람의 계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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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스연
작품등록일 :
2015.03.21 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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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9.01 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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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5.09 0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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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의 계승자 - ep.5 - 왕하직속뭐시기(1)

DUMMY

이튿날에도 제리온의 자료조사는 계속되었다. 다만 달라진 점이 있다면, 루도와 마리네 대신 란돌이 그를 거들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쉽사리 남을 믿지 않는 그로서는 파격적인 변화였다. 란돌에게 람카디스와 세르딕에 관한 조사를 맡기고서, 제리온 자신은 에센스에 대한 자료를 분석해 나갔다. 왕족 전용 금서관리고가 뚫리자 확실히 작업의지도 한층 솟아올랐다.

그사이 나머지 일행은 ‘다른 준비’에 한창이었다. 루도의 발목이 거의 다 완치되어가는 만큼, 카잘산맥으로 떠날 채비를 갖춰야 했다. 식량을 구입하고, 무기를 점검하고, 추운 계절에 대비해 두꺼운 겹옷을 장만하고. 여행을 떠날 때면 늘 있는 단계이지만 그래도 떠나는 발걸음이 무거워지는 것은, 이번에는 일행을 배웅해주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었다.

디리터는 어느새 셀린느와 말을 틀 정도로 사이가 좋아졌다. 비단 그녀뿐 아니라 그녀와 함께 사는 메이드들도 그를 제법 마음에 들어하는 눈치였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자 디리터는 사비를 털어 땔감이며 밀가루, 고래기름 등을 셀린느의 기숙사에 넣어주었다.또한 그는 매일 아침 기숙사를 방문해 셀린느의 안부를 물었고, 얼마 전에는 값비싼 겨울옷을 - 여기에는 레미나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었다 - 메이드들에게 선물하기도 했다.


“이, 이런 비싼 거 받을 수 없어요. 저희가 옷이 없는 것도 아니고.”


“제 호의라 생각하고 받아두십시오. 레미나 공주가 직접 여러분을 위해 준비한 겁니다.”


선물을 거절하려던 메리는 얼굴이 새빨개져서 내밀었던 손을 도로 거두었다. 셀린느와 이야기를 나누던 날 이후, 디리터는 묘하게 표정에 자신감이 넘쳤고 타인을 대함에 있어도 당당함이 가득했다. 그 호기에 밀린 것일까? 메리는 주춤거리면서도 선물을 받아들이고야 말았다. 그 수줍은 모습에 디리터는 머쓱하게 웃었다.

제리온은, 비록 단 한 번뿐이었지만, 예전 아버지와 살던 집으로 돌아갔었다. 정원에는 쓰레기가 가득하고, 집안의 가재도구는 도난당한지 오래고, 지붕 곳곳이 파손되어 있는 - 그런 폐가를 상상했던 그는 문앞에 도착했을 때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집이 그가 떠나던 때 그대로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현관을 열자 방문객을 알리는 종이 짤랑, 하고 울렸고 뒤이어 앞치마를 두른 20대 후반의 여성이 헐레벌떡 뛰어나왔다. 그녀와 마주한 순간 제리온은 쓴웃음을 지었다. 눈물이 나온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가슴 한구석이 울컥하는 것만은 어쩔 수 없었다.


“...이거야 원.”


“어머머 이게 누구야?! 제리온!”


추억이라는 것은 아프지만, 그래서 더욱 아름다운 것일지도 모른다. 기억의 화폭 안에는 아버지가 있었고, 말썽꾸러기인 자신이 있었고, 옆에서 항상 그에게 장난을 치는 레미나가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곁에서 미소 띤 얼굴로 식사를 가져오는 메이드가 있었다.

5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도 자신을 기다리며 집을 지키던 메이드와 마주했을 때, 제리온은 자신이 인복(人福)이 많은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울먹이는 메이드의 어깨를 토닥이며 웃었다.


“뭐 울 것까지야...죽은 사람 돌아온 것도 아닌데.”


“화가 나서 우는 거야! 어쩜 돌아온 지 몇 주가 지나서야 집구석에 발을 들여놓는 건지. 이거 다 네 재산이라고!”


“그야 뭐...옛저녁에 팔아치우고 도망간 줄 알았지. 카츄아도 참 융통성 없네.”


“훌쩍, 이 양아치는 꼭 말을 해도.”


메이드의 요란법석에 곧이어 한 남자와 세 살쯤 될 법한 꼬마가 달려나왔다. 제리온은 곧 그게 카츄아의 가족이며, 그녀가 이곳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남자는 그가 잘 아는 사람이었다. 10여 년 전 레미나를 따라다니던 호위기사다. 일찌감치 카츄아를 마음에 들어 한다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이렇게 덜컥 결혼까지 해버릴 줄이야, 나름 진보적인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도 없는 집보다는 누군가가 사는 게 더 사람냄새가 날 것 같아서...기분 나빴니?”


제리온은 고개를 저었다. 그런 것 따위, 이제 와선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는다. 카츄아를 다시 보고 난 다음부터는.


“전혀 문제없어. 어차피 이런 집구석에 미련이 남은 건 아니었으니까.”


“얘는...앞으로는 어떻게 할 거니? 돌아오겠다면 내일이라도 집을 비워줄게. 남의 집에 얹혀살 정도로 형편이 나쁜 건 아니니까.”


“아니, 됐어. 곧 떠날 거야. 그보다 이런 상태라면, 흠, 확실히 해두는 게 좋겠지. 카츄아, 이 집은 지금부터 당신 거야. 팔아치우던 불을 지르던 마음대로 하라고.”


“뭐, 뭐어?! 너 지금 그게 무슨...”


“난 지금 델키아 로샤단 소속이거든. 야박한 소리지만, 이제 내가 돌아갈 곳은 이 집이 아니라는 거지.”


카츄아는 뭐라 항변하려다가 입을 닫고 말았다. 제리온이 담담하게 내뱉은 그 몇 마디에서, 아무리 설득해도 먹히지 않을 것만 같은 무게감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옛 추억에 잠기는 건 이것으로 끝이었다. 다만, 늦은 가을이라 정원에 꽃이 피지 않았다는 게 안타까울 뿐. 떠나기 전 제리온은 카츄아의 치마폭에 숨어 있는 꼬마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건 아들이야? 몇 살?”


“으응...얼마 전에 3살이 됐어. 네가 떠나고 난 뒤에 낳은 거라.”


“경계하는 눈빛이 마음에 드네. 나중에 크면 나한테 보내봐. 아주 멋진 마법사로 키워줄 테니까.”


“퍽이나 너한테 보내겠다! 쓸데없는 소리 말고 네 몸부터 잘 챙겨.”


제리온은 키득거리며 정원을 가로질러갔다. 새벽에 내린 서리가 녹은 탓인지 흙을 밟는 발바닥의 감촉이 제법 몽실몽실했다. 누군가가 자신을 걱정해준다는 것은, 정말이지 썩 괜찮은 일이었다.


한편 루도와 마리네는 레미나와 헤어져야 한다는 사실을 못내 아쉬워했다. 그녀는 이제 공주의 신분으로 돌아왔으니, 일행과 함께 여행한다는 위험천만한 짓을 벌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녀가 없는 여행이라니, 왠지 그 천진한 웃음소리가 벌써부터 그리워질 것만 같았다. 다만 그녀가 일행과 나눈 인연을 소중히 여긴다면, 자신들이 떠날 때 약소하게나마 배웅해주길 바랄 뿐이었다.


그러나 머지않아 이는 루도와 마리네의 완벽한 착각이었음이 드러났다. 막 루도의 부상이 완치되었을 무렵, 일행은 국왕으로부터 한 통의 전갈을 받았다. 중대한 발표가 있으니 예의를 갖춰 전원 참석하라는 것이었다.

때아닌 호출에 일행은 정장을 갖춰 입고 알현실을 찾았다. 그곳에서는 왕실기사단뿐 아니라 근위병대, 지스카르 재상 휘하 문무백관들이 빼곡히 모여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일행은 얼마 전 국왕을 알현했을 때처럼 레미나의 지시를 받아 2열종대로 늘어섰다. 무슨 영문인가 싶어 이칼롯에게 눈짓을 보내자 그냥 가만히 듣고 있으라는 답변이 돌아올 뿐이었다. 아무래도 이칼롯과 레미나는 이 모임의 의미를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여전히 제리온이 깁스를 하고 있긴 했지만, 그래도 이전의 너덜너덜한 모습보다는 훨씬 모양새가 났다. 일행은 알현실 중앙에 한쪽 무릎을 꿇고는, 초조한 심정으로 침묵을 지켰다.

주인공들이 모두 모이자 지스카르가 두루마리를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럼 지금부터 왕하직속특무별동대(王下直屬特務別動隊) 로샤단의 창단식을 거행하겠습니다.”


‘...?’


루도는 잘못 들은 건가 싶어 옆자리의 디리터에게 시선을 건넸다. 그러나 디리터 역시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는지 멍청한 표정을 짓고 있을 뿐이었다. 무언가 대단히 거창한 이름이 지나간 것 같긴 한데...

델키아 3인방이 멍 때리는 동안에도 창단식은 착착 진행되어갔다. 이칼롯은 로샤단 대표로 나가 국왕이 직접 제작한 휘장을 하사받고, 특무명령서를 인계받고, 정식으로 ‘왕하직속특무별동대 로샤단’의 창단을 공표했다. 여전히 칼잡이들은 혼란스러운 모습이었는데, 다만 제리온과 유미르네는 도중에 특무별동대의 의미를 파악하고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왕하직속특무별동대 로샤단. 그것은 국왕과 지스카르, 이칼롯이 10여 일간의 야합 끝에 완성해낸 특수조직이었다. 즉, 지금까지 로샤단의 행보를 보면 범죄누명과 교통통제, 숙식해결 등이 가장 큰 고충이었는데, 이를 한방에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고안해낸 것이다.

일단 특무별동대에는 몇 가지 파격적인 권한이 부여되었다. 리크나이츠 내의 모든 도시를 통행증 없이 통과할 수 있는 권리, 필요할 경우 도시 책임자의 보호 및 협조를 받을 수 있는 권리, 경범죄 이하(일반적으로 구속되지 않고 끝나는)의 실수로 처벌받지 않을 권리 등이 그것이었다. 이것만 놓고 보아도 웬만한 대외사신에 필적하는 특권이었다. 특히 두 번째 조항은 그 활용 여부에 따라 도시영주의 등골을 마음껏 빨아먹을 수 있는 막강한 힘을 보유하고 있었다.

이것도 모자라 란도스는 여기에 한 가지 특권을 더 추가했다. 그것은 특무별동대 내에 왕가의 일원이 존재하는 한, 별동대의 모든 행동은 그 자체로 왕의 결정을 대변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왕가의 일원이라함은...”


루도는 그때 이미 일이 심상치 않게 돌아감을 느꼈다. 문무백관의 시선이 자연스레 레미나에게 꽂혔다. 란도스는 직접 휘장망토를 그녀의 어깨에 둘러주며 말했다.


“레미나 리크나이츠, 그대를 로샤단의 명예고문으로 임명하겠다. 너라면 잘해낼 수 있을 것이야.”


“망극하옵니다, 폐하.”


.

.


“이런 썅...!”


마리네가 순간적으로 제리온의 입을 틀어막은 것은 탁월한 기지였다. 그가 험상궂은 표정으로 눈을 부라리자 레미나는 헤죽 웃어 보였고, 이칼롯은 애써 시선을 피했다. 루도와 디리터 역시 황당한 탄성을 터뜨렸다.

모두가 멍청한 얼굴을 한가운데 지스카르가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그럼 이것으로 왕하직속특무별동대 창단식을 마치겠습니다. 아울러 오늘 밤에는 로샤단의 창단을 축하하는 파티가 준비되어 있으니, 여기 계신 귀족들은 모두 참석해주시기 바랍니다.”


의례적인 박수소리와 함께 사람들이 우르르 알현실을 빠져나갔다. 퇴장의 발소리가 요란한 가운데 오직 란도스와 지스카르, 로드웰 후작만이 의미심장한 눈으로 일행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시선을 가볍게 무시한 채로, 레미나가 생글생글 웃으며 말했다.


“자아, 이제 저도 로샤단의 일원이 되었네요. 앞으로 잘 부탁드려용~.”


멍 때리던 의식이 순식간에 정상으로 돌아왔다.

이해했다. 이 당돌한 공주님 같으니라고! 레미나는 처음부터 일행과 함께 할 계획이었다. 아니, 그녀의 처지에서 보자면 궁전에 머무를 생각이 없었다는 게 더 맞을 것이다.

로드웰 후작이 지적했듯이 왕권을 포기했다 하더라도 여전히 레미나가 갖는 상징성은 막강했다. 선왕의 딸이자 비운의 여왕, 그리고 백성들로부터의 높은 지지도까지. 그녀는 그 존재만으로도 정치적인 가치가 있었다. 때문에 그녀는 궁전에 남아 란도스에게 해를 끼치느니 차라리 로샤단과 함께 움직이기를 선택한 것이다.

물론 이는 일반적인 추론이고, 제리온은 그저 레미나가 여행질에 맛들려서 일행을 끌어들인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어찌 됐든 특무별동대의 창설은 로샤단에게 있어 환영할 만한 일이었다. 덕분에 리크나이츠 어디를 가든 전폭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되었고, 이는 향후 안개송곳니와의 대결에 있어 커다란 이득으로 작용할 것이 틀림없었다. 곧 수도를 떠나려던 일행에게 있어 이보다 더 좋은 선물이 없는 것이다.


“뭐가 그리 바쁜가 했더니, 이런 얍실한 짓을 꾸미고 있었구만, 대장 나리.”


디리터의 농담에 이칼롯은 그저 담담히 웃을 뿐이었다. 그는 절도 있는 동작으로 턱시도의 기장을 가다듬고는, 목 단추와 바클이 일직선이 되게 옷매무시를 점검했다. 말끔히 옷을 빼입고 머리를 빗은 그는 누가 봐도 감탄을 터뜨릴 정도로 멋진 귀족 청년이었다.

오후가 되자 일행은 파티에 참석하기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군용정복이라면 모를까 파티용 예복은 구경조차 해본 일이 없었기 때문에 루도는 옷 모양새를 내기 위해 진땀을 빼야 했다.

무조건 실용성을 중시하는 평상복과 달리, 턱시도는 착용자의 맵시를 극한으로 끌어올리는 데에 그 기능이 있었다. 때문에 막상 차려입고 나니 늘 누더기 같던 로샤단도 각자의 특징이 확 드러나게 되었다.

일단 키가 크고 덩치가 있는 디리터는 딱 보아도 군인이라는 느낌이 풍겼다. 반면 이칼롯은 체격은 있지만 날카로운 턱선 때문인지 무인보다는 책략가라는 이미지가 더 강했다. 그리고 루도와 마리네는, 역시 나이가 나이인지 값비싼 옷을 입어도 소년티가 사라지지 않는 모습이었다. 특히 상대적으로 체격이 왜소한 마리네는 디리터와 나란히 서면 남장한 여자라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이렇듯 워낙 잘나신 동료를 둔 탓에 두 소년은 잔뜩 위축되어 파티장으로 향했다. 저녁이 되자 몇몇 근위병들을 제외하곤 궁전 전체가 파티의 열기로 시끌벅적했다. 곳곳에 불을 밝힌 연등과 음악대의 리허설 소리, 까르르 웃으며 일행을 쳐다보는 귀부인들까지. 처음 느껴보는 낯선 풍경이었다.

그러나 일행이 처한 위치는 파티의 열기에 녹아들기보다는 오히려 이를 경계하게 만들었다. 루도가 말했다.


“이렇게 탱자탱자 있어도 되는 건가? 동부전선이 언제 뚫릴지 모르는 상황인데.”


“그러게. 아무리 천정기사단이 있다지만...피난준비라도 해야 하는 게 맞는 거 아닌가?”


그러자 이칼롯이 말했다.


“파티라는 건 부녀자들의 얘기지. 오늘 자리는 라키시아의 유력자들을 모으는 일종의 야합이야. 란도스 폐하는 지금까지 잃은 세월이 많으니까, 이런 식으로라도 영향력을 회복하려는 거지.”


“호오...그럼 우리는 뭘 하면 되는데?”


“너희는...그냥 먹고 마시면 돼.”


만약 제리온이 자리에 있었다면 자기를 무시하는 거냐며 아우성을 쳤겠지만, 그건 그처럼 뿔 난 성격의 얘기고, 마음껏 먹고 마시라는 데 토를 달 것은 없었다. 루도는 한껏 고무되어 발걸음을 빨리했다.

그런데 회랑을 지나 걸어가고 있자니 웬 흑발아가씨가 말을 걸어오는 것이었다.


“요, 루도!”


루도는 처음에는 웬 귀족영애인가 싶어 황급히 허리를 굽히려고 했다. 그런데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가 어딘가 익숙하여 고개를 들었을 때, 그는 아가씨의 정체에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너, 설마 유미르네냐?”


“오호호호! 넋이 나갔네 넋이 나갔어. 어때, 어울리니?”


“뭐어...굳이 말하자면 어울리긴 한다만...”


루도는 헛기침을 하며 말을 얼버무렸다. 그러나 친한 친구라 애매한 평가를 내린 것뿐이지, 유미르네의 자태는 그 어떤 남자가 보아도 눈을 떼지 못할 정도로 아름다움이 묻어나왔다. 그녀는 연붉은 실크드레스에 뾰족구두를 신고 있었는데, 허리부터 부채꼴모양으로 치마가 넓어지는 다른 귀부인의 패션과 달리 정강이까지 착 달라붙는 슬림한 의상을 골라 몸매가 어깨부터 다리까지 적나라하게 드러난 상태였다. 조금 상상력만 보태면 그녀의 나신이 어떤 모양인지 상상할 수 있을 정도니 주변에 모인 남자들의 표정을 가히 짐작할 만했다.

운동으로 다져진 몸매와 모양 좋게 솟은 가슴, 그리고 교태가 잔뜩 묻어나는 외모까지. 평소의 옷차림으로도 색기를 감추지 못할 정도인데 이렇게 대놓고 자리를 마련해주었으니 그녀가 내뿜는 오오라에 파티장에 모인 모든 남자들의 시선이 집중됐다. 아마 루도도 그녀와 초면이었다면 처음 질문 때 무릎을 꿇고 찬사를 읊었을 것이다.


“역시 비싼 게 좋긴 좋나봐. 엉덩이랑 가슴에 닿는 촉감이 말도 못하게 부드러워. 얘 마리네, 여기 이거 좀 봐봐.”


“아, 알았으니까 그렇게 달라붙지 좀 마.”


“응? 아니, 그러니까 여기 허벅지 쪽에...”


“우와아악!”


루도와 마리네의 그곳이 순간적으로 흥분한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두 사람은 흉한 꼴을 보이지 않기 위해 한참을 움츠리고 있다가, 일부러 유미르네와 거리를 벌리고서 걸어가기 시작했다.

파티장 안에는 이미 많은 귀족들이 모여 식사를 즐기고 있었다. 역시 세태가 세태라 그런지 일부 몰지각한 처녀들을 제외하고는 다들 앞가림을 조심스럽게 하는 모습이었는데, 오히려 일행에겐 그런 가라앉은 분위기가 더 편하게 느껴졌다.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고 오붓하게 밥을 먹다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칼롯이 국왕의 호출을 받아 자리를 뜨자 넷은 적당히 테이블을 돌아다니며 음식을 집어먹기 시작했다. 지정석이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대다수의 사람들이 일어선 채 담소를 나누고 있다 보니 오도카니 앉아 있는 것도 머쓱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생각했던 것보다 로샤단에 관한 관심은 뜨거웠다. 파티장에 들어선지 얼마 되지 않아 갖가지 부류의 사람들이 일행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러브콜을 받은 것은 물론 유미르네였다.


“이런, 레이디, 당신이 있으니 이 자리에 모인 모든 귀부인들이 하찮은 병풍이 되어버리고 마는군요. 어디, 제게 당신이라는 꽃의 향기를 맡을 기회를 주시겠습니까?”


“어머? 호호호, 말도 잘하셔라.”


"로샤단에 미모의 여검객이 있다는 소리는 들었는데, 이거 정말 믿어지지가 않는군요. 이 정도의 미인이셨을 줄이야."


이칼롯 또래의 젊은 층부터 시작하여 3,40대의 중년귀족들까지 유미르네가 남자들에게 둘러싸이기까지는 채 1분이 걸리지 않았다. 이렇게 되자 자연스레 그녀는 무리에서 멀어져 루도,마리네,디리터 셋이 덩그러니 남은 형국이 되었다.

남자들 사이에서 시시덕거리는 그녀를 보며 디리터가 심드렁하게 말했다.


“인기 폭발이네. 하긴 쟤 정도면 당장 어디 귀족의 첩으로 들어가도 이상하진 않지.”


“...뭐 파티니까. 저런 것도 나쁘지 않겠지.”


루도는 곧 그녀에게서 관심을 끊고 식사에 열중했다. 유미르네가 남자사냥에 들어갈 거라는 건 이미 예상했던 바고, 남은 사람들끼리 오붓하게 잡담이나 나누면 되는 일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전혀 예상 못 한 일이 일어났다. 어느샌가 다가온 한 무리의 여자들이 디리터와 마리네에게 추파를 던지기 시작한 것이다.


“어머나, 이 근육 좀 봐. 역시 비실비실한 관리보다야 군인이 듬직하죠. 안 그런가요?”


“로샤단은 역전의 용사집단이라고 들었는데 이렇게 귀여운 분도 계시네요. 실례가 아니라면 성함이?”


“에...예? 그러니까...”


갑작스런 관심에 두 사람은 어찌할 바를 몰라 허둥지둥거렸다. 확실히 사람들 다루는 데에 있어서는 귀족부인들이 훨씬 능숙하여, 둘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은근슬쩍 여자들의 손에 이끌려 멀어져갔다.

홀로 남은 루도는 멍한 얼굴로 와인잔만 만지작거렸다. 갑자기 넓어진 공간 사이로 바람이 불어와 그를 더욱 처량하게 만들었다.


“흠...저기 저 소년은?”


“왜 있잖아요, 그 람카디스 클로람의...”


“아아-, 그 왕실기사단의? 생각보다는 평범하게 생겼군.”


아아, 차라리 들리지나 않으면 속 편하련만. 하필 레인저 생활로 단련된 청각이 주변의 잡음을 여과 없이 빨아들이고 있었다. 같이 사는 사람들이 이렇게 인기가 많았던가. 아니, 자신이 이다지도 매력 없는 인간이었던가.

군중 속의 고독이라는 게 이토록 가슴 저린 것인지 루도는 그때 깨달았다.


‘에휴, 술이나 마시자 마셔. 누구 말마따나 길 떠나면 이런 호화스런 음식도 못 먹게 될 텐데.’


완전히 자포자기한 채로 루도는 연어 갤런틴이며 메추리구이 등을 마구 씹어대기 시작했다. 마침 술도 퀴넨에서 공수해온 특등급 와인인지라 입에 넣는 대로 음식은 꼴깍꼴깍 잘도 넘어갔다.

그런데 홀로 먹을 것으로 외로움을 달래고 있자니, 한 여성이 조심스레 다가와 그의 옷깃을 잡아끌었다.


“저기...”


“예? 아, 마리네랑 디리터라면 이미 다른 분이 데리고 가버렸는데...”


루도는 당연히 다른 두 인기남을 찾는 거라 생각하고 대충 대답해 넘겼다. 그러나 파티장에 모인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 심지어 란도스 국왕과 이칼롯까지도 - 자신에게 꽂히고 있다는 기분이 들자 루도는 황급히 말을 걸어온 여성의 얼굴을 확인했다.


“난 루도 쪽에 볼일이 있는 건데.”


루도는 순간 당황하여 뒷걸음질치다 테이블 모서리에 엉덩이를 찧고 말았다. 돌아본 그곳에는 순백의 프릴드레스를 차려입은 레미나가 발그레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미 어디서 한잔하고 온 것인지 붉게 물든 뺨 위로 살포시 짓는 눈웃음이 그를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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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4 람의 계승자 - ep.5 - 승리 뒤에 오는 것들(6) +5 15.05.08 1,032 29 24쪽
233 람의 계승자 - ep.5 - 승리 뒤에 오는 것들(5) +2 15.05.08 893 24 24쪽
232 람의 계승자 - ep.5 - 승리 뒤에 오는 것들(4) +2 15.05.08 909 23 26쪽
231 람의 계승자 - ep.5 - 승리 뒤에 오는 것들(3) +2 15.05.08 903 25 19쪽
230 람의 계승자 - ep.5 - 승리 뒤에 오는 것들(2) +2 15.05.08 766 24 24쪽
229 람의 계승자 - ep.5 - 승리 뒤에 오는 것들(1) +5 15.05.07 774 26 19쪽
228 람의 계승자 - ep.5 - 빗속으로(10) +2 15.05.07 899 24 24쪽
227 람의 계승자 - ep.5 - 빗속으로(9) +1 15.05.07 823 22 24쪽
226 람의 계승자 - ep.5 - 빗속으로(8) +4 15.05.06 742 27 22쪽
225 람의 계승자 - ep.5 - 빗속으로(7) +2 15.05.06 987 25 29쪽
224 람의 계승자 - ep.5 - 빗속으로(6) +3 15.05.06 812 24 28쪽
223 람의 계승자 - ep.5 - 빗속으로(5) +4 15.05.05 940 27 24쪽
222 람의 계승자 - ep.5 - 빗속으로(4) +2 15.05.05 771 24 23쪽
221 람의 계승자 - ep.5 - 빗속으로(3) +1 15.05.05 652 23 15쪽
220 람의 계승자 - ep.5 - 빗속으로(2) +2 15.05.05 779 25 18쪽
219 람의 계승자 - ep.5 - 빗속으로(1) +4 15.05.05 695 24 15쪽
218 람의 계승자 - ep.5 - 사냥감의 반전(4) +2 15.05.05 927 25 23쪽
217 람의 계승자 - ep.5 - 사냥감의 반전(3) +3 15.05.04 945 23 23쪽
216 람의 계승자 - ep.5 - 사냥감의 반전(2) +2 15.05.04 875 23 21쪽
215 람의 계승자 - ep.5 - 사냥감의 반전(1) +1 15.05.04 783 25 20쪽
214 람의 계승자 - ep.5 - 부조리(5) +2 15.05.04 722 25 15쪽
213 람의 계승자 - ep.5 - 부조리(4) +2 15.05.04 727 26 23쪽
212 람의 계승자 - ep.5 - 부조리(3) +3 15.05.03 850 30 18쪽
211 람의 계승자 - ep.5 - 부조리(2) +3 15.05.03 772 23 23쪽
210 람의 계승자 - ep.5 - 부조리(1) +2 15.05.03 865 24 20쪽
209 람의 계승자 - ep.5 - 이별이 그러하듯이(7) +5 15.05.03 801 29 25쪽
208 람의 계승자 - ep.5 - 이별이 그러하듯이(6) +2 15.05.03 905 25 22쪽
207 람의 계승자 - ep.5 - 이별이 그러하듯이(5) +4 15.05.02 946 30 21쪽
206 람의 계승자 - ep.5 - 이별이 그러하듯이(4) +1 15.05.02 893 28 20쪽
205 람의 계승자 - ep.5 - 이별이 그러하듯이(3) +2 15.05.02 696 25 21쪽
204 람의 계승자 - ep.5 - 이별이 그러하듯이(2) +2 15.05.02 777 25 24쪽
203 람의 계승자 - ep.5 - 이별이 그러하듯이(1) +2 15.05.02 594 25 22쪽
202 람의 계승자 - ep.5 - 만남은 늘 갑작스럽게 찾아온다(6) +3 15.05.02 705 29 18쪽
201 람의 계승자 - ep.5 - 만남은 늘 갑작스럽게 찾아온다(5) +5 15.04.29 869 25 19쪽
200 람의 계승자 - ep.5 - 만남은 늘 갑작스럽게 찾아온다(4) +1 15.04.29 947 25 26쪽
199 람의 계승자 - ep.5 - 만남은 늘 갑작스럽게 찾아온다(3) +1 15.04.29 799 25 24쪽
198 람의 계승자 - ep.5 - 만남은 늘 갑작스럽게 찾아온다(2) +3 15.04.29 822 27 18쪽
197 람의 계승자 - ep.5 - 만남은 늘 갑작스럽게 찾아온다(1) +1 15.04.29 762 25 17쪽
196 람의 계승자 - ep.5 - 전장에 떨어지다(8) +4 15.04.28 911 29 16쪽
195 람의 계승자 - ep.5 - 전장에 떨어지다(7) +3 15.04.28 846 26 20쪽
194 람의 계승자 - ep.5 - 전장에 떨어지다(6) +3 15.04.27 719 27 19쪽
193 람의 계승자 - ep.5 - 전장에 떨어지다(5) +3 15.04.27 764 23 17쪽
192 람의 계승자 - ep.5 - 전장에 떨어지다(4) +2 15.04.27 737 23 18쪽
191 람의 계승자 - ep.5 - 전장에 떨어지다(3) +1 15.04.27 741 31 18쪽
190 람의 계승자 - ep.5 - 전장에 떨어지다(2) +2 15.04.27 767 28 19쪽
189 람의 계승자 - ep.5 - 전장에 떨어지다(1) +2 15.04.27 799 32 18쪽
188 람의 계승자 - ep.4 - 바람은 가지 말라 하지만(完) +1 15.04.27 611 34 18쪽
187 람의 계승자 - ep.4 - 바람은 가지 말라 하지만(5) +4 15.04.26 740 25 17쪽
186 람의 계승자 - ep.4 - 바람은 가지 말라 하지만(4) +1 15.04.26 939 29 16쪽
185 람의 계승자 - ep.4 - 바람은 가지 말라 하지만(3) +2 15.04.26 743 27 20쪽
184 람의 계승자 - ep.4 - 바람은 가지 말라 하지만(2) +6 15.04.23 786 29 15쪽
183 람의 계승자 - ep.4 - 바람은 가지 말라 하지만(1) +3 15.04.23 845 27 19쪽
182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12) +2 15.04.23 762 26 17쪽
181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11) +3 15.04.23 776 27 15쪽
180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10) +1 15.04.23 689 26 22쪽
179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9) +3 15.04.22 821 30 16쪽
178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8) +3 15.04.22 856 28 15쪽
177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7) +1 15.04.22 786 30 18쪽
176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6) +1 15.04.22 802 24 18쪽
175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5) +2 15.04.22 769 30 15쪽
174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4) +3 15.04.22 919 26 18쪽
173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3) +5 15.04.21 777 28 16쪽
172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2) +2 15.04.21 927 25 14쪽
171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1) +3 15.04.21 814 26 17쪽
170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8) +3 15.04.21 736 25 21쪽
169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7) +2 15.04.21 711 20 15쪽
168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6) +4 15.04.20 759 25 18쪽
167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5) +2 15.04.20 663 21 18쪽
166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4) +1 15.04.20 777 24 17쪽
165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3) +2 15.04.20 746 25 16쪽
164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2) +3 15.04.20 816 21 16쪽
163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1) +1 15.04.20 827 23 21쪽
162 람의 계승자 - ep.4 - 케리아돌의 둥지로(6) +1 15.04.20 838 30 14쪽
161 람의 계승자 - ep.4 - 케리아돌의 둥지로(5) +2 15.04.20 717 26 18쪽
160 람의 계승자 - ep.4 - 케리아돌의 둥지로(4) +3 15.04.19 875 29 18쪽
159 람의 계승자 - ep.4 - 케리아돌의 둥지로(3) +3 15.04.19 957 29 18쪽
158 람의 계승자 - ep.4 - 케리아돌의 둥지로(2) +3 15.04.19 907 27 22쪽
157 람의 계승자 - ep.4 - 케리아돌의 둥지로(1) +5 15.04.19 1,222 47 22쪽
156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10) +6 15.04.18 906 27 21쪽
155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9) +3 15.04.18 779 27 18쪽
154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8) +1 15.04.18 662 25 19쪽
153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7) +2 15.04.18 692 27 18쪽
152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6) +1 15.04.18 756 28 17쪽
151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5) +4 15.04.18 720 23 16쪽
150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4) +1 15.04.18 676 25 17쪽
149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3) +2 15.04.18 760 23 17쪽
148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2) +3 15.04.16 858 30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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