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업부 꼰대 과장의 이세계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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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천세은
작품등록일 :
2023.01.15 15:52
최근연재일 :
2024.03.15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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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8.26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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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 마지막 인간체스 - 2

DUMMY

루프는 난감한 듯 앞발로 연신 얼굴을 만졌다. 기록관 그녀도 섣불리 대답은 하지 못한 채, 그저 현과장의 눈치만 살폈다. 도대체 이토록 비밀을 지키려고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이미 많은 부분을 들켰으면서. 그것도 본인들의 실수로.


“아니, 어차피 조금 있으면 본인들 입으로 술술술 불어재낄 텐데. 그냥 시원하게 말 하라니까.”

“그게 안 된다고요! 안 되요!”

“맞다! 안 된다! 멍!”


그들은 여전히 단호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어디 현과장이 포기할 인간냐. 그는 다시금 바닥에 철푸덕 드러눕더니 웃통을 벗고 그의 통통한 배를 까보였다.


“아, 몰랑. 배 째.”


원더랜드에서는 매너 있는 척 온갖 좋은 모습을 다 보이던 현과장. 이제야 그 가식이 벗겨지기 시작했다. 그래, 이게 현과장이지. 말 안 통하는 꼰대의 전형적인 모습. 이야기가 시작된 지 178화나 지났지만, 그래도 초심을 찾는 건 언제나 환영이라구!


“지금의 현과장은 아무리 말을 해줘도 이해를 못한다니까.”


이렇게 현과장을 향해 극찬을 날리고 있는 사이, 기록관은 또 한 번 말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지금? 그럼 미래의 나는 이해할 수 있다는 거야?”


딱 걸린 걸까. 현과장의 질문을 들은 기록관 그녀는 눈도 못 마주치고 그저 루프를 바라보았다. 마치 도와달라는 듯한 눈빛으로.


“멍! 그건 아니다! 여기서 왜 미래가 나오냐! 멍!”

“당연히 미래가 나오지. 내가 이렇게 고생하는 이유가 뭐야? 회귀라고 회귀. 바로 시간과 밀접한 관련이 된 회귀...”


순간, 현과장은 말을 멈췄다. 뭔가 머릿속에서 떠오른 것일까. 아니면 그냥 단순한 의심인 것일까. 그의 눈빛은 진지함을 머금은 채로 기록관 그녀를 향했다.


“어이, 기록관. 당신 미래의 날 알지?”


현과장의 질문에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는 그녀. 무언은 소리 없는 긍정이라는 말이 있는데. 과연 이번에도 맞을까. 정말 그녀의 침묵은 현과장의 질문에 대한 긍정적인 대답으로 여겨도 되는 것일까. 그렇게 한참이란 시간이 흘러갔다.


“인간 체스.”


긴 시간 동안 눈조차 마주치지 않았던 그녀가 꺼낸 첫 마디는 바로, 인간 체스. 너무나 뜬금없는 그 소리는 현과장과 두 귀염둥이들을 벙찌게 만들었다.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냐! 멍!”


그러나 루프는 아니었다. 그녀의 말을 듣고 소스라치게 놀란 루프. 그는 재빠르게 달려가 앞발로 그녀의 입을 막았다.


“이번 일은 그냥 헛소리 한 거다! 멍! 그냥 넘겨라!”

“저리 좀 비켜! 돼지 멍뭉아!”

“몸뚱이가 생기고 나서 왜 이렇게 조심성이 없어졌냐! 멍!”


이내 아웅다웅 싸우며 한바탕 왈츠를 추는 기록관 그녀와 루프. 그들의 춤사위에 주변의 집기들이 사방으로 날아갔지만, 그들은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한편, 집무실에서 인간 체스가 마지막 화 촬영을 시작했다는 보고를 듣게 된 여왕은, 시큰둥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 화란 말에서 느껴지는 찝찝함. 도대체 이 찝찝함의 근원은 어디일까.


“정말 마지막 맞습니까?”

“보고는 마지막이 맞다고 하옵니다, 여왕 폐하.”


마음 같아서는 그 마지막 화 촬영도 당당 멈추게 만들고 싶었지만, 세상 일이 어디 그렇게 쉬울까. 그녀는 마지막 화를 통해 시청자들과 제작진이 마지막 작별의 인사라도 나누게 두는 것이 옳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하셔도 됩니다만.”


선뜻 말은 나오지 않았지만, 그녀는 이성이 머릿속에 떠올리는 글자 그대로 이야기 했다. 그렇지만, 여전히 불안감을 느끼는 본능. 그녀는 자신이 본 인간 체스의 결말을 결코 잊을 수가 없었다.


“아무래도 안 되겠습니다만. 내가 직접 마지막 화 촬영을 봐야 겠습니다만.”


여왕의 갑작스런 발언에, 보고를 하고 있던 시종이 화들짝 놀라 그녀를 빤히 바라보있다.


“왜 그렇게 봅니까? 내가 뭘 잘못 했습니까?”

“다름이 아니오라, 평소에도 그렇게 싫어하신 인간 체스를 굳이 보러 가신다는게...”

“싫어하는 게 아니라, 예언 때문입니다만.”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단호하게 말했다.


“무슨 예언 말씀이신지...”

“인간 체스 우승자가 워더랜드를 멸망시킨다는 예언.”


여왕의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진중함. 그녀의 눈빛은 확신에 가득 차 있었다.


“지금 막지 않으면 분명 일어납니다만. 원더랜드의 멸망이.”




“어차피, 미우가 알고 있으니까 이 정도는 말해도 된다고!”

“타임라인에 없는 일을 만들지 마라! 멍!”


여왕의 이야기를 끝내고 왔지만, 여전히 다투고 있는 기록관 그녀와 루프. 그런 그들의 모습을 현과장과 두 귀염둥이는 유심히 보고 있었다.


“춤사위가 보통이 아닌데.”

“루프 씨는 미드나잇 클럽이라 이해가 된다능! 그런데 기록관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능!”

“이해, 불능.”


매섭게 그들의 움직임을 따라잡는 6개의 눈동자. 그들이 몸짓을 멈추는 그 순간까지 현과장과 두 귀염둥이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그들을 예의주시했다.


“헥헥! 타, 타임! 멍!”

“하아... 하아... 나도 휴식 좀...”


고된 움직임에 드디어 나가떨어진 루프와 그녀. 그들의 얼굴에서 핏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도대체 얼마나 춘 거야?


“그래, 인간 체스가 뭐?”

“대답하면 안 되... 이젠 나도 모르겠다. 멍.”


몸을 일으켜 기록관을 막으려고 했지만, 이내 뻗어버린 루프. 그를 위해 리코와 키토가 연신 손 부채질을 해주었다.


“기운 내라능! 멋졌다능! 정말 멋졌다능!”

“루프, 최고.”

“이건 두 선배들의 가르침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멍!”


루프는 힘 빠진 앞발을 들어 리코와 키토를 향해 뻗었다. 그러자, 그 앞발을 꼭 잡는 두 귀염둥이. 정말 감동적인 장면이 아닐 수 없다. 후배의 성장을 인정하는 선배와 모든 공을 선배에게 돌리는 후배. 대한민국 체육계에서는 보기 힘든 명장면이 아닐까.


“그러니까, 인간 체스가 뭐, 어쨌는데.”


이런 아름다운 장면을 뒤로 한 채, 기록관에게 다가가 말을 거는 현과장. 그녀는 고개를 돌려가며 이리저리 그를 피했지만 그는 집요하게 그녀를 따라다녔다.


“숨 좀 고릅시다! 숨 좀!”

“우선 대답부터. 인간 체스가 뭐 어쨌냐고.”

“인간 체스에서 우승한 사람이 원더랜드를 멸망시킨다!”


언젠가 들어본 것만 같은 이야기에 현과장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게 뭐 어때서?”

“뭐 어떤 게 아니라, 이제 곧 우승자가 나온다고요!”


현과장의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렸다. 우승자가 나온다니. 그럼, 설마...


“지금 원더랜드가 멸망한다는 말이야?”

“아... 결국 저질러 버렸다. 멍.”

“나와요. 그 분이 회귀 루트를 선택해버렸기 때문에.”


기록관 그녀의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착잡함. 그러나, 그녀 보다 더 심각한 사람이 있었으니, 그는 바로,


“지금 뭐해! 빨리 돌아가야지! 돌아가서 알려야지!”


현과장. 그는 입에 거품까지 물며 그녀와 루프에게 닦달했다.


“그건 지금 힘들다. 멍. 우린 지금 힘이 없다. 멍.”

“나도 잠깐 쉴 게요.”


이런 절체절명의 위기 앞에서, 체력을 완전히 소비하고 만 그녀와 루프. 생기 없이 창백하기만 한 낯빛이 그들의 상태를 잘 말해주고 있었다.


“젠장! 그럼 방법이 없잖아!”

“호떡, 호떡만 있었으면...”


마치 마지막을 앞에 둔 죄인이 최후의 만찬을 찾는 것처럼 호떡을 외치는 기록관 그녀. 그러나 지금 현과장은 원더랜드의 능력을 발휘할 수 없었다.


“기록관! 능력을 풀어 줘! 내가 빨리 만들어 줄테니까!”

“그건 힘들어요. 여긴 내가 만든 세계가 아니라서.”

“또 그분이야?”


허탈감에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자신의 인생을 쥐고 흔드는 ‘그분’ 도대체 그분은 과연 누구인 것일까. 누구인데 이렇게 좋은 쪽이 아닌 힘든 쪽으로 자신을 몰고가는 것일까. 현과장은 힘이 완전히 빠졌다.


“현과장. 나도 배고프다능.”

“나도. 나도.”


힘이 빠진 건 비단 현과장 뿐만이 아니었다. 배에서 꼬르륵 소리를 내면서 현과장에게로 다가온 리코와 키토. 둘의 푹 쳐진 모습을 마주한 현과장은 가슴이 미어지는 것만 같았다.


“키토님! 리코님! 잠시만 기다려! 내가 뭐라도 만들 테니까!”


현과장은 당장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원더랜드에 돌아가지 못하는 건 둘째 치고, 우선은 리코와 키토의 식사부터 해결해야 하는 상황. 그는 그렇게 모든 것을 놓은 채로 막막히 앉아있을 수만은 없었다.

마음을 단단히 먹은 현과장은 곧장 주방으로 달려갔다. 그가 떠날 때와 비교할 때, 달라진 것은 전혀 없었다. 젓가락의 숫자도, 컵의 개수도, 심지어 냉장고 안의 음식들도 전부 같았다.


“잠깐, 완전히 같다면... 이거 설마?”


뭔가 떠오른 것일까. 현과장은 몸을 돌려 곧바로 김치 냉장고 쪽으로 걸어갔다. 자신을 원더랜드로 보냈던 김치 냉장고. 과연 이번에도 그를 원더랜드로 보내 줄 것일까. 그는 두근거리는 마음을 안고 냉장고 문을 열었다. 하지만, 아니나 다를까 일어나지 않는 화이트 룸 현상. 현과장의 얼굴에 실망감이... 아니라, 이 인간 웃고 있는데?


“있다! 있어!”


뭐야, 현과장. 화이트룸 현상을 노린 게 아니었어? 그럼 뭘 노린 거지?

현과장은 김치 냉장고에서 이내 커다란 통을 꺼냈다. 여기저기 살얼음이 살짝 얼어있는 커다란 통. 가만히 보고만 있어도 시큼 텁텁한 냄새가 올라오는 듯 했다.


“현과장! 그건 뭐냐능?!”

“현과장! 냄새!”


리코와 키토는 재빨리 코를 막았다. 아니나 다를까, 제일 후각이 예민한 루프는 예전에 코를 막고 있었다.


“무슨 냄새입니까. 멍!”


현과장은 아무런 대답없이 커다란 통의 뚜껑을 열었다. 그러자, 더욱 강하게 퍼져나가는 시큼한 냄새. 그 향기를 맡은 현과장은 형언할 수 없는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래, 이거다! 이거야!”


이윽고 통안으로 손을 넣는 현과장. 그의 손에 들려 나온 것은 다름 아닌... 뭐 다들 잘 알잖아, 이 통이 무슨 통인지는. 그래 현과장의 궁극의 아이템. 바로 신 김치 되시겠다.


“현과장! 냄새가 심하다능!”

“나, 안 먹음.”


마치 반찬투정을 하는 어린아이마냥 고개를 획 돌리는 리코와 키토. 이런 반응을 예상했던 것일까. 현과장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거실에 있는 모두를 바라보았다.


“이게 바로, 갓패치가 가끔 날 잡고 만들어 달라고 하는 그 ‘김치찌개’의 재료다 이말이야!”


순간, 키토의 눈빛이 달라졌다. 아주 예전 김치찌개를 약간 맛봤던 키토. 그 역시 그날의 맛을 잊지 못하고 있었다.


“정말이냐능! 그거 맞냐능!”

“그때는 어쩔 수 없이 약간 덜 익은 김치를 썼었지만, 이젠 달라. 이번엔 완벽해. 기대해도 좋아, 키토님.”


현과장은 키토를 향해 살짝 윙크를 날리더니, 이내 통 안에 손을 넣어 한 움큼 김치를 집어 들었다. 그의 손끝부터 느껴지는 자신감. 그만의 오리지널 스킬, 「김치찌개」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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