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가 내 머릿 속에 통째로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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삥뺑뽕
작품등록일 :
2023.02.12 13:03
최근연재일 :
2023.04.30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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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4.24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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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화 - 이름 없는 디스켓을 발견했다

DUMMY

*****


그는 쪽지 내용을 자세히 읽어 보았다. 쪽지에는 한명근 전무라는 사람의 맥 주소까지 적혀 있었다. 맥 주소(MAC 주소)는 특정 기기를 식별하기 위해 사용하는 개인용 컴퓨터의 고유식별 번호이다. 평소 컴퓨터에 관심이 많아 이 정도는 기본으로 알고 있던 그였다.


그 때, 그의 시선이 바둑 우승 트로피 옆에 놓인 다른 트로피들에 향했다.


90년도 바둑대회를 마지막으로 그의 바둑 우승 트로피는 끝이 났다. 그리고 그 옆을 해킹 대회 우승 트로피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 90년도 정보보안 경진대회 최우수상

- 90년도 정보보안 올림피아드 최우수상

...

- 91년도 코드게이트 해킹대회 준우승

- 92년도 세계 해킹대회 데프콘 우승



바둑으로 향했던 그의 관심은 90년대에 들어선 이후부터 해킹 쪽으로 옮겨간 것 같았다.


최승호 설마... 한명규 전무의 PC를 해킹하는 걸까.


만약 그의 예상이 맞다면, 최승호는 왜 이 자의 PC를 해킹 하려는 걸까.


수상한 점이 가득한 쪽지다. 설마 이게 최승호의 비밀 업무와 관련 있는 건가.


그는 일단 쪽지를 원래 있던 자리에 내려 놓고 최승호의 책상으로 눈을 돌렸다. 그리고 책상 위에 꽂혀 있는 책들을 살펴 보았다. 컴퓨터 공학 전공생 답게 프로그래밍의 기초, 데이터베이스, 알고리즘 등의 전공 서적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전공 책들 사이에 껴있는 노트 하나를 꺼내 들었다. 노트를 펼치자 편지지 하나가 책상 위로 툭 떨어졌다.



양선미에게...

선미야, 내 마음을 전하려고 편지를 써.

고등학교 때부터 쭉 너를...



편지는 더 이어지지 못하고 여기서 끝이 났다.


최승호, 양선미를 좋아하는구나. 가만, 양선미도 최승호를 좋아하는 것 같은데 그러면 이 둘은 쌍방인가? 아, 아닌가...?


이런 쪽으로는 경험이 전무한 그였다. 그는 답을 내지 못한채 다시 쪽지를 원래 있던 자리에 끼워 넣었다.


다음으로 그는 책상 밑에 붙어 있는 서랍을 열었다. 가장 위쪽은 문구류들, 그 아래 칸은 잡동사니, 그리고 맨 아래 칸에는 여러개의 디스켓이 들어 있었다. 디스켓은 빨강, 초록, 검정으로 색이 다양했다. 그는 디스켓을 하나, 하나 꺼내 보았다. 디스켓을 만져보는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모든 디스켓들은 흰 스티커 위에 그 이름이 적혀 있었다. 딱 하나만 빼고.


그는 이름 없는 디스켓을 집어 들고 책상 위에 놓인 컴퓨터의 전원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본체 어댑터에 디스켓을 장착 했다. 그러자, 현재는 볼 수 없는 뚱뚱한 모니터의 디스플레이에 옛날 윈도우 로고가 등장했다. 보통 로고 옆에 버전 정보가 붙어 있는데 여기에는 버전 정보도 적혀 있지 않았다.


곧이어 바탕화면에 진입 하기 전, 계정 사용자의 비밀번호를 입력하라는 창이 나타났다.


혹시... 국민번호 1234?


하지만 비밀번호가 틀렸다는 알림만 나올 뿐이었다.


그렇다면, 그 다음으로 많이 사용하는 비밀번호 0000은?


하지만 역시, 이것도 아니었다.


이것도 아니라면 혹시 최승호가 좋아하는 양선미 생일...?


그는 고개를 들어 벽에 붙어 있는 달력을 올려다 보았다. 저기에 그녀의 생일에 대한 정보가 적혀 있을 지도 모른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달력을 자세히 보기 위해 가까이 다가갔다.


10월 10일에 별표가 그려져 있다. 그리고 그 아래에는 조그마한 글씨로 무언가 적혀 있는게 보였다.



- 14시 과학도서관 2층, 외국문학 45 앞 책상, 안쪽 창가자리 전달



양선미에게 쓴 편지에서 본 글씨체랑 똑같다. 그렇다면 이건 최승호의 글씨체였다. 개미같이 작게 흘려 쓴 상당한 악필.


모니터상에 오늘이 10월 9일이라고 표기되어 있다. 그렇다면 내일은 10월 10일.


최승호는 이 날 누구에게 무얼 전달하는 걸까?


그는 일단 달력을 1월부터 12월까지 전부 넘겨 보았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양선미의 생일에 관한 정보는 적혀 있지 않았다.


어떡하지.


지금 그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방법은 단 한가지였다. 그는 주머니 속에 구겨 넣어 두었던 쪽지를 꺼냈다. 쪽지에는 ‘012’로 시작하는 양선미의 삐삐 번호가 적혀 있었다.


1994년은 대부분의 집들에 전화기가 한 대 밖에 없던 시절이었다. 최승호의 집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는 번호가 적힌 쪽지를 들고 전화기를 이리저리 찾아 다녔다. 그리고 거실까지 당도했을 때, 소파 옆에서 수화기를 들고 열심히 친구와 통화중인 최승호의 여동생을 발견했다.


바로 그 순간, 그와 최승호의 여동생의 눈이 마주쳤다.



“...... 야, 뭘 봐? 지금 내가 쓸거거든? 꺼져라?”



그의 여동생은 그에게 날카롭게 쏘아 붙였다.



“아... 그럼 통화 언제 끝나니?”


“아, 몰라!”



그녀는 다시 수화기 너머의 친구에게 말했다.



“어, 미안. 아니 오빠 새끼가 갑자기 전화기 쓴다고 와갖구. 얘기해!”



그녀는 그를 무시한 채 통화에만 집중했다. 형만 둘인 그는 어릴적부터 동생을 가져보는 것이 소원이었다. 하지만, 오늘 그 환상은 보기좋게 깨지고 말았다. 그는 잠시 그의 어린시절을 떠올렸다. 만약 그가 형들에게 ‘새끼'라는 단어를 썼더라면 아마 형들에게 얻어 터졌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젠틀맨인 나는 그런 험악한 방법은 쓰지 않는다.


그는 최승호의 여동생이 전화하는 모습을 온화한 미소로 바라보며 서있었다. 그가 한참을 그러고 서있자 최승호의 여동생은 버럭 화를 냈다.



“야! 너 거기서 계속 뭐하는데?”



그 대신, 나는 햇빛이 되어줄 것이다. 나그네는 따가운 햇빛에 결국 무릎을 꿇고 말았었지.


그는 그녀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그리고 손을 뻗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꺄악! 뭐야!”



이 때다.


그는 기겁하는 여동생이 들고 있는 수화기를 황급히 낚아챘다.



“정말 미안하지만... 오빠 전화 한 통만 할게. 급한 전화라서 말이야.”


“꺼지라고 최승호! 나 쓰는거 안보여?”



그는 수화기를 들어 여동생의 친구에게 양해를 구했다.



“안녕, 갑자기 받아서 미안해. 내가 급하게 전화할 데가 있어서 그러는데, 이따 다시 걸어줄 수 있을까? 어, 그래. 미안하다!”



그는 통화 종료 버튼을 꾹 눌렀다. 그리고 한 손으로는 최승호의 수첩을 들어 양선미의 삐삐번호를 누르기 시작했다.



“우웩! 진짜 짜증나!”



최승호의 여동생은 더러운 것을 털어낼 것처럼 자신의 머리를 헝클어뜨린 뒤 발을 쿵쿵 거리며 방 문을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 그를 다시 한 번 쏘아본 뒤 방 문을 쾅 닫고 들어갔다.


그는 쪽지에 적힌 그녀의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그러자 양선미의 녹음된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들려왔다.



- 어머? 제 삐삐를 호출하셨나요? 그럼 그쪽은 둘 중 하나겠네요. 잘 생겼거나 양심이 없거나. 깔깔깔깔! 그럼 양심껏 수화기를 내려주세요!



그는 자신도 모르게 멍하니 수화기를 내렸다.


아차.


그는 다시 수화기를 들어 그녀에게 음성 메시지를 남겼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로부터 다시 연락이 왔다.



- 10월 10일 오후 1시까지 고려대 이공대 정문 앞으로 나와.




*****




주희용은 집을 나서자마자 도로에 지나가는 택시를 잡아 탔다. 양선미와의 약속까지 남은 시간은 3시간. 그녀를 만나기 전에 먼저 갈 곳이 있다.



“종로구 평창동으로 가주세요”



여기가 동대문구이니 종로3가까지는 그리 멀지 않지만, 그는 도무지 어떤 버스를 타고 가야 할 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에 택시를 이용하기로 했다.


택시 기사는 백미러로 그를 한 번 살펴 보더니 미터기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1000이라는 숫자가 나타났다.


기본요금이 1000원 밖에 안한다고?


택시는 종로로 들어서고 있었다. 그가 자주 다니던 익숙한 거리에는 높은 빌딩이 아닌 작고 아담한 건물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그는 마치 오래된 일기장을 꺼내 보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오늘이 10월 10일. 아직까지는 주희용의 아버지 주창현 박사가 신약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을 시기였다. 주박사가 연구를 반대한 시점을 봤던 그 당시는 11월 초였다.


지금부터 아버지 주변을 맴돌면 아버지 연구에 무슨 일이 있었는 지 알아낼 수 있을 지도 모른다.



“다 왔습니다.”



택시기사가 말했다.



“네, 여기요.”



그는 주머니에 든 지갑을 꺼내 2000원을 내밀었다. 그리고 500원을 거슬러 받았다.



“저기, 학생”



그가 문을 열고 내리려던 찰나에 택시 기사가 그를 붙잡았다.



“...... 네? 무슨 문제라도...?”


“좋은 기운을 가지고 있어요. 부디, 다치지 말아요.”


“...... 네?”



택시 기사는 빙긋 웃어 보일 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아, 감...사합니다”



뭐지. 이 시대에도 도를 아십니까가 있었나?


그는 얼른 차에서 내린 뒤 그를 지나쳐 가는 택시의 뒷모습을 바라 보았다.


더 이상 붙잡지 않는걸 보니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


그는 떠나가는 택시를 뒤로하고 어릴적 살던 동네, 종로구 평창동에 도착했다. 그는 자신의 기억을 따라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아갔다.


그가 살았던 동네는 깨끗하고 한적했다. 즐비한 주택가 가운데 가끔 어린아이가 튀어나와 꺄르르 웃고, 그런 아이를 어른들이 쫓아가는 정도의 소리만이 들려올 뿐이었다.


그의 심장이 빠르게 뛰고 있었다. 그도 기억하지 못하는 과거의 한 장면을 보는 기분이란, 마치 드라마 속의 한 장면에 어떤 마법으로 들어가는 느낌이다. 설레기도 하면서 긴장되기도 하는 그런 느낌.


마침내 그는 그의 집 대문 앞에 도착했다. 초인종 옆 명패에는 그의 아버지의 이름 ‘주창현’ 세 글자가 적혀 있었다. 그는 명패에 손을 얹어 그의 아버지의 온기를 느껴 보았다.


그 때, 대문 가까이 남자와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지나가는 일행인 척 급히 몸을 돌려 대문에서 멀찍이 떨어졌다.



“뭐하러 여기까지 나와요, 몸도 불편한데.”



낮고 묵직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끼익- 하며 대문을 여는 소리가 났다. 남자의 얼굴이 대문 사이로 선명하게 드러났다. 남자는 커다란 금테 안경을 끼고 검은색 양복을 입은채 한 손에는 서류 가방을 들고 있었다.


몇 년 전 과거에서 봤던, 그 모습 그대로의 아버지다.


그의 뒤를 이어 만삭의 여자가 허리에 손을 얹고 불편한 걸음으로 그를 따라 걸어 나왔다. 주희용을 밴 그의 어머니 장사영 여사였다. 화장기 하나 없는 얼굴에 웃음을 함빡 머금은 그녀는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해 보였다.



“여보, 우리 삼룡이가 인사한다. 여기 귀 대 봐요.”



그녀의 말에 주박사는 무릎을 살짝 구부려 그녀의 배에 귀를 대고 태동을 느껴 보았다. 주박사의 입가에 미소가 번져 올랐다.



“이야, 우리 막둥이가 아빠 배웅도 하네! 삼룡아, 아빠 잘 다녀올게.”


“그런데 당신, 오늘도 늦어요?”


“음, 이제 곧 임상 4상으로 넘어가야 하다 보니까 보고서 작성할 것도 많고 또...”


“그걸 누가 몰라? 나도 다 알거든요!”


“그치. 당신도 이미 다 아는거지...”


“당신 안오면 내가 잠이 안온단 말이야. 그럼 삼룡이도 잠을 못자고 어찌나 움직이는지, 꼭 당신을 기다리는 것 같단 말이야”


“하하, 당신이 기다리는건 아니고? 알았어요. 일찍 올게요! 응? 응?”



주박사는 아내에게 인사를 하며 대문 앞에 세워둔 차를 향해 걸어갔다. 그가 운전석의 문을 여는 순간, 맞은편에 서 있던 주희용과 눈이 마주쳤다. 주박사의 눈이 커다래지고 있었다. 최승호의 얼굴을 한 그의 아들을 알아보기라도 한 걸까, 주박사는 운전석 문을 닫고 그를 향해 걸어왔다.



“자네... 나를 어디서 본 적이 있나?”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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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18화 - 사람 조심하는게 좋을거야 23.04.30 15 0 13쪽
18 17화 - 락카페 디제이 팔뚝에 새겨진 문신 23.04.27 16 0 11쪽
17 16화 - 외국문학 45번 책장은 존재하지 않는다 23.04.26 26 0 14쪽
» 15화 - 이름 없는 디스켓을 발견했다 23.04.24 32 0 12쪽
15 14화 - 책 ‘그들에 관한 기록’ 100회 완독 업적 23.02.23 66 0 13쪽
14 13화 - 이로이를 죽이면, 나는 너를 살려줄 것이다 23.02.22 68 0 14쪽
13 12화 - 횡단보도 한 가운데 서있는 아이 23.02.20 73 0 13쪽
12 11화 - 1994년, 과팅에서 만난 그녀 23.02.19 75 0 14쪽
11 10화 - 아스피린 합성 실험 23.02.19 81 0 13쪽
10 9화 - 너는 예언을 받는 자가 아니구나 23.02.18 85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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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6화 - 사라진 임상실험 피험자 23.02.17 121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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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3화 - 거래 조건은 생의 '1시간' 23.02.14 265 2 13쪽
3 2화 - 피해자 DNA의 방사성탄소연대 측정 결과가 이상하다 23.02.12 363 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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