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하추풍검 - 5분 후 갈라져 죽다 -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현대판타지

창렉스
작품등록일 :
2023.05.10 18:38
최근연재일 :
2023.10.12 00:33
연재수 :
113 회
조회수 :
15,224
추천수 :
659
글자수 :
671,804

작성
23.06.15 18:47
조회
120
추천
5
글자
12쪽

천상천하 유아독존 2

DUMMY

"누, 누나."


나는 공포에 뒷걸음질 칠 수밖에 없었다.


나의 넷째 누나, 전창신 이원.


둘째 형 이열은 성격 때문에 후천적으로 싫어하게 되었지만,


이원은 처음부터, 아주 어릴 적부터 생리적으로 거부감을 느꼈다.


그녀는 덩치도 나보다 컸다.


"저, 저 사람."


송하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진명이 강천창强穿槍이에요. 굳셀 강强, 뚫을 천穿. 창 창槍. 이 대협처럼 굳셀 강强을 가지고 있다구요."


지금 내 진명이 강척순영强刺瞬影이니 확실히 굳셀 강强이 겹치긴 했다.


저 이원이 맡은 역할을 생각해 보자면, 확실히 어울리는 진명이었다.


나 이월이 살아있는 검이라면, 그녀는 살아있는 창이니까.


무엇보다도 강하게 꿰뚫는 일이 중요한 것이다.


"여긴 무슨 일이야?"


내가 이원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원은 찢기고 비틀리고 우그러진 얼굴로 나를 돌아보았다.


"이월, 몰라서 묻냐?"


"잘 모르겠는데."


나는 애써 태연함을 유지하려 노력했다.


"아버지의 명으로, 너와 아선당주를 죽이러 왔다."


"아버지의 명으로···."


심장이 내려앉는 듯했다.


천에 하나, 만에 하나,


신이 이 세상에 실존하고, 혹여나 그가 내 소원을 들어준다면 그 일만은 일어나지 않길 바랐건만,


안 좋은 예감은 언제나 들어맞는다고 하던가.


아버지가 나를 눈감아주는 일 따윈 없었다.


'가족의 지시에 거역하지 말라’


그 철칙을 어기고 내 손으로 둘째 형 이열을 죽였으니, 나도 죽어야 한다. 아버지는 그리 판단한 것이다.


이제 꼼짝없이 저 이원과 싸워야 한다.


이열도 그랬지만, 이원 또한 괴물이다.


나와 이열이 암살에 특화되어 있다면, 이원은 전투에 특화되어 있다.


그녀는 몸을 숨기는 일 따윈 신경 쓰지 않는다.


특정한 한 두 명만 암살하는 게 아니라, 자신을 제외한 주변의 모든 생명체를 섬멸하는 것이 그녀의 주된 임무이니까.


나와는 체급이 다르다.


내가 미리 송하에게 굳셀 강强을 받지 않았다면, 아까 이원과 합을 겨룰 때 단숨에 찢겨 죽었을 것이다.


그나저나 한 가지 신경 쓰이는 게 있었다.


첫째 형 이염을 제외한 나머지 6형제는 2인 1조로 구성되어 활동한다.


나와 이열이 한 조였듯이, 이원도 다른 가족과 한 조를 이루고 있다.


"원이 누나, 영이 형은 안 데리고 왔어?"


"걔가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는 너도 잘 알 것 아니야?"


그랬다.


나의 다섯째 형 이영. 이원과 한 조를 이루는 가족.


그는 이열처럼 천리안을 갖고 있으며, 경공술에 특화되어 있다.


그가 기척을 숨기고 날아와 이원을 이 도로 한복판에 떨구고 간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멀리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가 이원이 위험에 처하면 원거리서 나를 저격할 것이다.


즉 나 혼자 가족 둘을 상대해야 한다.


이 상황은 적잖이 절망적이었다.


그러고 보니, 아까까지 음후의 뒤에서 계속 깔짝거리던 놈이 있었지.


혹시나 해서 이원의 뒤쪽을 힐끔 보는데, 아까까지 이 악물고 나를 요격하던 흰 도복 사내는 아까보다 더욱 멀리 떨어져 있었다.


녀석도 이원에게 위협을 느낀 것일까.


제기랄, 차기 신무림맹주 후보의 호법이라는 놈이 저렇게 겁쟁이라니.


어쩔 수 없다. 이런 개활지에서는 도망친다는 선택지도 택할 수 없다.


길 오른쪽에 수풀이 있지만, 몸을 숨기기에는 터무니없이 부족하다.


나동찰이 넘겨준 굳셀 강强을 믿고 이판사판으로 싸워야 한다.


"규빈 스님."


내가 규빈을 불렀다.


"루아와 송하를 데리고 여기서 도망쳐 주세요. 최대한 멀리."


"이, 이 대협?"


송하가 깜짝 놀라 소리쳤다. 나는 그를 돌아보지 않았다.


"미안, 너를 내 전속으로 만들겠다고 나동찰과 그렇게 싸웠는데, 이렇게 곧장 헤어지게 된다니."


"대협···."


"루아, 미안해. 아무래도 너 혼자 도망쳐야 할 것 같다."


"야, 혼자 분위기 잡지 마."


루아가 내 뒤통수를 때렸다.


"이 근방에 루미 언니가 있어. 우리끼리 도망쳐도 각개격파 당할 뿐이야."


"그럼 어쩌라고. 이원은 살아있는 창이야. 전신이 무기라고.


근데 너는 그 단창 없이는 제대로 못 싸우잖아. 무기도 없이 네가 이원 저 괴물을 당해낼 수 있을 것 같아?"


"무기라면 있어."


루아가 어느새 손에 단창을 들고 있었다. 당황스러웠다.


"어, 뭐야, 갖고 있었어?"


이열과 싸울 때와는 달리 손잡이의 마디가 하나뿐이라서 창보다는 단검에 가깝긴 했다. 날의 길이도 좀 더 짧았다.


"내 광골창光骨槍은 성장하는 창이야.


광골개립으로 소모해도 하루가 지나면 다시 한 마디가 생겨나. 거기에 모성을 담아 키우면 더욱 자라나고."


"모성? 어머니가 갖는 그거 말이야?"


"어."


"별 해괴한 창을 다 보겠군."


"저 여자가 살아있는 창이라고 했지? 창술사가 상대라면 내가 도와줄게."


"그런 무기로 상대할 수 있겠어?"


"거, 거짓말은 아닐 거라 생각해요."


송하가 끼어들어 말했다.


"노 대협의 진명은 창 모矛, 해석할 석釋, 자리 좌座, 모석좌矛釋座에요. 창을 잘 해석하고 잘 다루게 되는 진명이에요."


"송하야, 어서 가라. 죽기 싫으면."


"저! 저도 도와드릴게요! 필요할 때마다 진명을 교체해 드릴게요!"


"송하야."


그가 있으면 방해된다.


그를 일일이 지켜주면서 싸울 상황이 아니다.


"저희가 옆에서 지키겠습니다."


살활회주 황진용이 남긴 구절편을 규빈이 주우며 말했다.


승려들과 폭주족들의 얼굴이 결의에 차 있었다.


"그날 미선당주가 절에서 소란을 일으켰을 때도, 저희는 도망치지 않았습니다.


우리 집 앞마당에서 싸움이 일어나고 있는데, 우리만 도망치고 편안한 곳에서 관전한다는 건 어불성설입니다!"


규빈이 목에 핏대를 세우며 소리쳤다.


"부탁입니다. 저희도 싸우게 해주십시오!"


"부탁드리겠습니다!"


승려들과 폭주족들도 한꺼번에 부탁해 왔다.


"하아, 알겠어요."


더 이상 설득할 유예조차 없었다.


2호검 범람 발도.


쌍수인 범람.


"알겠으니까, 거기 송하 좀 잘 지켜줘요!"


"감사합니다! 반드시 지키겠습니다!"


생과 사뿐인 이 시대에 아직도 의협을 추구하는 사람이 있다니.


아니, 자기 집을 지키려는 행동이니 저 또한 어찌 보면 생을 추구하는 일의 연장선이겠지.


"고마워, 모두."


가만히 지켜보던 전창신 이원도 느닷없이 감사 인사를 했다.


"도망치지 않아 줘서."


이원이 공중으로 뛰어올랐다.


"몰살하기 딱 좋게 모여 줘서!"


"온다!"


날카롭게 세운 이원의 수도와 내 범람이 공중에서 맞부딪쳤다.


내가 힘으로 밀어내려는데, 갑자기 무게가 가벼워지며 범람이 허공을 갈랐다.


이원은 공중을 깃털처럼 날고 있었고, 처음에 출수할 때와는 대조적으로 가볍게 날아 바닥에 안착했다.


그리고 매서운 속도로 수도를 내찌르며 공격해 왔다.


나 또한 양손의 범람을 휘둘러 그녀에게 맞섰다.


거대한 칼날의 궤적에 땅이 파이며 분진이 사방에 퍼졌다.


"다들 물러서!"


나 이외 다른 사람들을 향해, 그렇게 외치는 것이 내 마지막 배려였다.


지금부터는 누구도 보호를 장담할 수 없다.


각자도생해야 한다.


이원의 찌르기가 정신없이 날아들었다.


파철전창破鐵全槍. 온몸을 창과 같이 단단하고 예리하게 만드는 이원 고유의 무공.


이원은 온몸이 흉기다. 온몸이 철제 무기보다 튼튼하단 말이다.


머리를 노려야 한다.


머리도 똑같이 단단하지만, 뇌를 흔들면 그나마 이길 가능성이 생긴다.


"풍양보!"


하늘로 뛰어올라 이원의 머리를 향해 범람을 내리쳤다.


이원은 팔을 들어 그것을 막아냈다. 분명 맨살인데도 철제 검보다 튼튼했다.


굳셀 강强으로 강화된 범람이었기에 충격이 상당했지만, 이원은 개의치 않았다.


이어서 그녀가 다른 팔로 찌르기 공격을 해 왔다.


방어가 없는 추풍인에 빠른 직선 공격은 쥐약이다. 지나치게 근접해서는 안 된다.


풍양보로 겨우 탈출하긴 했다. 그러나 팔뚝에 스친 상처가 남았다.


나는 최대한 거리를 벌리며 그녀를 타격하려 했고, 그녀는 반대로 거리를 좁히며 추격해 왔다.


나동찰 때와 비슷한 양상이었지만, 그때보다 훨씬 위험했다.


이원의 수도는 나동찰의 검보다 빠르다. 풍양보가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섣불리 접근하다간 수 초도 버티지 못하고 벌집이 되는데,


"천돌穿突."


이원이 어깨로 범람을 흘리며, 눈 깜빡할 새에 접근하여 찌르기를 날렸다.


'윽!'


피할 수 없는 죽음의 예감이 덮쳐오는데,


"하압!"


루아가 끼어들어 단창으로 수도를 튕겨냈다.


"그거밖에 못 버텨?"


"도와준다면서 뭐 하고 있었어?"


이어지는 이원의 연격을 루아가 능숙하게 받아주었다.


"분석."


"그래, 그놈의 분석은 끝났냐?"


"어느 정도는."


"그러면 나 좀 도와!"


나는 루아와 둘이서 이원에게 맞섰다.


두 명이 상대인데도 이원은 전혀 밀려나지 않았다.


몸뚱이 자체가 이미 창이나 다름없어 물리적인 공격은 그다지 소용이 없었다.


그녀는 그렇게나 무겁고 단단했다.


그런데 때로는 가볍고 부드러웠다.


웬만한 공격은 그냥 몸으로 튼튼하게 받아내는데, 강력한 초식을 맞추면 아예 몸에서 무게를 지우고 공중에서 휴지처럼 나부꼈다.


이러면 굳셀 강强의 위력은 이원에게는 크게 의미가 없다.


범람을 버리고 쇄태로 공격한다고 하더라도 탈력을 동원해서 간단히 흘려낼 것이다.


그렇다면,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야겠지.


"송하!"


"네!"


"불꽃 염炎을 달면 화공火功을 쓸 수 있어?"


"네, 가능해요!"


"그러면 그걸 내게 달아줘!"


"아, 알겠어요!"


송하가 잠시 빈틈을 보다가, 종이 2장을 꺼내어 내게 던졌다. 내 옷에 종이가 달라붙자, 송하가 외쳤다.


"멸아심약운명재성!"


일순간 욕조의 마개를 빼 버린 듯이 온몸에서 힘이 빠져나가는데, 그와 동시에 수도꼭지에서 뜨거운 물이 콸콸 흘러들어왔다.


아마도 굳셀 강强을 빼고 불꽃 염炎을 붙인 것일 테지.


뜨겁다. 엄청난 열기에 온몸이 뜨거워진다.


불의 감각은 기억하고 있다.


기를 이용해서 신체를 보호하여 불 속에서 버티는 훈련을 받은 적이 있다.


배운 대로 제대로 행하면 몸은 무사하지만, 열기는 거의 그대로 느껴야 한다.


한 번만 받아도 미쳐버리는 훈련.


그러니 생생히 기억한다.


그날의 기억을, 열기를, 갈고리처럼 휘적이는 화염을, 지금 내 몸에 구현한다.


두 발을 시작으로, 두 손, 두 팔, 두 다리, 차례대로 불이 붙기 시작했다.


"이월."


이원이 내 쪽을 보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거 뭐야, 지금 뭔 짓거리를 하는 거야?"


그녀의 목소리가 급박해졌다.


그럴 만하다.


이 훈련을 누구보다도 많이 받은 건 다름 아닌 이원. 원이 누나였다.


한 번만 받아도 미치는 훈련을, 누나는 하루가 멀다고 학대에 가깝게 받았다.


미치지 않는 게 이상하다.


그 훈련의 영향으로, 누나는 평소에 가만히 있어도 불꽃의 현장을 떠올리게 되었고, 그 뜨거운 열통을 잊기 위해 무림인들을 학살했다.


아버지는 우리를 도자기쯤으로 생각했던 걸까.


계속 불에 달구면 깨끗한 청자가 나온다고 생각했던 걸까?


어림도 없지. 정작 나온 결과물은 저리도 흉측한데.


한 여자의 삶을 완전히 끝장내 버렸는데.


싸우지 않고선 살아갈 수 없게 만들어 버렸는데.


"누나, 미안해."


이윽고, 내 온몸이 불꽃에 뒤덮였다.


나 이월은 한 송이의 불꽃이 되었다.


"나도 마찬가지야."


싸우지 않고선 살아갈 수 없다.


죽이지 않고선 살아갈 수 없다.


그러니, 살아남기 위해선 뭐든 이용해야 한다.


1호검 쇄태 발도.


숨결이 아닌, 불꽃에서부터 칼날을 뽑아낸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월하추풍검 - 5분 후 갈라져 죽다 -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57 인왕작열권 용총 6 +2 23.07.24 74 2 18쪽
56 인왕작열권 용총 5 +2 23.07.21 67 5 13쪽
55 인왕작열권 용총 4 +1 23.07.20 65 3 13쪽
54 인왕작열권 용총 3 +1 23.07.19 70 4 11쪽
53 인왕작열권 용총 2 +1 23.07.18 64 2 12쪽
52 인왕작열권 용총 1 23.07.17 65 2 15쪽
51 진眞 패천논검 4 +1 23.07.14 83 3 14쪽
50 진眞 패천논검 3 +1 23.07.13 69 4 14쪽
49 진眞 패천논검 2 23.07.12 69 2 14쪽
48 진眞 패천논검 1 +1 23.07.11 78 4 12쪽
47 벽력전야霹靂前夜 4 23.07.10 70 3 13쪽
46 벽력전야霹靂前夜 3 23.07.07 70 3 14쪽
45 벽력전야霹靂前夜 2 23.07.07 63 3 13쪽
44 벽력전야霹靂前夜 1 23.07.06 75 6 12쪽
43 패천논검 6 - 이십사수매화검 관윤 1 +1 23.07.05 87 5 12쪽
42 패천논검 5 - 흡성검 종혁 2 +2 23.07.04 82 3 14쪽
41 패천논검 4 - 흡성검 종혁 1 +1 23.07.03 91 6 13쪽
40 패천논검 3 +2 23.06.30 96 3 12쪽
39 패천논검 2 +1 23.06.29 88 3 13쪽
38 패천논검 1 +1 23.06.28 93 4 14쪽
37 유몽공 몽현 2 +1 23.06.27 96 3 13쪽
36 유몽공 몽현 1 +1 23.06.26 101 3 13쪽
35 재정비, 그리고 구무림으로 +3 23.06.23 116 4 12쪽
34 윤회輪廻 +1 23.06.22 118 4 13쪽
33 천상천하 유아독존 6 +3 23.06.21 123 5 14쪽
32 천상천하 유아독존 5 +1 23.06.20 112 6 16쪽
31 천상천하 유아독존 4 23.06.19 112 4 11쪽
30 천상천하 유아독존 3 +2 23.06.16 151 5 12쪽
» 천상천하 유아독존 2 23.06.15 121 5 12쪽
28 천상천하 유아독존 1 23.06.14 131 5 16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