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업부 꼰대 과장의 이세계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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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천세은
작품등록일 :
2023.01.15 15:52
최근연재일 :
2024.03.15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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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8.25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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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 마지막 인간체스 - 1

DUMMY

루프와 그녀의 얼굴에 당황함 번져 나갔다.

과건 그가 무슨 사실을 눈치 챈 것일까. 정말 본인들이 숨기고 있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일까. 둘의 눈동자에 불안감이 스멀스멀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첫 번째, 당신을 보낸 사람이 누군지 모르지만 회귀를 엄청나게 싫어한다는 것. 뭐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회귀라는 게 시간을 돌리는 거잖아. 그렇다는 건...”


자신들도 모르게 마른 침을 삼키는 루프와 그녀. 그들의 신경은 온통 현과장의 얼굴을 향해 있었다.


“역시, 「시간의 생명」이 이 모든 일의 원흉인 거 맞지?”


현과장은 날카로운 표정을 지으며 루프와 그녀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러자, 순간 그들의 얼굴에 피어난 당혹감. 지금 현과장이 한 이야기는... 이미 모두가 다 아는 이야기가 아니었던가?


“저, 죄송하지만 지금까지 모르셨던 겁니까? 분명 말했잖아요, 내가 지금까지 현과장에게 글자를 보여준 기록관이라고.”


그녀는 얼굴 가득한 당황함을 감추지 않은 채, 그대로 현과장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어허! 아직 말 안 끝났다니까. 나 알아낸 거 아주 많아!”


그런 그녀를 향해 당당히 목소리를 올리는 현과장. 이미 신뢰감을 완전히 잃은 그였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녀와 루프는 다시금 귀를 기울였다.


“내 몸에 있는 「시간의 생명」은 살아있는 능력이고, 그 강력함이 마치 신과 같으니까... 잠깐, 내 몸에 신이 들어와 있는 거야? 그런 거야?”


현과장은 두 눈을 크게 뜨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동자 안에 자리 잡은 두려움 가득한 기대감. 현과장의 얼굴은 창백했지만, 입 꼬리는 살짝 올라가 있었다.


“그건 아닙니다. 신이 들어가 있는 건 아니라고요.”

“그만! 더 말하면 안 돼! 멍!”


그녀를 말리려는 듯, 당차게 목소리를 높이는 루프. 그러나, 그녀의 음성은 낮아질 줄 몰랐다.


“「시간의 생명」은, 일종의 매개체입니다. 현과장과 그분을 잇는.”

“그만! 멍!”


루프가 빠르게 막았지만, 이미 그녀의 입에서 나와 버린 중요한 실마리. 현과장이 그 단서를 놓칠 리 없었다.


“그 분이라니? 지금 누구랑 나를 잇는 거야?”

“현과장, 더는 물으면 안 된다! 멍!”


루프의 눈빛이 내보내는 화살은 이내 현과장에게도 닿았다. 무척이나 단호한 루프의 눈빛. 과얀 이들이 알고 있고, 또 현과장에게 숨기고 있는 사실은 무엇일까. 확실한 감은 잡히지 않았지만, 이상하게도 한 가지는 확실한 예감이 들었다. 이번 이야기의 끝에는 상상하지도 못한 비밀이 숨겨져 있을 거라는 예감이.




“아... 이걸 어쩌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방송국 회의실로 들어온 남자PD는 그 힘없는 몸뜽이를 철제 의자 위에 올려놓았다.

안절부절못하고 사정없이 떨리는 그의 다리.

테이블 위에 올린 그의 손가락도 연신 테이블 바닥을 두드렸다.

그렇게 고민에 차있던 바로 그때, 문을 열고 들어오는 한 여자가 있었는데.


“어, PD님 일은 잘 끝내셨어요?”


익숙한 목소리와 익숙한 얼굴의 주인, 바로 나마래. 그녀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남자PD의 곁으로 다가왔다.


“잘 되긴, 지금 큰일이야. 큰일.”

“네? 무슨?”


나마래는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기울였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자연의 주인들이 지금 부재중이야. 현과장이랑 뭐 어딜 갔다던데. 회기? 회기 역?”


회기가 아니라, 회귀. 서울시 동대문구 회기동의 ‘회기’가 아니라 그냥 회귀. 웹소설의 주된 소재 ‘회귀’ 말이다.


“아니 그렇다고 이렇게 그냥 오신 거예요? 쫓아가서 섭외를 했어야죠!”


나마래는 펄쩍 뛰며 그를 몰아부쳤다. 그러자,


“이봐, 나 아나운서. 내가 그런 생각을 안 한 줄 알아? 못 간다잖아! 못 간데! 난 못 간데! 평범한 인간은 못 간다고!”


더욱 목청을 높이며 나마래에게 화를 내뿜는 남자PD. 그의 분노에 살짝 움츠러든 나마래였지만, 그래도 내심 기분이 좋았다. 혹시, 그녀도 변태라서? 아니다. 이유는 단순했다. 그 이유는 바로,


“정말 아무도 못 가는 곳으로 간 거예요? 그 두 괴물이?”


그래, 키토와 리코의 행방불명. 마치 유명 애니메이션의 제목 같은 일이 벌어졌다는 사실은 그녀의 마음을 두근거리게 만들었다.


“그래! 지금 그래서 어르신 집안이 난리도 아니라니까. 어흥 어르신은 정신 나간 사람마냥 뛰어다니고...”


PD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입꼬리가 올라가기 시작한 나마래.

이윽고, 나마래의 입가에만 있던 미소가 그녀의 얼굴로 번졌다. 어흥선생의 사랑을 독차지한 그 두 괴물들이 사라졌다니. 그녀와 그녀가 몸담고 있는 그 집단의 입장에서는 반가워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럼 뭐 그냥 찍죠. 위험인자도 사라졌는데.”

“뭘 그냥 찍어? 이 아이디어를 낸 건 나 아나운서잖아. 귀여운 자연의 주인들이 인간 체스를 도전하면 시청률도 오르고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다고.”


PD의 눈에 피어난 의심의 눈초리. 나마래의 본심이 발각될 절체절명의 순간이었다.


“아, 아니! 그게 아니라, 지금 엄청난 신인이 나타났다니까요!”

“신인?”


PD의 눈동자에는 아직도 의심이 가득했다. 갑작스럽게 신인이 등장한다고? 이렇게 타이밍 좋게?


“신인은 무슨! 야, 너 사실대로 말해! 너 나 가지고 뭔짓 하려던 거였지?”


PD는 불같이 화를 내며, 나마래를 몰아세웠다. 그러자,


“정말이라니까요! 이번 신인이 역대급 예선 점수로 통과했다니까! 이건 어흥선생님 정도가 아니면 결코 낼 수 없는 점수였다고요!”


목소리를 한껏 더 높이는 나마래. 그녀는 손에 들고 있는 큐시트를 PD에게 넘기며 말을 이어갔다.


“일반적인 사람이 이 정도라면, 시청자들이 좋아하지 않을까요?”


그녀로부터 큐시트를 받아 천천히 내용을 살펴보던 PD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각 페이지에 수기로 기록된 점수들. 그녀의 말대로 역대급 점수였다.


“정말 만점이야? 한문제도 놓치지 않았어?”

“그렇다니까요! 어디 속고만 사셨나.”


그녀의 자신감 넘치는 제스쳐는 달달달 떨리고 있던 PD의 다리를 곧바로 멈추게 만들었다.


“이거 완전 대박이잖아! 이거 상부에 보고했어?”

“그걸 왜 내가 합니까? 이게 누구 공인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PD를 바라보는 나마래. 이 미소가 뜻하는 의미를 PD가 모를 리 없었다.


“아, 이거 또 신세 졌네. 하긴 명 MC가 있었으니 이런 인재도 발굴 되는 거지.”

“좋은 프로그램은 좋은 감독이 있기에 만들어 지고요.”


서로에게 덕담 같은 아부를 떤 PD와 나마래. 그렇게 말들로 서로를 핥아주던 그들은 이내 대화를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이 도전자 이름은 뭐야? 상부에 보고하는데 이름 정도는 알아야 할 거 아니야.”

“그게, 본명은 안 쓰고 별명을 쓰던데요.”

“별명?”


PD는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기울였다. 순간 그의 머릿속에 차오르는 불안감. 혹시 범법자나 위험인물은 아닐까. 그의 눈동자가 파르르 떨렸다.


“호, 혹시 문제 있는 사람은 아니겠지?”


눈동자만큼이나 떨리는 그의 목소리. 하지만 곧이어 이어지는 나마래의 이야기는 이런 그를 완전히 안심시키고도 남았다.


“예선 접수를 어디서 하는데요. 출입관리소에서 하잖아요. 공기관도 아닌 국가가 직접 하는데 그런 인간들이 출전할 수 있을까요?”

“하긴! 그렇지!”


PD는 활짝 웃으며 회의실 문고리를 잡았다. 그러자,


“아는 사람이에요.”


살며시 아는 사람이라고 고백하는 나마래. 그 말에 PD는 더욱 안심이 되었다.


“아, 뭐야. 나 아나운서가 아는 사람이었어? 그럼 신용할 수 있지.”


그녀를 바라보며 더욱 활짝 웃는 남자PD. 하지만 나마래의 얼굴은 달랐다. 살짝 당황감이 묻어있는 그녀의 얼굴. 그 당황감은 이내 그녀의 목소리를 통해 밖으로 흘러나왔다.


“아니요, 그 사람 별명이요. ‘아는 사람’. 이게 그 사람 별명이라고요.”




“아! 몰라! 나 집에 보내 줘!”


현과장은 거실 바닥에 벌러덩 드러누우며, 큰 소리로 외쳤다. 그가 그렇게 바닥에 쓰러지마, 그를 따라서 대(大)자로 드러눕는 리코와 키토. 그들은 모두에게 포동포동한 배를 보이며 현과장과 뜻을 같이 했다.


“집에 보내 달라능!”

“집, 가고 싶음.”


이들의 태도에 점차 눈살을 찌푸리는 그녀. 루프의 얼굴에도 당혹감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루프 씨, 뭐해? 우리랑 함께 안 해?”

“이건 아니다. 멍! 이건 아니다, 멍멍!”


난감한 것일까. 루프는 자꾸만 앞발로 얼굴을 긁었다. 그러자, 참다 못 해 폭발해버리고 만 그녀. 이내 그녀는 두 눈을 부라리며 현과장과 두 귀염둥이를 째려보기 시작했다.


“아니, 이런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다고요! 지금 어디서 행패를 부려요?”

“단 한 번도 없었으면, 이번에 배워. 이런 경우도 있다는 걸.”

“아니, 경험해야 할 게 산더미인데!”


그녀는 자신의 울분을 이기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기 시작했다. 그런 그 모습을 안타깝게 쳐다보는 눈동자. 바로 루프였다.


“현과장, 그래도 이건 아닌 것 같다. 멍! 우리가 열심히 준비한 테스트인데 그렇게 땡깡을 부리면...”


순간, 자리에서 벌떡 몸을 일으킨 현과장. 그는 똥그랗게 커진 눈으로 루프를 바라보았다.


“지금 루프 씨 뭐라고 했어?”

“오! 일어나기로 한 거냐. 멍!”

“아니 조금 전에 한 말. 테스트라고? 그것도 우리가 준비한? 기록관이 준비한 게 아니라?”


루프의 표정이 단번에 굳어지고 말았다. 그렇게 기록관의 입단속을 시키더니, 기어코 자신의 입으로 큰 실수를 하고 만 루프. 어떤 말을 해야할 지도 감이 잡히지 않았다. 한번 뱉어낸 말은 주워 담을 수 없으니까.


“내가? 멍? 그랬냐? 멍?”

“그랬다능! 내가 들었다능!”

“나도, 들음.”


키토와 리코도 거들자, 더욱 표정이 굳어져버리고 만 루프. 사정없이 흔들리는 그의 눈동자는 이내 그녀에게로 향했다.


“하여튼! 조심성 없기는!”

“이건 뭔가 잘못됐다! 멍! 기록과 다르게 돌아간다! 멍!”


기록? 지금 기록이라고 했나. 현과장의 눈빛이 사뭇 진지해졌다. 또 다시 큰 말실수를 하고 만 뤂,. 한번 터진 비밀의 보따리는 꿰매지지 않고 연거푸 터져 나갔다.


“지금, 아까 보여준 그 기록하고 다르게 진행 되고 있다는 말이지?”

“오, 오차에요! 오차! 이 정도는 예상할 수 있는 거라고요! 그렇지?”


그녀는 빠르게 수습하려는 듯, 곧바로 루프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맞다, 멍! 기록관의 말이 맞다! 멍!”


단 한 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하는 루프. 하지만 이 척척 죽이 맞는 모습으로 인해, 오히려 현과장은 확신하기에 이르렀다. 그들이 보여준 시나리오대로 일이 진행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어느 정도 확신이 들었으니, 이제는 승부수를 띄울 차례. 현과장은 단호한 눈빛을 머금고 그녀와 루프를 바라보았다.


“사실대로 말하면 협조하도록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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