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번째 완주를 끝마칠 즈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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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eamer
작품등록일 :
2023.02.28 23:38
최근연재일 :
2024.09.17 05:52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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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5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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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1.28 0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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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2. 잡지 (1)

DUMMY

내가 오기 전에는 8개, 이제는 9개가 된 방의 할당은 이랬다. 4개는 아이들의 방. 1개는 기장님 방. 2개는 각각 남녀 화장실 겸 목욕탕. 1개는 주방. 1개는 놀이방. 우리의 일과는 주로 놀이방에서 이뤄졌다.


“10번만 더!”


“못해···.”


서준 오빠가 바닥에 엎어지며 항복을 표했다. 오빠를 그리 만들어버린 원흉인 우재는, 이에 대해 일말의 죄책감도 느끼지 않았다. 그러긴커녕 지쳐있는 오빠를 위로 잡아당겨 더 어울려달라 닦달하기만 했다.


우재는 전반적으로 몸 쓰는 걸 좋아했는데, 그중에서도 캐치볼 하는 걸 가장 선호했다. 어설프게 던지는 게 아니라, 진짜 야구선수처럼 비장하게 투구하는 것을. 우재는 항상 마운드에 오른 투수, 서준 오빠 또한 항상 포수였다. 둘의 역할은 한결같았고 절대로 바뀌지 않았다.


둘이 주고받은 공의 회수가 혼동이 올만큼 많아지게 되면, 그때부터 서준 오빠는 무릎 통증을 호소했다. 그러다가 도저히 못 버티게 되면 지금처럼 나자빠졌다. 우재가 더는 던지지 못하도록, 주고받던 고무 재질의 공을 티셔츠 안에 감싼 채로.


“형! 10번만! 10번만 더하자!”


“싫어.”


“그럼 다섯 번.”


“배 째.”


“세 번!”


“꺼져. 내 무릎 박살 날라.”


우재가 계속 질척이자, 서준 오빠의 대답에 날이 서버렸다. 그리고 이것은 우재 안에 내재하여있던 폭력성이 일깨웠다.


우재의 돌발행동은 먼젓번처럼 아무런 조짐이 없었다. 소년은 바닥과 한 몸이 되어있던 서준 오빠를 무자비하게 밟아댔다. 오빠는 외마디 비명과 함께 벌떡 일어나 우재의 손목을 낚아채 비틀었다. 우재는 고통에 미간을 찡그렸고, 그러는 사이 오빠는 우재에게 다리를 걸었다. 둘은 동시에 바닥으로 쓰러졌다. 우재는 일어나려 발버둥 쳤다. 오빠는 이것을 제지하려 무릎으로 우재의 등을 찍어눌렀다. 제압당해 몸을 쓸 수 없게 된 우재는 목청만 드높였다.


“놔! 죽여버릴 거야!”


“내가 무슨 일이 있어도 폭력은 쓰면 안 된다고 그랬지?”


“형이 나를 괴롭혔잖아!”


“애가 또 헛소리하네. 내가 언제 널 괴롭혔어? 설사 그랬다고 해도 사람을 때려? 그게 맞는 행동이야?”


“어쩌라고! 놔! 놓으라고!”


우재의 입가에 침이 끓어오른다. 마차에 탑승하게 된 지 2달이나 되었지만, 우재의 이런 모습은 여전히 적응되지 않는다.


우재는 욱하는 성질머리가 강했다. 빈도가 잦지는 않았으나, 한 번 발동 걸리면 진정시키기 무척이나 힘들었다. 주위에 있는 물건을 던져대거나 이번처럼 남을 가격하기 일쑤였다. 나는 마차에 탑승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우재에게 이런 성향이 있다는 걸 깨우쳤다. 그때부터는 우재를 대하는 데 있어 늘 신중을 기했다. 문제는, 터지는 원인이 불분명한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다.


이번 일도 그렇다. 애초에, 저렇게까지 화낼 일인지 모르겠다. 물론 서준 오빠가 꺼지라면서 성질을 부리긴 했다. 하지만 충분히 그럴 만도 했다. 우재와의 시간은 오빠에게 놀이가 아닌 희생이었다.


“진정할 때까지 안 놓을 거야.”


우재가 이성을 잃을 때마다 녀석을 막는 것은 서준 오빠의 역할이었다. 오빠는 우재보다 연장자였으며, 그보다 육중했기에 이만한 적임자가 없었다.


우재의 거칠던 숨소리가 잦아든다. 그게 반성해서인지, 체념해서인지는 모르겠다. 어찌 됐거나 숙연해졌다.


“...미안해.”


“나도 짜증내서 미안해. 다음부터는 조심할게.”


사죄, 인정을 거쳐 평화가 찾아왔다. 서준 오빠는 속박을 풀었다. 오늘의 소동이 끝났다. 서아 언니에게 들은 바에 의하면 예전, 그러니까 우재가 마차에 탑승한 지 얼마 안 됐을 때는 발휘된 야성을 꺼트리는 게 여간 보통 내기가 아니었다고 한다. 그때는 기장님까지 쫓아와서 말렸을 정도였다고 하니.


나는 우재의 안색을 살폈다. 시무룩해 보인다. 서준 오빠 또한 이를 인지했는지, 우재를 몇 번 힐끔거리더니 이내 혀를 끌어 찼다. 그러면서 가지고 놀던 고무공을 우재에게 내밀었다.


“3번.”


지은 죄가 있던 우재는 우물쭈물했다가, 곧이어 공을 받아들고 아까 자리로 돌아갔다. 둘은 아까처럼 사이좋게 공을 주고받았다. 이러한 화해가 마지막 3회째에 이르자, 우재가 외쳤다.


“이 느낌이야! 한번만 더!”


“아...”


서준 오빠는 공을 배에 집어넣고 다시 엎어졌다. 이에 우재는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둘을 지켜보던 서아 언니는 내 귀에 얼굴을 들이밀고 무어라 쑥덕였다.


“서준 오빠 힘들겠다. 우재가 참 너무해.”


“그러게. 우리가 대신 받아줄까?”


“음. 신경끄자. 윤지야. 대본 다 배꼈어?”


“아직.”


우재의 애착이 야구였다면, 언니에게는 영화였다. 언니는 어렸을 적 얘기를 끄집어내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영화와 관련된 옛일이라면 한없이 수다스러워졌다. 언니네 동네에는 영화관이 없었다. 그럼에도 언니는 저녘마다 매일 한편의 영화를 시청했다. 스크린 트럭을 몰고 다니는 봉사자들 덕분이었다. 아무런 보상도 없이, 어렵사리 구해온 필름을 흔쾌히 재생하던 그들은 동네의 가장 유명한 문화재였다. 그런 이들의 행적은 아직 짧았던 언니의 인생에 크나큰 영향을 끼쳤다.


우재의 애착이 야구였다면, 언니에게는 라디오였다. 언니는 어렸을 적 얘기를 끄집어내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라디오를 통해 송출되는 옛일이라면 한없이 수다스러워졌다. 영화관이나 텔레비전이 극히 적었던 언니의 동네에서 매번 다른 이야기를 접할 수단은 라디오밖에 없었다.


이때를 잊지 못한 언니에게, 라디오는 으뜸가는 유희였다. 하지만 언니는 마차에 탑승하고 나서부터 이러한 취미를 잃었다. 마차에는 라디오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에 언니는 라디오를 대체할 수 있는 걸 찾아다녔다. 그게 바로 연극이었다. 우리와 함께 하는 연극은, 언니에게 있어 장면을 재생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언니는 옷에 관한 집착도 강했다. 열차에 몸을 실는 게 확정된 첫날부터, 언니는 자신의 방에 나를 초대해 옷장에 있는 옷을 차례대로 입어갔다. 그러면서 내게 평가를 부탁했다. 바라는 대로, 나는 언니의 옷이 바뀔 때마다 박수 세례로 호응해주어 언니의 콧대를 높이는 데 일조했다.


그때 내가 해준 칭찬들은 가식이 아니었다. 진심이었다. 언니는 내가 봐온 애들 중에 가장 멋쟁이였다. 본판이 워낙 예쁘기도 하고, 자기 자신을 꾸미고 자랑하는 데 있어 스스럼없었다. 마치 내가 봐왔던 창작물 속 활기찬 여주인공들 같았다. 촌스러운 나로서는 닮고 싶은 구석이었다.


“이제 끝! 시간 됐어! 서아 차례야.”


“알았어.”


서준 오빠는 주도적으로 뭔가 하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우재나 서아 언니, 내가 놀고 싶어 하는 대로 맞춰주기만 했다. 나는 언젠가 오빠에게 왜 그렇게 희생을 자처하는 거냐고, 뭘 하면서 놀고 싶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오빠의 답변은 명료했다. ‘너희들이랑 노는 건 유치해.’ 유치하다니. 나랑 4살 차이 밖에 안 나면서.


간혹가다 서준 오빠가 자기 시간을 요구하는 때도 있었다. 여기에는 지극히 개인적인 여가가 주를 이뤘다. 방에 들어가서 쉬기, 마사지 해주기, 시체놀이 등. 같이 놀려는 의도가 전혀 없는, 오로지 자기 몸을 편하게 해줄 방편들뿐이었다.


서준 오빠는 공을 우재에게 던졌다. 우재는 손바닥으로 이를 쳐내어 장난감 상자에 골인시켰다. 마무리를 지은 둘은 나와 서아 언니 근처로 다가와 털썩 주저앉았다.


“서아. 이제 네 시간이야. 뭐할래?”


“연극. 제목은 햄릿.”


“오그라드는 시간의 시작이군.”


“시끄러워 오빠. 자. 내가 햄릿. 오빠는 햄릿 왕. 우재는 클로디어스. 윤지는 거트루드. 나머지 남는 역할들은 누가 맡을 건지 대본에 적어 놨으니까 참고해.”


“햄릿이 누구야? 이게 뭐하는 작품인데?”


“우재야. 그건 하다 보면 알 거야. 대본 받아. 그리고 오빠는 죽는 연기 잘해야 돼. 그 부분이 하이라이트거든.”


“나는 또 죽어? 어제도 그저께도 죽었는데?”


“그럼 시작.”


서아 언니의 박수를 기점으로 막의 서장이 열렸다. 그러자 다들 분담한 대로 행동하기 시작했다. 특별한 일들이 주가 될 것 같던 마차에서의 일상은 이렇게나 평범했다.








****








노는 건 다섯시 반 경에 마무리 됐다. 기장님이 우리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건 대부분 이때쯤이었다.


“바짝 대세요. 허리 꼿꼿이 피고.”


식사 전. 우리는 각자의 방문에 섰다. 이는 매주 일요일마다 찾아오는 연례행사이자 가장 긴장되는 순간이었다. 지난 일주일간. 우리 중 누군가가 어른이 된 자신을 동경했다면 이 자리에서 발각될 것이다.


방문에는 각자 키에 맞는 높이의 선이 그어져 있었다. 이것은 방을 배정받으면 그어지는 선으로써, 우리가 자랐는지 확인하기 위한 용도로 쓰였다. 기장님 지시대로 벽에 붙어 키를 쟀다고 치자. 그런데 이 선보다 내 신장이 높다? 그러면 빼도 박도 못 하고 자란 거다. 기장님의 마법을 무용지물로 만들 만큼, 격렬하게 어른이 되길 갈구한 것이다.


“우재군. 또 잡지를 숨겨두지는 않았겠죠?”


“당연하죠.”


나랑 서아 언니, 서준 오빠는 별 탈 없이 넘어갔다. 오늘 기장님의 주 타겟은 우재였다. 듣기로는 숨겨둔 야구 잡지가 기장님께 발각당해 압수됐다고 한다.


그 소식을 들었을 당시. 나는 굳이 그걸 압수해야 하나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기장님에게 있어 이건 중대한 문제였다. 우재가 구한 잡지에는 다양한 야구선수들이 출현했다. 그것도 성공한 사람들로만. 기장님은 이들이 우재에게 악영향을 미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들은 많은 이들의 선망을 받았다. 돈도 많이 벌고, 화려했으며, 뛰어났다. 기장님은 우재가 잡지의 관중들처럼 이들을 선망해 버리는 게 아닐까 우려했다. 만약 그리된다면, 우재가 그들과 같은 어른이 되려고 할거라면서.


우재는 선을 위로 두고 벽에 찰싹 기댔다. 기장님은 우재의 몸을 여기저기 만져가며 지지상태를 확인했다. 하자가 없음을 확인한 기장님은 우재의 정수리를 꾹 눌렀다. 그러자 자취를 감췄던 선이 머릿결 사이로 불쑥 튀어나왔다.


“안 자랐죠 기장님?”


“그대로네요.”


“거봐요.”


우재의 기세가 등등해졌다. 그렇게 우리 중 아무도 자라나지 않았음을 확인한 기장님은 흐뭇하게 식당으로 향했다. 우리 넷 또한 기장님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자리를 떠나기 전. 나는 방문을 훑어봤다. 나와 우재의 신장 측정 선은 단 한 줄이다. 반면 서아 언니는 두 줄, 서준 오빠는 무려 다섯 줄이 그어져 있다. 이는 복선이었다. 자고로 마차의 승객이라면, 어른이 되고 싶어 하는 시기가 온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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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3. 도미노 (2) 24.02.06 11 0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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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2. 잡지 (2) 24.01.28 11 0 18쪽
» 2. 잡지 (1) 24.01.28 11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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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1. 탑승 (3) 24.01.23 11 0 23쪽
3 1. 탑승 (2) 23.02.28 19 0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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