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번째 완주를 끝마칠 즈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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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eamer
작품등록일 :
2023.02.28 2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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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7 0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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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7 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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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라디오 (1)

DUMMY

두명의 남성이 서로를 노려보며 멀어진다. 때맞춰 불어오는 황야의 모래바람. 절정에 치닿아가는 음악이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화자에 의하자면 검은 복장의 코트를 입은 남자는 땀에 흠뻑 젖어있다. 반면 거적대기를 걸친 남자는 더없이 평온하다.


스네어 드럼 소리가 시작된다. 비트는 점점 빨라지며, 결국에 빗발친다. 드디어. 그들의 허리춤에 걸려있던 권총이 무언의 신호에 맞춰 연기를 뿜는다. 연이은 두 발의 총성. 누가 결투에 승리했는지 청자는 그 즉시 알 수 없다. 그렇기에 기다린다. 화자가 승부를 판가름내어 줄 때까지.


누군가 신음한다. 그는 한쪽 무릎을 꿇은 채, 관통당한 심장부를 부여잡는다. 코트를 입은 남자였다.


거적대기를 입은 남자는 승리를 확신한다. 그는 자신의 애마 등자를 밟고 안장에 오른다. 코트를 입은 남자는 분통 터져 소리친다. 거적대기를 입은 남자의 별칭을 부르면서.


그러나 거적대기를 입은 남자는 그에게 무심했다. 그는 그저 검은 옷의 남자가 그간 저지른 업보에 대적할 고통에 몸부림치라며 자리를 떠났다. 이후 웅장한 음악이 펼쳐지며 막의 끝을 고했다. 언니는 릴 테이프 재생기를 멈췄다.


"너무 재밌었어! 다들 그랬지?“


라디오 드라마가 끝나자 언니는 우리에게 감상평을 물었다.


"누나. 나 궁금한 게 있어. 왜 주인공이 시도때도 없이 하모니카를 불어댄거야?"


"지하야. 주인공의 원수가 주인공 눈앞에서 형을 죽였던 거 기억나? 그러고는 주인공을 조롱하기 위해 하모니카를 주인공의 입에 강제로 물렸었잖아.


주인공이 네 말대로 시도때도 없이 하모니카를 불어댔던 건, 원수를 잊지 않았으며 복수의 칼날을 갈고 있다는 것을 은연중에 나타내려고 그런 거야."


"방금 있잖아. 총 쏘기 전에 왜 이렇게 말들이 많아? 그냥 후딱 쏴버리면 안 돼? 그리고 심장을 맞았는데 어떻게 소리를 질러?"


"그게 낭만이라는 거야. 우재 너는? 어땠어?"


"어. 그. 재밌게 들었어."


"특히 어떤 장면을?"


"심장 맞고 총쏘는 장면...?"


"야 얘한테 묻지마. 보니까 잠만 퍼질러 자더라."


"오빠는? 재밌게 봤어?"


"여배우 목소리 이쁘더라. 끝."


"에휴. 윤지 너는?"


재미없었다. 내용도 이해하기 어려웠을뿐더러 내게는 너무 잔인했다. 하지만 그리 말해버리면 언니가 실망할 것이 자명하여, 나는 여자들 특유의 공감 능력을 가용했다.


“너무 재밌었어. 열차에 매달려서 악당들을 처치하는 게 멋졌고, 막판에 복수에 성공하는 것도 통쾌했어. 그리고 중간에 둘이서 대립하는 구도가 참 좋더라. 누가 이길지 전혀 예측할 수 없어서 긴장되더라고.”


“역시 네가 뭘 좀 아는구나! 근데 중간에 대립한 건 세 명이었어.”


나는 머쓱하게 한쪽 입꼬리를 올리면서 언니의 눈총을 회피했다.


이 시대 우리의 방송 매체는 주로 라디오였다. 텔레비전이 없는 건 아니었으나, 가격이 고가였는지라 소유하고 있는 집이 드물었다. 꽤 잘 사는 집이거나 우재네 부모처럼 변변찮은 수입을 텔레비전에 투자할 수 있을 정도로 광적인 스포츠광들 정도가 텔레비전을 시청할 수 있었다.


나 같은 경우에는 집에 텔레비전이 없었다. 하지만 시청은 나름 자유로웠다. 아버지의 직장 친구 덕분이었다. 그는 아버지보다 10살은 족히 많을 혼기 놓친 독신이었는데, 어느 날 경품 행사에 당선되어 텔레비전이 덜컥 생기게 되었다.


아버지는 퇴근 후 술집에서 그와 간간이 반주하던 사이였다. 그러나 그의 집에 텔레비전이 생기고 난 이후로는 무조건 그의 집에서 술을 마셨다. 나를 데리고.


아버지의 속셈을 모를 리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아버지의 친구는 우리가 늘 반겨주었다. 아버지가 전적으로 부담했던 술과 안주 때문도 있었겠지만, 부모마저 먼저 떠나보내 버린 독신의 외로운 방에 피어날 산만함을 반겼을지도 모른다.


이들에게는 아이들한테 술 먹는 모습을 보이는 게 좋지 않다는 지론이 있었다. 때문에 그들이 거실 주방에서 술잔을 기울이는 동안 나는 침실에서 텔레비전을 시청했다.


가끔가다 환기, 혹은 이불 세탁이 덜 된 날에는 중년의 퀴퀴한 냄새가 코를 찔렀지만, 텔레비전 채널을 독점할 수 있는 향락을 누릴 수 있다면야 그런 것쯤은 아무렇지 않게 넘길 수 있었다.


이처럼 최신 문물을 접한 나와 우재에게 라디오 드라마는 끌림 없는 사치였다. 그 외에 둘, 지하와 서준 오빠마저도 라디오 드라마에는 관심이 없었다.


지하는 어떻게 이 작은 상자에서 소리가 나는 거냐며 원리만 궁금해할 뿐, 그것으로 누릴 수 있는 문화에는 흥미가 없었다. 서준 오빠 같은 경우에는, 태생부터 감성이 고갈된 사람이라는 걸 다들 아는지라 다들 그러려니 했다.


언니는 이런 우리를 딱해했다. 세상에 존재하는 취미 중 가장 으뜸인 것을 몰라본다며 타박하기도 했다. 오늘 우리가 라디오 드라마를 청취하게 된 이유가 바로 이거였다. 순전히 언니의 의사로 인해서. 좋은 뜻으로 라디오 드라마를 들려주려는 언니를 차마 뿌리칠 수 없었던 우리는 군말 없이 권유대로 움직였다.


라디오는 아이보다 어른에 가까운 물건이었으므로 신기루 마차에 있을 리 없었다. 따라서 언니는 정거장에 도착하자마자 마차에서 하차하여 손님이 없는, 당분간은 올 거 같지 않은 레코드점을 감으로 찍어 그곳의 주인에게 부탁했다. 돈을 지급해 가게에 있는 릴 레코드를 대여할 테니, 지금 가장 인기 있는 라디오 드라마를 재생해줄 수 있냐면서.


어차피 어른들은 한창 일하고 있을 시간이었는지라 가게가 한산했으므로 레코드점 주인은 흔쾌히 (지금 생각해보면, 웬 아이가 들이닥쳐 애원하는 것을 딱하게 여겨 허락해 줬을지도 모른다.) 허락했다.


한 편당 20분 가량의 라디오 드라마를 처음부터 끝까지, 총 9편을 시청했다. 무려 3시간이나. 그만한 가치가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부호가 붙는다. 언니만 신나서 재잘거릴 뿐. 남자들은 졸음을 참기 버거워하거나 지루해했다. 나만이 어떻게든 언니와의 의리를 지키고자 라디오에 집중했다.


그러나 이런 나마저도 라디오 드라마가 절반쯤 재생됐을 때 흐름을 놓쳤고, 이후에는 단편적으로 흘러나오는 정보만을 조합해 줄거리를 유추하기만 했다.


주인에게 상응하는 대가를 치른 뒤 레코드점을 나와 항만 부지로 들어섰다. 이제 막 입항한, 혹은 출항하려는 승무원, 생선을 손질하는 사람들과 도선사, 여행객 등, 바다에 상주하는 사람들로 인하여 항만은 사사로운 잡담들로 가득했다.


사방에 퍼져있는 바다 내음은 응당 바다의 것이어야 했지만, 거친 풍파를 이겨낸 사람이거나 비늘을 손질하는 사람들 또한 이러한 채취가 베어있었다. 그렇게 전염되지 아니하면 이곳에서 살아갈 수 없었다.


여유롭게 해풍을 만끽하던 우리는 어느 마네킹을 스쳐지나가게 되었다. 얼굴 부분이 절삭된 아이들 체형의 마네킹이었다. 마네킹을 앞세운 옷가게의 주 고객들은 어울리지 않게도 험한 일에 종사하는 뱃사람들이었다. 그대들의 자녀만큼은 공주나 왕자처럼 자라나길 바랐기에, 아이들의 옷가게는 어울리지 않게도 그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저 옷 이쁘다. 우리 옷가게나 들렸다 갈까?”


“나는 사양할게.”


“나도.”


“그럼 나도.”


“남자들한테 말한 거 아니네요. 윤지한테 말한 거야. 윤지야 용돈 꽤 모아놨지?”


“응.”


“나머지는 알아서들 놀다 들어가. 나는 윤지랑 쇼핑하다 올게. 집에서 보자.”


언니와 나는 남자애들을 팽개치고 옷가게에 들어갔다. 언니의 행동은 들어가자마자 거침이 없었다. 눈으로 보기만 해도 족할 터였지만 팔을 옷속으로 휘저어가며 여기저기를 들쑤시고 다녔다. 반면 애초부터 옷을 고를 마음이 없었던 나는 하녀처럼 언니 곁을 머물렀다.


마음에 든 옷을 발견한 언니는 옷걸이째로 들고는 거울로 가서 자기 몸에 이를 덧대었다. 언니가 가장 자주 입는 옷. 프릴 달린 원피스였다.


“언니는 원피스를 참 좋아하는 거 같아.”


“내가 좋아하는 드라마의 주인공이 항상 원피스를 입고 있었거든. 그래서 그런가봐.”


“또 라디오 드라마야? 언니는 라디오를 참 좋아하네.”


“윤지 네가 살던 도시는 그럭저럭 잘 사는 도시였다면서. 그런데도 텔레비전이 드물었다고 했지? 우리 도시는 네가 살던 곳보다 훨씬 빈곤한 곳이야. 그래서 라디오밖에 접할 기회가 없었지. 채널은 몇 개 없었지만, 오히려 그래서 자주 들었던 거 같아. 만약 채널 수가 많았다면 뭘 들어야 할지 몰랐을 테니까.”


“무슨 드라마였길래 그렇게까지 심취해 버렸대?”


“내가 살면서 본 드라마 중 가장 인상 깊은 영화였어. 어쩌다가 마법의 대륙으로 가게 된 소녀의 이야기였지.


간략한 줄거리를 말해줄게. 소녀는 숙부, 숙모, 사랑하는 강아지와 함께 살고 있었어. 어느 날. 소녀는 소녀의 강아지를 싫어하던 한 여자와 마찰을 빚어. 아직 어린 소녀는 숙부, 숙모를 비롯한 어른들에게 도움을 요청해.


하지만 다들 일에 치이고 있기 때문에 소녀를 상대해 줄 시간이 없어. 모두에게 외면당한 소녀는 서러워하면서 아리따운 음색으로 노래를 부르지. 무지개 너머 어딘가에 있을 환상의 나라를 선망하면서. 잠깐만. 윤지 너 옷 골랐어?”


“나는 안 사도 돼.”


“또 그러네. 그러면 내가 미안하잖아. 저 옷은 어때? 너한테 잘 어울릴 거 같은데.”


“정말 괜찮대도.”


“알았어. 강요 안 할게. 나가자.”


언니는 들고 있던 옷을 제자리에 두고 가게를 나왔다. 언니는 자주 이랬다. 우리의 용돈은 늘 넉넉했기에 다들 부족함 없이 사용했다. 하지만 언니만큼은 돈을 쓰는 데에 인색했다. 뭔가 가지고 싶은 티가 역력함에도, 우리와 달리 이게 정말 필요한 건지 심도 있게 고민하고 구매했다. 그것이 아무리 저렴한 물건일지라도.


“소녀의 강아지를 싫어하는 여자는, 강아지한테 물렸다는 구실로 소녀의 강아지를 빼앗으려 해. 없는 사실을 지어낸 것도 아닌지라, 소녀는 꼼짝없이 강아지를 뺏길 위기에 처하지. 소녀는 강아지를 뺏기지 않기 위해 강아지와 함께 도주를 감행해.


그러다가 수정 구슬을 통해 숙모가 앓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되고, 이에 마음이 약해진 소녀는 변심해서 집으로 돌아가게 되지. 그러던 중. 갑작스럽게 거대한 폭풍이 일어나. 소녀는 폭풍을 피하기 위해 어느 가옥으로 들어가. 하지만 가옥은 견고하지 않았고, 결국에 소녀는 가옥째로 토네이도에 휩쓸리게 돼. 그로 인해 신비한 나라에 도착하게 되지.”


“언니 기억력 되게 좋다. 근데 언니가 말한 드라마는 텔레비전으로 보면 더 재밌었겠다. 신비한 나라가 어떻게 생겼는지 볼 수 있을 거 아니야.”


“그럴 리가. 텔레비전은 라디오를 이길 수 없어.”‘


“어째서?”


“눈을 감아봐.”


나는 눈을 감았다. 밝았던 세상이 일제히 암전되었다.


“바닷가 풍경이 그려져?”


지시를 받고 스쳐지듯 목격한 방금의 풍경을 암전된 머리속에다 그렸다. 하지만 아무리 애써 그려내도, 희미한 기억은 내 안에 풍부하게 그려지고 있을 색조에 훼방을 놔 오래된 색깔부터 지워냈다.


이를 극복하려던 나는 무수한 망상을 반복하였지만, 시간이 갈수록 흐려져 암전되는 주기가 짧아지는 것을 깨닫고는 내 노력이 전부 수포가 될 것임을 인식하고 그만두었다.


“그냥 깜깜한데.”


“경험이 별로 없어서 그래. 나는 라디오를 들을 때마다 눈을 감곤했어. 그러면 내가 듣고 있는 음성들은 그대로 화면이 되었지.


나는 그 화면을 자유자재로 꾸미곤 했어. 고대 유적을 탐험하는 탐험가가 휘두르는 채찍. 비 오는 날 사랑에 빠진 채 탭 댄스를 추며 노래하는 신사. 고대의 원형 경기장에서 펼쳐지는 전차 경주.


나는 사람이 사람에게 보여줄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해. 하지만 내가 꾸며낼 수 있는 상상에는 한계가 없어. 네가 봤던 텔레비전이 아무리 흥미진진했다고 한들, 내 상상력보다 풍부하지는 못할 거야. 아. 저거 봐 윤지야.”


파도가 끝나는 해안의 모래사장 지점에 갈매기들이 모여있다. 그런 갈매기들과 교감하고자 했던 이들은 기다란 과자를 손에 집은 채 팔을 높이 올려 갈매기를 기다렸다. 그리하면 갈매기들은 서로 눈치를 보다가 비상하여 과자를 낚아챘다.


“시간도 널널한데 갈매기 밥이나 줘볼까 윤지야?”


“그러자!”


우리는 길거리 가판대에 있는 과자 한 봉지를 구매해 뜯었다. 그리고는 다른 이들처럼 과자를 집고는 높게 들어 허수아비처럼 가만히 있었다.


“그 드라마 속 주인공 있잖아. 마치 언니 같다.”


“어떤 면이?”


“주인공은 부모님이 안 계셔서 숙모 집에 얹혀살았을 거야. 언니도 전쟁통에 부모님이 돌아가셔서 이모 집에 얹혀살았다면서. 게다가 주인공이 무지개 너머 나라로 갔듯이, 언니는 신기루 마차에 탑승하게 됐잖아. 집을 나온 이유도 비슷하네. 주인공은 강아지를, 언니는 막내 동생을 지키려고 했잖아.”


“우리 윤지 대단한데? 나에 대해서 아주 줄줄 꿰고 있네?”


“물론이지. 내가 언니한테 얼마나 관심이 많은데. 드라마 속 주인공이랑 언니랑 다른 점이 있다면... 동생들이 있는 거랑 주인공의 숙모네가 언니 이모네처럼 각박하지 않았다는 거?”


“우리 이모네도 좋은 사람들이었어. 너무 좋았기에 탈이었지. 풍족한 형편이 아니어서 막내를 다른 나라로 입양시킬거라며, 우리에게 훌쩍이면서 솔직하게 말할 정도였으니까. 그러니까 비난하지 말았으면 해.”


“미안 언니. 그것까지는 내가 몰랐네...... 참. 몇 개월 안 있으면 언니의 첫 번째 완주잖아. 고향에서 동생들을 볼 수 있는 날이 얼마 안 남았는데 소감이 어때?”


“너무 설레여서 요즘 밤잠을 설치고 있어. 다들 어떻게 변했을까? 밥은 다들 안 굶고 다니겠지? 우리 막내는 헤어질 때 한 살도 되지 않았었는데, 나를 알아보지 못하겠지?”

언니는 우수에 찬 표정을 지었다. 나는 그 모습을 안타깝게 바라보며, 정녕 언니와 동생들의 생이별이 필연인가에 대해서 고뇌했다. 그러다 문득 쓸만한 생각이 떠올랐다.


“언니. 나 좋은 생각이 났어.”


“뭔데?”


“동생들이랑 같이 마차에 탑승하는 거야. 그러면 걔들이랑 언니랑 같이 살 수 있잖아.”


“안 그래도 나도 그거에 관해 기장님과 숱한 이야기를 나눴어. 하지만 안 돼. 나이가 걸려.”


“언니 동생이면 언니보다 어릴 거 아니야?”


“너무 어려서 문제가 돼. 우리 막내가 탑승했다고 가정해 봐. 걔가 이제 다섯 살이거든. 12년 후에 17살이 되겠네. 그리고 17살은 아직 성인이 아니야.”


“성인이 아닌 게 어때서?”


“모르겠어? 세 번째 완주를 끝마쳐도 여전히 아이인거야. 어른이 되기도 전에 어른이 될 기회를 박탈당하는 거지. 이 아이가 성인이 되고 나서야 나이에 걸맞는 어른이 되고 싶어한다고 생각해봐. 그렇게 되면 그만한 저주가 없는 거야.


아이는 기장님을 원망할 테고, 기장님은 그런 원망이 새겨진 채 신기루 마차를 운행하게 되겠지. 평생 고함이 오고 가지 않을까?”


“마법을 걸지 않고 태우면 되잖아.”


“그렇게 되면 탑승료를 지불할 수 없잖아. 알잖아 윤지야. 탑승료를 지불하지 않은 아이가 신기루 마차에 타고 있으면 마차는 운행을 거부하고 바퀴를 굴리지 않아.”


“으. 맞네. 복잡하다.”


머리가 지끈거린다. 더 이상의 조언은 언니에게 있어 어쭙잖기만 할 것이라 여긴 나는 다른 주제를 모색했다. 그러다가 언니의 어깨에 걸려있는 쇼핑백이 눈에 들어왔다.


“언니는 고향에 있을 때도 원피스 많이 입었겠다.”


“많이 입긴 했는데... 이렇게 탁 트인 원피스는 한 번도 못 입었어. 내 고향에서는 그런 옷을 입어서는 안됐거든.”


“그게 무슨 소리야? 세상에 옷 입는 거 가지고 뭐라하는 곳이 어딨어? 헐벗고 다니는 것도아니고.”


“가보면 알게 될 거야. 윤지야. 저기 갈매기가 날아오고 있어. 이제 가만히 있자.”


언니의 말마따나 한 마리 갈매기가 우릴 향해 날아오고 있다. 언니 대신 나의 것을 물어다 주었으면 하는 마음에, 나는 팔을 한층 더 쭉 뻗었다.


그런 노력이 갸륵했는지, 갈매기는 언니의 손에 들린 것 대신 내 손에 들린 먹이를 낚아챘다. 그 짧디짧은 교류가 신통방통했던 나는 환성을 내질렀다. 언니는 어떤 질투도 하지 않고 이런 나를 자애롭게 바라봐주기만 하였다.


나는 이때까지 여러 국가와 도시를 거쳤다. 또한 앞으로도 방문하게 될 곳을 포함하면 이는 지금까지 겪어온 도시의 절반도 채 되지 않는다. 이런 나에게 방문한 도시 중 어디가 최고였냐고 묻는다면, 나는 고뇌할 수밖에 없다. 저마다의 장단점이 있기에 우열을 가릴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악의 도시가 어디인가에 대한 질문은 손쉽게 답할 수 있다. 단언컨대 언니의 고향, 제국의 무덤이라 칭해지는 국가의 도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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