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지의 편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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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라프
작품등록일 :
2023.05.12 23:43
최근연재일 :
2024.09.18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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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05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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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 (7)

DUMMY

‘지체할 시간이 없어.’


이찬이 숨을 돌릴 틈도 없이 곧바로 태극별관으로 향했다.


우웅!


태극별관에 들어서자 익숙한 듯 낯선 격이 이찬의 신경을 거슬렀다.

이 <태극>엔 공격은 미숙하지만 수비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신이 하나 살고 있다.

언젠가 풍백과 우사, 운사에게 한 번씩은 들어봤던 그의 일화가 이찬의 머릿속에서 재생되어 왔다.


[나조차도 그 녀석의 계(界)는 완벽히 파훼하지 못했지.]


이찬이 그 말을 들으며 안내소의 직원에게 호텔의 지배인을 불러줄 것을 요청했다.

이찬을 알고 있던 안내양 덕분에 이찬은 수월하게 지배인과 연락이 닿을 수 있었다.


-호걸이시여. 찾으셨다고?


“그렇습니다. 지금 어디십니까?”


-지배인실에 있습니다. 금방 내려갈 터이니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아닙니다. 제가 올라가겠습니다.”


통화를 끊고 안내양의 안내에 따라 버튼을 여럿 누르니 엘리베이터가 고공상승하며 알 수 없는 곳에 도착했다.

이찬이 엘리베이터에서 하차하자 바로 앞 푯말에 지배인실(支配人室)이라 적인 방을 발견했다.


똑똑.


두 번의 노크를 거듭하고 이찬이 문을 열어 지배인에게 다가갔다.


“저를 찾으셨습니까?”


“예.”


지배인실로 들어온 이찬이 지배인에게 부탁했다.


“부탁드릴 것이 있습니다.”

“호걸의 부탁인데 당연지사 듣지 않을 도리가 없지요.”


지배인이 자리에서 일어나 이찬과 마주보았다.


“이곳을 계(界)로 만들어 주십시오.”

“계라면··· ···?”

“이미 당신의 정체를 알고 있습니다.”


지배인이 당황한 듯 눈을 크게 떴다.


“문전신(門前神)이시여.”


[용케 알아내셨군요.]


지배인의 입에선 목소리가 아닌 신언이 발현되었다.

복장은 어느덧 한반도 고유의 한복 차림이 되어 이찬을 놀라게 했다.


[정식으로 소개하겠습니다. 문전신. 처용입니다.]


그에게서 형언할 수 없는 신언이 터져 나왔다.

문전신.

우리 신화에서 대문을 지키는 신으로 자주 묘사된다.

액운과 액살을 막아주는 역할을 하며, 지키는 입장인 이찬의 쪽에서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전력이었다.


[어떻게 아셨습니까?]


“별관의 문을 오갈 때마다 알 수 없는 상상력이 휘감더군요.”


이찬이 과거를 회상했다.

태극별관의 문을 들락날락할 때마다 어딘가 이질감이 들었고, 그 이질감을 그저 넘기지 않았기 때문에 발견할 수 있던 정보였다.


“태극별관이 최고의 보안을 자랑하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임이 분명했습니다. 그리하여 조금 부끄럽지만 뒷조사를 시작했습니다.”


시스템을 이용해 문전신에 대한 내용을 검색하자 어떤 곳에 작은 별관을 운영하고 있다는 정보만이 떠올랐다. 하지만 이찬에게 이 작은 단서는 모든 단서를 짜맞추는 열쇠가 되었다.


[감사할 따름입니다.]


신 같지 않은 정중한 언행.


[그래서, 무엇의 보호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이찬이 처용에게 신중을 기하며 말했다.


“이 별관입니다.”


[별관이요?]


처용이 이해하기 힘들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했다.


“이곳에 백호가 있다는 건 알고 계시겠지요.”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 백호의 수호를 맡기고자 합니다.”


처용이 부담스럽다는 듯 손사래를 쳤다.


[너무 과합니다. 제 능력이 미치지 못할 겁니다.]


“아뇨. 전 문전신 님을 믿습니다.”


[어째서 저입니까?]


“지키는 싸움에 가장 능통하시기 때문입니다.”


그 풍백, 우사와 운사가 입을 모아 격찬하는 신이다.

그들의 증언은 믿어 받들어야 할 정도로 정확하고, 믿음직했다.


[이미 은퇴한 신에게 많은 것을 바라시는군요.]


처용이 한숨을 푹 내쉬며 내빈용 소파에 몸을 뉘였다.


[은퇴하고 편하게 유유자적 놀 일만 남은 것 같았는데.]


처용이 힘을 주어 소파에서 몸을 일으켰다.


[저는 지키는 싸움에만 능통할 뿐. 이외의 지략이나 공성에서는 없는 전력만 못합니다.]


“그래서 부탁드리는 겁니다.”


처용의 어깨가 으쓱하고 올라갔다.


[어쩔 수 없군요. 이리 강경하시니.]


“호걸의 부탁이라고 하셨지 않습니까.”


[그러네요. 사내가 한 입으로 두 말하면 큰일나는 것이 이야기의 이치니.]


든든하다.

감상은 그뿐이었다.


“감사합니다.”


순식간에 이찬이 사라졌고, 처용의 눈이 한결 의지에 가득찼다.


[간만에··· ··· 살아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군.]


***


이찬이 태극별관을 재빠르게 벗어나 태극본성의 외진 곳으로 향했다.

이찬의 목적지 바닥엔 얇고 희미한 태극 문양이 있었다.

일순간 그곳이 번쩍 빛났고, 이내 다시 가라앉았다.


[오랜만이다!]


그곳엔 삐딱하게 서 있는 운사와 이찬을 향해 손을 흔들며 다가오는 우사가 있었다.


“간만입니다.”


[오랜만은 무슨. 얼마 지나지도 않았구만.]


“저 위에 어떤 신이랑 똑같은 말을 하시네요.”


[크흠.]


운사가 헛기침을 하며 주제를 환기했다.


[그래서 우리를 부른 이유가 뭐냐?]


“백호에 대한 얘기 들으셨습니까?


[당연 들었지. 네가 그렇게 메시지를 보내는데 안 읽을 수가 있나.]


머쓱한 이찬이 우사를 제치고 운사에게 다가갔다.


“운사 님.”


[응?]


“운사 님의 상징이 뭐였죠?”


[그것도 까먹었느냐? 구름이다 구름. 유일신 구름!]


“가명이··· ···.”


[‘농사와 군무의 구름’ 아니냐. 똑바로 기억해라.]


“크 역시 군무(軍務)를 담당하는 신이셨네요.”


운사가 당황하며 뒷걸음질쳤다.

이찬은 그런 운사의 손을 잡고 희번덕 눈을 치켜떴다.


“그럼··· ···군사도 어느 정도 다루실 수 있겠네요··· ···?”


운사가 당황하며 말했다.


[어··· ···가··· ···가능하다.]


얼떨결에 동의해 버린 운사가 결국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이 격을 쓰면 구름에 대한 지분이 낮아진다고 했거늘··· ···.]


운사가 한탄하며 태극본성에 떠 있는 구름을 아련하게 응시했다.


“움직이시죠.”


우사와 운사를 데리고 태극별관의 앞으로 당도한 이찬이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마철?”


마철이 적극적으로 진두지휘하여 전열을 다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 오셨습니까?]


생각보다 굉장히 잘 대열되어 있는 부분에 이찬이 감탄을 토했다.


“지금부터는 운사께서 지휘해 주실 겁니다.”


[아! 운사. 간만입니다.]

[이쪽인 참 간만이지.]


서로 악수를 나눈 운사와 마철이 서로의 지위를 바꾸었다.


[지금부터는 군무의 화신인 나 운사가 지휘하겠다.]


일취월장 전장을 지휘하며 전쟁에 대비했다.


“그나저나, 여기 앞에 있던 건물들은 전부 어디로 갔습니까?”


이찬이 텅 비어 버린 단지를 보며 말했다.


[다 밀어 버렸습니다.]


“누··· ···누가요?”


이찬이 그제서야 바닥에 있는 물기를 알았다.


“설마··· ···.”


이찬이 생각하는 것이 맞다는 듯 마철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철!”


아니나 다를까 건물을 철거한 장본인이 다가오고 있었다.


“유수 님이 하셨습니까?”

“응? 아아. 어 내가 했어. 싸우는데 걸리적거리는 게 있으면 안 되잖아?”


맞는 말이라 딱히 부정할 거리가 없었다.


“걱정 마. 여기 살던 주민들은 반대편으로 이사해 줬어. 여긴 이제 완벽한 전쟁터야.”


전쟁터.

그 말이 이찬의 정신을 한 번 더 일깨워 주었다.


“이찬 님··· ···.”


그때, 이찬의 곁으로 어떤 무리가 다가왔다.

이찬이 시선을 왼편으로 돌려 그들을 마주보았다.


“네?”

“호··· ···혹시 저희를 기억하시나요?”


이찬이 기억의 파편을 더듬거렸다.

지구를 거쳐, 《관념》을 거치고, 또 바빌론을 거쳐 마침내 파편이 이찬의 신경과 맞닿았다.


“저희에게 상상력을 주셨던··· ···.”

“맞습니다! 저희를 기억해 주시다니.”


벨리알과의 전투를 시작하기 전, 이찬은 태극본성에서 주민들의 상상력을 빌렸다.

그들은 마철의 공방 근처에 살던 평범한 영혼들이었다.


“덕분에 저희가 유명세를 탈 수 있었습니다.”


《관념》에서 있었던 대부분의 일들은 시스템의 레코드에 기록된다. 물론 그때 있던 일들도 전부 기록되었고, 덕분에 시스템에서 그들에 대한 관심도가 미비하지만 확실하게 상승해 꽤나 재미를 본 모양. 그리고 이곳에서 유명세란, 곧 상상력을 의미한다.


“이곳에 대피령이 떨어진지는 꽤 되었지만, 꼭 한번 뵙고 싶었습니다.”


이찬이 아련한 눈으로 그들을 응시했다.


“덕분에 저희가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이 감격한 얼굴로 이찬에게 인사를 건네곤 마저 대피했다.


[저런 영혼들에게 상상력은 돈에 불과하지. 넌 저 영혼들에게 돈을 기부한 거야.]


“기부는 아니죠. 엄밀히 저희는 저 영혼들의 손을 빌렸으니까.”


[깐깐하기도 하지.]


“안녕하십니까.”


이번엔 이찬의 뒤로 헤아릴 수 없이 정순한 상상력과 함께 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찬이 고개를 휙 틀어 그 영혼의 정체를 파악했다.


“누구십니까?”


이찬은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

옷차림은 편한 생활 한복에 대부분이 푸름으로 점철되어 있고 허리에는 두꺼운 검의 집을 차고 있었다.


“처음 인사드립니다. 강환중입니다.”


강환중.

언젠가 가스페르에게 들은 적 있었다.

푸른 빛의 넘실거리는 상상력과 누가 봐도 한국인인 것 같은 옷차림에 예의 바른 영혼들.


‘지나가는 개가 봐도 알겠군.’


“일행분에게 들으셨는지 모르겠지만, 「가야의 화랑」의 대표 주민, 강환중입니다.”

“스승님을 보좌하는 승현입니다.”

“동희··· ···입니다.”


이찬이 눈에 이채를 띄었다.


“전쟁에 참가하러 오신 겁니까?”

“그렇습니다. 야철신의 연락을 받고 오게 되었습니다. 저희 성주님께서도 흔쾌히 허락하셨습니다.”


「가야의 화랑」.

성지의 이름만 들어도 누구인지 대략 유추가 가능하다.


“흥무대왕(興武大王)의 후예를 뵙습니다.”


그러자 강환중이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태극>의 행동자를 뵙습니다.”


흥무대왕 김유신의 주민이라면 <태극>내에서는 최고의 전력임이 분명했다.


“잘 부탁드립니다.”

“맡겨 주십시오.”


[이찬. 준비는 다 되었다.]


운사가 구름을 타고 하강하며 이찬에게 말을 걸었다.

운사의 말에 이찬이 그의 너머를 흘깃 보았다.


“진짜 많네요··· ···.”


지금의 <태극>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백호를 지키기 위해 모인 <태극>의 병력과 운사의 개인 병력이 더해져 태극별관의 앞을 지키니 정말 그 어떤 침공도 막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띠링!


이찬의 시스템으로 옥황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전■는 뿌려■다. 곧 ■호막을 해■■ 테니 작전■ ■작하라.


메시지에 담긴 상상력이 얼마나 많은 건지 폰트가 깨져 보일 지경이었다.


사락.


아무런 징조도 없이 옥황이 지어 놓은 경계가 헤졌다.


“참 짓궂어.”


[이찬!]


당장에 출발하려던 이찬을 우사가 막아섰다.


[지금 네가 가려는 곳이 어딘지는 알고 있지?]


좋은 감각으로 이찬에게 느껴지는 미세한 상상력을 눈치챈 우사가 이찬에게 경고했다.


“너무 잘 알고 있죠.”


[걱정이 된다 걱정이.]


“걱정 그만하시고 빨리 전열에 합류하세요. 다녀오겠습니다.”


이찬의 몸이 황금빛으로 뒤덮이며 미지의 편린으로 향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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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 영멸의 비애 (1) 24.04.07 17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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