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번째 완주를 끝마칠 즈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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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eamer
작품등록일 :
2023.02.28 2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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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7 0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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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7 0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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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라디오 (2)

DUMMY

터널은 포장을 뜯지 않은 선물 상자와 같다. 필연적으로 들여다볼 수밖에 없는 입구는 꽁꽁 싸매어져 있는 끈이며, 칠흑 같은 내부를 통과하는 것은 끈을 풀어헤치는 것과 같다. 그리하여 다다르게 될 출구는 이 길을 처음 찾은 이에게 선물이다.


그렇기에 나는 터널에 빠져나오자마자 맞이한, 살갖을 찌르는 모래 먼지에 불평하지 않으려 했다. 비록 바라지 않은 선물일지라도, 나중에 화자 할 수 있는 아무것이 될 수 있음으로. 하지만 이번에는 지키지 못했다.


“어우! 여긴 왜 이따위래요?”


나는 기장님과 함께 운전석에 있었다. 내가 익사 위기에 빠진 사람처럼 허우적대자, 기장님은 황급히 창문을 닫고는 내 주머니에 있는 손수건을 꺼내어 얼굴을 닦아 주었다. 그제야 사람 구실을 할 수 있게 된 나는 기장님께 푸념했다.


“모래 폭풍이 이렇게 따가운 건 줄은 몰랐어요. 근데 왜 이리 모래가 불어재끼는 걸까요?”


“워낙 기후가 건조한 동네라 그렇습니다. 초목도 별로 없는 황무지인지라, 바람이 불면 모래알을 섭취하는 게 일상이죠.”


“날씨도 후덥지근하네요. 이런 곳에서 사람이 어떻게 살지.”


“아주 오래전에는 이러지 않았다고 합니다. 본래는 잔디가 우거진 들판 지대였다고 하더군요.”


“그 오래라는 게 몇 년 전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족히 수십세기 전이요.”


“으.”


나는 혀를 내둘렀다. 내게는, 심지어는 기장님마저 감당할 수 없는 세월이었다. 이를 어떤 식으로라도 표현하고팠던 나는 괜스레 기장님의 무릎에 상체를 포개어 마구 흔들었다. 기장님은 이런 내 과장을 아양으로 봐주셨는지 머리칼을 넘겨주며 볼을 쓰다듬었다.


“윤지 양. 갑작스럽지만 부탁 하나 해도 되겠습니까?”


“기장님 부탁이라면 얼마든지요.”


기장님은 코트 안에 손을 넣어 무언가를 끄집어냈다. 속삭임 편지였다.


“세 정거장만 더가면 서아 양의 고향입니다. 거기서 이 편지를 배송해주시겠습니까?”


“물론이죠. 제가 늘상 하는 일인데요 뭐... 어? 근데 언니 고향에서는 편지를 받을 사람이 없다고 들었는데요.”


“한 명 있습니다. 원래는 편지를 보내지 않으려고 했건만... 미련이 남아 도저히 그럴 수가 없더군요. 그리고 윤지 양. 제가 이번에 보내는 편지는 반드시 비밀로 해주세요.”


"그래야 하는 이유가 뭔가요?"


"서아 양이 그 사람을 두려워하거든요."


"왜요?"


"그 동네에서 굉장히 위험한 인물로 손꼽힌다고 하더군요. 그렇지만..."


기장님은 말끝을 흐렸다. 자신이 돌봤던 아이가 그렇게 됐다는 걸 인정하기에는, 그 아이를 향한 기장님의 사랑은 심히 맹목적이었다.


"저는 서아 양을 신뢰합니다. 하지만 그 말만은 믿을 수 없습니다. 택진 군은 그럴 아이가 아닙니다."


"그 사람 이름이 택진인가 보네요."


"네. 정택진 군이라고 합니다. 올곧은 아이였어요. 지금은 경찰 일을 하고 있다고 들었고요. 그런 아이가 무슨 수로 남들을 못살게 굴겠습니까? 만약 그랬다고 하더라도, 무슨 오해가 있을 겁니다. 그럴 수 밖에 없었던 피치못할 사정이 있었을거에요. 그러니..."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기장님. 제가 이분한테 편지를 전달하고 올게요. 꼭이요.”


“정말 감사합니다. 서준 군에게 칼같이 거절당해 앞이 캄캄했는데. 윤지 양이 있어서 정말 다행입니다.”


믿을 수 없었다. 기장님의 지시라면 하늘 같이 떠받드는 오빠가, 기장님의 부탁을 단박에 거절했다는 것이.


“오빠가요?”


“네. 신기루 마차에 탔다고 해서 다들 선량한 사람은 아니라며, 자기는 본 적 없는 그 사람보다 매일 부대끼는 서아 양을 믿겠다고 하더군요. 그런 연유로 이번 배송은 하지 않겠다고...”


꾀 많은 오빠에게는 앞날을 어느 정도 내다볼 수 있는 혜안이 있었다. 그런 오빠가 했던 말은 타인을 통해 전달된 것임에도 내 귓전으로 때려 박는 듯한 일리가 있었다.


꺼림칙한 기분이 든다. 성급하게 수락한 게 후회되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기장님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다. 이제 와서 거절하기엔 뭣하다는, 그런 구질구질한 이유 따위가 아니다. 나는 기장님께 은혜를 입었다. 그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면, 나는 위험쯤이야 무릅쓸 수 있었다. 어리석게도.











***











“일어나 윤지야!”


나는 입술에 껴 질척이는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뺐다. 그리고는 댓바람부터 야단법석인, 누워있는 내 위에 올라 타있는 소녀의 허벅지를 밀어댔다.


“언니... 답답해... 나와.”


위험하다고 명성이 자자한 이곳을 아무 이유 없이 나다니다간 언니의 의심을 살게 뻔했다. 이 때문에 나는 기장님과의 면담을 마치자마자 언니의 방을 방문했다. 언니네 동생들을 보고 싶다는 구실을 앞세워 함께 외출할 약속을 잡기 위함이었다.


언니는 흔쾌히 수락했다. 자신의 가족은 나의 가족이기도 하니, 응당 그래야 되지 않겠냐며 거들기까지 할 정도였다. 양심이 찔렸지만, 기장님의 기대에 부응하려면 이럴 수 밖에 없었다.


“빨리 준비해! 얼른 동생들 보러 가고 싶단 말이야.”


“10분만. 양치랑 세수만 할게. 옷도 갈아입고.”


“알았어. 10분 있다가 보챌게. 그리고 윤지야. 이거 받아.”


언니는 팔목에 걸쳐진 검은색 천을 내게 내밀었다. 그것은 스카프라기에는 너무 컸다. 식탁보로 쓰기에는 길이가 균일하지 않아 효용성이 없었다. 그냥 의미 없는 천 쪼가리라 치부하기에는, 어떤 용도로 쓰기 위함인지 크게 뚫려있는 구간이 있어 그럴 수 없었다. 나는 이게 뭔지 도통 알 수 없어 언니에게 물었다.


“뭐야 이게?”


“차도르라는 거야. 옷 다 입은 다음에 이걸 뒤집어쓰면 돼. 잘 봐. 이렇게 하는 거야.”


언니는 천에 손을 넣어 피고는 머리에 썼다. 그러자 언니의 전신은 천에 뒤덮여 오로지 얼굴만 빼꼼 나온 꼴이 되었다.


“이게 뭐야. 답답하고 바보같아. 나는 안 입을래.”


“안 돼. 내 고향에서는 입어야 해. 안 그러면 길을 가다가 괜히 시비가 걸릴 수 있거든.”


“누가?”


“아주 위험한 사람들.”


언니의 주어는 절대다수를 지칭하고 있었다. 어조 또한 단호했다. 거기에는 반드시 새겨들어야 할만한 위력이 있었다. 그렇지만 나는 이러한 참언을 헤아리지 못하고 뾰로통하기만 했다.


이 옷은 불합리의 집대성이다. 나는 어떻게든 거절할 궁리를 했다. 그러다 문득 언니가 놀이에 응하지 않고 재봉에 열을 올리던 것이 떠올랐다.


자기 팔뚝보다 넓었던 재단 가위. 바늘에 꼬인 선이 삐뚤빼뚤한 박음질로 천과 천을 연결하고, 간혹가다 손동작에 방심을 기하면 끄트머리는 표적을 빗겨가 열의를 꺾는다. 그래도 재봉은 이어진다. 누군가에게 입혀지기 위해서. 간단한 디자인. 그러나 어리숙한 손길에 의해 조잡하게 완성된 복장은 그렇게 애써 완성되었다.


“내가 너 입으라고 만든거야 윤지야.”


그러한 정성을 가늠할 수 없었던 나는 언니가 준 차도르를 넙죽 받아들었다.












***











불어오는 바람은 도시의 바닥에 전부인 마른 흙을 난잡하게 쓸어 담아 모든 이들의 얼굴에 흩뿌렸다. 나는 눈에 끼인 흙은 눈물로, 비강에 정착하려는 흙은 재채기로 처리해가며 황량한 거리를 몸소 체감했다.


“이래서 차도르를 쓰라고 한 거야?”


“고작 그게 이유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럼 이걸 왜 입고 다니는 거야 언니?”


“이 나라의 규칙이라서.”


“어떻게 해서 만들어진 만든 규칙인데?”


“그건 나도 잘 몰라. 확실한 건, 아주 오래 전에 세워진 규칙이라는 거야. 그래서 다들 당연한거라 생각하고 군말 없이 따르는 거지.”


세계를 유랑하면서 내가 깨달은 것은, 나라마다 고유의 규칙이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나는 언니의 국가가 유독 유별난거라고 생각하고 이 옷의 존재가치에 대해서 가벼이 넘겼다. 나는 주위를 살폈다.


도시는 저마다의 특색을 지닌다. 처음 와본 장소임에도 낯익어 보이는 곳, 부푼 기대를 안게되는 곳. 길을 잃기 쉽상이라 신중히 헤메여야 하는 곳도 있으며, 따분한 곳 또한 부지기수이다.


이번 도시는 내가 여지껏 겪지 못한 분위기를 풍겼다. 위협이 느껴진다. 발을 내딛기 조차 두렵다. 언니의 경고가 귀에 맴돌아서? 영향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산이 되다만 언덕들에 계단식 가옥이 다닥다닥 지어져 있다. 가옥은 흙벽돌로 지어진, 여지껏 본적 없는 궁핍한 건물이었다. 그 아래 평지에는 허름한 단독 주택과 저층 아파트들이 시내를 형성하고 있었다.


도로는 신분을 갈라내듯이 하필이면 이 두 지대를 가로지르고 있었다. 어느 쪽이 더 나은 삶인지는 알겠다만, 그래 봤자였다. 둘 다 위태로운 삶인 것은 매한가지였기에, 언덕에 사는 사람들은 평지에 사는 사람들을 그리 부러워하지 않을 터였다.


도로에는 자동차가 없었다. 대신 수레를 끄는 여인이 있었다. 그녀는 마찬가지로 차도르를 쓰고 있었다. 전신을 가린 차도르 때문에 그녀의 체형을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볼살이 파여있는 걸로 보아 앙상할 것이라 여겼다.


그녀가 끌고 있는 수레 안에는 내용물을 알 수 없는 포대가 수북이 쌓여있었다. 안의 내용물이 솜털이었을지라도 나는 끌 수 없을 만큼 많은 양이었다. 그녀는 어떠한 책임감을 짊어지고 있었기에 갸날픈 팔로 저만한 수레를 끌 수 있는 걸까.


우리가 걷는 가도의 옆에는 돌담이 줄지어져 있었다. 높이가 내 무릎 만큼도 안되는 것으로 보아 길을 차단하려는 의도로 쌓아 올린 것은 아니었다. 예상해보자면, 이 닦이다 만 가도가 길임을 나타내는 용도였을 것이다.


돌담은 촘촘하게 쌓여있었지만, 저 멀리 보이는 구간의 돌담만큼은 그렇지 않았다. 그곳의 돌담은 거대한 망치로 얻어맞은 것처럼 무너져 있었으며, 돌조각 파편이 여기저기 튀어있었다. 또한 근방에는 연소된 경찰차 있었다.


단순히 자동차가 돌담에 충돌한거라 칠 수도 있었지만, 그러기에는 앞뒤가 맞지 않았다. 돌담은 자동차가 충분히 밀어버릴 수 있는 두께였기 때문이다.


군중들은 경찰차가 아닌 그 옆에 무언가를 둘러싼 채 수군거리고 있었다. 나는 그들에게 가리어진 물체가 주변을 엉망으로 만든 원흉일 것이라 생각했다.


이윽고 군중 중 한 명이 자리를 비키고 나서 목격할 수 있는 공간이 생겨났고, 나는 그 틈새를 통해 보고야 말았다. 쓰러진 채 벌거벗겨진 남자의 선혈을. 그의 갈라진 명치에서 튀어나온 갈비뼈를. 형체를 알 수 없게 문대어진 얼굴을.


“보지 마.”


언니는 강제로 내 머리를 잡고는 반대 방향으로 돌려버렸다. 나는 방금 전에 내가 본 것을 믿지 못하여 얼떨떨해하다가, 순간 그것이 사체였음을 이해하고는 벌벌 떨었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언니를 붙잡았다.


“얘기 좀 해줘 언니.”


“어떤 거?”


“아무거나. 내가 잊을 수 있을만한... 여기는 언제부터 이렇게 위험했어?”


“내가 태어났을때부터 이미 위험한 나라였어. 파병군이 이곳을 점거하고 나서는 더 심해졌지.”


“파병군은 어느 나라에서 온 군인들인데?”


“지도상으로 내 나라 바로 북쪽에 정말 강력한 국가가 있어. 앞으로 몇 정거장 안 있으면 도착하게 될 테지. 거기서 온 사람들이야.


내 나라는 원래 여러 군벌들이 판쳤었어. 서로 싸우는 것도 모자라 시도 때도 없이 우리를 착취하는, 하나같이 아주 악독한 놈들이었지.


파병군은 이들을 응징하기 위해 이곳을 침공했어. 왜 응징하려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자기네들 일도 아니었는데. 어쨌든간에, 파병군의 군대는 국력에 걸맞게 강력했어. 개전한지 채 한달도 안되서 군벌들을 몰아내고 이 땅을 차지했지. 그렇게 허무하게 전쟁은 끝났어.”


“언니 부모님은 그때 돌아가셨구나.”


“틀려. 우리 엄마랑 아빠는 전쟁이 끝난 후에 돌아가셨어. 곳곳에서 파병군을 몰아내기 위한 지하드가 시작됐거든. 그때 폭발에 휩쓸리셔서 그만...”


“지하드가 뭐야?”


“종교적인 신념이 과한 사람들이 벌이는 짓이라는 것만 알아둬. 원래 나는 그들과 같은 종교였지만, 그런 광신적인 사람들의 만행을 겪고 나서부터 나는 내가 믿던 종교를 버렸어. 이 얘기는... 더는 하고 싶지 않으니까 넘어갈게. ”


언니는 내 어깨에 손을 올리고 나를 똑바로 쳐다봤다. 나는 그 눈을 피하지 않고 똑같이 주시했다.


“윤지야. 내 말 명심해. 이곳에선 누구랑도 엮여서는 안 돼. 군벌들은 시민들 틈에 섞여 있고, 파병군은 그런 군벌들을 몰살시키기 위해 혈안이 되어있어. 그러니 괜한 관심 사기 싫으면 누구랑도 교류하려 하지 마. 절대로.”


언니의 경고가 제대로 와닿았던 나는 막연하게 대답했다.


“명심할게,”











***











언니의 이모네로 가기까지 주의를 사로잡을 만한 상황이 몇 번 있었다. 나는 언니의 조언에 따라 그런 상황들을 전부 외면한 채 그저 땅만 보고 걸었다. 그게 내가 행할 수 있는 가장 안전한 방법이었다.


"이 근처야. 거의 다 왔어."


골목길 모퉁이를 돌자, 안 그래도 빠르던 언니의 걸음이 더욱 빨라졌다. 언니는 이내 달리기 시작했고, 나는 그 뒤를 부지런히 따라갔다. 그리하여 우리는 어떤 장소 앞에 다다랐다. 나는 이때 무언가 잘못됐음을 느꼈다.


그곳에 있는 거라고는 벽돌째 무너져 황폐화된, 아무도 살지 못할 폐가 뿐이었다.


벽돌 사이에 삐죽 튀어나와 있는 양탄자는 분명 누군가가 이곳에 살았었다는 징표였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흔적일 뿐이었다. 양탄자 위에 자옥한 시멘트 가루는 어떤 거스름도 없이 세월에 부대끼며 양탄자 실밥 사이 틈을 잠식하고 있었다. 얼마나 오래 그런 상태로 있었는지는 나 따위가 알 겨를이 없었지만, 충분히 오래 되었다는 것쯤은 나조차도 알 수 있었다. 나는 조심스레 언니에게 곁눈질을 보냈다.


"언니. 언니네 이모집은 여기가 아닌 거 같아. 오랜만에 와서 헷갈린 거 아니야?


"아니야. 분명히 여기가 맞아. 동생들을 보는 날을 꼽아 기다렸어. 그런 내가 이모네집 위치를 까먹을 리가 없어..."


언니는 확신하고 있었다. 그러나 어조와 다르게 언니의 낯빛은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갈곳을 잃어버린 언니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러다 누군가를 발견하고는 외쳤다.


"아저씨! 저 기억하세요? 아저씨! 아저씨!"


길을 가던 행인은 연이어 불러지고 나서야 우리를 쳐다봤다. 그 후에 아리송한 표정은 덤이었다.


"글쎄다. 누군지 잘..."


"저 여기 살았았어요! 왜요, 여기 남매 네명이 살았었잖아요. 맏이가 가출했었구요. 제가 그 가출한 맏이에요. 기억 안나세요?"


"아! 너였구나! 어... 그런데 희안하네. 그게 꽤 오래전인데 어떻게 된게 하나도 안변했니? 내가 알던 모습이랑 판박이구나."


"다들 어디 간 건가요? 이사했나요?"


아저씨는 어물쩍거렸다. 태도로 보아 그는 이모네의 행방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테러가 있었단다."


"테러라뇨?"


아저씨는 말을 흐렸다. 이어질 내용이 언니에게 차마 말할 수 없는 것이어서 그랬겠지만, 그렇다고 실토 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폭발물을 실은 트럭이 너희 삼촌네 집에 충돌했어. 아마 군벌놈들 짓이었을거야. 트럭 운전수도 죽어버렸거든. 너도 여기 살아봐서 알겠지만, 자기 목숨을 걸고 테러를 자행하는 놈들은 그놈들이 유일하니까. 네 이모는 그때..."


절망적인 소식에, 언니의 목젖에 슬픔에 차올랐다. 그렇지만 이러한 슬픔은 밖으로 터져나오지 않았다. 실날같은 희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모부는 살아 계신다는 건가요? 그리고 사촌 동생이랑 제 동생들은요? 다들 무사한가요?"


"이번 테러는 동시다발적으로 이뤄졌어. 라디오 방송국과 거기서 일하는 사람들의 집. 듣기로는 네 이모부랑 사촌 동생, 둘째 남동생이 라디오 방송국 테러에 말려들었다더구나. 병원에 입원했다는 데 얼마나 호전됐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어. 미안하다. 괜히 병문안을 갔다가 나도 연루될 수 있어서..."


"그럼 셋째랑 넷째는 지금 어디 있나요? 누가 돌봐주고 계세요?"


아저씨는 조용히 읊조렸다. 마치 언니가 듣지 않기를 바라는 듯이.


"파병군이 데려간 걸로 알고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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