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지의 편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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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라프
작품등록일 :
2023.05.12 23:43
최근연재일 :
2024.09.18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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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2.21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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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화 (2)

DUMMY

차원이 다르다.

어떤 존재가 결을 같이하는 다른 존재를 월등히 뛰어넘을 때 사용하는 관용구.

그렇다면 ‘저것’은 과연 ‘차원이 다르다’라는 단 여섯 음절로 판가름할 수 있는 존재인가?

그 질문에 이찬은 단호하고도 확연하게 말할 수 있었다.


불가능.


이 한 단어로 모든 설명이 가능했다.

그들의 앞에서는 무엇도 할 수 없다.

유감스럽게도 그들에겐 ‘상상력 이 할 제한’이 걸려 있지 않았다.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몸은 사시나무처럼 떨려왔고, 뇌는 망부석이 되었다.

이성은 이미 자취를 감췄고, 본능은 도망쳤다.

검을 쥔 손에 힘이 풀렸다.

저들이 내뿜는 아우라는 몸의 전 기관을 망가뜨리고도 남을 만큼 살벌했다.

이는 분명 진짜 그들이 느끼는 감정이 아닐 것이다.

모든 상상력의 제약이 없던 바빌론에서의 상황은 이와는 천차만별이었기 때문이었다.

‘허용 상상력’의 제한이 그들에게 예상치 못한 큰 두려움을 선사한 것이다.

이것이 진짜 본인이 느끼는 감정이 아닌 것을 인지함에도 불구하고 일행은 손 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


[아우우우우우!]


이윽고 하울링이 더 크게 울려 퍼졌다.

하울링이 끝나기 무섭게 차원의 틈에서 무수히 많은 늑대가 모습을 드러내 일행의 주변을 포위했다.

늑대의 크기는 웬만한 중형 자동차를 상회할 정도로 거대했다.

아윤과 이찬은 얼떨결에 등을 맞대고 섰지만, 이미 전의를 상실한지 오래일 뿐이었다.

서서히 포위망이 좁혀졌고, 한 늑대가 이찬을 향해 달려들어 목덜미를 물어 뜯으려 하자 이찬은 눈을 감아버렸다.


콰직!


살아있는 생명체가 산산조각 도륙나는 소리가 들렸고, 이찬은 그것이 자신의 목이 뜯기는 소리라고 생각했다.

이내 체념했지만 그를 깨운 것은 늑대의 뜨거운 피였다.


“케헥!”


사레가 들려 기침을 한껏 한 이찬이 튄 피를 엉성하게 닦고 정면을 응시했다.

그곳에는 늑대의 목덜미를 잔인하게 물어 뜯고 그 시체를 물어 자신을 바라보는 티라노가 있었다.

그리고 티라노의 머리에는 그의 주인이 타고 있었다.


“움직여. 그렇지 않으면 죽어.”


이노는 그렇게 말하곤 공룡을 늑대가 출몰했던 곳과 같은 차원에서 소환해 늑대를 도륙했다.


끼잉! 깽!


불과 삼십 초 전까지 보였던 위압감 넘치는 늑대는 어디 가고 이제는 꽁무니를 내리고 도망치는 개만이 선명하게 눈에 담겼다.

잠시 눈을 감았다 뜬 이찬이 다시 이성을 회복시켰다.

본능은 통제되었고, 몸은 자유자재로 움직였다.

극심한 공포를 느꼈기 때문일까. 머리는 지금 그 어떤 정보도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맑은 정신을 가지게 되었다.

그야말로 전투를 할 수 있는 최상의 상태. 그리고 이런 현상을 겪은 것은 이찬뿐만이 아니었다.


“갑자기 편해졌어.”


곁에 있는 아윤이나 한 발짝 떨어져 후방 지원 중인 가스페르도 비슷한 상황인 듯 보였다.

더 이상의 두려움은 없었다. 그저 두려움이 자리하고 있던 공간에 이제는 결연함이 들어섰다는 차이만이 이찬을 일으키고 있었다.


“딱 넷이네. 하나씩.”


아윤이 다시 한번 이찬의 곁에 섰다.


“일단 내가 분석하기론··· ···.”


이찬이 그동안 파악한 네 신의 특징을 나열했다.

먼저 이명 ‘지옥의 파수견(把守犬)’ 케르베로스.

머리 셋 달린 늑대의 모습을 하고 있으며 올림포스 명계의 검문을 맡고 있다. 명계를 수호하는 괴수답게 무력은 동물 기반의 여타 다른 신들과는 비교하는 것이 수치일 정도로 강한 신.


이명 ‘궁신의 아류작’ 아페토르.

태양의 신이자 궁술의 신인 아폴론에게서 일부 떨어져 나온 신으로 아폴론이 현재 천신을 넘어선 경지를 개척하고 있기에 그 격의 극히 일부일 뿐이더라도 하신을 아득히 상회하는 신.

특징은··· ···, 거구다.


이명 ‘달을 섬기는 갈대’ 시링크스.

그리스 신화를 기반으로 한 성단 <올림포스>에서 요정의 역할을 부여받은 신으로 아르테미스를 섬기는 요정으로 유명했다. 특별한 능력은 없지만 그녀의 존재가 곧 능력치의 상향이기 때문에 먼저 그녀를 노려야 한다.


마지막 그들의 지도자격 되는 신인 이명 ‘달의 총애를 받는 자’ 아탈란테.

그녀는 달의 여신 아르테미스의 대표적인 주민으로 사실 그녀의 자격은 주민이게 신이라 부르기엔 모호한 감이 있지만 그녀의 격이 결코 신에게 밀리지 않기에 리더의 자리를 꿰찼다.


이찬의 설명을 모두 들은 아윤아 창을 양손으로 그러쥐고는 말도 없이 땅을 박차고 뛰었다. 그리곤 세상이 떠나가라 소리쳤다.


“내가 시링크스를 맡을게!”


아윤이 신명을 말하자 일대가 격동했다. 적잖이 당황한 이찬이 한 마디 하려 했지만.


“아니··· ···.”


이미 거리가 너무 멀어져 들리지 않을 것이 분명했기에 꾹 삼켰다.


띠링!


가스페르의 시스템 문자가 이찬에게 날아왔고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넷의 소개는 모두 들었습니다. 제가 '궁신의 아류작'을 맡겠습니다. 무운을 빕니다.


간결하고도 명확한 두 줄이었다.


피유욱!

푸슉!


이찬의 곁을 쏜살같이 지나며 나아간 화살이 궁신의 아류작에게 적중했다. 하지만 적중한 것은 본체가 아닌 바닥에 널브러진 늑대의 시체였다.


[성가신데, 활잡이를 죽이고 오겠다.]


마치 자신이 화살이라도 된 양 아페토르가 가공할 속도로 가스페르의 건너편 산으로 향했다.


[크르르··· ···.]


듬뿍 담긴 상상력이 케르베로스의 머리에서 터질 듯 부들거렸다.


크라아아아!


어언지간 이노가 탄 공룡을 향해 뛰어올라 박치기를 하려던 케르베로스가 급격히 방향을 틀어 공룡의 곁에 바닥이 쓸리는 마찰음을 내며 멈춰 섰다.


“너무. 뻔해.”


이노의 앞에는 백악기 최강의 박치기 공룡이라 명명되는 파키케팔로사우루스가 떡하니 버티고 서 있었다.

그 매끈하고 단단한 머리를 보자 케르베로스의 왼쪽 머리가 살짝 수축했다.

파키케팔로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느리지만 확실하고 강하게 케르베로스를 들이 받았다.


[끼잉!]


뒤로 훌쩍 뛰어 넘어가자 케르베로스의 곁으로 어둠의 격이 깃든 창이 내리 꽂혔다.

아윤의 것이었다.


캉!


다시 오른손을 뻗어 창을 소환한 아윤이 시링크스의 날아드는 갈대를 공중에서 쳐냈다.


“갈대가 왜 이렇게 단단해!”


카앙!

카가가강!


갈대와 창이 맞부딪히는 소리라고는 전혀 믿기 힘들었다.

그만큼 갈대는 단단했고, 위험했다.


촤악!


아윤의 정신이 혼비백산한 틈을 타 그녀의 뒤에서 갈대가 시링크스로 변했고, 아윤이 온몸을 비틀며 그녀의 손날치기를 피했지만 불가피하게 왼쪽 어깻죽지가 조금 깊게 파이고 말았다.

아윤의 격은 기본적으로 과한 상상력을 요구한다.

어찌 보면 ‘뻥튀기 됐다’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그런데 그런 위력의 격을 발현하기도 힘든 공간인 이 지구에서 상대의 힘까지 고려하며 싸우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쳇!”


게다가 아윤은 왼손으로 창을 찌르고 휘두르는 왼손잡이이기에 왼쪽 어깻죽지의 상처는 아윤에게 조금 크게 다가왔다.

어쩔 수 없이 아윤이 코셰흐샤비브를 원으로 여러 바퀴 휘두르자 검은 안개가 둘 사이에 퍼졌다.


[안개?]


시링크스가 시야를 확보하기 힘든 이 안개를 뚫기 위해 안간힘을 써 보았지만 안개는 그저 시링크스를 따라갈 뿐이었다.


“한숨 돌렸네.”


아윤이 시링크스를 따라붙으며 집요하게 창을 휘둘렀다.


촥! 촤아악!


아윤의 창에 의해 얕지만 무수히 많은 상처가 생겨 생채기투성이가 된 시링크스가 당황하며 양손에 쥔 갈대를 마구잡이로 휘둘렀다. 하지만 어둠 속에서 자유인 아윤의 시야를 벗어나기란 굉장히 어려운 일이었다.

그때.


화아악!


어떤 물체가 아윤의 곁을 스치며 검은 안개를 빨아들였고, 그대로 가던 길을 가 버렸다.


“엇!”


급히 벌거벗겨진 느낌의 아윤이 잽싸게 땅으로 낙하하며 거리를 벌렸다.

창을 가진 입장에서는 좋지 않은 판단이었지만 창공에 더 있었다간 아페토르의 활에 노출되기에 이것이 최선의 판단이었다.


“미안합니다!”


가스페르의 사과를 듣고 아윤이 다시 일어나 창을 잡았다.


***


슈우욱!


나선형의 궤적으로 날아오는 화살에 아페토르가 나무 뒤로 엄폐했다.


[확실히 까다롭다.]


아르코 솔의 위력과 가스페르의 궁술 실력, 거기에 허완의 지휘까지 더해지니 신을 상대하는 느낌이었다. 허나 신은 가스페르가 아니었다.

오히려 아페토르가 신에 더 가까웠다.

그 차이는 명확했다.

가스페르가 엄폐하던 바위의 바깥으로 고개를 내밀자마자 화살이 가공할 속도로 날아오며 가스페르의 귀 끝을 스쳤다. 이어 저 멀리 있던 가스페르도 들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고개를 더 조금 내미네.]


가스페르의 손에는 땀이 흥건했다.

다급히 바지에 땀을 닦은 가스페르가 허완에게 말했다.


“위치는요?”


-그리 멀지 않아. 바로 앞 굵은 나무. 살짝 보여.


건장한 성인 남성이 모두 가려질 크기의 거목에 아페토르가 있다는 정보를 입수한 가스페르가 기형적인 위력의 화살을 충전했다.


기이이잉!


상상력이 모이는 소리가 일부 공포를 유발할 정도로 강했고 소리와 위력은 완벽히 비례했다.


쿠와아아아아앙!


전례 없는 폭발적인 위력의 화살에 거목은 물론 반경 10미터가 초토화가 되며 흔적도 남지 않았다.


“후.”


가스페르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거목이 있던 자리에서 그 어떤 상상력도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연이나 이건 명백한 오판이었다.


솨아악!


가스페르의 뒤에서 어떤 물체가 공기를 강하게 가르는 소리가 들렸고, 다급히 가스페르가 뒤를 돌아보고는 활시위를 당겼으나.


푹!


아페토르의 손에 쥐어진 화살이 마치 창처럼 무언가를 관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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