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하추풍검 - 5분 후 갈라져 죽다 -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현대판타지

창렉스
작품등록일 :
2023.05.10 18:38
최근연재일 :
2023.10.12 00:33
연재수 :
113 회
조회수 :
15,225
추천수 :
659
글자수 :
671,804

작성
23.06.26 18:59
조회
101
추천
3
글자
13쪽

유몽공 몽현 1

DUMMY

2월 16일, 목요일.


이곳 인천에서 제주도까지 가는 이동 수단 중 가장 빠른 것은 물론 항공편일 것이다.


사실 영종도의 인천공항에는 제주도로 가는 직항편이 없다.


직항편을 찾으려면 김포공항으로 가야 한다. 여기서 40분 정도 북쪽으로 달리면 나온다.


김포공항에서 제주도까지는 1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그러나 김포시는 항쟁이 한창 벌어지는 서울 부근. 자칫하면 또 살수와 목숨을 건 싸움을 해야 한다. 그런 고생을 사서 하고 싶지는 않다.


그렇다고 해서 인천공항에서 제주도로 갈 방도가 없느냐 하면 그건 또 아니다.


인천공항에서 제주공항으로 가는 항공편이 있기는 한데, 대부분 열도나 대륙의 공항을 거쳐서 가게 된다.


일단 그렇게 하면 7시간가량 걸리는데, 문제가 있다.


관아에서 해외로 나가는 노선을 통제해서 그런 노선은 애초에 선택할 수 없다는 점이다.


그래서 비행기는 버리고 배로 가야 한다.


인천에는 인천항이 있다. 월수금 오후 7시에만 배가 출발하는데, 이곳을 통하면 13시간 30분 정도 걸려서 제주항에 도착하게 된다.


여기서 또 문제가 발생한다. 오늘은 목요일이고, 따라서 인천항에서 배를 탈 수 없기 때문이다.


"젠장, 내가 너무 오래 자긴 했네. 조금 덜 잤으면 어제 걸 탔을지도 모르는데."


내 한탄에 송하가 위로의 말을 건네었다.


"어쩔 수 없어요. 저도 어제 일어났을 때 이미 저녁 7시였고, 노 대··· 루아 양도 오늘 새벽에 깼거든요."


송하도 그렇게 말할 정도니 정말로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


인천항도 쓸 수 없게 되면, 이제는 직접 남부까지 바이크를 몰고 가야만 한다.


그나마 가장 가까운 곳이 반도 남서쪽에 있는 목포항. 차로 4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였다.


그리고 그 목포항에서 제주항까지 가는 데에 또 5시간 정도가 걸린다.


목포항에서는 하루에 한 대씩밖에 배가 안 다니는데, 오늘은 이미 지나갔고 내일 새벽 1시에 배가 있다고 한다.


"젠장."


목포항까지 달릴 생각을 하니 벌써 피곤해지는 듯했다.


"네가 새로운 기분으로 출발하자며."


루아가 내 어깨를 툭 쳤다.


"어서 새로운 기분으로 출발해."


"미안, 내가 헛소리했다."


그렇게 우리 세 사람은 서해를 옆에 끼고 바이크를 몰아서 목포까지 가게 되었다.


어차피 새벽 1시까지 시간도 많이 남았기에 가면서 꽃구경도 하고(겨울이라 없었지만) 경치 구경도 하고 앉아서 쉬기도 하고 바다 냄새도 맡고 하면서 천천히 갔다.


저녁까지 먹고 달린 끝에 우리는 8시쯤 되어서 목포항에 도착할 수 있었다.


목포항에는 사람이 무척이나 많았다.


사실 작년에도 구무림에 찾아가 본 적이 있긴 했다.


루아의 호법 중 하나인 석산검 진림의 문파가 제주도 한라산 중턱에 있었는데, 그때 이열과 함께 여수항을 통해 제주도에 진입했었다.


구무림에서는 신무림인을 배척한다고 했는데 어째서 관광객들이 이렇게나 많은가 하면, 이는 제주도 전체가 구무림인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제주도 북쪽의 제주시와 남쪽의 서귀포시는 비교적 번화한 도시라서 젊은 사람들이 많고 외지의 정보도 많이 흘러들어온다. 그래서 이 지역에서는 신무림 무공을 향유한다.


구무림은 제주도 서쪽과 동쪽의 읍면지역, 이른바 시골이라 불리는 그런 지역에 존재한다. 따라서 구무림인의 평균 연령이 신무림인보다 훨씬 높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진림을 잡으러 갔을 땐 읍면지역을 거치지 않고 지리산을 올랐기에 구무림인들의 시야를 쉽게 피해 갈 수 있었다.


"아, 피곤해."


"고생하셨어요."


송하가 내 어깨를 주물러 주었다.


여기서 시시껄렁한 잡담을 나누며 좀 더 기다렸다.


그 후 화물표를 뽑아서 바이크를 선박 화물칸에 먼저 싣고, 그다음 우리가 배를 타기 위해 필요한 표를 샀다.


일반실과 다인침대실이 있었는데, 일반실은 침대가 없이 원룸처럼 공간만 있는 곳이었고, 다인침대실은 침대가 여러 개 있는 방이었다.


우리 세 명은 운명공동체였기에 셋 다 같은 방을 주문해야 했고, 새벽 내내 타고 가야 하니 기왕이면 안락하게 쉴 수 있도록 침대실로 방을 잡았다.


목포항까지 운전은 내가 했으니, 푯값은 루아가 내주었다. 부잣집 영애이니만큼 이런 일로 지갑이 얇아질 일은 죽을 때까지 없을 것이다.


나는 뒤도 안 돌아보고 곧장 침대칸으로 들어가 몸을 뉘었다.


"잘 자. 내일 보자."


그리고 5분도 지나지 않아 곧장 잠들었다.


안 자고 버티는 것도 가능했지만, 이미 내 몸은 단잠의 달콤함을 깨달아 버린 뒤였다.


···그러나 한 번은 단잠을 허락받았으나, 두 번은 그리되지 않았다.


운명은 아직 나에게 자유를 허락하지 않았다.


***


같은 시각, 전라남도 나주시.


천상천하 유아독존. 미선당주美仙堂主 노루미.


그런 그녀를 따르는 봉금조奉金組.


흰 머리와 갈색 피부, 그리고 검은 양복을 차려입은 사내. 노루미를 보호하는 북열北烈 용총.


붉은 머리칼에 왼쪽 머리를 옆으로 묶어 내린 교복 차림의 소녀. 노루미를 동경하는 동광東狂 란저.


정리되지 않은 머리칼에 흰 도복을 입은 검객 청년. 노루미에게 충성하는 서침西沈 영힐.


"음후가 따라오지 않아서 다행이네요."


여고생 동광 란저가 천진난만하게 웃으며, 죽은 남음南淫 음후를 험담했다.


"인제 와서 말하는 거지만, 저 그 사람 진짜 싫었어요.


맨날 혼자서 뭐라 중얼거리고, 혼자서 머리에 헤드폰 끼고 노래 듣고, 덩치는 산만 하고, 냄새나고, 못생겼고.


무엇보다도 당주님을 혼자 독차지하려 했죠. 그게 제일 싫었어요."


"맞아, 당주님은 누구의 것도 아니지."


서침 영힐이 그녀의 말에 동조했다.


그에게 노루미는 박물관에 들여놓은 보물과도 같은 존재다.


누구도 손댈 수 없으며 멀리서 지켜보아야만 한다.


그런데 란저는 아무렇지도 않게 노루미의 팔에 달라붙었다.


"아닌데요? 당주님은 제 거예요. 아저씨는 이렇게 못하죠?"


그녀는 영힐에게 혀를 내밀며 얄밉게 놀렸다.


'저 녀석이!'


자신이 정한 선을 너무나도 간단히 넘어 버린 란저.


영힐은 당장 발도하여 그녀의 혀를 잘라 버리고 싶었지만, 좋아하는 루미의 앞이었던지라 참았다.


그가 헛기침하며 말했다.


"···나 아저씨 아니다. 아직 20대라고."


"네? 그러면 아저씨 맞잖아요?"


"이게!"


영힐이 당장 발도하려 했다.


물론 실제로 뽑지는 못했고, 그런 그를 보며 란저는 뽑지도 못할 거면서 검은 왜 쥐냐면서 더욱 놀렸다.


"란저, 그만해."


노루미가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란저를 밀어냈다.


"그래도 음후는 업무에 충실한 부하였어. 너무 놀리지는 마."


"네~ 당주님."


란저는 강아지처럼 맑은 눈으로 노루미를 올려다보며 금세 복종했다. 그 모습이 영힐은 또 얄미워서 때려주고 싶었다.


노루미와 봉금조.


그들은 죽은 음후를 대신할 무림인을 찾기 위해 수도권에서 벗어나 이 먼 나주시까지 왔다.


당초에 북열 용총이 이월과 노루아의 위치를 노루미에게 고했고, 그들이 반도 남서쪽으로 내려간다는 보고를 들은 노루미가 그 근방에 사는 어느 실력자를 만나기 위해 봉금조와 함께 내려온 것이다.


잠시 후 그들은 공원 벤치에서 신문지를 덮고 잠들어 있는 한 독거노인을 발견했다.


란저는 기분 나쁘니 빨리 지나가자고 했지만, 노루미는 그녀를 멈춰 세우며 저 노인이 바로 자기가 찾던 무림인이라고 말했다.


"네에? 저 고독사 직전인 할아버지가요?"


두 눈을 솔방울처럼 크게 뜨고 놀라는 란저를 두고, 노루미가 노인에게 혼자 다가갔다.


그녀는 노인을 내려다보며 속삭이듯 말했다.


"몽현, 일어나."


바로 그 순간, 노인의 두 눈이 번쩍 뜨였다.


그의 시선은 보랏빛으로 빗발치며 노루미의 푸른 두 눈을 향해 뛰어들었다.


바다, 푸르고 거대한 바다에 그의 의식이 끼어들고, 반대로 노루미의 의식은 검고 끝을 알 수 없는 어둠 속으로 떨어졌다.


그러기를 1초. 노루미는 다시 현실로 돌아와 몽현이라는 노인을 바라보았다.


몽현 또한 몸을 일으켜 앉아 현실에서 노루미를 바라보았다. 그는 보라색 보자기에 싸인 길쭉한 무언가를 품에 안고 있었다.


그가 빙그레 웃었다.


"너의 잠재의식을 보았다. 보통 사람은 아니구나. 네가 뇌제 노요한의 둘째 딸 노루미렷다."


"어머, 그새 신상까지 파악한 거야?"


노루미도 따라서 웃었다. 몽현이 말했다.


"죽은 부하에게 미안함을 느끼고 있군. 나름대로 의리는 있는 모양이구나."


"마치 네가 나를 인정하는 듯한 말투네?"


"그렇지."


"그럼, 내가 마음에 안 들었으면 어쩌려고 했어?"


"그러면 그냥 돌려보냈겠지."


몽현이 눈을 예리하게 떴다.


"하나, 만약 견디기 힘들 정도로 추악했다면 그 자리서 뇌살腦殺 해 버렸을 거다."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영힐의 검이 그의 목에 들이밀어졌다.


"불필요한 언동은 삼가라, 노인네. 조금이라도 더 세상의 빛을 보고 싶다면 말이야."


"빛 말인가, 크핫."


몽현이 자기 눈을 가리켰다.


"나는 맹인일세. 빛 따윈 옛날에 잃어버렸지. 내게 눈은 기의 방출을 위한 창문에 지나지 않아."


"그래, 영힐."


노루미가 끼어들었다.


"이 사람은 이제 현실에는 관심이 없어. 자기만의 세상에만 흠뻑 빠져 있지."


그녀가 영힐로 하여금 검을 거두도록 하고, 진지한 목소리로 몽현에게 말했다.


"유몽공幽夢功의 몽현. 당신에게 부탁할 건 한 가지야."


"추풍검 이월의 조사겠지."


몽현의 대답에 노루미가 짐짓 놀라는 체했다.


"그 짧은 틈에 그것도 알아낸 거야?"


"뇌제 노요한, 천수상좌 이천, 모두 구무림 시절에 알던 자들이다."


몽현은 벤치 등받이에 등을 기대고 편하게 앉았다.


"미선당주여, 내게 즐길 거리를 제공해 주어서 고맙다.


이것도 인연이니, 이천의 아들은 그냥 내가 잡아주마. 이 시간이면 한창 잠들어 있겠지."


그는 잠들려는 듯이 고개를 숙이고는 손을 내저었다.


"다른 데서 볼일 좀 보다가 와라. 꿈에서 꿈으로 건너가야 하니까 녀석을 찾으려면 시간이 좀 걸릴 거다."


"알겠어. 영힐을 두고 갈 테니까 끝나면 얘한테 알려줘."


영힐은 벤치 옆에 자리 잡고 섰다. 그는 몽현의 발랑 까진 머리를 내려다보며 불쾌하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자신을 향한 노루미의 미소를 보고는 금세 불쾌함을 감추었다.


루미를 위해서라면 몇 시간이고 기다릴 수 있어. 그리 생각하며 그는 유구한 시간을 기다리기 시작했다.


***


언제부턴가 현지와 함께 도심을 걷고 있었다.


번화한 도심. 둘째 형 이열에게 붙잡혀 억지로 몇 번 가본 게 전부인 그곳을 내가 현지와 함께 거닐고 있었다.


현지와 함께 밥을 먹기도 하고, 영화를 보기도 하고, 공원에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좋아했던 여자애와 만나서 이렇게 놀 수 있다니, 행복했다.


"월아."


벤치에 함께 앉아 있던 현지가 일어나서 내 쪽을 돌아보았다.


"내가 하는 거 너도 한번 따라 해 볼래?"


"뭔데?"


현지는 웃으면서 자기 검지를 잡았다.


그러더니 검지를 점점 뒤로, 손등 쪽으로 기울이기 시작했다.


일반적으로 손가락은 손등으로 꺾는다고 해봐야 90도 정도가 한계다.


그런데 현지의 검지는 멈추지 않고 계속 꺾였고, 머지않아 완전히 손등에 닿았다.


마치 연체동물 같았다.


"월아, 너도 할 수 있어."


긴가민가하는 내게 현지가 다가와, 내가 손가락을 꺾을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나도 검지를 잡고 손등 쪽으로 기울이는데,


정말이었다.


고통은 하나도 없었고, 검지가 계속 뒤로 넘어가 손등에 닿았다.


나 또한 그 기예에 성공했다.


그런데 그 순간.


눈이 뜨였다.


이미 눈을 뜨고 있었지만, 또 뜨였다.


이곳이 현실이 아니라 꿈이라는 사실에 눈을 떴다.


내 눈앞에 있는 현지는 가짜다. 현지는 이미 죽었다.


이열의 입놀림에 의해 비극적으로 죽었다.


그리고 그 증오스러운 이열도 내가 죽였다.


그러니 현지도 이열도 이 세상에 없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현실 세계의 일.


"이열."


지금, 이 꿈속 세계에서 나는, 어느샌가 현지가 아닌 이열을 마주하고 있었다.


"월아, 오랜만이야."


이열이 새하얀 손바닥을 펼치고, 그 뒤에서 사악하게 웃었다.


작가의말

 이번 화에 동광 란저와 함께 등장한 북열 용총은 이미 24화 말미에 루미와 함께 첫 등장을 했었습니다. 루미에게 보고를 올리고, 그 후 욕탕에서 걸어나오는 루미의 알몸을 태연하게 바라본 검은 양복 사내죠.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월하추풍검 - 5분 후 갈라져 죽다 -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57 인왕작열권 용총 6 +2 23.07.24 74 2 18쪽
56 인왕작열권 용총 5 +2 23.07.21 67 5 13쪽
55 인왕작열권 용총 4 +1 23.07.20 65 3 13쪽
54 인왕작열권 용총 3 +1 23.07.19 70 4 11쪽
53 인왕작열권 용총 2 +1 23.07.18 64 2 12쪽
52 인왕작열권 용총 1 23.07.17 65 2 15쪽
51 진眞 패천논검 4 +1 23.07.14 83 3 14쪽
50 진眞 패천논검 3 +1 23.07.13 69 4 14쪽
49 진眞 패천논검 2 23.07.12 69 2 14쪽
48 진眞 패천논검 1 +1 23.07.11 78 4 12쪽
47 벽력전야霹靂前夜 4 23.07.10 70 3 13쪽
46 벽력전야霹靂前夜 3 23.07.07 70 3 14쪽
45 벽력전야霹靂前夜 2 23.07.07 63 3 13쪽
44 벽력전야霹靂前夜 1 23.07.06 75 6 12쪽
43 패천논검 6 - 이십사수매화검 관윤 1 +1 23.07.05 87 5 12쪽
42 패천논검 5 - 흡성검 종혁 2 +2 23.07.04 82 3 14쪽
41 패천논검 4 - 흡성검 종혁 1 +1 23.07.03 91 6 13쪽
40 패천논검 3 +2 23.06.30 96 3 12쪽
39 패천논검 2 +1 23.06.29 88 3 13쪽
38 패천논검 1 +1 23.06.28 93 4 14쪽
37 유몽공 몽현 2 +1 23.06.27 96 3 13쪽
» 유몽공 몽현 1 +1 23.06.26 102 3 13쪽
35 재정비, 그리고 구무림으로 +3 23.06.23 116 4 12쪽
34 윤회輪廻 +1 23.06.22 118 4 13쪽
33 천상천하 유아독존 6 +3 23.06.21 123 5 14쪽
32 천상천하 유아독존 5 +1 23.06.20 112 6 16쪽
31 천상천하 유아독존 4 23.06.19 112 4 11쪽
30 천상천하 유아독존 3 +2 23.06.16 151 5 12쪽
29 천상천하 유아독존 2 23.06.15 121 5 12쪽
28 천상천하 유아독존 1 23.06.14 131 5 16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