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형사, 눈 떠 보니 무림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판타지

래몽래인
그림/삽화
배민기
작품등록일 :
2023.05.10 14:48
최근연재일 :
2023.08.02 23:37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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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0
글자수 :
295,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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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6.15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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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9쪽

<38> 바람의 도, 폭우의 검, 풍도우검 율리납

DUMMY

*

중원의 사람들은 모두 설산이라고만 불렀다.

일 년 내내 봉우리는 하얀 만년설이 덮혀 있기 때문에.


율리납은 이 산 속에서 태어났다.

전대 교주였던 선친이 매일 수련을 마치면 산 아래 백탑성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던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선명하다.


‘네가 저 곳을 다시 찾아야 하느니. 나의 능력이 부족함을, 하여 복수를 이루지 못할 것을 깨닫고 평생을 한탄하였으나 일월의 신이 너를 내게 주었구나. 너의 무한한 재능은 전대에도 없었고 후대에도 없을 것이니 네가 반드시 저 곳을 되찾아야 할 것이다.’


지금 율리납은 그 곳, 그 연무대에 서 있었다.

너무도 아픈 기억과 함께.


그가 스무 살이 되었을 때 선친은 교주의 직을 그에게 물려주었다.

목숨도 함께.

아직 쉰도 안 된 나이였다.


‘이제 때가 되었구나. 오랜 시간 준비해 왔던 일이다. 나에게 너는 마지막 희망이지만 너는 스스로 새로운 시작의 희망이 되어야 한다.’


그 날, 마지막 당부였다.

선친은 평생을 수련한 모든 내공을 율리납 한테 전했다.

그것이 죽음을 불사한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단 한 줌의 내공도 남기지 않고 모두 율리납한테 넘겨 준 그는 율리납의 등에 두 손을 댄 채 그대로 숨을 멈추었다.

같은 시간 그의 아내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같은 날 태어나진 않았지만 같은 날 죽자고 맹세한 부부는 그 약속을 지킨 것이다.


율리납은 그 날, 자신도 죽었다고 여겼다,

사사로운 율리납은 죽고 일월의 운명을 진 율리납으로 다시 태어났다고 다짐했다.


혼신을 다해 수련했다.

결국 절대 무공을 창안했다.

바람의 힘을 담은 도법과 폭우의 기세를 담은 검법.

그 절대적인 무공을 본 교도들은 교주라는 직함과 율리납이란 이름 사이에 ‘풍도우검’이라는 별호를 붙여주었다.


그런데 그 무공을 견뎌내는 무기가 없었다.

일월이 보유한 어떤 명검보도도 버텨내지 못했다.

무공을 극성으로 펼치면 검은 부러졌고 도는 조각났다.

금강석보다 귀한 재료들을 모아 최고의 장인들이 오랜 시간 공을 들여 만든 검과 도도 소용이 없었다.


율리납은 부모의 무덤 앞에서 피를 토하며 눈물을 쏟았다.

더는 앞이 보이지 않았다.

절대 무공을 얻고도 그걸 펼칠 수가 없다니......


그런데 그 때 하늘이 ‘그것’을, ‘그 분’을 내려주었다.


- 쐐애액----

-

정말 그것은 하늘에서 떨어졌다.


- 쿵!


하늘에서 떨어진 검은 물건.

통곡하고 있는 율리납의 앞에 꽂혀든 건 한 자루의 봉이었다.

주위의 빛깔마저도 모두 삼켜버리는 검은 장봉.


조심스럽게 봉을 뽑아 들었다.

처음 보는 물건이었다. 나무도 강철도 아니었다.

쇠처럼 단단했지만 나무처럼 가벼웠다.

쥐었을 때는 크기도 굵기도 무게도 전혀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 스윽


한 번 움직여 보았다.

움직임은 이제껏 잡아 본 어떤 도검보다 유연했다.

마치 태어날 때부터 신체 일부로 붙어 있던 것처럼.


자신도 모르게 내공을 담아 무공을 펼치기 시작했다.


자유.

그건 자유였다.

그를 옭매었던 모든 것들로부터 해방되는 느낌.

인간의 육체가 지닌 한계, 무기가 제한하는 한계, 정신이 예단하던 한계를 모두 깨버렸다.

자신이 무공을 펼치는 게 아니라 장봉이 자신을 이끄는 것처럼 느껴졌다.


무공인지 춤사윈지 모를 정도였다.

가볍게 베고 찌르는데도 바람이 조각나고 햇살이 부서졌다.


단 한 번도 끝까지 펼치지 못했던 무공을 마지막 초식까지 단숨에 달렸다.


새로운 세상이었다.

단 한 번 펼쳤는데도 자신조차 몰랐던 초식의 숨은 묘리까지 깨우쳤다.

도와 검으로 나누어 펼치던 무공인데 봉 하나로 모두 펼쳐낼 수 있었다.

봉은 도가 되었다가 검이 되었다가 마침내 봉 자체로 그 모든 것이 되었다.


마지막 초식까지 완벽하게 펼친 율리납은 아무런 생각도 이어나갈 수 없었다.

자신의 손에 든 봉만 멍하니 바라 보았다.


‘이게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 그것으로 네가 원하는 것을 이루거라.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전음이 아니었다. 귀를 통해 들리는 소리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곧장 머리 속으로, 의식 안으로 선명하게 전해졌다.


“누, 누구십니까?”


- 알려고 하지 말라. 나를 믿으라. 내가 너에게 준 것에 감사하고 네가 하려는 일에 집중하라.


알려고 하지 말라, 믿으라.

그 말을 듣는 순간 순식간에 깨달았다.

자신은 지금 신을 만나고 있다는 것을.


지식이 아니라 믿음의 영역, 알려고 알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믿어야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신이다.


봉을 놓고 그 자리에 엎드렸다.

오체투지.(五體投地).

교주는 일월교의 만인지상, 오로지 신만이 그의 위에 있었다.


그 신이 나타난 것이다.

교주로서 신을 만난다는 일, 그것은 온 몸을 던져도 부족한 것이다.


“일월의 이름으로!”


다시 신의 소리가 전해졌다.


- 일어나 그 물건을 받들라. 그것을 나처럼 여길지어다.


천천히 몸을 일으킨 율리납이 봉을 두 손으로 받쳐 머리 위로 들었다.


“영(靈)과 체(體)를 다해 신성의 물건을 받사옵니다!”


- 나와 그것은 한 몸, 신의 사자이니 네가 뜻한 모든 것, 내가 바라는 모든 것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바라시는 모든 것을 이루고 또 바치겠습니다!”


- 명심하라. 세상 모든 것은 제 자리가 있는 법이니.... 신이 그것의 자리가 온당치 않다고 느낄 때 균열이 생겨날 것임을.


“균열.....?”


- 균열을 찾아내고 봉합하면 신의 사자는 그 자리에 영원히 있을 것이나..... 그렇지 못하면.....“


“신의 사자를 지키지 못하면 목숨으로 갚겠사옵니다!”


그것이 율리납이 신의 사자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만난 것이었다.


신의 사자가 전해 준 또 하나의 신의 사자, 봉.

그 이름을 일월신주라 지었다.


일월신주로 군웅맹주의 철검을 부수고 심장을 뚫은 것이다.


신의 뜻으로 신이 원하는, 또한 일월의 모든 교도들이 원하던 모든 것을 이루었다 싶었는데

갑자기 일월신주가 자신을 거부하고 울었다.


‘균열’


틀림없이 그것이 나타난 것이리라.


지밀원을 모두 균열을 찾으라 보낸 뒤 율리극은 다시 설산에 올랐다.

백탑성이 내려다 보이는 그곳, 선친과 함께 무공을 수련하던 그곳, 선친이 목숨을 버리고 모든 내공을 전수해 준 그 곳.


바로 그 연무대에 올랐다.


일월신주를 앞에 놓고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기다리기 시작했다.

다시 그의 말이 들려오기를.

신의 사자, 일월신주를 전해준 그가 다시 나타나기를.



*

생각해보면 할 일이 많은데 아직 하나도 한 건 없었다.

‘임무’에 따른 ‘물건’을 확인도 못했고 무엇보다 그 전에 찾으라는 생의선은 어디에 있는지, 얼마나 걸리는지도 알 수 없었다.


느긋하게 산책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는 얘기다.


속도를 올려 달리기 시작하자 이내 소연이 저만큼 멀어졌다.

어떻게든 따라오려고 애를 쓰는 모습이 안쓰러웠다.


매향일선한테 배운 보법을 취소연한테 가르쳐 주었다.

워낙 오랫동안 수련을 해 온데다 최근에 내공이 급격히 증진된 터라 금방 따라할 수 있었다.

그래도 속도의 차이는 줄일 수는 없었다.

로운은 몇 달간 지옥수련의 과정을 거쳤지만 소연은 이제 조금 배운 것이니까. 또한 두 사람의 기본 내공에서 차이가 날 수 밖에 없었다.


빨리 움직여서 추격해오는 놈들을 따돌리고 싶었다.

취소연을 업고 달리면 간단한 문제이겠지만 그건 절대 거부했다.

사실 벌건 대낮에 여자를 업고 달리는 건 쉽게 볼 수 있는 광경은 아니다. 누군가 그걸 보고, 또 업힌 사람이 취소연이란 걸 안다면 그것대로 소연한테는 부끄러운 일이 될 거다.


“그럼 하는 수 없지. 이렇게라도.”


소연의 손목을 덥썩 쥐었다.

로운이 달리기 시작하자 소연도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곧 소연의 발은 땅을 디딜 수조차 없었다.

업혀서 가는 것보다 더 우스꽝스러운 광경이 벌어졌다.


무서운 속도로 달리는 로운과 슈퍼맨처럼 수평이 되어 끌려가는 취소연.

업혀가는 것 보다 더 부끄러운 자세가 되고 말았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그 속도에서는 누구라도 로운과 소연의 얼굴을 기억할 수 없을 것이라는 거.

다행 중 불행인 것은 소연의 손목으로 전해오는 따뜻한 느낌에 로운은 딸려오는 소연이 어떤 상황인지 눈치채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가끔 길이 갈라지는 곳에서만 속도를 늦추었다.

갈림길이 다가오면 등 뒤의 단봉, 네비게이션이 슬쩍 방향을 알려주었다. 완쪽이나 오른쪽 한 곳으로 단봉이 미는 느낌이 들었다.

그 잠깐 사이 소연은 한 숨을 돌렸다. 하지만 그건 찰나지간이었고 다시 몸이 붕 떠오르고 말았다.


'아... 미치겠다. 어떡하지? 얘길 해 말아?'


지금 자신의 우스운 꼴을 로운한테 얘기하기에는 여자로서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이를 악물었다. 참아야 했다.

힘들다고, 아프다고 울 수도 없는 일이니까.

낙장불입.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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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8> 바람의 도, 폭우의 검, 풍도우검 율리납 +2 23.06.15 73 5 9쪽
37 <37> 단봉이 네비게이션이었다. +2 23.06.14 77 3 9쪽
36 <36> 취소연의 가슴이 내 등에 전하는 말 +3 23.06.13 80 3 10쪽
35 <35> 초보형사 이로운 군웅맹 맹주가 되다 +4 23.06.12 76 4 10쪽
34 <34> 주화입마를 미주신경성 실신이라니. +3 23.06.09 75 3 10쪽
33 <33> 꿈 속에 본 그녀 +5 23.06.08 80 4 10쪽
32 <32> 이 순간, 이 곳의 결정권자는 나! +2 23.06.07 80 4 9쪽
31 <31> 이로운의 한계 돌파 +3 23.06.06 89 4 9쪽
30 <30> 낙장불입 VS 금룡파천 +6 23.06.05 86 4 9쪽
29 <29> 각성인가 폭주인가, 로운의 분노 +5 23.06.02 87 5 9쪽
28 <28> 휘야, 소연은 형이 꼭 지켜줄게. +5 23.06.01 82 5 10쪽
27 <27> 저러다 다 죽겠는데? +3 23.05.31 81 3 9쪽
26 <26> 절대 위기의 임무라는 것. +3 23.05.30 93 4 9쪽
25 <25> 생사의 지옥도 +6 23.05.29 86 5 10쪽
24 <24> 수채의 의리, 장강칠우 +3 23.05.27 90 4 9쪽
23 <23> 추격자 관쌍의 음모 +4 23.05.26 103 4 9쪽
22 <22> 취소연의 마음 속엔 이미 로운이가 +2 23.05.25 99 4 10쪽
21 <21> 단봉이 울다 +4 23.05.24 107 4 9쪽
20 <20> 내 문파는 대한민국 경주 이씨 판윤공파 +9 23.05.23 115 6 10쪽
19 <19> 따뜻한 그 사내의 등 +4 23.05.22 112 5 10쪽
18 <18> 빠르다, 너무 빠르다. +8 23.05.21 107 6 10쪽
17 <17> 할배와 아이가 한 몸에! +6 23.05.20 120 6 10쪽
16 <16> 딱밤이라니! 치욕이다! +3 23.05.19 125 3 10쪽
15 <15> 음양노동 관쌍 +7 23.05.18 134 7 10쪽
14 <14> 일월교 외진각주 설파혼 +4 23.05.17 131 5 10쪽
13 <13> 죽였다가 살렸다가 +6 23.05.16 132 4 9쪽
12 <12> 신의 사자가 말한 균열의 날이.... +10 23.05.15 146 7 11쪽
11 <11> 일월교주 율리납 +7 23.05.14 164 6 10쪽
10 <10> 섭혼음양지공 +4 23.05.13 177 6 9쪽
9 <9> 십이편복의 추격 +4 23.05.13 153 6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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