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하추풍검 - 5분 후 갈라져 죽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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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렉스
작품등록일 :
2023.05.10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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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12 0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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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6.23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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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재정비, 그리고 구무림으로

DUMMY

나와 루아, 송하, 세 사람은 영종도를 떠났다.


그리고 아난 법사가 조언했던 대로 임금 제帝와 하늘 천天을 찾기 위한 여정을 시작했다.


지금 루아가 가지고 있는 해석할 석釋을 포함한 제석천帝釋天 세 글자를 모으기 위한 여정이었다.


바이크를 타고 가다가, 잠이 쏟아지기 시작해서 잠이나 깰 겸 송하에게 물었다.


"송하야, 제석천이라는 게 무슨 의미야?"


"제석천은 석가모니불의 곁에 머물며 불법을 수호하는 신적인 존재에요."


송하는 곧장 청산유수로 대답했다.


"석가모니의 호법쯤 되는 인물이라는 말이야?"


"네, 맞아요."


"잘 아네. 아난이 가르쳐 준 거야?"


"네에···."


"···."


"이 대협?"


"···."


"이, 이 대협!"


"야, 이월!"


루아가 내 어깨를 잡고 흔들었다.


'엇.'


눈이 뜨였다.


깜빡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조심해!"


텅! 바이크가 중앙 분리대에 충돌하며 옆으로 튕겨 나왔다.


그 반동으로 옆 차선으로 흘러 들어가는데, 뒤에서 자동차 하나가 빠른 속도로 쫓아 왔다.


"으헉!"


나는 곧장 운전대를 돌려 다시 원래 차선으로 복귀했다.


옆 차선의 자동차는 경적을 요란하게 울리며 우리를 추월해 갔다.


죽을 뻔했다.


"이, 이 대협···."


송하가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일단 좀 쉬러 가요."


그러고 보니,


이열과 함께 루아를 습격한 그날 이래로 제대로 눈을 붙여본 적이 없었다.


슬슬 휴식하지 않으면 운전하다가 세상을 하직할지도 모른다.


"···그래. 그러자."


순순히 송하의 말에 따랐다.


바이크를 세우고 근처에 숙소를 잡았다.


방은 하나만 잡았는데, 다들 피곤했던 건지 아무도 불만을 품지 않았다.


우리는 대충 마룻바닥에 셋이 드러누워 잠들었다.


그렇게 누워 있으니 문득 창문으로 정오의 햇살이 따스하게 흘러들어왔다.


'아, 편하다.'


극락은 다른 곳에 있지 않았다.


아무런 근심도 없이 평온하게 잠들 수 있는 이곳이 바로 극락이었다.


살수의 습격을 걱정해서 방을 하나만 잡긴 했지만,


지금은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아무것도 모른 채 세상을 떠날 수 있다면 그것도 나쁘진 않다,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지금은 그저 안락하고 만족스러웠다···.


***


눈이 뜨였다.


지금까지 살면서 이 정도로 머리가 맑았던 적이 있었던가.


집에 있었을 적에도 이 정도로 푹 잔 적은 없었다.


항상 아침 일찍 일어나서 준비하고 밥 먹고 오전 훈련에 들어가야 했으니까.


그런데 의외로 오래 잠들진 않은 건지, 벽에 걸린 디지털시계에 적힌 시간이 거의 그대로였다.


주변을 둘러보는데 루아와 송하는 없었다.


대충 세수하고 마당으로 나가보니 두 사람을 찾을 수 있었는데, 파라솔 아래에 자리 잡고서 앉아 있었다.


"너희들 무지 빨리 일어났네. 잠은 좀 잤어?"


그 말에 루아가 나를 돌아보는데, 그녀는 한심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좀 잤기는, 너야말로 드디어 일어났네."


"그게 무슨 소리야?"


"너 하루 내내 잠들어 있었어. 24시간 동안."


"엉? 내가?"


무슨 소리야.


그렇게나 오랫동안 잠들었다고? 내가?


"어쩔 수 없죠. 근래 제일 고생하셨으니까요."


송하는 그런 말을 하면서도 지루하다는 듯이 손으로 턱을 괴고 있었다.


"이월, 정신 차리게 머리나 감고 나와."


"응."


다시 숙소로 들어가서 디지털시계를 보는데, 잘 보니 정말로 하루가 지나 있었다.


"와, 진짜네. 나 미친 듯이 잠들었구나."


그걸 본 순간 이미 정신이 번쩍 들어 버렸다.


화장실에서 씻고 다시 마당으로 나가니, 루아가 근처에 있던 플라스틱 의자를 가리켰다.


"저거 들고 와서 앉아."


나는 의자를 들고 와 파라솔 아래에 놓고 앉았다. 루아가 물었다.


"이제 정신 차렸어?"


"응."


"그러면 이것 좀 봐."


루아가 파라솔 탁자를 가리켰다.


진명지 5장이 놓여 있었다. 루아가 말했다.


"송하가 가진 글자 중 부처 불佛을 제외하고 전투에 도움이 될 만한 글자들만 추린 거야."


불꽃 염炎, 찌를 척刺, 막을 방防, 굳셀 강强.


모두 아는 글자였는데, 생소한 글자도 하나 있었다.


숨을 은隱이라는 글자였다.


"다른 건 다 본 건데 이건 처음 보네."


"그건 진명에 달면 기척을 줄일 수 있게 되는 글자에요."


내 질문에 송하가 친절히 답했다.


"가방 구석에 숨겨져 있어서 찾느라 진땀 뺐죠."


"그랬구나."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었다.


아난은 내게 부처 불佛을 언제나 달 수 있도록 진명의 그릇을 키우는 단련을 하라고 말했었다.


"송하야, 진명의 그릇을 키우려면 그릇의 용량을 약간 초과하도록 진명을 달면 된다고 했지?"


"네, 진명을 붙였다가 떼는 것을 반복하면 돼요.


이 글자들 모두 엇비슷한 출력을 갖고 있는데, 지금 이 대협의 진명인 순영瞬影에 2개를 더 붙이면 허용량을 약간 초과할 거예요."


노루미의 호법들과 싸울 때 진명이 척순영刺瞬影인 상태에서 추가로 굳셀 강强을 붙인 적이 있었는데, 이때 한순간 버티기 버거운 느낌이 들었었다.


그렇지만 버티는 데에 성공했고, 그런 다음엔 부처 불佛도 달 수 있었다.


"저번에 부처 불佛을 달았을 때는 잠깐 괜찮았는데, 그거 하나만 붙였다 떼어도 괜찮은 거 아냐?"


"그, 그런 짓은 하면 안 돼요!"


송하가 손사래 쳤다.


"그때도 굳셀 강强을 거쳐서 겨우 붙인 건데, 원래는 아예 붙이지도 못할뿐더러, 붙일 수 있다 하더라도 그렇게 출력이 강한 글자를 붙였다 떼었다 하면 곧바로 주화입마가 올 거예요."


"그렇군. 그러면 한 글자를 미리 달아놓고 다른 글자를 붙였다가 떼었다가 하면 단련이 되겠네. 그렇지?"


"네, 맞아요."


"그런데 너 글자 많이 갖고 있지 않았어? 쓸만한 건 생각보다 얼마 없나 보네?"


"이 5장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성격이나 외형의 변화에 관여하는 글자들뿐이에요.


외모가 수려해진다거나, 연애운이 증가한다거나 하는 것들 말이죠."


"오. 외모가 수려해지는 글자는 뭔데?"


"그쪽에 관심 있으신가요?"


"그냥 궁금해서."


"아름다울 미美 같은 글자예요. 저도 한 장 갖고 있죠."


송하가 아름다울 미美가 적힌 진명지를 꺼내서 보여주었다.


"이걸 붙이면 외모가 아름다워지죠. 인기가 아주 많아서 비싼 글자예요. 가격으로 따지자면 제가 가진 글자 중에 세 손가락 안에 들어요."


"오오, 신기하네. 내 진명에 그걸 달면 얼굴이 잘생겨진다는 거지?"


"남자다운 느낌은 아닙니다만, 잘생겨지는 건 맞아요."


"요컨대."


루아가 또 끼어들었다.


"기생오라비 스타일이라는 거네. 그딴 게 뭐가 좋다고···."


"노 대협은 어떤 남성이 취향이신가요?"


송하가 천진난만하게 묻는데, 루아는 그를 찔러 죽일 듯이 쏘아보았다.


"죄, 죄송해요."


"일단 너는 아니야."


"네에···."


"그리고 노 대협이라고 부르지 마. 노인네 같으니까."


"그, 그러면 뭐라고 불러드리면 될까요?"


루아는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루아··· 누나?"


"야, 아무리 송하가 어려 보여도···."


내가 끼어들어 딴지를 걸었다.


"네가 연하인데 누나는 좀 아니잖아."


"무림에선 더 센 사람이 형이고 누나야."


"에이, 그래도."


"그럼, 그냥 루아라고 부르던가."


"노 소협은 어떠신가요?"


"그건 싫어."


루아가 내게 삿대질했다.


"내가 얘보다 딸리는 것 같잖아."


"루아 너 은근 자존심 세구나."


"그, 그럼! 루아 양은 어떠신가요?"


"···."


"노 대협?"


"그러던가···."


이제야 루아 마음에 드는 호칭이 나온 모양이었다.


"에이, 그런 건 됐어! 그것보다!"


루아가 벌떡 일어나 나를 보았다.


"이월, 네가 퍼질러 자는 동안 앞으로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해 놨어."


루아는 바지 주머니에서 종이를 꺼내 탁자 위에 펼쳤다.


전국 팔도의 지도였는데, 루아가 그 중 서울 쪽을 가리켰다.


"여기에 내 아버지, 신무림맹주 세존 노요한이 있어. 루나, 루미 언니도 이곳에 있고.


항쟁 자체가 거의 수도권 안에서만 이루어지고 있어. 너도 알다시피 여기는 피와 시체가 넘쳐나는 마경이나 다름없어."


다음에 루아는 검지를 내려 제주도를 가리켰다.


"그러는 한편 항쟁에 일절 휘말리지 않고 섬에서 유유자적 살아가는 무림인들도 있어.


반도 구무림의 주민들이지.


그들은 누가 신무림의 차기 맹주가 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하나도 관심이 없어. 그냥 자기들만의 사회에서 살아갈 뿐이야."


알고 있다.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알겠어."


내가 입을 열었다.


"잠시 네 언니들의 관심을 피해서 구무림에서 머물며 진명을 찾아 다니자는 거지?"


"맞아."


루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구무림에서는 기본적으로 외지인을 환영하지 않는다. 그들은 신무림의 존재를 그다지 내켜 하지 않기 때문이다.


가만히 있기만 해도 그들의 눈총을 받아야 하는데, 아예 대놓고 거기서 신무림인들끼리 싸움을 벌이면 그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겠는가.


그러니 노루나와 노루미는 우리 위치를 알더라도 우리를 쫓아 제주도에 발을 들이기는 어려울 것이다.


노요한의 후계자 후보인 두 사람의 실력이라면 구무림에서 날뛰고도 능히 살아남을 수 있지 않겠느냐 싶을 수 있지만,


천만에, 구무림에는 '철존鐵尊'이 있다.


무림삼대지존武林三代至尊.


원래부터 갖고 있던 무림 별호와는 별개로, 따로 존호라는 것을 가진 세 명의 절정 고수가 존재한다.


그 존호는 내게 붙은 백살존 같은 것과는 달리 만인이 알며 또한 인정하는 정점의 칭호다.


세존世尊 뇌제雷帝 노요한.


철존鐵尊 금사자金獅子 타갈대제打喝大帝.


무존無尊 무명사태無名師太 강하나.


이 중 철존 타갈대제가 바로 구무림의 맹주다.


노루나와 노루미가 아무리 강하더라도, 노요한과 비견되는 강자인 구무림맹주라면 두 사람을 겨울잠 자는 곰처럼 잠잠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이다.


또한 그 정도로 뛰어난 실력을 갖춘 존재이니 자연히 뛰어난 진명 또한 갖추고 있을 것이다.


타갈대제의 마음에 든다면 임금 제帝와 하늘 천天 중 하나 정도는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노루나와 노루미의 사정은 그러하다.


반면, 도망치는 쪽인 우리는 불필요한 싸움만 일으키지 않는다면 구무림 진입에 큰 문제가 없을 것이다.


아무리 구무림에서 신무림인을 배척한다고 하더라도 가만히 있는 사람을 먼저 위협하고 때리는 것도 아닐 테니, 눈에 띄지 않게만 활동하면 될 것이다. 눈에 띄지 않게만 활동하면···.


"그래, 그러면 다음 행선지는 구무림이구나."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풀었다.


"너희들, 잠도 잘 잤으니, 이제 새로운 기분으로 출발해 보자고."


"제일 늦게 일어난 주제에 큰 소리 치기는."


루아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이제 잠도 잤으니 더 이상 도로에서 사고는 안 일어나겠죠?"


"그건 몰라. 그게 바로 도로라는 곳이니까."


"히이이···."


나는 겁에 질린 송하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숙소를 빠져나왔다.


그렇게 나와 루아, 송하는 구무림을 향한 여정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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