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저러다 다 죽겠는데?
*
세 줄기 광채였다.
은빛의 광채가 먼저 사방을 뒤덮었고 좌측에는 붉은 빛이, 우측에는 흑백으로 뒤섞인 광채가,
외진각주 설파혼과 부각주 효지림과 관쌍이었다.
동시에 커다란 배가 물살을 가르며 모습을 드러냈다.
마교의 인물들이 잔뜩 올라 타 있는.
빛줄기는 허공을 뛰어넘어 나루터 앞에 안착했다.
맹주와 설파혼이 약간의 거리를 두고 마주 섰다.
맹주의 곁에는 대행과 편하직이 서 있었고 설파혼의 좌우에는 효지림과 쌍관이 서 있었다.
맹주의 뒤에는 일백 팔 명의 군웅사상팔괘진이 펼쳐져 있었고 설파혼의 뒤에는 암행귀 야율과 창해귀 벽리산, 그를 따르는 흑령기와 청령기의 무사들이 배에서 내려 뭍으로 오르고 있었다..
주위를 휘이 한 번 둘러 본 설파혼이 먼저 입을 열였다.
“역시 중원은 다르군요. 이렇게 은밀하면서도 아름다운 곳이 있을 줄이야. 저는 어디선가 찬 밥을 먹으며 복수의 칼을 갈고 있을 줄 알았지 이렇게 좋은 곳에서 휴양하고 계실 줄은 몰랐습니다.”
예의를 갖춘 조롱이었다.
편방주가 발끈하며 나서려는데 대행이 슬쩍 손을 내어 막았다.
“세상 이치가 그렇습니다. 가장 은밀하고 안전한 곳이 달아날 길 없는 막다른 골목이 되기도 하지요.”
설파혼의 조롱 섞인 말에 맹주가 미소를 지었다.
“세상의 이치란 건 복잡하지 않네. 살아서 바른 길을 걷고 죽음을 만나면 피하지 않는 것. 그게 내가 아는 이치라네.”
“죽음을 만나면 피하지 않는다는 건 훌륭합니다, 헌데 살아서 바른 길을 걸었다고? 훗~ 너희들의 바른 길이 우리한테는 지옥이었거든. 그러니 이제는 우리가 편한 길을 가고 너희가 지옥 길을 걸어야 세상의 균형이 맞아지겠지.”
맹주는 굳게 입을 다물었다.
이 곳에 있는 인원은 군웅맹 전력의 전부인 상황, 하지만 마교는 점점 더 많은 숫자가 지원 올 것이다.
시간은 마교의 편인데 논쟁을 끌어가는 건 점점 더 불리해질 뿐이다.
답이 없는 논쟁 또한 사기를 떨어뜨릴 뿐이다.
맹주가 말 없이 허리춤 검에 손을 올렸다.
설파혼이 입꼬리를 비틀며 비웃었다.
“약속하지. 지금이라도 검을 버린다면 무공만 폐하고 목숨은 살려 주기로.”
맹주가 철검을 철컥 뽑아 들었다.
- 툭.
검집이 옆에 떨어졌다.
목숨을 걸었다는 뜻.
그것이 맹주의 대답이었다.
설파혼이 떨어진 검집을 잠시 보더니 자신의 검을 뽑아 들었다.
- 쓰릉
악기처럼 맑은 소리와 함께 은빛 광채가 뿜어져 나왔다.
“출구 봉쇄해라! 단 하나도 살려 보내지 말지어다!”
“일월성신! 존명파사!”
마교의 수하들이 무기 뽑아 들며 소리 높여 주문을 외웠다.
군뭉맹의 무사들도 모두 무기를 꺼내 들고 상대를 노려보았다.
맹주와 설파혼 중 한 명이 움직이는 순간 이곳은 피와 살이 튀고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지옥의 땅이 될 것이다.
하지만 맹주도 설파혼도 먼저 움직이지 않았다.
마치 상대한테 먼저 공격하라는 듯.
그건 일종의 자존심 문제였다.
승패를 떠나 하수한테 선수를 양보하는 건 고수의 명예였으니.
둘 다 서로의 눈만 노려보며 미동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실제로는 머리 속에서 수 없이 많은 초식을 겨루고 있었다.
선제 공격을 어떻게 막고 어떤 초식으로 어디를 역습할 것인지.
금방이라도 얼음장처럼 쨍하고 갈라져 버릴 듯한 긴장을 깬 건 맹주도 설파혼도 아닌 로운이었다.
“어~ 은갈치씨!”
갑작스런 로운의 부름에 설파혼이 움찔하고 맹주도 주춤했다.
팽팽한 긴장 끝에 하마터면 서로 검을 찔러갈 뻔 했지만 로운이 설파혼을 부르며 둘 사이로 슬쩍 끼어들었기 때문에 그런 사태는 막을 수 있었다.
설파혼이 로운을 보고 미간을 살짝 찡그렸다.
효지림과 관쌍이 동시에 설파혼한테 전음으로 얘기했다.
‘그 사람이에요!’
‘그 놈입니다!’
둘의 얘기가 아니라도 설파혼은 이미 눈앞의 사내가 이로운이란 걸 파악하고 있었다.
효지림의 얘기처럼 내공이 전혀 드러나지 않았고, 관쌍의 보고처럼 처음 보는 보법으로 맹주와 자신의 사이에 뛰어든 사내.
아무래도 깊이를 알 수 없다는 이 사내가 오늘의 군웅맹 토벌전에 가장 큰 변수가 될 것이다.
“나는 설파혼, 일월교 외진각주라네. 자네가 이로운이라는 자인가?”
“아, 벌써 얘기 들었어? 어이, 거기 두 사람 또 만났네?”
이로운이 씨익 웃으며 설파혼의 어깨 너머 효지림과 관쌍한테 손을 살짝 흔들었다.
효지림은 반가움에 미소를 지을 뻔 했지만 얼른 입술을 깍 깨물고 웃음을 참았다.
반대로 관쌍은 금방이라도 판관필을 뽑아 들고 달려들고 싶었으나 꾹 눌러 참은 건 각주의 명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솔직히 이로운을 이길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얘기 들었으니까 알겠네. 난 군웅맹 손님이지만 마교, 아니 일월교하고 크게 원수진 일은 없거든. 그건 니 부하들이 잘 알 거다.”
로운이 다시 효지림과 관쌍을 보면서 말했다.
“야, 효지림 너 내가 살려줬지? 관쌍인가 뭔가 너도 내가 꿀밤으로 봐줬잖아 그치?”
“그래서?”
설파혼의 표정은 일말의 변화도 없었다.
“단 한 명도 살려서 보내지 말라면서? 나는 여길 나갈 생각이거든. 당연히 살아서.”
그제야 설파혼이 예의 입꼬리를 비틀며 미소를 지었다.
“그러니까 널 고이 보내 달라는 거냐? 살려서?”
설파혼의 그 비릿한 미소가 로운을 자극했다.
창백한 낯빛도 마음에 안 들었는데 그 야비한 미소를 보자 로운의 마음이 뒤틀렸다.
그래서 생각지도 않은 대답을 꺼냈다.
“아니, 살아 나가는 건 내가 알아서 할 거고. 너는 헛소리한 거 사과하라고. 당장 무릎 꿇고!”
설파혼의 눈동자가 아주 잠깐 흔들렸다.
이내 평정을 찾은 설파혼이 실소를 흘리며 물었다.
“지금 내가 들은 말이 맞나? 잘못 들은 건 아니겠지?”
“다시 말해 줘? 내 앞에 당장 무릎 꿇고 빌라고 했거든!”
“하아~ 무슨 말인지 정확히 이해했네. 군웅맹 쪽에 서서 우리와 싸우겠다는 거.”
“귓구멍에 전봇대 박았냐? 말을 왜 못 알아들어! 군웅맹이 왜 나오냐고? 이건 나하고 너하고 문제야. 헛소리를 했으니 사과 하라고. 싫으면 좀 쳐 맞던가.”
누가 봐도 억지였다.
맹주도 이로운이 군웅맹 측에 서서 일월교와 싸우겠다는 의미로 받아 들였다.
“대협. 뜻은 고마우나 물러나 주시오. 이 자리에서 우리 모두 쓰러지더라도 명예로운 죽음을 선택할 것이니. 그것이 진정 우리를 돕는 길이외다.”
설파혼이 콧방귀를 뀌었다.
“거 봐. 중원 놈들은 이렇다니까. 곧 목이 떨어질 상황에서도 명분과 명예만 따지지. 우리처럼 자기 살 베어 먹고 자기 피 받아 마시며 견뎌온 자들이 어떤지 전혀 모르거든.”
이어서 맹주의 가장 아픈 부분을 건드렸다.
“교주한테 참살 당한 제 애비하고 똑같다니까. 명예롭게 죽으리라! 이딴 소리나 지저귀지. 어린 새 새끼처럼!”
순간 맹주의 눈에 불똥이 튀었다.
아버님 취학명의 심장이 교주의 단봉에 뚫리던 그 순간이 머리를 스쳐갔다.
- 츠팟~
맹주의 몸이 앞으로 튀어나갔다.
- 콰콰콰콰~
철검이 설파혼의 허벅지, 옆구리, 단전, 심장, 어깨로 이어지는 요혈들을 노리고 일곱 번의 변화를 숨긴 채 아래에서 위로 솟구쳤다.
- 쉬링~
설파혼은 반 보 뒤로 물러나며 은검을 흔들었다.
맹주의 철검칠변 초식을 모두 와해하면서 그 틈으로 은빛 섬광을 꽂아 넣었다.
- 까다다당~~~
어찌나 빠른지 움직임보다 검 부딪히는 소리가 느리게 퍼졌다.
맹주와 설파혼이, 철검과 은검이 엉켜 들었다.
"와아아---!"
"막아라!"
"모두 쳐 죽여!"
동시에 군웅맹과 마교의 인물들이 동시에 서로를 향해 달려들었다.
소림 대행의 선장과 효지림의 적혈편이 어우러졌고 개방 편하직의 타구봉과 관쌍의 흑백 판관필이 뒤엉켰다.
일월교 야율과 벽리산은 각각 흑령기와 청령기를 이끌고 일백 팔 명의 군웅사상팔괘진 속으로 뛰어 들었다.
취소연과 벽리산은 진법 안에서 나아가고 물러나며 진의 약한 부분을 보완하고 공세에 힘을 보탰다.
- 콰차차창-!
- 크아악!
- 우와와---!
조용하고 평화롭던 소격동은 이내 병장기 소리와 고함 소리, 비명과 탄식으로 가득 찼다.
느닷없이 시작되어 버린 양측의 치열한 전투.
그 와중에 끼어들 타이밍도 명분도 잃어버린 로운이만 멍하니 서서 피와 살이 튀는 격정을 지켜보고 있었다.
특히 맹주와 설파혼은 바닥에서, 강물 위에서, 허공에서, 마치 두 마리 맹금류처럼 부딪혔다 떨어졌다 하며 절초들을 뿌려 댔다.
철검이 공세를 취하면 설파혼의 목이 잘릴 듯 했고 다시 은검이 역공을 펼치면 맹주의 심장에 구멍이 날 것 같았다.
두 사람의 검은 실낱 같은 차이로 죽음과 삶의 경계를 아슬아슬 스쳐 지나갔다.
그걸 지켜만 봐야 하는 로운의 머리 속도 두 사람의 손속처럼 어지러워졌다.
'저러다 다 죽겠는데? 확 뛰어들어? 일단 그냥 지켜 봐? 아님 모른 척 그냥 빠져 나갈까?'
- 작가의말
외계에서 온 522기 의문의 비행물체
그것들이 착륙한 지 20년 후
5월 22일.
인간이 좀비가 된다.수원 블루스타즈의 신예, 축구선수 빽또라이 백다운이
목숨을 건 사투를 벌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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