‘잘’ 풀어나갔기 때문에 루도와 마리네는 나설 일이 거의 없었다. 루도는 아예 느긋하게 팔짱까지 끼고는 사태를 관망했다. 우두머리 쪽은 이미 전의를 상실한 듯했다.


“폼 잡고 따라왔는데 할 게 없네. 나도 할 말 많은데.”


그러자 유미르네가 까르르 웃으며 그의 등에 달라붙었다. 그녀는 의도적으로 가슴을 비비며 말했다.


“너네 둘은 외관상으로 영~아니올시다야. 실력이 있어도 상대를 기죽이지 못하면 말짱 꽝인 경우가 많지. 심리전도 의외로 중요한 변수거든♡”


“...그래서 이게 네 심리전이냐?”


“꺄하하, 눈치챘니?”


그사이 이칼롯 쪽이 결판이 났다. 크렘벨의 어벤저를, 거기다 마법사까지 끼고 상대하는 것은 역부족이라고 판단했는지 우두머리가 고통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 알았다. 지금 당장 마을을 떠나지. 그런데 그...돈은 우리도 텔아단까지 돌아갈 여비라는 게...”


“아니, 전부 다 내놔. 몸 성히 돌아가고 싶다면.”


“큭...”


이칼롯이 텔슈피드를 뽑아 칼집에 집어넣었다. 그것만으로 다시 공기가 순환하기 시작해, 사냥꾼들은 기다란 한숨을 토해냈다.

다시 한 번 우두머리에게 신신당부를 하고나서 일행은 발걸음을 돌렸다. 현관으로 나오자니 아까 기절시켰던 사냥꾼들이 끙끙대며 몸을 일으키는 게 눈에 들어왔다. 문밖에서 셋, 그리고 들어오면서 넷. 사냥꾼의 숫자는 전부 합해도 소대급에도 미치지 못했다. 그런 녀석들에게 마을 전체가 유린당했다니, 루도는 왠지 서글퍼져서 입맛을 다셨다.

가린워드 마을은 이제 법도 인의(仁義)도 없는, 오직 힘만이 지배하는 공간이 되어버렸다. 16명밖에 안 되는 사냥꾼이 100명이 넘는 마을사람들을 유린했고, 일행은 그런 그들을 벌했다. 그리고 로샤단 또한 안개송곳니 암살단에게 많은 것을 잃었다. 힘, 힘이라는 것-

문을 나서며 마지막으로 본 것은, 사냥꾼들이 건물 안을 허겁지겁 돌아다니며 짐을 챙기는 모습이었다. 막 여관으로 돌아가고 있자니 유미르네가 돌연 대열을 이탈했다. 마리네가 어디 가냐고 묻자 그녀는 생긋 웃으며 논두렁을 가리켰다.


“아침이잖니. 일어난 지도 얼마 안 됐고, 산책이나 좀 하다 돌아갈게.”


그녀는 경쾌하게 몸을 흔들며 마을 어귀 방향으로 사라졌다. 그러고 보니 아직 9시도 넘지 않은 이른 시각이었다. 루도는 그제야 자신이 아침도 먹지 않고 나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꼬르륵, 허기진 뱃소리에 그는 헛웃음을 터뜨렸다. 한 끼만 걸러도 이놈의 위장은 기다리질 못하는 모양이다.


“자아, 일도 잘 풀렸겠다, 밥 먹으러 갑시다!”


“오예, 밥!”


루도와 마리네는 신이 나서 여관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한편 제리온과 이칼롯은 무표정한 얼굴로 그 뒤를 따라오고 있었다. 두 사람과의 간격이 벌어지자 제리온이 지나가는 말투로 말했다.


“아까 그렇게 말하긴 했지만, 역시 살려두는 건 위험하지 않아?”


“...그렇지.”


그들이 염려하는 부분은 하나였다. 사냥꾼들이 로샤단의 존재를 파악했다는 것. 이미 정보가 노출되었다고 가정하고 움직인 것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사냥꾼들을 고이 돌려보낼 이유는 없었다. 모든 위험요소를 고려한다면, 역시 입막음을 하는 게 맞지 않았을까?

사냥꾼들은 아직 마을회관에 머물고 있을 것이다. 이칼롯은 돌연 방향을 틀어 마을회관 쪽으로 시선을 고정시켰다. 제리온이 따라오려 하자 그는 작게 고개를 흔들었다.


“나 혼자 갔다 오지.”


“혼자?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니야?”


“둘이나 사라지면 그게 문제지. 루도에겐 잠시 대장간에 들렀다고 말해.”


“으음...”


제리온도 더는 묻지 않고 멀어지는 그의 뒷모습을 배웅했다. 회색 망토가 바람에 나부껴 잔물결을 일으키는 게 보였다. 어제 빨았는데도 피 얼룩이 곳곳에 남아 음침한 기운을 풍겼다.

제리온은 혀를 쩝, 다시고는 루도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크렘벨의 어밴저라...”


***


사냥꾼들에게 지난 3개월은 천국과도 같았다. 가만히 앉아서 목돈이 굴러들어오고, 마음에 안 드는 녀석들은 거리낌 없이 죽여도 아무런 제재가 들어오지 않았다. 사실 돈이 있어도 그다지 쓸 만한 장소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먹을 것은 강탈하면 되고, 여자는 겁탈하면 되니까. 힘이 곧 권력으로 치환되는 가린워드 마을에서, 그들은 석 달 동안 지배자로 군림해왔다.

그게 단 한 시간 만에 끝을 맺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다. 그들보다 훨씬 강한 녀석들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게 그 유명한 로샤단일 줄 누가 알았겠는가. 물론 그들을 잡겠다는 목적 아래 이 마을에 들어온 것은 맞지만, 실제로 그 거물들과 맞닥뜨리리라곤 상상도 못했다. 게다가 석 달간 마을에서 편하게 지내다 보니 본래 목적도 희미해졌고, 곧 그들의 얼굴마저 잊어버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설마 그쪽에서 먼저 칼을 들이밀 줄이야. 사냥꾼 중 몇몇은 아직도 몸의 떨림이 멈추지 않는 모양이었다. 이칼롯 제르비안, 제르카엘시온 멜피드. 이야기를 섞진 않았지만 뒤에는 루도 클로람까지 있었다. 그 자리에 모인 인원만으로도 도합 6천 골드가 넘어가는 어마어마한 범죄자들이다. 때문에 왜 그때 선수를 치지 않았냐며 투덜거리는 이도 있었다. 하지만 누굴 탓하랴.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너나 할 것 없이 짐을 챙기고 있었는데. 이칼롯 보여준 살기는 텔아단에서도 보기 힘든 ‘진짜’였다.


“젠장! 한몫 단단히 챙기고 있었는데 웬 떨거지 같은 자식들이 나타나가지곤...!”


‘떨거지는 아니지.’


우두머리는 일행이 떠난 뒤에야 뒤늦게 큰소리를 치기 시작했다. 그는 마치 ‘실력은 되는데 말빨이 딸려 속아 넘어간 사람’처럼 의자를 마구 걷어찼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그를 신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니까 대충 챙길 만큼 챙겼을 때 떠나야 한다고 몇 번을 말했냐고. 세상에 날로 먹는 게 어디 있냔 말이지.”


“내 말이. 애초에 우리 같은 놈들이 마을 하나를 지배한다는 게 말이 안 되지. 로샤단이 아니어도 다른 실력자가 오면 털릴 운명이었어.”


사냥꾼들은 짐을 싸며 주구절절 썰을 풀어놓았다. 이럴 줄 알았다느니, 욕심이 너무 과했다느니 하는 내용이 대부분으로, 마지막에는 결국 우두머리를 욕하는 것으로 끝을 맺고 있었다.

결국 참다못한 그가 책상을 쾅 내리쳤다.


“이대론 못 끝내!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못 끝내면 어쩔 거유?”


“다른 마을에 있는 놈들 전부 소집해. 다 모으면 넉넉잡아 서른은 되겠지. 그 정도면 어찌어찌 해볼 만한 숫자잖아?”


“서른 가지고 되나...마법사도 있는 데다, 상대는 그 유명한 어밴저라고.”


“에잇, 그래서 뭐! 성공하면 7천 골드다. 이 마을에서 벌어들인 돈의 수십 배나 되는 돈이라고. 로샤단을 눈앞에서 놓치자는 거야?!”


‘애초에 잡을 생각도 없었으면서.’


우두머리의 권위는 이미 밑바닥으로 추락한지 오래지만, 그래도 그의 악에 받친 주장은 제법 다른 사냥꾼들의 구미를 당기는 데에 성공했다. 성공하면 7천 골드, 실패하면 사망. 리스크가 크긴 하지만 애초에 싸움으로 밥 벌어 먹는 자들의 모토는 ‘인생 한탕’이다.

코가 깨진 남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확실히, 몰래 매복하고 있다가 덤비면 이쪽도 승산이 없는 건 아니지. 아까처럼 어이없이 당하지도 않을 거고.”


“그래! 우선권은 이쪽에 있다니까? 그 멍청한 놈들, 우릴 살려둔 것을 후회하게 해주지!”


우두머리는 한껏 기분이 고조되어 큰소리를 쳤다. 그가 워낙 자신만만하게 나오자 다른 자들도 점점 마음이 기울어지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반격 쪽으로 의견이 모아질 즈음이었다. 밖에서 망을 보던 남자가 허겁지겁 안으로 뛰어들어왔다.


“이, 이, 이봐! 밖에...!”


사냥꾼들의 시선이 일제히 출입구 쪽을 향했다. 그곳에는 20대 초반의 여성이 부서진 문의 잔해를 밟고 요염하게 서 있었다. 몸에 착 달라붙는 바지와 가죽조끼를 걸치고, 망토를 치마처럼 허리에 둘러 입었다. 멀리서도 느껴지는 고혹적인 바디라인은 그녀가 발을 내디딜 때마다 그 형태를 달리한다. 그 물결 치는 곡선의 향연은, 차라리 한 마리 뱀이 다가오고 있다고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쏟아지는 햇살이 그녀의 칠흑빛 옷차림을 더욱 돋보이게 했다. 챙 넓은 모자를 깊게 눌러쓰고 있어 눈은 보이지 않지만, 그 아래로 드러난 얼굴 생김새와 보드라운 살결이 그녀가 범상치 않은 미인임을 증명하고 있었다. 그녀가 팔짱을 끼자 가슴이 더욱 아름다운 형태로 모아졌다.


“안녕♡ 멍청한 아저씨들.”


“넌...분명 로샤단과 함께 있던...”


사냥꾼들은 재빨리 그녀를 경계하기 시작했다. 조금 전 그녀는 문밖에 서서 루도에게 장난만 칠뿐, 싸우려는 움직임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왜 이제 와서?

그때 사냥꾼 중 하나가 얼떨떨한 얼굴로 말했다.


“어? 너 설마, 까마귀?”


다르무스의 까마귀. 현상금 사냥꾼들 사이에선 꽤 유명한 이름이었다. 우두머리도 그녀를 알아보곤 눈을 동그랗게 떴다.


“네가...그 까마귀라고? 그런데 왜 로샤단과 함께 움직이고 있는 거지?”


“우훗, 그야 개인적인 사정이 있어서죠.”


“아하! 너, 녀석들을 일망타진하려고 정체를 숨기고 있는 게로군?”


“그게 또 그렇게 되나?”


“하...하하! 운이 따르는군. 까마귀, 우리와 손잡지 않겠나? 로샤단을 잡으면 배당금의 3할을 너에게 주지.”


그는 유미르네를 동업자로 보고, 그녀 쪽에서 자신들의 힘을 빌리러 온 것이라고 어림짐작했다. 사실 ‘까마귀’의 행보를 아는 사람이라면 그게 정상적인 해석이기도 했다.

그의 제안에 유미르네는 생긋 미소 지었다. 그녀는 대답 대신 사냥꾼들의 면면을 좌악 훑어보았다. 모두 열여섯, 아까 기억했던 숫자와 조금도 다르지 않다.


“에이, 난 돈 때문에 여기 온 게 아니에요.”


“응? 그럼 뭐지?”


“뭐랄까...일종의 서비스?”


그녀의 망토가 일순 위로 펄럭였다. 뒤에 있던 자들은 그제야 그녀가 찬 무기를 확인할 수 있었다. 양 허리춤에 걸린 순백색의 검 두 자루.

그녀가 되돌아온 이유를 알았을 때엔, 이미 흑과 백이 뒤엉켜 춤을 추는 중이었다. 텁텁한 톱밥 냄새도 더는 풍기지 않았다.


***


이칼롯은 발걸음을 빨리했다. 더 시간을 지체했다간 사냥꾼들을 놓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막 마을회관에 도착했을 때, 그는 유미르네가 휘파람을 불며 걸어 나오는 것을 발견했다. 서로의 모습을 확인한 순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둘은 제자리에 우뚝 멈춰 섰다.


“어머, 돌아왔네. 뭐 잊고 간 거라도 있나 봐요?”


“...그래.”


사위는 쥐 죽은 듯이 조용했다. 풀벌레 우는 소리도, 바람에 몸을 흔드는 나뭇잎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저 가느다란, 어딘가 격한 운동을 했음이 틀림없는 유미르네의 숨소리가 그의 귓가에 파고들었다.

회관 안에서는 어떤 움직임도 느껴지지 않았다. 조금 전 찾아왔을 때와는 명백히 다른, 소름이 돋을 만큼 싸늘한 정적. 침묵이 모든 것을 설명해주고 있었다.

태양을 등진 게 이칼롯 쪽이었기 때문에, 유미르네의 뒤로 길게 그림자가 늘어졌다. 그림자는 출입문까지 이어져, 마치 그녀의 그림자가 건물 전체를 집어삼킨 것처럼 보였다. 아니, 어쩌면 그녀가 그림자 그 자체였을지도.

그녀는 뺨에 묻은 피를 쓰윽 훔쳤다. 그것만 빼곤 그녀의 옷차림은 조금 전과 다름없이 말끔했다. 이칼롯은 길게 눈을 감았다 뗐다. 충격을 받거나 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녀와 마주한 순간 가슴은 더욱 차갑게 얼어붙었다. 어쩌면, 이렇게 될 줄 이미 알고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는 유미르네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왜 그랬지?”


유미르네의 입꼬리가 귀에 가 걸렸다. 즐거워서가 아닌, 상대방이 가소로워서 짓는 일종의 비웃음이다.


“별로 당신이 신경 쓸 사안은 아니네요. 결과적으로 잘 끝났으면 된 거 아닌가요?”


“네가 나설 만한 일이 아니었어.”


“하아? 그건 무슨 소리? 당신들 전부 손에 피 묻히기 싫어서 벌벌 떨잖아요. 그래서 내가 대신 더러운 일 해주겠다는데, 그게 그렇게 아니꼬운가?”


“유미르네 발렌스, 우리는 살인자 집단이 아니다.”


“...풉! 깔깔깔!”


유미르네는 이제 송곳니를 드러내며 웃기 시작했다. 그 자지러지는 폭소에 정지해있던 시간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산자락에서 불어온 바람이 귀리밭을 휩쓸고는, 유미르네가 있는 곳까지 날아왔다. 그녀의 머리카락도 귀리이삭처럼 파도쳐 흘렀다.

유미르네는 겨우 웃음을 진정시키고는 말했다.


“아하하, 정말이지, 푸훗. 재밌는 사람이네.”


“....”


“이봐요, 이칼롯. 그렇게 말하는 당신도 저 안의 쓰레기들을 죽이러 온 거잖아요? 단지 내가 더 일찍 도착했을 뿐이고. 나랑 당신이랑 뭐가 다르죠? 아니, 이럴 거였으면 왜 아까 그 자리에서 다 죽이지 않은 거예요?”


“그건...”


이칼롯은 대답하기를 주저했다. 그 자리에서 피를 보지 않았던 건, 신의 아이인 루도를 자극하지 않기 위함이었다. ‘충격’의 조건이 무엇인지 모르는 이상, 해가 될 만한 장면은 되도록 보여주지 말자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각성이 어쩔 수 없는 결말이라 해도, 적어도 나타니엘의 마법을 접하기 전까진 루도를 평소의 모습으로 남겨놓는 게 좋았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 더러운 일은 자신이 처리해야 한다는 각오도 있었다. 여러 안 좋은 일을 겪었음에도 루도, 마리네는 아직 천진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그 둘만큼은 언제까지고 본래 모습 그대로 있어주기를 바랐다. 자신은 이미 진창으로 굴러떨어진 지 오래지만 말이다.


“정말 웃기지도 않지. 기세 좋게 쳐들어가서, 아무도 죽이지 않고 나오다니. 그러면 뭐 자기가 성인이라도 되는 거 같나? 위선이 달리 있는 게 아니에요. 처음 봤을 때부터 느꼈지만 오늘은 그 정도가 특히 심하네. 이참에 물어나 볼게요. 당신들, 대체 어떻게 지금까지 살아남은 거예요?”


“...가능하면 죽이지 않는 게 우리 방식이다.”


“그럼 당연히 죽였어야죠. 저것들 살아나가서 당신네 위치 낱낱이 퍼지는 꼴 보고 싶어요? 아, 그래. 뒤늦게나마 뒷수습하러 왔으니 그건 머리가 나빠서 그런 거라고 넘어가죠. 가능하면 죽이지 않는다? 그런 머저리 같은 방침이 어디 있죠? 필요하면, 무조건 죽여야지.”


이칼롯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하지만 그의 험상궂은 표정에도 유미르네는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다.


“너...”


“잔인하다는 건 합리적인 거예요. 비겁한 건 이성적인 거죠. 아무도 더럽다고 욕하지 않아요. 죽은 자는 말이 없으니까. 관용? 좋죠. 그런데 그건 힘 있는 자의 취미에요. 약하면 약한 대로, 어떻게든 남을 밟고 아등바등 살아야 하는 게 정상 아닌가요? 솔직히 난 당신네 로샤단이 뭘 믿고 그리 착한 척하는지 이해를 못 하겠네요. 약해빠진 주제에.”


“우리가...약하다고?”


“어머, 겨우 이 정도로 발끈할 줄은 몰랐네. 바로 며칠 전에 제스터에게 몰살당할 뻔 해놓고. 뭣하면 내가 지금 이 자리에서 증명해 줄까요?”


이칼롯의 눈동자가 조금 커졌다. 모자에 가려 음영이 드리워진 그녀의 눈이, 비아냥 섞인 미소가, 그리고 허리춤에 놓인 손목이 결코 지금 말한 것이 단순한 도발이 아님을 설명해주고 있었다. 그의 분위기가 급변하자 유미르네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더 날을 세워놓는 게 좋을 거예요. 지금의 로샤단은, 솔직히 7천 골드짜리라고 하기도 민망하네요. 허수아비만 잔뜩 모여가지고선.”


“빈정대는 건 그쯤 해라, 유미르네.”


“네, 네. 잔소리는 여기서 끝내지요. 대장.”


유미르네는 어깨를 으쓱해 보이고는 타박타박 걸어가기 시작했다. 허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교태부리는 그녀를, 이칼롯은 착잡한 심경으로 바라보았다. 그녀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 걸까. 그녀가 일행에 합류한 가장 큰 이유는 루도, 마리네의 소꿉친구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 눈앞의 여인에게서 루도와의 접점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막 그의 어깨를 지나치기 전, 유미르네는 이칼롯의 귓불에 가볍게 키스하며 말했다.


“아, 그래도 당신 실력은 인정할게요. 크렘벨의 어밴저씨.”


“....”


“하루만에 87명을 죽였다죠? 나도 이 짓으로 밥 벌어먹고 산지 꽤 된 지라, 당신 같은 눈은 잘 알고 있어요. 내가 먼저 선수를 치긴 했지만, 당신도 돌아온 걸 보니 내 추측이 맞는 모양이네요. 그 ‘살인자의 눈’은.”


작별인사로 귓불 아래를 살짝 깨물고 나서, 유미르네는 여관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이번에는 이칼롯 쪽에서 그녀의 손목을 낚아챘다. 그가 말했다.


“나도...너와 같은 눈을 아주 잘 알지. 전에 더러운 일을 겪은 적이 있어서 말이야.”


“흐응? 내 눈은 무슨 눈인데요?”


“...무언가를 숨기는 자의 눈.”


순간 유미르네의 눈동자가 평정을 잃고 흔들렸다. 그녀는 재빨리 손목을 뒤로 빼려 했으나 이칼롯 쪽에서 놓아주질 않았다. 다급한 마음에 반사적으로 허리춤에 손을 가져갔을 정도로, 그녀가 느낀 심적 동요는 대단한 것이었다.




***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2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람의 계승자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247 람의 계승자 - ep.6 - 레인스터 방어전(4) +3 15.05.12 901 26 26쪽
246 람의 계승자 - ep.6 - 레인스터 방어전(3) +3 15.05.12 865 24 20쪽
245 람의 계승자 - ep.6 - 레인스터 방어전(2) +5 15.05.11 972 27 21쪽
244 람의 계승자 - ep.6 - 레인스터 방어전(1) +4 15.05.11 958 24 18쪽
243 람의 계승자 - ep.5 - 왕하직속뭐시기(完) +2 15.05.11 1,078 25 20쪽
242 람의 계승자 - ep.5 - 왕하직속뭐시기(2) +1 15.05.11 785 23 21쪽
241 람의 계승자 - ep.5 - 까마귀가 우는 밤(5) +6 15.05.10 756 22 15쪽
240 람의 계승자 - ep.5 - 까마귀가 우는 밤(4) +1 15.05.10 794 23 17쪽
239 람의 계승자 - ep.5 - 까마귀가 우는 밤(3) +2 15.05.10 887 22 17쪽
238 람의 계승자 - ep.5 - 까마귀가 우는 밤(2) +1 15.05.10 777 25 13쪽
237 람의 계승자 - ep.5 - 까마귀가 우는 밤(1) +4 15.05.09 888 25 28쪽
236 람의 계승자 - ep.5 - 왕하직속뭐시기(1) +3 15.05.09 921 24 21쪽
235 람의 계승자 - ep.5 - 승리 뒤에 오는 것들(7) +2 15.05.09 1,017 25 18쪽
234 람의 계승자 - ep.5 - 승리 뒤에 오는 것들(6) +5 15.05.08 1,032 29 24쪽
233 람의 계승자 - ep.5 - 승리 뒤에 오는 것들(5) +2 15.05.08 893 24 24쪽
232 람의 계승자 - ep.5 - 승리 뒤에 오는 것들(4) +2 15.05.08 909 23 26쪽
231 람의 계승자 - ep.5 - 승리 뒤에 오는 것들(3) +2 15.05.08 903 25 19쪽
230 람의 계승자 - ep.5 - 승리 뒤에 오는 것들(2) +2 15.05.08 766 24 24쪽
229 람의 계승자 - ep.5 - 승리 뒤에 오는 것들(1) +5 15.05.07 774 26 19쪽
228 람의 계승자 - ep.5 - 빗속으로(10) +2 15.05.07 899 24 24쪽
227 람의 계승자 - ep.5 - 빗속으로(9) +1 15.05.07 823 22 24쪽
226 람의 계승자 - ep.5 - 빗속으로(8) +4 15.05.06 742 27 22쪽
225 람의 계승자 - ep.5 - 빗속으로(7) +2 15.05.06 987 25 29쪽
224 람의 계승자 - ep.5 - 빗속으로(6) +3 15.05.06 812 24 28쪽
223 람의 계승자 - ep.5 - 빗속으로(5) +4 15.05.05 940 27 24쪽
222 람의 계승자 - ep.5 - 빗속으로(4) +2 15.05.05 771 24 23쪽
221 람의 계승자 - ep.5 - 빗속으로(3) +1 15.05.05 652 23 15쪽
220 람의 계승자 - ep.5 - 빗속으로(2) +2 15.05.05 779 25 18쪽
219 람의 계승자 - ep.5 - 빗속으로(1) +4 15.05.05 695 24 15쪽
218 람의 계승자 - ep.5 - 사냥감의 반전(4) +2 15.05.05 927 25 23쪽
217 람의 계승자 - ep.5 - 사냥감의 반전(3) +3 15.05.04 945 23 23쪽
216 람의 계승자 - ep.5 - 사냥감의 반전(2) +2 15.05.04 875 23 21쪽
215 람의 계승자 - ep.5 - 사냥감의 반전(1) +1 15.05.04 783 25 20쪽
214 람의 계승자 - ep.5 - 부조리(5) +2 15.05.04 722 25 15쪽
» 람의 계승자 - ep.5 - 부조리(4) +2 15.05.04 728 26 23쪽
212 람의 계승자 - ep.5 - 부조리(3) +3 15.05.03 850 30 18쪽
211 람의 계승자 - ep.5 - 부조리(2) +3 15.05.03 772 23 23쪽
210 람의 계승자 - ep.5 - 부조리(1) +2 15.05.03 865 24 20쪽
209 람의 계승자 - ep.5 - 이별이 그러하듯이(7) +5 15.05.03 801 29 25쪽
208 람의 계승자 - ep.5 - 이별이 그러하듯이(6) +2 15.05.03 905 25 22쪽
207 람의 계승자 - ep.5 - 이별이 그러하듯이(5) +4 15.05.02 946 30 21쪽
206 람의 계승자 - ep.5 - 이별이 그러하듯이(4) +1 15.05.02 893 28 20쪽
205 람의 계승자 - ep.5 - 이별이 그러하듯이(3) +2 15.05.02 696 25 21쪽
204 람의 계승자 - ep.5 - 이별이 그러하듯이(2) +2 15.05.02 777 25 24쪽
203 람의 계승자 - ep.5 - 이별이 그러하듯이(1) +2 15.05.02 594 25 22쪽
202 람의 계승자 - ep.5 - 만남은 늘 갑작스럽게 찾아온다(6) +3 15.05.02 705 29 18쪽
201 람의 계승자 - ep.5 - 만남은 늘 갑작스럽게 찾아온다(5) +5 15.04.29 869 25 19쪽
200 람의 계승자 - ep.5 - 만남은 늘 갑작스럽게 찾아온다(4) +1 15.04.29 947 25 26쪽
199 람의 계승자 - ep.5 - 만남은 늘 갑작스럽게 찾아온다(3) +1 15.04.29 799 25 24쪽
198 람의 계승자 - ep.5 - 만남은 늘 갑작스럽게 찾아온다(2) +3 15.04.29 822 27 18쪽
197 람의 계승자 - ep.5 - 만남은 늘 갑작스럽게 찾아온다(1) +1 15.04.29 762 25 17쪽
196 람의 계승자 - ep.5 - 전장에 떨어지다(8) +4 15.04.28 911 29 16쪽
195 람의 계승자 - ep.5 - 전장에 떨어지다(7) +3 15.04.28 846 26 20쪽
194 람의 계승자 - ep.5 - 전장에 떨어지다(6) +3 15.04.27 719 27 19쪽
193 람의 계승자 - ep.5 - 전장에 떨어지다(5) +3 15.04.27 764 23 17쪽
192 람의 계승자 - ep.5 - 전장에 떨어지다(4) +2 15.04.27 737 23 18쪽
191 람의 계승자 - ep.5 - 전장에 떨어지다(3) +1 15.04.27 741 31 18쪽
190 람의 계승자 - ep.5 - 전장에 떨어지다(2) +2 15.04.27 767 28 19쪽
189 람의 계승자 - ep.5 - 전장에 떨어지다(1) +2 15.04.27 799 32 18쪽
188 람의 계승자 - ep.4 - 바람은 가지 말라 하지만(完) +1 15.04.27 611 34 18쪽
187 람의 계승자 - ep.4 - 바람은 가지 말라 하지만(5) +4 15.04.26 740 25 17쪽
186 람의 계승자 - ep.4 - 바람은 가지 말라 하지만(4) +1 15.04.26 939 29 16쪽
185 람의 계승자 - ep.4 - 바람은 가지 말라 하지만(3) +2 15.04.26 743 27 20쪽
184 람의 계승자 - ep.4 - 바람은 가지 말라 하지만(2) +6 15.04.23 786 29 15쪽
183 람의 계승자 - ep.4 - 바람은 가지 말라 하지만(1) +3 15.04.23 845 27 19쪽
182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12) +2 15.04.23 762 26 17쪽
181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11) +3 15.04.23 776 27 15쪽
180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10) +1 15.04.23 689 26 22쪽
179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9) +3 15.04.22 821 30 16쪽
178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8) +3 15.04.22 856 28 15쪽
177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7) +1 15.04.22 786 30 18쪽
176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6) +1 15.04.22 802 24 18쪽
175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5) +2 15.04.22 769 30 15쪽
174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4) +3 15.04.22 919 26 18쪽
173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3) +5 15.04.21 777 28 16쪽
172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2) +2 15.04.21 927 25 14쪽
171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1) +3 15.04.21 814 26 17쪽
170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8) +3 15.04.21 736 25 21쪽
169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7) +2 15.04.21 711 20 15쪽
168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6) +4 15.04.20 759 25 18쪽
167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5) +2 15.04.20 663 21 18쪽
166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4) +1 15.04.20 777 24 17쪽
165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3) +2 15.04.20 746 25 16쪽
164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2) +3 15.04.20 816 21 16쪽
163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1) +1 15.04.20 827 23 21쪽
162 람의 계승자 - ep.4 - 케리아돌의 둥지로(6) +1 15.04.20 838 30 14쪽
161 람의 계승자 - ep.4 - 케리아돌의 둥지로(5) +2 15.04.20 717 26 18쪽
160 람의 계승자 - ep.4 - 케리아돌의 둥지로(4) +3 15.04.19 875 29 18쪽
159 람의 계승자 - ep.4 - 케리아돌의 둥지로(3) +3 15.04.19 957 29 18쪽
158 람의 계승자 - ep.4 - 케리아돌의 둥지로(2) +3 15.04.19 907 27 22쪽
157 람의 계승자 - ep.4 - 케리아돌의 둥지로(1) +5 15.04.19 1,222 47 22쪽
156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10) +6 15.04.18 906 27 21쪽
155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9) +3 15.04.18 779 27 18쪽
154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8) +1 15.04.18 662 25 19쪽
153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7) +2 15.04.18 692 27 18쪽
152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6) +1 15.04.18 756 28 17쪽
151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5) +4 15.04.18 720 23 16쪽
150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4) +1 15.04.18 676 25 17쪽
149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3) +2 15.04.18 760 23 17쪽
148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2) +3 15.04.16 858 30 15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